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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은 증거(막10:29-30)
군인은 군인다운 특징이 있습니다. 직업마다 태도가 품위에서 보이게 마련입니다.
예수 믿은 증거를 무엇으로 말할 수 있습니까? 예수 믿게 되면 같이 공유하게 되는
3가지 증거를 알아야겠습니다.
1. 주를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게 됩니다
물론 세상을 등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타계주의 염세주의가 아닙니다. 여기서 버린
다는 것은 목표하고 마음을 심는 일에서 떠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법칙
을 따라 살게되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의 존재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의 목표
와 양식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곳에서도 주님이 말씀하기기를 제자가 되려
면,
마 10: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우리 가족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중세기
의 개혁가들의 부르짖음이 오직 성경, 오직...이 말을 사용했습니다. 쏠라 피데, 오
직 믿음을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다른 신을 말 할 수 없습니다. 신앙은 전
적으로 죽는날까지 하나님께 맡기고 드리는 것이 신앙입니다. 성경적인 신앙입니다.
그런데 최근 기독교의 메시지 동향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세상에 필요한 것들을 하
나님께 어떻게 구할 수 있는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복을 주는 교회가 어딘가 하지
만 교회는 종교의 한 파트가 아닙니다.
생활의 도움을 주고자하는 방편이 아닙니다. 다른 종교 -카톨릭이나 불교와 다른 종
교들은 타 종교를 비판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정통신앙인은 하나님과 구원자는 한분
이시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하며 주장이 강합니다. 타 종교
와 사실상 대화의 창구가 없습니다. 기독교는 타 종교에 비해 주관적이고 일방적이
지만 어쩔 수 없는 성경 진리입니다.
예수 안에서 믿음의 방식은 세상과 다릅니다. 모든 기독교인이 공유할 특징입니다.
오직 예수만 구주다. 그 외에 선행이 구원을 합력할 수 없다는 주관입니다. 참 하나
님의 백성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실용주의 시대에 생황의 도움을 받고자 교회 나오는 사람은 참 성도가 아닙니다. 하
나님만 바라보고 세상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신구약 전체에서 세상의 부요와 명
예와 영화를 솔로몬처럼 받은 사람이 없을 겁니다. 그런 그가 물질을 구했습니까?
왕상 3:11-12 "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
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다윗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들 솔로몬이 일천번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간구할
때 분별력, 지혜를 달라고 구했습니다. 신약적으로 그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간구하는 그 내용은 그 사람의 신앙 전체의 기준일 수 있습니다.
기도문은 하나님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과 개인 문제만을 위한 기도와 구별되는데 개
인만 위해 기도하는 것은 잘못하는 기도입니다. 예수를 위한 기도가 있어야 잘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중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보수교단에서는 순교적 신앙에 대한 메시지를 합니다. 목숨 걸고 예수 믿는 것은 지
도자, 목사나 교역자에게만 주어진 계율같은 것이 아니올시다. 본래 예수교의 생명
은 세상 육신에 매여 있는 모든 정리에서 끊어져야 신앙생활이 제대로 됩니다. 성경
은 세상의 것들을 다 끊고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르게 믿는 증거입
니다.
기독교인이 된 첫 번째 특징이라면 사람이 세상 욕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집을
위해 주일성수 십일조 등의 기본 생활의 패턴을 시작으로 여러 교회의 생활 방식에
적극적입니다.
교회 나오면서 욕심이 더하고 사는 방식에 변화가 없고 주일성수,감사 등이 없이 불
신자가 봐도 기독교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세상주의에서 언행과 생활이 바꾸어야합
니다. 모든 성도가 그래야 합니다. 세상의 방식에서 완전히 하나님 나라를 목표하는
변화가 있어야 참된 믿음의 증거가 됩니다.
2. 핍박을 받게 되는 징표입니다
예수 믿으면 핍박을 받습니다. 그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일입니다. 너무 특별
하게 잘 믿어서 따라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정상적인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부
딛히는 결과입니다.
주님이 오늘 말씀하실 때,30절에 주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자는 주를 위해 바친 것
을 이 세상에서도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라고 했습니다.다른 곳에서 또
말씀하시기를,
마 10:34-35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
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
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믿으면 생각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불신 가정에서나 그룹에서
혼자 믿으면 핍박을 받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주님도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핍
박은 축복 받은 비결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기 위해 애굽 왕궁에서 최고의 학문과 기술을 익혀도
그것으로 지도자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큰 실수로 사람을 죽인 후 광야로 가서 40
년간 훈련을 받았을 때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가 부름 받을 때 보통 사람들의 생각같이 늙고 힘도 없는 주제에, 또한 그의 실수
를 평생 잊지도 못하면서 하는 말은, '할 수 없습니다'였습니다.그런데 노인이나 젊
으나 사람의 형편과 뜻으로 구원의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오직 하나님
의 은혜와 지도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연단을 받았기 때문에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순금이 뜨거운 불에서 녹아서 불
순물이 없어야 순금이 됩니다. 고난은 축복 받기 위한 작업입니다. 축복의 전주곡입
니다.
예수 믿고 사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순교까지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
다. 국가적인 환난기의 일제와 같은 경우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목숨을 걸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일상 생활에서도 예수 믿고 핍박 받다가 혹 잘못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믿으면서 개인의 목표에 따라 그 받는 핍박의 강도가 다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어떻게 믿었습니까? 예수를 다메섹 도상에서 직접 뵈었고 능력 충
만한 자요 학문적으로 인격적으로 존경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엔 핍박없
이 제자 될 법 하지만...그는 말하기를,
행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그는 성령의 체험이 분명하고 능력이 많아도 환난과 핍박을 이길 것같으나 도리어
환난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천국 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받아야 들어간다는 것
이 아니라 그렇게 환난을 받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가진 능력과 그의 인격과 명성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래도 그는 환난을 받았
습니다. 주님이 환난 받으셨고 주를 따르는 자가 환난을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 진
리가 세상을 만나면 부딛히는 소리가 핍박입니다. 숙명적인 것을 피할려 해도 못 피
합니다.
핍박이 없다는 것은 아직 예수의 참 믿음의 맛을 모르는 자입니다. 진리를 따를 때
꼭 사회의 정치적 핍박이 아니라도 일상에서도 주의 말씀 순종하려면 많이 괴롭습니
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고달픕니다. 세상으로부터 욕을 듣습니다. 핍박 받
는 것이 어쩔 수 없습니다. 편하게 예수 믿고 축복받을려면 세상 사람들도 모두 다
믿을 수 있겠지요...
기독교인이 세상사는 방식에 차이가 크기 때문에 핍박과 환난은 운명적으로 찾아오
게 됩니다. 수용하시기를 바랍니다.
3. 반드시 이세와 내세에 모두 복을 받습니다.
참 예수쟁이가 누구입니까? 이 세상과 내세에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마련입니다.
본문 30절에,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사실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려고 처음에는 어렵게 됩니다. 여러가지, 뺨을 맞거나 미
움 받고 기회도 잃습니다. 예수 안 믿는 집안에서 그룹에서 혼자 믿으면 어렵습니다
삶의 방향과 감각과 템포가 달라집니다.
예수 믿으면 주일에 교회에 가야 하고 주간 활동이 못박힌 생활로 달라집니다. 그러
한 어려움을 통과하면 하나님의 은총을 얻습니다. 기독교 2천년 간의 역사에서도 보
면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도 복을 많이 주셨습니다.
불신자의 물질 복은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물질이 많아서 무조건 하나님의 복은 아
닙니다. 예배당 크게 지으면 복이다는 말도 아닙니다. 예루살렘성도 무너질 것을 예
언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보아서 그러합니다. 신약적으로는 우리 마음의 성전을 지어
야 합니다.
예배당도 잘 지어야 하겠지만 마음에 하나님을 더 잘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예배당
을 잘 지어도 그 곳을 출입하는 사람이 변화 받지 못한 예배당 그것은 아무 소용 없
습니다.
복음 사역은 문화적 진보를 주었습니다.우리나라 개화의 역사는 기독교가 인솔한 것
입니다.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신앙인을 반드시 하나님은 축복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피땀 흘리신 기도를 하신 것은, 히 12:2-3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
를 참으사...참으신 자를생각하라"는 말씀에서,
주님이 그 앞에 즐거움을 보셨다함은 주님의 공생애와 십자가의 죽으심을 참으신 것
은 영광의 부활 즐거움을 보셨기 때문에 고난을 참으셨다고 했습니다.기독교인도 하
나님을 믿고 고난 받을 때 상을 주실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히11:6).
예수 믿으면 대체로 세상으로도 잘됩니다.그러나 혹 예수 잘 믿었는데 자기 때에 복
을 얻지 못하면 그 복을 후대에 보내는 수가 있습니다.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받
은 은총과 같은 경우입니다.
그의 나이 다섯 살 때 형제들이 길보아산에서 전사할 때 그 유모가 데리고 도망치다
가 떨어뜨려 두 발을 다 절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국왕이 되었을 때 사울의 모든 재
산을 찾아 므비보셋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를 식탁에서 함께 했습니다. 그 아버지
가 의인에게 배푼 선행으로 불구자였으나 우대를 받게 된 것입니다.
또한 두번째로 예수 믿음 증거로 내세에 영생과 상급이 있습니다. 이것을 믿고 고백
하게 됩니다. 사실 기독교인의 복은 내세에 있습니다. 상리적으로 세상 복을 위해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이미 자기 상을 받는 것에 대해 비관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이
세상의 것은 별거 아니란 말입니다. 기독교인의 진정한 상은 내세에 있습니다. 이것
이 가장 귀하고 뚜렷한 증거입니다. 그 영생은 이미 우리 속에 주어졌습니다.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주님을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얻어버렸다고 합니다. 우리 맘 속에 영생이 시작되었
고 이미 영생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온 성령은 영생을 주셨기 때문
에 혹 낙심되어도 죽음의 선을 넘어 하늘나라 갈 때까지 영생은 떠나지 않습니다.영
생은 낱말 자체가 그런 성격입니다. 한번 들어오면 영원히 빠져 나가지 않는 것입니
다. 하나님이 영생을 주셨다 빼았았다 하시지 않습니다.
31절에,"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고 하신 것은 이러한 신앙으로 오는 핍박이나 축복은 먼저 믿거나 뒤에 믿거나 관계
없이 따라오는 현상이라는 말입니다. 뒤에 믿어도 축복을 더 받을 수 있고 먼저 믿
는다 해도 복 받을만 하지 못하면 못 받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나타난 자신의 간증
이 있어야 합니다. 핍박과 하나님이 주시는 확신에 가득 차서 충만한 증거로 사시기
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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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용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7-12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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