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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귀한 자녀(8) 믿음으로 강한 자녀

에배소서 김동호............... 조회 수 1933 추천 수 0 2004.07.21 09:13:06
.........
성경본문 : 엡6:4 
설교자 : 김동호 목사 
참고 : 높은뜻숭의교회 

무엇보다 귀한 자녀 (8)  김동호 목사  2004.07.18 564  
엡 6 : 4, 렘 12 : 1 - 6.

 

기독교와 미신을 비교한다는 자체가 문제가 있지만 구태여 비교한다면 미신은 운명과 팔자를 믿는데 우리 기독교는 ‘그와 같은 운명과 팔자를 믿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집을 짓는 건축에 비교한다면 미신은 신이 집을 자기 마음대로 건축하여 사람에게 운명적으로 그것을 분배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집에 대하여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것을 바꾸고 싶으면 신에게 제사를 드려 신의 마음을 움직여 그 집을 바꾸어야만 합니다. 그것을 저들은 ‘팔자를 고친다.’라고 말하며 그 팔자를 고치는 것이 미신적인 종교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이요 유일한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의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집을 운명적으로 지어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각자의 집을 자기가 직접 지을 수 있는 능력과 자유를 주시고 자기 인생의 집을 자기가 최선을 다하여 아름답게 훌륭하게 지으라고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집은 운명적으로 지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신껏 최선을 다하여 자유스럽게 지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우리 인생의 집을 지어야 하는지를 일러주시고 또 잘못하고 실수하여 건축을 망친 자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는 일을 하시며 끝까지 우리 스스로 우리 인생의 집을 건축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하나님을 잘못 오해하여 기독교도 미신처럼 믿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신을 믿는 사람들은 결혼을 할 때 궁합을 봅니다. 그리고 궁합이 맞느니 맞지 않느니 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답답한 일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 중에도 결혼을 하면서 궁합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실제로 어느 교회 권사님이라고 하시는 분이 궁합 때문에 자녀들의 결혼을 반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무당 점 보듯 하며 믿는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점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이 운명적으로 결정 되었을 경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운명적으로 고정시켜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귀신이 우리의 과거는 혹 알아 마칠 수 있다고 하여도(귀신이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귀신이 우리의 앞날을 다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앞날을 결정해 놓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맡겨 자유스럽게 개방시켜 놓으신 것을 어떻게 귀신이 결정하고 그것을 알아 마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에스겔 33장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 중 곧 그 중에서 죽으리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법과 의대로 행하여, 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물을 돌려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준행하여 다시는 죄악을 짓지 아니하면 그가 정녕 살고 죽지 않을지라. 그의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정녕 살리라 이는 법과 의를 행하였음이니라 하라” (겔 33:13-16)

하나님이 의인에게는 ‘살리라’라고 말씀하셨고, 악인에게는 ‘죽으리라’ 말씀하셨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간에게 운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운명적인 심판의 말씀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의인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인 ‘살리라’는 말씀은 그러므로 너는 이제부터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다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인 ‘너는 죽으리라’는 말씀도 이제 너는 끝났다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살리라 하신 의인도 그 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지은 죄악 중에 죽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죽으리라 하신 악인도 그 말씀을 듣고 죄에서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 법과 의대로 행하면 그가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니누웨 성에 보내어 ‘40일 후에 망하리라’는 예언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요나의 그와 같은 예언을 들은 니누웨 백성들이 임금으로부터 온 백성에 이르기까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자 하나님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시고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예언한 날에 니누웨가 멸망하지 않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불평을 합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자기를 망신 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렇게 말을 안 듣는 요나를 니누웨까지 보내어 그 예언을 하시게 하신 것은 니누웨를 40일 후에 멸망시키시기 위함이 아니라 40일 안에 회개케 하여 구원하시고자 하신 것이었습니다.

말씀이 길어졌습니다. 제가 여기서 강조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운명과 팔자를 주시지 아니하시고 스스로의 인생을 건축할 수 있는 자유와 능력 그리고 기회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인생을 건축하고 개척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지혜롭고, 무엇보다도 강하여야만 합니다. 엄청난 지혜와 엄청난 능력이 있어야만 아름답고 성공적인 인생을 건축하고 개척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당신의 지혜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당신의 영을 우리에게 불어넣어주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을 가진 지혜로운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건축자로서 자기 인생을 훌륭하고 아름답고 성공적으로 건축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늘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말미암지 않고는 절대로 훌륭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건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건축하려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그것을 아름답게 완성하려고 하면 그것을 하나님의 영으로, 하나님의 지혜로 감당해야만 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도 하나님의 영이요,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영이요, 음악을 하거나 미술을 하거나 건축을 하거나 학문을 하거나 하여튼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에 성공하려고 하면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감당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만 성령 충만함이 필요한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간적이고 세상 적 이라고 하는 모든 일상적 생활에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해야만 그 모든 것에서 진정한 승리와 성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꼭 마음에 명심하시고 여러분이 세상에서 하시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으로 감당하시는 진정한 크리스천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인들 중에 더러 보면 교회 생활은 꽤 성령 충만하게 하는데,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은 전혀 세상 적으로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건축하고 개척하는데 필요한 것이 능력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능력을 주시기 위하여, 다시 말해서 힘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 인간들을 훈련시키시고 단련시키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절대로 당신의 백성을 온실에서 키우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자녀들을 광야로 내 모시며, 물 속에도 집어넣으시고 불 속에도 집어넣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제 멋대로 사는 사람들은 편안한 삶을 사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은 고생을 하고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반대이십니다.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을 믿으면 편안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 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환난과 역경을 격어야만 하는 것으로 이해가 되는데 종종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하여 강한 사람으로 키워야 하시기 때문에, 그래야만 능력 있는 자가 되어 자신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건축하고 개척하는 사람이 되겠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오히려 더 힘들고 어려운 길로 내 모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중 예레미야 12장의 말씀은 제가 참으로 좋아하여 늘 마음에 새기고 사는 말씀입니다. 삶의 원칙으로 삼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자는 형통하고 그렇지 않는 자는 고난을 당하여야만 한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살다보니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해 못할 현상이 자신에게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를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 마음은 머니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양을 잡으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그들을 예비하옵소서. 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이는 이 땅 거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결국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 (12:1-4)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 질문을 통하여 예레미야에게 주어집니다.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 하겠느냐?” (12:5)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답은 이것입니다. 말과 경주하여도 이기고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도 능히 살아남는 강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왜 의인이 이 세상에서 고난당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매우 중요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은 지혜와 하나님의 훈련으로 말미암은 능력이 있어야 우리는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인생의 건축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우리들의 자녀를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인 우리를 키우시듯 키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 자식들을 세상적인 지식으로만 키우려하지 말고 보다 중요한 하나님의 영과 지혜로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만 합니다. 세상적인 지식도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영과 지혜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세상 적으로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여도 하나님의 영과 지혜가 없는 사람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없는 지식은 자신에 삶에 궁극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세상 적으로는 좀 부족한 듯 보여도 하나님의 영과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참으로 훌륭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들을 온실에서 편하게 키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오늘 맥아더 장군이 자신의 자녀를 위하여 한 기도문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인 ‘그를 요행과 안락의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곤란과 고통의 길에서 항거 할 줄 알게 하시고 폭풍우 속에서도 일어설 줄 아는 자녀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문을 잘 이해하고 우리도 그렇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젊어서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을 키운 엄마가 아들이 군대에 가서 힘들고 어렵다고 우는 소리를 하자 세상적인 수단과 방법을 써서 그 아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국 그 아들은 제대할 때까지 다섯 번을 옮겨 다녀야만 했습니다. 다섯 번을 옮기면서도 제대를 한 것이 저는 참 용타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와 같은 어머니를 보면서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을 망치는 아주 보편적인 우리 부모들의 모습을 봅니다. 그와 같이 나약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이 힘들고 어려운 세상 속에서, 말과도 경주하고 요단의 창일한 것과 같이 험난한 세상 속에서 성공적인 자신의 인생을 건축하고 개척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둘째가 훈련소로 갈 때 제가 운전해서 훈련소까지 대려다 주었었습니다. 차 앞에는 저희 부부가 타고 차 뒤에는 우리 둘째와 친구 둘이 탔었습니다. 우리 아이 친구 놈 하나가 우리 둘째에게 ‘야 군대는 요령이래. 집합하면 앞에 서지도 말고 뒤에 서지도 말고 가운데로 들어가’라고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야 이놈들아 너희가 무슨 미꾸라지 새끼냐? 가운데로 파고들어 숨게? 그런 나약한 정신으론 힘들어서 군대 생활 이겨내지 못한다. 눈에 띠어 매 몇 차례 더 맞는 한이 있어도 집합하면 맨 앞으로 튀어 나가거라. 모든 문제를 회피하려고 하지 말고 정면으로 돌파해 버려라’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둘째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 군대에 아는 사람 많다. 장군들도 많이 안다. 될는지 안 될는지는 잘 몰라도 전화를 걸어서 우리 아들 군대에 갔는데 좀 편한대로 보내 달라고 부탁 할 데는 많다. 그러나 아버지는 장군에게 전화 안 한다. 아버지는 하나님께만 전화 할 꺼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우리 아들 지켜달라고 전화 할 꺼다’

둘째를 훈련소로 보내 놓고 정말 하나님께 전화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우리 둘째가 배치를 받은 곳은 최전방이었습니다. 그것도 군대에서 가장 힘들다고 하는 곳에 하나인 수색중대였습니다. 힘든 수색중대로 배치 받은 것만도 그런데 그 중에서도 유격조교로 발탁이 되었습니다. 그곳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든지 우리 아이가 배치되기 전 5개월 동안 두 명이나 자살을 한 그런 부대였습니다. 정말 더 골라서 힘든 부대를 가기가 어려울 정도의 부대로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장군에게 전화하지 않고 아들에게 이야기 한대로 하나님께만 열심히, 정말 열심히 전화하였습니다.

몇 달 후 둘째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그 편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져 있었습니다. ‘아버지, 유격 재미있어요’ 저는 둘째에게서 그 편지를 받으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식이 옳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그 힘든 유격이 재미있을 만큼 강해졌는데 앞으로 세상에 나와서 두렵고 힘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과정이 물론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둘째는 하나님이 의도하신대로 말과도 경주하고 요단의 창일한 중에도 능히 이겨 살 수 있는 강한 하나님의 자녀로 연단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길을 가다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일어나도록 하였습니다. 일어나면 안아주었지만 일으켜 세워주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식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자녀를 지혜로운 건축자로 키우시기를 원하십니다.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지혜와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까닭은 좋은 운명과 팔자를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과 능력을 덧입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늘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사업을 할 때나 직장 생활을 할 때나 공부를 할 때 하나님의 영의 충만함으로 그 일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맥아더 장군은 자신의 자녀를 위한 기도문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곤란과 고통의 길에서 항거할 줄 알게 하시고, 폭풍우 속에서도 일어설 줄 알게 하소 서”

자신과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자신과 자식을 쉽고 안일한 길로 몰아가지 말고 오히려 곤란과 고통의 길로 인도한 후 그것을 돌파해 나오도록 하시고 폭풍우 속에서도 일어설 줄 아는 강한 자신과 자식이 되도록 연단하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으로 강한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인생을 건축하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저와 여러분의 자녀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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