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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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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주님이 좋은 이유
우리는 때때로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 아침에는 깨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 라고 소망하며 잠을 청하지만,
내일 아침이면 여전히 나는 나로, 문제는 문제로 다시 만날때
우리의 심장은 잠시 멈춘듯 합니다.
고난의 끝은 어디 입니까?
죽음마져 아름답게 생각 되어질때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곳까지 몰고 가십니다.
절망의 끝은 어디 입니까?
절망에 대한 감각조차 무뎌질때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 가십니다.
지금의 현실이 꿈이기를 바라며 지금의 내가, 나 아니기를 바라며
돌이킬수도, 잊을수도 없는일, 그렇다고 용납도 할수 없는 가슴앓이로
우리의 희망과 미래는 또 다시 산산조각이 되어 버립니다.
이 모든 길이 초행길이라 더더욱 어색하고 홀로 지고 가기에는 버겁기만 합니다.
잊었는데 생각나고
버렸는데 손에 잡히고
떠났는데 머뭇거리며
포기했는데 여전히 기대하고
회개했는데 자꾸만 떠오릅니다.
가야할길 만리길이고 해야할일 태산인데 말이죠.
꿰맺던 환부가 다시 튿어지듯, 작은일에 또 다시 와르르 무너져
이미 건너온강 거스리다 홀연히 절망의 폭포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자세히 바라보니 그곳에 주님이 계십니다.
세밀하게 들으니 그것은 바람소리가 아닌 주의 음성이었습니다.
나쁜일이라고 다 나쁜것만은 아닙니다.
겨울속에 봄이 숨어있듯...
나쁜일 속에도 좋은 일이 숨어 있음을 봅니다.
나는 언제나 평안함속에서 주님을 찾아 헤맸으나 주님은 고통가운데 계셨고
나는 언제나 형통속에서 주님을 만나려 했으나 주님은 막힘 가운데 계셨습니다.
나는 언제나 장미속에서 주님을 기다렸으나 주님은 가시속에 숨어 계셨습니다.
그래도 돌아보니,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정도의 통증은 그래도 하나님의 후대하심 입니다.
그래도 돌아보니 나는 특별대우 입니다.
아직도 몸성히 살아있음이 어쩌면 사치인지 모릅니다.
아프면 아픈대로, 성하면 성한대로
교인이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부요하면 부요한 대로, 궁핍하면 궁핍한 대로
지나고 보면 남은것도 모자람도 없음이 일용할 은혜였습니다.
이제 하루를 살고, 하루를 믿더라도
주님을 맛보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옥중에서도 찬송을 참지 않았던 바울의 그 영성으로 날마다 살고 싶습니다.
돌이 날아 오는 순교 앞에서도 천사의 얼굴이었던 스데반의 얼굴로
하루를 살고 싶습니다.
기도하면 죽인다는 어명을 알고도 하루 세번 엎드렸던
다니엘의 영성으로 날마다 살고 싶습니다.
아픈것은 아픈것이고..
주님이 그냥 좋은 하루를 살고 싶습니다.
가난한 것은 가난한 것이고
주님이 마냥 좋은 하루이고 싶습니다.
속상한 것은 속상한 것이고
그냥 기쁘고 감사한 하루이고 싶습니다.
힘든 것은 힘든 것이고
그냥 주로 말미암아 울고 싶은 하루이고 싶습니다.
억울하고 분한 것은 그런 것이고
그냥 주님으로 행복한 하루이고 싶습니다.
내 뜻대로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고
그냥 믿음의 부자이고 싶습니다.
내일 당장 굶어 죽는다 해도 오늘은 그냥 주님으로 황홀합니다.
내일이면 온 세상이 끝난다 해도 오늘밤은 주님과 함께이고 싶습니다.
어느 한곳 기댈곳 없이 사방이 막혔어도 무엇이 걱정입니까?
주님이 살아계시면 됐지...
모든 사람에게 거절 당하고, 외면 당하면 어떻습니까?
주님이 살아 계시면 됐지...
걱정이 안되어 걱정인 그런 은혜가 있음에 오늘 같은 하루를 내일도 살고 싶습니다.
겹겹이 쌓여 가는 고난속에도 하나님의 섭리는 있습니다.
도무지 변하지 않는 상황속에도 하나님의 섭리는 있습니다.
힘이 아니라, 짐이 되는 그 사람속에도 나를 향하신 그분의 섭리는 있습니다.
길고긴 하나님의 침묵과 악인의 형통속에도 하나님의 섭리는 있습니다.
이해와 용납이 안되는 엉겅퀴 속에도 하나님의 섭리는 숨어 있습니다.
오 주님...
남이 못보는 것을 보게 하소서.
남이 못듣는 것을 듣게 하소서.
남에게 없는 '그냥 주님이 좋은 은혜로 나를 날마다 덮어 주소서.
할.렐.루.야
우리는 때때로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 아침에는 깨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 라고 소망하며 잠을 청하지만,
내일 아침이면 여전히 나는 나로, 문제는 문제로 다시 만날때
우리의 심장은 잠시 멈춘듯 합니다.
고난의 끝은 어디 입니까?
죽음마져 아름답게 생각 되어질때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곳까지 몰고 가십니다.
절망의 끝은 어디 입니까?
절망에 대한 감각조차 무뎌질때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 가십니다.
지금의 현실이 꿈이기를 바라며 지금의 내가, 나 아니기를 바라며
돌이킬수도, 잊을수도 없는일, 그렇다고 용납도 할수 없는 가슴앓이로
우리의 희망과 미래는 또 다시 산산조각이 되어 버립니다.
이 모든 길이 초행길이라 더더욱 어색하고 홀로 지고 가기에는 버겁기만 합니다.
잊었는데 생각나고
버렸는데 손에 잡히고
떠났는데 머뭇거리며
포기했는데 여전히 기대하고
회개했는데 자꾸만 떠오릅니다.
가야할길 만리길이고 해야할일 태산인데 말이죠.
꿰맺던 환부가 다시 튿어지듯, 작은일에 또 다시 와르르 무너져
이미 건너온강 거스리다 홀연히 절망의 폭포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자세히 바라보니 그곳에 주님이 계십니다.
세밀하게 들으니 그것은 바람소리가 아닌 주의 음성이었습니다.
나쁜일이라고 다 나쁜것만은 아닙니다.
겨울속에 봄이 숨어있듯...
나쁜일 속에도 좋은 일이 숨어 있음을 봅니다.
나는 언제나 평안함속에서 주님을 찾아 헤맸으나 주님은 고통가운데 계셨고
나는 언제나 형통속에서 주님을 만나려 했으나 주님은 막힘 가운데 계셨습니다.
나는 언제나 장미속에서 주님을 기다렸으나 주님은 가시속에 숨어 계셨습니다.
그래도 돌아보니,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정도의 통증은 그래도 하나님의 후대하심 입니다.
그래도 돌아보니 나는 특별대우 입니다.
아직도 몸성히 살아있음이 어쩌면 사치인지 모릅니다.
아프면 아픈대로, 성하면 성한대로
교인이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부요하면 부요한 대로, 궁핍하면 궁핍한 대로
지나고 보면 남은것도 모자람도 없음이 일용할 은혜였습니다.
이제 하루를 살고, 하루를 믿더라도
주님을 맛보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옥중에서도 찬송을 참지 않았던 바울의 그 영성으로 날마다 살고 싶습니다.
돌이 날아 오는 순교 앞에서도 천사의 얼굴이었던 스데반의 얼굴로
하루를 살고 싶습니다.
기도하면 죽인다는 어명을 알고도 하루 세번 엎드렸던
다니엘의 영성으로 날마다 살고 싶습니다.
아픈것은 아픈것이고..
주님이 그냥 좋은 하루를 살고 싶습니다.
가난한 것은 가난한 것이고
주님이 마냥 좋은 하루이고 싶습니다.
속상한 것은 속상한 것이고
그냥 기쁘고 감사한 하루이고 싶습니다.
힘든 것은 힘든 것이고
그냥 주로 말미암아 울고 싶은 하루이고 싶습니다.
억울하고 분한 것은 그런 것이고
그냥 주님으로 행복한 하루이고 싶습니다.
내 뜻대로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고
그냥 믿음의 부자이고 싶습니다.
내일 당장 굶어 죽는다 해도 오늘은 그냥 주님으로 황홀합니다.
내일이면 온 세상이 끝난다 해도 오늘밤은 주님과 함께이고 싶습니다.
어느 한곳 기댈곳 없이 사방이 막혔어도 무엇이 걱정입니까?
주님이 살아계시면 됐지...
모든 사람에게 거절 당하고, 외면 당하면 어떻습니까?
주님이 살아 계시면 됐지...
걱정이 안되어 걱정인 그런 은혜가 있음에 오늘 같은 하루를 내일도 살고 싶습니다.
겹겹이 쌓여 가는 고난속에도 하나님의 섭리는 있습니다.
도무지 변하지 않는 상황속에도 하나님의 섭리는 있습니다.
힘이 아니라, 짐이 되는 그 사람속에도 나를 향하신 그분의 섭리는 있습니다.
길고긴 하나님의 침묵과 악인의 형통속에도 하나님의 섭리는 있습니다.
이해와 용납이 안되는 엉겅퀴 속에도 하나님의 섭리는 숨어 있습니다.
오 주님...
남이 못보는 것을 보게 하소서.
남이 못듣는 것을 듣게 하소서.
남에게 없는 '그냥 주님이 좋은 은혜로 나를 날마다 덮어 주소서.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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