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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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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영원토록 동일하신 실재
1999년 영국에서 출판된 디모시 프리크(Timothy Freke)와 피터 갠디(Peter Gandy) 공저에 의해 출판된 ‘예수는 신화다’(The Jesus Mysteries)란 논쟁적인 책이 최근 한국에서도 번역 출판돼 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이 책은 ‘원래적 예수’(Original)가 ‘이방 신’(a Pagan God)이었다고 그리고 있다. 이 책은 서기 3세기의 부적 그림을 제시하면서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예수가 아니라 이교도 신인인 오시리스-디오니수스였다”고 주장한다. “기독교란 새로운 계시가 아니라 다른 이름에 의한 이방종교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예수에 대한 복음서의 이야기는 역사적 메시야의 전기가 아니라 고대 지중해지역에 수세기동안 퍼져 있었던 신인(神人) 오시리스-디오니수스(Godman Osiris-Dioysus) 이방신화를 유대교적으로 각색한 것이라고 본다. 이 책에 의하면 이방신화의 오시리스-디오니수스의 이야기는 복음서의 예수 이야기와 유사하다. 복음서의 예수 이야기는 메시야 예수에 관한 유대 신화와 죽고 부활하는 오시리스-디오니수스에 관한 이방신화를 종합한 것으로 본다. 이 책은 영지주의의 영에 사로 잡혀서 역사적이고 정통적인 기독교가 그린 역사적 예수상을 신화라고 왜곡하고 있다.
이 책의 예수상은 철저히 영지주의적 기독교 시각에 의하여 재구성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이미 19세기 빌헬름 부쉬를 중심한 독일의 종교사학자들의 주장으로 되돌아간다. 이들은 신약성서의 기독론이 희랍의 영지주의 신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주장하였다. 부쉬의 영향을 받은 불트만은 역사적 예수의 불가지(Inkognitio Jesu)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불트만은 신앙적으로는 교회에 전해진 케리그마적인 그리스도,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에 확고히 섰다.
그러나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적 그리스도를 분리시키는 불트만의 방법론적 이원론의 견해는 결국 역사적 기독교를 공중누각에 세우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제자들의 반발이 일어났고 그것이 바로 케제만이나 보른캄 등이 중심이 된 포스트 불트만 학파(the postbultmann School)였다. 스위스의 신학자 오스칼 쿨만은 구속사적 관점을 통해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복권시켰다. 이러한 시도는 튀빙겐의 베츠와 마르틴 헹겔에 의하여 예수를 오히려 유대교적 전통에서 해석함으로써 보다 역사적 예수의 실재성을 확고히 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욱이 1960년대 판넨베르그가 예수의 부활을 유대교적 지평 속에서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하였고 몰트만은 예수의 부활 사건에서 그의 소망의 신학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오늘날 현대신학은 불트만에 의하여 상실한 역사적 예수의 문제를 보편사적 지평에서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초대교회의 교부들인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터툴리안(Tertullian), 이레나이우스(Irenaeus) 등이 당시에 문제로 부상한 나사렛 예수의 생애와 오시리스-디오니수스 신화의 유사성이란 ‘사단적인 모방술’(diabolical mimicry)의 결과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러한 비판은 올바른 평가이다. 이미 초대교회에서도 바울과 요한을 비롯한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영지주의를 이단(heretics)으로 간주하였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가 육체로 세상에 오신 것을 부인하는 영마다 ‘적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하였다. 사도 요한은 말씀의 성육신을 강조하고 있으며 육신으로 오신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눈으로 보았고 손을 만져보았다고 역사적 예수의 가시성과 구체적인 실존을 강조하고 있다. 바울 역시 고린도서신에서 당시의 종교 혼합주의적인 시대상에 저항하면서 예수가 당시의 이방신들인 아폴로(Apollo)나 미드라스(Mithras)나 아셀피우스(Ascelpius)와 동일시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실재하신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언을 하고 있다.
영지주의 신화에서 구속자는 진정한 육신을 쓰고 오는 것이 아니라 가현적인 육신을 쓰고 온다. 그리고 신화의 구속자는 실재로 십자가에 달리지 않고 가현적인 몸만 십자가에 달리게 하고 그의 영은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신화의 구속자는 육신이라는 더러운 물질에 들어 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고백하는 구주,나사렛 예수는 실재로 인간 세계에 육신을 쓰고 오셨고 제자들과 더불어 기거하시고 병자들을 고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셨고 십자가에 달려 그의 몸이 찢기고 피를 흘리셨다. 예수는 이미 하나님의 아들로서 초대교회에 의하여 신앙고백되었고 오늘날의 교회에 의해서도 고백되고 있다. 히브리서 기자가 증언하는 바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실재요 구주시다.
김영한(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장)
1999년 영국에서 출판된 디모시 프리크(Timothy Freke)와 피터 갠디(Peter Gandy) 공저에 의해 출판된 ‘예수는 신화다’(The Jesus Mysteries)란 논쟁적인 책이 최근 한국에서도 번역 출판돼 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이 책은 ‘원래적 예수’(Original)가 ‘이방 신’(a Pagan God)이었다고 그리고 있다. 이 책은 서기 3세기의 부적 그림을 제시하면서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예수가 아니라 이교도 신인인 오시리스-디오니수스였다”고 주장한다. “기독교란 새로운 계시가 아니라 다른 이름에 의한 이방종교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예수에 대한 복음서의 이야기는 역사적 메시야의 전기가 아니라 고대 지중해지역에 수세기동안 퍼져 있었던 신인(神人) 오시리스-디오니수스(Godman Osiris-Dioysus) 이방신화를 유대교적으로 각색한 것이라고 본다. 이 책에 의하면 이방신화의 오시리스-디오니수스의 이야기는 복음서의 예수 이야기와 유사하다. 복음서의 예수 이야기는 메시야 예수에 관한 유대 신화와 죽고 부활하는 오시리스-디오니수스에 관한 이방신화를 종합한 것으로 본다. 이 책은 영지주의의 영에 사로 잡혀서 역사적이고 정통적인 기독교가 그린 역사적 예수상을 신화라고 왜곡하고 있다.
이 책의 예수상은 철저히 영지주의적 기독교 시각에 의하여 재구성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이미 19세기 빌헬름 부쉬를 중심한 독일의 종교사학자들의 주장으로 되돌아간다. 이들은 신약성서의 기독론이 희랍의 영지주의 신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주장하였다. 부쉬의 영향을 받은 불트만은 역사적 예수의 불가지(Inkognitio Jesu)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불트만은 신앙적으로는 교회에 전해진 케리그마적인 그리스도,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에 확고히 섰다.
그러나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적 그리스도를 분리시키는 불트만의 방법론적 이원론의 견해는 결국 역사적 기독교를 공중누각에 세우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제자들의 반발이 일어났고 그것이 바로 케제만이나 보른캄 등이 중심이 된 포스트 불트만 학파(the postbultmann School)였다. 스위스의 신학자 오스칼 쿨만은 구속사적 관점을 통해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복권시켰다. 이러한 시도는 튀빙겐의 베츠와 마르틴 헹겔에 의하여 예수를 오히려 유대교적 전통에서 해석함으로써 보다 역사적 예수의 실재성을 확고히 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욱이 1960년대 판넨베르그가 예수의 부활을 유대교적 지평 속에서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하였고 몰트만은 예수의 부활 사건에서 그의 소망의 신학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오늘날 현대신학은 불트만에 의하여 상실한 역사적 예수의 문제를 보편사적 지평에서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초대교회의 교부들인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터툴리안(Tertullian), 이레나이우스(Irenaeus) 등이 당시에 문제로 부상한 나사렛 예수의 생애와 오시리스-디오니수스 신화의 유사성이란 ‘사단적인 모방술’(diabolical mimicry)의 결과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러한 비판은 올바른 평가이다. 이미 초대교회에서도 바울과 요한을 비롯한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영지주의를 이단(heretics)으로 간주하였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가 육체로 세상에 오신 것을 부인하는 영마다 ‘적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하였다. 사도 요한은 말씀의 성육신을 강조하고 있으며 육신으로 오신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눈으로 보았고 손을 만져보았다고 역사적 예수의 가시성과 구체적인 실존을 강조하고 있다. 바울 역시 고린도서신에서 당시의 종교 혼합주의적인 시대상에 저항하면서 예수가 당시의 이방신들인 아폴로(Apollo)나 미드라스(Mithras)나 아셀피우스(Ascelpius)와 동일시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실재하신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언을 하고 있다.
영지주의 신화에서 구속자는 진정한 육신을 쓰고 오는 것이 아니라 가현적인 육신을 쓰고 온다. 그리고 신화의 구속자는 실재로 십자가에 달리지 않고 가현적인 몸만 십자가에 달리게 하고 그의 영은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신화의 구속자는 육신이라는 더러운 물질에 들어 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고백하는 구주,나사렛 예수는 실재로 인간 세계에 육신을 쓰고 오셨고 제자들과 더불어 기거하시고 병자들을 고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셨고 십자가에 달려 그의 몸이 찢기고 피를 흘리셨다. 예수는 이미 하나님의 아들로서 초대교회에 의하여 신앙고백되었고 오늘날의 교회에 의해서도 고백되고 있다. 히브리서 기자가 증언하는 바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실재요 구주시다.
김영한(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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