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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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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망합니다
얼마 전 ‘어머니의 이름으로’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프로그램에서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50대 아들의 78세 어머니는 새해 소망을 말했다.
“새해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조금만 나아서 그냥 앉아 있기만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새삼 나의 새해 소망이 무엇일까 생각하는데, 따르르릉 전화가 오더니 입학처에서 2004년 장애학생 특별전형 면접을 상기시켜 주었다.
지원자는 모두 열두 명, 마흔다섯 살 만학도도 있었지만 대부분 지체부자유·청각·시각·뇌병변 등, 각기 모종의 신체적 불편함을 가진 어린 학생들이었다. 나는 내친김에 들어오는 학생들마다 대학에 합격하는 것 외에 새해 소망이 무엇인가 물었다.
‘여행을 하고 싶다’든가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다’든가, 학생들은 나름대로의 새해 소망을 솔직하게 말했다. 그 중 청각장애 1급을 가진 용민이가 답했다. “저는 듣지 못하니까 열심히 상대방의 입술을 보고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제 발음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도 열심히 귀 기울여서 제 말을 들어줘야 합니다. 그래서 대학생활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지내면서 저는 열심히 보고 그들은 열심히 듣고, 서로 서로 불편 없이 잘 지냈으면 하는 게 제 소망입니다.” 용민이는 ‘서로’라는 말의 발음을 유난히 힘들어 하면서도 두 번씩이나 강조해서 말했다.
‘소망’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심리학자 헨리 나우엔의 ‘친밀함’(1969)이라는 책에 소개된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나는 소망합니다/ 내가 모든 이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볼 때 내가 더욱 작아질 수 있기를/ 그러나 나 자신의 죽음이 두려워 삶의 기쁨이 작아지는 일이 없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줄어들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다른 이가 내게 주는 사랑이 내가 그에게 주는 사랑의 척도가 되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내가 언제나 남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살기를./ 그러나 그들의 삶에는 내 용서를 구할 만한 일이 없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언제나 나의 한계를 인식하며 살기를./ 그러나 내 스스로 그런 한계를 만들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모든 사람이 언제나 소망을 품고 살기를.”
‘제네시 일기’ ‘상처입은 치유자’ 등, 헨리 나우엔이 쓴 30권 이상의 저서들은 모두 간결한 문장과 영혼을 깨끗이 하는 메시지로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독자를 갖고 있다. 그러나 내가 더욱 인상깊게 생각하는 것은 나우엔의 삶 자체다. 1932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예수회의 사제로 서품 받은 그는 미국에서 공부하여 1971년 예일대학 교수가 된다.
그러나 10년 만에 사직, 페루의 빈민가로 가서 빈민운동을 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한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석학들과 엘리트들 사이에서도 영혼의 안식을 찾지 못한 그는 다시 강단을 떠나 캐나다에 있는 정신지체 장애인 공동체인 ‘데이브레이크’로 들어가 1996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들과 함께 생활했다.
‘각피 석회화증’이라는 우리나라에서 단 한명뿐인 불치병으로 온 몸이 굳어가서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 박진식님의 ‘소망’이라는 시도 있다. “새벽, 겨우 겨우라도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침 햇살을 볼 수 있기를/ 아무리 천대받는 일이라 할지라도/ 일을 할 수 있기를/ 점심에 땀 훔치며/ 퍼져버린 라면 한끼라도 먹을 수 있기를/ 저녁에는 쓴 소주 한잔 마시며/ 집으로 돌아오는 기쁨을 느낄 수 있기를/ 타인에게는 하잘것없는 이 작은 소망이/ 내게 욕심이라면, 정말 욕심이라면/ 하느님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또 하나의 시끄러운 해가 될 공산이 크지만, 용민이의 말처럼 서로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노력하면 누구나의 마음속에 별처럼 총총 새겨진 이 모든 소망들에 조금은 더 가까워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장영희·서강대 교수·영문과)
얼마 전 ‘어머니의 이름으로’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프로그램에서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50대 아들의 78세 어머니는 새해 소망을 말했다.
“새해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조금만 나아서 그냥 앉아 있기만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새삼 나의 새해 소망이 무엇일까 생각하는데, 따르르릉 전화가 오더니 입학처에서 2004년 장애학생 특별전형 면접을 상기시켜 주었다.
지원자는 모두 열두 명, 마흔다섯 살 만학도도 있었지만 대부분 지체부자유·청각·시각·뇌병변 등, 각기 모종의 신체적 불편함을 가진 어린 학생들이었다. 나는 내친김에 들어오는 학생들마다 대학에 합격하는 것 외에 새해 소망이 무엇인가 물었다.
‘여행을 하고 싶다’든가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다’든가, 학생들은 나름대로의 새해 소망을 솔직하게 말했다. 그 중 청각장애 1급을 가진 용민이가 답했다. “저는 듣지 못하니까 열심히 상대방의 입술을 보고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제 발음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도 열심히 귀 기울여서 제 말을 들어줘야 합니다. 그래서 대학생활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지내면서 저는 열심히 보고 그들은 열심히 듣고, 서로 서로 불편 없이 잘 지냈으면 하는 게 제 소망입니다.” 용민이는 ‘서로’라는 말의 발음을 유난히 힘들어 하면서도 두 번씩이나 강조해서 말했다.
‘소망’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심리학자 헨리 나우엔의 ‘친밀함’(1969)이라는 책에 소개된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나는 소망합니다/ 내가 모든 이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볼 때 내가 더욱 작아질 수 있기를/ 그러나 나 자신의 죽음이 두려워 삶의 기쁨이 작아지는 일이 없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줄어들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다른 이가 내게 주는 사랑이 내가 그에게 주는 사랑의 척도가 되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내가 언제나 남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살기를./ 그러나 그들의 삶에는 내 용서를 구할 만한 일이 없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언제나 나의 한계를 인식하며 살기를./ 그러나 내 스스로 그런 한계를 만들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모든 사람이 언제나 소망을 품고 살기를.”
‘제네시 일기’ ‘상처입은 치유자’ 등, 헨리 나우엔이 쓴 30권 이상의 저서들은 모두 간결한 문장과 영혼을 깨끗이 하는 메시지로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독자를 갖고 있다. 그러나 내가 더욱 인상깊게 생각하는 것은 나우엔의 삶 자체다. 1932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예수회의 사제로 서품 받은 그는 미국에서 공부하여 1971년 예일대학 교수가 된다.
그러나 10년 만에 사직, 페루의 빈민가로 가서 빈민운동을 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한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석학들과 엘리트들 사이에서도 영혼의 안식을 찾지 못한 그는 다시 강단을 떠나 캐나다에 있는 정신지체 장애인 공동체인 ‘데이브레이크’로 들어가 1996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들과 함께 생활했다.
‘각피 석회화증’이라는 우리나라에서 단 한명뿐인 불치병으로 온 몸이 굳어가서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 박진식님의 ‘소망’이라는 시도 있다. “새벽, 겨우 겨우라도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침 햇살을 볼 수 있기를/ 아무리 천대받는 일이라 할지라도/ 일을 할 수 있기를/ 점심에 땀 훔치며/ 퍼져버린 라면 한끼라도 먹을 수 있기를/ 저녁에는 쓴 소주 한잔 마시며/ 집으로 돌아오는 기쁨을 느낄 수 있기를/ 타인에게는 하잘것없는 이 작은 소망이/ 내게 욕심이라면, 정말 욕심이라면/ 하느님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또 하나의 시끄러운 해가 될 공산이 크지만, 용민이의 말처럼 서로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노력하면 누구나의 마음속에 별처럼 총총 새겨진 이 모든 소망들에 조금은 더 가까워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장영희·서강대 교수·영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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