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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밭 새벽편지]맛없는 자장면

권태일............... 조회 수 1201 추천 수 0 2005.08.10 16:21:18
.........



종로의 한 중국집은 맛이 없으면 돈을 안 받는다.
그 집에 어느 날 할아버지와 초등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왔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뒤라 식당에서는 청년
하나가 신문을 뒤적이며 볶음밥을 먹고 있을 뿐이었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자장면 두 그릇을 시켰다.
할아버지의 손은 험한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말
말 그대로 북두갈고리였다.

아이는 자장면을 맛있게 먹었다. 할아버지는 아이의
그릇에 자신의 몫을 덜어 옮겼다. 몇 젓가락 안 되는
자장면을 다 드신 할아버지는 입가에 자장을 묻혀가며
부지런히 먹는 손자를 뿌듯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아이가 나누는 얘기가 들려왔다.
부모없이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모양이었다.
손자가 하도 자장면을 먹고 싶어 해 모처럼 데리고
나온 길인 듯 했다.

아이가 자장면을 반쯤 먹었을 때,
주인이 주방 쪽에 대고 말했다.

"오늘 자장면 맛을 못 봤네. 조금만 줘봐."

자장면 반 그릇이 금세 나왔다.
주인은 한 젓가락 입에 대더니 주방장을 불렀다.

"기름이 너무 많이 들어간 거 같지 않나?
그리고 간도 잘 안 맞는 것 같애.
이래 가지고 손님들한테 돈을 받을 수 있겠나."

주방장을 들여보내고 주인은 아이가 막 식사를
끝낸 탁자로 갔다. 할아버지가 주인을 쳐다보자
그는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오늘 자장면이 맛이 별로 없었습니다.
다음에 오시면 꼭 맛있는 자장면을 드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가게는 맛이 없으면 돈을 받지
않습니다. 다음에 꼭 다시 들러주십시오."

손자의 손을 잡고 문을 열며 나가던 할아버지가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주인이 다시 인사를 하고
있었다.

"고, 고맙구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팔을 붙들려 나가면서
주인에게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주인은 말없이 환하게 웃었다.

- 새벽편지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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