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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然이 학교요, 村夫가 스승”

무엇이든 4786 ............... 조회 수 614 추천 수 0 2004.01.27 1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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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自然이 학교요, 村夫가 스승”


대나무숲이 시끄럽게 우짖는다. 맵찬 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오리털 파카를 입고 등산화를 신고 사립을 나선다. 바닷가로 산책을 나간다.

 내 소유의 밭머리에서 겨우살이 봄배추들을 만나고 시금치와 어린 완두콩나무들을 만난다. 배추 시금치들은 땅바닥에 몸을 납작하게 붙이고 자란다. 캐다가 쌈 싸 먹으면 달콤하다. 겨울 것들이 당도도 높고 비타민도 풍부하다. 완두콩나무들은 봄에 하얀 꽃과 보라색 꽃을 피웠던 자리에 꼬투리를 주렁주렁 매달 것이다. 밥에 넣어 먹는 완두콩 알은 고소하다.

 ▼인심 철철 넘치는 농부 어부들 ▼

 농로로 들어서기 전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트랙터가 만들어 놓은 예쁜 두둑들이 줄을 이어 흘러간다. 마을사람들은 방한복을 입고 씨감자를 심는다. 두 사람은 두둑을 다듬고 한 사람은 씨감자를 고랑에 놓는다. 세 사람은 두둑 꼭대기에 그 씨감자를 주워 한 개씩 묻는다. 그리고 그들은 하얀 비닐로 두둑을 덮어줄 것이다. 잡풀 방지, 수분 발산 방지, 동사 예방을 위해서다. 그들은 품앗이를 하고 있다. 산밑의 밭들은 하얀 비닐로 덮인 감자밭 일색이 되어간다.

 따뜻한 날 버리고 왜 하필 한겨울 맵찬 바람 속에 씨감자를 심을까. 가을 양광(陽光) 속에 심어 놓으면 씨감자의 움이 나왔다가 한파에 얼어죽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수고한다고 인사를 한다. 주인은 봄에 나에게 감자를 맛보일 것이다. 인심이 참 좋다. 어부들에게서는 게와 주꾸미와 낙지를 얻어먹고 농부들에게서는 고추와 오이와 쪽파와 감자와 찹쌀과 깨를 얻어먹는다.

 농부나 어부들은 자연의 섭리를 어기며 살려고 하지 않는다. 우주의 질서에 가장 잘 순응하고 사는 사람이 그들이다. 나는 그들에게서 자연과학 철학 신화학을 배우고 더불어 사는 묘를 공부한다. 그들은 씨감자를 심어 봄을 열고 있다. 흰 비닐에 덮인 감자밭에서는 씨감자들의 속삭이는 소리들이 들리는 듯싶다.

 나는 그들처럼 내 속의 밭에 씨감자를 심어 봄을 열며 농로를 따라 바다로 나간다. 농로 주위의 논에는 파란 보리들이 한파를 이겨내고 있다. 이 보리들이 노랗게 될 무렵이면 감자를 캘 것이다.

 농수로의 갈대들은 다음해에 나올 그들의 새 순을 기다리며 꼿꼿이 선 채 봄을 기다린다. 연약한 새순이 비뚤어지지 않게 자라도록 바람막이가 되어 주는 것이 아닐까.


 
밀물이 들어 있다. 썰물 진 바다의 갯벌에서는 쓸쓸함이 느껴지지만 밀물 든 바다에서는 포만감을 느낀다. 파도들이 밀려왔다가 모래밭에서 재주를 넘는다. 황새 두 마리가 동쪽 바다 갯등의 옅은 물에 두 발을 담그고 고기를 노리고 있다. 갈매기들도 사냥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 갯등에 찰싹거리는 물 너울에 불그죽죽한 햇발이 수런거린다. 나는 그 햇발과 그것을 있게 한 해를 향해 나아간다. 아침 바닷가에 나와서 해를 가슴에 안아보는 것, 그러면서 심호흡을 하는 것은 상쾌한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해를 신앙한다. 해를 가슴에 가득 담으면 건강해질 것 같고, 그것이 내 속에서 활기를 불러일으킬 것 같은 믿음이 생겼다.


 
인도 여행 중 나는 해를 신앙하는 사람을 만났다. 뭄바이 바닷가에서 그는 떠오르는 빨간 태양을 향해 가부좌를 하고 있었다. 그의 자세가 얼마나 숭엄했는지, 나는 그 사람과 해 사이에 오고 갈 교통 교감을 부러워했다.


 
아침마다 바닷가에 나와 해와 교통 교감하는 것은 나로서는 큰 행운이다. 이 바닷가 마을에 토굴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나는 건강이 아주 좋아졌다. 바다는 산의 숲 못지않게 산소를 양산한다고 한다. 거기에다가 이 마을과 옆 마을 포구에서는 생선이 푸짐하게 잡힌다. 낮에 산책하면서는 휴대전화기를 가지고 나와 서울이나 광주나 순천의 친지에게 바다 모습을 중계하곤 한다. 갈매기가 고기 사냥하는 것도 말해 주고 파도 소리도 들려 준다. 갯메꽃과 갯질경이 순비기나무꽃 모습도 말해 준다.

 ▼'강진 유배' 없이 정다산 있을까 ▼

 그것은 물론 나의 쓸쓸함과 슬픔의 일단을 보여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쓸쓸함과 슬픔이 나에게는 약이다. 그것이 솟았을 때 우주의 참모습,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인가가 더 잘 보이는 까닭이다. 다산 정약용을 떠올린다. 그가 강진에 유배되지 않았다면 오늘의 정다산이 있었을 것인가. 나는 늘 이 바닷가 마을에 지은 토굴 속에 나를 유배시킨다. 나는 모래톱에 새겨놓은 물떼새들의 자잘한 상형문자 같은 발자국 옆에 내 발자국을 찍으며 토굴로 돌아간다. 가면서 그 발자국들을 돌아본다. 오래지 않아서 밀려 올라온 파도가 씻어 가 버릴 발자국.


 ▼한승원 작가는▼
 중진작가로 ‘아버지와 아들’ ‘물보라’ 등 많은 소설을 썼다. 서울에 사는 동안 심한 위장병으로 고생하다가 97년 고향인 전남 장흥으로 낙향해 바다와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고 있다.

동아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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