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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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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다~ 하신일 입니다....
너무 힘들어... 힘든지 조차 모르는 분들께 이 글을 드리고 싶습니다.
상담이 많아
상담시간을 화요일과 목요일로 제한합니다.
급한 일이나 중한 일은 저의 메일로 보내 주시면
정성껏 답하여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긴박한 일이 있으시면, 포기하지 마시고
교회로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지우려 하면, 더 선명하고
잊으려 하면, 더 떠오르고
없었던 것처럼 덮으려 하면, 더 많이 생각나는 숱한 회한들을
도대체 어찌 해야 합니까?
이제는 좀 아물고 잊혀질 때도 되었건만, 조각난 통증들을
도무지 새로운 그림으로 맞출수가 없습니다.
매서운 칼바람에 양볼이 시리듯,
이럴때면..저럴때면...
간신히 맞추어진 지난날의 그림들이 또 다시 조각 조각 흩날리고 맙니다.
잘라내도 잘라내도 금방 자라나는 손톱처럼
도무지 잊혀지지도 지워지지도 덮을수도 없이
봉합되지 않은 상처들과 마침표 없는 고난들을 끌어앉고
얼마나 더 견디며 울어야 합니까?
지금껏 기도하다 지쳐 잠든 날도 헤일수 없고
눈물로 적신 베개를 쌓으면 하늘에 닿을듯 합니다.
내가 힘들어서만도 아닙니다.
나를 아프게한 그 사람이 신속히 형통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괴로워서가 아닙니다.
주님이 자꾸 보이지 않아서 입니다.
나만 당하는 고난이라고 푸념함도 아닙니다.
이 모든것이 나의 잘못 때문인듯 싶어서 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기상 예보가 맞지 않는 날씨처럼
생각지도 못한 역경들을 만나게 됩니다.
아무 준비도 없이 들이 닥친 깊은 수렁에서 허덕여 보지만
초행길에 길 헤매는 운전자처럼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자주 있는 고난이야 이렇게 저렇게 부딪혀 보겠지만
이 모든 것이 처음 겪는 일이라 그 중압감은 무너진 건물 더미에 눌린듯
살 소망조차 희미해 집니다.
인생을 사노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한꺼번에 몇가지의 고난들이 합심으로
엄습할 때를 만납니다.
사람이 너무 힘들면 힘든 줄도 모릅니다.
사람이 너무 아프면 소리도 못 지릅니다.
사람이 너무 슬프면 눈물도 마르고
사람이 너무 기막힌일 당하면 차마 주저 앉지도 못합니다.
누구에게나 이 모든 일이 차라리 꿈이었으면....
과거나 현재를 포함하여 실존하는 사실들을 잊을수만 있어도...
어떤 때는 아무일 없었는듯 초연하고 살다가도
불연듯 불쑥 스쳐가는 이런 저런 상념에 또 다시 와르르 무너집니다.
때로는 나의 잘못과 죄값으로 자책하더라도
억울함과 후외의 불청객 앞에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믿음으로,기도로 견뎌내며..
하나님의 귀한 연단이라는 사람들의 격려가 있어도
그 말에 별로 동의가 되지 않음은 어떡합니까?
옛말에 '시간이 약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그말도 별 효험이 없어 보입니다.
그말도
적당하게 힘들고
적당하게 아프고
적당하게 억울하고
적당하게 분하고
적당하게 손해보았을 때입니다.
'하나님도 무정하시다'고 생각할 만큼의 통증은
시간으로도 인내로도 시간으로도 별수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기억하십시요.
하나님에게는 우연도,실수도 없으십니다.
"그일은 내게 너무 가혹하다
그일은 내게 너무 억울하다
그일은 내가 실수한 것이다.
그일은 내가 저주 받아 생긴 일이다.
그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없고 마귀가 조종한 것이다." 라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 하신일 입니다,"
너무 사랑하셔서 그렇게 가혹하게 다루신 일입니다.
우리가 약의 성분을 몰라도 삼키고 나면 아픈곳이 치료되듯이
우리의 과거를 보혈의 보자기에 싸서 꿀꺽 삼키십시요.
그러나,그냥 삼키시면 안됩니다.
이렇게 선포하십시요.
"하나님이 다~ 하신일 입니다."
고난과 통증, 역경과 문제들을 묵상하지 말고 끝없이 하나님을 묵상하십시요.
이해하려 하지 마십시요.
섭리는 이해가 안됩니다.
오직 해석만 있을 뿐입니다.
받아들일수 없어도
벗어나고 싶어도
인정할수 없어도
눈 딱감고..믿음으로..
"하나님이 다 하신 일이다."
"내가 알수 없는 무슨 뜻이 있을 것이다" 라고
외치시며 삼키십시요.
왜? 그렇게 하셨는지..
왜? 그때 가만히 계셨는지...
왜? 그때 침묵하셨는지는...
이후에(지나고 나서) 설명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내게 어떻게 그럴수 있느냐?"
그럴수도 있습니다.
주님이 다~그렇게 하신것 입니다.
믿음안에는 해결의 영성도 있지만, 해석의 영성도 있습니다.
모든 일(범사)을 하나님으로 해석되는 은혜를 구하십시요.
은혜중에 '해석의 은혜'는, 신앙의 꽃입니다.
세상에는 해결이 안되는 문제,아무리 노력하고 기도해도
변하지 않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해석이 안되는 문제와 고난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요셉의 영성은 해석의 영성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요셉처럼 억울하고, 분하고, 가혹하고, 처참하고, 원통한 일을
경험한 사람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겪어야할 가장 큰 통증은, 죽음입니다.
그 다음이, 배신(이별..상처..거절감..)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지나온 날 통한의 13년을 하나님으로 해석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음으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오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이다. "
해석의 영성 앞에서는, 누구를 미워할 것도,용서못할 사람도
분노할 일도, 후회도, 원망도.... 없습니다.
요셉을 총리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시나리오 안에
그 무수한 역경,실패,가혹하고 부당한 일들.....
뼈가 상하다 못해 녹아 내리도록 나를 힘들고 억울하게 하고
손해 보게한 사람들이 모두 다, 나를 위한
선한 도구로 등용된것 뿐입니다.
아마도 해석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중에 상당수가 터널이 아니라
깊은 동굴에 갇혀 절망 가운데 인생을 마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해석의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 위하여 만들어 놓으신 또 하나의 기막힌 배려입니다.
요셉이 만난 고난도 아무나 경험할수 없는 특권이지만
요셉이 누렸던 해석의 은혜 또한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평범한 영성은 아닙니다.
해결과 변화가 안될 일들을 부여잡고 끙끙 앓지 마시고
해석의 은혜로, 조각난 인생을 하나씩 추스려
새롭게 맞추어 가십시요.
해석의 영성이란
'아하~ 그때, 그래서 그러셨구나' 무릎을 치며
주님외에 붙잡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포기하고 내려놓는 것입니다.
해석의 영성속에는 견딜수 없는 감사,용서,포기가 있구요.
주체할수 없는 주님의 격려하심과 임마누엘의 축복이 기업으로
보장되어 있음을 기억하십시요.
'해결의 영성'보다 '해석의 영성'속에는
갑절의 은혜, 100배의 축복이 예비되어 있음을 기대하십시요.
'하나님이 다~ 하셨다'는 믿음의 고백속에는
앞으로도
'하나님이 다~ 하실것'이라는 '여호와이레'의 축복 또한
보장되어 있음을 잊지 마십시요.
해석의 영성를 사모하세요.
해석의 은혜를 구하십시요.
오히려 지난날의 고난과 역경들로 인하여 춤추며 찬양할날
홀연히 오리라 믿습니다.
지난일,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
앞으로의 일, '하나님이 다~ 하실것 입니다.'
아-멘
너무 힘들어... 힘든지 조차 모르는 분들께 이 글을 드리고 싶습니다.
상담이 많아
상담시간을 화요일과 목요일로 제한합니다.
급한 일이나 중한 일은 저의 메일로 보내 주시면
정성껏 답하여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긴박한 일이 있으시면, 포기하지 마시고
교회로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지우려 하면, 더 선명하고
잊으려 하면, 더 떠오르고
없었던 것처럼 덮으려 하면, 더 많이 생각나는 숱한 회한들을
도대체 어찌 해야 합니까?
이제는 좀 아물고 잊혀질 때도 되었건만, 조각난 통증들을
도무지 새로운 그림으로 맞출수가 없습니다.
매서운 칼바람에 양볼이 시리듯,
이럴때면..저럴때면...
간신히 맞추어진 지난날의 그림들이 또 다시 조각 조각 흩날리고 맙니다.
잘라내도 잘라내도 금방 자라나는 손톱처럼
도무지 잊혀지지도 지워지지도 덮을수도 없이
봉합되지 않은 상처들과 마침표 없는 고난들을 끌어앉고
얼마나 더 견디며 울어야 합니까?
지금껏 기도하다 지쳐 잠든 날도 헤일수 없고
눈물로 적신 베개를 쌓으면 하늘에 닿을듯 합니다.
내가 힘들어서만도 아닙니다.
나를 아프게한 그 사람이 신속히 형통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괴로워서가 아닙니다.
주님이 자꾸 보이지 않아서 입니다.
나만 당하는 고난이라고 푸념함도 아닙니다.
이 모든것이 나의 잘못 때문인듯 싶어서 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기상 예보가 맞지 않는 날씨처럼
생각지도 못한 역경들을 만나게 됩니다.
아무 준비도 없이 들이 닥친 깊은 수렁에서 허덕여 보지만
초행길에 길 헤매는 운전자처럼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자주 있는 고난이야 이렇게 저렇게 부딪혀 보겠지만
이 모든 것이 처음 겪는 일이라 그 중압감은 무너진 건물 더미에 눌린듯
살 소망조차 희미해 집니다.
인생을 사노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한꺼번에 몇가지의 고난들이 합심으로
엄습할 때를 만납니다.
사람이 너무 힘들면 힘든 줄도 모릅니다.
사람이 너무 아프면 소리도 못 지릅니다.
사람이 너무 슬프면 눈물도 마르고
사람이 너무 기막힌일 당하면 차마 주저 앉지도 못합니다.
누구에게나 이 모든 일이 차라리 꿈이었으면....
과거나 현재를 포함하여 실존하는 사실들을 잊을수만 있어도...
어떤 때는 아무일 없었는듯 초연하고 살다가도
불연듯 불쑥 스쳐가는 이런 저런 상념에 또 다시 와르르 무너집니다.
때로는 나의 잘못과 죄값으로 자책하더라도
억울함과 후외의 불청객 앞에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믿음으로,기도로 견뎌내며..
하나님의 귀한 연단이라는 사람들의 격려가 있어도
그 말에 별로 동의가 되지 않음은 어떡합니까?
옛말에 '시간이 약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그말도 별 효험이 없어 보입니다.
그말도
적당하게 힘들고
적당하게 아프고
적당하게 억울하고
적당하게 분하고
적당하게 손해보았을 때입니다.
'하나님도 무정하시다'고 생각할 만큼의 통증은
시간으로도 인내로도 시간으로도 별수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기억하십시요.
하나님에게는 우연도,실수도 없으십니다.
"그일은 내게 너무 가혹하다
그일은 내게 너무 억울하다
그일은 내가 실수한 것이다.
그일은 내가 저주 받아 생긴 일이다.
그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없고 마귀가 조종한 것이다." 라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 하신일 입니다,"
너무 사랑하셔서 그렇게 가혹하게 다루신 일입니다.
우리가 약의 성분을 몰라도 삼키고 나면 아픈곳이 치료되듯이
우리의 과거를 보혈의 보자기에 싸서 꿀꺽 삼키십시요.
그러나,그냥 삼키시면 안됩니다.
이렇게 선포하십시요.
"하나님이 다~ 하신일 입니다."
고난과 통증, 역경과 문제들을 묵상하지 말고 끝없이 하나님을 묵상하십시요.
이해하려 하지 마십시요.
섭리는 이해가 안됩니다.
오직 해석만 있을 뿐입니다.
받아들일수 없어도
벗어나고 싶어도
인정할수 없어도
눈 딱감고..믿음으로..
"하나님이 다 하신 일이다."
"내가 알수 없는 무슨 뜻이 있을 것이다" 라고
외치시며 삼키십시요.
왜? 그렇게 하셨는지..
왜? 그때 가만히 계셨는지...
왜? 그때 침묵하셨는지는...
이후에(지나고 나서) 설명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내게 어떻게 그럴수 있느냐?"
그럴수도 있습니다.
주님이 다~그렇게 하신것 입니다.
믿음안에는 해결의 영성도 있지만, 해석의 영성도 있습니다.
모든 일(범사)을 하나님으로 해석되는 은혜를 구하십시요.
은혜중에 '해석의 은혜'는, 신앙의 꽃입니다.
세상에는 해결이 안되는 문제,아무리 노력하고 기도해도
변하지 않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해석이 안되는 문제와 고난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요셉의 영성은 해석의 영성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요셉처럼 억울하고, 분하고, 가혹하고, 처참하고, 원통한 일을
경험한 사람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겪어야할 가장 큰 통증은, 죽음입니다.
그 다음이, 배신(이별..상처..거절감..)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지나온 날 통한의 13년을 하나님으로 해석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음으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오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이다. "
해석의 영성 앞에서는, 누구를 미워할 것도,용서못할 사람도
분노할 일도, 후회도, 원망도.... 없습니다.
요셉을 총리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시나리오 안에
그 무수한 역경,실패,가혹하고 부당한 일들.....
뼈가 상하다 못해 녹아 내리도록 나를 힘들고 억울하게 하고
손해 보게한 사람들이 모두 다, 나를 위한
선한 도구로 등용된것 뿐입니다.
아마도 해석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중에 상당수가 터널이 아니라
깊은 동굴에 갇혀 절망 가운데 인생을 마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해석의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 위하여 만들어 놓으신 또 하나의 기막힌 배려입니다.
요셉이 만난 고난도 아무나 경험할수 없는 특권이지만
요셉이 누렸던 해석의 은혜 또한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평범한 영성은 아닙니다.
해결과 변화가 안될 일들을 부여잡고 끙끙 앓지 마시고
해석의 은혜로, 조각난 인생을 하나씩 추스려
새롭게 맞추어 가십시요.
해석의 영성이란
'아하~ 그때, 그래서 그러셨구나' 무릎을 치며
주님외에 붙잡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포기하고 내려놓는 것입니다.
해석의 영성속에는 견딜수 없는 감사,용서,포기가 있구요.
주체할수 없는 주님의 격려하심과 임마누엘의 축복이 기업으로
보장되어 있음을 기억하십시요.
'해결의 영성'보다 '해석의 영성'속에는
갑절의 은혜, 100배의 축복이 예비되어 있음을 기대하십시요.
'하나님이 다~ 하셨다'는 믿음의 고백속에는
앞으로도
'하나님이 다~ 하실것'이라는 '여호와이레'의 축복 또한
보장되어 있음을 잊지 마십시요.
해석의 영성를 사모하세요.
해석의 은혜를 구하십시요.
오히려 지난날의 고난과 역경들로 인하여 춤추며 찬양할날
홀연히 오리라 믿습니다.
지난일,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
앞으로의 일, '하나님이 다~ 하실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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