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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은 영성의 시작이다. 주님의 영성은 비움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빌 2:7).
주님은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시기 전에 비우는 일을 먼저하셨다.
채우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비우는 일이다. 무엇인가 가득 차 있는 그릇에는
어떤 것도 담을 수 없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룻에 비유하셨다 영성도 그룻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로 채우기 전에 해야 할 일은 비우는 일이다. 때문에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채우려고 하기 전에 비우는 일부터 해야 한다
비움이 영성의 최우선 순위라면 비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이 비움을 떠남으로 이해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났다.
이것은 공간적 떠남 이상의 문제였다. 떠나지 않고는 새로운 세계 속에 들어갈 수
없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떠나는 것은 자신의 삶의 터전, 자신이 의지하는 삶의
줄을 끊어 버리는 것이었다. 심지어 아비 친척 집을 떠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
이었다. 떠남은 아픔이며, 고통이며, 두려움이다.
그렇게 익숙해 있고, 의지하며 살았던 터전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떠남이 그토록 힘든 이유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인간은 그토록 변화를
갈망하면서도 가장 변화를 싫어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떠남을 통해서
비움을 실천했던 사람이다.
그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큰 비움은 이들 이삭을 제물로 드려야 했을 때였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던 어느 날 그의 가슴에 이삭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된 실체였다. 이삭은 그의 소망
이었고, 그의 관심이었고, 그의 사랑이었다 이삭이 태어난 이후로 하나님께 고정
되었던 아브라함의 눈길이 이삭에게 고정되기 시작했다.
하나님보다 이삭이 아브라함의 가슴에 가득 찬 어느 날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다.
그리고 그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품에 가득차 있던 이삭을 비워야 했다.
그러나 비움은 축복이 되었다. 비움을 통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 되었다.
2000년 후 하나님 자신의 품에 있는 독생자를 비우셔서 십자가에 희생해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경험한 사람이 아브라함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품에서 비우셔야 했다. 인류 구원의
역사는 아버지의 그릇에 계셨던 예수님을 비우심으로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사람들
은 취함으로써 위대해진 것이 아니다 비우고, 버리고 그리고 떠남으로써 위대한
발자취를 남길 수 있었다.
모세가 바로의 공주의 이들이 되는 것을 포기하는 순간,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
모세가 애굽 궁전을 버리고 떠나는 순간 영원히 빛나는 인물이 되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되게 하리라’(마4:19)는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 제자들은 배와 부친을 버리고 주님을 쫓아감으로 사도가 되었다.
정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고,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비우는 일은 결코 어리석은 행동이 아니다. 두손을 꽉 쥐고 있는한 어떤 것도 받을
수 없다.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은 두 손을 펴야 한다. 빈 손 위에 은총이 임하기
때문이다.
* 강준민/두란노발행/뿌리깊은 영성 /1장 비움으로 시작되는 영성
* 찬양:하나님은 우리를 * 내용정리:내영혼이 은총입어 /대언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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