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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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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こんばんは )
믿음의 선배님들 앞에서 이렇게 간증을 한다는 것이 조금은 부끄럽기만 합니다. 오늘은 간증이라고 하기보다는 입원중에 가장힘이되었고, 깊이 은혜받은 말씀과 앞으로의 제 삶의 방향에 대한 소개정도로 들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신 많은 성도님들과 매달 생명의 삶을 저에게 전해주신 노구치 집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요즘도 생명의 삶( Living Life )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많은 이야기를 읽으며,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5월호 에서는 (p141)가족기도 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인상적이였습니다. 편안히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라. 강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라. 힘에 알맞은 일을 달라고 기도하지 말라. 일을 해낼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라. 이 글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영화가 하나 있었습니다. (브레이브 하트ブレイブハト)
스토리는 스코토란도의 윌리암 웨러스가 자유를 찾아 잉글란도와 싸우는 내용입니다. 싸움의 시작은 애인이 잉글란도 군인에게 살해되어, 복수를 맹세함으로써 시작됩니다. 윌리암 웨러스는 [자유를 반드시 손에 넣고자]하는 무서운 신념을 가지고 적들과 맞섭니다. 그러나 신용했던 사람으로 부터 배반을 당하여 잉글란도군에게 붙잡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영화의 끝장면으로는 적들앞에도 끝까지 굴복하지않고 자유를 외치며 죽어가는 윌리암웨러스로 인해 스코토란도는 자유를 얻게 됩니다.
아마 여호수아도 이 영화의 주인공 처럼 용감했을것이며, 강한 용사였을 것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여호수아 24장에서 알수 있는 것 처럼 ( 여호수아 24장 15절)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あなた方が仕えようと思うものをどれでも今日選ぶが良い. 私と私の家とは主に仕える.모세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했으며, 또한 믿음의 생활로 이스라엘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경험을 했길레 이렇게 확신있는 말을 할수 있을까요. 저도 한번 여호수아가 늦꼈던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이세상을 떠나기 전에 느껴보고 싶습니다.
입원중에 [은혜]라는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며 읽은 대목이 있었는데 이것도 잠깐 소개해 보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삼손의 이야기 입니다. (사사기 15장 20절)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년을 지내었더라. 삼손은 20년간 계속 원수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을 해냈다. 그러나 정욕의 노예가 되었던 삼손은 드릴라에게 머리카락을 잘리고는 블레셋 사람의 손아귀에 놓이게 됩니다. 한때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사사였지만, 죄 때문에 원수 블레셋사람들에게 눈이 뽑인체 감옥에서 맷돌을 돌리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저주하며 [평생 그렇게 살아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다함이 없었습니다. 그 내용이 사사기 16장 28절에 나옵니다.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기 시작한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 받은 명령을 따라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하려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이번만 나로 강하?하사 블레셋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모든 기대를 버릴 때 우리는 은혜를 받는다. 우리가 더이상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낄 때, 은혜는 우리 안에 깊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은혜는, 모든 기대를 버린 사람들
에게 흘러들어가고, 그들을 통하여 흘러나갑니다. ---------모세가 그러했던 것 처럼말입니다. (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일본의 문화에서도 실패는 용서할수 없고 끝난 인생이라고 들 합니다. 참 하나님의 역사와 반대되는 부분이다. 훌륭한 위인들은 처음부터 만사형통하였는가, 그렇지가 않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기에는 고통을 통해서 자신을 되돌아 봐야 했고, 자신의 힘과 의지에 죽어가야 하는 것을 맛보아야 했다. 나아가서는 자신의 인생이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착각( 죄 ) 에서 벗어나 온전히 하나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예배당에서 자주 듣는 말씀들 (모새 이야기, 에굽의 노애로 팔려간 요셉이야기, 사울 왕에게 쫒겨 고통을 당했던 다윗이야기 등 )다 그렇지가 않았습니까? 저 또한 그전에는 그렇게 마음에 와닫지 않았던 말씀들이였지만, 입원생활을 통해 부족한 저에게 조금이나마 알게하시고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좌절과 실패는 두가지선택의 길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첫번째 길은 실패자를 절망가운데 이끌어 죽음의 문으로 들어서게 한다. 또 한가지의 길은 그(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를 의지하면(시편37장 40절) 여호와꺼서 저희를 도와 건지시되 악인에게서 건져 구원하시겠다.(主は惡者どもから彼らを解き放ち彼らを救われる 이 말씀은 그가 의인 이여서가 아니라 단지 여호와 그분을 의지 했기 때문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主に身を避けるからだ 세상에서 아무리 뛰어나고 최고의 지식으로 계획도 하나님앞에서는 아무 보잘것 없다는 것을 요즘은 많이 느낍니다. 여호수아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적들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있은적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그 마음(믿음)을 보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아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패배로 이어지는 길임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계십니다. 우리들이 힘쓰고 해야할 일이 있다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은 말씀을 마음에 품고,그를 경외하는 것 그것 뿐입니다. 염려와 걱정을 하지 말고.
저도 이 말씀을 믿고 나아가고 싶으나, 인간이라는 나약함에 때로는 두렵습니다. 내년 3월에는 졸업이 가능할련지, 논문은 쓸수 있을련지, 지금 같은 학교 학생들은 직장를 구하니라고 한참 바쁜것 같은데, 나도 빨리 알아봐야 할텐데 하는, 걱정들 그럴때 마다 하나님 말씀을 보면, 그런 근심과 걱정은 사라고, 두렵지가 않습니다. 나는 그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을 경험을 했으니, 지금은 나에게 이것이 학위보다는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 무엇으로도 살수없는 귀중한 경험을 주님께 받았습니다. 과연 주님 앞에는 무엇을 가지고 갈수 있겠는가? 자신의 학벌 이겠는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이겠는가. 요즘은 이 세상을 살면서, 더 많이 주님을 경험하여 그것을 가지고 주님께 가야겠다는 생각이 저의 가슴속에 솟아오름을 느낍니다. 내가 주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사람을 의지않고 주를 의지한다면, 주님은 저의 병을 치료하실것이며, 또한 완전히 치유받으리라고 믿습니다. 만일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주님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할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하구싶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면 언젠가는 육체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많이 살고 적게살고 는 하나님앞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많이 느낌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장수가 문제가 아니라 짧은 인생이라도 어떻게 살았는가? 가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옵니다.
끝으로 생명의 삶1월호중 (P129) [크리스찬의 삶의 자세]를 소개하고 마칠까합니다.
어부가 직업인 한 크리스찬 젊은이가 있었답니다. 그런데,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다 풍랑에 휩싸여 연달아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젊은 크리스찬은 장례식을 마치고 비장한 각오로 다시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가려고하자,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친구들이 강력히 말렸습니다. 그러자, 크리스찬 젊은이는 조용히 한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 너의 할아버지는 어디에서 돌아가셨니] 그러자 친구는[ 침대에서 돌아가셨지] 라고 대답했습니다. 크리스찬 젊은이는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너의 아버지는 어디에서 돌아가셨지? 그러자 친구는 [ 역시 침대에서 돌아가셨지] 라고 똑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크리스찬 젊은이는 끝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고기를 잡으로 바다에 나갔답니다. [그러면, 너는 침대가 무섭다고 다시는 침대에서 자지 않니? ]
우리는 너무도 자도, 오래도록 하나의 닫힌 문을 바라보며,후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앞에 다른 또 하나의 문(어쩌면 첫 번째 문보다 은혜스럽고,축복된)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고 나아가기를 저는 간구합니다. (헬렌켈러의 말: Living Life 5월 비전과 실패 관리에서 페이지 79)
일본 고오베동부교회에서
믿음의 선배님들 앞에서 이렇게 간증을 한다는 것이 조금은 부끄럽기만 합니다. 오늘은 간증이라고 하기보다는 입원중에 가장힘이되었고, 깊이 은혜받은 말씀과 앞으로의 제 삶의 방향에 대한 소개정도로 들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신 많은 성도님들과 매달 생명의 삶을 저에게 전해주신 노구치 집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요즘도 생명의 삶( Living Life )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많은 이야기를 읽으며,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5월호 에서는 (p141)가족기도 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인상적이였습니다. 편안히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라. 강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라. 힘에 알맞은 일을 달라고 기도하지 말라. 일을 해낼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라. 이 글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영화가 하나 있었습니다. (브레이브 하트ブレイブハト)
스토리는 스코토란도의 윌리암 웨러스가 자유를 찾아 잉글란도와 싸우는 내용입니다. 싸움의 시작은 애인이 잉글란도 군인에게 살해되어, 복수를 맹세함으로써 시작됩니다. 윌리암 웨러스는 [자유를 반드시 손에 넣고자]하는 무서운 신념을 가지고 적들과 맞섭니다. 그러나 신용했던 사람으로 부터 배반을 당하여 잉글란도군에게 붙잡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영화의 끝장면으로는 적들앞에도 끝까지 굴복하지않고 자유를 외치며 죽어가는 윌리암웨러스로 인해 스코토란도는 자유를 얻게 됩니다.
아마 여호수아도 이 영화의 주인공 처럼 용감했을것이며, 강한 용사였을 것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여호수아 24장에서 알수 있는 것 처럼 ( 여호수아 24장 15절)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あなた方が仕えようと思うものをどれでも今日選ぶが良い. 私と私の家とは主に仕える.모세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했으며, 또한 믿음의 생활로 이스라엘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경험을 했길레 이렇게 확신있는 말을 할수 있을까요. 저도 한번 여호수아가 늦꼈던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이세상을 떠나기 전에 느껴보고 싶습니다.
입원중에 [은혜]라는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며 읽은 대목이 있었는데 이것도 잠깐 소개해 보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삼손의 이야기 입니다. (사사기 15장 20절)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년을 지내었더라. 삼손은 20년간 계속 원수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을 해냈다. 그러나 정욕의 노예가 되었던 삼손은 드릴라에게 머리카락을 잘리고는 블레셋 사람의 손아귀에 놓이게 됩니다. 한때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사사였지만, 죄 때문에 원수 블레셋사람들에게 눈이 뽑인체 감옥에서 맷돌을 돌리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저주하며 [평생 그렇게 살아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다함이 없었습니다. 그 내용이 사사기 16장 28절에 나옵니다.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기 시작한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 받은 명령을 따라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하려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이번만 나로 강하?하사 블레셋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모든 기대를 버릴 때 우리는 은혜를 받는다. 우리가 더이상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낄 때, 은혜는 우리 안에 깊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은혜는, 모든 기대를 버린 사람들
에게 흘러들어가고, 그들을 통하여 흘러나갑니다. ---------모세가 그러했던 것 처럼말입니다. (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일본의 문화에서도 실패는 용서할수 없고 끝난 인생이라고 들 합니다. 참 하나님의 역사와 반대되는 부분이다. 훌륭한 위인들은 처음부터 만사형통하였는가, 그렇지가 않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기에는 고통을 통해서 자신을 되돌아 봐야 했고, 자신의 힘과 의지에 죽어가야 하는 것을 맛보아야 했다. 나아가서는 자신의 인생이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착각( 죄 ) 에서 벗어나 온전히 하나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예배당에서 자주 듣는 말씀들 (모새 이야기, 에굽의 노애로 팔려간 요셉이야기, 사울 왕에게 쫒겨 고통을 당했던 다윗이야기 등 )다 그렇지가 않았습니까? 저 또한 그전에는 그렇게 마음에 와닫지 않았던 말씀들이였지만, 입원생활을 통해 부족한 저에게 조금이나마 알게하시고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좌절과 실패는 두가지선택의 길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첫번째 길은 실패자를 절망가운데 이끌어 죽음의 문으로 들어서게 한다. 또 한가지의 길은 그(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를 의지하면(시편37장 40절) 여호와꺼서 저희를 도와 건지시되 악인에게서 건져 구원하시겠다.(主は惡者どもから彼らを解き放ち彼らを救われる 이 말씀은 그가 의인 이여서가 아니라 단지 여호와 그분을 의지 했기 때문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主に身を避けるからだ 세상에서 아무리 뛰어나고 최고의 지식으로 계획도 하나님앞에서는 아무 보잘것 없다는 것을 요즘은 많이 느낍니다. 여호수아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적들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있은적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그 마음(믿음)을 보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아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패배로 이어지는 길임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계십니다. 우리들이 힘쓰고 해야할 일이 있다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은 말씀을 마음에 품고,그를 경외하는 것 그것 뿐입니다. 염려와 걱정을 하지 말고.
저도 이 말씀을 믿고 나아가고 싶으나, 인간이라는 나약함에 때로는 두렵습니다. 내년 3월에는 졸업이 가능할련지, 논문은 쓸수 있을련지, 지금 같은 학교 학생들은 직장를 구하니라고 한참 바쁜것 같은데, 나도 빨리 알아봐야 할텐데 하는, 걱정들 그럴때 마다 하나님 말씀을 보면, 그런 근심과 걱정은 사라고, 두렵지가 않습니다. 나는 그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을 경험을 했으니, 지금은 나에게 이것이 학위보다는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 무엇으로도 살수없는 귀중한 경험을 주님께 받았습니다. 과연 주님 앞에는 무엇을 가지고 갈수 있겠는가? 자신의 학벌 이겠는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이겠는가. 요즘은 이 세상을 살면서, 더 많이 주님을 경험하여 그것을 가지고 주님께 가야겠다는 생각이 저의 가슴속에 솟아오름을 느낍니다. 내가 주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사람을 의지않고 주를 의지한다면, 주님은 저의 병을 치료하실것이며, 또한 완전히 치유받으리라고 믿습니다. 만일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주님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할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하구싶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면 언젠가는 육체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많이 살고 적게살고 는 하나님앞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많이 느낌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장수가 문제가 아니라 짧은 인생이라도 어떻게 살았는가? 가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옵니다.
끝으로 생명의 삶1월호중 (P129) [크리스찬의 삶의 자세]를 소개하고 마칠까합니다.
어부가 직업인 한 크리스찬 젊은이가 있었답니다. 그런데,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다 풍랑에 휩싸여 연달아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젊은 크리스찬은 장례식을 마치고 비장한 각오로 다시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가려고하자,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친구들이 강력히 말렸습니다. 그러자, 크리스찬 젊은이는 조용히 한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 너의 할아버지는 어디에서 돌아가셨니] 그러자 친구는[ 침대에서 돌아가셨지] 라고 대답했습니다. 크리스찬 젊은이는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너의 아버지는 어디에서 돌아가셨지? 그러자 친구는 [ 역시 침대에서 돌아가셨지] 라고 똑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크리스찬 젊은이는 끝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고기를 잡으로 바다에 나갔답니다. [그러면, 너는 침대가 무섭다고 다시는 침대에서 자지 않니? ]
우리는 너무도 자도, 오래도록 하나의 닫힌 문을 바라보며,후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앞에 다른 또 하나의 문(어쩌면 첫 번째 문보다 은혜스럽고,축복된)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고 나아가기를 저는 간구합니다. (헬렌켈러의 말: Living Life 5월 비전과 실패 관리에서 페이지 79)
일본 고오베동부교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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