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차 전문서 '동다기' 발굴




다산 저작으로 오인, 저자는 이덕리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차(茶)에 대한 한국 최초의 전문 저작인 '동다기'(東茶記)가 발굴됐다.

'동다기'는 그동안 제목 정도만 알려져 있었고 저자는 다산 정약용으로 추정됐으나 이번 실물 자료 발견을 통해 저자가 다산이 아닌 이덕리(李德履. 1728-?)로 판명됐다.

한국 한문학 전공인 정민(45)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전남 강진군 성전면 백운동 이효천 씨 집안에서 정약용의 강진 유배 시절 막내 제자인 이시헌(李時憲.1803-1860)이 필사한 '동다기'를 발굴했다고 2일 밝혔다.

정 교수 조사 결과 이시헌이 필사한 '동다기'는 저자가 이덕리이며, 1785년 전후 진도 유배 시절에 완성한 저술로 나타났다. 또, 원래 제목은 '기다'(記茶)로 드러났다.

이 '동다기'는 제목이 '강심'(江心)이라고 적힌 이덕리의 각종 시문 필사본 묶음집 속에서 발견됐다. '강심'은 가로 19.6cm × 세로 15.3cm이며, 행서와 초서를 절반 가량 섞은 세련된 서체로 쓴 필사본으로 모두 55장(110쪽) 분량이다.

이 '강심'에서 '기다', 즉 '동다기'는 10쪽 분량을 차지한다. 이 '동다기'는 차의 효능을 설명하고, 특히 차 사업을 국가가 직접 관리하고, 생산된 차 상품을 중국에 수출하며, 그렇게 얻은 수익을 국방 강화에 사용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차가 갖는 중요성에 대해 저자 이덕리는 "차는 국가에 보탬이 되고 민생을 넉넉하게 할 수 있으니 금은주옥(金銀珠玉)보다 소중한 자원"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동다기'를 포함한 '강심'의 원래 저자가 이덕리라는 사실은 이를 필사한 이시헌이 "이 한 책(강심)에 적힌 사(辭)와 문(文), 그리고 시는 바로 이덕리(李德履)가 옥주(沃州)에서 귀양살이할 때 지은 것이다"(此一冊所錄辭文及詩, 乃李德履沃州謫中所作)는 말에서 확인된다.

정 교수에 의하면 '동다기'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산의 저술로 오인됐다. '동다기'는 실물이 발견되지 않은 채, 다산과 교류가 남달랐던 승려 초의선사가 1837년에 지은 차에 대한 예찬론인 '동다송'(東茶頌)에 두어 구절이 인용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와중에 '동다기'라는 저술이 1992년에는 용운 스님에 의해 차 전문지 '다담'에 그 일부가 10회에 걸쳐 연재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강심'에서 발굴한 동다기와 비교해 본 결과 용운 스님이 소개한 '동다기'는 원문의 절반 가량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그 원전이 공개된 적도 없으며, 저자는 '전의리'(全義李)라고만 밝히고 있어 책의 정체를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 정 교수에 의해 '동다기'의 저자로 밝혀진 이덕리는 본관이 전의(全義)이며, 자는 수지(綏之)를 쓴 무관이다. 1763년(영조 39)에는 조선통신사의 자제군관 신분으로 일본을 다녀왔고, 1772년에는 정3품 당상관인 절충장군에 가좌되었다가 2년 뒤에는 도성 경비를 책임 진 종2품 오위장(五衛將)으로 승진해 창덕궁 수비를 맡았다.

이덕리는 무인이지만 시가에도 뛰어나 윤광심(尹光心.1751-1817)이 당대 저명한 작가의 시문을 모아 편찬한 '병세집'(幷世集)에는 그의 시가 모두 9수 수록돼 있다. 이 '병세집'에는 이덕리의 호를 '이중'(而重)이라고 소개했다.

이덕리는 49세 때인 1776년 3월 영조가 승하하고 정조가 즉위하자마자 그 해 4월초에 사도세자 복권 움직임과 관련해서 일어난 상소 사건에 연루되어 전라도 진도로 유배된 뒤 이곳에서 적어도 18년 이상을 보냈다. 다산이 강진에서 18년을 유배생활했듯이 그 또한 비슷한 처지에 내몰렸다.

정민 교수는 '동다기' 발굴을 통해 "초의선사의 '동다송' 보다 적어도 50년 앞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차문화 관련 전문서를 찾았으며, 차의 국가 전매와 국제 무역을 통한 국부 창출을 주장한 또 다른 실학자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동다기'에 기술된 내용을 통해 당시의 사회 실상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졌다고 덧붙였다. 예컨대 당시까지만 해도 조선에서는 차를 마시는 풍습이 희귀했으며, 1760년 남해에 표류한 차 무역선에서 얻은 차를 조선에서 10년 동안이나 다려 마셨다는 사실 등이 드러났다.

한편, '동다기'를 포함한 '강심'에는 다산 저술로 간주되던 '상두지'(桑土志)가 함께 발굴됨으로써 이 역시 이덕리 저작으로 밝혀졌다. 나아가 '기연다'(記煙茶)라는 담배 관련 논술도 발견됐다. 이는 종래 이 분야 최초 저술로 알려진 이옥의 '연경'(煙經)보다 20년 정도 빠른 것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