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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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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앞 길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신1:28-33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날 알렉산드리아로 향하는 마차 위에 할머니 한 분이 올라탔습니다. 마부가 물었습니다. "이 마차는 알렉산드리아로 가는데 누구십니까?" "나는 호열자요" "그렇다면 마차에서 내리십시오. 나는 당신을 태워 갈 수 없습니다" "여보 젊은이 내가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꼭 세 사람만 죽게 할테니 제발 나를 태워다 주시오" "세 사람 이상 죽게 되면 어떻게 하겠소?" "그 때는 이 칼로 나를 죽이시오" 마부는 할머니가 주는 칼을 받았습니다. 할머니는 마차가 성에 도착하자마자 마차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얼마 후 알렉산드리아 시에 호열자가 유행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습니다. 단 세 사람만 죽게 하겠다는 약속을 한 할머니가 많은 사람을 죽이자 마부는 화가 나서 칼을 들고 할머니를 찾아 나섰습니다. 얼마 후 마부가 성문에서 할머니를 만나 죽이려 하자 할머니는 "왜 나를 죽이려 하오? 라고 물었습니다. 마부는 화가 나서 버럭 소리쳤습니다. "당신은 내게 세 사람만 죽이겠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지금 저렇게 무수한 사람이 죽었으니 약속대로 당신을 죽이겠소" 그러자 할머니는 대답했습니다. "여보시오. 내가 죽인 사람은 단지 세 사람에 지나지 않았소. 나머지는 호열자란 말을 듣고 놀라서 두려워하다가 죽은 거요" 14세기 후반 유럽을 휩쓸었던 "검은 죽음의 병" 흑사병은 유럽 사람 4명에 1명 꼴로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고 합니다. 40일 동안 격리시키는 것이 유일한 예방법이어서 [고독 살인]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2,500만 명이 흑사병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페스트로 인하여 무역은 부진해지고 노동자의 죽음으로 경작지는 급속히 감소했으며 지주들이 파산했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사회는 공황에 빠졌고 성직자들은 위기 속에서 영적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21세기 초두에 세계는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사스·SARS)으로 공포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사스 공포로 세계 경제가 얼어 붙고 있습니다. 신문에 보니 "사스 충격, 9·11테러 5배 이상"이 된다고 합니다. 사스 여파로 올해 세계 관광업계에서 6백 9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아시아개발은행은 9월까지 사스가 계속된다면 아시아에서만 300억달러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로스코프는 이것을 '인포데믹(정보 전염병)'이라고 말합니다. 소문은 전염병처럼 번져 급격하게 경제를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193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전세계를 휩쓴 대 경제공황 때 무서운 경제 파탄이 가중된 원인은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경제공황이 닥쳐온다. 증권은 휴지가 된다. 은행에 돈이 떨어져 예금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라는 소문이 퍼지자 두려움과 공포가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너도 나도 은행에 몰려가 저금한 돈을 찾아가니 은행고는 텅비게 되고 은행이 문을 닫자 사업체들이 연쇄적으로 도산을 해 세계는 걷잡을 수 없는 거대한 공황으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으로 죽은 청년의 수가 30만 명인데 아들과 남편을 전쟁터에 보내고 그 염려와 근심과 불안 때문에 심장마비로 죽은 미국 시민들은 약 1백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사실 사스의 치사율은 3~4%로 독감과 일반 폐렴의 치사율 4~5%보다 오히려 낮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피해는 7000여명 감염에 500여명의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매년 목에 이물질이 걸려 질식사하는 4700명의 미국인 수에 비하면 많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가 7090명이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두려움 때문입니다. 사스보다 더 무서운 것은 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는 마음의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마음을 무기력하게 하는 바이러스와 같습니다. 나폴레옹 힐은 "공포는 모든 논리를 무력하게 하고, 모든 상상을 파괴하며, 모든 자신감을 꺾어 버리고, 모든 열성을 지워버리며, 모든 의욕을 없애 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을 나태와 비참과 불행에 빠뜨리고 마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워즈워드는 "두려움은 수백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 당신의 마음을 괴롭힌다" 라고 했습니다. 두려움은 사람을 병들게 하는 독이 들어 있습니다. 세네카라는 사람은「두려움이 있는 곳에는 행복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두려움은 행복을 앗아가고 인생을 성공하지 못하게 하고 인생을 실패케 만드는 적입니다. 조직 심리학 박사인 앨런 다운스는 [리더여, 두려움을 극복하라]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인생 성공의 핵심이 바로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신을 지배하는 7 가지 공포로부터 해방되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는 사람을 성공하게 하는 것은 재능을 어떻게 개발하느냐에 초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장점과 재능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장점보다 재능이 인간 성공의 DNA라고 합니다. 재능은 사람들이 원하는 인생을 꽃피우게 하는 씨앗이라는 것입니다. 이 씨앗을 어떻게 꽃피우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는 연방준비제도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의 예를 듭니다. 그는 줄리어드음대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이지만 자신의 재능을 개발해 미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인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재능은 무엇인가 하고 싶은 강하게 이끌리는 열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재능을 개발하는데 가장 커다란 적이 바로 공포 즉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재능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그 재능의 극대화를 방해하는 것이 바로 공포라는 것입니다. 그는 공포를 '상태공포(state of fear)'와 '특질공포(trait of fear)'로 나누어 상태공포 즉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였을 때 느끼는 두려운 감정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데 재능의 숨통을 죄는 공포는 특질공포라는 것입니다. 어떤 위험이 실제 자신에게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위험이 일어날 것으로 추측하여 두려워하는 공포입니다. 이것은 '실재로서의 어떤 것'이 아니라 '만약으로서의 어떤 것'을 생각하는 마음으로부터 자란다는 것입니다. 이 생길 뻔한 일을 실제 발생한 상황보다 더 크게 느끼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상상 속의 가능성 속에서 느끼는 두려움으로 자신을 극도로 제한한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자신의 재능의 무엇인지를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주어진 기회에 자신을 개발하지 못하여 인생을 불행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공포는 검열의 명수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업의 번성을 저해하고, 수많은 예술과 문학의 탄생을 가로막아 온 것은 자금 부족, 낮은 교육 수준, 정부의 검열이 아니라 바로 공포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재능의 숨통을 죄는 공포는 무능의 공포(만약 실패한다면?), 거부에 대한 공포(핵심에 끼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결핍의 공포(내 성과를 훔쳐 가면 어쩌나?), 현실의 공포(어디 손쉬운 해결책이 없는가?), 미지의 공포(저기 뭐가 숨어있지?), 권위의 공포(규칙을 어기면 어떻게 될까?), 나이의 공포(퇴물이 되면 어떻게 하지?) 등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 조건은 단지 세 가지 뿐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재능을 신뢰할 것, 자신의 열정을 추구할 것, 두려움을 물리칠 것" 열정, 재능, 그리고 자신감이 비즈니스에서 성공 핵심 요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려움이라는 것이 이것들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고 상상 속의 불운과 실패의 포로가 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공포에 귀를 기울여 그 공포로 하여금 자신을 장악하게 만들면, 우습게도 공포는 자신이 그토록 피하려했던 상황을 만들어 내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일리있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은 두려운 마음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했습니다. 두려움은 사단이 죄를 지은 인간을 패망시키기 위해 뿌려놓는 바이러스입니다. 두려움이라는 씨앗이 마음에 뿌려지면 결국 그 두려움은 다양한 방법으로 열매를 맺어 우리들을 괴롭힙니다. 오늘의 시대를 불확실성의 시대, 불안의 시대라고 말을 합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까? 질병의 두려움, 사고의 두려움, 실패의 두려움, 죽음의 두려움, 실직의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도 모르게 시달리고 잇습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앞날을 바라보며 희망과 기대를 가지시길 원하시지 두려워하며 절망하기 원하지 않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땅, 적들이 우글거리는 땅, 위험과 전쟁이 기다리고 있는 땅인데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두려워 하지 않고 미래에 대하여 기대를 가질 수 있습니까?
1.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30, 21).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으로 가나안을 주시고 그곳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애굽으로 갈까 가나안으로 갈까 우리가 어디로 갈꼬 망설이고 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이 주신 땅을 좋아하기는 하였습니다(25). 그러나 좋아하는 것과 실제 믿고 바라보고 올라가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정탐을 해 보니 어려운 난관이 있습니다. 거대한 성이 있습니다. 그 때 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26절을 보십시오. 올라가기를 즐겨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명을 거역합니다. 우리가 어디로 갈꼬하며 망설입니다. 우유부단합니다(28). 낙심합니다. 상대를 과대 평가합니다(28). 자신들에 대하여서는 과소 평가합니다. 일을 시킨 분에 대하여 원망을 합니다(27).
그 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29) 성경을 보십시오 두려워 하며 머뭇거리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9). 왜 그렇습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이 땅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 앞에 두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신 방법대로 올라가 얻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두려울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영원한 실패가 아닙니다. 미래은 우리의 상상에 묵여 있지 않습니다. 미래는 현재의 노예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 준비해 놓고 담대하게 이루시길 원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외아들을 바치라고 합니다. 이성에도 신앙에도 맡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았다는 신앙을 갖고 나아갑니다. 하나님은 이미 수양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여호와 이레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모세 죽을 것같지만 이미 하나님은 공주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공주가 강가에 나와 목욕한다는 것 신비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수영도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모세를 위해 준비해 놓은 사람입니다. 모세가 80살에 민족을 위해 부름받았을 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사실 죽음의 두려움입니다. 그 때도 하나님은 아론을 준비해 놓았다고 말합니다. 다윗을 쓰시기 위해 충성된 용사를 준비해 놓으셨고, 바울을 통해 세계 선교를 감당하게 하기 위해 동역자 바나바와 지역 지역에 신실한 종들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앞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3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주께서 내 길 예비 하시네, 주께서 내 길 예비하시네, 하루 하루 살아요... ] 두려운 상황이 오면 더욱 기대를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1973 자신의 이름을 따 종교계에서 많은 공헌을 한 사람에게 시상하는 '템플턴 상'을 제정한 존 템플턴은 [템플턴 플랜]이라는 책을 써습니다. 그는 신앙인으로 프린스턴 신학교의 이사와 학장을 역임하기도 한 사람입니다. 1954년 Templeton Growth 사를 설립하여 글로벌 펀드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인물입니다. 그가 부자가 된 계기는 1939년 9월이었다고 합니다. 1939년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미국은 역사상 최악의 경제 공황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당시 스물 여섯 살 그는 전쟁이라는 것을 기회로 예측했습니다. 주식이 폭락할 때, 언제 휴지 조각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주당 1달러 미만으로 거래되는 모든 주식들을 각 종목 당 100달러 어치씩 매수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자신의 돈이 아니라 사장으로부터 1만 달러를 빌려서 투자를 한 것입니다. 결국 그가 매수한 104개 종목 가운데 단 4개 종목만 파산했고, 템플턴은 1년 만에 빌린 돈을 모두 갚았고 4년 후 최초의 투자금은 4배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부자들]이라는 책을 쓴 한상복씨는 1년 2개월에 걸쳐 한국의 부자 143명을 조사한 결과 부자는 부자가 될 수 있는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부자들은 불황일 때 주식을 사고, 부자가 되기에 이미 늦은 때는 없고 부자들은 거꾸로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에 어둠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미래가 암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촛불을 켜야 합니다. 촛불은 대낮에는 별 가치가 없습니다. 어두울수록 가치가 있습니다.
2. 우리는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 뒤를 따라가기 때문에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30).
1)사람이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1) 신체적 정신적 위협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하기 때문입니다.
프로이드는 [불안의 문제]에서 불안을 실제적 불안, 신경증적 불안, 도덕적 불안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실제적 불안이란 범죄. 전쟁. 설명할 수 없는 질병 위해 등 사람에게 분명한 위협이 있을 때 나타난 다고 하였습니다. 신경증적 불안이란 본능이 너무 강해서 나타나는 것이고 도덕적 불안은 초자아가 너무 강해 죄나 수치심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우리는 변화된 환경 조건에 대처하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신체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자기에게 해를 끼칠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에 부딪치게 되면 두려움에 쌓이게 됩니다. 밀러라는 이런 예측된 불안이 두려워하는 사건 전에 일어나면 이를 걱정 또는 염려라 하고, 과정 중에 일어나면, 공포(panic,terror)라 하고, 후에 일어나면 이를 죄책감, 또는 좌절감이라합니다(Miller & Jackson, 1985, P.210).
(2)사람은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두려원합니다.
어떤 상황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자신의 앞 길이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다면 사람은 불안으로 시달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광풍이 불어올지, 배가 언제 기울어질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항해 중에 두려워합니다. 위험 스런 상황을 경험할 때 보다 위험 스런 사건을 예측할 때 더 스트레스를 겪는다고 합니다. 낙하산 부대의 군인들은 공중 낙하 전후의 생리적 긴장지표(심장박동, 땀)가 가장 높다고 합니다.
(3)미래에 대한 믿음, 확신이 없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2)오늘 성경에 보면 두려워하는 이들을 향해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그들을 앞서 행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9).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의 비전만 주시고 쉬시고 주무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갈 수 있도록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시편 기자도 이 사실을 "(시 68:7)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 행진하셨을 때에 (셀라)"라고 읊고 있습니다.
앞서 행하시면서 무엇을 합니까?
①우리를 인도하십니다(33).
성경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광야같은 세상 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고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출 13: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출 23:23) 나의 사자가 네 앞서 가서 너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에게로 인도하고 나는 그들을 끊으리니
②우리를 위해 싸워 주십니다(30).
홍해를 가릅니다. 쓴물이 단물로 변합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립니다.
3)우리는 우리를 인도하시면 우리를 위해 싸워주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뒤를 따라가면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기대를 가지고 미래를 향해 달려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이 앞서 가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에 중대한 실수를 보십시오.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두려워했을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들을 약속합니다. 기디리지 못하고 자신의 방법으로 합니다. 이방 왕 앞에서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신뢰가 없습니다. 아내를 내어 줍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40세에 혈기를 부려 애굽인을 죽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합니다. 하나님 뒤를 따라가지 못하고 하나님 앞서 행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됩니까? 결국 광야에 나가 40년을 고생을 합니다. 다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건을 조성해 주시고 이룰 수 있도록 대로를 만들어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기다리지 못하여 실패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32절을 보십시오. 단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지 못하니까 말씀대로 따르지도 않고 어떤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께 물어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결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사업하는데도 자기 마음대로 계획하고 실행하다가 실패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얼마나 한심합니까? 출애굽기 15장을 보십시오. 금방 홍해의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춤추며 기뻐 어찌할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3일 지나니까 먹을 물이 없습니다. 마라라는 지역에 이르렀는데 쓴물만 있습니다. 모세를 원망합니다. 조금 가면 하나님께서는 오아시스를 준비해 놓고 있는데 그 사이를 못견디고 원망하고 좌절하고 불평하고 포기합니다.
그러나 다윗을 보십시오. 그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바로 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왕은 되지 못하고 계속 죽음의 위기를 당합니다. 그 때 그는 어떻게 합니까?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어도 묵묵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을 처리합니다. 앞서가시는 하나님을 따라갑니다. 17년 만에 통일 왕국의 왕이 됩니다. 위대한 성군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보다 앞서가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결국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뒤를 따라가는 것이겠습니까? 말씀을 좇아가는 삶입니다. 오늘 날을 구름기둥 불기둥이 직접 나타나서 앞서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하여 인도하십니다. 말씀이 가라는 곳에 가고 말씀이 멈추라는 곳에 멈추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뒤를 따라 가는 삶입니다. 기도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 보고 모든 것을 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따라가면 미래에 대하여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그 사실을 확신하고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31,33).
1)오늘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신의 아들을 안음같이 우리를 보호해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31).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에서 그들을 광야에서 어떻게 도와주셨는지를 기억시켜 주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안고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두려워서 떨 때에 여호와에서 우리들에게 이와 똑같이 하실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광야를 통과하는 이스라엘은 많은 두려움과 염려가 계속되는 삶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향한 여정은 처음 가는 길이요 낯선 길이었습니다. 또한 언제 덮칠지 모르는 외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물과 음식에 대한 염려도 그들을 괴롭히는 일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일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친히 도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마른 땅 같이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추격하던 애굽 군사들을 바다에 수장시켜 버렸습니다. 또한 반석에서 물이 나고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그들의 보호자와 인도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과 함께 계셨고 그들을 친히 보호해 주셨습니다.
2) 우리의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보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보호의 대상자를 말씀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다 보호해 주신 것은 아닙니다. 롯과 그의 가족입니다. 노아의 홍수가 일어날 때 다 보호받은 것은 아닙니다. 노아와 그 가족입니다.
(1)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거하는 자를 보호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시61:7) 저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 거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저를 보호하소서
(2)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를 보호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33: 12)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거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맞도록 보호하시고
(3)성도를 보호하십니다.
(시37 : 28)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사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라
(4)주께로 피하는 자를 보호하십니다.
(시5 : 11)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외치며
성실한 자를 보호하십니다.
악한 자에게서, 시험에서, 재앙에서 보호해 주십니다. 병든자의 피난처 보호자가 되시고, 가난한 자, 헐벗고 굶주리고 멸시받는 자, 외로운 자 쫓기는 자, 범죄자의 피난처 보호자가 되십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에게 죽음의 위협을 당했습니다. 구렁텅이에 감금하였습니다. 인신 매매를 당하였습니다. 억울하게 옥에 갇혔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보호 해 주었습니다. 결국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였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며 걱정과 두려움으로 보내어서는 아니됩니다.
노먼 빈센트 필 박사는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글에서 한 연구기관의 조사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걱정 중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일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40%,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걱정이 30%,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닌 작은 것에 대한 걱정이 22%, 우리가 어떻게 바꿀 수 없는 사건에 대한 걱정이 4%, 우리들이 해결해야 할 진짜 사건에 대한 걱정이 4%, 결국 사람들은 96%의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기쁨도, 웃음도, 마음의 평화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작은 실망 때문에 너무 오래 동안 침체의 자리에 머무르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두려움이 아닙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 어찌할 수 없는 과거, 아픔과 상처의 과거,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메여 두려움에 포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세계이지만 내일을 예측하면서 그것으로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1.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30, 21).
2. 우리는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 뒤를 따라가기 때문에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30).
3. 우리는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그 사실을 확신하고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31,33).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과 함께 미래를 향해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열린편지/우리는 앞길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신명기1:28-33/열린교회/김필곤 목사 설교 중에서-
신1:28-33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날 알렉산드리아로 향하는 마차 위에 할머니 한 분이 올라탔습니다. 마부가 물었습니다. "이 마차는 알렉산드리아로 가는데 누구십니까?" "나는 호열자요" "그렇다면 마차에서 내리십시오. 나는 당신을 태워 갈 수 없습니다" "여보 젊은이 내가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꼭 세 사람만 죽게 할테니 제발 나를 태워다 주시오" "세 사람 이상 죽게 되면 어떻게 하겠소?" "그 때는 이 칼로 나를 죽이시오" 마부는 할머니가 주는 칼을 받았습니다. 할머니는 마차가 성에 도착하자마자 마차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얼마 후 알렉산드리아 시에 호열자가 유행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습니다. 단 세 사람만 죽게 하겠다는 약속을 한 할머니가 많은 사람을 죽이자 마부는 화가 나서 칼을 들고 할머니를 찾아 나섰습니다. 얼마 후 마부가 성문에서 할머니를 만나 죽이려 하자 할머니는 "왜 나를 죽이려 하오? 라고 물었습니다. 마부는 화가 나서 버럭 소리쳤습니다. "당신은 내게 세 사람만 죽이겠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지금 저렇게 무수한 사람이 죽었으니 약속대로 당신을 죽이겠소" 그러자 할머니는 대답했습니다. "여보시오. 내가 죽인 사람은 단지 세 사람에 지나지 않았소. 나머지는 호열자란 말을 듣고 놀라서 두려워하다가 죽은 거요" 14세기 후반 유럽을 휩쓸었던 "검은 죽음의 병" 흑사병은 유럽 사람 4명에 1명 꼴로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고 합니다. 40일 동안 격리시키는 것이 유일한 예방법이어서 [고독 살인]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2,500만 명이 흑사병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페스트로 인하여 무역은 부진해지고 노동자의 죽음으로 경작지는 급속히 감소했으며 지주들이 파산했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사회는 공황에 빠졌고 성직자들은 위기 속에서 영적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21세기 초두에 세계는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사스·SARS)으로 공포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사스 공포로 세계 경제가 얼어 붙고 있습니다. 신문에 보니 "사스 충격, 9·11테러 5배 이상"이 된다고 합니다. 사스 여파로 올해 세계 관광업계에서 6백 9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아시아개발은행은 9월까지 사스가 계속된다면 아시아에서만 300억달러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로스코프는 이것을 '인포데믹(정보 전염병)'이라고 말합니다. 소문은 전염병처럼 번져 급격하게 경제를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193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전세계를 휩쓴 대 경제공황 때 무서운 경제 파탄이 가중된 원인은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경제공황이 닥쳐온다. 증권은 휴지가 된다. 은행에 돈이 떨어져 예금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라는 소문이 퍼지자 두려움과 공포가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너도 나도 은행에 몰려가 저금한 돈을 찾아가니 은행고는 텅비게 되고 은행이 문을 닫자 사업체들이 연쇄적으로 도산을 해 세계는 걷잡을 수 없는 거대한 공황으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으로 죽은 청년의 수가 30만 명인데 아들과 남편을 전쟁터에 보내고 그 염려와 근심과 불안 때문에 심장마비로 죽은 미국 시민들은 약 1백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사실 사스의 치사율은 3~4%로 독감과 일반 폐렴의 치사율 4~5%보다 오히려 낮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피해는 7000여명 감염에 500여명의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매년 목에 이물질이 걸려 질식사하는 4700명의 미국인 수에 비하면 많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가 7090명이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두려움 때문입니다. 사스보다 더 무서운 것은 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는 마음의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마음을 무기력하게 하는 바이러스와 같습니다. 나폴레옹 힐은 "공포는 모든 논리를 무력하게 하고, 모든 상상을 파괴하며, 모든 자신감을 꺾어 버리고, 모든 열성을 지워버리며, 모든 의욕을 없애 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을 나태와 비참과 불행에 빠뜨리고 마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워즈워드는 "두려움은 수백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 당신의 마음을 괴롭힌다" 라고 했습니다. 두려움은 사람을 병들게 하는 독이 들어 있습니다. 세네카라는 사람은「두려움이 있는 곳에는 행복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두려움은 행복을 앗아가고 인생을 성공하지 못하게 하고 인생을 실패케 만드는 적입니다. 조직 심리학 박사인 앨런 다운스는 [리더여, 두려움을 극복하라]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인생 성공의 핵심이 바로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신을 지배하는 7 가지 공포로부터 해방되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는 사람을 성공하게 하는 것은 재능을 어떻게 개발하느냐에 초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장점과 재능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장점보다 재능이 인간 성공의 DNA라고 합니다. 재능은 사람들이 원하는 인생을 꽃피우게 하는 씨앗이라는 것입니다. 이 씨앗을 어떻게 꽃피우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는 연방준비제도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의 예를 듭니다. 그는 줄리어드음대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이지만 자신의 재능을 개발해 미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인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재능은 무엇인가 하고 싶은 강하게 이끌리는 열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재능을 개발하는데 가장 커다란 적이 바로 공포 즉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재능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그 재능의 극대화를 방해하는 것이 바로 공포라는 것입니다. 그는 공포를 '상태공포(state of fear)'와 '특질공포(trait of fear)'로 나누어 상태공포 즉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였을 때 느끼는 두려운 감정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데 재능의 숨통을 죄는 공포는 특질공포라는 것입니다. 어떤 위험이 실제 자신에게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위험이 일어날 것으로 추측하여 두려워하는 공포입니다. 이것은 '실재로서의 어떤 것'이 아니라 '만약으로서의 어떤 것'을 생각하는 마음으로부터 자란다는 것입니다. 이 생길 뻔한 일을 실제 발생한 상황보다 더 크게 느끼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상상 속의 가능성 속에서 느끼는 두려움으로 자신을 극도로 제한한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자신의 재능의 무엇인지를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주어진 기회에 자신을 개발하지 못하여 인생을 불행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공포는 검열의 명수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업의 번성을 저해하고, 수많은 예술과 문학의 탄생을 가로막아 온 것은 자금 부족, 낮은 교육 수준, 정부의 검열이 아니라 바로 공포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재능의 숨통을 죄는 공포는 무능의 공포(만약 실패한다면?), 거부에 대한 공포(핵심에 끼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결핍의 공포(내 성과를 훔쳐 가면 어쩌나?), 현실의 공포(어디 손쉬운 해결책이 없는가?), 미지의 공포(저기 뭐가 숨어있지?), 권위의 공포(규칙을 어기면 어떻게 될까?), 나이의 공포(퇴물이 되면 어떻게 하지?) 등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 조건은 단지 세 가지 뿐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재능을 신뢰할 것, 자신의 열정을 추구할 것, 두려움을 물리칠 것" 열정, 재능, 그리고 자신감이 비즈니스에서 성공 핵심 요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려움이라는 것이 이것들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고 상상 속의 불운과 실패의 포로가 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공포에 귀를 기울여 그 공포로 하여금 자신을 장악하게 만들면, 우습게도 공포는 자신이 그토록 피하려했던 상황을 만들어 내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일리있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은 두려운 마음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했습니다. 두려움은 사단이 죄를 지은 인간을 패망시키기 위해 뿌려놓는 바이러스입니다. 두려움이라는 씨앗이 마음에 뿌려지면 결국 그 두려움은 다양한 방법으로 열매를 맺어 우리들을 괴롭힙니다. 오늘의 시대를 불확실성의 시대, 불안의 시대라고 말을 합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까? 질병의 두려움, 사고의 두려움, 실패의 두려움, 죽음의 두려움, 실직의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도 모르게 시달리고 잇습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앞날을 바라보며 희망과 기대를 가지시길 원하시지 두려워하며 절망하기 원하지 않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땅, 적들이 우글거리는 땅, 위험과 전쟁이 기다리고 있는 땅인데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두려워 하지 않고 미래에 대하여 기대를 가질 수 있습니까?
1.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30, 21).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으로 가나안을 주시고 그곳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애굽으로 갈까 가나안으로 갈까 우리가 어디로 갈꼬 망설이고 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이 주신 땅을 좋아하기는 하였습니다(25). 그러나 좋아하는 것과 실제 믿고 바라보고 올라가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정탐을 해 보니 어려운 난관이 있습니다. 거대한 성이 있습니다. 그 때 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26절을 보십시오. 올라가기를 즐겨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명을 거역합니다. 우리가 어디로 갈꼬하며 망설입니다. 우유부단합니다(28). 낙심합니다. 상대를 과대 평가합니다(28). 자신들에 대하여서는 과소 평가합니다. 일을 시킨 분에 대하여 원망을 합니다(27).
그 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29) 성경을 보십시오 두려워 하며 머뭇거리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9). 왜 그렇습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이 땅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 앞에 두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신 방법대로 올라가 얻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두려울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영원한 실패가 아닙니다. 미래은 우리의 상상에 묵여 있지 않습니다. 미래는 현재의 노예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 준비해 놓고 담대하게 이루시길 원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외아들을 바치라고 합니다. 이성에도 신앙에도 맡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았다는 신앙을 갖고 나아갑니다. 하나님은 이미 수양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여호와 이레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모세 죽을 것같지만 이미 하나님은 공주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공주가 강가에 나와 목욕한다는 것 신비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수영도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모세를 위해 준비해 놓은 사람입니다. 모세가 80살에 민족을 위해 부름받았을 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사실 죽음의 두려움입니다. 그 때도 하나님은 아론을 준비해 놓았다고 말합니다. 다윗을 쓰시기 위해 충성된 용사를 준비해 놓으셨고, 바울을 통해 세계 선교를 감당하게 하기 위해 동역자 바나바와 지역 지역에 신실한 종들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앞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3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주께서 내 길 예비 하시네, 주께서 내 길 예비하시네, 하루 하루 살아요... ] 두려운 상황이 오면 더욱 기대를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1973 자신의 이름을 따 종교계에서 많은 공헌을 한 사람에게 시상하는 '템플턴 상'을 제정한 존 템플턴은 [템플턴 플랜]이라는 책을 써습니다. 그는 신앙인으로 프린스턴 신학교의 이사와 학장을 역임하기도 한 사람입니다. 1954년 Templeton Growth 사를 설립하여 글로벌 펀드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인물입니다. 그가 부자가 된 계기는 1939년 9월이었다고 합니다. 1939년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미국은 역사상 최악의 경제 공황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당시 스물 여섯 살 그는 전쟁이라는 것을 기회로 예측했습니다. 주식이 폭락할 때, 언제 휴지 조각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주당 1달러 미만으로 거래되는 모든 주식들을 각 종목 당 100달러 어치씩 매수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자신의 돈이 아니라 사장으로부터 1만 달러를 빌려서 투자를 한 것입니다. 결국 그가 매수한 104개 종목 가운데 단 4개 종목만 파산했고, 템플턴은 1년 만에 빌린 돈을 모두 갚았고 4년 후 최초의 투자금은 4배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부자들]이라는 책을 쓴 한상복씨는 1년 2개월에 걸쳐 한국의 부자 143명을 조사한 결과 부자는 부자가 될 수 있는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부자들은 불황일 때 주식을 사고, 부자가 되기에 이미 늦은 때는 없고 부자들은 거꾸로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에 어둠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미래가 암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촛불을 켜야 합니다. 촛불은 대낮에는 별 가치가 없습니다. 어두울수록 가치가 있습니다.
2. 우리는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 뒤를 따라가기 때문에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30).
1)사람이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1) 신체적 정신적 위협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하기 때문입니다.
프로이드는 [불안의 문제]에서 불안을 실제적 불안, 신경증적 불안, 도덕적 불안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실제적 불안이란 범죄. 전쟁. 설명할 수 없는 질병 위해 등 사람에게 분명한 위협이 있을 때 나타난 다고 하였습니다. 신경증적 불안이란 본능이 너무 강해서 나타나는 것이고 도덕적 불안은 초자아가 너무 강해 죄나 수치심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우리는 변화된 환경 조건에 대처하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신체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자기에게 해를 끼칠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에 부딪치게 되면 두려움에 쌓이게 됩니다. 밀러라는 이런 예측된 불안이 두려워하는 사건 전에 일어나면 이를 걱정 또는 염려라 하고, 과정 중에 일어나면, 공포(panic,terror)라 하고, 후에 일어나면 이를 죄책감, 또는 좌절감이라합니다(Miller & Jackson, 1985, P.210).
(2)사람은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두려원합니다.
어떤 상황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자신의 앞 길이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다면 사람은 불안으로 시달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광풍이 불어올지, 배가 언제 기울어질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항해 중에 두려워합니다. 위험 스런 상황을 경험할 때 보다 위험 스런 사건을 예측할 때 더 스트레스를 겪는다고 합니다. 낙하산 부대의 군인들은 공중 낙하 전후의 생리적 긴장지표(심장박동, 땀)가 가장 높다고 합니다.
(3)미래에 대한 믿음, 확신이 없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2)오늘 성경에 보면 두려워하는 이들을 향해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그들을 앞서 행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9).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의 비전만 주시고 쉬시고 주무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갈 수 있도록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시편 기자도 이 사실을 "(시 68:7)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 행진하셨을 때에 (셀라)"라고 읊고 있습니다.
앞서 행하시면서 무엇을 합니까?
①우리를 인도하십니다(33).
성경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광야같은 세상 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고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출 13: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출 23:23) 나의 사자가 네 앞서 가서 너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에게로 인도하고 나는 그들을 끊으리니
②우리를 위해 싸워 주십니다(30).
홍해를 가릅니다. 쓴물이 단물로 변합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립니다.
3)우리는 우리를 인도하시면 우리를 위해 싸워주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뒤를 따라가면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기대를 가지고 미래를 향해 달려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이 앞서 가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에 중대한 실수를 보십시오.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두려워했을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들을 약속합니다. 기디리지 못하고 자신의 방법으로 합니다. 이방 왕 앞에서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신뢰가 없습니다. 아내를 내어 줍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40세에 혈기를 부려 애굽인을 죽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합니다. 하나님 뒤를 따라가지 못하고 하나님 앞서 행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됩니까? 결국 광야에 나가 40년을 고생을 합니다. 다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건을 조성해 주시고 이룰 수 있도록 대로를 만들어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기다리지 못하여 실패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32절을 보십시오. 단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지 못하니까 말씀대로 따르지도 않고 어떤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께 물어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결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사업하는데도 자기 마음대로 계획하고 실행하다가 실패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얼마나 한심합니까? 출애굽기 15장을 보십시오. 금방 홍해의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춤추며 기뻐 어찌할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3일 지나니까 먹을 물이 없습니다. 마라라는 지역에 이르렀는데 쓴물만 있습니다. 모세를 원망합니다. 조금 가면 하나님께서는 오아시스를 준비해 놓고 있는데 그 사이를 못견디고 원망하고 좌절하고 불평하고 포기합니다.
그러나 다윗을 보십시오. 그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바로 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왕은 되지 못하고 계속 죽음의 위기를 당합니다. 그 때 그는 어떻게 합니까?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어도 묵묵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을 처리합니다. 앞서가시는 하나님을 따라갑니다. 17년 만에 통일 왕국의 왕이 됩니다. 위대한 성군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보다 앞서가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결국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뒤를 따라가는 것이겠습니까? 말씀을 좇아가는 삶입니다. 오늘 날을 구름기둥 불기둥이 직접 나타나서 앞서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하여 인도하십니다. 말씀이 가라는 곳에 가고 말씀이 멈추라는 곳에 멈추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뒤를 따라 가는 삶입니다. 기도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 보고 모든 것을 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따라가면 미래에 대하여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그 사실을 확신하고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31,33).
1)오늘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신의 아들을 안음같이 우리를 보호해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31).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에서 그들을 광야에서 어떻게 도와주셨는지를 기억시켜 주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안고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두려워서 떨 때에 여호와에서 우리들에게 이와 똑같이 하실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광야를 통과하는 이스라엘은 많은 두려움과 염려가 계속되는 삶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향한 여정은 처음 가는 길이요 낯선 길이었습니다. 또한 언제 덮칠지 모르는 외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물과 음식에 대한 염려도 그들을 괴롭히는 일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일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친히 도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마른 땅 같이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추격하던 애굽 군사들을 바다에 수장시켜 버렸습니다. 또한 반석에서 물이 나고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그들의 보호자와 인도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과 함께 계셨고 그들을 친히 보호해 주셨습니다.
2) 우리의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보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보호의 대상자를 말씀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다 보호해 주신 것은 아닙니다. 롯과 그의 가족입니다. 노아의 홍수가 일어날 때 다 보호받은 것은 아닙니다. 노아와 그 가족입니다.
(1)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거하는 자를 보호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시61:7) 저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 거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저를 보호하소서
(2)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를 보호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33: 12)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거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맞도록 보호하시고
(3)성도를 보호하십니다.
(시37 : 28)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사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라
(4)주께로 피하는 자를 보호하십니다.
(시5 : 11)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외치며
성실한 자를 보호하십니다.
악한 자에게서, 시험에서, 재앙에서 보호해 주십니다. 병든자의 피난처 보호자가 되시고, 가난한 자, 헐벗고 굶주리고 멸시받는 자, 외로운 자 쫓기는 자, 범죄자의 피난처 보호자가 되십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에게 죽음의 위협을 당했습니다. 구렁텅이에 감금하였습니다. 인신 매매를 당하였습니다. 억울하게 옥에 갇혔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보호 해 주었습니다. 결국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였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며 걱정과 두려움으로 보내어서는 아니됩니다.
노먼 빈센트 필 박사는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글에서 한 연구기관의 조사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걱정 중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일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40%,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걱정이 30%,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닌 작은 것에 대한 걱정이 22%, 우리가 어떻게 바꿀 수 없는 사건에 대한 걱정이 4%, 우리들이 해결해야 할 진짜 사건에 대한 걱정이 4%, 결국 사람들은 96%의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기쁨도, 웃음도, 마음의 평화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작은 실망 때문에 너무 오래 동안 침체의 자리에 머무르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두려움이 아닙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 어찌할 수 없는 과거, 아픔과 상처의 과거,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메여 두려움에 포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세계이지만 내일을 예측하면서 그것으로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1.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30, 21).
2. 우리는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 뒤를 따라가기 때문에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30).
3. 우리는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그 사실을 확신하고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31,33).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과 함께 미래를 향해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열린편지/우리는 앞길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신명기1:28-33/열린교회/김필곤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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