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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흔적(갈6:14-17)
율법주의에 매달리고 특히 할례의식에서 영적으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바울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 얻게 하신 하나님의 새
언약에 대해 여러 말로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서신을 마치면서 끝 말에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할례를 했거나 말거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속으로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는 그의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
졌다고 하면서 할례의 흔적 대신 예수의 흔적이라는 은혜로운 표현을 주
제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수만 자랑하는 자
예수의 흔적을 가진 자라고 하는 바울사도의 의견은 좌우간 예수 믿는
기독교인은 무엇에나 예수님을 자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기독교인이 무슨 일에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개혁주의적 신앙을 도모하는 정통 장로교단의
생각은 결코 이 시대를 역류하는 신앙 사상이 아닙니다.
이 사상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초대교회에서 늘 보여주었던 참다운 성경
적 신앙 사상입니다. 사람을 자랑하고 사람의 사정을 내세우려다가 교회
의 역사가 망가졌던 사례가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중세기의 로마 카톨릭의 인본주의가 성경을 무시하고
하나님 대신 교황이 그 자리에 그리고 사제들이 그 자리에 차지하고 참
된 하나님의 은총 대신 사람의 은총설이 개입되면서 마침내 속죄표를 판
매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외치게 된
개혁가 루터의 말에 공감하고 있던 자들이 일어나게 되었고 칼빈의 하나
님 영광 중심 사상이 표면화되면서 개신교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사실은 개신교가 성경에서 새롭게 난 것이 아니라 사도적 신앙의 개혁으
로 본래 신앙의 회복운동이라고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진정으로 예수
를 사랑하고 참으로 믿고 산다면 입만 열면 예수가 나오는 게 정상입니
다. 인간의 감정은 어떤 일에 몰두하면 그렇게 그 대상의 이름을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는 꿈을 꾸어도 공산주의 꿈을 꾸어야 한다는 맑스.레닌 사상
자들처럼 예수 믿는 자들은 입만 벌리면 예수가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고전 2:2『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1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
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그런데 교회 안에는 예수를 위한 자도 있지만 예수 때문에 자기 자랑을
위해 사는 자도 있습니다. 자기 영광을 위해 사는 교인도 있다는 말입니
다.
요 7:18『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갈 5:26『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2. 새로 지음을 받은 자(중생)
예수의 흔적을 지닌 자라 할 수 있는 참된 신자이면 반드시 성령으로 중
생 받은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중생의 경험은 지극히 수동적으로 하나님
의 은총 가운데서 영혼의 새로운 변화를 주신 일인데 성경은 이를 계시
적인 은혜로 설명합니다.
요 3:3-5『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
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4 니고데모가 가
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
가 날 수 있삽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
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8『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에게 할례의 조건을 주셨습니다.그
런데 중요한 것은 할례의 흔적보다 믿음이 먼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
다. 신약에도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인이 되어 세례식이 있고 하지만
믿음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구약의 속죄 제물을 드릴 때에도 회개와 믿음이 있어야 했고 신약에도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마음의 변화가 없이 단순한 종교
의 원리만 가지고 교회 다니는 종교인이 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
람의 정신적 변화가 없이는 저가 교회를 얼마나 다니든 직분을 가지든
구원과 상관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5『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
이니라』고 한 것입니다.
새로 지음을 받은 사람은 생활의 목적이 달라지고 관심의 집중이 세상과
다릅니다. 거듭난 영혼은 바라보는 이상이 달라서 세상과 연합하여 삶을
이해하지 않습니다.
거듭난 자는 엄격히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기 때문에 뜻을 하늘에
두게 된 영적 눈이 열리어 있습니다.사후의 세계가 확신되어지고 하나님
의 거룩하신 생명의 뜻을 이해합니다.때문에 역사관이 다르고 선택이 세
상인들과 차별됩니다.
고후 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4:18『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
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전 1:22-23『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23 우리
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3.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진 자
바울은 아주 특별한 표현으로 할례당에 대한 자랑으로 율법주의요 외식
적인 갈라디아 교회 내부의 유대주의자들 비판하고 바르게 고쳐주려고
합니다. 즉 할례의 흔적을 자랑하는 그들의 외식적인 율법주의 사고방식
으로 자기를 자랑하는 자들에 비해 그는 예수 때문에 받은 여러 가지의
고난의 상처를 오히려 즐겁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노예들에게 그 소유주를 표시하기 위해 소인된 표시처럼 바울은
예수 믿는 자로서 혹은 사도로서 자기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지노라고
했습니다.
이 흔적이라는 스티크마다(stivgmata)는 복수형태로 십자가적 고난의 여
러 삶의 흔적들을 총체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어떤 이는 무슨 신비로
운 몸의 상처가 있어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하지만 본문에서 그리고
바울이 현재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그 할례의 흔적에 비교하여 대응하는
뜻이 그런 외형적 흔적을 말하고자 한 바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
니다.
롬 2:28『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공동번역] 그러므로 유다인의 겉모양만 갖추었다 해서 참 유다인이 되
는 것도 아니고 몸에 할례의 흔적을 지녔다고 해서 참 할례를 받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자에게는 심령으로 성령의 인을 받은 자라고 여깁니다.
엡 1:13『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바울이 대충 얼마나 고난을 받았느냐 하면,
고후 11:23 -27『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
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
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
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
험을 당하고,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
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하는 말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도의 표된 것은 첫째 무슨 능력을 행하는 것보다 그의
표현을 보면,
고후 12:12『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참 예수교인은 가끔 핍박으로 인해 매를 맞거나 환난을 받거나 해서 몸
자체에 예수 때문에 받은 상처도 생길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예수의 흔적은 성도로 살면서 가지는 십자가적 고난의 흔적을 뜻합
니다.
우리는 오늘의 문화시대에 살면서 혹 진리에 대해 쉬운 진리, 쉬운 예수
의 길이 있는 줄 착각하는 자들도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진리는 영원
히 불변의 법칙으로 진리가 세상을 만나면 부딪히고 아픔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픈 흔적이 자국마다 주님의 피로서 구원과 은총과 상급이
될 줄 믿습니다. 예수교인의 삶의 흔적은 주님이 흘리고 가신 십자가의
길이 되어야 합니다.우리 인생의 길에, 우리의 몸에 예수의 흔적이 있어
서 그 거룩한 성흔이 하늘의 영광을 나타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고 하
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표징이 되는 흔적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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