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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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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미운 짓을 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하는 짓마다 부모의 속을 뒤집어 놓고 마음에 들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합니다.
대체로 두 아이가 있으면 한 아이는 부모에게 위로가 되며 한 아이는 부모에게 괴로움을 줍니다.
이런 아이는 부모에게 항상 야단을 맞지만 별로 변화되지 않으며 여전히 야단맞을 짓을 합니다.
반면에 사랑을 받고 부모에게 이쁜 짓을 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이쁨을 받을수록 점점 더 이쁜 짓을 합니다.
상대적으로 미움을 받는 아이는 사랑을 받는 형제에 대해서 미움이나 분노를 가지게 됩니다.
첫 번째 아이가 그럴 경우에는 동생을 귀찮게 하거나 괴롭힙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이 자체보다 부모의 책임이 더 큽니다.
그것은 편애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눈을 뜨고 주님과 깊이 연합해갈수록 부모는 자신의 기질적인 사랑이 아닌 주님의 사랑, 주님의 마음으로 자녀들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공평하고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제 막 부모가 된 30대의 초보 부모들은 아직 그러한 영적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육신적인 기질에 따라서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고 싫어하는 스타일이 있습니다.
섭리적으로 자녀들은 자녀가 둘 일 경우에 한 사람은 부모의 어두운 부분을 보여주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는 희생자의 사명입니다.
또한 한 사람은 부모의 밝은 부분을 보여주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는 위로자의 사명입니다.
자녀들은 인생의 전반부를 부모의 영적 상태를 드러내기 위한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인생의 후반부에는 자녀들은 자신의 사명과 삶을 찾아가게 되지만 어렸을 때는 부모들의 성품과 처리되지 않은 부분을 짊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부모가 깨달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부모가 충분히 깨닫고 자신을 반성하게 되면 아이는 미운 짓의 역할을 더 이상 감당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 자녀가 자꾸 미운 짓을 하고 동생이나 언니 등을 괴롭히거나 시기하거나 할 때 부모는 자신이 아이들을 편애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아이들 속에 그렇게 역사하고 있는 영들은 물론 작은 악령들이지만 그것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 크기 때문입니다.
아직 깨닫지 못하고 그런 역할을 하는 아이를 미워한다면 아이는 어쩔 수 없이 희생자의 역할을 계속 해야 합니다.
부모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악한 영을 받아들여 계속 속을 썩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부모들은 자식 때문에 속이 썩는다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희생자는 바로 자식입니다.
부모가 깨닫지 못하여 자식이 하는 짓이 밉게 느껴진다면 그는 자녀를 바르게 인도할 수 없습니다.
미움은 상호작용입니다.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미워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음란죄와 같습니다. 혼자서 음란죄를 지을 수는 없습니다.
혼자서 싸우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싸움에는 대상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이 대부분의 죄들은 상호적이며 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상대방도 우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갖는 다면 그 사람은 우리를 미워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호감의 기운이 그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움도 상호적인 것입니다.
아이가 미운 짓을 할 때 부모는 그가 미워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 아이에게도 그 부모가 이쁘게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가 이쁜 짓을 하는 것을 보고 싶다면 아이가 먼저 이쁘게 보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시각이 바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하는 짓이 보기 싫다고 마구 야단을 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아이는 더욱 더 심하게 나빠지게 될 것입니다.
야단을 쳐서 사랑스러워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꾸짖어서 아름답게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망치는 데만 효과가 있을 뿐이지 개선하는 데에는 별로 힘이 없습니다.
아이가 미운 짓을 하면 그것은 미운 짓을 시키는 영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가 밉게 보인다면 그를 밉게 보는 영이 있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내 안에 있는 영을 먼저 제거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미워하는 영이 소멸되면 바깥에 있는 아이에게 있는 미운 짓을 하는 영을 소멸하는 것이 쉽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미운 짓을 한다면 그것은 천덕꾸러기의 영입니다.
아이의 안에는 이미 억울함과 분노가 쌓여져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신보다 더 사랑을 받는 자기 형제에 대해서 분노가 쌓여져 있습니다.
대체로 첫 번째 아이는 별로 영악하지 못합니다.
첫째 아이는 대체로 어리숙하며 순합니다.
그가 태어났을 때 부모의 사랑을 얻는 것은 아주 쉬웠습니다.
그는 어떠한 무기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이는 좀 더 영악합니다.
그는 그보다 먼저 태어나 있는 형이나 언니와의 경쟁을 통해서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곧 자기의 연약함이 무기이며 그저 울기만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을 빼앗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첫 번째 아이는 당황합니다.
그는 갑자기 강력한 경쟁자를 얻었고 갑자기 부모의 사랑을 이 새로운 경쟁자에게 다 빼앗겨 버렸습니다.
진정 사랑했던 애인을 잃어버린 사람은 죽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첫 번째 아이가 경험하는 상실감은 그보다 결코 적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아이들의 느낌과 감정의 고통은 성인보다 결코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위로를 얻지 못합니다.
억울한 첫째 아이는 그 경쟁자를 공격합니다.
경쟁자는 약하기 때문에 그를 이기는 것은 쉽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곧 좌절하게 됩니다.
아주 조금 경쟁자를 공격했을 뿐인데 그를 지금까지 진정으로 사랑해주었던 부모가 그에게 매몰차게 대하면서 혼을 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가슴은 멍이 들기 시작합니다.
이제 그는 동생을 공격할 때마다 자기가 원했던 사랑이 아니라 미움을 받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에게 그것은 너무나 냉혹한 현실이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대비책이 없습니다.
첫째 아이가 동생을 공격하고 싫어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얼굴에 그늘이 지고 어눌하게 되는 것도 흔한 일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둘째 아이보다 첫째 아이가 유능하고 영리해서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아이가 부모의 기질과 비슷한 면이 있을 때입니다.
그 경우에는 둘째 아이가 첫째 아이가 가지게 되는 절망과 고통을 고스란히 가지게 됩니다.
미숙한 부모가 항상 하는 비교와 편애는 아이들의 영혼을 질식하게 만듭니다.
‘너는 왜 언니만큼 못하니?’ ‘너는 왜 형같이 못하니?’ 이런 공격들은 아이의 가슴에 깊은 상채기를 남깁니다.
자녀들에게 있어서 부모의 사랑은 모든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우주입니다.
그들의 사랑을 얻는 것은 모든 것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애정은 부모의 성향에 따라서 그들에게 주어집니다.
부모의 기질에 합당한 아이는 많은 애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합당하지 않고 맞지 않는 아이는 무시를 당하거나 꾸짖음을 당할 것을 것입니다.
이 시대는 부모들이 오직 학교 성적을 가지고 자녀들을 평가합니다.
그래서 공부를 잘 하는 아이는 사랑을 받고 그렇지 못한 아이는 무시를 당하고 꾸지람을 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이에게는 머리를 좋게 하시고 이해와 기억력이 뛰어나게 하십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좋은 목소리를 주십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예민한 음악성을 선물로 주십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손재주를 주십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언어를 잘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특별히 긍휼의 마음을 많이 부어주십니다.
그 모든 특성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사명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오직 머리가 좋은 아이만이 사랑을 받습니다.
부모의 취향에 맞는 아이만이 사랑을 받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모순이며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부모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좋은 부모가 되려고 한다면 그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 영혼이 눈을 뜨고 주님과 연합하여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사랑으로 아이들을 돌 볼 수 없다면 부모가 되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아이들에게는 많은 갈등과 상처와 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쉽게 낙담하며 절망합니다.
그리고 그 틈을 타서 악한 영들이 들어옵니다.
부모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의 파도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진 영적 전쟁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도와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싸워야 하는 영적 전쟁은 어른들에 비해서 결코 적은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치명적인 해를 줄 수 있는 육신적인 애정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신에 속한 기질적인 사랑을 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미워하는 영을 버려야 합니다.
아이를 밉게 보는 시선을 회개해야 합니다.
아이가 자신을 깨닫게 하기 위해 주님이 보내신 사신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안에 침투한 악한 영을 결박하고 쫓아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아이에게 역사하는 미운 짓을 시키는 영을 쫓아내야 합니다.
아마 부모가 충분히 깨달았다면 부모는 아이를 안고 울면서 용서를 구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러한 상태가 된다면 굳이 아이에게 역사하는 미운 짓을 하는 영들을 대적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아이도 눈물로 범벅이 되어서 그 영혼이 맑아지며 악한 영들을 끌어당길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직 영혼이 깨어나서 주님의 마음을 알며 주님의 심장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사랑만이 자녀를 바르게 키울 수 있습니다.
육신적인 애정을 버리십시오.
기질적인 개인의 취향에 속한 사랑을 버리십시오.
누구나 자기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를 즐겁게 해주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러한 기질적인 사랑을 버리지 않으면 그것은 많은 고통과 상처를 일으킵니다.
내 마음에 맞는 사랑, 차별하는 사랑은 반드시 상처를 낳습니다.
그것은 악령에게 틈을 줍니다.
주님께 속하지 않은 사랑, 주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사랑, 나의 기질에 맞는 사랑은 다 지옥에 속한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직 주님의 시선만이 모든 사람을 아름답게 보며 사랑스럽게 여기며 진정한 생명으로 가득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안아주십시오.
아이에게 있는 억울함과 미움을 치유해주십시오.
아이가 하는 미운 짓이 사랑을 얻기 위한 그 아이의 눈물겨운 몸부림인 것을 이해하십시오.
그 아이의 안에 쌓여있는 많은 아픔의 결과인 것을 이해하십시오.
자신을 반성하며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십시오.
아이를 충분하게 사랑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아이에게 붙은 악한 영을 쫓아내십시오.
아이는 변화될 것이며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아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변한다면 말입니다.
할렐루야.
하는 짓마다 부모의 속을 뒤집어 놓고 마음에 들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합니다.
대체로 두 아이가 있으면 한 아이는 부모에게 위로가 되며 한 아이는 부모에게 괴로움을 줍니다.
이런 아이는 부모에게 항상 야단을 맞지만 별로 변화되지 않으며 여전히 야단맞을 짓을 합니다.
반면에 사랑을 받고 부모에게 이쁜 짓을 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이쁨을 받을수록 점점 더 이쁜 짓을 합니다.
상대적으로 미움을 받는 아이는 사랑을 받는 형제에 대해서 미움이나 분노를 가지게 됩니다.
첫 번째 아이가 그럴 경우에는 동생을 귀찮게 하거나 괴롭힙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이 자체보다 부모의 책임이 더 큽니다.
그것은 편애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눈을 뜨고 주님과 깊이 연합해갈수록 부모는 자신의 기질적인 사랑이 아닌 주님의 사랑, 주님의 마음으로 자녀들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공평하고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제 막 부모가 된 30대의 초보 부모들은 아직 그러한 영적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육신적인 기질에 따라서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고 싫어하는 스타일이 있습니다.
섭리적으로 자녀들은 자녀가 둘 일 경우에 한 사람은 부모의 어두운 부분을 보여주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는 희생자의 사명입니다.
또한 한 사람은 부모의 밝은 부분을 보여주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는 위로자의 사명입니다.
자녀들은 인생의 전반부를 부모의 영적 상태를 드러내기 위한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인생의 후반부에는 자녀들은 자신의 사명과 삶을 찾아가게 되지만 어렸을 때는 부모들의 성품과 처리되지 않은 부분을 짊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부모가 깨달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부모가 충분히 깨닫고 자신을 반성하게 되면 아이는 미운 짓의 역할을 더 이상 감당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 자녀가 자꾸 미운 짓을 하고 동생이나 언니 등을 괴롭히거나 시기하거나 할 때 부모는 자신이 아이들을 편애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아이들 속에 그렇게 역사하고 있는 영들은 물론 작은 악령들이지만 그것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 크기 때문입니다.
아직 깨닫지 못하고 그런 역할을 하는 아이를 미워한다면 아이는 어쩔 수 없이 희생자의 역할을 계속 해야 합니다.
부모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악한 영을 받아들여 계속 속을 썩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부모들은 자식 때문에 속이 썩는다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희생자는 바로 자식입니다.
부모가 깨닫지 못하여 자식이 하는 짓이 밉게 느껴진다면 그는 자녀를 바르게 인도할 수 없습니다.
미움은 상호작용입니다.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미워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음란죄와 같습니다. 혼자서 음란죄를 지을 수는 없습니다.
혼자서 싸우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싸움에는 대상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이 대부분의 죄들은 상호적이며 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상대방도 우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갖는 다면 그 사람은 우리를 미워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호감의 기운이 그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움도 상호적인 것입니다.
아이가 미운 짓을 할 때 부모는 그가 미워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 아이에게도 그 부모가 이쁘게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가 이쁜 짓을 하는 것을 보고 싶다면 아이가 먼저 이쁘게 보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시각이 바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하는 짓이 보기 싫다고 마구 야단을 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아이는 더욱 더 심하게 나빠지게 될 것입니다.
야단을 쳐서 사랑스러워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꾸짖어서 아름답게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망치는 데만 효과가 있을 뿐이지 개선하는 데에는 별로 힘이 없습니다.
아이가 미운 짓을 하면 그것은 미운 짓을 시키는 영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가 밉게 보인다면 그를 밉게 보는 영이 있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내 안에 있는 영을 먼저 제거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미워하는 영이 소멸되면 바깥에 있는 아이에게 있는 미운 짓을 하는 영을 소멸하는 것이 쉽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미운 짓을 한다면 그것은 천덕꾸러기의 영입니다.
아이의 안에는 이미 억울함과 분노가 쌓여져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신보다 더 사랑을 받는 자기 형제에 대해서 분노가 쌓여져 있습니다.
대체로 첫 번째 아이는 별로 영악하지 못합니다.
첫째 아이는 대체로 어리숙하며 순합니다.
그가 태어났을 때 부모의 사랑을 얻는 것은 아주 쉬웠습니다.
그는 어떠한 무기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이는 좀 더 영악합니다.
그는 그보다 먼저 태어나 있는 형이나 언니와의 경쟁을 통해서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곧 자기의 연약함이 무기이며 그저 울기만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을 빼앗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첫 번째 아이는 당황합니다.
그는 갑자기 강력한 경쟁자를 얻었고 갑자기 부모의 사랑을 이 새로운 경쟁자에게 다 빼앗겨 버렸습니다.
진정 사랑했던 애인을 잃어버린 사람은 죽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첫 번째 아이가 경험하는 상실감은 그보다 결코 적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아이들의 느낌과 감정의 고통은 성인보다 결코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위로를 얻지 못합니다.
억울한 첫째 아이는 그 경쟁자를 공격합니다.
경쟁자는 약하기 때문에 그를 이기는 것은 쉽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곧 좌절하게 됩니다.
아주 조금 경쟁자를 공격했을 뿐인데 그를 지금까지 진정으로 사랑해주었던 부모가 그에게 매몰차게 대하면서 혼을 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가슴은 멍이 들기 시작합니다.
이제 그는 동생을 공격할 때마다 자기가 원했던 사랑이 아니라 미움을 받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에게 그것은 너무나 냉혹한 현실이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대비책이 없습니다.
첫째 아이가 동생을 공격하고 싫어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얼굴에 그늘이 지고 어눌하게 되는 것도 흔한 일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둘째 아이보다 첫째 아이가 유능하고 영리해서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아이가 부모의 기질과 비슷한 면이 있을 때입니다.
그 경우에는 둘째 아이가 첫째 아이가 가지게 되는 절망과 고통을 고스란히 가지게 됩니다.
미숙한 부모가 항상 하는 비교와 편애는 아이들의 영혼을 질식하게 만듭니다.
‘너는 왜 언니만큼 못하니?’ ‘너는 왜 형같이 못하니?’ 이런 공격들은 아이의 가슴에 깊은 상채기를 남깁니다.
자녀들에게 있어서 부모의 사랑은 모든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우주입니다.
그들의 사랑을 얻는 것은 모든 것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애정은 부모의 성향에 따라서 그들에게 주어집니다.
부모의 기질에 합당한 아이는 많은 애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합당하지 않고 맞지 않는 아이는 무시를 당하거나 꾸짖음을 당할 것을 것입니다.
이 시대는 부모들이 오직 학교 성적을 가지고 자녀들을 평가합니다.
그래서 공부를 잘 하는 아이는 사랑을 받고 그렇지 못한 아이는 무시를 당하고 꾸지람을 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이에게는 머리를 좋게 하시고 이해와 기억력이 뛰어나게 하십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좋은 목소리를 주십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예민한 음악성을 선물로 주십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손재주를 주십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언어를 잘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특별히 긍휼의 마음을 많이 부어주십니다.
그 모든 특성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사명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오직 머리가 좋은 아이만이 사랑을 받습니다.
부모의 취향에 맞는 아이만이 사랑을 받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모순이며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부모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좋은 부모가 되려고 한다면 그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 영혼이 눈을 뜨고 주님과 연합하여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사랑으로 아이들을 돌 볼 수 없다면 부모가 되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아이들에게는 많은 갈등과 상처와 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쉽게 낙담하며 절망합니다.
그리고 그 틈을 타서 악한 영들이 들어옵니다.
부모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의 파도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진 영적 전쟁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도와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싸워야 하는 영적 전쟁은 어른들에 비해서 결코 적은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치명적인 해를 줄 수 있는 육신적인 애정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신에 속한 기질적인 사랑을 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미워하는 영을 버려야 합니다.
아이를 밉게 보는 시선을 회개해야 합니다.
아이가 자신을 깨닫게 하기 위해 주님이 보내신 사신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안에 침투한 악한 영을 결박하고 쫓아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아이에게 역사하는 미운 짓을 시키는 영을 쫓아내야 합니다.
아마 부모가 충분히 깨달았다면 부모는 아이를 안고 울면서 용서를 구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러한 상태가 된다면 굳이 아이에게 역사하는 미운 짓을 하는 영들을 대적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아이도 눈물로 범벅이 되어서 그 영혼이 맑아지며 악한 영들을 끌어당길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직 영혼이 깨어나서 주님의 마음을 알며 주님의 심장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사랑만이 자녀를 바르게 키울 수 있습니다.
육신적인 애정을 버리십시오.
기질적인 개인의 취향에 속한 사랑을 버리십시오.
누구나 자기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를 즐겁게 해주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러한 기질적인 사랑을 버리지 않으면 그것은 많은 고통과 상처를 일으킵니다.
내 마음에 맞는 사랑, 차별하는 사랑은 반드시 상처를 낳습니다.
그것은 악령에게 틈을 줍니다.
주님께 속하지 않은 사랑, 주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사랑, 나의 기질에 맞는 사랑은 다 지옥에 속한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직 주님의 시선만이 모든 사람을 아름답게 보며 사랑스럽게 여기며 진정한 생명으로 가득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안아주십시오.
아이에게 있는 억울함과 미움을 치유해주십시오.
아이가 하는 미운 짓이 사랑을 얻기 위한 그 아이의 눈물겨운 몸부림인 것을 이해하십시오.
그 아이의 안에 쌓여있는 많은 아픔의 결과인 것을 이해하십시오.
자신을 반성하며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십시오.
아이를 충분하게 사랑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아이에게 붙은 악한 영을 쫓아내십시오.
아이는 변화될 것이며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아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변한다면 말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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