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주인 되시는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지으셨음은 물론 우리가 앉고 일어서는 것, 생각하고 말하는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게다가 우리의 필요와 기쁨과 두려움까지 다 아시면서 우리에 대한 관심의 끈을 조금도 늦추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그 놀라운 은혜에 감격했던 다윗이 “사람이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라고 질문을 했던 그의 마음에 우리도 감사함으로 동참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관심 정도에 머무르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라도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이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지요.
사실 이 땅의 육신의 아버지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희생합니다. 매일 그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가하면 그들의 아픔과 기쁨과 미래에 동참하기를 즐거워합니다.
그렇지만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는 육신의 아버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온갖 고생과 고초를 겪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최악의 육체적 고통을 몸소 체험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주님의 뺨을 때리고 그 얼굴에 침을 뱉고 희롱하는 정서적인 고통까지 다 겪으셨지요.
이처럼 삶 속에서 인간의 모든 고통을 체험하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고통을 속속들이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필요한 때면 언제나 우리를 위한 도움의 손길을 펴주시는 것이지요. 필요한 때에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하나님께서 바로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로 하여금 염려와 두려움 대신 소망의 삶을 확신하게 해주십니다. 자식이 아버지로부터 받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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