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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10:1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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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채수일 교수 |
참고 : | 새길교회 |
부활절 설교를 돈에 관한 본문과 관련시켜 준비한 것에 놀라실 교우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도대체 예수님의 부활을 찬양하는 부활주일이 돈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의아하게 생각하는 교우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설교준비를 위해 본문을 읽으면서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이 자신의 수난과 부활을 세 번째 예고하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은 한 부자 청년(누가에 따르면 지도자)의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선하신 선생님, 내가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부자 청년이 이미 알고 있는 십계명 가운데 다섯째 계명에서부터 여덟째 계명까지를 나열합니다. 그러자 부자 청년은 이 모든 계명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를 눈여겨보고 사랑스럽게 여기시며 말씀합니다: "너에게는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러자 부자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가고,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합니다. 놀라 흥분한 제자들이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자, 예수님은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함으로써 이야기는 끝납니다.
예수님은 부자와 중산층이 영원한 윤리적 갈등과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권능만 믿으면 무엇이든지 가능하다는 믿음의 능력을 과시하게 위해 그랬을까요? 예수님이 부자 청년의 부족한 윤리적 행동을 책망하거나 그의 믿음 없음을 비난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는 예수님의 의도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예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는 명령을 윤리적으로 일반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부자 청년을 통해 우리도 돈에 대한 사랑과 애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현실, 곧 우리와 돈과의 현실적 관계를 드러냈을 뿐입니다. 돈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약할 수 있는지를 예수님은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한다는 현실을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말씀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돈의 현실과 세력을 과소평가하지도 또 과대평가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영생' 곧 부활에 대한 종교적, 신학적 질문에 대해 왜 예수님은 '돈' 문제로 응답했느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부활에 대한 논쟁은 주로 '몸의 부활이냐 육의 부활이냐', '부활이냐 영혼 불멸이냐', '예수의 부활이냐 죽은 자들의 종말론적 부활이냐' 등 대단히 종교적이고 신학적 질문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자신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세 번씩이나 예고하는 자리 어디에서도 이런 종교적이고 신학적인 질문에 부활을 연결시켜 이해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영생에 대한 질문, 신학적이고 종교적인 질문이 현실의 문제, 특히 물질과 돈의 문제는 단순히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신학적 문제라는 것입니다.
돈은 사람이 부리는 교환수단일 뿐, 돈이 신일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과 맘몬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6:24, 눅16:13)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굳이 '돈'이라는 일상적 단어를 쓰지 않고 예수께서 '맘몬'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것도 돈이 가지는 신성 때문이었습니다. 더욱이 맘몬을 하나님과 병렬시킴으로써 예수님은 돈의 권세를 과소평가하지 않았습니다. 돈은 사람의 주인으로 섬김을 받으며 사람 위에 군림하는 권세입니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돈걱정 없어 보이는 재벌도, 자발적 금욕과 절제를 실천하는 수도승도 돈으로부터 자유하지 않습니다. 돈으로부터의 자유는 자기 기만과 위선으로 위장될 수는 있지만 현실이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까닭은 돈이 윤리의 문제만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돈의 문제를 윤리적 차원에서 다루지 않고 영적인 관점에서 다룹니다. "돈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마6:21), "어느 한편을 사랑하든지 미워하든지 해야한다"(눅16:13)는 예수님 말씀이나, "돈에 대한 사랑이 모든 악의 뿌리이며, 돈에 대한 사랑에 빠진 사람은 믿음을 잃는다"(딤전6:10)는 바울의 말씀은 돈의 문제가 윤리적 교훈의 문제가 아니라 영의 문제, 곧 하나님과 같은 권세와의 관계의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사람이 돈을 쓴다는 것은 착각입니다. 오히려 돈이 사람을 부리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돈 때문에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고, 돈 때문에 사람은 다른 사람의 목숨을 해치기도 합니다. 돈 때문에 사람은 우정과 인륜을 서슴없이 버립니다. 돈은 재판관의 양심과 예언자의 예언도 바꿉니다. 세계의 어디에서나 돈 때문에 약탈과 살인, 구타와 고문, 전쟁, 강제 투옥과 굶주림 등이 난무하고 가정이 깨지고 종교적 믿음과 윤리적 이상이 유린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돈은 다른 얼굴도 가지고 있습니다. 돈은 천박한 사람도 숭고하게 보이게 합니다. 돈만 있으면 지식은 물론 학위까지도 사서 자신을 품위 있게 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돈은 사람을 부지런하고 의젓하고 대범하게 만듭니다. 돈은 안 되는 일도 되게 합니다. 감옥 생활을 호텔생활로 바꾸기도 하고 또 감옥에서 풀려나기도 합니다. 돈은 사람의 목숨도 구해냅니다. 돈만 있으면 다른 사람의 장기를 사서 이식 받을 수도 있습니다. 돈은 새로운 우정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돈은 독재자도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있어야 통일 운동도, 평화 운동도, 민주화 운동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 돈은 심술사납고 변덕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극적이기도 하고 유혹적이기도 합니다. 돈은 천사이자 악마이며, 천국이자 지옥이며, 하나님이자 우상으로 이 돈 때문에 눈물을 흘려본 사람은 누구나 돈이 가진 이 두 얼굴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돈의 두 얼굴을 인정하는 사람도 돈이 신이라고 한다면 머리를 흔들지 모릅니다. '돈은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또 목적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돈에 예속되고 돈은 우상이 될 것입니다. 기독교는 우상숭배를 금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돈과 하나님을 혼돈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을 현실의 삶 안에서 지키기는 더 어려운 것도 진실입니다. 돈이 없어서 진학이나 자녀 교육을 포기해야 했던 사람, 돈이 없어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도 지키지 못해 본 사람, 돈이 없어서 죽어 가는 가족과 함께 병원에서 문전박대를 받아본 사람, 월세 돈이 없어서 쫓겨나 본 사람, 돈이 없어서 굶어 본 사람은 돈이 하나님이 되는 순간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과의 대화에서 영생, 곧 부활에 대한 신학적이고 종교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가난, 가난한 사람, 돈 등 현실의 문제와 관계시켜 찾습니다. 그렇습니다. 종교의 문제는 현실의 문제를 떠나 대답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종교적이고 형이상학적이고 신학적인 질문일지라도 대답은 현실에서부터 모색되어야 합니다. 부활신앙이란 무엇입니까? 죽음의 세력에서 깨어 일어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도 죽음의 세력에서 예수님과 함께 깨어 일어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아직도 죽음의 세력 아래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함께 일으켜 세우는 하나님 나라 운동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나눔이 그리스도인에게 요청되는 윤리적 덕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나눔은 하나님 나라운동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절망적 상황에 처한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주며 그것은 우리가 가진 돈을 나눌 때 가능합니다. 오늘 가난한 사람들이 처한 심각한 외채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무조건적인 부채의 탕감입니다. 제 3천년을 시작하는 세기적 전환기의 진입로에서 역사를 인류화해의 세기로 만드는 길은 채권국들이 부채를 조건 없이 탕감하고 새로운 질서 위에 세계를 다시 세우는 길밖에 없습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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