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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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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강기철 목사 |
참고 : | 새길교회 |
이스라엘 사람들은 “샬롬” 즉 “평화가 있을 지어다”라고 인사를 나눈답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를 띄우면서 늘 서두에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라는 인사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우리 삶에 있어 가장 큰 소망은 평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성탄절을 맞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어느 왕이 “평화”를 가장 잘 그린 화가에게 상을 주기로 했습니다. 많은 화가가 응모하였지만 정작 그의 마음에 든 것은 단 두 작품 뿐 이었습니다. 그 중 하나를 수상작으로 선정해야 했습니다.
하나는 고요한 호수를 그린 것이었습니다. 그 호수는 정말 거울같이 맑습니다. 호수 주위를 아름다운 산 봉오리가 평화롭게 에워쌌고, 파란 하늘에는 흰색 새털구름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이 그림이야말로 정말 완전한 평화를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헐벗은 바위산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험한 하늘에 번개가 치고 폭우가 세차게 쏟아집니다. 산 아래는 폭포가 사납게 물보라를 치며 요동합니다. 그 어디에도 평화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유심히 살피던 왕은 폭포 뒤 바위틈 사이에 자라고 있는 작은 나무 한그루를 발견했습니다. 그 보잘 것 없는 숲에 어미 새 한 마리가 가만히 둥지를 틀고 있었습니다.
왕은 이 그림을 수상작으로 뽑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평화 란 소란스럽지 않다거나, 험난하지 않다거나, 고통이 없다거나 하는 상황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을 진정한 평화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믿음의 사도 스데반이 받아들인 진정한 평화의 모습을 봅니다. 그는 자기에게 돌발매질 하는 폭도들 앞에서도 평온을 잃지 않고 “주 예수님, 내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지우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외치며 눈을 감습니다. 어떠한 위협과 핍박 중에도 그는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절대적인 평화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 같은 믿음을 따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에덴동산으로부터 쫓겨나면서 이미 우리는 평화를 잃고 험하고 죄 많은 세상에 버려진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다시 보내셔서 이 사납고 험한 세상에서 저희들이 영혼의 안식을 찾도록 둥지를 틀어 주셨습니다. 말구유에 가장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 철저하게 자기희생과 나눔의 삶으로 사신 예수, 십자가에 매달려 처절한 고통과 모멸을 이겨내고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예수. 예수님은 이렇게 태어나셨고, 사셨고, 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겸손, 희생과 나눔, 그리고 순종하는 삶이 우리가 하나님 이 주신 평화를 받아드리는 길임을 몸소 가르치셨습니다.
마음의 평화 없이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세상이 주는 그 어떤 훌륭한 조건도 우리의 진정한 행복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불행해 지는 것을 봅니다. 無所不爲의 권력들의 종말이 어떠합니까? 보통사람들이 갖지 못하는 그 이상의 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파멸의 늪으로 추락하는 불행도 봅니다. 그와는 달리 우리는 정말 행복한 사람들의 삶을 보고 또 듣습니다. 그들이 어떠한 사람입니까? 한결같이 그들은 세상적인 조건이 잘 갖추어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저 이 세상에 자기가 가진 그 무엇을 내어 놓는 기쁨, 자기희생과 나눔의 삶을 살아가려 애쓰는 사람들 입니다. 이들이야말로 이 사납고 험한 세상에 조그마한 평화의 둥지를 트는 어미 새 예수들입니다. 가만히 보면 세상의 조건들이 우리 마음의 평화를 뺏습니다. 돈, 명예, 지위, 권력이 우리의 탐욕을 부르고, 교만을 치켜세우고, 서로 시기하게 하고, 갈등으로 나뉘어 싸우게 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평화를 깹니다. 우리를 근심과 불안에 있게 합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평화는 주께서 기뻐하는 사람에게 주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주께서 기뻐하는 삶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나’를 낮추는 겸손의 삶이요, ‘우리’로 살아가는 나눔의 삶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자기를 내어 놓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주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다 가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평화에 이를 수 있는가를 몸소 가르치신 분입니다. 예수 따르미의 삶을 통하여 이 험하고 사나운 세상 가운데 여러분이 하나님의 진정한 평화를 받아드리는 기쁜 성탄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
어느 왕이 “평화”를 가장 잘 그린 화가에게 상을 주기로 했습니다. 많은 화가가 응모하였지만 정작 그의 마음에 든 것은 단 두 작품 뿐 이었습니다. 그 중 하나를 수상작으로 선정해야 했습니다.
하나는 고요한 호수를 그린 것이었습니다. 그 호수는 정말 거울같이 맑습니다. 호수 주위를 아름다운 산 봉오리가 평화롭게 에워쌌고, 파란 하늘에는 흰색 새털구름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이 그림이야말로 정말 완전한 평화를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헐벗은 바위산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험한 하늘에 번개가 치고 폭우가 세차게 쏟아집니다. 산 아래는 폭포가 사납게 물보라를 치며 요동합니다. 그 어디에도 평화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유심히 살피던 왕은 폭포 뒤 바위틈 사이에 자라고 있는 작은 나무 한그루를 발견했습니다. 그 보잘 것 없는 숲에 어미 새 한 마리가 가만히 둥지를 틀고 있었습니다.
왕은 이 그림을 수상작으로 뽑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평화 란 소란스럽지 않다거나, 험난하지 않다거나, 고통이 없다거나 하는 상황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을 진정한 평화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믿음의 사도 스데반이 받아들인 진정한 평화의 모습을 봅니다. 그는 자기에게 돌발매질 하는 폭도들 앞에서도 평온을 잃지 않고 “주 예수님, 내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지우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외치며 눈을 감습니다. 어떠한 위협과 핍박 중에도 그는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절대적인 평화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 같은 믿음을 따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에덴동산으로부터 쫓겨나면서 이미 우리는 평화를 잃고 험하고 죄 많은 세상에 버려진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다시 보내셔서 이 사납고 험한 세상에서 저희들이 영혼의 안식을 찾도록 둥지를 틀어 주셨습니다. 말구유에 가장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 철저하게 자기희생과 나눔의 삶으로 사신 예수, 십자가에 매달려 처절한 고통과 모멸을 이겨내고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예수. 예수님은 이렇게 태어나셨고, 사셨고, 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겸손, 희생과 나눔, 그리고 순종하는 삶이 우리가 하나님 이 주신 평화를 받아드리는 길임을 몸소 가르치셨습니다.
마음의 평화 없이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세상이 주는 그 어떤 훌륭한 조건도 우리의 진정한 행복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불행해 지는 것을 봅니다. 無所不爲의 권력들의 종말이 어떠합니까? 보통사람들이 갖지 못하는 그 이상의 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파멸의 늪으로 추락하는 불행도 봅니다. 그와는 달리 우리는 정말 행복한 사람들의 삶을 보고 또 듣습니다. 그들이 어떠한 사람입니까? 한결같이 그들은 세상적인 조건이 잘 갖추어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저 이 세상에 자기가 가진 그 무엇을 내어 놓는 기쁨, 자기희생과 나눔의 삶을 살아가려 애쓰는 사람들 입니다. 이들이야말로 이 사납고 험한 세상에 조그마한 평화의 둥지를 트는 어미 새 예수들입니다. 가만히 보면 세상의 조건들이 우리 마음의 평화를 뺏습니다. 돈, 명예, 지위, 권력이 우리의 탐욕을 부르고, 교만을 치켜세우고, 서로 시기하게 하고, 갈등으로 나뉘어 싸우게 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평화를 깹니다. 우리를 근심과 불안에 있게 합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평화는 주께서 기뻐하는 사람에게 주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주께서 기뻐하는 삶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나’를 낮추는 겸손의 삶이요, ‘우리’로 살아가는 나눔의 삶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자기를 내어 놓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주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다 가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평화에 이를 수 있는가를 몸소 가르치신 분입니다. 예수 따르미의 삶을 통하여 이 험하고 사나운 세상 가운데 여러분이 하나님의 진정한 평화를 받아드리는 기쁜 성탄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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