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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자료(8)
국제협력과 우리의 자세
20세기는 제1·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세계적 혼란과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한 대변혁의 세월이었다.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최근의 냉전 시대까지는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하는 정치가 국제 사회를 지배하였고, 특정한 정치·군사·경제적 이해에 따라 국가간의 협력이 이루어져 왔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지구 건너편의 먼 나라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 냉전이 종식되고 난 후,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경제적 논리에 의해 국제 협력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났고, 세계는 급속한 교통·통신의 발달로 지구촌 화되어 가고 있으며, 금융·생산·소비의 모든 경제 부문에 걸쳐 국경 없는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울러 자유 경쟁을 저해하는 장애가 완화됨으로써, 국가를 비롯한 모든 경제 주체가 무한 경쟁에 대비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또한, 세계의 여러 나라는 자연 환경이 다르고 문화·역사적 배경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적 상황도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이해 관계를 같이하는 일정한 지역의 국가들끼리 정치, 군사, 경제,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상호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현재 세계에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군, 개발 도상 국가군 등이 각자의 협력 기구들을 구성하고 있으며, 각 지역에는 지역 공동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지역별 협력 기구도 많이 결성되어 있다.
1990년대의 국제화 시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지역주의의 확산, 세계 환경 보전 운동의 본격화,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을 통한 세계 무역 질서의 재편성과 선진국간의 정책 협력 강화, 신흥 개발 도상국의 부상 등이다.
광복 이후 우리 나라는 국제 냉전에 휘말려 미·일 중심의 외교와 경제 협력을 펴왔으며, 세계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것은 바로 ’88서울 올림픽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우리 나라와 세계 각국간의 경제적·문화적 교류는 급증하였고, 더욱이 중국·러시아를 비롯한 구사회주의권 국가들과도 협력이 이루어짐으로써 한국인이 발디딜 수 없는 나라는 이제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국제화 시대의 치열한 대외 경쟁을 극복하고 우리 나라가 선진 경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경제의 국제화, 개방화를 통하여 국내 경쟁력을 강화하고, 안에서 길러진 경쟁력을 바탕으로 하여 세계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해야 한다.
과거 개발 과정에서는 낮은 임금과 개발 의욕을 바탕으로 다소의 비능률적 요소가 있었더라도 고도 성장의 추진이 가능하였으나, 선진 경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모든 분야의 비능률이 제거되어야 한다. 즉, 앞으로의 우리 경제는 국제화, 개방화를 통하여 국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공정한 경쟁을 통해 국제 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선진화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함께 우루과이라운드로 통칭되는 새로운 국제 경제 질서에도 적극 참여하고, 나아가 지구 환경 보전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부응하는 국내 산업 및 환경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학 생 의 날
( 11 월 3 일 )
1929년 11월 3일 광주 학생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 학생의 날이다. 당시 이 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동기 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광주 학생 운동은 광주 - 나주간을 기차 통학을 하던 한국 여학생에게 일본 학생들이 모욕적인 언동을 함으로써 발단되었다. 일제 치하에서의 울분이 일시에 폭발, 한국 남학생들과 일본학생들이 충돌을 일으키게 되었고, 이 충돌은 11월 3일에 이르러 시가전 양상을 띄고 확산되었다.
그런데 일본 경찰에서는 책임을 일방적으로 한국 학생에게 지워서 관련된 학생들을 검거하였다. 이에 광주의 학생들은 총 궐기하여 검거된 학생들의 석방과 아울러 민족 차별의 철폐, 약소 민족의 해방, 제국주의의 타도 등을 외치며 시위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시위 운동은 광주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1930년까지에 걸쳐서 국내 각지에 파급되어 시위 운동에 참가한 학교가 194개교, 참가한 학생은 54,000명에 달하였다. 이로 인하여 퇴학 처분을 받은 학생은 582명, 무기 정학을 당한 학생은 23,330명, 피검자는 1,642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신간회도 조사단을 파견하고 민중 대회를 계획하는 등 학생들의 운동에 동조하였다.
이 광주 학생 운동은 일제 치하에서는 3. 1운동 이후 최대의 민족 운동이었다.
이 날을 맞아 우리들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다같이 생각해 봅시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최대한도로 활용하여 실력을 기르자』
☞ 언제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말라(나의 시간)
☞ 언제나 건강하리라고 생각하지 말라(나의 건강)
☞ 언제나 오리라고 생각하지 말라(나의 기회)
유 종 의 미
이제 금년의 종말을 알리는 종소리가 우리의 귓전에 다가오고 더 이상 넘길 수도 없는 한 장남은 달력이 펄럭인다. 또 다시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이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마음으로 묵은해를 냉정히 되돌아보고 대망의 새해를 맞을 일이다.
한 해를 마지막 보내는 시점에 이르러 우리의 성장과 노력이 한층 새로워지기만 한다. 자기주도학습의 자발적 정착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 온 한 해였다. 모든 것은 공들인 만큼 거둔다고 한다. 근면 성실하게 열심히 노력한 사람은 그만큼 성적이나 행동이 많이 향상되어 부끄러움 없는 세모(歲暮)의 한 해가 될 것이다.
옛 성현들의 말씀에 “오늘의 나를 발견하라. 그러면 반드시 앞날에 영광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세모(歲暮)의 순간에 나를 똑똑히 보아 새로이 발견하는 중요한 순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중요한 미래를 위해서는 항상 나를 채찍질할 때 ‘조금만 더 노력하자. 조금만 더 노력하면 훌륭한 학생이 될 것이며, 앞날에 축복 받는 젊은이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 속에서 꾸준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자세이어야 한다.
12월의 한 장남은 달력 속에 나의 현주소를 찾고 각오를 새로이 하는 연말이 되자. 유종의 미란 나의 지난날을 냉정히 반성하고 다가올 새해를 위한 힘찬 발걸음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나는 이 해에 얼마만큼 성장해 왔는가. 자문자답(自問自答)의 기회를 가져보자.
『기록하는 습관을 몸에 익혀라』
☞ 아인쉬타인 : 침대 옆에 항상 종이와 연필을 준비
☞ 중요한 것, 꼭 알아야 할 것, 사람의 이름, 전화번호, 약속 시간, 유명한 말, 꼭 필요한 지식, 좋은 아이디어 등을 항상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자.
뜻 있는 방학 생활
이제 한 학년이 거의 끝나 가는 시점. 겨울 방학에 들어간다. 희망의 새 봄에 심었던 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할 때이다. 그 동안 학습한 바를 방학을 통해 자신이 재단하고 요리하는 절호의 기회이다. 자기 발전의 시간이 되어야한다. 고르게 내리는 태양의 은총도 스스로를 더 많이 키워온 나무가 더욱 풍부하게 누린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이다. 정지는 제자리걸음이요. 오히려 퇴보를 의미한다. 계획하고 실천하고 생산적 의미의 부지런한 생활을 한 사람은 축복의 앞날이 기다린다. 이 기나긴 겨울방학을 계획도 없이 허송한다면 그 공허함은 물론 인생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계획과 결심을 가지고 출발하는 뜻있는 방학이 되게 하자.
공부, 운동, 기능 함양 등 무엇을 하든 첫째는 열심히 해야겠다. 그러나 수확부터 신경을 쓰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해보지도 않고 좌절하거나 노력하지 않고 결실을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노력한 만큼만 요구하는 사회가 양심 사회이다. 그 이상을 구하는 데서 모든 혼란과 괴로움이 시작된다. 둘째는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이 학생의 본분에서 벗어나는 행동이여서는 안 된다. 사고없는 건강한 일이어야만 한다. 계획이 없는 휴식은 시간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한다.
노력은 인생의 줄거움을 가져다준다. 무엇인가 자기 발전을 위한 참다운 방학생활이 되자. 그리고 건강한 얼굴로 새 학년도를 맞이하자.
인 내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인내란 어려움이나 괴로움을 참고 견디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과연 얼마나 참고 견디는 힘이 있을까요? 너무나 참고 견디는 힘이 미약한 것 같습니다. 성적이 떨어 졌다고 쉽게 목숨을 끊어 버리는 학생, 아버지에게 꾸중을 들었다고 집을 나가버리는 학생 등등, 자신의 마음을 작은 불쾌감 때문에 내 팽개쳐 버리는 청소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점점 인내하는 힘이 결여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참고 견디는 힘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란 늘 뜻대로 되는 일만 존재하는 것아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참고 견디는 힘이 없다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렵고 힘든 일마다 좌절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되는지 자명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인류와 세상을 위해서 그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남달리 인내심이 강했으며 특별히 노력을 기울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이 세상에서 아무런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노력이 없이 이루어 진 듯이 보이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들대로의 노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뜻있는 일은 피나는 노력이요 그 결정체임을 알아야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 저는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은 말 한마디로 훈화를 마칠 까합니다.
“삶을 에이는 듯한 춥고 모진 겨울을 견딜 수 없는 꽃나무는 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 못한다고.”
미 친 리 더
“윗물 아랫물이 다 맑아야 하는 마음”이라는 표어가 말해 주듯이 누가 누구를 보고 맑아져야 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 초관리의 기본정신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것은 윗물 맑은 것을 보고 나서야 아랫물이 맑겠다는 것이요, “내가 아직 맑지 않은 것은 너 때문”이라는 핑계를 밑에 깔고 있는 것이다.
남을 볼 새가 없이 우선 나부터 맑아져야 한다. 하지만 우선은 윗사람이 저질러 놓고 보아야 한다. 무슨 일에든 시작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작하는 사람은 범상하지 않은 짓을 저질러야 한다. 혁신이란 지금까지의 익숙한 방식을 엎어 버리고 낯선 일을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거부반응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사람은 하던 대로하고 싶어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리더는 일단 미치고 보아야 한다. 마음속에 한 점이라도 미적거리거나 쑥스러워 하는 구석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맨 앞에 나서서 가시밭길을 뚫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삼국지에 보면 위나라 장군 등애가 촉나라를 치러 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촉나라의 서울인 성도로 들어가려면 중국의 <그랜드 캐년>이라고 불리는 검각을 지나지 않으면 안 된다. 검각이란 칼끝같이 뾰족뾰족한 봉우리와 밑이 안 보이는 골짜기로 이루어진 험하디 험한 협곡이다.
이곳을 넘어 가자니 병사들은 기가 막힌 나머지 낭떠러지 아래를 보면서 한숨만 쉬고 있었다. 이때 등애는 앞으로 썩 나서서 담요 한 장을 몸에 두르고 “내가 먼저 가겠다!”는 외침과 함께 돌덩어리처럼 데굴데굴 굴렀다.
대장이 이러니 부하들도 머뭇거리고만 있을 수 없었다. 담요가 있는 병사는 그것을 감고 구르고 밧줄이 있는 병사는 밧줄에 몸을 매어 절벽 아래로 흔들흔들 내려가니 이 억척스러운 군대는 기어코 하늘 오르기 보다 더 어렵다는 검각을 넘고 말았던 것이다.
등애라고 낭떠러지가 안 무서웠을까? 담요를 두르고 한 발짝 썩 나섰을 때에 구름이 아른거리는 골짜기 아래를 보고 현기증이 안 일어났을 리가 없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굴러 내렸다. 내가 주저해서야 이 많은 병사들의 마음을 어떻게 설복할 것인가? 나는 내 한 몸이 아닌 것이다.
리더는 자기 한 몸이 아니다. 모두가 주시하고 있는 몸인 것이다. 내가 주저해서야, 내가 망설여서야 전체가 따라 줄 리가 없다. 내가 확신이 없는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확신시킬 수 있을 리가 없다. 내가 몸 바치지 않고서 다른 사람을 몸 바치게 할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리더는 미쳐야 한다. 그러나 바른 일에 미쳐야 한다.
내가 나를 아는 것
아는 것이 많으면 인간은 자만하기가 쉽다. 아는 것만 믿고 설치다 보면 무슨 덫에나 걸리게 마련이다. 사람이 무엇을 안다고 해 보았자 한 줌의 모래알에도 못 미친다. 그러나 인간은 지식을 좀 쌓았다 싶으면 고집스런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려고 한다. 그래서 편견도 생기고 독단도 생기고 시시비비가 일어난다. 이러한 병들을 고치는 데 무슨 약이 필요할까? 바로 지혜라는 것이다. 지식은 사물을 알게 하지만 지혜는 먼저 내가 나를 알게 한다. 지혜는 스스로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치수를 읽게 하지만 지식은 스스로를 과신하게 한다. 아는 것이 병이란 말이 여기서 비롯된다. 그러나 지혜는 나를 분별하게 하여 설자리를 알게 한다.
공자는 수분(守分)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분수를 지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공자의 분별은 시비를 가리기 위한 분별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느껴보고 생각할 것이며 이해하고 판단할 것이란 점에서 수분인 것이다. 이러한 수분은 아주 자연스럽게 내가 나를 알게도 하고 돌이켜보게도 하고 반성해 보게도 한다. 되돌아볼 줄을 안다는 것은 옛것을 돌이켜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옛것이 선한 것이면 택하고 악한 것이면 버릴 줄 알 때 사람은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된다. 우쭐해 하는 것보다 뉘우쳐 보는 경우가 사람을 훨씬 더 여물게 하는 법이다. 이러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겸허하며 스스로 정직하다. 공자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마음을 읽어보게 한다.
子曰 我非生而知之者 好古 敏以求之者
나라고 해서 나면서부터 저절로 아는 사람은 아니다.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찾아 배워 알게 된 사람일뿐이다. 이렇게 공자는 살폈다.
뛰어난 지혜는 ‘만족을 아는’ 데서 생겨난다.
하나님이 두 사람의 남자에게 토지를 내주기로 했다. “오늘 하루, 너희들이 발로 걸어간 범위 안의 토지는 모두 너희들의 것이다. 다만, 해가 질 때까지는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그는 서쪽으로, 그미는 동쪽으로 향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지점까지 걸어가더니 왼쪽으로 향하다가 마지막에는 북쪽으로 향해 걸어서 원래의 곳으로 해가 조금 지기 전에 돌아 왔다.
동쪽으로 향한 그미도 거의 그와 똑같은 행동을 했으나, 조금이라도 넓은 토지를 소유하려고 너무 멀리 간 탓으로 약속한 일몰 때까지 돌아오기가 힘들었다. 허겁지겁 달려서 간신히 제 시간에 돌아오긴 했으나 너무 힘들어 죽고 말았다.
어느 쪽이 좋은 생활 방식인지는 말할 것도 없다. 인간에게는 욕망이 있다. 욕망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도가 지나치면 자기 자신을 파멸시킬지도 모른다. 지금, 지구에서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우리의 무한한 욕망이 유한한 지구의 자원을 모조리 써 버리려고 하는데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more and more'사상은 얼마 전까지는 좋은 것이었다. ‘좀 더 좀 더’하고 바랐기 때문에 인류의 문명은 발전되어 왔다. 자동차가 이제 막 발명되어 나왔을 때, 인간이 이동하는 속도는 이젠 이 정도면 된다고 모든 사람들이 생각했다면,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나 비행기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적절하고 어디서부터가 지나친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다. 분명히 말해서 구체적으로 나타낼 척도는 없다. 어떤 사람은 고속도로의 제한 속도의 정도가 적당하다고 한다. 하지만 좀더 빠른 탈것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어디선가 선을 긋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선긋기가 아니다. 마음으로 만족하게 여기는 일이다.
‘만족을 안다’는 것은 ‘이젠 별로 필요 없다’는 게 아니고, 자기의 현재의 상황을 긍정하는 일이다. 그런 다음에 희망하는 것은 상관없다. 마음속으로 만족하게 여기고, ‘고맙다’고 생각하는 마음속에서는 뛰어난 지혜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석유 자원은 언젠가 고갈할 것이다. 그 때, ‘석유야 고맙다’고 하는 마음을 갖느냐. ‘숨겨 두었다가 나 혼자서만 오래도록 쓰자’고 하느냐에 따라 사태는 완전히 달라진다. 후자의 경우에는 분쟁의 원인이 될 것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다음의 대책을 위한 뛰어난 지혜를 결집할 수 있다. 인간의 지혜가 결집되면 어떤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만족’을 알면 길은 저절로 열리게 된다.
수수하고 평범한 인생이 멋지다
인간은 누구나 욕심이 많아서, 지금 당장 거기에 없는 것을 갖고 싶어한다. 욕망을 갖는 것은 인간이 의욕적으로 사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므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 불만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마이너스 작용밖에 하지 않는다. 그러한 태도로 살면 인생은 조금도 즐거워지지 않는다. 아무리 출세가 늦더라도, 아무리 월급이 적더라도 가족 전원을 굶어 죽게 하지 않는 세대주가 훌륭한 가장이다. 먼저 그 점을 똑바로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회남자(淮南子)』는 ‘복은 재앙이 없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고 가르친다.
불만이나 만족도 생각하는 습관의 문제이다. 그것은 단순히 습관이므로 습관을 바꾸면 현재의 상황도 완전히 바뀌고 만다. 불만이 많은 사람은 사고 방식이 마이너스 사고의 습관이 되어있을 뿐이다. 플러스 사고를 하면 그 순간부터 만족으로 변한다.
신체가 건강하고 모든 기능이 잘 되어갈 때 새삼스럽게 위나 심장의 존재를 의식하는 일은 없다. 모든 일에 만족하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여서, 특별히 자기가 은혜를 입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데 일단 위장이 욱신욱신 아프기 시작하면 그것에 신경이 쓰여서 견딜 수 없다. 인간은 좋은 일에는 둔감하고 나쁜 일에는 민감하다. 마이너스 사고는 내버려둬도 할 수 있다. 플러스 사고는 의식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인생을 재미없다고 느끼는 것은 색안경을 끼고 경치를 바라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무엇을 보더라도 그 안경의 색깔에 좌우되고 만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은 자기가 그러한 안경을 끼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플러스 사고의 안경으로 바꿔 끼면 되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즐겁다고 생각하는 것이 플러스 사고의 안경을 끼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그렇게 보인다. 수수하고 평범한 인생이야말로 자연에 가장 잘 맞는 인생이다.
자연에 맞는 인생 이상으로 멋진 인생은 없다.
입지적인 삶에 대하여
배는 언제나 행선지가 있어야 닿을 올리고 항해를 합니다.
전쟁에 출전하는 용사는 승리의 목표를 의식하고 전장에 나가게 됩니다. 우리 학생들도 매일같이 등교하는 것은 먼 장래에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학교에 등교합니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다르게 목적의식이 있는 삶을 생활하는 것이 독특합니다. 목적의식 없이 생활하는 사람은 인생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볼 때 인생이란 하나의 자기 경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경영을 잘해야 많은 이익과 회사의 발전이 있듯이 학생들도 자신이 자신의 경영을 잘해야 훌륭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계획만 잘 세웠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계획을 위해서 부단히 실천하여야 합니다. 속담에 ????구슬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목표를 실천하는데는 많은 노력과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고통이 따를 때 중도에서 포기하기 쉽습니다. 성현들의 삶을 볼 때 모두가 이 어려운 과정을 지나서 훌륭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인생 항로가 영구히 방황하지 않기 위해서는 목표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꿋꿋한 의지로 실천하고 또 실천해야 합니다.
불굴의 의지를 지녀야 합니다.
『내가 자유라고 일컫는 것은 오직 하나, 즉 秩序를 동반한 자유다. 질서 및 道義와 같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질서 및 道義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자유만 자유라고 일컫는다』 - 에드먼드 버어크 -
☞ 남의 자유를 억압하고 남을 노예로 삼아서는 안됨
☞ 무질서나 방종이나 無政府상태로 전락해도 안됨
☞ 도의를 무시한 자유 ⇒ 타락과 부패 위에 피는 자유가 되어 惡의 꽃이 됨
☞ 내가 남의 자유를 짓밟을 때 남도 나의 자유를 유린함
☞ 자유의 나무는 가장 가꾸기 어려운 나무⇒지혜와 자제와 용기가 필요
☞ 권력의 침해에서 우리의 자유를 지켜야 하는 동시에 우리의 자유가 무질서와 방종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道德이나 正義나 人道를 짓밟지 않도록 조심
성 실 과 노 력
조선 선조때 양사언은 성실한 정신과 꾸준한 노력만이 성공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이 한편의 시만 보더라도 그의 성실한 정신과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정성이란 ‘ 참되어 거짓이 없다’는 뜻으로 곧 사람이 사람됨에 있어 중요한 요건을 말하는 것으로 성실한 사람이란 정성스럽고 참되어 거짓이 없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우리 사회구조가 복잡 다양하여짐에 따라 모든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생활 방식이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근본 요건을 잃고 날로 어지러워지고 난폭하여 가는 것을 우리는 흔히 보게 된다. 목적달성을 위하여서는 정성을 다하는 꾸준한 노력보다는 안일과 요행을 바라면서 불로소득 하려는 거짓된 생활을 일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성실이라고 하는 것은 오직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곧, 꾸준한 노력만이 성실한 사람을 만들고 성실한 사람일수록 자기 생활에 자신과 안정을 갖게 되며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발전적인 전진을 기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옛말에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다. 성실치 못한 사람은 항상 거짓을 앞세워 공연히 잘난 체, 아는 체, 있는 체하여 과장된 허세를 부림으로써 그것을 자랑으로 삼고 즐긴다.
그러나 인간사란 매사 사필귀정이다. 사리란 반드시 올바른 이치로 돌아가는 것이 천리며 일시적인 거짓이나 허세가 결코 진리가 되고 바른길이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 원리원칙만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변함이 없는 것이다.
옛날 중국의 주자는, 성실은 오상 즉, 인, 의, 예, 지, 신의 근본이며 백행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옛 성인은 사람을 교육시키는 데 오상부터 하고 여력이 있으면 학문을 가르쳤다고 한다. 즉, 인간 교육을 가장 중시했다는 말이다. 제아무리 지적 능력이 뛰어나고 재주가 있더라도 사람으로서의 근본적인 요건을 구비치 않고는 사람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불굴의 정신으로 꾸준한 노력을 쏟아 쌓아 올리는 성실한 생활, 그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참된 인간의 길인 것이다.
어느 사자 왕의 이야기
옛날, 어느 깊은 산 속 바위 굴 속에 한 마리의 사자가 살고 있었다. 이 사자는 늘 “나는 모든 짐승 중의 왕이다. 그러므로 모든 짐승을 거느려 지킬 힘이 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사명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고 스스로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사자왕이 살고 있는 이웃에는 원숭이 부부와 새끼 두 마리가 살고 있어 사자와 원숭이는 잘 아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원숭이 부부는 사자를 찾아와서
“사자왕이여, 당신은 늘 모든 짐승을 보호해 준다고 하셨는데, 만약 그 말이 진실이라면 우리가 나가 먹을 것을 구해 올 때까지 이 새끼 두 마리를 좀 보호해 주십시오.” 하니 “그건 어려울 게 없지. 안심하고 갔다 오게.” 하고 사자 왕은 쾌히 승낙을 하였다. 그래서 엄마 원숭이는 새끼들을 사자 왕의 굴속에 맡겨두고는 이산 저산으로 먹을 것을 찾아 나섰고 사자 왕은 원숭이 새끼를 제 새끼처럼 조심해서 잘 돌보았다. 그런후 사오 일이 지난 뒤였다. 사자 왕은 새끼 원숭이를 데리고 굴 밖으로 나가 햇볕을 쬐며 놀다가 그만 몸이 노곤하여 바위에 큰 몸을 눕히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 때 마침 하늘을 날던 한 마리 독수리가 사자 왕이 깊이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새끼 원숭이를 확 움켜쥐고는 몹시 험하고 높은 바위 위로 날아가 버렸다. 얼마 후 사자 왕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보니 새끼 원숭이가 보이질 않았다. 어디로 놀러 갔거나 나무에 올라갔겠지 하고 둘레를 살펴보았지만 그 근처엔 새끼 원숭이가 그림자도 보이질 않았다. 정신이 퍼뜩 난 사자 왕은 새끼 원숭이를 잃어 버렸다가는 맡은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되어 이거 큰일 났구나하고 다시 주위를 살펴보니 원숭이 새끼가 독수리에게 잡혀 높은 바위 위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걱정을 하였으나 독수리 밥이 될 새끼 원숭이를 구해 낼 방법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독수리에게 사정해서 구해 보는 수밖에 없겠다”라고 생각한 사자 왕은 ”독수리야, 내 소원을 들어주게. 그 새끼 원숭이는 내가 어미들로부터 부탁을 받은 것일세. 만약 자네가 원숭이 새끼를 죽여 버리면 나는 어미 원숭이에게 신용을 잃을 뿐 아니라 무참히 죽어야 하네. 그러니 그 새끼 원숭이를 돌려주게나. 내 평생에 한 번밖에 없을 부탁이네“ 하고 독수리 왕에게 애원을 하였다.
”사자 왕, 땅에서는 내가 자네를 따르지 못하지만 이 높은 공중에서는 나는 자네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네. 자네가 그처럼 원한다면 새끼 원숭이를 놓아 줄 수도 있지만 정말로 새끼 원숭이를 보호할 생각이라면 자네 몸뚱이를 내게 대신 줄 수 있겠나?“하고 독수리 왕은 큰 소리로 외쳤다.
”그건 어렵지 않네. 내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 몸을 기꺼이 자네에게 주겠네. 이 몸을 아까워한다면 나는 원숭이에게 거짓말을 한 셈이 되지 않겠나. 그래가지고는 내 꼴이 아무것도 안 되지.라고 말한 후 사자 왕은 주저하지 않고 높은 데로 올라가 몸을 던지려고 하였다. 사자 왕의 진실한 모습을 본 독수리는 급히 소리치며 말렸다.
”남을 위해 목숨을 버리면 곧 복을 받을 것이니 내 그대에게 새끼 원숭이를 돌려 드리리다. 바라건대, 사자 왕이여 스스로를 해치지 마시오.“ 그리고는 독수리왕은 새끼 원숭이를 사자에게 돌려주었다.
이리하여 사자 왕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모든 짐승 중의 왕으로 남게 되었다는 불교에서 전해지는 이 이야기는
첫째로, 사자 왕이 목숨과 바꿔 지킨 책임감이다.
비겁하게 사느니 차라리 목숨을 바쳐 내가 약속한 것은 꼭 지켜야 한다는 그 정신이 여러분의 가슴속에도 흘러 넘친다면, 놀랄 만큼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둘째는 독수리 왕의 깊은 용서 정신이다.
비록 높은 공중에서는 자기가 최고라고 하더라도 새끼 원숭이를 보호하겠다는 책임감에 감동하여 원숭이 새끼를 돌려주겠다는 생각은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책임감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는 비록 동물들의 이야기지만 우리 인간들의 생활을 반성하게 해 준다.
혹 내가 친구들과의 약속을 어기고 내게 주어진 공부나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한 적은 없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그리고 우리 주위의 친구들이나 이웃들에게 눈을 돌려 책임감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삶을 본받아야 하겠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부모님께 효도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 나라에 목숨을 바친 군인, 이것들이 어찌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이겠는가. 지금 여러분들의 부모님들은 좋은 것 싫은 것 마다하지 않고 자식이 잘되고 성공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서슴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런 부모님을 위해 여러분들이 한 일은 무엇인가. 조금이라도 훈계되는 말이라면 듣기 싫어하고 쉽게 돈을 내어놓지 않으면 집을 뛰쳐나가기 일수고……. 여러분들은 누구를 위해 하는 공부이기에 그렇게도 당당한가. 시간은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니 학생시절에 때를 놓치고 후회하지 말고 무슨 일이던 자기의 소질과 능력에 맞는 일을 찾아 최대한 노력하여 사회에 나아가 일 할 준비를 철저히 해주기 바란다. 그것이 장차 사회에 나아가 보람된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이다. 자기를 지키고 자기의 행복을 만들 사람은 오직 자기뿐이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는 삶
겨울이 된 뒤에야 소나무나 잣나무가 낙엽이 지지 않음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지금 첨단 과학의 발전으로 문명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편안함을 모르고 편안함에 쉽게 안주하려는 경향에 물들어 가고 있다. 우리들 청소년 여러분들은 기성세대가 이룩해 낸 부와 풍요를 마음껏 누리며 값비싼 메이커 옷에 필요 이상의 낭비를 하며 탈선하는 일이 많은데, 이것은 일시적인 청소년기의 현상이라고 할 지 모르겠지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그대로 방관할 수 만 없는 일이다.
이따금 보면 도벽 등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청소년들이 결손가정이 아닌 부유하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가정의 아이들이고 보면 이는 무엇인가 가정에 문제가 있다고 보야야겠다. 따라서 가정교육은 돈이나 지위로 되는 것이 아니요, 부모로서 자식이 올바르고 성실하게 그리고 떳떳하고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이다. .그러기에 교육은 먼저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하며 가정에서 바르게 자란 아이들이 열심히 학교 교육을 받고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아 착실하게 준비하고 노력할 때 자기의 삶은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언제부터인가 해 보지도 않고 노력도 없이 되는 대로 쉽게 살아가려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다.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삶의 목표를 뚜렷하게 가져야 하며 그 목표를 실현할 수 있도록 그 어떤 고통도 마다하지 않는 절제와 인고의 정신이 필요하다. 고통이 따르지 않는 보람이란 있을 수 없으며 보람이 없는 가치로운 생활은 더더욱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고통이 배지 않은 삶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으며, 진실할 수도 없다.
현재의 고통을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좀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큰사람’이 되기 위한 밑거름으로 생각하고 좀더 마음을 튼튼히 다져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 나가는 행복의 씨라고 생각하자.
땀 흘리며 사랑으로 가꾼 결실처럼 나에게 부딪치는 모든 것들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살아가는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자.
참다운 삶의 방법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간에 시작이 있고, 행동이 있고, 그리고 결과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생에 세운 큰 설계를 실천해 나가는 데는 한 해 한 해의 설계가 있어야 하고 또한 하루하루 계획을 세워 실천하며 생활해 나갈 때 보람있는 삶이 될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소질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기의 재능을 파악하고 자기의 진로를 찾아 열심히 노력한다면 누구라도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아 꾸준히 끝없는 노력을 계속한다면 인생은 성장하며 성숙해 가고, 끝내는 소망하는 꿈을 성취할 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향상을 꾀하자면 남보다 한 단계 높은 이상을 가져야 한다. 남이 하는 것을 흉내나 내고 겨우 따라 한다면 보다 훌륭한 자신의 성장을 바랄 수는 없다 그러나 행보는 신중히 하며, 남보다 조금 늦는다 싶어도 조급히 서둘지 않고 침착하게 걷는다면 남보다 앞설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서둘다가 실수를 하고 시행착오를 하게 된다면 그 길이 더 늦고 방향을 잃게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칫 저돌적이 되어 가끔 궁지에 빠지는 일이 있을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 내실을 위해서 긍지를 가지고 진취적인 자세로 임하며, 실제 생활에서는 신중하게 행동하여야 뜻하지 않은 재난을 막을 수 있으며, 영원히 남아 있을 자기 성취를 이루는 것이다. ‘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 이라는 속담이 있다. 천천히 갈지라도 믿음직스럽고 이루는 바가 크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신중하고도 철저한 삶의 자세를 가르쳐 주는 말이라고 하겠다.
한 단계 높은 이상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삶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열심히 배우고 부지런히 노력하며 예절바른 생활을 실천하는 길이 새롭게 출발하는 참다운 삶의 지름길임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큰 뜻을 품고 살아가도록 노력하자.
雅 量 과 容 恕
◇ 하루 한 번 용서해 주기
인간은 일상 생활에서 순간마다 ‘사랑과 미움(Love & Hate)’이 교차하는 생활을 한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미워하는 마음이 많은 이는 나쁜 쪽의 사람이요, 사랑하는 마음이 많은 이는 좋은 편의 사람이라는 점이다. 더욱 훌륭한 사람은 ‘사랑과 미움’을 초월한 사람 일 것이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부처님은 온갖 중생을 모두 복되게 하라고 가르치셨다. 독사도 남이 해하지 않는 한 물지 않는다. 아무리 성질이 고약한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잘 듣는다.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은 된 사람이요, 용서하지 못하는 이는 아집과 고루한 생각의 포로가 된 사람이다. 용서할 때마다 그 사람의 영혼은 살찌게 된다. 교실에서나 밖에서나 일상 생활에서 남과 충돌할 경우 화내지 않는 사람이 되자. 남과 다투지 말고, 하루 한 번씩 용서해 주는 일을 생활화하자. 단, 용서와 묵인은 성질이 다른 것이다.
◇ 남 험담 않기
살다 보면 잘 한 일도 있고, 잘 못한 일도 있기 마련이다.
남의 잘못을 보고 없는 데서 말하면 험담이 되고, 면전에서 말하면 충고가 된다.
그러나, 상대가 안 받아들이면 싸움을 건 꼴이 되고, 받아들인다 해도 쾌히 받아들이는 경우는 드물다고 보겠다. 그 원인은 상대가 받아들일 태세가 갖춰지지 않은 경우, 즉, 수양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자기를 알아보려면 자기가 잘못했을 때 충고해 주는 이가 있는가를 알아보면 된다. 내가 덜된 사람일 때는 받아들일 태세가 안된 것을 알고 충고 해 줄 사람이 없을 테니까!
사람은 의식이 있는 한 생각을 멈출 수 없고, 또한, 말을 안할 수 없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므로 항상 심사 숙고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서 말을 해야한다.
우리 모두 ‘험담 않는 학생, 잘 해 주는 학생’이 되자.
◇ 내가 먼저 사과하기
일상 생활에서도 사과할 일이 생긴다. 교양있는 사람은 얼른 상냥하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구실 찾을 궁리로 뜸을 들인다. 그래서 그 태도를 보고 사람됨을 가늠한다.
사과를 많이 하면 겸손해지게 되고, 겸손해지면 지혜의 눈이 밝아지기 마련이다.
‘우리 모두 겸손하게 먼저 사과하는 사람’ 이 되자. 그런 사람이 된 사람이다
일하는 것과 움직이는 것의 차이
옛날 농부는 밤하늘의 별을 보고 올해의 기상을 판단하고 바람의 냄새를 맡고 비를 예측했으며, 흙의 성질, 종자의 성질에도 모두 능통했다. 나이 많은 농부는 오늘날의 농학자에 비교될 만한 농업의 전문가이었다.
그러나 공장의 근로자는 나사를 돌리는 사람은 나사만 돌리고, 기름을 칠하는 사람은 기름만 칠한다. 농부는 일의 전 과정을 관리하지만 공장 근로자는 전체 일의 극히 일부분만을 반복적으로 되풀이 할 뿐이다.
이렇게 하다 보니 공장 근로자는 단순하고 틀에 박힌 사람이 되었으며 농부가 갖고 있던 지혜와 멋을 잃어 버렸다. 일은 단조롭고 지루한 반복일 뿐이고, 근로자들은 오직 임금을 받기 위해서 일할 뿐이다. 일은 아주 단순하여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월급을 받는 것이다. 일은 재미없고 누가 해도 그만이고, 나는 시키는 대로하고 월급만 타 가면 그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생각을 깨뜨려야 할 때가 되었다.
일을 재미있게 하는 사람들이 역사를 움직여 왔다고 한다. 하기 싫어서 하는 일과 즐겁게 하는 일의 차이는 엄청나다. 사람들에게서 일하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때에 사회가 발전한다.
로마가 게르만에게 멸망당한 이유가 무엇인가? 로마의 노예들은 채찍 아래 강제로 일했으나, 게르만의 농민들은 자기 땅에서 즐겁게 일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움직이는 것과 일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초관리의 눈으로 보면 생각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일하는 것은 일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라고 본다.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이라면 기계가 반복 작동되는 것과는 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생각하면서 일한다는 것이다.
공장과 기계 시스템은 인간의 창의성을 부릴 여지가 없게 만들어 버린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기계는 어떤 공장에 들어와서 거기 정착하여 가동될 때까지 무수히 많은 창의성을 요구한다. 어디에 설치해야 할 것이냐 에서부터 시작해서 기존의 기계와의 연결은, 부품의 흐름은 다 어떻게 조절하고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모두 사람의 힘이 필요하다.
조그마한 개량이나 작은 변화의 여지도 무척 많다. 갖다 놓는다고 그 때부터 기계가 알아서 만사를 다하고 사람들은 그저 구경만 하는 법은 없다. 기계는 근로자와 서로 한 몸이 되어 최상의 팀워크를 이루어야 한다. 기계와 사람은 가까워지고 친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많은 아이디어와 창의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일하는 것이다.
성 탄 절
오늘날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백성들은 오랜 옛날부터 하나님을 그들의 유일한 신으로 믿고 살아왔다. 그들은 하나님과 기도로 대화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죄란 인간이 가져서는 안될 욕심, 게으름, 시기, 다툼 등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들은 점점 하나님의 뜻과는 다르게 죄를 많이 짓게 되었다. 그래서 인지 여러 차례 이웃나라의 침입을 받았으며 강대국의 통치하에서 압박과 설움을 당했다. 그럼에도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참아 내며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았는데 그것은 하나님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즉 하나님은 그들을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며 세상의 고통과 시련 속에서 구원시켜 줄 하나님의 아들을 그들에게 보내 준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일로 마태복음과 누가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쓰고 있는 서력 기원이 예수 탄생을 기준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기원전 4-5년경이라고 하며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을 구원해 주신다.”의 뜻이며,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즉 “구세주”를 의미한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우리 나라는 물론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쁨을 찬미하는 행사가 열린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불리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선물을 나누고 서로 축복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풍습이 전해진다. 전날 밤을 크리스마스 이브라 하여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흰 수염 붉은 모자, 붉은 옷에 선물 보퉁이를 메고 썰매를 타고 찾아와 집집마다 굴뚝으로 들어가 착한 어린이에게 양말 주머니에 선물을 준다는 이야기는 19세기초부터 시작된 일로 보여진다. 산타클로스는 3세기말 어린이를 보호하는 성 니콜라스의 애칭이다. 독일에서 비롯된 크리스마스 트리는 크리스마스 기간의 장식물로 가지가 곧은 푸른 나무에 양초, 완구, 인형, 종, 과자 따위를 달아매고 눈송이를 본떠 솜을 얹는다.
크리스마스는 이제 전세계의 축제일이다. 그러면 예수 탄생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성탄절을 보내면서 우리는 여기에 담겨져 깊은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직업인으로서의 시민 생활
자신을 잊고 무엇인가에 열중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인생의 숭고함을 엿볼 수 있다. 재물이 많다고 해서 무위도식한다면 그 사람은 폐인이나 무기력한 인간이 되고 말 것이다. 왜냐 하면 인간은 일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키고 생활의 즐거움을 얻으며 사회에 봉사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직장은 가정 다음으로 중요한 생활의 장이다. 자기가 하는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열중하여 일의 삼매경에 빠진 사람은 그 자체로서 행복할 뿐만 아니라, 두 가지 보상을 받는데, 그 하나는 창조와 성취의 기쁨이요, 또 하나는 명예나 보수와 같은 사회적 보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땀흘려 일하는 속에 얻어지는 행복과 성취하는 데서 오는 기쁨을 기대하면서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먼저 능력과 소질에 맞는 적성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 나라에는 많은 대학과 대학원, 전문대학이 있고 해마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고급 인력이 배출되고 있다. 그러면 이 많은 고급 인력이 모두가 원하는 직장에 취업이 된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 소수를 제외하고는 원하지도 않는 직업을 얻어 마지못해 일을 하게 될 것이니 이러한 일은 신명도 나지 않을 뿐 아니라 능률도 나지 않을 것은 뻔한 사실이다. 그러니 무엇보다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아 자신 있는 일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소년 여러분은 학업에서부터 열심히 노력하고 자기가 하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고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인간의 창의에 의한 개선을 기다리고 있고 또한 개척해 주기를 기다리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들이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 우리들의 손을 기다리고 있느니 만큼 그 중에서 나에게 가장 적합한 일을 찾아 내 인생의 큰 뜻을 펼쳐 행복을 찾아나가자.
맹자는????일을 하는 것은 마치 우물을 파는 것과 같다. 비록 아홉 길을 팠다 해도 샘물이 나오는 데까지 미치지 못한다면 우물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인간이 무한한 열정을 가지고 하는 일은 대부분 성공을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난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비관적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부모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재능이나 결점을 그대로 받아드려서 그것을 긍정하고 그 바탕 위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구두를 닦는 링컨 대통령
어느 날 아침 비서가 무심히 복도를 지나려니까 한 모퉁이에서 구두를 닦는 사람이 있었다. 비서가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링컨 대통령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링컨은 시골뜨기라서 대통령으로서의 품위가 없다고 비난을 받는 터라 비서는 대통령에게 충고를 할 때가 바로 이 때라고 생각하고
“ 각하, 대통령의 신분으로 그런 모습을 사람들이 본다면 좋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링컨 대통령은 빙그레 웃으며,
“아, 신을 닦은 것이 부끄러운 일인가? 대통령이나 구두닦이나 다 같이 세상일을 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잠시 쉬었다가,
“세상에는 천한 직업이라고는 없네, 다만 천한 사람만이 있을 뿐이지.” 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렇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무슨 일이든 사람 사람마다 자기의 능력에 맞는 일을 해야만 신명도 나고 어려움도 모르는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해 보라. 얼마나 하기 싫고 지루한가, 그런데 요즘 3D 현상이라고 하여 힘들고 어려운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일은 누가 할 것인가. 남이 하지 않는 일, 그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가장 장한 사람이고 사회에서 가장 극진한 대우를 받아야 할 사람이다. 그런 일을 천하게 생각하는 그런 마음가짐, 그런 사회, 그런 국가가 잘못된 것이다.
예로부터 ‘쟁이’를 소중하게 대우하던 그런 나라들은 지금 모두가 선진국이 되어있다. 두드리고 만들고 하는 직업, 바로 그것이 오늘날의 과학이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인공위성도, 큰 땅덩이를 찰나에 재로 만든다는 폭탄도 ‘쟁이’들이 만든 것이 아닌가. 그러니 언젠가는 우리 사회도 ‘쟁이’들이 가장 최고의 대우를 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공부를 못한다고 낙담하거나 자포자기하지 말아라. 여러분들도 공부 잘하는 어느 학생보다도 더 잘하는 일이 반드시 한 가지는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소질이나 재능과 관련된 직업을 찾아라. 그러면 반드시 신명날 것이다. 그 다음 성공과 실패는 여러분 자신이 그 일에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그러니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라. 그리고 먼저 자기가 가진 소질을 찾아 보라. 그리고 서서히 준비하라.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사람, 두 번째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 세 번째는 있어서는 안될 사람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천한 사람은 직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세 번째와 같은 있어서는 안될 사람인 것이다.
링컨 대통령도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남의 집일을 해주며 힘겹게 고학을 해서 미국의 대통령까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 준 사람이다.
또한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일이 있고 모두다 좋은 일을 하고 싶고 훌륭한 대우를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저마다 편하고 대우받는 일만을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고 우리 사회는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이 있다. 그러니 직업에 귀천을 논하지 말고 쓸모 있는 사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
『우리가 죽을 때에 역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네 가지의 질문이 있다.
당신은 그 질문에 ‘그렇습니다’라고 긍정적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 J. F. 케네디 -
1. 당신은 용감하였습니까? → 責任과 職分의 도리
2. 당신은 현명하였습니까? →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해 올바른 事理 判斷
3. 당신은 誠實하였습니까? → 떳떳하고 光明正大한 삶
4. 당신은 獻身하였습니까? → 창조의 기념탑을 쌓고 보람있는 생애
졸부(猝富) 들의 행진
도시 변두리에서 대대로 농사를 짓고 살았던 한 부자(父子)가 의견이 서로 맞지 않아 서로 갈라서게 되었다. 아들은 쥐구멍에도 햇빛이 들었다고 기고만장하면서 나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고 장담했다. 논밭의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아들의 배포가 이렇게 바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자 아비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만 살아 남는다고 타일렀지만 돈맛을 안 아들은 막무가내였다.
아비는 도시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시골로 가서 지을 수 있는 만큼의 논밭을 사서 다시 농사를 지었고 아들은 도시에 남아 사업을 한답시고 이 사업 저 사업에 손을 댔다. 돈이란 본래 양고기 같아서 있으면 버러지들이 몰려들게 마련이다. 그 버러지들은 입 속의 사탕처럼 굴어 주고 매양 허리를 굽실거리고 손을 비비면서 상전을 모시는 종놈처럼 비윗장을 맞추어 주게 마련이다. 아들은 여기에 놀아나 하늘이 돈짝만하게 보이게 되었다. 돈을 보고 버러지들이 그렇게 하는 줄도 모르고 아들은 날마다 펑펑 호기를 부렸다.
돈이란 벌기는 어려워도 쓰기로 말하면 태산같이 쌓인 돈이라도 몇 년만 탕진하면 먼지처럼 날아가고 만다. 아들은 이런 줄도 모르고 설치는 동안에 사기꾼 기생충들이 양고기덩이를 통째로 말아먹고 사라져버렸다. 그제야 아들은 사기를 당했다고 땅을 쳐본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쥐구멍에 햇빛은 사라지고 아들은 막막했다. 어디로 갈까? 이 아들이 덕이란 것을 조금만 알았더라도 졸부인 것을 알아차려 망하진 않았을 것이다.
어디 땅값이 올라 생겨난 거금 탓만으로만 졸부가 생기는가. 권력을 팔아 세상을 뭉개는 졸부도 있고 지위를 앞세워 보이는 것이 없는 졸부도 있으며 알량한 지식만 믿고 오만한 졸부들도 있다. 사내 졸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계집 졸부(졸부)도 있다. 50만원 짜리 브래지어를 차고 50만원 짜리 팬티를 입고 우유로 목욕을 하며 몇천 만원 짜리 보석을 감고 몇백 만원 짜리 옷을 걸친 계집 졸부들이 강남에 가면 득실거린다고 한다.
사내 졸부든 계집 졸부든 이러한 치들은 쓰레기에 불과할 뿐이지만 우리에게 사는 맛을 가시게 하고 세상을 썩은 냄새로 진동하게만 한다. 그들은 제 몸 하나만 알 뿐 남이야 죽든 말든 아랑곳없다는 무리들이다. 공자는 인간의 세상에서 이러한 무리들 탓으로 항상 근심을 하고 살았던 것이다.
덕을 닦지 못하는 것과 배움을 익히지 못하는 것, 그리고 올바름을 듣고도 따르지 못하며 그름을 보고도 고치지 못한 것 등등이 나의 근심거리이다. 이렇게 공자는 말씀하였다.
( 子曰 德之不脩 學之不講 聞義不能徒 不善不能改 是吾憂 )
가치관 정립을 위한 자세
요즈음 우리는 급격한 사회변동 속에서 가치관의 혼란을 경험한다. 가치관이란 인간이 삶이나 어떤 대상에 대해서 무엇이 좋고 옳으며 바람직한 것인지 판단하는 과정을 말한다. 세계화 시대 속에서 세계의 각 문화가 유입되고 세계의 가치관이 뒤섞여 진정 우리가 선택하고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얼마전 나는 수업시간중 “남자가 화장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동성연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것은 학생들이 다양한 가치들을 접하면서 비판적 사고를 하고있으며, 그럼으로써 올바른 가치관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를 보기 위함이었다.
생각대로 많은 학생들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발표했다. 그러나 개중에는 그런 의문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학생도 있었다. 다 자기 멋과 생각에 사는데 왈가왈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무비판적이고 무관심한 태도가 바로 우리사회의 가치관 혼란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양한 가치관이 존립하는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자신의 멋과 생각에 의하여 사는 것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우리 사회를 묶어주는 합의된 가치관은 더욱더 존재하고 존중되어야한다. 그것들은 그 시대의 사상으로 나타나 그 시대를 이끄는 힘이 된다.
현대에 들어와 절대적 신념으로 받아들인 서구의 경험론, 공리주의, 합리주의 등에 의한 세계관 및 가치관은 지구의 피폐를 가져온 원인으로 지적되면서 오늘날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우리도 이제 서구 중심의 사고방식이 발전을 가져온다는 사고방식을 버려야하지 않을까?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가치관을 돌이켜 보고 인생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가치관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고민하고 선택할 때 우리시대의 사상이 정립되고 우리사회가 밝게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후 한 인 품 과 후 광
장님신부의 사랑
서고(徐固)의 셋째 아들 서해(徐嶰)는 어릴 때부터 학문이 뛰어나고 후덕한 인품으로 그 후에는 조선조 대표적인 명문 갑족을 형성했다. 자는 정지 호는 함재(涵齋).「후한 끝은 번성하고 악한 끝은 망한다」는 격언이 이를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그의 후예는 대구 달성 서씨의 거대한 산맥으로 문무 백관을 줄을 이어 배출하고 학덕이 세상을 흔들었다.
그는 1537년 8월에 경북 안동군 일직면 소호리에서 태어났다. 서해는 일찍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다. 동문 수학한 인물로는 유서애(柳西崖), 김학봉(金鶴鳳), 조월천(趙月川)등이 있었다.
그러나 퇴계는 제일 젊은 소년 함재공 서해를 더욱 사랑했다.「나의 후계자는 서해가 될 것이다」라며 널리 자랑을 하기도 했다.
그의 뛰어난 학문이 세상에 알려져 서울의 부호 고관들이 매파를 넣어 사위 보기를 청했다. 그는 가난한 집안으로 14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인 순흥 안씨 슬하에서 자랐다.
「내가 아직 공부를 다 마치지 못했고 또, 나이가 많지 않으니 장가 들기가 급하지 않다.」고 나이 20이 되도록 결혼을 거절했다. 마침 이때 일찍 대과에 급제해 청풍군수를 지낸 고성이씨의 명문세도이며 가세가 부유한 이고(李股)가 퇴계 문하에 인재가 많다는 것을 알고 사위감을 추천해 줄 것을 부탁, 퇴계는 서슴없이 서해를 천거했다.
서해도 더 이상 거절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사주를 보내고 행례의 택일을 했다. 시골의 청년 선비가 서울의 명문 집안으로 장가들게 됐으니 서해의 집안은 경사를 만난 것이다.
혼례식 날이 닥쳐왔다. 신랑 서해는 말을 타고 신부집으로 향했다. 일행은 신부집에 거의 이르러 여독을 풀기 위해 길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마을 사람들이 신랑 구경을 하느라 우르르 모여서 자기네끼리 대화를 나누는 중에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신랑은 잘 생겼는데 신부가 맹인이니 가엾기도 하지……」신랑 측으로선 날벼락 같은 충격이었다.
「즉시 파혼하고 돌아가자」고 후행 온 집안 어른들은 흥분이 대단했다. 마지막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은 신랑 서해였다. 그는 한 마디로 결혼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비록 장님이라 하나 사주를 보냈으니 백년 가약을 맺은 것. 만약 내가 규수를 외면한다면 가여운 그 여인은 장차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것도 하늘의 인연이니 저버릴 수가 없습니다」라며 말을 달려 신부집으로 들어섰다.
초례도 무사히 치러지고 화촉동방의 밤이 깊어갔다. 절세 미녀인 신부. 명문 집 맏딸로 곱게 길러진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은 한 떨기의 연꽃과도 같았다. 하지만 앞을 못 보는 장님. 이 규수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었던 것은 아니다. 5살 때 부자 탕으로 얼굴을 씻다가 시비의 불찰로 약물이 두 눈에 들어간 것이 실명의 원인. 백방으로 치료를 했으나 효험이 없었다.
너무도 아름답게 생긴 규중 미녀에게 하늘이 시샘을 한 것일까. 원통하기 그지없는 미녀 불구자. 지혜롭고 총명하기 이를 데 없는 가인의 억울한 실명은 부모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혼기가 닥치자 아무데나 짝을 지어 줄 수 없어 흠(缺)을 숨기고 혼사를 맺었던 것이다. 신부는 자신의 결점에 황공하고 미안해 어쩔 줄 모르며 떨고 있었다. 신랑의 태도가 어떨까. 가슴 조이는 신부의 귀에 부드러운 음성이 꿈처럼 속삭이고 있었다.
「부인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비록 보잘 것 없는 위인이나 어찌 부인의 허물을 탓하며 괄시하겠소. 부인의 정숙한 재덕과 아름다운 용모는 그 조그마한 허물을 덮을만 하니 오히려 나에게 과분하오. 내 어찌 부인을 소홀히 대하겠소……」신부는 이 같은 따뜻한 위로에 감동하여 눈물이 그쳐지지 않았다.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신부를 따뜻이 안아 주는 서해(徐嶰). 그는 홀로 계신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이며 가족 친지들에게 처신할 때의 주의 등을 다정히 일러주니 더욱 감사함이 이를 데 없었다.
「서방님은 군자이십니다. 제가 병신인데도 그것을 숨기고 청혼한 것을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저를 버리지 않으시니 이 은덕이 태산 같이 높고 바다 보다 깊습니다. 제가 어찌 죽음으로 서방님께 은혜 갚기를 마다하겠습니까」
정겨운 첫날밤의 백년 가약. 기나긴 밤도 짧은 듯이 사랑의 속삭임이 그칠 줄 몰랐다. 그 뒤로도 아내는 남편을 하늘 같이 섬기고 남편은 아내를 보물처럼 사랑하니 부부의 금슬(琴瑟)은 남달리 뛰어나 세인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인간의 운명은 기구한 것. 그렇게 후덕하고 인자한 서해도 반짝하는 인생을 살고 23세의 젊은 나이로 1559년(明宗 14년 己未) 9월 제대로 깊은 학문의 뜻을 펴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년전(戊午) 5월 출생한 아들과 부인을 남기고 저 세상으로 갔지만 그가 베풀어 놓은 음덕은 영원히 후세에 살아 있게 되었다.
다정한 남편의 풋사랑도 채 익기 전에 암담한 시련을 맞은 이씨. 친정 집의 도움으로 장례를 치른 후 시골에서 살 길이 막연해 강보의 유아를 안고 친정 집에 가까운 서울 藥峴(현 중림동 천주교회 자리)으로 이사를 했다. 이것은 이고가 딸과 외손자를 위한 특별 배려에서였다. 서해의 아들은 서성(徐渻). 그의 자는 현기(玄紀)요 호는 약봉(藥峰)으로 선조 때 이름을 떨친 명신이 되었다.
앞 못보는 이씨 부인은 아들 서성을 눈 뜬 사람 이상으로 가르치기에 전념했다. 학문은 물론이요 예의범절에서 대외 처신에 이르기까지 맹모를 능가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친정의 도움만을 받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남녀 하인들을 지휘하여 제조하기 시작한 것이 술, 약밥, 강정, 다식, 산자. 이 특수한 음식은 삽시간에 서울 장안의 명물이 되었다.
이 음식 솜씨는 자부에게 전해졌고 소문이 왕실에까지 알려졌다. 임금에게까지 진상하게 되어 선조가 음식 맛을 보고 약봉가인 약현에서 만들어졌다 해서 약주(藥酒), 약식(藥食), 약과(藥果), 전과(煎果), 약포(藥脯)라는 이름을 내려 이때부터 그 명칭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또 아들 서성의 호를 약봉이라 한 것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총명하기 이를 데 없는 약봉 서성. 그는 하나를 배우면 능히 둘 이상을 해득하는 천재였다. 그는 당대의 문장가로 이름을 날리던 귀봉 송익필 문하에서 글을 배웠다.
서성이 교유한 당시의 인물로는 사계 김장생, 만사 심지원, 수몽 정엽. 이들은 서성과 함께 어깨를 겨루는 당대의 문장가들이다.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 정경부인이 된 이씨. 자손들의 등귀로 생전에 벼슬을 외면하고 학문에만 힘쓰다 일찍 별세한 남편 서해는 뒤에 영의정에 추증된다.
77세까지 장수한 이씨 부인은 21세에 과부가 되어 비록 해로의 복을 누리지는 못했으나 장수를 하면서 등귀한 아들 손자 증손이 수십 여명에 이르러 부귀와 영화를 한꺼번에 마음껏 누릴 수가 있었다.
늙어서 이씨 부인의 현숙을 기려 왕궁에서 약현 옛터에 거처할 집을 신축하기로 했다. 그 자손이 번창한 것을 고려하여 대청을 널찍이 30간이 넘도록 만들도록 했다.
이 때 하루는 지팡이를 짚은 이씨 부인이 공사장을 두루 살폈다. 노부인은 마루에 올라서서 한참 동안 주변을 확인하고는 아들을 불러 탄식했다.
「지금 내가 죽으면 복 입을 내 손자 손녀가 이 대청에 들어서서 제사 지내기가 힘들 것이다. 하물며 2~3대가 내려가면 내 자손이 몇 백, 몇 천명에 이를 것인데 이 대청은 소청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마당에 보조 계단을 만들지 않고는 안 될 것인데 누가 이렇게 좁게 설계를 했느냐」며 꾸짖었다.
이씨 부인의 예언은 하나도 틀림이 없었다. 외로운 어린 독자를 키워서 불과 1백년만에 자손이 천 여명에 달했다.
그리고 거의가 문무관에 등제했고 경상이 수십 명에 금권자(金圈子) 옥권자를 헤아릴 수가 없어 말(斗)로써 계산할 만큼 재상들이 줄을 이어 쏟아졌다.
설 날 ( 민속의 날 )
한 해가 시작되는 첫날을 ‘설’ 또는 ‘설날’, ‘원일(元日)’ 이라고 합니다. 일년의 첫째 날로서 첫 출발 일이므로 중요한 날이며 일년 중 가장 큰 명절입니다. 그래서 이 날은 말과 행동을 조심하여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옛날부터 일년 운수는 새해 첫날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마음과 몸가짐으로 계획하고 실천할 것을 다짐하기도 합니다.
새해 아침 설빔으로 갈아입고 온 가족이 정성껏 마련한 제물로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며, 부모님과 친척, 이웃 어른들께 세배를 드립니다. 이 날은 세찬으로 떡국을 먹는데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떡국에는 꿩고기를 넣는 것이 좋으나, 구하기가 어려워 닭고기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속담에 “꿩 대신 닭”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온 것이지요. 어른들은 세뱃돈을 주시며 “올해도 건강하고 공부 잘해라” 하며 덕담을 하셨습니다.
정월에는 널뛰기, 윷놀이, 연날리기 등의 놀이가 행해져 이웃간에 친목을 도모하고 협동심을 길러 밝은 한 해를 꿈꾸기도 합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훌륭한 세시풍속을 아는 것이 우리 것을 지킬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見解 차이가 말다툼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라』
1. 論爭을 기꺼이 받아 들여라.
2. 당신이 느낀 첫인상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3. 당신의 성질을 억제하라.
4. 상대방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라.
5. 의견이 일치할 수 있는 분야를 찾도록 하라.
6. 솔직하라.
7. 그의 의견을 다시 생각해 보고 면밀히 검토해 보겠다고 약속하라.
8. 상대방이 관심을 표명해 준데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함을 보여라.
9. 그리고 난 다음에 두 사람 모두 좀 더 시간을 두고 문제를 숙고해 보기 위하여, 토론하는 것을 연기하도록 하라.
http://je333.com(태릉고등학교 생활지도부 교사 한태완)
국제협력과 우리의 자세
20세기는 제1·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세계적 혼란과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한 대변혁의 세월이었다.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최근의 냉전 시대까지는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하는 정치가 국제 사회를 지배하였고, 특정한 정치·군사·경제적 이해에 따라 국가간의 협력이 이루어져 왔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지구 건너편의 먼 나라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 냉전이 종식되고 난 후,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경제적 논리에 의해 국제 협력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났고, 세계는 급속한 교통·통신의 발달로 지구촌 화되어 가고 있으며, 금융·생산·소비의 모든 경제 부문에 걸쳐 국경 없는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울러 자유 경쟁을 저해하는 장애가 완화됨으로써, 국가를 비롯한 모든 경제 주체가 무한 경쟁에 대비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또한, 세계의 여러 나라는 자연 환경이 다르고 문화·역사적 배경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적 상황도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이해 관계를 같이하는 일정한 지역의 국가들끼리 정치, 군사, 경제,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상호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현재 세계에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군, 개발 도상 국가군 등이 각자의 협력 기구들을 구성하고 있으며, 각 지역에는 지역 공동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지역별 협력 기구도 많이 결성되어 있다.
1990년대의 국제화 시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지역주의의 확산, 세계 환경 보전 운동의 본격화,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을 통한 세계 무역 질서의 재편성과 선진국간의 정책 협력 강화, 신흥 개발 도상국의 부상 등이다.
광복 이후 우리 나라는 국제 냉전에 휘말려 미·일 중심의 외교와 경제 협력을 펴왔으며, 세계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것은 바로 ’88서울 올림픽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우리 나라와 세계 각국간의 경제적·문화적 교류는 급증하였고, 더욱이 중국·러시아를 비롯한 구사회주의권 국가들과도 협력이 이루어짐으로써 한국인이 발디딜 수 없는 나라는 이제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국제화 시대의 치열한 대외 경쟁을 극복하고 우리 나라가 선진 경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경제의 국제화, 개방화를 통하여 국내 경쟁력을 강화하고, 안에서 길러진 경쟁력을 바탕으로 하여 세계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해야 한다.
과거 개발 과정에서는 낮은 임금과 개발 의욕을 바탕으로 다소의 비능률적 요소가 있었더라도 고도 성장의 추진이 가능하였으나, 선진 경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모든 분야의 비능률이 제거되어야 한다. 즉, 앞으로의 우리 경제는 국제화, 개방화를 통하여 국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공정한 경쟁을 통해 국제 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선진화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함께 우루과이라운드로 통칭되는 새로운 국제 경제 질서에도 적극 참여하고, 나아가 지구 환경 보전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부응하는 국내 산업 및 환경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학 생 의 날
( 11 월 3 일 )
1929년 11월 3일 광주 학생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 학생의 날이다. 당시 이 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동기 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광주 학생 운동은 광주 - 나주간을 기차 통학을 하던 한국 여학생에게 일본 학생들이 모욕적인 언동을 함으로써 발단되었다. 일제 치하에서의 울분이 일시에 폭발, 한국 남학생들과 일본학생들이 충돌을 일으키게 되었고, 이 충돌은 11월 3일에 이르러 시가전 양상을 띄고 확산되었다.
그런데 일본 경찰에서는 책임을 일방적으로 한국 학생에게 지워서 관련된 학생들을 검거하였다. 이에 광주의 학생들은 총 궐기하여 검거된 학생들의 석방과 아울러 민족 차별의 철폐, 약소 민족의 해방, 제국주의의 타도 등을 외치며 시위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시위 운동은 광주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1930년까지에 걸쳐서 국내 각지에 파급되어 시위 운동에 참가한 학교가 194개교, 참가한 학생은 54,000명에 달하였다. 이로 인하여 퇴학 처분을 받은 학생은 582명, 무기 정학을 당한 학생은 23,330명, 피검자는 1,642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신간회도 조사단을 파견하고 민중 대회를 계획하는 등 학생들의 운동에 동조하였다.
이 광주 학생 운동은 일제 치하에서는 3. 1운동 이후 최대의 민족 운동이었다.
이 날을 맞아 우리들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다같이 생각해 봅시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최대한도로 활용하여 실력을 기르자』
☞ 언제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말라(나의 시간)
☞ 언제나 건강하리라고 생각하지 말라(나의 건강)
☞ 언제나 오리라고 생각하지 말라(나의 기회)
유 종 의 미
이제 금년의 종말을 알리는 종소리가 우리의 귓전에 다가오고 더 이상 넘길 수도 없는 한 장남은 달력이 펄럭인다. 또 다시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이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마음으로 묵은해를 냉정히 되돌아보고 대망의 새해를 맞을 일이다.
한 해를 마지막 보내는 시점에 이르러 우리의 성장과 노력이 한층 새로워지기만 한다. 자기주도학습의 자발적 정착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 온 한 해였다. 모든 것은 공들인 만큼 거둔다고 한다. 근면 성실하게 열심히 노력한 사람은 그만큼 성적이나 행동이 많이 향상되어 부끄러움 없는 세모(歲暮)의 한 해가 될 것이다.
옛 성현들의 말씀에 “오늘의 나를 발견하라. 그러면 반드시 앞날에 영광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세모(歲暮)의 순간에 나를 똑똑히 보아 새로이 발견하는 중요한 순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중요한 미래를 위해서는 항상 나를 채찍질할 때 ‘조금만 더 노력하자. 조금만 더 노력하면 훌륭한 학생이 될 것이며, 앞날에 축복 받는 젊은이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 속에서 꾸준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자세이어야 한다.
12월의 한 장남은 달력 속에 나의 현주소를 찾고 각오를 새로이 하는 연말이 되자. 유종의 미란 나의 지난날을 냉정히 반성하고 다가올 새해를 위한 힘찬 발걸음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나는 이 해에 얼마만큼 성장해 왔는가. 자문자답(自問自答)의 기회를 가져보자.
『기록하는 습관을 몸에 익혀라』
☞ 아인쉬타인 : 침대 옆에 항상 종이와 연필을 준비
☞ 중요한 것, 꼭 알아야 할 것, 사람의 이름, 전화번호, 약속 시간, 유명한 말, 꼭 필요한 지식, 좋은 아이디어 등을 항상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자.
뜻 있는 방학 생활
이제 한 학년이 거의 끝나 가는 시점. 겨울 방학에 들어간다. 희망의 새 봄에 심었던 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할 때이다. 그 동안 학습한 바를 방학을 통해 자신이 재단하고 요리하는 절호의 기회이다. 자기 발전의 시간이 되어야한다. 고르게 내리는 태양의 은총도 스스로를 더 많이 키워온 나무가 더욱 풍부하게 누린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이다. 정지는 제자리걸음이요. 오히려 퇴보를 의미한다. 계획하고 실천하고 생산적 의미의 부지런한 생활을 한 사람은 축복의 앞날이 기다린다. 이 기나긴 겨울방학을 계획도 없이 허송한다면 그 공허함은 물론 인생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계획과 결심을 가지고 출발하는 뜻있는 방학이 되게 하자.
공부, 운동, 기능 함양 등 무엇을 하든 첫째는 열심히 해야겠다. 그러나 수확부터 신경을 쓰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해보지도 않고 좌절하거나 노력하지 않고 결실을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노력한 만큼만 요구하는 사회가 양심 사회이다. 그 이상을 구하는 데서 모든 혼란과 괴로움이 시작된다. 둘째는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이 학생의 본분에서 벗어나는 행동이여서는 안 된다. 사고없는 건강한 일이어야만 한다. 계획이 없는 휴식은 시간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한다.
노력은 인생의 줄거움을 가져다준다. 무엇인가 자기 발전을 위한 참다운 방학생활이 되자. 그리고 건강한 얼굴로 새 학년도를 맞이하자.
인 내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인내란 어려움이나 괴로움을 참고 견디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과연 얼마나 참고 견디는 힘이 있을까요? 너무나 참고 견디는 힘이 미약한 것 같습니다. 성적이 떨어 졌다고 쉽게 목숨을 끊어 버리는 학생, 아버지에게 꾸중을 들었다고 집을 나가버리는 학생 등등, 자신의 마음을 작은 불쾌감 때문에 내 팽개쳐 버리는 청소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점점 인내하는 힘이 결여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참고 견디는 힘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란 늘 뜻대로 되는 일만 존재하는 것아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참고 견디는 힘이 없다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렵고 힘든 일마다 좌절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되는지 자명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인류와 세상을 위해서 그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남달리 인내심이 강했으며 특별히 노력을 기울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이 세상에서 아무런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노력이 없이 이루어 진 듯이 보이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들대로의 노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뜻있는 일은 피나는 노력이요 그 결정체임을 알아야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 저는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은 말 한마디로 훈화를 마칠 까합니다.
“삶을 에이는 듯한 춥고 모진 겨울을 견딜 수 없는 꽃나무는 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 못한다고.”
미 친 리 더
“윗물 아랫물이 다 맑아야 하는 마음”이라는 표어가 말해 주듯이 누가 누구를 보고 맑아져야 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 초관리의 기본정신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것은 윗물 맑은 것을 보고 나서야 아랫물이 맑겠다는 것이요, “내가 아직 맑지 않은 것은 너 때문”이라는 핑계를 밑에 깔고 있는 것이다.
남을 볼 새가 없이 우선 나부터 맑아져야 한다. 하지만 우선은 윗사람이 저질러 놓고 보아야 한다. 무슨 일에든 시작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작하는 사람은 범상하지 않은 짓을 저질러야 한다. 혁신이란 지금까지의 익숙한 방식을 엎어 버리고 낯선 일을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거부반응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사람은 하던 대로하고 싶어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리더는 일단 미치고 보아야 한다. 마음속에 한 점이라도 미적거리거나 쑥스러워 하는 구석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맨 앞에 나서서 가시밭길을 뚫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삼국지에 보면 위나라 장군 등애가 촉나라를 치러 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촉나라의 서울인 성도로 들어가려면 중국의 <그랜드 캐년>이라고 불리는 검각을 지나지 않으면 안 된다. 검각이란 칼끝같이 뾰족뾰족한 봉우리와 밑이 안 보이는 골짜기로 이루어진 험하디 험한 협곡이다.
이곳을 넘어 가자니 병사들은 기가 막힌 나머지 낭떠러지 아래를 보면서 한숨만 쉬고 있었다. 이때 등애는 앞으로 썩 나서서 담요 한 장을 몸에 두르고 “내가 먼저 가겠다!”는 외침과 함께 돌덩어리처럼 데굴데굴 굴렀다.
대장이 이러니 부하들도 머뭇거리고만 있을 수 없었다. 담요가 있는 병사는 그것을 감고 구르고 밧줄이 있는 병사는 밧줄에 몸을 매어 절벽 아래로 흔들흔들 내려가니 이 억척스러운 군대는 기어코 하늘 오르기 보다 더 어렵다는 검각을 넘고 말았던 것이다.
등애라고 낭떠러지가 안 무서웠을까? 담요를 두르고 한 발짝 썩 나섰을 때에 구름이 아른거리는 골짜기 아래를 보고 현기증이 안 일어났을 리가 없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굴러 내렸다. 내가 주저해서야 이 많은 병사들의 마음을 어떻게 설복할 것인가? 나는 내 한 몸이 아닌 것이다.
리더는 자기 한 몸이 아니다. 모두가 주시하고 있는 몸인 것이다. 내가 주저해서야, 내가 망설여서야 전체가 따라 줄 리가 없다. 내가 확신이 없는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확신시킬 수 있을 리가 없다. 내가 몸 바치지 않고서 다른 사람을 몸 바치게 할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리더는 미쳐야 한다. 그러나 바른 일에 미쳐야 한다.
내가 나를 아는 것
아는 것이 많으면 인간은 자만하기가 쉽다. 아는 것만 믿고 설치다 보면 무슨 덫에나 걸리게 마련이다. 사람이 무엇을 안다고 해 보았자 한 줌의 모래알에도 못 미친다. 그러나 인간은 지식을 좀 쌓았다 싶으면 고집스런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려고 한다. 그래서 편견도 생기고 독단도 생기고 시시비비가 일어난다. 이러한 병들을 고치는 데 무슨 약이 필요할까? 바로 지혜라는 것이다. 지식은 사물을 알게 하지만 지혜는 먼저 내가 나를 알게 한다. 지혜는 스스로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치수를 읽게 하지만 지식은 스스로를 과신하게 한다. 아는 것이 병이란 말이 여기서 비롯된다. 그러나 지혜는 나를 분별하게 하여 설자리를 알게 한다.
공자는 수분(守分)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분수를 지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공자의 분별은 시비를 가리기 위한 분별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느껴보고 생각할 것이며 이해하고 판단할 것이란 점에서 수분인 것이다. 이러한 수분은 아주 자연스럽게 내가 나를 알게도 하고 돌이켜보게도 하고 반성해 보게도 한다. 되돌아볼 줄을 안다는 것은 옛것을 돌이켜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옛것이 선한 것이면 택하고 악한 것이면 버릴 줄 알 때 사람은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된다. 우쭐해 하는 것보다 뉘우쳐 보는 경우가 사람을 훨씬 더 여물게 하는 법이다. 이러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겸허하며 스스로 정직하다. 공자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마음을 읽어보게 한다.
子曰 我非生而知之者 好古 敏以求之者
나라고 해서 나면서부터 저절로 아는 사람은 아니다.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찾아 배워 알게 된 사람일뿐이다. 이렇게 공자는 살폈다.
뛰어난 지혜는 ‘만족을 아는’ 데서 생겨난다.
하나님이 두 사람의 남자에게 토지를 내주기로 했다. “오늘 하루, 너희들이 발로 걸어간 범위 안의 토지는 모두 너희들의 것이다. 다만, 해가 질 때까지는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그는 서쪽으로, 그미는 동쪽으로 향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지점까지 걸어가더니 왼쪽으로 향하다가 마지막에는 북쪽으로 향해 걸어서 원래의 곳으로 해가 조금 지기 전에 돌아 왔다.
동쪽으로 향한 그미도 거의 그와 똑같은 행동을 했으나, 조금이라도 넓은 토지를 소유하려고 너무 멀리 간 탓으로 약속한 일몰 때까지 돌아오기가 힘들었다. 허겁지겁 달려서 간신히 제 시간에 돌아오긴 했으나 너무 힘들어 죽고 말았다.
어느 쪽이 좋은 생활 방식인지는 말할 것도 없다. 인간에게는 욕망이 있다. 욕망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도가 지나치면 자기 자신을 파멸시킬지도 모른다. 지금, 지구에서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우리의 무한한 욕망이 유한한 지구의 자원을 모조리 써 버리려고 하는데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more and more'사상은 얼마 전까지는 좋은 것이었다. ‘좀 더 좀 더’하고 바랐기 때문에 인류의 문명은 발전되어 왔다. 자동차가 이제 막 발명되어 나왔을 때, 인간이 이동하는 속도는 이젠 이 정도면 된다고 모든 사람들이 생각했다면,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나 비행기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적절하고 어디서부터가 지나친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다. 분명히 말해서 구체적으로 나타낼 척도는 없다. 어떤 사람은 고속도로의 제한 속도의 정도가 적당하다고 한다. 하지만 좀더 빠른 탈것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어디선가 선을 긋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선긋기가 아니다. 마음으로 만족하게 여기는 일이다.
‘만족을 안다’는 것은 ‘이젠 별로 필요 없다’는 게 아니고, 자기의 현재의 상황을 긍정하는 일이다. 그런 다음에 희망하는 것은 상관없다. 마음속으로 만족하게 여기고, ‘고맙다’고 생각하는 마음속에서는 뛰어난 지혜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석유 자원은 언젠가 고갈할 것이다. 그 때, ‘석유야 고맙다’고 하는 마음을 갖느냐. ‘숨겨 두었다가 나 혼자서만 오래도록 쓰자’고 하느냐에 따라 사태는 완전히 달라진다. 후자의 경우에는 분쟁의 원인이 될 것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다음의 대책을 위한 뛰어난 지혜를 결집할 수 있다. 인간의 지혜가 결집되면 어떤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만족’을 알면 길은 저절로 열리게 된다.
수수하고 평범한 인생이 멋지다
인간은 누구나 욕심이 많아서, 지금 당장 거기에 없는 것을 갖고 싶어한다. 욕망을 갖는 것은 인간이 의욕적으로 사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므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 불만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마이너스 작용밖에 하지 않는다. 그러한 태도로 살면 인생은 조금도 즐거워지지 않는다. 아무리 출세가 늦더라도, 아무리 월급이 적더라도 가족 전원을 굶어 죽게 하지 않는 세대주가 훌륭한 가장이다. 먼저 그 점을 똑바로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회남자(淮南子)』는 ‘복은 재앙이 없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고 가르친다.
불만이나 만족도 생각하는 습관의 문제이다. 그것은 단순히 습관이므로 습관을 바꾸면 현재의 상황도 완전히 바뀌고 만다. 불만이 많은 사람은 사고 방식이 마이너스 사고의 습관이 되어있을 뿐이다. 플러스 사고를 하면 그 순간부터 만족으로 변한다.
신체가 건강하고 모든 기능이 잘 되어갈 때 새삼스럽게 위나 심장의 존재를 의식하는 일은 없다. 모든 일에 만족하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여서, 특별히 자기가 은혜를 입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데 일단 위장이 욱신욱신 아프기 시작하면 그것에 신경이 쓰여서 견딜 수 없다. 인간은 좋은 일에는 둔감하고 나쁜 일에는 민감하다. 마이너스 사고는 내버려둬도 할 수 있다. 플러스 사고는 의식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인생을 재미없다고 느끼는 것은 색안경을 끼고 경치를 바라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무엇을 보더라도 그 안경의 색깔에 좌우되고 만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은 자기가 그러한 안경을 끼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플러스 사고의 안경으로 바꿔 끼면 되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즐겁다고 생각하는 것이 플러스 사고의 안경을 끼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그렇게 보인다. 수수하고 평범한 인생이야말로 자연에 가장 잘 맞는 인생이다.
자연에 맞는 인생 이상으로 멋진 인생은 없다.
입지적인 삶에 대하여
배는 언제나 행선지가 있어야 닿을 올리고 항해를 합니다.
전쟁에 출전하는 용사는 승리의 목표를 의식하고 전장에 나가게 됩니다. 우리 학생들도 매일같이 등교하는 것은 먼 장래에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학교에 등교합니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다르게 목적의식이 있는 삶을 생활하는 것이 독특합니다. 목적의식 없이 생활하는 사람은 인생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볼 때 인생이란 하나의 자기 경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경영을 잘해야 많은 이익과 회사의 발전이 있듯이 학생들도 자신이 자신의 경영을 잘해야 훌륭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계획만 잘 세웠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계획을 위해서 부단히 실천하여야 합니다. 속담에 ????구슬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목표를 실천하는데는 많은 노력과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고통이 따를 때 중도에서 포기하기 쉽습니다. 성현들의 삶을 볼 때 모두가 이 어려운 과정을 지나서 훌륭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인생 항로가 영구히 방황하지 않기 위해서는 목표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꿋꿋한 의지로 실천하고 또 실천해야 합니다.
불굴의 의지를 지녀야 합니다.
『내가 자유라고 일컫는 것은 오직 하나, 즉 秩序를 동반한 자유다. 질서 및 道義와 같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질서 및 道義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자유만 자유라고 일컫는다』 - 에드먼드 버어크 -
☞ 남의 자유를 억압하고 남을 노예로 삼아서는 안됨
☞ 무질서나 방종이나 無政府상태로 전락해도 안됨
☞ 도의를 무시한 자유 ⇒ 타락과 부패 위에 피는 자유가 되어 惡의 꽃이 됨
☞ 내가 남의 자유를 짓밟을 때 남도 나의 자유를 유린함
☞ 자유의 나무는 가장 가꾸기 어려운 나무⇒지혜와 자제와 용기가 필요
☞ 권력의 침해에서 우리의 자유를 지켜야 하는 동시에 우리의 자유가 무질서와 방종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道德이나 正義나 人道를 짓밟지 않도록 조심
성 실 과 노 력
조선 선조때 양사언은 성실한 정신과 꾸준한 노력만이 성공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이 한편의 시만 보더라도 그의 성실한 정신과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정성이란 ‘ 참되어 거짓이 없다’는 뜻으로 곧 사람이 사람됨에 있어 중요한 요건을 말하는 것으로 성실한 사람이란 정성스럽고 참되어 거짓이 없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우리 사회구조가 복잡 다양하여짐에 따라 모든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생활 방식이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근본 요건을 잃고 날로 어지러워지고 난폭하여 가는 것을 우리는 흔히 보게 된다. 목적달성을 위하여서는 정성을 다하는 꾸준한 노력보다는 안일과 요행을 바라면서 불로소득 하려는 거짓된 생활을 일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성실이라고 하는 것은 오직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곧, 꾸준한 노력만이 성실한 사람을 만들고 성실한 사람일수록 자기 생활에 자신과 안정을 갖게 되며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발전적인 전진을 기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옛말에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다. 성실치 못한 사람은 항상 거짓을 앞세워 공연히 잘난 체, 아는 체, 있는 체하여 과장된 허세를 부림으로써 그것을 자랑으로 삼고 즐긴다.
그러나 인간사란 매사 사필귀정이다. 사리란 반드시 올바른 이치로 돌아가는 것이 천리며 일시적인 거짓이나 허세가 결코 진리가 되고 바른길이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 원리원칙만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변함이 없는 것이다.
옛날 중국의 주자는, 성실은 오상 즉, 인, 의, 예, 지, 신의 근본이며 백행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옛 성인은 사람을 교육시키는 데 오상부터 하고 여력이 있으면 학문을 가르쳤다고 한다. 즉, 인간 교육을 가장 중시했다는 말이다. 제아무리 지적 능력이 뛰어나고 재주가 있더라도 사람으로서의 근본적인 요건을 구비치 않고는 사람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불굴의 정신으로 꾸준한 노력을 쏟아 쌓아 올리는 성실한 생활, 그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참된 인간의 길인 것이다.
어느 사자 왕의 이야기
옛날, 어느 깊은 산 속 바위 굴 속에 한 마리의 사자가 살고 있었다. 이 사자는 늘 “나는 모든 짐승 중의 왕이다. 그러므로 모든 짐승을 거느려 지킬 힘이 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사명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고 스스로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사자왕이 살고 있는 이웃에는 원숭이 부부와 새끼 두 마리가 살고 있어 사자와 원숭이는 잘 아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원숭이 부부는 사자를 찾아와서
“사자왕이여, 당신은 늘 모든 짐승을 보호해 준다고 하셨는데, 만약 그 말이 진실이라면 우리가 나가 먹을 것을 구해 올 때까지 이 새끼 두 마리를 좀 보호해 주십시오.” 하니 “그건 어려울 게 없지. 안심하고 갔다 오게.” 하고 사자 왕은 쾌히 승낙을 하였다. 그래서 엄마 원숭이는 새끼들을 사자 왕의 굴속에 맡겨두고는 이산 저산으로 먹을 것을 찾아 나섰고 사자 왕은 원숭이 새끼를 제 새끼처럼 조심해서 잘 돌보았다. 그런후 사오 일이 지난 뒤였다. 사자 왕은 새끼 원숭이를 데리고 굴 밖으로 나가 햇볕을 쬐며 놀다가 그만 몸이 노곤하여 바위에 큰 몸을 눕히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 때 마침 하늘을 날던 한 마리 독수리가 사자 왕이 깊이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새끼 원숭이를 확 움켜쥐고는 몹시 험하고 높은 바위 위로 날아가 버렸다. 얼마 후 사자 왕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보니 새끼 원숭이가 보이질 않았다. 어디로 놀러 갔거나 나무에 올라갔겠지 하고 둘레를 살펴보았지만 그 근처엔 새끼 원숭이가 그림자도 보이질 않았다. 정신이 퍼뜩 난 사자 왕은 새끼 원숭이를 잃어 버렸다가는 맡은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되어 이거 큰일 났구나하고 다시 주위를 살펴보니 원숭이 새끼가 독수리에게 잡혀 높은 바위 위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걱정을 하였으나 독수리 밥이 될 새끼 원숭이를 구해 낼 방법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독수리에게 사정해서 구해 보는 수밖에 없겠다”라고 생각한 사자 왕은 ”독수리야, 내 소원을 들어주게. 그 새끼 원숭이는 내가 어미들로부터 부탁을 받은 것일세. 만약 자네가 원숭이 새끼를 죽여 버리면 나는 어미 원숭이에게 신용을 잃을 뿐 아니라 무참히 죽어야 하네. 그러니 그 새끼 원숭이를 돌려주게나. 내 평생에 한 번밖에 없을 부탁이네“ 하고 독수리 왕에게 애원을 하였다.
”사자 왕, 땅에서는 내가 자네를 따르지 못하지만 이 높은 공중에서는 나는 자네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네. 자네가 그처럼 원한다면 새끼 원숭이를 놓아 줄 수도 있지만 정말로 새끼 원숭이를 보호할 생각이라면 자네 몸뚱이를 내게 대신 줄 수 있겠나?“하고 독수리 왕은 큰 소리로 외쳤다.
”그건 어렵지 않네. 내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 몸을 기꺼이 자네에게 주겠네. 이 몸을 아까워한다면 나는 원숭이에게 거짓말을 한 셈이 되지 않겠나. 그래가지고는 내 꼴이 아무것도 안 되지.라고 말한 후 사자 왕은 주저하지 않고 높은 데로 올라가 몸을 던지려고 하였다. 사자 왕의 진실한 모습을 본 독수리는 급히 소리치며 말렸다.
”남을 위해 목숨을 버리면 곧 복을 받을 것이니 내 그대에게 새끼 원숭이를 돌려 드리리다. 바라건대, 사자 왕이여 스스로를 해치지 마시오.“ 그리고는 독수리왕은 새끼 원숭이를 사자에게 돌려주었다.
이리하여 사자 왕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모든 짐승 중의 왕으로 남게 되었다는 불교에서 전해지는 이 이야기는
첫째로, 사자 왕이 목숨과 바꿔 지킨 책임감이다.
비겁하게 사느니 차라리 목숨을 바쳐 내가 약속한 것은 꼭 지켜야 한다는 그 정신이 여러분의 가슴속에도 흘러 넘친다면, 놀랄 만큼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둘째는 독수리 왕의 깊은 용서 정신이다.
비록 높은 공중에서는 자기가 최고라고 하더라도 새끼 원숭이를 보호하겠다는 책임감에 감동하여 원숭이 새끼를 돌려주겠다는 생각은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책임감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는 비록 동물들의 이야기지만 우리 인간들의 생활을 반성하게 해 준다.
혹 내가 친구들과의 약속을 어기고 내게 주어진 공부나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한 적은 없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그리고 우리 주위의 친구들이나 이웃들에게 눈을 돌려 책임감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삶을 본받아야 하겠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부모님께 효도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 나라에 목숨을 바친 군인, 이것들이 어찌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이겠는가. 지금 여러분들의 부모님들은 좋은 것 싫은 것 마다하지 않고 자식이 잘되고 성공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서슴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런 부모님을 위해 여러분들이 한 일은 무엇인가. 조금이라도 훈계되는 말이라면 듣기 싫어하고 쉽게 돈을 내어놓지 않으면 집을 뛰쳐나가기 일수고……. 여러분들은 누구를 위해 하는 공부이기에 그렇게도 당당한가. 시간은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니 학생시절에 때를 놓치고 후회하지 말고 무슨 일이던 자기의 소질과 능력에 맞는 일을 찾아 최대한 노력하여 사회에 나아가 일 할 준비를 철저히 해주기 바란다. 그것이 장차 사회에 나아가 보람된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이다. 자기를 지키고 자기의 행복을 만들 사람은 오직 자기뿐이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는 삶
겨울이 된 뒤에야 소나무나 잣나무가 낙엽이 지지 않음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지금 첨단 과학의 발전으로 문명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편안함을 모르고 편안함에 쉽게 안주하려는 경향에 물들어 가고 있다. 우리들 청소년 여러분들은 기성세대가 이룩해 낸 부와 풍요를 마음껏 누리며 값비싼 메이커 옷에 필요 이상의 낭비를 하며 탈선하는 일이 많은데, 이것은 일시적인 청소년기의 현상이라고 할 지 모르겠지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그대로 방관할 수 만 없는 일이다.
이따금 보면 도벽 등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청소년들이 결손가정이 아닌 부유하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가정의 아이들이고 보면 이는 무엇인가 가정에 문제가 있다고 보야야겠다. 따라서 가정교육은 돈이나 지위로 되는 것이 아니요, 부모로서 자식이 올바르고 성실하게 그리고 떳떳하고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이다. .그러기에 교육은 먼저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하며 가정에서 바르게 자란 아이들이 열심히 학교 교육을 받고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아 착실하게 준비하고 노력할 때 자기의 삶은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언제부터인가 해 보지도 않고 노력도 없이 되는 대로 쉽게 살아가려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다.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삶의 목표를 뚜렷하게 가져야 하며 그 목표를 실현할 수 있도록 그 어떤 고통도 마다하지 않는 절제와 인고의 정신이 필요하다. 고통이 따르지 않는 보람이란 있을 수 없으며 보람이 없는 가치로운 생활은 더더욱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고통이 배지 않은 삶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으며, 진실할 수도 없다.
현재의 고통을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좀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큰사람’이 되기 위한 밑거름으로 생각하고 좀더 마음을 튼튼히 다져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 나가는 행복의 씨라고 생각하자.
땀 흘리며 사랑으로 가꾼 결실처럼 나에게 부딪치는 모든 것들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살아가는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자.
참다운 삶의 방법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간에 시작이 있고, 행동이 있고, 그리고 결과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생에 세운 큰 설계를 실천해 나가는 데는 한 해 한 해의 설계가 있어야 하고 또한 하루하루 계획을 세워 실천하며 생활해 나갈 때 보람있는 삶이 될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소질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기의 재능을 파악하고 자기의 진로를 찾아 열심히 노력한다면 누구라도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아 꾸준히 끝없는 노력을 계속한다면 인생은 성장하며 성숙해 가고, 끝내는 소망하는 꿈을 성취할 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향상을 꾀하자면 남보다 한 단계 높은 이상을 가져야 한다. 남이 하는 것을 흉내나 내고 겨우 따라 한다면 보다 훌륭한 자신의 성장을 바랄 수는 없다 그러나 행보는 신중히 하며, 남보다 조금 늦는다 싶어도 조급히 서둘지 않고 침착하게 걷는다면 남보다 앞설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서둘다가 실수를 하고 시행착오를 하게 된다면 그 길이 더 늦고 방향을 잃게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칫 저돌적이 되어 가끔 궁지에 빠지는 일이 있을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 내실을 위해서 긍지를 가지고 진취적인 자세로 임하며, 실제 생활에서는 신중하게 행동하여야 뜻하지 않은 재난을 막을 수 있으며, 영원히 남아 있을 자기 성취를 이루는 것이다. ‘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 이라는 속담이 있다. 천천히 갈지라도 믿음직스럽고 이루는 바가 크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신중하고도 철저한 삶의 자세를 가르쳐 주는 말이라고 하겠다.
한 단계 높은 이상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삶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열심히 배우고 부지런히 노력하며 예절바른 생활을 실천하는 길이 새롭게 출발하는 참다운 삶의 지름길임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큰 뜻을 품고 살아가도록 노력하자.
雅 量 과 容 恕
◇ 하루 한 번 용서해 주기
인간은 일상 생활에서 순간마다 ‘사랑과 미움(Love & Hate)’이 교차하는 생활을 한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미워하는 마음이 많은 이는 나쁜 쪽의 사람이요, 사랑하는 마음이 많은 이는 좋은 편의 사람이라는 점이다. 더욱 훌륭한 사람은 ‘사랑과 미움’을 초월한 사람 일 것이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부처님은 온갖 중생을 모두 복되게 하라고 가르치셨다. 독사도 남이 해하지 않는 한 물지 않는다. 아무리 성질이 고약한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잘 듣는다.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은 된 사람이요, 용서하지 못하는 이는 아집과 고루한 생각의 포로가 된 사람이다. 용서할 때마다 그 사람의 영혼은 살찌게 된다. 교실에서나 밖에서나 일상 생활에서 남과 충돌할 경우 화내지 않는 사람이 되자. 남과 다투지 말고, 하루 한 번씩 용서해 주는 일을 생활화하자. 단, 용서와 묵인은 성질이 다른 것이다.
◇ 남 험담 않기
살다 보면 잘 한 일도 있고, 잘 못한 일도 있기 마련이다.
남의 잘못을 보고 없는 데서 말하면 험담이 되고, 면전에서 말하면 충고가 된다.
그러나, 상대가 안 받아들이면 싸움을 건 꼴이 되고, 받아들인다 해도 쾌히 받아들이는 경우는 드물다고 보겠다. 그 원인은 상대가 받아들일 태세가 갖춰지지 않은 경우, 즉, 수양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자기를 알아보려면 자기가 잘못했을 때 충고해 주는 이가 있는가를 알아보면 된다. 내가 덜된 사람일 때는 받아들일 태세가 안된 것을 알고 충고 해 줄 사람이 없을 테니까!
사람은 의식이 있는 한 생각을 멈출 수 없고, 또한, 말을 안할 수 없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므로 항상 심사 숙고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서 말을 해야한다.
우리 모두 ‘험담 않는 학생, 잘 해 주는 학생’이 되자.
◇ 내가 먼저 사과하기
일상 생활에서도 사과할 일이 생긴다. 교양있는 사람은 얼른 상냥하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구실 찾을 궁리로 뜸을 들인다. 그래서 그 태도를 보고 사람됨을 가늠한다.
사과를 많이 하면 겸손해지게 되고, 겸손해지면 지혜의 눈이 밝아지기 마련이다.
‘우리 모두 겸손하게 먼저 사과하는 사람’ 이 되자. 그런 사람이 된 사람이다
일하는 것과 움직이는 것의 차이
옛날 농부는 밤하늘의 별을 보고 올해의 기상을 판단하고 바람의 냄새를 맡고 비를 예측했으며, 흙의 성질, 종자의 성질에도 모두 능통했다. 나이 많은 농부는 오늘날의 농학자에 비교될 만한 농업의 전문가이었다.
그러나 공장의 근로자는 나사를 돌리는 사람은 나사만 돌리고, 기름을 칠하는 사람은 기름만 칠한다. 농부는 일의 전 과정을 관리하지만 공장 근로자는 전체 일의 극히 일부분만을 반복적으로 되풀이 할 뿐이다.
이렇게 하다 보니 공장 근로자는 단순하고 틀에 박힌 사람이 되었으며 농부가 갖고 있던 지혜와 멋을 잃어 버렸다. 일은 단조롭고 지루한 반복일 뿐이고, 근로자들은 오직 임금을 받기 위해서 일할 뿐이다. 일은 아주 단순하여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월급을 받는 것이다. 일은 재미없고 누가 해도 그만이고, 나는 시키는 대로하고 월급만 타 가면 그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생각을 깨뜨려야 할 때가 되었다.
일을 재미있게 하는 사람들이 역사를 움직여 왔다고 한다. 하기 싫어서 하는 일과 즐겁게 하는 일의 차이는 엄청나다. 사람들에게서 일하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때에 사회가 발전한다.
로마가 게르만에게 멸망당한 이유가 무엇인가? 로마의 노예들은 채찍 아래 강제로 일했으나, 게르만의 농민들은 자기 땅에서 즐겁게 일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움직이는 것과 일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초관리의 눈으로 보면 생각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일하는 것은 일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라고 본다.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이라면 기계가 반복 작동되는 것과는 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생각하면서 일한다는 것이다.
공장과 기계 시스템은 인간의 창의성을 부릴 여지가 없게 만들어 버린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기계는 어떤 공장에 들어와서 거기 정착하여 가동될 때까지 무수히 많은 창의성을 요구한다. 어디에 설치해야 할 것이냐 에서부터 시작해서 기존의 기계와의 연결은, 부품의 흐름은 다 어떻게 조절하고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모두 사람의 힘이 필요하다.
조그마한 개량이나 작은 변화의 여지도 무척 많다. 갖다 놓는다고 그 때부터 기계가 알아서 만사를 다하고 사람들은 그저 구경만 하는 법은 없다. 기계는 근로자와 서로 한 몸이 되어 최상의 팀워크를 이루어야 한다. 기계와 사람은 가까워지고 친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많은 아이디어와 창의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일하는 것이다.
성 탄 절
오늘날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백성들은 오랜 옛날부터 하나님을 그들의 유일한 신으로 믿고 살아왔다. 그들은 하나님과 기도로 대화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죄란 인간이 가져서는 안될 욕심, 게으름, 시기, 다툼 등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들은 점점 하나님의 뜻과는 다르게 죄를 많이 짓게 되었다. 그래서 인지 여러 차례 이웃나라의 침입을 받았으며 강대국의 통치하에서 압박과 설움을 당했다. 그럼에도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참아 내며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았는데 그것은 하나님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즉 하나님은 그들을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며 세상의 고통과 시련 속에서 구원시켜 줄 하나님의 아들을 그들에게 보내 준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일로 마태복음과 누가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쓰고 있는 서력 기원이 예수 탄생을 기준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기원전 4-5년경이라고 하며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을 구원해 주신다.”의 뜻이며,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즉 “구세주”를 의미한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우리 나라는 물론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쁨을 찬미하는 행사가 열린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불리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선물을 나누고 서로 축복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풍습이 전해진다. 전날 밤을 크리스마스 이브라 하여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흰 수염 붉은 모자, 붉은 옷에 선물 보퉁이를 메고 썰매를 타고 찾아와 집집마다 굴뚝으로 들어가 착한 어린이에게 양말 주머니에 선물을 준다는 이야기는 19세기초부터 시작된 일로 보여진다. 산타클로스는 3세기말 어린이를 보호하는 성 니콜라스의 애칭이다. 독일에서 비롯된 크리스마스 트리는 크리스마스 기간의 장식물로 가지가 곧은 푸른 나무에 양초, 완구, 인형, 종, 과자 따위를 달아매고 눈송이를 본떠 솜을 얹는다.
크리스마스는 이제 전세계의 축제일이다. 그러면 예수 탄생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성탄절을 보내면서 우리는 여기에 담겨져 깊은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직업인으로서의 시민 생활
자신을 잊고 무엇인가에 열중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인생의 숭고함을 엿볼 수 있다. 재물이 많다고 해서 무위도식한다면 그 사람은 폐인이나 무기력한 인간이 되고 말 것이다. 왜냐 하면 인간은 일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키고 생활의 즐거움을 얻으며 사회에 봉사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직장은 가정 다음으로 중요한 생활의 장이다. 자기가 하는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열중하여 일의 삼매경에 빠진 사람은 그 자체로서 행복할 뿐만 아니라, 두 가지 보상을 받는데, 그 하나는 창조와 성취의 기쁨이요, 또 하나는 명예나 보수와 같은 사회적 보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땀흘려 일하는 속에 얻어지는 행복과 성취하는 데서 오는 기쁨을 기대하면서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먼저 능력과 소질에 맞는 적성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 나라에는 많은 대학과 대학원, 전문대학이 있고 해마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고급 인력이 배출되고 있다. 그러면 이 많은 고급 인력이 모두가 원하는 직장에 취업이 된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 소수를 제외하고는 원하지도 않는 직업을 얻어 마지못해 일을 하게 될 것이니 이러한 일은 신명도 나지 않을 뿐 아니라 능률도 나지 않을 것은 뻔한 사실이다. 그러니 무엇보다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아 자신 있는 일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소년 여러분은 학업에서부터 열심히 노력하고 자기가 하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고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인간의 창의에 의한 개선을 기다리고 있고 또한 개척해 주기를 기다리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들이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 우리들의 손을 기다리고 있느니 만큼 그 중에서 나에게 가장 적합한 일을 찾아 내 인생의 큰 뜻을 펼쳐 행복을 찾아나가자.
맹자는????일을 하는 것은 마치 우물을 파는 것과 같다. 비록 아홉 길을 팠다 해도 샘물이 나오는 데까지 미치지 못한다면 우물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인간이 무한한 열정을 가지고 하는 일은 대부분 성공을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난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비관적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부모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재능이나 결점을 그대로 받아드려서 그것을 긍정하고 그 바탕 위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구두를 닦는 링컨 대통령
어느 날 아침 비서가 무심히 복도를 지나려니까 한 모퉁이에서 구두를 닦는 사람이 있었다. 비서가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링컨 대통령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링컨은 시골뜨기라서 대통령으로서의 품위가 없다고 비난을 받는 터라 비서는 대통령에게 충고를 할 때가 바로 이 때라고 생각하고
“ 각하, 대통령의 신분으로 그런 모습을 사람들이 본다면 좋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링컨 대통령은 빙그레 웃으며,
“아, 신을 닦은 것이 부끄러운 일인가? 대통령이나 구두닦이나 다 같이 세상일을 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잠시 쉬었다가,
“세상에는 천한 직업이라고는 없네, 다만 천한 사람만이 있을 뿐이지.” 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렇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무슨 일이든 사람 사람마다 자기의 능력에 맞는 일을 해야만 신명도 나고 어려움도 모르는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해 보라. 얼마나 하기 싫고 지루한가, 그런데 요즘 3D 현상이라고 하여 힘들고 어려운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일은 누가 할 것인가. 남이 하지 않는 일, 그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가장 장한 사람이고 사회에서 가장 극진한 대우를 받아야 할 사람이다. 그런 일을 천하게 생각하는 그런 마음가짐, 그런 사회, 그런 국가가 잘못된 것이다.
예로부터 ‘쟁이’를 소중하게 대우하던 그런 나라들은 지금 모두가 선진국이 되어있다. 두드리고 만들고 하는 직업, 바로 그것이 오늘날의 과학이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인공위성도, 큰 땅덩이를 찰나에 재로 만든다는 폭탄도 ‘쟁이’들이 만든 것이 아닌가. 그러니 언젠가는 우리 사회도 ‘쟁이’들이 가장 최고의 대우를 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공부를 못한다고 낙담하거나 자포자기하지 말아라. 여러분들도 공부 잘하는 어느 학생보다도 더 잘하는 일이 반드시 한 가지는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소질이나 재능과 관련된 직업을 찾아라. 그러면 반드시 신명날 것이다. 그 다음 성공과 실패는 여러분 자신이 그 일에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그러니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라. 그리고 먼저 자기가 가진 소질을 찾아 보라. 그리고 서서히 준비하라.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사람, 두 번째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 세 번째는 있어서는 안될 사람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천한 사람은 직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세 번째와 같은 있어서는 안될 사람인 것이다.
링컨 대통령도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남의 집일을 해주며 힘겹게 고학을 해서 미국의 대통령까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 준 사람이다.
또한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일이 있고 모두다 좋은 일을 하고 싶고 훌륭한 대우를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저마다 편하고 대우받는 일만을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고 우리 사회는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이 있다. 그러니 직업에 귀천을 논하지 말고 쓸모 있는 사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
『우리가 죽을 때에 역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네 가지의 질문이 있다.
당신은 그 질문에 ‘그렇습니다’라고 긍정적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 J. F. 케네디 -
1. 당신은 용감하였습니까? → 責任과 職分의 도리
2. 당신은 현명하였습니까? →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해 올바른 事理 判斷
3. 당신은 誠實하였습니까? → 떳떳하고 光明正大한 삶
4. 당신은 獻身하였습니까? → 창조의 기념탑을 쌓고 보람있는 생애
졸부(猝富) 들의 행진
도시 변두리에서 대대로 농사를 짓고 살았던 한 부자(父子)가 의견이 서로 맞지 않아 서로 갈라서게 되었다. 아들은 쥐구멍에도 햇빛이 들었다고 기고만장하면서 나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고 장담했다. 논밭의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아들의 배포가 이렇게 바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자 아비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만 살아 남는다고 타일렀지만 돈맛을 안 아들은 막무가내였다.
아비는 도시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시골로 가서 지을 수 있는 만큼의 논밭을 사서 다시 농사를 지었고 아들은 도시에 남아 사업을 한답시고 이 사업 저 사업에 손을 댔다. 돈이란 본래 양고기 같아서 있으면 버러지들이 몰려들게 마련이다. 그 버러지들은 입 속의 사탕처럼 굴어 주고 매양 허리를 굽실거리고 손을 비비면서 상전을 모시는 종놈처럼 비윗장을 맞추어 주게 마련이다. 아들은 여기에 놀아나 하늘이 돈짝만하게 보이게 되었다. 돈을 보고 버러지들이 그렇게 하는 줄도 모르고 아들은 날마다 펑펑 호기를 부렸다.
돈이란 벌기는 어려워도 쓰기로 말하면 태산같이 쌓인 돈이라도 몇 년만 탕진하면 먼지처럼 날아가고 만다. 아들은 이런 줄도 모르고 설치는 동안에 사기꾼 기생충들이 양고기덩이를 통째로 말아먹고 사라져버렸다. 그제야 아들은 사기를 당했다고 땅을 쳐본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쥐구멍에 햇빛은 사라지고 아들은 막막했다. 어디로 갈까? 이 아들이 덕이란 것을 조금만 알았더라도 졸부인 것을 알아차려 망하진 않았을 것이다.
어디 땅값이 올라 생겨난 거금 탓만으로만 졸부가 생기는가. 권력을 팔아 세상을 뭉개는 졸부도 있고 지위를 앞세워 보이는 것이 없는 졸부도 있으며 알량한 지식만 믿고 오만한 졸부들도 있다. 사내 졸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계집 졸부(졸부)도 있다. 50만원 짜리 브래지어를 차고 50만원 짜리 팬티를 입고 우유로 목욕을 하며 몇천 만원 짜리 보석을 감고 몇백 만원 짜리 옷을 걸친 계집 졸부들이 강남에 가면 득실거린다고 한다.
사내 졸부든 계집 졸부든 이러한 치들은 쓰레기에 불과할 뿐이지만 우리에게 사는 맛을 가시게 하고 세상을 썩은 냄새로 진동하게만 한다. 그들은 제 몸 하나만 알 뿐 남이야 죽든 말든 아랑곳없다는 무리들이다. 공자는 인간의 세상에서 이러한 무리들 탓으로 항상 근심을 하고 살았던 것이다.
덕을 닦지 못하는 것과 배움을 익히지 못하는 것, 그리고 올바름을 듣고도 따르지 못하며 그름을 보고도 고치지 못한 것 등등이 나의 근심거리이다. 이렇게 공자는 말씀하였다.
( 子曰 德之不脩 學之不講 聞義不能徒 不善不能改 是吾憂 )
가치관 정립을 위한 자세
요즈음 우리는 급격한 사회변동 속에서 가치관의 혼란을 경험한다. 가치관이란 인간이 삶이나 어떤 대상에 대해서 무엇이 좋고 옳으며 바람직한 것인지 판단하는 과정을 말한다. 세계화 시대 속에서 세계의 각 문화가 유입되고 세계의 가치관이 뒤섞여 진정 우리가 선택하고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얼마전 나는 수업시간중 “남자가 화장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동성연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것은 학생들이 다양한 가치들을 접하면서 비판적 사고를 하고있으며, 그럼으로써 올바른 가치관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를 보기 위함이었다.
생각대로 많은 학생들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발표했다. 그러나 개중에는 그런 의문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학생도 있었다. 다 자기 멋과 생각에 사는데 왈가왈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무비판적이고 무관심한 태도가 바로 우리사회의 가치관 혼란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양한 가치관이 존립하는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자신의 멋과 생각에 의하여 사는 것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우리 사회를 묶어주는 합의된 가치관은 더욱더 존재하고 존중되어야한다. 그것들은 그 시대의 사상으로 나타나 그 시대를 이끄는 힘이 된다.
현대에 들어와 절대적 신념으로 받아들인 서구의 경험론, 공리주의, 합리주의 등에 의한 세계관 및 가치관은 지구의 피폐를 가져온 원인으로 지적되면서 오늘날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우리도 이제 서구 중심의 사고방식이 발전을 가져온다는 사고방식을 버려야하지 않을까?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가치관을 돌이켜 보고 인생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가치관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고민하고 선택할 때 우리시대의 사상이 정립되고 우리사회가 밝게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후 한 인 품 과 후 광
장님신부의 사랑
서고(徐固)의 셋째 아들 서해(徐嶰)는 어릴 때부터 학문이 뛰어나고 후덕한 인품으로 그 후에는 조선조 대표적인 명문 갑족을 형성했다. 자는 정지 호는 함재(涵齋).「후한 끝은 번성하고 악한 끝은 망한다」는 격언이 이를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그의 후예는 대구 달성 서씨의 거대한 산맥으로 문무 백관을 줄을 이어 배출하고 학덕이 세상을 흔들었다.
그는 1537년 8월에 경북 안동군 일직면 소호리에서 태어났다. 서해는 일찍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다. 동문 수학한 인물로는 유서애(柳西崖), 김학봉(金鶴鳳), 조월천(趙月川)등이 있었다.
그러나 퇴계는 제일 젊은 소년 함재공 서해를 더욱 사랑했다.「나의 후계자는 서해가 될 것이다」라며 널리 자랑을 하기도 했다.
그의 뛰어난 학문이 세상에 알려져 서울의 부호 고관들이 매파를 넣어 사위 보기를 청했다. 그는 가난한 집안으로 14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인 순흥 안씨 슬하에서 자랐다.
「내가 아직 공부를 다 마치지 못했고 또, 나이가 많지 않으니 장가 들기가 급하지 않다.」고 나이 20이 되도록 결혼을 거절했다. 마침 이때 일찍 대과에 급제해 청풍군수를 지낸 고성이씨의 명문세도이며 가세가 부유한 이고(李股)가 퇴계 문하에 인재가 많다는 것을 알고 사위감을 추천해 줄 것을 부탁, 퇴계는 서슴없이 서해를 천거했다.
서해도 더 이상 거절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사주를 보내고 행례의 택일을 했다. 시골의 청년 선비가 서울의 명문 집안으로 장가들게 됐으니 서해의 집안은 경사를 만난 것이다.
혼례식 날이 닥쳐왔다. 신랑 서해는 말을 타고 신부집으로 향했다. 일행은 신부집에 거의 이르러 여독을 풀기 위해 길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마을 사람들이 신랑 구경을 하느라 우르르 모여서 자기네끼리 대화를 나누는 중에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신랑은 잘 생겼는데 신부가 맹인이니 가엾기도 하지……」신랑 측으로선 날벼락 같은 충격이었다.
「즉시 파혼하고 돌아가자」고 후행 온 집안 어른들은 흥분이 대단했다. 마지막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은 신랑 서해였다. 그는 한 마디로 결혼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비록 장님이라 하나 사주를 보냈으니 백년 가약을 맺은 것. 만약 내가 규수를 외면한다면 가여운 그 여인은 장차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것도 하늘의 인연이니 저버릴 수가 없습니다」라며 말을 달려 신부집으로 들어섰다.
초례도 무사히 치러지고 화촉동방의 밤이 깊어갔다. 절세 미녀인 신부. 명문 집 맏딸로 곱게 길러진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은 한 떨기의 연꽃과도 같았다. 하지만 앞을 못 보는 장님. 이 규수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었던 것은 아니다. 5살 때 부자 탕으로 얼굴을 씻다가 시비의 불찰로 약물이 두 눈에 들어간 것이 실명의 원인. 백방으로 치료를 했으나 효험이 없었다.
너무도 아름답게 생긴 규중 미녀에게 하늘이 시샘을 한 것일까. 원통하기 그지없는 미녀 불구자. 지혜롭고 총명하기 이를 데 없는 가인의 억울한 실명은 부모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혼기가 닥치자 아무데나 짝을 지어 줄 수 없어 흠(缺)을 숨기고 혼사를 맺었던 것이다. 신부는 자신의 결점에 황공하고 미안해 어쩔 줄 모르며 떨고 있었다. 신랑의 태도가 어떨까. 가슴 조이는 신부의 귀에 부드러운 음성이 꿈처럼 속삭이고 있었다.
「부인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비록 보잘 것 없는 위인이나 어찌 부인의 허물을 탓하며 괄시하겠소. 부인의 정숙한 재덕과 아름다운 용모는 그 조그마한 허물을 덮을만 하니 오히려 나에게 과분하오. 내 어찌 부인을 소홀히 대하겠소……」신부는 이 같은 따뜻한 위로에 감동하여 눈물이 그쳐지지 않았다.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신부를 따뜻이 안아 주는 서해(徐嶰). 그는 홀로 계신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이며 가족 친지들에게 처신할 때의 주의 등을 다정히 일러주니 더욱 감사함이 이를 데 없었다.
「서방님은 군자이십니다. 제가 병신인데도 그것을 숨기고 청혼한 것을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저를 버리지 않으시니 이 은덕이 태산 같이 높고 바다 보다 깊습니다. 제가 어찌 죽음으로 서방님께 은혜 갚기를 마다하겠습니까」
정겨운 첫날밤의 백년 가약. 기나긴 밤도 짧은 듯이 사랑의 속삭임이 그칠 줄 몰랐다. 그 뒤로도 아내는 남편을 하늘 같이 섬기고 남편은 아내를 보물처럼 사랑하니 부부의 금슬(琴瑟)은 남달리 뛰어나 세인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인간의 운명은 기구한 것. 그렇게 후덕하고 인자한 서해도 반짝하는 인생을 살고 23세의 젊은 나이로 1559년(明宗 14년 己未) 9월 제대로 깊은 학문의 뜻을 펴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년전(戊午) 5월 출생한 아들과 부인을 남기고 저 세상으로 갔지만 그가 베풀어 놓은 음덕은 영원히 후세에 살아 있게 되었다.
다정한 남편의 풋사랑도 채 익기 전에 암담한 시련을 맞은 이씨. 친정 집의 도움으로 장례를 치른 후 시골에서 살 길이 막연해 강보의 유아를 안고 친정 집에 가까운 서울 藥峴(현 중림동 천주교회 자리)으로 이사를 했다. 이것은 이고가 딸과 외손자를 위한 특별 배려에서였다. 서해의 아들은 서성(徐渻). 그의 자는 현기(玄紀)요 호는 약봉(藥峰)으로 선조 때 이름을 떨친 명신이 되었다.
앞 못보는 이씨 부인은 아들 서성을 눈 뜬 사람 이상으로 가르치기에 전념했다. 학문은 물론이요 예의범절에서 대외 처신에 이르기까지 맹모를 능가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친정의 도움만을 받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남녀 하인들을 지휘하여 제조하기 시작한 것이 술, 약밥, 강정, 다식, 산자. 이 특수한 음식은 삽시간에 서울 장안의 명물이 되었다.
이 음식 솜씨는 자부에게 전해졌고 소문이 왕실에까지 알려졌다. 임금에게까지 진상하게 되어 선조가 음식 맛을 보고 약봉가인 약현에서 만들어졌다 해서 약주(藥酒), 약식(藥食), 약과(藥果), 전과(煎果), 약포(藥脯)라는 이름을 내려 이때부터 그 명칭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또 아들 서성의 호를 약봉이라 한 것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총명하기 이를 데 없는 약봉 서성. 그는 하나를 배우면 능히 둘 이상을 해득하는 천재였다. 그는 당대의 문장가로 이름을 날리던 귀봉 송익필 문하에서 글을 배웠다.
서성이 교유한 당시의 인물로는 사계 김장생, 만사 심지원, 수몽 정엽. 이들은 서성과 함께 어깨를 겨루는 당대의 문장가들이다.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 정경부인이 된 이씨. 자손들의 등귀로 생전에 벼슬을 외면하고 학문에만 힘쓰다 일찍 별세한 남편 서해는 뒤에 영의정에 추증된다.
77세까지 장수한 이씨 부인은 21세에 과부가 되어 비록 해로의 복을 누리지는 못했으나 장수를 하면서 등귀한 아들 손자 증손이 수십 여명에 이르러 부귀와 영화를 한꺼번에 마음껏 누릴 수가 있었다.
늙어서 이씨 부인의 현숙을 기려 왕궁에서 약현 옛터에 거처할 집을 신축하기로 했다. 그 자손이 번창한 것을 고려하여 대청을 널찍이 30간이 넘도록 만들도록 했다.
이 때 하루는 지팡이를 짚은 이씨 부인이 공사장을 두루 살폈다. 노부인은 마루에 올라서서 한참 동안 주변을 확인하고는 아들을 불러 탄식했다.
「지금 내가 죽으면 복 입을 내 손자 손녀가 이 대청에 들어서서 제사 지내기가 힘들 것이다. 하물며 2~3대가 내려가면 내 자손이 몇 백, 몇 천명에 이를 것인데 이 대청은 소청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마당에 보조 계단을 만들지 않고는 안 될 것인데 누가 이렇게 좁게 설계를 했느냐」며 꾸짖었다.
이씨 부인의 예언은 하나도 틀림이 없었다. 외로운 어린 독자를 키워서 불과 1백년만에 자손이 천 여명에 달했다.
그리고 거의가 문무관에 등제했고 경상이 수십 명에 금권자(金圈子) 옥권자를 헤아릴 수가 없어 말(斗)로써 계산할 만큼 재상들이 줄을 이어 쏟아졌다.
설 날 ( 민속의 날 )
한 해가 시작되는 첫날을 ‘설’ 또는 ‘설날’, ‘원일(元日)’ 이라고 합니다. 일년의 첫째 날로서 첫 출발 일이므로 중요한 날이며 일년 중 가장 큰 명절입니다. 그래서 이 날은 말과 행동을 조심하여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옛날부터 일년 운수는 새해 첫날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마음과 몸가짐으로 계획하고 실천할 것을 다짐하기도 합니다.
새해 아침 설빔으로 갈아입고 온 가족이 정성껏 마련한 제물로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며, 부모님과 친척, 이웃 어른들께 세배를 드립니다. 이 날은 세찬으로 떡국을 먹는데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떡국에는 꿩고기를 넣는 것이 좋으나, 구하기가 어려워 닭고기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속담에 “꿩 대신 닭”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온 것이지요. 어른들은 세뱃돈을 주시며 “올해도 건강하고 공부 잘해라” 하며 덕담을 하셨습니다.
정월에는 널뛰기, 윷놀이, 연날리기 등의 놀이가 행해져 이웃간에 친목을 도모하고 협동심을 길러 밝은 한 해를 꿈꾸기도 합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훌륭한 세시풍속을 아는 것이 우리 것을 지킬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見解 차이가 말다툼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라』
1. 論爭을 기꺼이 받아 들여라.
2. 당신이 느낀 첫인상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3. 당신의 성질을 억제하라.
4. 상대방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라.
5. 의견이 일치할 수 있는 분야를 찾도록 하라.
6. 솔직하라.
7. 그의 의견을 다시 생각해 보고 면밀히 검토해 보겠다고 약속하라.
8. 상대방이 관심을 표명해 준데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함을 보여라.
9. 그리고 난 다음에 두 사람 모두 좀 더 시간을 두고 문제를 숙고해 보기 위하여, 토론하는 것을 연기하도록 하라.
http://je333.com(태릉고등학교 생활지도부 교사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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