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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자료(5)
교 통 문 화
인간이 사는 곳에는 문화가 있기 마련이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룩된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것이다. 요즈음 교통 문화란 말이 자주 쓰이는데 문화 내용 중 교통에 관한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방안에 앉아 있는 사람의 일은 잘 알려지지 않지만 거리에 나 다니는 사람 이야기는 회자되는 것과 같이, TV에는 거리 모습, 통행인이나 차의 모습이 먼저 비쳐져 전 세계로 널리 전파되는 것을 본다. 자동차 한 대가 종일 거리를 누빈다면 수많은 사람의 눈에 뜨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버스나 택시에 선전판이 붙는 것이다.
우리의 교통 문화는 우리 한국인의 문화 수준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 실태를 알아보자.
각종 차량은 자전거(무동력)말고는 면허가 있어야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면허는 자동차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숙지한 사람에게 주어진다. 잘 지킬 사람인지의 여부는 따지지 않은 채....
따라서 우리 나라 사람들의 운전 행태를 보면 한심하다 아니할 수 없다. 몇 가지 중요한 예를 들면
① 규정 속도 위반(거의 모든 차가 위반 중)
② 신호 위반 (버스나 택시가 더 심각)
③ 건널목 무시(일단 정지선, 보행자 우선은 전혀 안 지켜짐)
④ 야간 감속 운행 무시(야간에 시내 질주)
⑤ 시내 경적 금지 무시(조금만 머뭇거려도 빵빵)
⑥ 주·정차 위반(정상을 참작할 수 있지만 너무하다.)
⑦ 음주, 무면허 운전 여전(위반하면 벌금300만원, 면허 정지인데)
⑧ 집 앞 주차 금지 푯말 (공로를 자기집 땅인 양 푯말을 세운다.)
보행자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교통질서를 지키지 않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① 차도로 걷는다
② 길을 함부로 건넌다.
③ 여럿이 길을 휩쓸며 지나간다.
④ 빨간 신호등일 때도 길을 건넌다.
⑤ 대도시, 서울이 더 문란하다.
법은 강제 규범이다. 교통 법규는 지키기 위해 정해진 것이다. 또한, 법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00마력의 차와 1/10마력의 사람이 부딪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자기가 차를 탔다고, 자기가 센 입장이라고 마구 밀어붙이는 꼴이 아닌가? ‘한국인은 자기 입장에서 세상을 내다본다.’는 말이 있다. 차를 운전하는 이는 차 입장에서 보행인을 탓하고, 보행자는 ‘차가 비키겠지’하는 태도로 차도를 유유히 걷는 것을 흔히 본다.
시비가 붙으면 이와 같은 사고(思考)는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그래서 우리 한국 사회는 시끄럽고 더 많은 규제가 걸리고 더 많은 단속 요원이 필요하게 되어 결국 국력 낭비 요인으로 이어진다. 서울시의 예산중 교통관계 비용이 다른 비용보다 휠씬 많다고 한다. 병원에는 교통 사고 환자 수용실이 따로 있어야 할 형편이다.
교통문화는 점차로 성숙되겠지만 근래에 차량이 폭증하여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이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선진국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고 하지만 현재 그들의 모습을 보고 듣노라면 우리는 왜 그렇게 안 되는가? 한숨이 절로 난다. 마음 한번 고쳐먹으면 곧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보행인이 횡단 보도에 나타나면 차가 멀찌감치에서 기다리는 모습(호주). 교통사고 사망자 수 0에 가까운 뉴질랜드, 규정속도 잘 지키는 미국, 앞차가 머뭇거려도 뒤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는 영국인.... 우리가 본 받아야 할 모습이다.
우리 평고 학생은 오늘의 한국 문화의 위상을 살펴 볼 줄 알고, 잘못된 점을 눈여겨두어 이 다음에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각오를 굳게 다짐해야겠다. 매일 등하교길의 교문앞에서, 길 건널 때 마구 뛰어 위험하고 볼상 사나운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전교생이 다시 한 번 결심해 주기 바란다. 미래의 한국 건설을 위한 선구자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罰을 통해서는 잘못한 것 단 한 가지밖에는 고칠 수가 없다.
그러나 賞을 줌으로써는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
∙상의 교육적 효과의 중요성
∙상을 통해 名譽의 소중함을 일깨워 줄 필요가 있음.
∙자신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그 自負心, 그 名譽心이 그 전보다
그를 몇 배나 성실하고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만들 수 있음.
거리질서 지키기
‘거리 질서 잘 지키기’ 는 반세기에 걸쳐 강조되어 온 일이다. 자유당 때에는 ‘좌측 통행’, 그 이후, ‘거리 질서 지키기’ ‘횡단 보도로 건너기’ 등으로 관심이 쏠리더니 요즈음엔 차의 ‘정차선 바로 서기’에 까지 이르렀다.
잘 되면 강조하지도 않는다. 안되니까 수 십년 되풀이하여 계속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50년대의 자유당 정권 때에는 그런대로 순수하게 느껴지고 자율적으로 잘 지켜지는 것 같았다. 공화당의 60년대 이후에는 무섭게 단속하는 바람에 표면상 잘 되는 것 같았다. 그 이후, 학생들의 반정부 시위가 잦아지면서 사회 기강조차 문란해지더니 단순한 보행자의 질서뿐만 아니라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조차 질서를 우습게 알고 마구 차를 질주한다. 생명과 관련된 일인데도……
거리 질서뿐인가? 사회 규범 전반에 걸쳐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희박한 상태이다. 정권이 바뀐다고 질서조차 바뀔 수는 없는 것이다. 한결같이 지켜야 할 국민의 사회 생활을 위한 기본 교양인데, 수십 년을 강조하고 수십 년을 안 지키며 우리는 살아 왔다.
물론 대다수의 국민들은 잘 지키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 사회가 이제까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질서는 하늘의 법률, 지키면 편리하고 안전한 것’
이제부터 우리 학교도 질서를 잘 지키기로 평판이 높은 명문고로 만들어야 한다.
◎ 교실에서 질서를 지킨다.
◎ 복도에서 좌측 통행을 하고 급히 뛰지 않는다.
◎ 항상 차례와 순서를 지켜 점잖게 처신한다.
◎ 공원이나 유원지에서 행락 질서를 잘 지킨다.
◎ 횡단 보도로 건너고 항상 차 조심한다.
◎ 쓰레기 나누어 모으기를 철저히 잘 한다.
자발적 참여 자세
스스로 좋은 일, 궂은 일 하기
어떤 일을 스스로 하는 것과 시켜서 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스스로 하는 것이 천냥이라면 시켜서 하는 일은 잘 해야 반값밖에 안 나갈 것이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고, 자주적으로 행동하는 점이라고 하겠다. 스스로 좋은 일을 찾아서 하고, 궂은 일을 싫어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앞선 사람이요, 훌륭한 성품의 소유자이다. 이런 사람은 매사를 성실히 할 사람이고, 개인적으로 성공할 것이요, 집안을 화평하게 거느릴 사람이고, 국가를 살찌게 할 사람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유익한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는 모범된 생활을 해 나감으로써 나의 존재 가치를 높이고 인생의 보람을 찾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생활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내가 먼저 솔선하기
“좋은 일은 내가 먼저 솔선하여 행하자”
몸을 사리고 꾀부리는 형의 사람의 인생은 끝이 좋지 않다. 결국 땀 흘려 일하기는 싫고, 좋은 것은 많이 누리려 하니, 오랜 세월 누가 한결 같이 나만 위해줄 것인가? 있는 재산 다 탕진하고 가까운 친구 멀어지니 외롭고 궁색한 인생의 말로를 걷게 될 것이 자명하다.
눈에 띄는 대로 발 벗고 나서는 진취적인 기상을 갖자.
형제 일을 내 일 같이 보살펴 주고, 학교 일을 우리 일같이 하고, 국가 잘 되는 것을 내 집안 잘되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자. 좀더 크고, 넓게, 대범하고, 너그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자.
휴지 줍기
‘휴지 줍기는 이삭줍기와 같다.’
휴지는 주울 때마다, 복을 줍는 것이나 다름없다. 휴지를 줍는 손은 오물이 묻어 더러워지지만 마음은 그만큼 깨끗해져서 끝내는 착한 마음이 살쪄 하늘이 돌보아 줄 것이고, 주위 환경도 깨끗하게 정리 될 것이다.
옛날에는 스승을 구하려면 그 집안 청소 일부터 자청했다. 배우기에 앞서 마음부터 깨끗이 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제부터 버리는 사람이 되지 말고, 모두 줍는 사람이 되자. “교실은 우리 반의 얼굴이다.” 아침마다 거울보고 단장하듯 우리 반의 교실도 깨끗하고 멋있게 단장하자.
법 준 수
준법 정신의 생활화
소크라테스는 악법인 줄 알면서 법을 지켜 독배를 마시고 최후를 마쳤다. 우리는 현재 많은 사회 문제를 겪고 있는데, 따지고 보면 법을 우습게 알고 안 지키는데 원인이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법을 안지키는 풍토가 확산되면서 끔찍한 일들이 빈번해졌다. 자유 민주주의가 너무 일러서인지, 아니면 예로부터 그러한 소질이 있었던 것인지 ?
우리도 한때는 국법을 무서워 할 줄 알고 법을 지켜야 한다는 정신이 강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때는 강한 제재가 따르는 가운데 행한 준법 행위였던 것이다. 이제 부터 우리도 법률과 규칙을 잘 지키는 민족으로 소문이 나야할 때이다. 상냥하고 양심 바른 국민으로 알려져야 한다. 나의 그릇된 행동은 누군가가 보고 있고 속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이 되려면 이제 부터 우리도 준법을 생활화해야 한다.
교칙 잘 지키기
교칙은 법에 비해 작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별 뜻 없이 안 지키기 일쑤다. 또한 아무 생각 없이 남이 하는 대로 나도 무심히 교칙을 어긴다. 우리는 청운의 큰 꿈을 안고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다. 하루도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때다. 하는 일 모두가 의미가 있는 야무진 태도로 생활해 나가야 한다.
‘작은 일에 충실하라.’ ‘작은 규칙부터 잘 지켜라.’ 규칙을 잘 지키노라면 쓸데없는 신경을 쓸 필요가 없고, 공부의 능률도 오르고, 주의의 칭찬도 듣게 마련이다. 약간 불편한 점도 있으나 사회 공동 생활을 유지하자면 할 수 없이 지켜야 된다. 모두가 지키면 아름답게 되고, 안지키면 수라장이 되지만, 더욱이 내 자신의 미래를 위해, 장차 남보다 큰그릇이 되기 위해서 학교 교칙을 잘 지켜야만 되는 것이다.
고생(苦生)의 의미
고생이란 원래 한자(漢字)로 ‘쓸 고(苦)’와 ‘날 생(生)’자이니, 쓴 것이 밖에서 들어오는 것보다 안에서 나가는 것에 더 가까운 의미를 가진다. 영어로 고생의 의미는 ‘하드(Hard)’니, ‘타프(Tough)’니, ‘트러블(Trouble)’이라 한다.
그 이유는 ‘Hard' 즉 힘들여 하지 않은 것은 가치가 없는 것이고, ‘Tough’ 즉 강하게 끈질기게 밀고 나간 일이 아니면 존경할 일이 못되고, ‘Trouble’ 즉 시련을 겪은 후에야 성공의 탑이 세워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고생은 영광이요, 훈련이며, 인생의 과정이요, 신(神)의 커리큘럼(Curiculum)이다.
고생은 저마다의 생각에 따라 그 정도가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수월한 것 같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힘들게 여겨지기도 한다.
고생이라는 낱말은 그 주인의 마음가짐에 따라 같은 것이라도 다르게 느껴진다. 고생으로만 생각한다면 그저 괴롭고 지겨울 뿐이다. 그러나 웬만한 고생쯤은 해볼만 하다는 패기를 갖고 누구에게나 가진 시련을 자신을 단련시키는 시금석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자기 성장과 발전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피땀으로 얼룩진 나의 생활이 행복이요, 값지고 찬란해 보인다. 고생은 나의 인간됨을 저울질한다. 나의 능력을 실험하는 것이다. 머지않아 떠나갈 불청객이니 웃으며 영접하며 영원히 기념하자.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가 이러한 고생들에 대해 익숙했고 적응성이 좋았음을 다시 한번 상기하자.
법을 지키는 생활
- 제헌절 훈화 자료-
( 7 월 17 일 )
제헌절은 우리 나라 헌법이 처음 제정되어 공포된 날인 1948년 7월 17일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1948년 5월 10일, UN의 감시 아래 총선거를 실시하여 198명의 제헌 의원을 뽑아 국회를 구성하고, 국회에서 제정된 헌법이 7월 17일에 공포되어 그날로부터 효력이 발생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헌법이라고 하는 것은 그 나라를 유지해 나가는 근간이며 최고의 법으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함으로써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지향하는 것은 정의로운 사회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의 모든 법과 규범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복과 사회 정의를 실현시키는 것을 근본 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법을 지키지 않았을 때는 사회 구성원간에 갈등이 야기되고, 상호의 안녕과 질서가 유지되지 않으므로 법을 지키는 그 행위 자체가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하겠습니다.
민주사회는 질서가 잘 유지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질서는 또한 준법정신에서 비롯되므로 성숙된 민주시민사회는 질서를 잘 지키는 사회요, 준법정신이 투철하다고 합니다.
이처럼 민주시민의 자질은 법을 지키는 준법정신으로 가름하게 되는 것이므로 학생 여러분은 주위의 사소한 규칙부터 꼭 지키겠다는 의지가 필요하겠습니다.
고대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가 터무니없는 이유로 고발당하여 감옥에 있을 때 그의 친구가 탈출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이를 거부하고 ‘악법도 법이다.’라고 하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 이유는 법을 지키는 것이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믿었기 떄문인 것입니다.
제헌절에 즈음하여, 학생 여러분은 자신만을 위하는, 자신의 그릇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피해를 주게 될 것인지 깊이 생각하고, 사회의 공익을 위한 준법정신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건전한 민주사회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참 주 인(主人)
主人! 주인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참 주인이요, 또 하나는 거짓 주인이다.
참 주인이란 주인 구실을 할 줄 아는 것이요, 주인다운 자격과 실력을 갖추고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주인이요, 주인다운 진짜 주인이요, 사실상의 주인, 실질적인 주인이다.
거짓 주인이란 주인 구실을 못하는 것이요, 주인다운 책임과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명목상의 주인이요, 형식상의 주인이다. 이것은 가짜 주인이요, 허수아비와 같은 주인이요, 있으나 마나한 주인이다.
과거 일제 35연간은 우리 국민이 참 주인 노릇을 못한 시대요, 진짜 주인 노릇을 못한 암흑기였다. 우리는 일본인들에게 아홉 가지를 빼앗기고, 역사(歷史)의 노예(奴隸)로 전락(轉落)했었다. 國土, 主權, 財産, 自由, 權利, 말, 글, 이름, 그리고, 우리의 얼과 정신이었다. 역사의 국맥(國脈)이 끊기고, 민족의 國基가 흔들리고, 겨레의 國風이 마비되었다. 한국 역사의 가장 비참하고 부끄러운 곤욕(困辱)의 시대였다.
참 주인 노릇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내 인생의 참 주인 구실을 하고 있는가?
나는 내 가족의 참 주인 구실을 하고 있는가?
나는 내 직장의 참 주인 구실을 하고 있는가?
나는 내 고장의 참 주인 구실을 하고 있는가?
나는 내 나라의 참 주인 구실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 물음 앞에서 ‘그렇다’하고 자신 있는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정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정신이다. 우리는 왕성한 주인정신, 투철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진리는 가까운 곳에서
흔히 사람들은 가까운 곳보다 먼 곳을 동경합니다. 늘 주위에서는 눈에 띄거나 마주보는 사람보다는 자신과 멀리 떨어진 사람을 더 존경하고 그리워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핍박받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예는 마호메트에서도 나타났으며 역시 석가모니에게서도 나타났습니다. 동시에 공자에게도 나타난 역사적 사실입니다. 주위의 환경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용인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연농원이나 민속촌에 가자고 하는 것보다, 제주도에 가자고 하는 것이 훨씬 더 가슴을 부풀게 하는 것도 같은 이치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진리를 먼 곳에서 찾으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리는 반드시 먼 곳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여행을 하다보면 먼 산이나 들판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타고 있는 자가용이나 자동차, 기차나 버스에서 내려 그 아름다워 보이는 곳을 찾아가 앉아보려 한다면 손수건이나 다른 깔판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그대로 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앞에서 예를 든 것은 대체로 사람이나 환경이나 멀리 보이는 것이 아름답다거나 좋아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막상 가까이 가서 보면 그곳의 현실은 생각이나 느낌과는 다르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부사람들이 과소비풍조에 말려들고 외국산을 선호하는 문제도 바로 이런 심리적 요인에도 기인하는 것입니다.
또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학교보다는, 자기를 가르치시는 선생님보다는 다른 곳의 학교나 선생님을 더 좋게, 훌륭하게 생각하는 것도 이런 심리적인 요인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진리는 반드시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진리는 바로 우리의 주위에 있으며 여러분을 가르치시고 키워주는 이학교가 바로 여러분이 아끼고 존경해야할 환경임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바 른 직 업 의 식
98. 6. 16일 신문에서 놀랄만한 뉴스를 접했다.
마이크로 소프트(MS)사의 거센 도전을 받으면서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의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지켰던 ????글이 결국 미국 MS사에 2천만$를 받고 ????글 사업을 포기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IMF시대를 맞아 돌파구를 벤처기업에서 찾던 우리는 벤처기업의 상징이라 말할 수 있는 한컴사의 붕괴로 또 한 번 충격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컴사의 몰락은 불법복제품이 판을 친 우리 시장 풍토 속에서 경영난을 이겨낼 수 없었다는 데 주원인을 찾지만 이찬진 대표가 중간에 정계에 진출함으로 새로운 소프트웨어 개발에 힘쓰지 못한 것이 ????글의 몰락에 결정적 원인이 된 것은 아닐까?
우리 나라는 TV탤런트, 코미디언, 영화인, 경제인등 어느 분야에서든 성공하여 유명인이 되면 정계로 진출하는 현상이 강하다. 그런데 그러한 변신이 성공한 경우를 우리는 별로 보지 못했다. 이주일氏가 그러하고 정주영, 신성일..... 등이 그러하다. 인기를 얻으면 마지막 지향하는 곳이 정치판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의식의 저변에 아직도 사·농·공·상 순위로 직업을 매기는 조선시대식 직업귀천의식이 남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정보화시대라고 한다.
산업중심의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넘어왔지만 우리의 의식은 아직도 농경시대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정보화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은 어떤 분야에서든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비법, 전문성을 소유한 사람이라 한다. 예를 들어 냉면집을 경영할 때 고객의 입맛에 맞는 냉면을 맛있게 만드는 비법을 오랜 경험속에서 개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전문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보화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우리에게 남아 있는 관존민비의식을 버리고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만 그 직업에 혼신을 다해 정성을 쏟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뒤 소비자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연구하며 개발하는 자세로 남들이 갖지 못한 비법(정보)을 창출해 낼 수 있을 때 진정 정보화 시대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 갈 수 있다.
필 부 지 용 (匹夫之勇)
전국시대(B.C431-221), 맹자(孟子)가 제(齊)나라 선(宣)왕을 만났을 때의 일입니다. 선왕이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이웃 나라와 사귀는 데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맹자가 말했습니다.
“있습니다. 오직 어진 사람이라야 큰 나라를 가지고 작은 나라를 섬길 수 있으며, 또한 오직 지혜로운 사람만이 작은 나라를 가지고 큰 나라를 섬길 수 있습니다. 큰 나라를 가지고 작은 나라를 섬기는 자는 하늘의 도를 즐기는 자요, 작은 나라를 가지고 큰 나라를 섬기는 자는 하늘의 도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도를 즐기는 자는 천하를 보전하고, 하늘의 도를 두려워하는 자는 자기 나라를 보전할 것입니다.”
선왕은 맹자의 말에 동감했으나, 그대로 따르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선생의 말씀이 훌륭하기는 합니다만, 과인은 워낙 용(勇)을 좋아하는지라….”
그러자 맹자는 말했습니다.
“원컨대 작은 용기(勇氣)를 좋아하지 마십시오. 칼을 만지면서 상대방을 노려보고, ‘네가 감히 나를 당하겠느냐?’ 하는 것은 필부(匹夫)로 한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보다 큰 용기(大勇)를 가지십시오.”
‘필부(匹夫)의 용기(勇氣)’란 힘으로 남을 눌러 보려는 데서 나오는 용기를 말합니다. 여기서 비롯되어 쩨쩨한 용기, 혈기에 의한 용기를 필부지용(匹夫之勇)이라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쩨쩨한 용기를 진정한 용기라고 착각하고 자신의 힘으로 상대를 누르고 기뻐하는 졸장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울러 지혜로운 마음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큰 용기를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자주적인 역사인식
- 광복절 훈화 자료 -
( 8 월 15 일 )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에게 가장 불행했던 역사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36년의 기간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의 식민지 새대는 너무나 참담하여 주권을 잃은 자의 굴욕과 비참함을 뼈저리게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의 우리 나라 침략의 역사는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혹독하여 우리의 국토는 그들의 수탈의 장소로 전락해 갔고 우리의 역사·문화·언어가 그들에게 완전히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우리의 앞날을 걱정하던 애국 지사들은 민족의 독립, 그날을 위하여 피눈물나는 투쟁을 계속하였고, 임시정부 수립, 광복군 조직 등으로 항일운동을 분투하였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직후, 해방을 맞이하자 온 국민은 굴욕과 억압에서 풀려난 환희와 기쁨으로 새 역사를 기약했었습니다 그러나 희망과 환희로 해방의 기쁨을 누린 지 채3년도 안되어 큰 혼란을 겪게 되었고, 남북으로 분단국가가 성립되어 서로 대립하다가 6·25전쟁을 겪게 됩니다.
똑같은 역사적 사실이라 하더라도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게 마련인데, 8·15는 식민지 시대를 산 사람에게는 잃었던 제 말과 이름을 찾아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는 환희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분단시대에만 산 세대에게는 8·15는 해방이란 의미보다 분단의 시발점이란 의미가 더 크게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국제 정세는 이념이나 사상보다 자국의 이익이 우선되는 국가이기주의로 흐르고 있습니다. 이런 국제 정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자주 국방력 배양이 가장 급선무라 하겠습니다.
자주 국방력이 배양될 때, 비로소 통일된 한 민족으로 세계 속에 나아가 외교 관계가 강화되어 더 이상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희생물이 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광복절에 즈음하여,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선열들의 넋에 깊이 감사드리며 그분들의 피가 헛되이 되지 않도록 새로운 역사의 개척을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설 때입니다.
민 주 시 민 의 식
1. 민주 시민 윤리 익히기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돈다. 단, 앞으로 전진하면서 돈다.” A.토인비의 말이다. 어제의 일은 오늘도 옳고 타당한 것이라 하여 추종만 하면 발전적 계기는 어렵고, 답습의 그림자 속에 빠지고 만다. 재창조적 의미가 없다면 역사 연구는 수고로울 뿐이다. 가속적인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는 현실 상황에서 인간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바삐 뛰어야만 하게 되었다.
우리는 지난 역사 속에서 많은 교훈을 발견한다. 공동체적 생활 양식은 오늘에 맞게 새롭게 정립해야 된다는 여론이다. 오늘의 사회를 산업 사회, 이익 사회, 다원 사회, 다가치 사회, 정보 사회, 대중 사회 등, 많이 표현하고 있으나 민주시민사회라는 말이 함축성이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민주시민사회를 살아가면서 행동은 구시대적인 면이 많이 남아 있다. 시민정신이란 곧 공공 질서 지키기와 준법 정신을 의미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정직하고 공정한 경쟁을 하며 규칙을 지켜야 된다. 또, 타인의 권리와 감정을 존중하며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고, 불법에 맞서며 개선의 노력을 한다.
2.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 능력의 소유자여야 한다. 지면, 인맥, 파벌 등 특정집단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3. 전체의 복지가 성취될 때에 자기의 복지가 궁극적으로 보장된다는 점을 통찰해야 한다.
4. 공직은 국민이 위임한 것이며 공직자는 사회에 대한 의무를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 자의적인 행동을 공적인 행동으로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5. 세계가 연관된 조직된 협력 관계임을 인식하고, 다른 문화와 생활양식을 이해하고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이 밖에도 타협, 양보, 아량, 다수에 승복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를 갖는 것이 민주시민정신이라고 말 할 수 있다.
2. 학 급 회 의
민주 시민 교육의 일환으로 매주 1시간씩 학급 회의를 하게 되어 있다. 민주주의는 회의 운영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예로부터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으고 단합된 행동을 통해 문제 해결을 해왔다. 이제 학급회의 일반 유의 사항을 들어보면.
1. 참여 의식이 있어야 된다.
(회원은 학급 회의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성인이 되어 사회적인 활동을 할 때 회의가 무수히 많음을 인식하고, 교양의 한 부문을 익히는 과정임을 안다.
3, 의제의 실천, 결과 반성 등 회의 진행 중 절차와 격식을 잘 알고 참여한다.
4. 반대 의견에 대한 합리적인 설득의 자세가 필요하다.
5. 어떠한 경우에도 감정적인 대결은 안 된다. 회의는 신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임을 명심한다.
文化人의 다섯 가지 行動守則
문화인(文化人)으로서, 양식과 품위를 갖춘 민주시민(民主市民)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다섯 가지의 행동 수칙(行動 守則)이 있다.
첫째 시간(時間)을 지키는 것이다. 문화인은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 옛 사람은 ‘석시여금(昔時如金)’이라고 했다. 시간을 금과 같이 아끼라는 말이다. 시간을 황금처럼 아낌과 동시에 시간을 지키는 것이 생활의 습관으로 되어야 한다.
둘째는 질서(秩序)를 지키는 것이다. ‘만물유서(萬物有序)’다.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다 질서가 있고 또 있어야 한다. 질서는 조화의 미(美)요, 自然의 생명이요, 사회 번영과 국가 발전의 윤리이며 문화인의 자격이다.
셋째는 분수(分數)를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의 분수를 알고 분수를 지키고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 분수에 지나치는 행동이나 생활을 하면 반드시 불행과 파멸(破滅) 속에 빠진다. 그래서 옛 사람은 ‘수분지족(守分知足)’과 ‘너 자신을 알라.’고 강조했다.
넷째는 약속(約束)을 지키는 것이다. 문화인은 약속을 지킨다. 철학자 니이체는 ‘인간은 약속을 할 수 있는 동물’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남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언행일치(言行一致)해야 한다. 공자(孔子)는 ‘무신불입(無信不立)’이라고 감파했다. 신용은 인간존립(人間存立)의 근본이다.
끝으로 예절(禮節)을 지켜야 한다. 예절은 문화인의 자랑이요, 교양인의 필수 자질이다. 예절은 화목(和睦)의 전신이요, 경의(敬意)의 표현이요, 사양(辭讓)하는 마음이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요, 여러 사람과의 다원적(多元的)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예절은 대인관계의 기본원리다.
역지사지(易地思之)에 대하여
우화에 보면 여우가 황새를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하는 장면이 나온다. 황새는 여우의 집에 초대되어 가지만 여우는 넓은 접시에 국물을 담아 내어 황새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배를 곯게 된다. 황새도 여우를 초대해서 입구가 좁은 그릇에 식사를 내어와 여우로 하여금 아무 것도 못 먹게 복수한다는 이야기이다. 만일 초등학교를 다녔다면 이 우화를 들어보지 못했거나 이 우화가 뜻하는 바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으리라. 그러나 이렇게 쉽고 아주 어릴 적에 배울 정도로 기초적인 이 우화를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극히 적다. 우리가 자기 입장만을 보고 있는 탓이다.
언젠가 텔레비전 토크쇼에서 사회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운전을 할 때 만일 다른 운전자가 자신의 차 보다 빨리 달리면 “ 저런 미친 놈!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하고 욕을 하고 만일 늦게 달려서 자기의 속도에 영향을 받으면 “저런 바보 같은 놈! 집에 쳐 박혀 있지 차는 왜 끌고 나온 거야?”하며 욕지거리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화를 보면 이 우화가 주는 교훈을 더 심각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두 줄 또는 세 줄로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내리기도 전에 엘리베이터나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버스나 기차 안에서 큰소리로 전화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뉴스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우리 아이만 군대 안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돈을 건넸던 바로 그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 우화가 주는 의미는 아주 특별해 진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성경말씀」 중에서 (마태복음 7 : 1~5 )
겉 과 속
요즘은 정보의 홍수 시대다. 컴퓨터, TV, 잡지, 신문 등 우리 청소년들은 엄청난 정보를 접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정보들 중에서도 개인의 기호에 따라 그 정보를 받아들이고 또 찾으려고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세대 차이란 말만 있었지만 지금은 같은 세대라도 또 다른 차이를 만들고야 만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정보를 살펴보면 한가지 우려가 앞서게 된다. 연예인에 대해 너무 광적이고 즉흥적으로 좋아하고, 남학생들도 이젠 액세서리와 옷 등의 패션에 관심이 많고, 컴퓨터나 메탈과 같은 음악에 열정을 바치곤 한다. 그리고는 인기 연예인의 행동이나 모습을 곧잘 따라하곤 한다. 우리 청소년들의 이런 행태를 그들만의 문화라고 하자. 문제는 그들의 문화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외적이고 물질적인 면에 편중되어 있는데 있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도록 하는 자기반성, 인생관, 인류문화와 역사, 우주에서 들려오는 비밀스런 속삭임 등 인간의 내면과 자연이 주는 잔잔한 감동을 위한 관심과 준비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과거에 책만이 모든 정보를 전달해주는 매체였을 때 우리는 고전과 고전 속의 인물을 사랑하고 역사 속의 위인처럼 되겠다는 꿈을 키우며 자랐다. 반면에 요즘 청소년들의 우상은 역사 속의 위인이 아니라 현실의 유명 연예인인 것이다. 물론 인기 연예인의 인기는 인격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닐뿐더러 그들의 인품과 행동이 아직 검증되지도 않은 상태에서도 겉모습과 피상의 행동을 보고 청소년들은 그들에게 열광한다.
그러나 겉만을 보고 좋아하게 되는 열정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할 뿐 아니라 주체성 없이 받아들인 이 겉모습은 위태롭기만 하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좀 더 진지한 자세로 접근하고 선량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외적인 현상과 물질에 집착을 자제하고 자신의 내면과 정신을 충만하게 하는 청소년기가 되도록 노력하여야 하겠다.
97. 5. 4 KBS저녁 9시 뉴스
경기도 고양시에서 ‘97 세계 꽃 박람회’가 열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가족끼리 예쁜 꽃을 보기 위해 도시락을 싸서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박람회장에는 세계 각국에서 전시한 아름답고 진귀한 꽃들로 말 그대로 그림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차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점점 늘어나면서 뒤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마치 ‘쓰레기 박람회’가 열린 것 같이 되었습니다. 또한 잔디밭에는 출입금지라고 쓰인 팻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음식물을 먹고 마시며 잔디밭을 훼손하고 쓰레기를 마구 버리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전시된 꽃까지 망가지는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밀리는 인파에 쓰레기 처리는 안 되고 구경꾼은 짜증나는 하루였다고 한다. 거기다가 하수 처리 시설이 부족하여 비가 오고 난 후 전시장은 빗물이 빠져나가지 않아 온통 물난리를 겪기도 하였다. 아직 기간이 남았는데도 딴 나라 전시관은 일찍 문을 닫는 곳도 생겨났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공익에 대해선 무관심한 편이라고들 합니다. 주위의 분위기에는 아랑곳없이 떠들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면 기를 쓰고 나서다가도, 공공의 이익을 위하는 일에는 외면하며 돌아서 버리는 습성이 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타협하여 의견을 만들어 내고 실천하는 민주적 태도가 부족한 것입니다. 남을 나만큼 소중한 존재로 생각할 때 남의 자녀, 부모, 재산, 권리도 나의 것만큼 소중하게 생각할 때 공공의 이익과 질서도 지켜질 테지요.
『 賢人이란 어떤 사람인가? 모든 사람에게서 배우는 사람이다.
强者란 어떤 사람인가?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다.
富者란 어떤 사람인가? 자기의 운명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이다』
「 유태 경전 」
어느 교사의 이야기
내가 잘 알고 있는 선생님이 겪은 학창 시절의 경험 한 토막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 선생님은 가난한 집안의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고등학교에 진학은 하였지만 워낙 살림이 가난하여 자취를 하였는데 굶기를 밥 먹듯 하며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그에게는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일이 하나 있었다.
언제인가 그날은 그의 생일이었는데 미역국 대신 찬물 한 그릇과 하얀 쌀밥 대신 이틀이 지난 굳은 찬밥 한덩이, 그리고 간장 한 종지를 상에 놓고 눈물 반 콧물 반으로 요기를 하고 학교를 가면서 그는 수 없이 맹세를 했다고 한다. 비록 지금은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해도 언젠가 웃으며 이 날을 이야기 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때를 위해 오늘의 이 서글픔은 충분히 참고 이겨낼 수 있다고......
때로는 가난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그러나, 단 한 번도 그에게 주어진 환경에 대해 절망하거나 자포자기한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고생이 뼈에 사무칠 때면 그래도 오늘의 이 고생이 먼 훗날 살아가는 데 정말 값진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었기에 지금 이렇게 교단에 서서 꿈을 펼칠 수 있는 것이라고, 누누이 이야기하였다고.
비록 ‘교사’라는 직업이 보는 이에 따라서는 하찮게 보일는지 모르나 만약 그 선생님이 학창시절 불우한 환경을 탓하기만 하고 참고 이겨내지 못했다면 오늘의 그분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현대는 물질적인 풍요 속에 살아가는 세상이라지만 아직도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가정이 많이 있다. 그러나 옛말에 가난은 사서라도 하라고 했듯이 그 가난과 고통은 앞으로의 삶에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직업도 마찬가지다. 직업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어떠한 직업이 자기의 능력과 소질에 맞느냐가 문제다. 아무리 좋다는 직업일지라도 자기 능력에 맞지 않는,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 일은 어렵고 재미가 없을 것이요, 남들이 좋지 않다고 하는 직업이라도 자기는 쉽고 재미있는 일이라면 신이 나는 좋은 직업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능력에 맞는 진로를 선택한다면 그의 삶은 즐겁고 행복 삶이 될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고생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여러분 앞에 어떤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치면 얼마나 쉽게 포기할 것인가? 앞에서 고생을 이겨내고 성공한 어느 선생님의 체험담처럼, 이렇게 시련을 이겨낸 사람은 그 고통의 체험 속에 참다운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훈훈한 인간미를 가지게 되지만 모든 것이 넉넉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에게서는 그러한 참답고 절실한 분위기는 느낄 수가 없을 것이다. 만약 지금 이 순간이 힘들고 어렵다고 느끼는 청소년이 있다면 이 세상에는 나보다 더 어렵게 살아가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퇴폐문화를 버리고 건전한 생활 태도를 갖자
오늘의 우리 사회는 큰 병에 걸려 있다. 외화내허병(外華內虛病)이다. 겉은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속은 비고 허황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병이요, 생활의 병이요, 마음의 병이다.
우리의 사회와 생활은 점점 겉만 화려해진다. 인생은 외부의 장식보다 내부의 충실이 더 중요하다. 옷의 세탁에 앞서서 마음의 세탁에 힘써야 한다. 얼굴을 아름답게 가꾸는 동시에 인품과 성격을 아름답게 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분에 넘치는 사치와 허영과 낭비와 향락의 생활 기풍이 우리 민족의 건전한 생명을 나날이 좀먹어 들어가고 있다. 성실 대신에 부허(浮虛)가, 건전 대신에 경박(輕薄)이, 근면 대신에 나태가, 생산 대신에 소비가, 저축 대신에 낭비가 만연되어 있다.
생산 사회의 근검 기풍을 조성해야 되겠다. 인생은 진보와 향상을 향해서 부단히 자기를 개조하고 조각해 가는 생활이다. 우리는 저마다 생명의 조각가다.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첫째, 우리는 저마다 제 분을 알고 제 분에 맞게 살아야 한다. 수분(守分)이 인생의 지혜이다.
둘째, 우리는 부지런한 생활인이 되어야 한다. 부지런한 나무에는 번영의 꽃이 피고 행복의 열매가 맺는다. 게으른 나무에는 쇠퇴의 벌레가 먹고, 불행의 낙엽이 떨어진다.
끝으로 우리는 저마다 성실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성실은 우리가 디디고 서야 할 인생의 땅이다. 현대의 악성 카자르스는 “현대인은 성실과 소박성을 상실하였다.”고 말하였다.
거짓, 속임수, 무책임, 불신, 방탕 등은 모두 성실의 부족에서 오는 인생의 악이다. 모두 성실의 자리로 돌아가자.
연 대 의 식
“인간은 사회적 동물 정치적 동물이다”―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우리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 속에서라야만 자기의 존재 가치를 발현할 수 있다. 고로 인간 사회는 인간에게 있어서, 물고기의 물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간혹 자기만을 위하고 사회를 해롭게 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물론 사회 공동체를 위한 규범에 어긋나게 되면 제재를 받게 되지만, 그런 정도가 아닌 경우도 허다해서 사회 공익이 총체적으로 위협을 받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우리는 2002년 월드컵 대회를 유치해 놓고, 부지런히 ‘시민 공부’ 즉, ‘민주시민 정신교육’을 받아야 할 판이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하게 모양새를 갖추었지만 속을 파고들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1만불의 외모에 걸맞는 내적인 교양을 갖추어야 할 때이다.
우리 나라는 원래 공동체 의식이 다른 민족보다 강했다. 우리 조상들은 많은 어려운 국난을 겪으면서 서로 도와 살아 남는 지혜를 터득했다. 그러나 이제 살만 하게 되니 연대의식이 약해지면서 이기주의가 팽배해졌다. “인류 역사상 가장 단결이 잘 된 나라는 신라다.” 이탈리아의 지성 Gia Come의 말이다. 이제 우리도 남을 살피고, 남과 잘 어울리고, 남을 위해 봉사할 줄 아는 교양을 갖추고 연대 의식을 가지고 아름다운 우리의 문화를 꽃 피워야 할 때이다.
1. 협동 정신 발휘하기
교 실 : 항상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모두 협력하자.
우리 학급 : 나도 잘 하고, 우리 학급이 잘 되도록 협동심을 발휘하자.
우리 학교 : 우리 학교의 전통을 빛내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여 나와 나의 후배를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자.
2, 공공 기물 아껴 쓰기
물자의 낭비는 그 자체만으로도 죄가 될 수 있고(殺物罪), 공해 유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나의 물건을 아껴 쓰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의 물건도 소중히 해야 한다. 물자 아끼는 마음은 매사에 일을 알뜰히 하는 마음과 통한다. 공공 기물을 소중히 하는 마음은 애국심과 민족을 생각할 줄 아는 마음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어려운 시절에 물자를 참으로 아껴 온 미담을 많이 전해 주고 있다. 내 물건도 소중히 하려니와, 공공 기물을 더욱 아끼는 마음가짐은 국가를 위하는 일임은 물론 국민된 기본 교양을 갖추는 일임을 명심하자.
告 發 精 神
-건설적인 고발 정신의 생활화-
◇ 건의함 활용하기
언제부터인가 민성함(지금의 건의함)이라는 것을 경찰계에서 설치하기 시작했다, 옛날의 ‘신문고’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 효과는 별로 높지 않았다고 본다. 청와대 특별 사정비서를 통하여 두터운 인의 장막을 뚫고 곧바로 호소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으로 인식되던 때도 있었다.
하여튼 건설적인 건의나 때로는 고발을 해야 할 때가 있기 마련인데,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이러한 일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점잖은 사람은 인하는 일로 생각했고, 차라리 보복성 고발이나 상식이 없는 일부의 사람이 하는 짓으로 여겨 왔다. 그러나, 보고도 못 본 체하는 방관자적 태도가 엄청난 사회 총체적 불의를 조장하고야 말았다. 유럽의 우등생 독일 사회는 시민이 서로 감시하여 질서가 유지된다고 한다. 우리 사회도 선진 사회와 같은 성숙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 학교의 건의함은 ‘빈통’인 날이 많다. 고발 정신을 발휘하여 슬기롭게 활용하자. 나를 위하고 학교를 위하여 발전적이고 사심없는 건의를 많이 하여 하나의 전통으로 만들자. 건의함은 학생의 소리요, 학교가 나아갈 방향타가 될 수 있는 좋은 제도임을 믿고 활용하자.
◇ 폭력 신고하기
우리 사회의 고질병 중의 하나가 폭력이다. 폭력은 야만이요, 불의요, 무너지는 소리다.
무지하고 무능한 자가 즐겨 쓰는 야비한 수단이다. 우리 나라는 유교를 숭상하는 예의의 나라였다. 서구 세계에서 숱한 암살극이 연출될 때에도, 근대 개화기까지는 암살은 없었다고 한다. 민겸호가 사상 처음으로 암살 당할때까지는⋯
이제는 언제부터인가 ‘학원 주변 폭력배 근절!’ 이라는 국가 차원의 운동이 벌어지게 되었다. 어느 경우에도 폭력은 쓰지 말아야 한다. 폭력을 쓰는 자는 이미 이성을 잃은 자다. 사람이 이성을 잃으면 곧 짐승이나 다름없다. 우리 학교는 좋은 선배를 배출한 명문교요, 우리들은 자랑스런 평고 학생이다. 우리 학교만이라도 폭력이 없는 명랑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하여 모든 학생이 폭력에 대해서는 너도 나도 주저없이 즉시 신고하자. 폭력이 발붙이지 못하게 적극적인 자세로 폭력과 싸우자!
양 보
◇ 양보 미덕 발휘하기
사람은 어울려 살아가기 마련이다. 좁은 생활 공간에 살자니 서로 부딪칠 경우가 생긴다. 이런 일을 원활히 하기 위하여 규칙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규칙을 지키는 것 이외에 ‘양보’ 라는 것도 있다.
양보는 미덕이요, 상대방을 즐겁게 해 주며 인간 관계를 윤택하게 해 주는 기름과도 같은 것이다. 양보심이 많은 사람은 교양이 있는 사람이며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고 아량이 넉넉하며 마음이 훈훈한 사람이다.
개인과 이웃과 국가사이가 법으로만 그 관계가 성립된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해질까? 반대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해 주고 양보하고 베풀어준다면 얼마나 훈훈해질까 ?
과학의 발달로 산업사회가 되었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오직 이겨야 산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오늘, 남에게 길을 양보하고 이익을 양보하고 진 자를 위로해 줄줄 알고 나만 못한 사람을 도와주는 마음가짐이야말로 현대 사회를 평화롭게 만드는 기본이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되겠다.
◇ ‘고수미안’ 운동 전개
‘고수미안’ 실천을 추진하는 단체가 있다.
이는 “고맙습니다”, “수고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를 의미한다. 모두 인사말이며 인사를 잘하자는 운동이다. 외국의 많은 나라들은 잘 모르는 사람끼리도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6·25전쟁, 혁명, 대형 사고, 화염병, 각종 분규, 경제 성장 일변도, 인구 조밀 등 여러 사건과 여건 때문에 마음의 여유를 잃어 버렸다. 매사 하는 일이 급하게 서둘러 실수가 많고 미처 인사도 제대로 차리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렵게 살아가지만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 후진국 어느 나라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뭉클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만나면 즐겁게 인사하는 습관을 생활화해야 한다.
자 율 과 책 임
◇ 형제간 급우간 학교 생활에서 책임지기
우리는 예로부터 형우제공(兄友弟恭)을 형제간의 윤리로 규정해 왔다. 효도 어렵고 형우제공(兄友弟恭)도 어렵다. 또한 학교 생활을 잘 하기도 말과 같이 쉽지는 않다.
민주주의의 생활 원리는 스스로 알아서 지키고 행하며 책임을 지는 것이다. 육신을 가지고 공간을 차지하고 생활하고 있는 이상, 인간은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책임이 있기 마련이다. 책임을 저버리고 나 몰라라 한다면 인간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부모가 져야할 책임, 자식으로서의 책임, 형으로서 또는 동생으로서의 책임, 학생 신분으로 지켜야 할 책임, 선배로서의 책임, 평고인으로서의 책임, 잘 사는 나라 국민으로서의 책임, 사기 당한 중국의 한족에 대한 책임, 인격적 도덕적 책임, 인간으로서의 책임 등등...... 생각하면 한이 없다.
인간은 인간답게 생활해 나가야 가치있는 인간이다. 책임을 저버리고 외면하는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존귀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자.
◇ 스스로 하기
말 듣기 전에 스스로 알아서 해 나간다면 얼마나 돋보일까?
얼마나 흐뭇할까?
농사꾼에게도 상농, 중농, 하농이 있다고 한다. 상농은 풀을 보기 전에 김을 매고, 중농은 김을 보고서야 매고, 하농은 김을 보고도 안 매는 농사꾼을 일컫는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든 일을 미리 알아서 해 나간다면 일이 훨씬 줄어들고 낭비는 그만큼 줄고, 행복은 그만큼 증진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법으로 규제하기 전에 스스로 미리 알아서 모든 일을 해 나간다면 정말 이상적인 사회가 건설될 것이다.
우리 모두 스스로 알아서 미리미리 해 나가는 민주 시민이 되자.
리 더 와 보 스
링컨의 인내심
남북전쟁이 한참이었을 때 맥클란 장군은 가장 뛰어난 장군중의 한 사람이었다. 하루는 그를 격려해 주려고 링컨 대통령이 국방장관을 대동하고 그의 야전사령부를 방문했다. 때마침 장군은 전투장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링컨은 몇시간 동안을 사령관실에 앉아서 그를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장군이 들어왔다. 그는 방안에 앉아있는 대통령과 장관을 본체만체하면서 그냥 2층 자기 방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링컨과 장관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는 장군이 곧 내려오리라 생각하고 다시 의자에 앉아서 그를 기다렸다. 한참 후에야 하녀가 나타나더니「죄송합니다만 장군께서는 너무 피곤해서 잠자리에 드셨다고 대통령께 말씀드리라고 이르셨습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놀란 것은 장관이었다. 일개 장군이 직속상관인 자기는 고사하고 감히 대통령마저도 그렇게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각하, 저렇게 무례한 놈은 제 생전에 본적이 없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저 장군을 당장에 직위해제 시키셔야 합니다.」링컨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조용히 장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아니다. 저 장군은 우리가 이 전쟁을 이기는데 절대 필요한 사람이다. 저 장군 때문에 단 한시간만이라도 이 유혈의 전투가 단축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말고삐를 잡아주고 그의 군화도 닦아줄 것이다. 나는 그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다하겠다.」여기서 링컨은 리더의 참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역시 인간이다. 또한 그는 한나라의 대통령이다. 일개 장군의 엄청난 무례를 대통령의 권위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모욕이라고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동시에 그는 잠도 못자고 전투에 시달린 장군에게는 또 다른 전투를 위해서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전투중의 장군에게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 자기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권위와 회초리
그의 파면이 군대의 사기에 미칠 영향도 생각했을 것이다. 링컨은 노여움을 누르며 이런 저런 계산을 하기 위해 잠시 동안 말이 없었던 것이다.
보스는 사람들을 몰고 간다. 지도자는 그들을 이끌고 간다. 보스는 권위에 의존한다. 지도자는 善意에 의존한다. 보스는 늘 회초리를 필요로 한다. 지도자는 회초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보스는 ‘나’ 라고 말한다. 지도자는 ‘우리’ 라고 말한다. 보스는 ‘가라’고 명령한다. 지도자는 ‘가자’고 권한다. 보스는 모든 것을 숨겨가며 일한다. 지도자는 공개적으로 일한다. 보스는 남의 공을 가로챈다. 지도자는 남의 잘못을 도맡는다. 보스는 남을 믿지 않는다. 지도자는 남을 믿는다. 보스는 겁을 준다. 지도자는 희망을 준다. 보스는 복종을 요구한다. 지도자는 존경을 모은다.
지도자는 대중의 눈으로 세상을 푼다. 보스는 자기 눈만으로 세상을 본다. 지도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권위를 얻는다. 보스는 자기의 ‘약점에 의해’권위를 유지한다.
지도자는 자기 약점을 숨기지 않는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보스는 자기 약점을 숨긴다. 권위를 잃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자기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을 가까이 한다. 보스는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까지도 미워한다. 지도자는 내일을 위해 일한다. 보스는 오늘을 위해 산다. 지도자는 권위를 쌓는다. 보스는 권력을 쌓는다. 지도자는 타협을 잘하고 대화를 즐긴다. 보스는 타협을 모르고 대화를 거부한다.
지도자에게는 귀가 여러 개 있다. 보스에게는 귀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듣기 좋은 말을 듣기 위한 귀 하나만을 갖고 있다.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잘못되어있는가를 알려준다. 보스는 누가 잘못하고 있는가를 지적한다.
지도자는 자기 말에 책임을 진다. 보스는 자기 말도 무시한다. 지도자는 지지자를 만든다. 보스는 부하만을 만든다. 지도자는 권위마저도 즐기지 않는다. 보스는 권력을 즐긴다. 지도자는 권력이란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긴다. 보스는 권력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지도자는 자기 후계자의 짐을 덜어준다. 보스는 후계자에게 무거운 짐만을 떠넘긴다.
지도자와 보스 사이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필라델피아 교향악단이 중국으로 순회 공연을 갔을 때 일이다. 미국 대원들은 북경에서 중국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을 연주하는 것을 들었다. 그것은 듣기가 민망할 정도로 어설픈 것이었다.
듣는 귀 없는 보스
1악장이 끝나자 중국인 지휘자는 지휘봉을 유진 올만디에게 넘겨주었다. 올만디가 지휘를 시작하자 중국인 악단원들의 연주는 눈부시게 달라졌다. 중국의 단원들은 올만디의 지휘를 따라 연주하면서 기쁨의 미소까지 띠었다. 그러나 놀란 것은 중국인들만이 아니었다. 미국인 단원들도 자기네 지휘자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그제야 깨달은 듯 했다.
그들은 권위를 앞세우는 것이 보스이며 참다운 지도자란 권위를 등뒤에 업고 다닐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연주가 끝나자마자 열띤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것은 중국악단보다도 자기네의 지휘자 올만디에게 바치는 감사의 박수였다.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하자.
“바다는 메워도 사람의 욕심은 못 채운다”는 말은 사람의 욕심은 바다보다도 더 넓고 깊어 끝이 없다는 뜻이다. 또 옛 말에 땅을 99마지기나 가진 부자가 단 한 마지기밖에 가지지 못한 가난한 농부에게 “자네가 가진 한 마지기 땅을 나에게 주면 나는 백 마지기가 되니 차라리 내게 주게나”라고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처럼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을 잘 나타낸 말이다.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되고 세상은 어지럽게 될 것이다. 우리는 분수에 맞는 목표를 세월 티없이 맑은 마음으로 끈기 있고 성실하게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물은 깊을수록 흐르는 소리가 조용하고,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명언이 있다. 사람도 지식과 슬기로 가득 찬 사람일수록 말이 적고 잘난 척하지 않는다. 지식이나 교양도 없으면서 돈이 많다고 뽐내는 졸부보다는 재산은 없어도 남에게 존경받고 검소하게 살아가는 편이 행복하지 않을까.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속담과 같이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은 애당초 생각지도 말라는 것이다. 되지도 않을 일을 억지로 하다가는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다. 무엇이든 항상 생각해 보고 분수를 지켜 끈기 있게 노력하는 사람만이 현명한 사람이다.
그리고 남이 보는 앞에서는 예의 바르고 착실한 척하면서 보지 않는 곳에서는 남을 흉보고, 옳지 못한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흔히 자신의 허물이 많을 때 다른 사람을 흉보거나 비웃기를 잘 한다. 정직하고 훌륭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남의 허물을 용서하고 고쳐 주며 도와준다. 우리는 항상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고 반성하고 검토하여 자기의 나아갈 올바른 길을 결정해야 한다.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마음씨와 행동이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같지 않은 것처럼 마음씨도 모두 다르다. 착하고 예절 바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운 짓만 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칭찬 받기를 원한다. 누구나 성실하게 노력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면 그 대가는 반드시 따르게 마련이다. 남이 나를 나쁘게 대하는 것은 나에게 잘못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칭찬을 받을 때는 겸손하고 꾸지람을 들을 때는 반성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리하여 ‘칭찬과 존경을 받는 사람, 착한 일에 앞장서는 사람’이 되자.
직업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직업의 종류는 수 없이 많고 또한 문명과 문화가 발달할수록 신종 직업도 많이 생겨난다. 그런 직업 중 어느 것이 좋고 나쁘다 고를 논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좋다고 하는 직업도 자기가 해낼 수 없다면 자기와는 상관없는 직업이다. 그러니 직업의 종류나 귀천을 논할 것이 아니라 어느 직업이든 자기가 그 분야에서 얼마만큼 능력 있게 일을 잘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그러므로 자기의 소질, 취미, 능력을 파악하고, 주위 어른들로부터 조언을 들어 자신에게 알맞은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http://je333.com(태릉고등학교 생활지도부 교사 한태완)
교 통 문 화
인간이 사는 곳에는 문화가 있기 마련이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룩된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것이다. 요즈음 교통 문화란 말이 자주 쓰이는데 문화 내용 중 교통에 관한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방안에 앉아 있는 사람의 일은 잘 알려지지 않지만 거리에 나 다니는 사람 이야기는 회자되는 것과 같이, TV에는 거리 모습, 통행인이나 차의 모습이 먼저 비쳐져 전 세계로 널리 전파되는 것을 본다. 자동차 한 대가 종일 거리를 누빈다면 수많은 사람의 눈에 뜨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버스나 택시에 선전판이 붙는 것이다.
우리의 교통 문화는 우리 한국인의 문화 수준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 실태를 알아보자.
각종 차량은 자전거(무동력)말고는 면허가 있어야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면허는 자동차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숙지한 사람에게 주어진다. 잘 지킬 사람인지의 여부는 따지지 않은 채....
따라서 우리 나라 사람들의 운전 행태를 보면 한심하다 아니할 수 없다. 몇 가지 중요한 예를 들면
① 규정 속도 위반(거의 모든 차가 위반 중)
② 신호 위반 (버스나 택시가 더 심각)
③ 건널목 무시(일단 정지선, 보행자 우선은 전혀 안 지켜짐)
④ 야간 감속 운행 무시(야간에 시내 질주)
⑤ 시내 경적 금지 무시(조금만 머뭇거려도 빵빵)
⑥ 주·정차 위반(정상을 참작할 수 있지만 너무하다.)
⑦ 음주, 무면허 운전 여전(위반하면 벌금300만원, 면허 정지인데)
⑧ 집 앞 주차 금지 푯말 (공로를 자기집 땅인 양 푯말을 세운다.)
보행자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교통질서를 지키지 않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① 차도로 걷는다
② 길을 함부로 건넌다.
③ 여럿이 길을 휩쓸며 지나간다.
④ 빨간 신호등일 때도 길을 건넌다.
⑤ 대도시, 서울이 더 문란하다.
법은 강제 규범이다. 교통 법규는 지키기 위해 정해진 것이다. 또한, 법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00마력의 차와 1/10마력의 사람이 부딪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자기가 차를 탔다고, 자기가 센 입장이라고 마구 밀어붙이는 꼴이 아닌가? ‘한국인은 자기 입장에서 세상을 내다본다.’는 말이 있다. 차를 운전하는 이는 차 입장에서 보행인을 탓하고, 보행자는 ‘차가 비키겠지’하는 태도로 차도를 유유히 걷는 것을 흔히 본다.
시비가 붙으면 이와 같은 사고(思考)는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그래서 우리 한국 사회는 시끄럽고 더 많은 규제가 걸리고 더 많은 단속 요원이 필요하게 되어 결국 국력 낭비 요인으로 이어진다. 서울시의 예산중 교통관계 비용이 다른 비용보다 휠씬 많다고 한다. 병원에는 교통 사고 환자 수용실이 따로 있어야 할 형편이다.
교통문화는 점차로 성숙되겠지만 근래에 차량이 폭증하여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이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선진국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고 하지만 현재 그들의 모습을 보고 듣노라면 우리는 왜 그렇게 안 되는가? 한숨이 절로 난다. 마음 한번 고쳐먹으면 곧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보행인이 횡단 보도에 나타나면 차가 멀찌감치에서 기다리는 모습(호주). 교통사고 사망자 수 0에 가까운 뉴질랜드, 규정속도 잘 지키는 미국, 앞차가 머뭇거려도 뒤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는 영국인.... 우리가 본 받아야 할 모습이다.
우리 평고 학생은 오늘의 한국 문화의 위상을 살펴 볼 줄 알고, 잘못된 점을 눈여겨두어 이 다음에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각오를 굳게 다짐해야겠다. 매일 등하교길의 교문앞에서, 길 건널 때 마구 뛰어 위험하고 볼상 사나운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전교생이 다시 한 번 결심해 주기 바란다. 미래의 한국 건설을 위한 선구자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罰을 통해서는 잘못한 것 단 한 가지밖에는 고칠 수가 없다.
그러나 賞을 줌으로써는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
∙상의 교육적 효과의 중요성
∙상을 통해 名譽의 소중함을 일깨워 줄 필요가 있음.
∙자신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그 自負心, 그 名譽心이 그 전보다
그를 몇 배나 성실하고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만들 수 있음.
거리질서 지키기
‘거리 질서 잘 지키기’ 는 반세기에 걸쳐 강조되어 온 일이다. 자유당 때에는 ‘좌측 통행’, 그 이후, ‘거리 질서 지키기’ ‘횡단 보도로 건너기’ 등으로 관심이 쏠리더니 요즈음엔 차의 ‘정차선 바로 서기’에 까지 이르렀다.
잘 되면 강조하지도 않는다. 안되니까 수 십년 되풀이하여 계속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50년대의 자유당 정권 때에는 그런대로 순수하게 느껴지고 자율적으로 잘 지켜지는 것 같았다. 공화당의 60년대 이후에는 무섭게 단속하는 바람에 표면상 잘 되는 것 같았다. 그 이후, 학생들의 반정부 시위가 잦아지면서 사회 기강조차 문란해지더니 단순한 보행자의 질서뿐만 아니라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조차 질서를 우습게 알고 마구 차를 질주한다. 생명과 관련된 일인데도……
거리 질서뿐인가? 사회 규범 전반에 걸쳐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희박한 상태이다. 정권이 바뀐다고 질서조차 바뀔 수는 없는 것이다. 한결같이 지켜야 할 국민의 사회 생활을 위한 기본 교양인데, 수십 년을 강조하고 수십 년을 안 지키며 우리는 살아 왔다.
물론 대다수의 국민들은 잘 지키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 사회가 이제까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질서는 하늘의 법률, 지키면 편리하고 안전한 것’
이제부터 우리 학교도 질서를 잘 지키기로 평판이 높은 명문고로 만들어야 한다.
◎ 교실에서 질서를 지킨다.
◎ 복도에서 좌측 통행을 하고 급히 뛰지 않는다.
◎ 항상 차례와 순서를 지켜 점잖게 처신한다.
◎ 공원이나 유원지에서 행락 질서를 잘 지킨다.
◎ 횡단 보도로 건너고 항상 차 조심한다.
◎ 쓰레기 나누어 모으기를 철저히 잘 한다.
자발적 참여 자세
스스로 좋은 일, 궂은 일 하기
어떤 일을 스스로 하는 것과 시켜서 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스스로 하는 것이 천냥이라면 시켜서 하는 일은 잘 해야 반값밖에 안 나갈 것이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고, 자주적으로 행동하는 점이라고 하겠다. 스스로 좋은 일을 찾아서 하고, 궂은 일을 싫어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앞선 사람이요, 훌륭한 성품의 소유자이다. 이런 사람은 매사를 성실히 할 사람이고, 개인적으로 성공할 것이요, 집안을 화평하게 거느릴 사람이고, 국가를 살찌게 할 사람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유익한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는 모범된 생활을 해 나감으로써 나의 존재 가치를 높이고 인생의 보람을 찾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생활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내가 먼저 솔선하기
“좋은 일은 내가 먼저 솔선하여 행하자”
몸을 사리고 꾀부리는 형의 사람의 인생은 끝이 좋지 않다. 결국 땀 흘려 일하기는 싫고, 좋은 것은 많이 누리려 하니, 오랜 세월 누가 한결 같이 나만 위해줄 것인가? 있는 재산 다 탕진하고 가까운 친구 멀어지니 외롭고 궁색한 인생의 말로를 걷게 될 것이 자명하다.
눈에 띄는 대로 발 벗고 나서는 진취적인 기상을 갖자.
형제 일을 내 일 같이 보살펴 주고, 학교 일을 우리 일같이 하고, 국가 잘 되는 것을 내 집안 잘되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자. 좀더 크고, 넓게, 대범하고, 너그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자.
휴지 줍기
‘휴지 줍기는 이삭줍기와 같다.’
휴지는 주울 때마다, 복을 줍는 것이나 다름없다. 휴지를 줍는 손은 오물이 묻어 더러워지지만 마음은 그만큼 깨끗해져서 끝내는 착한 마음이 살쪄 하늘이 돌보아 줄 것이고, 주위 환경도 깨끗하게 정리 될 것이다.
옛날에는 스승을 구하려면 그 집안 청소 일부터 자청했다. 배우기에 앞서 마음부터 깨끗이 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제부터 버리는 사람이 되지 말고, 모두 줍는 사람이 되자. “교실은 우리 반의 얼굴이다.” 아침마다 거울보고 단장하듯 우리 반의 교실도 깨끗하고 멋있게 단장하자.
법 준 수
준법 정신의 생활화
소크라테스는 악법인 줄 알면서 법을 지켜 독배를 마시고 최후를 마쳤다. 우리는 현재 많은 사회 문제를 겪고 있는데, 따지고 보면 법을 우습게 알고 안 지키는데 원인이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법을 안지키는 풍토가 확산되면서 끔찍한 일들이 빈번해졌다. 자유 민주주의가 너무 일러서인지, 아니면 예로부터 그러한 소질이 있었던 것인지 ?
우리도 한때는 국법을 무서워 할 줄 알고 법을 지켜야 한다는 정신이 강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때는 강한 제재가 따르는 가운데 행한 준법 행위였던 것이다. 이제 부터 우리도 법률과 규칙을 잘 지키는 민족으로 소문이 나야할 때이다. 상냥하고 양심 바른 국민으로 알려져야 한다. 나의 그릇된 행동은 누군가가 보고 있고 속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이 되려면 이제 부터 우리도 준법을 생활화해야 한다.
교칙 잘 지키기
교칙은 법에 비해 작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별 뜻 없이 안 지키기 일쑤다. 또한 아무 생각 없이 남이 하는 대로 나도 무심히 교칙을 어긴다. 우리는 청운의 큰 꿈을 안고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다. 하루도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때다. 하는 일 모두가 의미가 있는 야무진 태도로 생활해 나가야 한다.
‘작은 일에 충실하라.’ ‘작은 규칙부터 잘 지켜라.’ 규칙을 잘 지키노라면 쓸데없는 신경을 쓸 필요가 없고, 공부의 능률도 오르고, 주의의 칭찬도 듣게 마련이다. 약간 불편한 점도 있으나 사회 공동 생활을 유지하자면 할 수 없이 지켜야 된다. 모두가 지키면 아름답게 되고, 안지키면 수라장이 되지만, 더욱이 내 자신의 미래를 위해, 장차 남보다 큰그릇이 되기 위해서 학교 교칙을 잘 지켜야만 되는 것이다.
고생(苦生)의 의미
고생이란 원래 한자(漢字)로 ‘쓸 고(苦)’와 ‘날 생(生)’자이니, 쓴 것이 밖에서 들어오는 것보다 안에서 나가는 것에 더 가까운 의미를 가진다. 영어로 고생의 의미는 ‘하드(Hard)’니, ‘타프(Tough)’니, ‘트러블(Trouble)’이라 한다.
그 이유는 ‘Hard' 즉 힘들여 하지 않은 것은 가치가 없는 것이고, ‘Tough’ 즉 강하게 끈질기게 밀고 나간 일이 아니면 존경할 일이 못되고, ‘Trouble’ 즉 시련을 겪은 후에야 성공의 탑이 세워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고생은 영광이요, 훈련이며, 인생의 과정이요, 신(神)의 커리큘럼(Curiculum)이다.
고생은 저마다의 생각에 따라 그 정도가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수월한 것 같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힘들게 여겨지기도 한다.
고생이라는 낱말은 그 주인의 마음가짐에 따라 같은 것이라도 다르게 느껴진다. 고생으로만 생각한다면 그저 괴롭고 지겨울 뿐이다. 그러나 웬만한 고생쯤은 해볼만 하다는 패기를 갖고 누구에게나 가진 시련을 자신을 단련시키는 시금석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자기 성장과 발전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피땀으로 얼룩진 나의 생활이 행복이요, 값지고 찬란해 보인다. 고생은 나의 인간됨을 저울질한다. 나의 능력을 실험하는 것이다. 머지않아 떠나갈 불청객이니 웃으며 영접하며 영원히 기념하자.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가 이러한 고생들에 대해 익숙했고 적응성이 좋았음을 다시 한번 상기하자.
법을 지키는 생활
- 제헌절 훈화 자료-
( 7 월 17 일 )
제헌절은 우리 나라 헌법이 처음 제정되어 공포된 날인 1948년 7월 17일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1948년 5월 10일, UN의 감시 아래 총선거를 실시하여 198명의 제헌 의원을 뽑아 국회를 구성하고, 국회에서 제정된 헌법이 7월 17일에 공포되어 그날로부터 효력이 발생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헌법이라고 하는 것은 그 나라를 유지해 나가는 근간이며 최고의 법으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함으로써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지향하는 것은 정의로운 사회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의 모든 법과 규범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복과 사회 정의를 실현시키는 것을 근본 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법을 지키지 않았을 때는 사회 구성원간에 갈등이 야기되고, 상호의 안녕과 질서가 유지되지 않으므로 법을 지키는 그 행위 자체가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하겠습니다.
민주사회는 질서가 잘 유지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질서는 또한 준법정신에서 비롯되므로 성숙된 민주시민사회는 질서를 잘 지키는 사회요, 준법정신이 투철하다고 합니다.
이처럼 민주시민의 자질은 법을 지키는 준법정신으로 가름하게 되는 것이므로 학생 여러분은 주위의 사소한 규칙부터 꼭 지키겠다는 의지가 필요하겠습니다.
고대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가 터무니없는 이유로 고발당하여 감옥에 있을 때 그의 친구가 탈출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이를 거부하고 ‘악법도 법이다.’라고 하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 이유는 법을 지키는 것이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믿었기 떄문인 것입니다.
제헌절에 즈음하여, 학생 여러분은 자신만을 위하는, 자신의 그릇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피해를 주게 될 것인지 깊이 생각하고, 사회의 공익을 위한 준법정신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건전한 민주사회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참 주 인(主人)
主人! 주인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참 주인이요, 또 하나는 거짓 주인이다.
참 주인이란 주인 구실을 할 줄 아는 것이요, 주인다운 자격과 실력을 갖추고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주인이요, 주인다운 진짜 주인이요, 사실상의 주인, 실질적인 주인이다.
거짓 주인이란 주인 구실을 못하는 것이요, 주인다운 책임과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명목상의 주인이요, 형식상의 주인이다. 이것은 가짜 주인이요, 허수아비와 같은 주인이요, 있으나 마나한 주인이다.
과거 일제 35연간은 우리 국민이 참 주인 노릇을 못한 시대요, 진짜 주인 노릇을 못한 암흑기였다. 우리는 일본인들에게 아홉 가지를 빼앗기고, 역사(歷史)의 노예(奴隸)로 전락(轉落)했었다. 國土, 主權, 財産, 自由, 權利, 말, 글, 이름, 그리고, 우리의 얼과 정신이었다. 역사의 국맥(國脈)이 끊기고, 민족의 國基가 흔들리고, 겨레의 國風이 마비되었다. 한국 역사의 가장 비참하고 부끄러운 곤욕(困辱)의 시대였다.
참 주인 노릇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내 인생의 참 주인 구실을 하고 있는가?
나는 내 가족의 참 주인 구실을 하고 있는가?
나는 내 직장의 참 주인 구실을 하고 있는가?
나는 내 고장의 참 주인 구실을 하고 있는가?
나는 내 나라의 참 주인 구실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 물음 앞에서 ‘그렇다’하고 자신 있는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정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정신이다. 우리는 왕성한 주인정신, 투철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진리는 가까운 곳에서
흔히 사람들은 가까운 곳보다 먼 곳을 동경합니다. 늘 주위에서는 눈에 띄거나 마주보는 사람보다는 자신과 멀리 떨어진 사람을 더 존경하고 그리워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핍박받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예는 마호메트에서도 나타났으며 역시 석가모니에게서도 나타났습니다. 동시에 공자에게도 나타난 역사적 사실입니다. 주위의 환경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용인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연농원이나 민속촌에 가자고 하는 것보다, 제주도에 가자고 하는 것이 훨씬 더 가슴을 부풀게 하는 것도 같은 이치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진리를 먼 곳에서 찾으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리는 반드시 먼 곳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여행을 하다보면 먼 산이나 들판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타고 있는 자가용이나 자동차, 기차나 버스에서 내려 그 아름다워 보이는 곳을 찾아가 앉아보려 한다면 손수건이나 다른 깔판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그대로 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앞에서 예를 든 것은 대체로 사람이나 환경이나 멀리 보이는 것이 아름답다거나 좋아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막상 가까이 가서 보면 그곳의 현실은 생각이나 느낌과는 다르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부사람들이 과소비풍조에 말려들고 외국산을 선호하는 문제도 바로 이런 심리적 요인에도 기인하는 것입니다.
또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학교보다는, 자기를 가르치시는 선생님보다는 다른 곳의 학교나 선생님을 더 좋게, 훌륭하게 생각하는 것도 이런 심리적인 요인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진리는 반드시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진리는 바로 우리의 주위에 있으며 여러분을 가르치시고 키워주는 이학교가 바로 여러분이 아끼고 존경해야할 환경임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바 른 직 업 의 식
98. 6. 16일 신문에서 놀랄만한 뉴스를 접했다.
마이크로 소프트(MS)사의 거센 도전을 받으면서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의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지켰던 ????글이 결국 미국 MS사에 2천만$를 받고 ????글 사업을 포기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IMF시대를 맞아 돌파구를 벤처기업에서 찾던 우리는 벤처기업의 상징이라 말할 수 있는 한컴사의 붕괴로 또 한 번 충격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컴사의 몰락은 불법복제품이 판을 친 우리 시장 풍토 속에서 경영난을 이겨낼 수 없었다는 데 주원인을 찾지만 이찬진 대표가 중간에 정계에 진출함으로 새로운 소프트웨어 개발에 힘쓰지 못한 것이 ????글의 몰락에 결정적 원인이 된 것은 아닐까?
우리 나라는 TV탤런트, 코미디언, 영화인, 경제인등 어느 분야에서든 성공하여 유명인이 되면 정계로 진출하는 현상이 강하다. 그런데 그러한 변신이 성공한 경우를 우리는 별로 보지 못했다. 이주일氏가 그러하고 정주영, 신성일..... 등이 그러하다. 인기를 얻으면 마지막 지향하는 곳이 정치판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의식의 저변에 아직도 사·농·공·상 순위로 직업을 매기는 조선시대식 직업귀천의식이 남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정보화시대라고 한다.
산업중심의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넘어왔지만 우리의 의식은 아직도 농경시대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정보화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은 어떤 분야에서든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비법, 전문성을 소유한 사람이라 한다. 예를 들어 냉면집을 경영할 때 고객의 입맛에 맞는 냉면을 맛있게 만드는 비법을 오랜 경험속에서 개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전문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보화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우리에게 남아 있는 관존민비의식을 버리고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만 그 직업에 혼신을 다해 정성을 쏟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뒤 소비자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연구하며 개발하는 자세로 남들이 갖지 못한 비법(정보)을 창출해 낼 수 있을 때 진정 정보화 시대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 갈 수 있다.
필 부 지 용 (匹夫之勇)
전국시대(B.C431-221), 맹자(孟子)가 제(齊)나라 선(宣)왕을 만났을 때의 일입니다. 선왕이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이웃 나라와 사귀는 데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맹자가 말했습니다.
“있습니다. 오직 어진 사람이라야 큰 나라를 가지고 작은 나라를 섬길 수 있으며, 또한 오직 지혜로운 사람만이 작은 나라를 가지고 큰 나라를 섬길 수 있습니다. 큰 나라를 가지고 작은 나라를 섬기는 자는 하늘의 도를 즐기는 자요, 작은 나라를 가지고 큰 나라를 섬기는 자는 하늘의 도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도를 즐기는 자는 천하를 보전하고, 하늘의 도를 두려워하는 자는 자기 나라를 보전할 것입니다.”
선왕은 맹자의 말에 동감했으나, 그대로 따르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선생의 말씀이 훌륭하기는 합니다만, 과인은 워낙 용(勇)을 좋아하는지라….”
그러자 맹자는 말했습니다.
“원컨대 작은 용기(勇氣)를 좋아하지 마십시오. 칼을 만지면서 상대방을 노려보고, ‘네가 감히 나를 당하겠느냐?’ 하는 것은 필부(匹夫)로 한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보다 큰 용기(大勇)를 가지십시오.”
‘필부(匹夫)의 용기(勇氣)’란 힘으로 남을 눌러 보려는 데서 나오는 용기를 말합니다. 여기서 비롯되어 쩨쩨한 용기, 혈기에 의한 용기를 필부지용(匹夫之勇)이라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쩨쩨한 용기를 진정한 용기라고 착각하고 자신의 힘으로 상대를 누르고 기뻐하는 졸장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울러 지혜로운 마음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큰 용기를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자주적인 역사인식
- 광복절 훈화 자료 -
( 8 월 15 일 )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에게 가장 불행했던 역사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36년의 기간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의 식민지 새대는 너무나 참담하여 주권을 잃은 자의 굴욕과 비참함을 뼈저리게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의 우리 나라 침략의 역사는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혹독하여 우리의 국토는 그들의 수탈의 장소로 전락해 갔고 우리의 역사·문화·언어가 그들에게 완전히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우리의 앞날을 걱정하던 애국 지사들은 민족의 독립, 그날을 위하여 피눈물나는 투쟁을 계속하였고, 임시정부 수립, 광복군 조직 등으로 항일운동을 분투하였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직후, 해방을 맞이하자 온 국민은 굴욕과 억압에서 풀려난 환희와 기쁨으로 새 역사를 기약했었습니다 그러나 희망과 환희로 해방의 기쁨을 누린 지 채3년도 안되어 큰 혼란을 겪게 되었고, 남북으로 분단국가가 성립되어 서로 대립하다가 6·25전쟁을 겪게 됩니다.
똑같은 역사적 사실이라 하더라도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게 마련인데, 8·15는 식민지 시대를 산 사람에게는 잃었던 제 말과 이름을 찾아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는 환희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분단시대에만 산 세대에게는 8·15는 해방이란 의미보다 분단의 시발점이란 의미가 더 크게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국제 정세는 이념이나 사상보다 자국의 이익이 우선되는 국가이기주의로 흐르고 있습니다. 이런 국제 정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자주 국방력 배양이 가장 급선무라 하겠습니다.
자주 국방력이 배양될 때, 비로소 통일된 한 민족으로 세계 속에 나아가 외교 관계가 강화되어 더 이상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희생물이 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광복절에 즈음하여,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선열들의 넋에 깊이 감사드리며 그분들의 피가 헛되이 되지 않도록 새로운 역사의 개척을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설 때입니다.
민 주 시 민 의 식
1. 민주 시민 윤리 익히기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돈다. 단, 앞으로 전진하면서 돈다.” A.토인비의 말이다. 어제의 일은 오늘도 옳고 타당한 것이라 하여 추종만 하면 발전적 계기는 어렵고, 답습의 그림자 속에 빠지고 만다. 재창조적 의미가 없다면 역사 연구는 수고로울 뿐이다. 가속적인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는 현실 상황에서 인간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바삐 뛰어야만 하게 되었다.
우리는 지난 역사 속에서 많은 교훈을 발견한다. 공동체적 생활 양식은 오늘에 맞게 새롭게 정립해야 된다는 여론이다. 오늘의 사회를 산업 사회, 이익 사회, 다원 사회, 다가치 사회, 정보 사회, 대중 사회 등, 많이 표현하고 있으나 민주시민사회라는 말이 함축성이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민주시민사회를 살아가면서 행동은 구시대적인 면이 많이 남아 있다. 시민정신이란 곧 공공 질서 지키기와 준법 정신을 의미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정직하고 공정한 경쟁을 하며 규칙을 지켜야 된다. 또, 타인의 권리와 감정을 존중하며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고, 불법에 맞서며 개선의 노력을 한다.
2.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 능력의 소유자여야 한다. 지면, 인맥, 파벌 등 특정집단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3. 전체의 복지가 성취될 때에 자기의 복지가 궁극적으로 보장된다는 점을 통찰해야 한다.
4. 공직은 국민이 위임한 것이며 공직자는 사회에 대한 의무를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 자의적인 행동을 공적인 행동으로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5. 세계가 연관된 조직된 협력 관계임을 인식하고, 다른 문화와 생활양식을 이해하고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이 밖에도 타협, 양보, 아량, 다수에 승복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를 갖는 것이 민주시민정신이라고 말 할 수 있다.
2. 학 급 회 의
민주 시민 교육의 일환으로 매주 1시간씩 학급 회의를 하게 되어 있다. 민주주의는 회의 운영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예로부터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으고 단합된 행동을 통해 문제 해결을 해왔다. 이제 학급회의 일반 유의 사항을 들어보면.
1. 참여 의식이 있어야 된다.
(회원은 학급 회의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성인이 되어 사회적인 활동을 할 때 회의가 무수히 많음을 인식하고, 교양의 한 부문을 익히는 과정임을 안다.
3, 의제의 실천, 결과 반성 등 회의 진행 중 절차와 격식을 잘 알고 참여한다.
4. 반대 의견에 대한 합리적인 설득의 자세가 필요하다.
5. 어떠한 경우에도 감정적인 대결은 안 된다. 회의는 신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임을 명심한다.
文化人의 다섯 가지 行動守則
문화인(文化人)으로서, 양식과 품위를 갖춘 민주시민(民主市民)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다섯 가지의 행동 수칙(行動 守則)이 있다.
첫째 시간(時間)을 지키는 것이다. 문화인은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 옛 사람은 ‘석시여금(昔時如金)’이라고 했다. 시간을 금과 같이 아끼라는 말이다. 시간을 황금처럼 아낌과 동시에 시간을 지키는 것이 생활의 습관으로 되어야 한다.
둘째는 질서(秩序)를 지키는 것이다. ‘만물유서(萬物有序)’다.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다 질서가 있고 또 있어야 한다. 질서는 조화의 미(美)요, 自然의 생명이요, 사회 번영과 국가 발전의 윤리이며 문화인의 자격이다.
셋째는 분수(分數)를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의 분수를 알고 분수를 지키고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 분수에 지나치는 행동이나 생활을 하면 반드시 불행과 파멸(破滅) 속에 빠진다. 그래서 옛 사람은 ‘수분지족(守分知足)’과 ‘너 자신을 알라.’고 강조했다.
넷째는 약속(約束)을 지키는 것이다. 문화인은 약속을 지킨다. 철학자 니이체는 ‘인간은 약속을 할 수 있는 동물’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남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언행일치(言行一致)해야 한다. 공자(孔子)는 ‘무신불입(無信不立)’이라고 감파했다. 신용은 인간존립(人間存立)의 근본이다.
끝으로 예절(禮節)을 지켜야 한다. 예절은 문화인의 자랑이요, 교양인의 필수 자질이다. 예절은 화목(和睦)의 전신이요, 경의(敬意)의 표현이요, 사양(辭讓)하는 마음이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요, 여러 사람과의 다원적(多元的)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예절은 대인관계의 기본원리다.
역지사지(易地思之)에 대하여
우화에 보면 여우가 황새를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하는 장면이 나온다. 황새는 여우의 집에 초대되어 가지만 여우는 넓은 접시에 국물을 담아 내어 황새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배를 곯게 된다. 황새도 여우를 초대해서 입구가 좁은 그릇에 식사를 내어와 여우로 하여금 아무 것도 못 먹게 복수한다는 이야기이다. 만일 초등학교를 다녔다면 이 우화를 들어보지 못했거나 이 우화가 뜻하는 바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으리라. 그러나 이렇게 쉽고 아주 어릴 적에 배울 정도로 기초적인 이 우화를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극히 적다. 우리가 자기 입장만을 보고 있는 탓이다.
언젠가 텔레비전 토크쇼에서 사회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운전을 할 때 만일 다른 운전자가 자신의 차 보다 빨리 달리면 “ 저런 미친 놈!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하고 욕을 하고 만일 늦게 달려서 자기의 속도에 영향을 받으면 “저런 바보 같은 놈! 집에 쳐 박혀 있지 차는 왜 끌고 나온 거야?”하며 욕지거리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화를 보면 이 우화가 주는 교훈을 더 심각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두 줄 또는 세 줄로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내리기도 전에 엘리베이터나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버스나 기차 안에서 큰소리로 전화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뉴스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우리 아이만 군대 안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돈을 건넸던 바로 그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 우화가 주는 의미는 아주 특별해 진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성경말씀」 중에서 (마태복음 7 : 1~5 )
겉 과 속
요즘은 정보의 홍수 시대다. 컴퓨터, TV, 잡지, 신문 등 우리 청소년들은 엄청난 정보를 접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정보들 중에서도 개인의 기호에 따라 그 정보를 받아들이고 또 찾으려고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세대 차이란 말만 있었지만 지금은 같은 세대라도 또 다른 차이를 만들고야 만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정보를 살펴보면 한가지 우려가 앞서게 된다. 연예인에 대해 너무 광적이고 즉흥적으로 좋아하고, 남학생들도 이젠 액세서리와 옷 등의 패션에 관심이 많고, 컴퓨터나 메탈과 같은 음악에 열정을 바치곤 한다. 그리고는 인기 연예인의 행동이나 모습을 곧잘 따라하곤 한다. 우리 청소년들의 이런 행태를 그들만의 문화라고 하자. 문제는 그들의 문화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외적이고 물질적인 면에 편중되어 있는데 있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도록 하는 자기반성, 인생관, 인류문화와 역사, 우주에서 들려오는 비밀스런 속삭임 등 인간의 내면과 자연이 주는 잔잔한 감동을 위한 관심과 준비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과거에 책만이 모든 정보를 전달해주는 매체였을 때 우리는 고전과 고전 속의 인물을 사랑하고 역사 속의 위인처럼 되겠다는 꿈을 키우며 자랐다. 반면에 요즘 청소년들의 우상은 역사 속의 위인이 아니라 현실의 유명 연예인인 것이다. 물론 인기 연예인의 인기는 인격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닐뿐더러 그들의 인품과 행동이 아직 검증되지도 않은 상태에서도 겉모습과 피상의 행동을 보고 청소년들은 그들에게 열광한다.
그러나 겉만을 보고 좋아하게 되는 열정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할 뿐 아니라 주체성 없이 받아들인 이 겉모습은 위태롭기만 하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좀 더 진지한 자세로 접근하고 선량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외적인 현상과 물질에 집착을 자제하고 자신의 내면과 정신을 충만하게 하는 청소년기가 되도록 노력하여야 하겠다.
97. 5. 4 KBS저녁 9시 뉴스
경기도 고양시에서 ‘97 세계 꽃 박람회’가 열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가족끼리 예쁜 꽃을 보기 위해 도시락을 싸서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박람회장에는 세계 각국에서 전시한 아름답고 진귀한 꽃들로 말 그대로 그림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차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점점 늘어나면서 뒤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마치 ‘쓰레기 박람회’가 열린 것 같이 되었습니다. 또한 잔디밭에는 출입금지라고 쓰인 팻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음식물을 먹고 마시며 잔디밭을 훼손하고 쓰레기를 마구 버리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전시된 꽃까지 망가지는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밀리는 인파에 쓰레기 처리는 안 되고 구경꾼은 짜증나는 하루였다고 한다. 거기다가 하수 처리 시설이 부족하여 비가 오고 난 후 전시장은 빗물이 빠져나가지 않아 온통 물난리를 겪기도 하였다. 아직 기간이 남았는데도 딴 나라 전시관은 일찍 문을 닫는 곳도 생겨났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공익에 대해선 무관심한 편이라고들 합니다. 주위의 분위기에는 아랑곳없이 떠들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면 기를 쓰고 나서다가도, 공공의 이익을 위하는 일에는 외면하며 돌아서 버리는 습성이 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타협하여 의견을 만들어 내고 실천하는 민주적 태도가 부족한 것입니다. 남을 나만큼 소중한 존재로 생각할 때 남의 자녀, 부모, 재산, 권리도 나의 것만큼 소중하게 생각할 때 공공의 이익과 질서도 지켜질 테지요.
『 賢人이란 어떤 사람인가? 모든 사람에게서 배우는 사람이다.
强者란 어떤 사람인가?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다.
富者란 어떤 사람인가? 자기의 운명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이다』
「 유태 경전 」
어느 교사의 이야기
내가 잘 알고 있는 선생님이 겪은 학창 시절의 경험 한 토막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 선생님은 가난한 집안의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고등학교에 진학은 하였지만 워낙 살림이 가난하여 자취를 하였는데 굶기를 밥 먹듯 하며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그에게는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일이 하나 있었다.
언제인가 그날은 그의 생일이었는데 미역국 대신 찬물 한 그릇과 하얀 쌀밥 대신 이틀이 지난 굳은 찬밥 한덩이, 그리고 간장 한 종지를 상에 놓고 눈물 반 콧물 반으로 요기를 하고 학교를 가면서 그는 수 없이 맹세를 했다고 한다. 비록 지금은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해도 언젠가 웃으며 이 날을 이야기 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때를 위해 오늘의 이 서글픔은 충분히 참고 이겨낼 수 있다고......
때로는 가난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그러나, 단 한 번도 그에게 주어진 환경에 대해 절망하거나 자포자기한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고생이 뼈에 사무칠 때면 그래도 오늘의 이 고생이 먼 훗날 살아가는 데 정말 값진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었기에 지금 이렇게 교단에 서서 꿈을 펼칠 수 있는 것이라고, 누누이 이야기하였다고.
비록 ‘교사’라는 직업이 보는 이에 따라서는 하찮게 보일는지 모르나 만약 그 선생님이 학창시절 불우한 환경을 탓하기만 하고 참고 이겨내지 못했다면 오늘의 그분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현대는 물질적인 풍요 속에 살아가는 세상이라지만 아직도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가정이 많이 있다. 그러나 옛말에 가난은 사서라도 하라고 했듯이 그 가난과 고통은 앞으로의 삶에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직업도 마찬가지다. 직업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어떠한 직업이 자기의 능력과 소질에 맞느냐가 문제다. 아무리 좋다는 직업일지라도 자기 능력에 맞지 않는,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 일은 어렵고 재미가 없을 것이요, 남들이 좋지 않다고 하는 직업이라도 자기는 쉽고 재미있는 일이라면 신이 나는 좋은 직업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능력에 맞는 진로를 선택한다면 그의 삶은 즐겁고 행복 삶이 될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고생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여러분 앞에 어떤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치면 얼마나 쉽게 포기할 것인가? 앞에서 고생을 이겨내고 성공한 어느 선생님의 체험담처럼, 이렇게 시련을 이겨낸 사람은 그 고통의 체험 속에 참다운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훈훈한 인간미를 가지게 되지만 모든 것이 넉넉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에게서는 그러한 참답고 절실한 분위기는 느낄 수가 없을 것이다. 만약 지금 이 순간이 힘들고 어렵다고 느끼는 청소년이 있다면 이 세상에는 나보다 더 어렵게 살아가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퇴폐문화를 버리고 건전한 생활 태도를 갖자
오늘의 우리 사회는 큰 병에 걸려 있다. 외화내허병(外華內虛病)이다. 겉은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속은 비고 허황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병이요, 생활의 병이요, 마음의 병이다.
우리의 사회와 생활은 점점 겉만 화려해진다. 인생은 외부의 장식보다 내부의 충실이 더 중요하다. 옷의 세탁에 앞서서 마음의 세탁에 힘써야 한다. 얼굴을 아름답게 가꾸는 동시에 인품과 성격을 아름답게 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분에 넘치는 사치와 허영과 낭비와 향락의 생활 기풍이 우리 민족의 건전한 생명을 나날이 좀먹어 들어가고 있다. 성실 대신에 부허(浮虛)가, 건전 대신에 경박(輕薄)이, 근면 대신에 나태가, 생산 대신에 소비가, 저축 대신에 낭비가 만연되어 있다.
생산 사회의 근검 기풍을 조성해야 되겠다. 인생은 진보와 향상을 향해서 부단히 자기를 개조하고 조각해 가는 생활이다. 우리는 저마다 생명의 조각가다.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첫째, 우리는 저마다 제 분을 알고 제 분에 맞게 살아야 한다. 수분(守分)이 인생의 지혜이다.
둘째, 우리는 부지런한 생활인이 되어야 한다. 부지런한 나무에는 번영의 꽃이 피고 행복의 열매가 맺는다. 게으른 나무에는 쇠퇴의 벌레가 먹고, 불행의 낙엽이 떨어진다.
끝으로 우리는 저마다 성실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성실은 우리가 디디고 서야 할 인생의 땅이다. 현대의 악성 카자르스는 “현대인은 성실과 소박성을 상실하였다.”고 말하였다.
거짓, 속임수, 무책임, 불신, 방탕 등은 모두 성실의 부족에서 오는 인생의 악이다. 모두 성실의 자리로 돌아가자.
연 대 의 식
“인간은 사회적 동물 정치적 동물이다”―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우리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 속에서라야만 자기의 존재 가치를 발현할 수 있다. 고로 인간 사회는 인간에게 있어서, 물고기의 물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간혹 자기만을 위하고 사회를 해롭게 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물론 사회 공동체를 위한 규범에 어긋나게 되면 제재를 받게 되지만, 그런 정도가 아닌 경우도 허다해서 사회 공익이 총체적으로 위협을 받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우리는 2002년 월드컵 대회를 유치해 놓고, 부지런히 ‘시민 공부’ 즉, ‘민주시민 정신교육’을 받아야 할 판이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하게 모양새를 갖추었지만 속을 파고들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1만불의 외모에 걸맞는 내적인 교양을 갖추어야 할 때이다.
우리 나라는 원래 공동체 의식이 다른 민족보다 강했다. 우리 조상들은 많은 어려운 국난을 겪으면서 서로 도와 살아 남는 지혜를 터득했다. 그러나 이제 살만 하게 되니 연대의식이 약해지면서 이기주의가 팽배해졌다. “인류 역사상 가장 단결이 잘 된 나라는 신라다.” 이탈리아의 지성 Gia Come의 말이다. 이제 우리도 남을 살피고, 남과 잘 어울리고, 남을 위해 봉사할 줄 아는 교양을 갖추고 연대 의식을 가지고 아름다운 우리의 문화를 꽃 피워야 할 때이다.
1. 협동 정신 발휘하기
교 실 : 항상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모두 협력하자.
우리 학급 : 나도 잘 하고, 우리 학급이 잘 되도록 협동심을 발휘하자.
우리 학교 : 우리 학교의 전통을 빛내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여 나와 나의 후배를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자.
2, 공공 기물 아껴 쓰기
물자의 낭비는 그 자체만으로도 죄가 될 수 있고(殺物罪), 공해 유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나의 물건을 아껴 쓰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의 물건도 소중히 해야 한다. 물자 아끼는 마음은 매사에 일을 알뜰히 하는 마음과 통한다. 공공 기물을 소중히 하는 마음은 애국심과 민족을 생각할 줄 아는 마음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어려운 시절에 물자를 참으로 아껴 온 미담을 많이 전해 주고 있다. 내 물건도 소중히 하려니와, 공공 기물을 더욱 아끼는 마음가짐은 국가를 위하는 일임은 물론 국민된 기본 교양을 갖추는 일임을 명심하자.
告 發 精 神
-건설적인 고발 정신의 생활화-
◇ 건의함 활용하기
언제부터인가 민성함(지금의 건의함)이라는 것을 경찰계에서 설치하기 시작했다, 옛날의 ‘신문고’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 효과는 별로 높지 않았다고 본다. 청와대 특별 사정비서를 통하여 두터운 인의 장막을 뚫고 곧바로 호소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으로 인식되던 때도 있었다.
하여튼 건설적인 건의나 때로는 고발을 해야 할 때가 있기 마련인데,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이러한 일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점잖은 사람은 인하는 일로 생각했고, 차라리 보복성 고발이나 상식이 없는 일부의 사람이 하는 짓으로 여겨 왔다. 그러나, 보고도 못 본 체하는 방관자적 태도가 엄청난 사회 총체적 불의를 조장하고야 말았다. 유럽의 우등생 독일 사회는 시민이 서로 감시하여 질서가 유지된다고 한다. 우리 사회도 선진 사회와 같은 성숙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 학교의 건의함은 ‘빈통’인 날이 많다. 고발 정신을 발휘하여 슬기롭게 활용하자. 나를 위하고 학교를 위하여 발전적이고 사심없는 건의를 많이 하여 하나의 전통으로 만들자. 건의함은 학생의 소리요, 학교가 나아갈 방향타가 될 수 있는 좋은 제도임을 믿고 활용하자.
◇ 폭력 신고하기
우리 사회의 고질병 중의 하나가 폭력이다. 폭력은 야만이요, 불의요, 무너지는 소리다.
무지하고 무능한 자가 즐겨 쓰는 야비한 수단이다. 우리 나라는 유교를 숭상하는 예의의 나라였다. 서구 세계에서 숱한 암살극이 연출될 때에도, 근대 개화기까지는 암살은 없었다고 한다. 민겸호가 사상 처음으로 암살 당할때까지는⋯
이제는 언제부터인가 ‘학원 주변 폭력배 근절!’ 이라는 국가 차원의 운동이 벌어지게 되었다. 어느 경우에도 폭력은 쓰지 말아야 한다. 폭력을 쓰는 자는 이미 이성을 잃은 자다. 사람이 이성을 잃으면 곧 짐승이나 다름없다. 우리 학교는 좋은 선배를 배출한 명문교요, 우리들은 자랑스런 평고 학생이다. 우리 학교만이라도 폭력이 없는 명랑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하여 모든 학생이 폭력에 대해서는 너도 나도 주저없이 즉시 신고하자. 폭력이 발붙이지 못하게 적극적인 자세로 폭력과 싸우자!
양 보
◇ 양보 미덕 발휘하기
사람은 어울려 살아가기 마련이다. 좁은 생활 공간에 살자니 서로 부딪칠 경우가 생긴다. 이런 일을 원활히 하기 위하여 규칙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규칙을 지키는 것 이외에 ‘양보’ 라는 것도 있다.
양보는 미덕이요, 상대방을 즐겁게 해 주며 인간 관계를 윤택하게 해 주는 기름과도 같은 것이다. 양보심이 많은 사람은 교양이 있는 사람이며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고 아량이 넉넉하며 마음이 훈훈한 사람이다.
개인과 이웃과 국가사이가 법으로만 그 관계가 성립된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해질까? 반대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해 주고 양보하고 베풀어준다면 얼마나 훈훈해질까 ?
과학의 발달로 산업사회가 되었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오직 이겨야 산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오늘, 남에게 길을 양보하고 이익을 양보하고 진 자를 위로해 줄줄 알고 나만 못한 사람을 도와주는 마음가짐이야말로 현대 사회를 평화롭게 만드는 기본이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되겠다.
◇ ‘고수미안’ 운동 전개
‘고수미안’ 실천을 추진하는 단체가 있다.
이는 “고맙습니다”, “수고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를 의미한다. 모두 인사말이며 인사를 잘하자는 운동이다. 외국의 많은 나라들은 잘 모르는 사람끼리도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6·25전쟁, 혁명, 대형 사고, 화염병, 각종 분규, 경제 성장 일변도, 인구 조밀 등 여러 사건과 여건 때문에 마음의 여유를 잃어 버렸다. 매사 하는 일이 급하게 서둘러 실수가 많고 미처 인사도 제대로 차리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렵게 살아가지만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 후진국 어느 나라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뭉클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만나면 즐겁게 인사하는 습관을 생활화해야 한다.
자 율 과 책 임
◇ 형제간 급우간 학교 생활에서 책임지기
우리는 예로부터 형우제공(兄友弟恭)을 형제간의 윤리로 규정해 왔다. 효도 어렵고 형우제공(兄友弟恭)도 어렵다. 또한 학교 생활을 잘 하기도 말과 같이 쉽지는 않다.
민주주의의 생활 원리는 스스로 알아서 지키고 행하며 책임을 지는 것이다. 육신을 가지고 공간을 차지하고 생활하고 있는 이상, 인간은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책임이 있기 마련이다. 책임을 저버리고 나 몰라라 한다면 인간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부모가 져야할 책임, 자식으로서의 책임, 형으로서 또는 동생으로서의 책임, 학생 신분으로 지켜야 할 책임, 선배로서의 책임, 평고인으로서의 책임, 잘 사는 나라 국민으로서의 책임, 사기 당한 중국의 한족에 대한 책임, 인격적 도덕적 책임, 인간으로서의 책임 등등...... 생각하면 한이 없다.
인간은 인간답게 생활해 나가야 가치있는 인간이다. 책임을 저버리고 외면하는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존귀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자.
◇ 스스로 하기
말 듣기 전에 스스로 알아서 해 나간다면 얼마나 돋보일까?
얼마나 흐뭇할까?
농사꾼에게도 상농, 중농, 하농이 있다고 한다. 상농은 풀을 보기 전에 김을 매고, 중농은 김을 보고서야 매고, 하농은 김을 보고도 안 매는 농사꾼을 일컫는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든 일을 미리 알아서 해 나간다면 일이 훨씬 줄어들고 낭비는 그만큼 줄고, 행복은 그만큼 증진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법으로 규제하기 전에 스스로 미리 알아서 모든 일을 해 나간다면 정말 이상적인 사회가 건설될 것이다.
우리 모두 스스로 알아서 미리미리 해 나가는 민주 시민이 되자.
리 더 와 보 스
링컨의 인내심
남북전쟁이 한참이었을 때 맥클란 장군은 가장 뛰어난 장군중의 한 사람이었다. 하루는 그를 격려해 주려고 링컨 대통령이 국방장관을 대동하고 그의 야전사령부를 방문했다. 때마침 장군은 전투장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링컨은 몇시간 동안을 사령관실에 앉아서 그를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장군이 들어왔다. 그는 방안에 앉아있는 대통령과 장관을 본체만체하면서 그냥 2층 자기 방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링컨과 장관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는 장군이 곧 내려오리라 생각하고 다시 의자에 앉아서 그를 기다렸다. 한참 후에야 하녀가 나타나더니「죄송합니다만 장군께서는 너무 피곤해서 잠자리에 드셨다고 대통령께 말씀드리라고 이르셨습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놀란 것은 장관이었다. 일개 장군이 직속상관인 자기는 고사하고 감히 대통령마저도 그렇게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각하, 저렇게 무례한 놈은 제 생전에 본적이 없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저 장군을 당장에 직위해제 시키셔야 합니다.」링컨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조용히 장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아니다. 저 장군은 우리가 이 전쟁을 이기는데 절대 필요한 사람이다. 저 장군 때문에 단 한시간만이라도 이 유혈의 전투가 단축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말고삐를 잡아주고 그의 군화도 닦아줄 것이다. 나는 그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다하겠다.」여기서 링컨은 리더의 참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역시 인간이다. 또한 그는 한나라의 대통령이다. 일개 장군의 엄청난 무례를 대통령의 권위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모욕이라고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동시에 그는 잠도 못자고 전투에 시달린 장군에게는 또 다른 전투를 위해서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전투중의 장군에게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 자기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권위와 회초리
그의 파면이 군대의 사기에 미칠 영향도 생각했을 것이다. 링컨은 노여움을 누르며 이런 저런 계산을 하기 위해 잠시 동안 말이 없었던 것이다.
보스는 사람들을 몰고 간다. 지도자는 그들을 이끌고 간다. 보스는 권위에 의존한다. 지도자는 善意에 의존한다. 보스는 늘 회초리를 필요로 한다. 지도자는 회초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보스는 ‘나’ 라고 말한다. 지도자는 ‘우리’ 라고 말한다. 보스는 ‘가라’고 명령한다. 지도자는 ‘가자’고 권한다. 보스는 모든 것을 숨겨가며 일한다. 지도자는 공개적으로 일한다. 보스는 남의 공을 가로챈다. 지도자는 남의 잘못을 도맡는다. 보스는 남을 믿지 않는다. 지도자는 남을 믿는다. 보스는 겁을 준다. 지도자는 희망을 준다. 보스는 복종을 요구한다. 지도자는 존경을 모은다.
지도자는 대중의 눈으로 세상을 푼다. 보스는 자기 눈만으로 세상을 본다. 지도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권위를 얻는다. 보스는 자기의 ‘약점에 의해’권위를 유지한다.
지도자는 자기 약점을 숨기지 않는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보스는 자기 약점을 숨긴다. 권위를 잃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자기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을 가까이 한다. 보스는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까지도 미워한다. 지도자는 내일을 위해 일한다. 보스는 오늘을 위해 산다. 지도자는 권위를 쌓는다. 보스는 권력을 쌓는다. 지도자는 타협을 잘하고 대화를 즐긴다. 보스는 타협을 모르고 대화를 거부한다.
지도자에게는 귀가 여러 개 있다. 보스에게는 귀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듣기 좋은 말을 듣기 위한 귀 하나만을 갖고 있다.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잘못되어있는가를 알려준다. 보스는 누가 잘못하고 있는가를 지적한다.
지도자는 자기 말에 책임을 진다. 보스는 자기 말도 무시한다. 지도자는 지지자를 만든다. 보스는 부하만을 만든다. 지도자는 권위마저도 즐기지 않는다. 보스는 권력을 즐긴다. 지도자는 권력이란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긴다. 보스는 권력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지도자는 자기 후계자의 짐을 덜어준다. 보스는 후계자에게 무거운 짐만을 떠넘긴다.
지도자와 보스 사이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필라델피아 교향악단이 중국으로 순회 공연을 갔을 때 일이다. 미국 대원들은 북경에서 중국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을 연주하는 것을 들었다. 그것은 듣기가 민망할 정도로 어설픈 것이었다.
듣는 귀 없는 보스
1악장이 끝나자 중국인 지휘자는 지휘봉을 유진 올만디에게 넘겨주었다. 올만디가 지휘를 시작하자 중국인 악단원들의 연주는 눈부시게 달라졌다. 중국의 단원들은 올만디의 지휘를 따라 연주하면서 기쁨의 미소까지 띠었다. 그러나 놀란 것은 중국인들만이 아니었다. 미국인 단원들도 자기네 지휘자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그제야 깨달은 듯 했다.
그들은 권위를 앞세우는 것이 보스이며 참다운 지도자란 권위를 등뒤에 업고 다닐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연주가 끝나자마자 열띤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것은 중국악단보다도 자기네의 지휘자 올만디에게 바치는 감사의 박수였다.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하자.
“바다는 메워도 사람의 욕심은 못 채운다”는 말은 사람의 욕심은 바다보다도 더 넓고 깊어 끝이 없다는 뜻이다. 또 옛 말에 땅을 99마지기나 가진 부자가 단 한 마지기밖에 가지지 못한 가난한 농부에게 “자네가 가진 한 마지기 땅을 나에게 주면 나는 백 마지기가 되니 차라리 내게 주게나”라고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처럼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을 잘 나타낸 말이다.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되고 세상은 어지럽게 될 것이다. 우리는 분수에 맞는 목표를 세월 티없이 맑은 마음으로 끈기 있고 성실하게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물은 깊을수록 흐르는 소리가 조용하고,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명언이 있다. 사람도 지식과 슬기로 가득 찬 사람일수록 말이 적고 잘난 척하지 않는다. 지식이나 교양도 없으면서 돈이 많다고 뽐내는 졸부보다는 재산은 없어도 남에게 존경받고 검소하게 살아가는 편이 행복하지 않을까.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속담과 같이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은 애당초 생각지도 말라는 것이다. 되지도 않을 일을 억지로 하다가는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다. 무엇이든 항상 생각해 보고 분수를 지켜 끈기 있게 노력하는 사람만이 현명한 사람이다.
그리고 남이 보는 앞에서는 예의 바르고 착실한 척하면서 보지 않는 곳에서는 남을 흉보고, 옳지 못한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흔히 자신의 허물이 많을 때 다른 사람을 흉보거나 비웃기를 잘 한다. 정직하고 훌륭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남의 허물을 용서하고 고쳐 주며 도와준다. 우리는 항상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고 반성하고 검토하여 자기의 나아갈 올바른 길을 결정해야 한다.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마음씨와 행동이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같지 않은 것처럼 마음씨도 모두 다르다. 착하고 예절 바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운 짓만 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칭찬 받기를 원한다. 누구나 성실하게 노력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면 그 대가는 반드시 따르게 마련이다. 남이 나를 나쁘게 대하는 것은 나에게 잘못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칭찬을 받을 때는 겸손하고 꾸지람을 들을 때는 반성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리하여 ‘칭찬과 존경을 받는 사람, 착한 일에 앞장서는 사람’이 되자.
직업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직업의 종류는 수 없이 많고 또한 문명과 문화가 발달할수록 신종 직업도 많이 생겨난다. 그런 직업 중 어느 것이 좋고 나쁘다 고를 논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좋다고 하는 직업도 자기가 해낼 수 없다면 자기와는 상관없는 직업이다. 그러니 직업의 종류나 귀천을 논할 것이 아니라 어느 직업이든 자기가 그 분야에서 얼마만큼 능력 있게 일을 잘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그러므로 자기의 소질, 취미, 능력을 파악하고, 주위 어른들로부터 조언을 들어 자신에게 알맞은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http://je333.com(태릉고등학교 생활지도부 교사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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