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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五福)과 팔복(八福):

누가복음 서광선............... 조회 수 1867 추천 수 0 2008.10.05 09: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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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6:20-26 
설교자 : 서광선 목사 
참고 : 새길교회 2007.2.4주일설교 
제목: 오복(五福)과 팔복(八福):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본문: 창세기 27:27-29, 누가복음 6:20-26
설교: 서광선 목사(이화여대 명예교수)  
(새길교회 2007.2.4주일설교)

인사

새해 인사 드립니다. 신정과 구정 모두 합해서,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 드립니다. 새길 교회는 저에게 낯선 교회가 아닙니다. 10여 년 전, 제가 이화대학에서 은퇴하기 전에 한번 초청을 받아 와 서 설교를 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 교회의 전신인 현대교회의 담임목사로 일한 인연도 있어서 친숙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보다도, 이 교회는 특별한 신학과 설립이념을 가진 평신도 중심교회로 뜻있는 분들이 시작했다고 알고 있고, 창설멤버에 평생 동지라고 생각하는 한완상 박사와 김형 선생님을 위시해서 정대현 교수님, 길희성 교수님, 그리고 오늘 사회 보시는 최만자 박사님 등의 교회로 알고 편안한 마음으로 오늘 이 자리에 초대된 것을 영광으로 알고 왔습니다. 이 교회 공동체를 이끌어 오신 여러분, 새삼 축하드리고 인사 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오늘의 화두는 복입니다.

새해 아침 우리는 서로 복을 빕니다. 그리고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하고 인사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합니까? 무슨 복을 받으란 말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올해 정초 제자들과 후배들의 세배를 받으면서 한결같이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라는 인사를 제일 많이 들었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좋은 일 많이 하시고…”라는 인사를 들었는데, 확실히 내가 늙어 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새해가 아니더라도 복을 이야기할 때는 제일 먼저 건강과 오래 사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건강은 제일 중요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건강과 장수의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1996년 바로 10년 전 이화여대에서 정년 은퇴하고, 미국에 있는 모교 신학대학원에서 초빙 교수로 한국신학과 아시아 신학을 강의하다가 미국기독교 재단인 아시아 기독교 고등교육 재단에서 홍콩에 사무실을 내면서 거기에 책임자로 임명되어 5년 간 일하다가 다시 은퇴하고 작년 7월 귀국했습니다. 건강해서 외국 땅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건강한 몸으로 다시 돌아와  옛날 친구들, 그리고 제자들과 반갑게 만날 수 있다는 것,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복(五福)

그래서 우리 동북아시아의 유교에서는 다섯 가지 복 가운데 건강과 장수를 빼놓지 않습니다. 다섯 가지 복이 무엇입니까? 우리 보통, 장수의 수(壽)와 건강과 부(富) 그리고 관록(祿) 즉 명예로운 벼슬하는 일, 요새 말로는 좋은 직업을 가지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아들 많이 가지는 것. 그러니까, 수, 부, 건강, 관록, 자식?이렇게 다섯 가지 복을 받거나 가지게 되면 축복 받은 셈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새는 자식복이 복이 아니라고 합니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해도 자식 낳기를 꺼려 해서, 우리나라는 출산률 세계 최저의 나라가 되었다고 소동이니, 아들 낳는 것도 이제는 복이 아닌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시어머니들이 며느리에게 새해에는 황금돼지같은 아들 낳아 달라는 말이 덕담이 아니라 악담이라는 말도 들립니다.

왜 아이 낳기를 싫어하는가 물었더니, 우리나라 사교육비 많이 드는 걸로 세계 제1이라고 합니다.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육체적인 고통과 희생 뿐 아니라, 제대로 키우려면, 즉, 명문대학을 나오게 하고 박사나 의사나 변호사나 판검사 등 좋은 직업을 가지게 하려면, 유치원 아니라 유아원부터 과외를 시키고, 조기 유학을 시켜 영어를 익히지 않으면 사회의 낙오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교육비가 이만 저만이 아니고, 기러기 엄마, 기러기 아빠가 정처 없이 날아다니게 되는 데, 그 정신적 고통과 가정문제는 사회문제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이혼률 역시 세계 제1이라고 하니 기러기 부부들의 문제도 그 원인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식 많은 게 복이 아니고, 오히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한숨 섞인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 사교육비가 문제라면, 역시 관록과 명예로운 직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복 중의 복이고, 이 복은 부의 복, 돈 많은 복 없이는 가질 수 없는 복입니다. 이 복을 위해서 너무도 많은 희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참으로 축복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아이들 공부 제대로 시켜서 좋은 직업 가지게 하려면 돈이 뒷받침 되어야 하고 부모가 건강하고 돈 생기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축복의 악순환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세속적으로 혹은 보통 생각으로 다섯 가지 복이란 아이들 많이 낳고 좋은 직장에서 돈 만이 벌고 부부 사이 좋고 건강하게 돈 잘 벌고 아이들 좋은 학교 나와서 성공하는 걸 보면서 오래오래 사는 것이 다섯 가지 복을 다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설날이 되면 아파트 문짝에 한자로 축복 복 자를 크게 붓글씨로 써서 거꾸로 붙입니다. 복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복은 날 때부터 태어나는 것이고 주어지는 것이고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홍콩의 한 유명한 절에 가면 200명 가까운 남녀 점장이들이 점포를 열고 하루 종일 바쁘게 관상을 보고 사주팔자를 보고 앉아 있습니다. 거기 가면 중국말을 몰라도 됩니다. 우리 한국말은 물론이고 영어 독일어 일본어 통역들이 있어서 관광 명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교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 복은 제가 말한 것 하고는 좀 다른 것입니다. 물론 수가 있고, 부가 있고, 건강이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자식 복과 관록은 없습니다. 그 대신 유호덕(攸好德)이라는 복을 말하는 데, 도덕을 지키기를 낙으로 삼는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사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할 때까지 이것이 유교에서 말하는 축복인 줄 몰랐습니다. 우리 유교의 가르침에 이런 축복도 있었구나 하고 놀랐습니다. 우리는 관록을 가지고 권력을 휘두르고 윤리나 도덕 같은 것은 바보들이나 말하는 것이라고 하고, 경쟁과 권모술수로 완전히 부패한 우리나라 지도층 들이 많은 데, 유호덕이라… 윤리와 도덕을 지킬 뿐 아니라 그것을 낙으로 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축복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야말로 10년 만에 귀국해서 절실하게 느낀 것은 한국사회가 잘 살게 되어서 수출 3천만 불 시대가 되었고 우리의 연간 평균 소득이 2만 불을 넘어서 이제 곧 3만 불 시대가 온다고 하지만, 제가 듣기로는 우리나라 건국 이래 가장 부패한 나라가 되어 가고 있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님께서 가르치신 이 축복, 유호덕… 이 복을 우리는 간절히 간구해야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축복이야 말로 주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노력해서 얻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교의 다섯 번째 축복은 고종명(考終命)이라고 합니다. 아들 낳고 딸 낳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제 명대로 살다가 편하게 죽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도 나이가 들면서 은퇴하고 나니까, 고종명이라고 하는 복을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복은 아무리 생각해도 저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거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먹는 것 조심하고 금연 금주하고 아직도 테니스 치고 정기적으로 운동하고 해서 건강하게 살다가 너무 고생 안하고 안 시키면서 편하게 죽으려고 하지만, 그게 제 마음대로 되는 것 아니지 않습니까. 이 복을 받기를 원해서 “하나님, 건강하게 살다가 고생 안하고 병원 신세 너무 많이 안 지고 편하게 죽어 하늘나라 가게 해 주시옵소서”라는 기도, 간절히 하게 되는 것입니다.

팔복(八福)

이 설교준비를 하면서 팔복이라고 컴퓨터를 쳤더니, 그런 말이 없던지 잘못 썼다는 뜻인지 빨간 밑줄이 쳐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신약성서를 모르거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축복을 모르는 사람이 소프트웨어(software)를 만든 게 틀림없습니다.

예수님은 다섯 가지 축복만이 아니라 여덟 가지 축복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을 산 위에 데리고 올라가 하신 축복의 말씀이라 하여, 산상수훈(山上垂訓)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교독문의 마태복음 5장을 읽으면서, 그리고 누가 복음을 읽으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축복에는 우리가 말하는 다섯 가지 복은 하나도 안 들어 있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아주 전혀 다른 축복 리스트입니다. 아주 다를 뿐 아니라 우리가 아는 축복과는 정 반대되는 그야말로 안티(anti) 축복들입니다. 예수님의 축복 리스트에는 오래 산다거나 건강한 것, 부자 되는 것, 아들 낳는 것, 좋은 직장 가지고 관록에 오래 붙어있는 것 같은 것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여덟 가지 축복을 요약하면, 첫째 다섯 가지 복들, 즉 가난한 마음, 온유한 마음, 자비로운 마음, 청결한 마음, 그리고 애통하는 마음; 둘째, 정의를 갈망하는 마음과, 정의를 위해서 말하고 행동하다가 핍박 받는 사람들; 셋째,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받는 축복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가난한 사람

처음부터 누가 복음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부가 아니라 가난이 축복입니다. 마태복음은 부자들에게 미안했던지 약간 부드럽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축복하셨습니다. 돈이 많은 부자들이 너무 충격을 받을까 봐 그렇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어떻든, 부는 축복이 아닙니다. 부는 그러니까 반 도덕적이고 반 종교적입니다. 기독교나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할 것 없이 모든 세계종교는 가난을 덕으로 알았고 축복으로 알고 천주교의 수도사들은 가난을 자원했고 가난을 맹세했습니다. 개신교 청교도들은 청빈과 청부, 깨끗한 부자 깨끗한 빈자를 축복으로 알았고 덕목으로 가르쳤습니다. 유교에서도 역시 청렴결백한 청백리(淸白吏)를 찬양했던 것입니다. 이 가난의 축복, 절제와 청렴, 돈을 초개처럼 아는 기독교 청교도 금욕주의 도덕이 그야말로 돈만 아는 서구 자본주의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의를 위하여

예수님의 팔복 리스트를 보고 놀라는 것은 정의에 관한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를 축복하실 뿐 아니라, “의를 위하여 말하고 일하다가 핍박을 받는 자” 역시 축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말이 “사회정의를 위해서 말하고 외치고 운동하다가 핍박 받으십시오”라는 말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한완상 박사나 저희들이 해직교수라는 딱지를 달고 대학에서 쫓겨 날 때, 그것이 축복이라는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1970년대와 80년대, 새해 인사를 나누면서 “복 받으시오” 할 때는 “올해는 복직이 되어야지요” 정도로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습니다. 해직교수로 대학에서 추방당하거나 긴급조치로 감옥 가는 것 아무나 가는 것 아니었다고 생각하면, 축복이었습니다. 긴급조치 위반자들을 무죄로 판결을 내린 판사들이 그 당시에는 핍박을 받았지만, 그렇게 소신껏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예수님의 축복 가운데 우리를 감동하게 하는 것은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것, 평화를 만드는 사람에 대한 축복입니다. 평화는 틀림없는 축복입니다. 마음의 평화, 가정의 평화, 사회의 평화, 국제적 평화?우리가 간구하고 추구하는 축복임에 틀림없습니다. 평화는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구약성서를 보면, 우리 인류의 역사가 카인과 아벨의 형제 싸움으로 시작되었고, 실제로 지난 3,521년의 인류역사상 3,235년을 전쟁으로 지새웠다는 역사가들의 통계가 있습니다. 실로 인류 역사의 92%를 전쟁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저 유명한 역사학자 Will Durant교수의 집계입니다. 20세기의 미래학자 Alvin Toffler는 말하기를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 끝나는 1990년까지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세계적으로 단 3주에 불과했다고 말합니다. 전쟁은 통계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고 비극이고 우리 뼈에 사무친 경험이며 아물지 않는 상처입니다.

남의 통계 이야기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의 70대 세대의 한평생을 돌이켜 보더라도, 태어나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쟁이 멎은 적이 없습니다. 제가 태어나던 1931년 일본이 만주를 점령했고, 초등학교 들어 갈 때, 일본 군대는 중국 본토를 유린하고 남경학살을 저질렀고, 1941년에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미국과 치열한 싸움으로 아시아 전 지역을 유린 했고, 황폐화했습니다. 저는 만주에 살면서 수많은 미군 폭격을 당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원자폭탄으로 해방 된지 5년이 못되어 한국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온 나라 백성들이 피난민이 되었습니다. 38도선 남쪽에서는 빨갱이라고 마구 잡아 죽이고, 북쪽에서는 예수쟁이들 모두 미국 스파이라고 총살하고 물속에 탄광 속에 집어넣어 학살했습니다. 평양에서 목회하던 저희 아버지 목사 역시 반공 미국 스파이의 누명을 쓰고 총살 당했습니다. 10월의 차디 찬 대동강 기슭에서 아버지 시체를 건져 내어 장례를 드리고 피난 내려 온 것이 벌써 50년이 넘었습니다.

전쟁은 한 마디로 나쁜 것이고 아프고 쓰라린 것입니다. 전쟁은 잔인하고, 파괴적이고, 반(反) 생명적입니다. 거룩한 전쟁이다, 방어전이다 하면서 변명해도, 전쟁은 전쟁일 뿐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은 그 동안 불안한 대로 휴전 상태에서 긴장한 대로 총 쏘고 폭탄 터뜨리는 전쟁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희 집안에 첫 손자가 태어났을 때, 병원에 가서 아기를 안았을 때,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손자를 안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는데, 그런대로 전쟁이 없어서 내 품에 손자를 안아 본다는 것이 축복 중의 축복이라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평화의 축복

올해, 우리는 간절히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평화의 축복을 간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5복과는 달리 평화의 축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예수님은 가르치십니다. “평화의 축복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가 아니라,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 평화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전쟁해야 된다고 하는 사람들, 핵무기에는 핵무기로 대응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북한의 체제를 힘과 전쟁으로 없애 버리는 길만이 평화와 통일의 길이라고 떠드는 사람들이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미국에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제 며칠 후 8일에는 북경에서 열린다고 하는 6자 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굶주리고 있는, 우리 동포들이 하루 세끼 밥 먹고 편히 잠잘 수 있게 하는 세상 만들어 가면서, 남북이 오가고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축복, 그런 복을 받는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평화를 만들어 나가는 데,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5복이 아니라, 8복?예수님이 가르치신 복???가난해 지는 복, 절제하고 청결한 삶을 사는 복, 이웃의 아픔을 애통하고 돌보는, 자비하고 온유한 마음가짐의 축복; 정의를 위해서 말하고 일하고 싸울 수 있는 축복; 그리고 무엇 보다 우리나라 우리 민족의 평화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축복?그 축복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일하는 복, 그런 복?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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