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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4:2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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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http://je333.com |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24)
어떤 집사님은 교회에서 집사 직분까지 받았으나 교회 가서 예배드리는 것을 너무 지겨워했습니다. 그는 주일 날 아침만 되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예배를 드리지 않을 궁리만 했습니다. 하루는 “여보, 오늘 우리 두 사람 중에 당신이 대표로 교회 가서 예배를 드리구려. 나는 대표로 남아서 집을 볼게.”라고 하면서 아내 혼자만 보냈습니다. 그는 예배 시간에 집에 혼자 남아 낮잠을 자다가 문득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속에서 그는 아내와 함께 천국 문 앞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문을 지키고 있던 천사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사람은 부부지요? 그럼 대표로 한 사람만 천국에 들어오시오!” 집사님은 소스라치게 놀라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예배를 지루하게 여기며 자원해서 드리기를 거부한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는 다시는 예배에 빠지지 않고 성도의 의무를 충실히 감당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예배를 가볍게 여기고 방해한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결국 심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한평생 사는 동안 예배를 통해 주님을 친히 뵙고 교제하는 일을 무한한 특권으로 여겨야 합니다.
셩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시96:9)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성도로서 마땅한 일입니다.
영국의 명재상이었던 글래드스턴은 “나에게는 예배석이 대영제국의 수상석보다 더 존귀하다”고 말했습니다. 예배의 자리가 어떤 자리보다 더 존귀함을 온 가족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예배 자리가 존귀한 가정이 진정으로 좋은 가정입니다. 예배를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 존귀하게 여김을 받게 돼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예배를 기뻐하시고 이를 기꺼이 받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인간이 행하는 모든 행위 중에서 가장 고귀하고 가장 가치 있고 가장 복된 행위입니다. 또 예배 시간은 인간이 가지는 모든 회합이나 모임 중의 가장 고귀하고 보람 있는 시간이며 모임입니다. 대통령들이나 수상들의 모임이나 회담보다도 고귀하고 보람 있는 모임입니다. 예배보다 더 귀하고 가치 있는 모임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목적도 인간으로부터 찬송과 영광과 경배를 받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도, 독생자를 대속 제물로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게 하신 목적도, 우리를 통하여 영광과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삶의 목적은 돈 버는 데 있는 것도 아니고 시집 가고 장가 가고 자식 낳는데 있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업이요, 다른 것은 다 부업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에 가다가 멈출 때마다 진 중앙에 성막을 제일 먼저 세우고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각각 세 지파씩 진을 치고 생활한 것도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갈 때 교회 중심 즉 예배 중심의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든지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독자 이삭을 바치려고 했던 것도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는 신약 시대의 예배이기 때문에 예배를 이와 같이 귀중히 여겨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감동하시고,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다” 하시면서 자자손손 큰 복을 내려주셨던 것입니다.
솔로몬이 정성을 다하여 일천번제를 드리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감동하셔서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줄꼬” 하시며 지혜뿐 아니라 재물의 복도, 장수의 복도, 강한 군사력의 복도 다 주셨습니다. 이것도 한마디로 예배를 잘 드려서 받은 축복입니다. 예배생활에 실패하면 모든 것에 실패하는 인생이 되고 크리스천이 예배생활에 승리하면 모든 일에 승리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예배를 등한히 하고 교회와 멀어지기 시작하면 일시적으로는 별 탈 없이 돈도 잘 벌고 모든 일이 잘 되는 것 같아도 결국 영육 간에 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의 스승은 자신의 사상과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고 그 뜻을 이어나갈 제자를 찾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찾으실 까요? 하나님은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그의 백성들이 진리 안에 살기를 기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합니다. 신령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계시하여 주시는 새로운 영역 안에서 예배하는 것을 뜻합니다.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참으로 예배의 갱신이 필요한 때입니다. 예배의 갱신은 예배자가 철저하게 새로워지지 않으면 이룰 수 없습니다. 자신의 예배 태도를 되돌아보십시오. 그리고 진정한 예배를 드림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과 만나는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 기도: 진정한 예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온전한 예배에 어울리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고, 예배에 성공한 삶을 살게 하소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더 깊은 헌신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수 있게 하소서. 예배가 진정 나의 기쁨과 의미가 되게 하시고 늘 결단과 새로움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하소서.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참다운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태릉고등학교 교사)
어떤 집사님은 교회에서 집사 직분까지 받았으나 교회 가서 예배드리는 것을 너무 지겨워했습니다. 그는 주일 날 아침만 되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예배를 드리지 않을 궁리만 했습니다. 하루는 “여보, 오늘 우리 두 사람 중에 당신이 대표로 교회 가서 예배를 드리구려. 나는 대표로 남아서 집을 볼게.”라고 하면서 아내 혼자만 보냈습니다. 그는 예배 시간에 집에 혼자 남아 낮잠을 자다가 문득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속에서 그는 아내와 함께 천국 문 앞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문을 지키고 있던 천사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사람은 부부지요? 그럼 대표로 한 사람만 천국에 들어오시오!” 집사님은 소스라치게 놀라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예배를 지루하게 여기며 자원해서 드리기를 거부한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는 다시는 예배에 빠지지 않고 성도의 의무를 충실히 감당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예배를 가볍게 여기고 방해한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결국 심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한평생 사는 동안 예배를 통해 주님을 친히 뵙고 교제하는 일을 무한한 특권으로 여겨야 합니다.
셩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시96:9)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성도로서 마땅한 일입니다.
영국의 명재상이었던 글래드스턴은 “나에게는 예배석이 대영제국의 수상석보다 더 존귀하다”고 말했습니다. 예배의 자리가 어떤 자리보다 더 존귀함을 온 가족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예배 자리가 존귀한 가정이 진정으로 좋은 가정입니다. 예배를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 존귀하게 여김을 받게 돼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예배를 기뻐하시고 이를 기꺼이 받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인간이 행하는 모든 행위 중에서 가장 고귀하고 가장 가치 있고 가장 복된 행위입니다. 또 예배 시간은 인간이 가지는 모든 회합이나 모임 중의 가장 고귀하고 보람 있는 시간이며 모임입니다. 대통령들이나 수상들의 모임이나 회담보다도 고귀하고 보람 있는 모임입니다. 예배보다 더 귀하고 가치 있는 모임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목적도 인간으로부터 찬송과 영광과 경배를 받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도, 독생자를 대속 제물로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게 하신 목적도, 우리를 통하여 영광과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삶의 목적은 돈 버는 데 있는 것도 아니고 시집 가고 장가 가고 자식 낳는데 있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업이요, 다른 것은 다 부업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에 가다가 멈출 때마다 진 중앙에 성막을 제일 먼저 세우고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각각 세 지파씩 진을 치고 생활한 것도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갈 때 교회 중심 즉 예배 중심의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든지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독자 이삭을 바치려고 했던 것도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는 신약 시대의 예배이기 때문에 예배를 이와 같이 귀중히 여겨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감동하시고,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다” 하시면서 자자손손 큰 복을 내려주셨던 것입니다.
솔로몬이 정성을 다하여 일천번제를 드리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감동하셔서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줄꼬” 하시며 지혜뿐 아니라 재물의 복도, 장수의 복도, 강한 군사력의 복도 다 주셨습니다. 이것도 한마디로 예배를 잘 드려서 받은 축복입니다. 예배생활에 실패하면 모든 것에 실패하는 인생이 되고 크리스천이 예배생활에 승리하면 모든 일에 승리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예배를 등한히 하고 교회와 멀어지기 시작하면 일시적으로는 별 탈 없이 돈도 잘 벌고 모든 일이 잘 되는 것 같아도 결국 영육 간에 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의 스승은 자신의 사상과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고 그 뜻을 이어나갈 제자를 찾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찾으실 까요? 하나님은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그의 백성들이 진리 안에 살기를 기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합니다. 신령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계시하여 주시는 새로운 영역 안에서 예배하는 것을 뜻합니다.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참으로 예배의 갱신이 필요한 때입니다. 예배의 갱신은 예배자가 철저하게 새로워지지 않으면 이룰 수 없습니다. 자신의 예배 태도를 되돌아보십시오. 그리고 진정한 예배를 드림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과 만나는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 기도: 진정한 예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온전한 예배에 어울리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고, 예배에 성공한 삶을 살게 하소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더 깊은 헌신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수 있게 하소서. 예배가 진정 나의 기쁨과 의미가 되게 하시고 늘 결단과 새로움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하소서.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참다운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태릉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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