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요14:16-20 |
---|---|
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3년 6월 8일 주일2부설교 |
일 시 : 2003년 6월 8일 주일2부설교
제 목 :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설 교 : 조 용 기 목사
성 구 : 요한복음 14장 16-20절 말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서론>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고아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무섭고 괴로운 일입니다. 제가 불광동에서 목회할 때 어느날 아침에 어떤 자매 한분이 교회당 찬 가마니 옆에 엎드려서 통곡을 하고 울고 있었습니다. 그 사연인즉 6.25때 남편이 전쟁에 가서 전사하고 과부가 되어서 혼자 세 딸을 키웠는데 그 엄마가 폐병에 걸렸습니다. 피를 많이 토하고 기진맥진해서 더 이상 자식을 기를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아원에 부탁을 해서 자식들을 고아원에서 차를 가지고 와서 데리고 갔습니다. 그날은 엄마가 특별히 좋은 음식을 준비하고 얘들에게 좋은옷을 입히니까 큰 아이는 눈치를 채고 밥을 잘 먹지 않고 엄마만 살피고 있는데 작은 아이는 웬 좋은 음식이냐고 즐거워하면서 좋은 옷을 입고 기뻐하는데, 바깥에서 차 크락션 소리가 난뒤 젊은이들이 확 달려들어서 문을 열고 들어와서 어린 아이들을 강제로 끌고 갑니다. 아이들이 “엄마! 우리를 붙잡아 달라”고 아무리 부탁해도 엄마는 돌아앉았습니다. 그때 그 청년들이 하는말이 “야! 너희 엄마는 폐병들어 피를 토하고 너희 가정은 가난하지 않느냐? 지금 가는 고아원에는 보모들도 엄마보다 더 이쁘고 더 훌륭하고 건강하고 환경도 좋고 학교도 갈수가 있다. 그러므로 고아원으로 가자.” 그때 애들이 부르짖어 말하기를 “우리는 고아원보다 우리 집이 좋고 아름답고 건강한 보모보다 피를 토하는 어머니가 오히려 좋다. 우리는 엄마곁에 있겠다. 엄마에게 두어 달라”고 발버둥을 치는 어린 아이들을 모른체 뒤돌아 앉아 있다가 애들이 떠나고 난 다음에 천막교회로 뛰어와서 그렇게 슬피울고 통곡을 합니다. 그 어린아이들이 하는말이 귀에 쟁쟁하여 떠나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폐병이 걸리고 피를 토해서 죽어가는 엄마라도 우리 엄마가 좋다. 우리는 엄마 곁에 있겠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저들이 떠나가실 것을 생각하고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저들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마음속에 좌절과 절망을 느꼈습니다. 부모, 형제, 처자, 전토를 다 버리고 3년여 동안 주님을 따라 다녔는데 이제 주님이 “나는 너희를 떠나 하나님 아버지께로 간다”고 하니까 얼마나 좌절되고 절망 되겠습니까? 정말로 고아가 되는 것이 가장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예수님 없는 그들의 삶이란 살벌한 유대인 사회속에서 고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성령은 누구신가?
오늘 첫째로, 성령은 누구신가 하고 물을때 성령께서는 바로 하나님의 영이시며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아버지의 영이시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장 7절로 11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니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예수님께서는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영이라 너희가 보지는 못하지만은 아버지가 내안에 계셔서 나를 통하여 말하고 행하셨다. 그러므로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고 나와함께 거한자는 아버지와 함께 거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또 하신 말씀이 성령을 모시고 성령을 체험한 자는 바로 나를 모시고 나를 체험한 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체험한 자는 예수님을 체험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여기에 예수님께서 내가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다른 보혜사를 보내겠다고 했는데 다른 보혜사라는 뜻은 예수님은 첫째, 보혜사고 성령은 다른 보혜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자신의 이름이 보혜사인데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또 다른 보혜사라는 말이 의미가 심장합니다. 왜냐하면 다르다는 말중에 헬라어에서는 ‘알로스’라는 말이 있고 ‘헤트로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헤트로스’라는 말은 전혀 다른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알로스’라는 말은 똑같은 것중에 하나 다른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또 다른 보혜사라고 말한 그 단어는 ‘알로스’라고 말했었습니다. 알로스라는 말은 ‘나는 보혜사고 성령도 보혜사인데 나와 성령은 꼭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영접한 자는 성령을 영접한 자고 성령이 오시면 내가 온것과 한가지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로 오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삼위일체인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고로 아버지와 아들이 오늘날 성령을 통해서 동시에 우리속에 와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에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라고 말했습니다.
성령은 내가 보내는데 내가 아버지께로 받아서 너희에게 보내므로 성령이 오시면 그는 아버지의 영이요 아들의 영으로서 너희속에 와서 아버지를 증거하고 아들을 증거할 것이다. 예수님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과 성령은 또한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예수님과 더불어 성령 안에서 역사하신 다는 것입니다.
구약 4천년 동안은 아버지 시대로서 야웨 하나님이 전반적으로 나타나서 일하셨습니다만 신약 33년은 아들의 시대로 예수님이 오셔서 아버지는 예수님을 통해서 성령도 예수님을 통해서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 부활하신 이후 승천하신 다음 50일만에 성령이 강림하시자 그 다음 성령의 시대가 오셨습니다. 오늘날은 아버지도 성령을 통해서 아들 예수님도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볼 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세 인격자로서 한 하나님으로 역사하지만 아버지의 시대, 아들의 시대, 성령의 시대가 분명히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는 처음 보혜사요, 성령은 또 다른 보혜사 예수님과 꼭같으나 다른 보혜사라고 했는데 보혜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라는 말인 것입니다. 헬라어로 ‘파라’라는 말은 ‘곁에’라는 말이고 ‘칼레오’라는 말은 ‘부른다’는 말인데 결합된 말이 ‘파라칼레오’에서 파생된 단어가 ‘파라클레토스’인데 이말은 우리 말로 번역하면 ‘도와 주기 위해 곁에 오도록 부름을 받은자’라는 뜻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항상 우리 곁에 계신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바로 아버지의 영이요, 아들의 영이기 때문에 성령 오신 것은 아버지가 오신 것이며 아들 예수님이 오신것이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곤궁에 처한 우리를 돕기 위해서 성령은 와계신데 어떻게 돕나요? 우리를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달음을 얻지 못할 때 성령이 오셔서 성경말씀과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과거에 배운 것도 성령께서 필요할때는 우리 마음속에 기억나게 해주시고 우리가 잘못하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성령이 강하게 우리 마음을 꾸짖으시므로 죄에서 돌아서게 하시고 우리를 바른길로 기도할 때 계시하시고 인도하여 주시며 고난 당할 때 와서 마음에 위로해 주시고 어루만져 주시며 우리에게 담대하게 해주시고 또 우리에게 영육간에 힘을 허락해 주신 것이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 26절에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하기 그지없는 인생이나 우리 스스로 고아처럼 버림받지 아니하고 성령께서 도와 주시기 위해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안에 와서 계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해주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여 주시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령의 역사없이 우리가 신앙생활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 없이는 부모 잃은 고아와 같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보내시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고 아들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주사 아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심과 동시에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놓지 아니하시고 24시간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안에 계시며 항상 우리를 도와 주시는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와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우리들에게는 하늘이 9만리 장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우리 가운데 계시며 우리 안에 와서 거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안수 있는 것입니다.
2. 성령의 체험
둘째로, 우리는 성령을 어떻게 체험하고 있나요?
우리는 중생에서 성령을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은 예수님이 계신곳에 유대인의 선생인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는 밤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몰래 몰래 예수님께 찾아 왔습니다. 그날에는 달이 밝고 그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로써 예수님이 계신 집주위에 나무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볼때는 선생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분이십니다. 그렇지 않고야 이런 위대한 기적을 행하실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단도직입적으로 거듭나라고 말했습니다. 벌써 그때는 니고데모는 나이 많고 백발이 성성한 사람이었습니다. 깜짝 놀랬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했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수 있삽나이까?” 도저히 니고데모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육으로 난 것은 끝까지 육이다. 구정모혈로 태어난 인간은 아담과 하와의 자손으로 영이 죽은 육인데 육으로 난 사람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면 공부 많이 하면 육이요, 종교를 가지면 종교를 가진 육이요, 수양과 도덕을 많이 닦았으면 수양과 도덕을 많이 닦은 육이지. 육은 육이지 육이 영으로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영으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여러분 물이라는 것은 회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로 씻어 깨끗함을 받지 않습니까?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잊었으면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것은 우리가 지혜가 많이 믿은것도 아니고 우리가 학식이 많이 믿은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불가항력적으로 하나님의 성령이 예수가 구주인 것을 깨닫게 해주셨기 때문에 믿게 된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서 믿은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마음속에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계시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불가항력적으로 성령께 끌려서 예수를 믿게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비취심을 받아 회개하고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우리가 알고 믿고 받아 들이게 되면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계시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깨닫고 모시게 되면 그리스도의 영인 영생의 영, 성령이 우리속에 와서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육의 사람이 변하여서 신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다 육으로 태어나서 육으로 사는 사람이요, 우리는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변화 받아서 영생을 얻은 신령한 사람들로 되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똑같은 사람이지만은 생명의 질이 다릅니다. 세상 사람은 영이 죽었고 우리들은 예수로 말미암아 영이 살아났습니다. 세상 사람은 ‘푸스케’ 혼의 생명만 가지고 있고 우리는 ‘조오에’ 영의 영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질이 다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육으로 살다가 육이 죽으면 영원한 지옥으로 버림을 당하고 영으로 태어난 사람은 신령하게 살다가 육이 무너지면 영원한 영광의 집, 영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우리가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성령이 우리 안에 와서 거하시는 것이 우리가 거듭나서 신령한 사람들이 된것입니다. 우리는 모두다 세상으로 태어나지 않고 예수를 믿어서 하나님께로 태어났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로 13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저는 조씨 가문에 태어났는데 조씨 혈통으로 제가 거듭난 것 아닙니다. 그리고 또 아버지, 어머니를 통해서 내가 거듭난 것 아닙니다. 내가 거듭난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통해서 예수 믿음으로 성령이 나를 다시 태어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육으로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지 않습니다. 영으로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을 앎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령을 모시고 거듭나서 영생을 얻었으면 그 다음 또 권능으로서 성령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여성이 처음 결혼하면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 그러나 아내로서 남아 있습니까? 아닙니다. 얼마 안있으면 어린 아이를 잉태하게 되고 낳게 되면 어머니로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여성이 아내가 되었다가 그다음 어머니가 되는 것처럼 똑같은 성령인데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게 할때는 중생의 영으로 역사하시다가 똑같은 성령을 우리가 또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권능의 영으로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4절로 5절에 보면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주님이 동분서주 하면서 40일동안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불러 모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감람산에 가서 축복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승천한 것을 본 500여명의 제자들인데 그중에 약 120여명이 마가요한의 집에와서 다락방에서 한 열흘동안 열심히 기도하다가 성령의 충만한 세례를 받게 된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은 받았으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권능을 받아야 됩니다. 그냥 내가 예수 믿어서는 입이 떨어지지 않아요. 그러나 성령세례 받으면 권능이 넘쳐나서 앉으나 서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 받는 것은 내 속에 영생하는 샘물이 들은 것과 같습니다. 샘물이 들어온 것 내 마음속에서 그냥 퍼마실수 있지 온 도시와 나누어 마실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세례 받으면 너희 속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 나리라. 강물이 넘쳐 나오면 온 도시가 그물을 마실수 있습니다.
우리속에 샘물이 있으면 서울 시민과 다함께 나눌수는 없지만 한강물이 넘실넘실 흘러가는 이 한강물은 온 서울시민이 다 나누어 마실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한 사람은 샘물을 얻은것과 같지만 성령세례 받은 사람은 성령이 강물같이 여러분 속에서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순절날에 제자들은 바로 이 성령세례를 받아 갑자기 성령이 강물같이 넘쳐 나면서 권능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부들이요, 세리들이요, 그 사회속에서 멸시받고, 천대받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성령이 임하시자 권능을 받고 그들속에서 놀라운 능력이 넘쳐 나오게 시작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1절로 4절에 보면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성령을 충만히 받자 그렇게 무서워서 벌벌떨며 밖으로 못나간 그들이 문을 박차고 나와서 복음을 증거하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하루에 3천명이 회개하고 그 이튿날에는 미문가의 앉은뱅이를 예수 이름으로 일으키고 난 다음에 복음을 전하매 5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오고 예루살렘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충만하게 된것입니다. 보잘 것 없이 겁쟁이들. 그들이 성령을 받자 놀라운 권능이 생겨나게 된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만 성령 세례 받았는가? 아니요. 주후 30년에 성령의 역사가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는데 4년이 지난후에 주후 34년경에 바로 사마리아인들이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매 많은 사람들이 그 복음을 듣고 귀신이 쫓겨 나가고 앉은뱅이와 절름발이가 나았고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요술쟁이 시몬이라는 사람이 큰 요술을 해서 많은 사람을 미혹하다가 빌립의 사역을 보고 너무 심취해서 따라 다니며 자기도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따라 다녔는데 그러나 빌립의 선교를 통해서 구원받고 귀신 쫓겨 나가고 병은 나았지만은 성령 세례받은 사람이 없어요. 사마리아에 크게 부흥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옛날에 와서 그들에게 안수하매 그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요술쟁이 시몬이 베드로에게 와서 “내 돈줄 터이니까 나도 그런 권능을 주어서 안수 할때마다 성령받게 해주십시오.” 그러다가 베드로에게 혼이 났습니다. “야 이놈아! 하나님의 선물을 돈주고 살줄 아느냐?” 혼비백산 했습니다. 그런데 이 요술쟁이가 빌립이 다니면서 귀신 쫓아낸 것 보고도 돈주고 그 권능 달라고 안했습니다. 수많은 앉은뱅이와 절름발이가 낫는 것을 보고도 돈주고서 그 권능 달라고 안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하매 성령 받는 것보고는 돈주고서 그 권능을 달라고 했었습니다. 성령을 받을때 가만하고 조용히 받았으면 뭘 돈주고 받으려고 할턱이 없잖아요. 굉장한 능력이 나타난 것을 보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행전 시절 오순절날 성령이 임할 때 사람들이 성령이 충만함을 받고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란것처럼 아마 요술쟁이 시몬도 귀신 쫓겨 나가는 것 보고도 놀라지 아니하고 병낫는 것 보고도 놀라지 않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하매 성령받고 방언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래가지고서 그래서 돈주고 살려고 한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성령 받은 결과로 외적 표정으로서 그들은 방언을 말했었습니다. 그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에 오순절날 이후 7년이 지났습니다. 주후 37년 경에 고넬료의 가정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고넬료는 바로 이탈리아 사람입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유대를 식민지로 삼아서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로마의 정부가 유대를 식민지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때 백부장 고넬료가 군대의 장교로서 와있었는데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앞에 기도 많이하고 헌금도 많이 하고 구제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제9시 기도 시간에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고넬료야 네 기도와 네 구제가 하늘에 상달되어 하나님께 기억한바 되어” 여러분 보세요.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고 구제하고 헌금한 것이 하늘에 상달되어 하나님이 기억한바 되었다고 했었으므로 우리가 주 앞에서 선한일을 행한 것은 하나님이 하나도 잊지 아니하시고 기억하시고 갚아 주는 것입니다. 사람을 욥바로 보내어서 베드로를 청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부하를 욥바로 보내어서 베드로를 청하여 왔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함께 와서 고넬료의 집에 오니까 고넬료가 너무나 감사해서 엎드려 절을 하고 베드로를 받아 들이니까 베드로가 절하지 말라고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를 하는데 모세의 율법으로도 의롭다함을 얻지 못한 자들이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었느니라고 말하지 말자 하늘에서 성령이 비와같이 확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고넬료와 그 식구들이 전부다 성령을 받고 하나님을 높이고 방언을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모두다 보고 놀랬습니다. “야 우리가 예루살렘에서 봤던 성령을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도 예수를 믿으니까 똑같이 성령을 받는구나. 또 예수를 믿으니까 똑같이 성령을 받는구나” 그래서 베드로가 그들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해서 그들이 세례를 베풀은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이방인의 오순절이라고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세월이 지나가서 주후 53년 그러니까 예루살렘에서 성령이 임한지 23년 후에 에베소 교회에 성령 세례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때 바울이 윗잠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보니까 한 열두명이 모였는데 키가 다 빠졌어요. 찬송도 아무런 힘이 없어 지렁이 울음소리 같은 찬송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설교 하는데 졸고 기도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뭐랬습니다. “너희가 믿을때 성령을 받았느냐? 성령이 있으면 찬송도 힘차게 하고 기도도 능력있게 할것인데 완전히 살았다 하나 죽었기 때문에 너희가 믿을때 성령 받았느냐?” 하니까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다시 한번 세례 요한때부터 증거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안수를 하매 성령이 임하신지라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사람쯤 되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자 그때부터 그 교회가 일어나서 큰 권능이 나타나므로 온 서아시아 일대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는 권능있는 교회가 되고 능력의 센타로 변화되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날도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사도행전 13장 52절에도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고 말했는데 성령 없이 목회하는 것은 있을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능력이 있어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1871년 가을 무디 선생은 부르클린에서 집회를 했습니다. 무디는 미국과 영국을 주께로 인도한 위대한 부흥사였으나 처음부터 그렇게 능력있지는 않았습니다. 부르클린에 복음을 증거하는데 너무나 사람들이 안모이고 힘이 없어서 부흥회를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부흥회에 참석한 부인 성도 한사람이 늘 무디 선생만 만나면 “쯧쯧쯧 능력이 없어. 말은 잘하는데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해! 사람들의 신금을 울리지를 못해. 능력을 받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무디 선생이 그 자매님을 보고 “나와 함께 기도를 해주십시오. 성령을 받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무디 선생이 34살 먹을때 11월 뉴욕 거리를 걸으면서 마음속으로 “오주님! 저와 함께 하시고 성령을 주시옵소서. 저를 강하게 붙들어 주시고 성령 충만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렇게 하는데 갑자기 길을 걸어 가는데 머리 위에 뭐가 확 임하시고 누르는 것 같거든. 놀래서 빨리 친구집으로 가서 방을 하나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방에서 혼자 통성기도하는데 성령이 비와같이 임하였습니다. 성령이 불길같이 임하고 너무 성령이 와서 충만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죽을 것 같아서 “하나님이여, 손좀 옮겨 주십시오. 안수좀 고만해 주십시오. 내가 죽겠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런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난 다음 무디 선생은 복음을 증거하며 큰 감화와 감동력이 있어서 사람들이 가슴을 치고 애통하고 회개하게 되고 모든 사람들이 감화, 감동을 입고 안 믿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무디 선생이 시카고에서 복음을 증거했는데 시카고를 중심으로 해서 전 미국을 흔들어 놓고 태평양을 대서양을 건너가서 영국을 변화시킨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된것입니다. 이러므로 그가 성령충만하기 전에는 보잘 것 없는 전도자였으나 성령이 오시고 난 다음에는 위대한 복음 전도자로 변화되고 말은 것입니다.
3. 성령의 은사와 열매
셋째로, 우리는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충만히 임하면 성령을 통해서 놀라운 하나님의 은사가 우리 생애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8절로 11절에 보면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여러분 성령이 오시면 하나님 성령은 각자에 특질을 따라서 성령이 전하는데로 은사를 주시지요.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사람에게는 필요한 지혜의 말씀을 주셔서 문제를 해결하게 해주시고 어떠한 사람에게는 감추인 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지식의 말씀을 모르는 것을 알게 해주시고 다른 사람은 성령의 역사와 마귀의 역사를 분별하는 영분별의 은사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은사의 방언, 어떤 사람은 통역하게 하시고 어떤 사람은 예언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병고치는 은사도 주시고 또 기적을 행하는 은사도 주시고 믿음의 은사도 주시고 그런 은사를 주시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교회에서 역사하는 은혜를 주십니다. 그것은 로마서 12장 6절로 8절에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이러한 직분도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가 주시면 기발한 일이 일어나요.
미국에 카네이션 밀크 회사는 세계적인 밀크 회사입니다. 카네이션 밀크 회사는 밀크만 파는 것이 아니라 온갖 종합적인 물건을 만들어 파는 회산데 그 부사장이 저하고(?) 가까운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회 신자였고 성령이 충만한 분이였는데 그분이 하루 새벽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성령이 그 마음속에 지혜를 주시고 지식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뭐라고 말하냐면 “얼마있지 아니하면 달러가 절하가 될것이고 독일의 마르크화가 비싸질 것이니 빨리 모든 달러를 청산해서 마르크화를 사라” 기도하는데 성령이 그렇게 말해요. 그래서 그는 사무실에 와서 전세계 지회사에 연락을 했습니다. 달러화를 다 팔고 마르크화를 바꿔라. 그러니까 지회사에서 전부다 “우리 부사장 돌았지 않았느냐? 갑자기 왜 달러를 다 팔고 마르크화로 바꾸라 하냐?” 소동해도 그러나 부사장의 명령이라 다 달러를 팔고 마르크로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한 열흘이 지나고 난 다음에 닉슨 대통령이 달러화를 절하시켰습니다. 가치를 낮추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마르크화는 높아졌습니다 . 그러니 달러화가 가치가 떨어지고 마르크화는 높아졌잖아요. 달러로서 마르크를 사놓았으니 앉아서 돈이 쏟아지게 된것입니다. 아예 호박이 넝쿨째 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온 회사 사원들이 다 “우리 부장님 천재다. 어떻게 그것을 알았느냐?” 그리고 FBI 조사도 받았습니다. “혹시 닉슨 대통령하고 속이 통한 것 아닌가! 달러를 절하하기 열흘전에 어떻게 달러 절하할줄 알고 달러를 다 팔아서 마르크화로 샀느냐!” 그런 의심까지 받은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닉슨 대통령과 통한게 아니라 닉슨 대통령의 마음을 깨뚫어 보고 있는 성령과 통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문을 열면 닫을자가 없고 닫아 놓으면 열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줄려면 하루 아침에 팔자를 고쳐 놓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분 너무 돈을 많이 벌고 회사에 공로를 많이 세워서 크게 배당금을 받고 더 이상 일할 필요가 없어 은퇴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기적이 일어난 것을 제가 보고 과연 하나님의 성령의 은사가 임하면 이렇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구나 하는 것을 제가 체험한 것을 보았습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에 보면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각각 은사를 주어서 성도를 도와주고 교회의 몸을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0절에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하나님께서 은사를 준 것은 그 은사를 가지고 자기 개인적으로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도를 돕고 몸된 교회를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 충만하면 성령께서 은사를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은사도 충만하도록 구할 뿐 아니라 그 무엇보다도 예수 믿는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인격적인 열매를 맺으십니다. 오늘 예수믿는 사람들이 사회 지탄을 받는 것은 예수는 열심히 믿지만은 인격적인, 도덕적인, 윤리적인 열매를 맺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나 그 행위 속에 믿는자처럼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세상과 꼭같이 부정과 부패를 함께 하고 세속에 물들어 흘러가면 우리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세상 사람 앞에 다를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두움 가운데는 빛이 되어야 되고 썩어가는 데는 소금이 되어야 될것인데 같이 어두워지고 같이 썩어지면 우리 그리스도교회가 아무런 덕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에 1,200만 성도가 있지만 한국사회 빛과 소금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한국국민들에게 감화, 감동을 주지 못하고 한국 국민들의 심정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우리 교회가 빨리 회개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우리가 간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간구하고 기도할 때 우리를 통하여 인격적인 열매를 맺게 해주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런 역사는 성령이 오셔서 우리의 인격적인 변화를 갖다 주고 인격적인 열매를 맺게 해주는 것입니다. 가장 우리 예수 믿고 위대하고 훌륭한 것은 중생하고 성령충만한 세례를 받고 난 다음 성령의 은사만 역사할 뿐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맞아 변화받은 남편이 되고 변화받은 아내가 되고 변화받은 자녀들이 되고 변화받은 시민이 되고 변화받은 국민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 이런 열매가 나타나야 사람들이 보고 예수님이 살아 계시는구나, 참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임하였구나 하고 감화, 감동 받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 그냥 자연적으로 된 열매가 아닙니다. 예수 믿고 구하면 성령이 와서 가나의 혼인잔치에 물을 변하여 포도주로 만든것처럼 우리에게 변화를 갖다 주어서 이러한 열매를 맺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변화 받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변화받지 아니하면 안돼요. 우리는 매일매일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를 받아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온세계 빛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제 삼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없는 백성이 아닙니다. 성령안에 아버지가 계시고 성령안에 아들 예수님이 계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성령을 통해서 오늘 여러분과 함께 계시므로 결코 여러분은 버림받지 않고 여러분은 고아가 되지 않았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안에 너희가 내안에 내가 너희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 동안에 항상 성령님을 인정하십시오. 인격적으로 환영하십시오. 성령을 모셔 들이십시오. 성령을 예배하고 찬양하고 감사 드리십시오. 성령께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권능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놓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오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부활 승천 하신후 50일만에 성령을 부어 주셔서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을 감사합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게 하시고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권능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게 되고 전도할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버지여 오늘 우리 성도들이 모두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하고 성령으로 변화받아 열매를 맺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제 목 :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설 교 : 조 용 기 목사
성 구 : 요한복음 14장 16-20절 말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서론>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고아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무섭고 괴로운 일입니다. 제가 불광동에서 목회할 때 어느날 아침에 어떤 자매 한분이 교회당 찬 가마니 옆에 엎드려서 통곡을 하고 울고 있었습니다. 그 사연인즉 6.25때 남편이 전쟁에 가서 전사하고 과부가 되어서 혼자 세 딸을 키웠는데 그 엄마가 폐병에 걸렸습니다. 피를 많이 토하고 기진맥진해서 더 이상 자식을 기를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아원에 부탁을 해서 자식들을 고아원에서 차를 가지고 와서 데리고 갔습니다. 그날은 엄마가 특별히 좋은 음식을 준비하고 얘들에게 좋은옷을 입히니까 큰 아이는 눈치를 채고 밥을 잘 먹지 않고 엄마만 살피고 있는데 작은 아이는 웬 좋은 음식이냐고 즐거워하면서 좋은 옷을 입고 기뻐하는데, 바깥에서 차 크락션 소리가 난뒤 젊은이들이 확 달려들어서 문을 열고 들어와서 어린 아이들을 강제로 끌고 갑니다. 아이들이 “엄마! 우리를 붙잡아 달라”고 아무리 부탁해도 엄마는 돌아앉았습니다. 그때 그 청년들이 하는말이 “야! 너희 엄마는 폐병들어 피를 토하고 너희 가정은 가난하지 않느냐? 지금 가는 고아원에는 보모들도 엄마보다 더 이쁘고 더 훌륭하고 건강하고 환경도 좋고 학교도 갈수가 있다. 그러므로 고아원으로 가자.” 그때 애들이 부르짖어 말하기를 “우리는 고아원보다 우리 집이 좋고 아름답고 건강한 보모보다 피를 토하는 어머니가 오히려 좋다. 우리는 엄마곁에 있겠다. 엄마에게 두어 달라”고 발버둥을 치는 어린 아이들을 모른체 뒤돌아 앉아 있다가 애들이 떠나고 난 다음에 천막교회로 뛰어와서 그렇게 슬피울고 통곡을 합니다. 그 어린아이들이 하는말이 귀에 쟁쟁하여 떠나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폐병이 걸리고 피를 토해서 죽어가는 엄마라도 우리 엄마가 좋다. 우리는 엄마 곁에 있겠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저들이 떠나가실 것을 생각하고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저들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마음속에 좌절과 절망을 느꼈습니다. 부모, 형제, 처자, 전토를 다 버리고 3년여 동안 주님을 따라 다녔는데 이제 주님이 “나는 너희를 떠나 하나님 아버지께로 간다”고 하니까 얼마나 좌절되고 절망 되겠습니까? 정말로 고아가 되는 것이 가장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예수님 없는 그들의 삶이란 살벌한 유대인 사회속에서 고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성령은 누구신가?
오늘 첫째로, 성령은 누구신가 하고 물을때 성령께서는 바로 하나님의 영이시며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아버지의 영이시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장 7절로 11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니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예수님께서는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영이라 너희가 보지는 못하지만은 아버지가 내안에 계셔서 나를 통하여 말하고 행하셨다. 그러므로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고 나와함께 거한자는 아버지와 함께 거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또 하신 말씀이 성령을 모시고 성령을 체험한 자는 바로 나를 모시고 나를 체험한 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체험한 자는 예수님을 체험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여기에 예수님께서 내가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다른 보혜사를 보내겠다고 했는데 다른 보혜사라는 뜻은 예수님은 첫째, 보혜사고 성령은 다른 보혜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자신의 이름이 보혜사인데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또 다른 보혜사라는 말이 의미가 심장합니다. 왜냐하면 다르다는 말중에 헬라어에서는 ‘알로스’라는 말이 있고 ‘헤트로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헤트로스’라는 말은 전혀 다른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알로스’라는 말은 똑같은 것중에 하나 다른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또 다른 보혜사라고 말한 그 단어는 ‘알로스’라고 말했었습니다. 알로스라는 말은 ‘나는 보혜사고 성령도 보혜사인데 나와 성령은 꼭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영접한 자는 성령을 영접한 자고 성령이 오시면 내가 온것과 한가지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로 오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삼위일체인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고로 아버지와 아들이 오늘날 성령을 통해서 동시에 우리속에 와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에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라고 말했습니다.
성령은 내가 보내는데 내가 아버지께로 받아서 너희에게 보내므로 성령이 오시면 그는 아버지의 영이요 아들의 영으로서 너희속에 와서 아버지를 증거하고 아들을 증거할 것이다. 예수님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과 성령은 또한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예수님과 더불어 성령 안에서 역사하신 다는 것입니다.
구약 4천년 동안은 아버지 시대로서 야웨 하나님이 전반적으로 나타나서 일하셨습니다만 신약 33년은 아들의 시대로 예수님이 오셔서 아버지는 예수님을 통해서 성령도 예수님을 통해서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 부활하신 이후 승천하신 다음 50일만에 성령이 강림하시자 그 다음 성령의 시대가 오셨습니다. 오늘날은 아버지도 성령을 통해서 아들 예수님도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볼 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세 인격자로서 한 하나님으로 역사하지만 아버지의 시대, 아들의 시대, 성령의 시대가 분명히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는 처음 보혜사요, 성령은 또 다른 보혜사 예수님과 꼭같으나 다른 보혜사라고 했는데 보혜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라는 말인 것입니다. 헬라어로 ‘파라’라는 말은 ‘곁에’라는 말이고 ‘칼레오’라는 말은 ‘부른다’는 말인데 결합된 말이 ‘파라칼레오’에서 파생된 단어가 ‘파라클레토스’인데 이말은 우리 말로 번역하면 ‘도와 주기 위해 곁에 오도록 부름을 받은자’라는 뜻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항상 우리 곁에 계신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바로 아버지의 영이요, 아들의 영이기 때문에 성령 오신 것은 아버지가 오신 것이며 아들 예수님이 오신것이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곤궁에 처한 우리를 돕기 위해서 성령은 와계신데 어떻게 돕나요? 우리를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달음을 얻지 못할 때 성령이 오셔서 성경말씀과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과거에 배운 것도 성령께서 필요할때는 우리 마음속에 기억나게 해주시고 우리가 잘못하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성령이 강하게 우리 마음을 꾸짖으시므로 죄에서 돌아서게 하시고 우리를 바른길로 기도할 때 계시하시고 인도하여 주시며 고난 당할 때 와서 마음에 위로해 주시고 어루만져 주시며 우리에게 담대하게 해주시고 또 우리에게 영육간에 힘을 허락해 주신 것이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 26절에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하기 그지없는 인생이나 우리 스스로 고아처럼 버림받지 아니하고 성령께서 도와 주시기 위해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안에 와서 계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해주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여 주시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령의 역사없이 우리가 신앙생활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 없이는 부모 잃은 고아와 같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보내시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고 아들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주사 아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심과 동시에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놓지 아니하시고 24시간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안에 계시며 항상 우리를 도와 주시는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와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우리들에게는 하늘이 9만리 장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우리 가운데 계시며 우리 안에 와서 거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안수 있는 것입니다.
2. 성령의 체험
둘째로, 우리는 성령을 어떻게 체험하고 있나요?
우리는 중생에서 성령을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은 예수님이 계신곳에 유대인의 선생인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는 밤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몰래 몰래 예수님께 찾아 왔습니다. 그날에는 달이 밝고 그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로써 예수님이 계신 집주위에 나무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볼때는 선생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분이십니다. 그렇지 않고야 이런 위대한 기적을 행하실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단도직입적으로 거듭나라고 말했습니다. 벌써 그때는 니고데모는 나이 많고 백발이 성성한 사람이었습니다. 깜짝 놀랬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했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수 있삽나이까?” 도저히 니고데모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육으로 난 것은 끝까지 육이다. 구정모혈로 태어난 인간은 아담과 하와의 자손으로 영이 죽은 육인데 육으로 난 사람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면 공부 많이 하면 육이요, 종교를 가지면 종교를 가진 육이요, 수양과 도덕을 많이 닦았으면 수양과 도덕을 많이 닦은 육이지. 육은 육이지 육이 영으로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영으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여러분 물이라는 것은 회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로 씻어 깨끗함을 받지 않습니까?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잊었으면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것은 우리가 지혜가 많이 믿은것도 아니고 우리가 학식이 많이 믿은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불가항력적으로 하나님의 성령이 예수가 구주인 것을 깨닫게 해주셨기 때문에 믿게 된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서 믿은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마음속에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계시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불가항력적으로 성령께 끌려서 예수를 믿게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비취심을 받아 회개하고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우리가 알고 믿고 받아 들이게 되면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계시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깨닫고 모시게 되면 그리스도의 영인 영생의 영, 성령이 우리속에 와서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육의 사람이 변하여서 신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다 육으로 태어나서 육으로 사는 사람이요, 우리는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변화 받아서 영생을 얻은 신령한 사람들로 되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똑같은 사람이지만은 생명의 질이 다릅니다. 세상 사람은 영이 죽었고 우리들은 예수로 말미암아 영이 살아났습니다. 세상 사람은 ‘푸스케’ 혼의 생명만 가지고 있고 우리는 ‘조오에’ 영의 영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질이 다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육으로 살다가 육이 죽으면 영원한 지옥으로 버림을 당하고 영으로 태어난 사람은 신령하게 살다가 육이 무너지면 영원한 영광의 집, 영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우리가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성령이 우리 안에 와서 거하시는 것이 우리가 거듭나서 신령한 사람들이 된것입니다. 우리는 모두다 세상으로 태어나지 않고 예수를 믿어서 하나님께로 태어났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로 13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저는 조씨 가문에 태어났는데 조씨 혈통으로 제가 거듭난 것 아닙니다. 그리고 또 아버지, 어머니를 통해서 내가 거듭난 것 아닙니다. 내가 거듭난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통해서 예수 믿음으로 성령이 나를 다시 태어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육으로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지 않습니다. 영으로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을 앎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령을 모시고 거듭나서 영생을 얻었으면 그 다음 또 권능으로서 성령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여성이 처음 결혼하면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 그러나 아내로서 남아 있습니까? 아닙니다. 얼마 안있으면 어린 아이를 잉태하게 되고 낳게 되면 어머니로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여성이 아내가 되었다가 그다음 어머니가 되는 것처럼 똑같은 성령인데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게 할때는 중생의 영으로 역사하시다가 똑같은 성령을 우리가 또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권능의 영으로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4절로 5절에 보면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주님이 동분서주 하면서 40일동안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불러 모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감람산에 가서 축복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승천한 것을 본 500여명의 제자들인데 그중에 약 120여명이 마가요한의 집에와서 다락방에서 한 열흘동안 열심히 기도하다가 성령의 충만한 세례를 받게 된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은 받았으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권능을 받아야 됩니다. 그냥 내가 예수 믿어서는 입이 떨어지지 않아요. 그러나 성령세례 받으면 권능이 넘쳐나서 앉으나 서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 받는 것은 내 속에 영생하는 샘물이 들은 것과 같습니다. 샘물이 들어온 것 내 마음속에서 그냥 퍼마실수 있지 온 도시와 나누어 마실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세례 받으면 너희 속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 나리라. 강물이 넘쳐 나오면 온 도시가 그물을 마실수 있습니다.
우리속에 샘물이 있으면 서울 시민과 다함께 나눌수는 없지만 한강물이 넘실넘실 흘러가는 이 한강물은 온 서울시민이 다 나누어 마실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한 사람은 샘물을 얻은것과 같지만 성령세례 받은 사람은 성령이 강물같이 여러분 속에서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순절날에 제자들은 바로 이 성령세례를 받아 갑자기 성령이 강물같이 넘쳐 나면서 권능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부들이요, 세리들이요, 그 사회속에서 멸시받고, 천대받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성령이 임하시자 권능을 받고 그들속에서 놀라운 능력이 넘쳐 나오게 시작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1절로 4절에 보면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성령을 충만히 받자 그렇게 무서워서 벌벌떨며 밖으로 못나간 그들이 문을 박차고 나와서 복음을 증거하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하루에 3천명이 회개하고 그 이튿날에는 미문가의 앉은뱅이를 예수 이름으로 일으키고 난 다음에 복음을 전하매 5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오고 예루살렘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충만하게 된것입니다. 보잘 것 없이 겁쟁이들. 그들이 성령을 받자 놀라운 권능이 생겨나게 된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만 성령 세례 받았는가? 아니요. 주후 30년에 성령의 역사가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는데 4년이 지난후에 주후 34년경에 바로 사마리아인들이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매 많은 사람들이 그 복음을 듣고 귀신이 쫓겨 나가고 앉은뱅이와 절름발이가 나았고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요술쟁이 시몬이라는 사람이 큰 요술을 해서 많은 사람을 미혹하다가 빌립의 사역을 보고 너무 심취해서 따라 다니며 자기도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따라 다녔는데 그러나 빌립의 선교를 통해서 구원받고 귀신 쫓겨 나가고 병은 나았지만은 성령 세례받은 사람이 없어요. 사마리아에 크게 부흥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옛날에 와서 그들에게 안수하매 그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요술쟁이 시몬이 베드로에게 와서 “내 돈줄 터이니까 나도 그런 권능을 주어서 안수 할때마다 성령받게 해주십시오.” 그러다가 베드로에게 혼이 났습니다. “야 이놈아! 하나님의 선물을 돈주고 살줄 아느냐?” 혼비백산 했습니다. 그런데 이 요술쟁이가 빌립이 다니면서 귀신 쫓아낸 것 보고도 돈주고 그 권능 달라고 안했습니다. 수많은 앉은뱅이와 절름발이가 낫는 것을 보고도 돈주고서 그 권능 달라고 안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하매 성령 받는 것보고는 돈주고서 그 권능을 달라고 했었습니다. 성령을 받을때 가만하고 조용히 받았으면 뭘 돈주고 받으려고 할턱이 없잖아요. 굉장한 능력이 나타난 것을 보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행전 시절 오순절날 성령이 임할 때 사람들이 성령이 충만함을 받고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란것처럼 아마 요술쟁이 시몬도 귀신 쫓겨 나가는 것 보고도 놀라지 아니하고 병낫는 것 보고도 놀라지 않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하매 성령받고 방언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래가지고서 그래서 돈주고 살려고 한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성령 받은 결과로 외적 표정으로서 그들은 방언을 말했었습니다. 그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에 오순절날 이후 7년이 지났습니다. 주후 37년 경에 고넬료의 가정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고넬료는 바로 이탈리아 사람입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유대를 식민지로 삼아서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로마의 정부가 유대를 식민지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때 백부장 고넬료가 군대의 장교로서 와있었는데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앞에 기도 많이하고 헌금도 많이 하고 구제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제9시 기도 시간에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고넬료야 네 기도와 네 구제가 하늘에 상달되어 하나님께 기억한바 되어” 여러분 보세요.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고 구제하고 헌금한 것이 하늘에 상달되어 하나님이 기억한바 되었다고 했었으므로 우리가 주 앞에서 선한일을 행한 것은 하나님이 하나도 잊지 아니하시고 기억하시고 갚아 주는 것입니다. 사람을 욥바로 보내어서 베드로를 청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부하를 욥바로 보내어서 베드로를 청하여 왔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함께 와서 고넬료의 집에 오니까 고넬료가 너무나 감사해서 엎드려 절을 하고 베드로를 받아 들이니까 베드로가 절하지 말라고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를 하는데 모세의 율법으로도 의롭다함을 얻지 못한 자들이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었느니라고 말하지 말자 하늘에서 성령이 비와같이 확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고넬료와 그 식구들이 전부다 성령을 받고 하나님을 높이고 방언을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모두다 보고 놀랬습니다. “야 우리가 예루살렘에서 봤던 성령을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도 예수를 믿으니까 똑같이 성령을 받는구나. 또 예수를 믿으니까 똑같이 성령을 받는구나” 그래서 베드로가 그들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해서 그들이 세례를 베풀은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이방인의 오순절이라고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세월이 지나가서 주후 53년 그러니까 예루살렘에서 성령이 임한지 23년 후에 에베소 교회에 성령 세례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때 바울이 윗잠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보니까 한 열두명이 모였는데 키가 다 빠졌어요. 찬송도 아무런 힘이 없어 지렁이 울음소리 같은 찬송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설교 하는데 졸고 기도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뭐랬습니다. “너희가 믿을때 성령을 받았느냐? 성령이 있으면 찬송도 힘차게 하고 기도도 능력있게 할것인데 완전히 살았다 하나 죽었기 때문에 너희가 믿을때 성령 받았느냐?” 하니까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다시 한번 세례 요한때부터 증거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안수를 하매 성령이 임하신지라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사람쯤 되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자 그때부터 그 교회가 일어나서 큰 권능이 나타나므로 온 서아시아 일대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는 권능있는 교회가 되고 능력의 센타로 변화되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날도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사도행전 13장 52절에도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고 말했는데 성령 없이 목회하는 것은 있을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능력이 있어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1871년 가을 무디 선생은 부르클린에서 집회를 했습니다. 무디는 미국과 영국을 주께로 인도한 위대한 부흥사였으나 처음부터 그렇게 능력있지는 않았습니다. 부르클린에 복음을 증거하는데 너무나 사람들이 안모이고 힘이 없어서 부흥회를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부흥회에 참석한 부인 성도 한사람이 늘 무디 선생만 만나면 “쯧쯧쯧 능력이 없어. 말은 잘하는데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해! 사람들의 신금을 울리지를 못해. 능력을 받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무디 선생이 그 자매님을 보고 “나와 함께 기도를 해주십시오. 성령을 받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무디 선생이 34살 먹을때 11월 뉴욕 거리를 걸으면서 마음속으로 “오주님! 저와 함께 하시고 성령을 주시옵소서. 저를 강하게 붙들어 주시고 성령 충만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렇게 하는데 갑자기 길을 걸어 가는데 머리 위에 뭐가 확 임하시고 누르는 것 같거든. 놀래서 빨리 친구집으로 가서 방을 하나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방에서 혼자 통성기도하는데 성령이 비와같이 임하였습니다. 성령이 불길같이 임하고 너무 성령이 와서 충만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죽을 것 같아서 “하나님이여, 손좀 옮겨 주십시오. 안수좀 고만해 주십시오. 내가 죽겠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런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난 다음 무디 선생은 복음을 증거하며 큰 감화와 감동력이 있어서 사람들이 가슴을 치고 애통하고 회개하게 되고 모든 사람들이 감화, 감동을 입고 안 믿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무디 선생이 시카고에서 복음을 증거했는데 시카고를 중심으로 해서 전 미국을 흔들어 놓고 태평양을 대서양을 건너가서 영국을 변화시킨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된것입니다. 이러므로 그가 성령충만하기 전에는 보잘 것 없는 전도자였으나 성령이 오시고 난 다음에는 위대한 복음 전도자로 변화되고 말은 것입니다.
3. 성령의 은사와 열매
셋째로, 우리는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충만히 임하면 성령을 통해서 놀라운 하나님의 은사가 우리 생애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8절로 11절에 보면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여러분 성령이 오시면 하나님 성령은 각자에 특질을 따라서 성령이 전하는데로 은사를 주시지요.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사람에게는 필요한 지혜의 말씀을 주셔서 문제를 해결하게 해주시고 어떠한 사람에게는 감추인 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지식의 말씀을 모르는 것을 알게 해주시고 다른 사람은 성령의 역사와 마귀의 역사를 분별하는 영분별의 은사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은사의 방언, 어떤 사람은 통역하게 하시고 어떤 사람은 예언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병고치는 은사도 주시고 또 기적을 행하는 은사도 주시고 믿음의 은사도 주시고 그런 은사를 주시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교회에서 역사하는 은혜를 주십니다. 그것은 로마서 12장 6절로 8절에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이러한 직분도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가 주시면 기발한 일이 일어나요.
미국에 카네이션 밀크 회사는 세계적인 밀크 회사입니다. 카네이션 밀크 회사는 밀크만 파는 것이 아니라 온갖 종합적인 물건을 만들어 파는 회산데 그 부사장이 저하고(?) 가까운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회 신자였고 성령이 충만한 분이였는데 그분이 하루 새벽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성령이 그 마음속에 지혜를 주시고 지식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뭐라고 말하냐면 “얼마있지 아니하면 달러가 절하가 될것이고 독일의 마르크화가 비싸질 것이니 빨리 모든 달러를 청산해서 마르크화를 사라” 기도하는데 성령이 그렇게 말해요. 그래서 그는 사무실에 와서 전세계 지회사에 연락을 했습니다. 달러화를 다 팔고 마르크화를 바꿔라. 그러니까 지회사에서 전부다 “우리 부사장 돌았지 않았느냐? 갑자기 왜 달러를 다 팔고 마르크화로 바꾸라 하냐?” 소동해도 그러나 부사장의 명령이라 다 달러를 팔고 마르크로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한 열흘이 지나고 난 다음에 닉슨 대통령이 달러화를 절하시켰습니다. 가치를 낮추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마르크화는 높아졌습니다 . 그러니 달러화가 가치가 떨어지고 마르크화는 높아졌잖아요. 달러로서 마르크를 사놓았으니 앉아서 돈이 쏟아지게 된것입니다. 아예 호박이 넝쿨째 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온 회사 사원들이 다 “우리 부장님 천재다. 어떻게 그것을 알았느냐?” 그리고 FBI 조사도 받았습니다. “혹시 닉슨 대통령하고 속이 통한 것 아닌가! 달러를 절하하기 열흘전에 어떻게 달러 절하할줄 알고 달러를 다 팔아서 마르크화로 샀느냐!” 그런 의심까지 받은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닉슨 대통령과 통한게 아니라 닉슨 대통령의 마음을 깨뚫어 보고 있는 성령과 통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문을 열면 닫을자가 없고 닫아 놓으면 열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줄려면 하루 아침에 팔자를 고쳐 놓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분 너무 돈을 많이 벌고 회사에 공로를 많이 세워서 크게 배당금을 받고 더 이상 일할 필요가 없어 은퇴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기적이 일어난 것을 제가 보고 과연 하나님의 성령의 은사가 임하면 이렇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구나 하는 것을 제가 체험한 것을 보았습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에 보면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각각 은사를 주어서 성도를 도와주고 교회의 몸을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0절에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하나님께서 은사를 준 것은 그 은사를 가지고 자기 개인적으로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도를 돕고 몸된 교회를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 충만하면 성령께서 은사를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은사도 충만하도록 구할 뿐 아니라 그 무엇보다도 예수 믿는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인격적인 열매를 맺으십니다. 오늘 예수믿는 사람들이 사회 지탄을 받는 것은 예수는 열심히 믿지만은 인격적인, 도덕적인, 윤리적인 열매를 맺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나 그 행위 속에 믿는자처럼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세상과 꼭같이 부정과 부패를 함께 하고 세속에 물들어 흘러가면 우리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세상 사람 앞에 다를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두움 가운데는 빛이 되어야 되고 썩어가는 데는 소금이 되어야 될것인데 같이 어두워지고 같이 썩어지면 우리 그리스도교회가 아무런 덕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에 1,200만 성도가 있지만 한국사회 빛과 소금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한국국민들에게 감화, 감동을 주지 못하고 한국 국민들의 심정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우리 교회가 빨리 회개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우리가 간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간구하고 기도할 때 우리를 통하여 인격적인 열매를 맺게 해주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런 역사는 성령이 오셔서 우리의 인격적인 변화를 갖다 주고 인격적인 열매를 맺게 해주는 것입니다. 가장 우리 예수 믿고 위대하고 훌륭한 것은 중생하고 성령충만한 세례를 받고 난 다음 성령의 은사만 역사할 뿐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맞아 변화받은 남편이 되고 변화받은 아내가 되고 변화받은 자녀들이 되고 변화받은 시민이 되고 변화받은 국민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 이런 열매가 나타나야 사람들이 보고 예수님이 살아 계시는구나, 참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임하였구나 하고 감화, 감동 받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 그냥 자연적으로 된 열매가 아닙니다. 예수 믿고 구하면 성령이 와서 가나의 혼인잔치에 물을 변하여 포도주로 만든것처럼 우리에게 변화를 갖다 주어서 이러한 열매를 맺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변화 받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변화받지 아니하면 안돼요. 우리는 매일매일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를 받아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온세계 빛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제 삼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없는 백성이 아닙니다. 성령안에 아버지가 계시고 성령안에 아들 예수님이 계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성령을 통해서 오늘 여러분과 함께 계시므로 결코 여러분은 버림받지 않고 여러분은 고아가 되지 않았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안에 너희가 내안에 내가 너희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 동안에 항상 성령님을 인정하십시오. 인격적으로 환영하십시오. 성령을 모셔 들이십시오. 성령을 예배하고 찬양하고 감사 드리십시오. 성령께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권능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놓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오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부활 승천 하신후 50일만에 성령을 부어 주셔서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을 감사합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게 하시고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권능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게 되고 전도할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버지여 오늘 우리 성도들이 모두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하고 성령으로 변화받아 열매를 맺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