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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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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참상을 기록하고 우리 민족의 어리석음을 반성한 징비록(懲毖錄)을 남긴 서애 유성룡의 서거 400주년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치권이나 언론과 국민은 너도 나도 앞다투어 유성룡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자 하면서도 그 행태는 유성룡이 아니라 붕당에 빠져있던 간신배들과 전혀 다름이 없다. 진정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언론과 지도층은 별로 보이지 않으며 오직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징비록을 이용하는 모습만 보이는 대한민국의 참상은 너무나 비극적이다. 임진왜란보다 더한 고통과 피폐함을 맛보아야만 우리 국민들은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인가? 대선을 불과 며칠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도 국민들은 패배주의와 냉소주의에만 빠져 정신을 바짝 차릴 생각을 않고 있다. 그저 자신의 편견과 욕심에만 갇혀 대통령과 정치인을 자기 집 집사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자기 집 집사가 되어주길 바라고 뽑은 대통령과 정치인이 당신의 대표가 될 수 없으며, 결국 당신의 가산을 탕진하는 배신자가 될 것임을 모르는가? 나의 재산을 빼돌릴 준비를 하고 있는 집사에게 나의 집을 맡기는 것이 옳은가?
지금 우리 자신의 모습이 400년 전 임진왜란 때의 모습에서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다고 한다면 당신은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왜군이 쳐들어오자 선조 임금은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로 도망갈 준비만 하고 있었다. 양반들은 병역도 담당하지 않았지만, 항상 장군과 지도자 행세를 하였다. 병역 대신 납부하는 군포조차도 아까워 하며 기피하였다. 앞장서 싸우겠다는 지배층이 없으니 조선 백성들도 도망칠 생각만 하고 있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잘 나타나는 것처럼, 현재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발발했을 때 앞장서 싸우겠다고 답한 국민은 절반에도 못미치고 있으며, 젊은 세대로 갈수록 참전 기피는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하루가 멀다 않고 터지는 지도층, 지배층의 병역 비리 사건이 오늘도 뉴스를 가득채운다. 돈은 있어도 정치 권력은 없는 연애인들이 가장 먼저 매를 맞고 있지만, 사실 참여정부의 투명한 분위기가 없었다면 병역 비리는 사람들의 입소문으로만 맴돌았을 뿐 법정까지 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언론들이 앞장서 현 정부의 장 차관급 인사 두 명의 아들들 병역 비리 혐의를 캐내었었지만, 만약 수사가 지난 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 지배층의 병역 기피와 비리의 실상은 차마 눈 뜨고는 바라볼 수 없을 정도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돈있고 권력 있는 자들은 한반도의 유사시를 대비해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으며, 일정한 자산을 도피시켜 놓고 언제든지 도망갈 준비를 갖춘 형국이다. 아마 그들에게 군대에 가는 대신 병역세를 내라고 하면 그들은 차라리 이민을 갈지도 모른다. 이제는 일부 여성들까지 대놓고 병역필자들을 비웃는 행렬에 가세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지도층의 인식과 행태가 이러할진데 일반 국민들에게 나라를 지키려는 마음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것이 어쩌면 더 우스운 일일 것이다. 또 임진왜란 당시의 조세 제도는 어떠하였는가? 가장 많은 토지를 차지하고 가장 풍족하게 먹으며 나라로부터 녹을 받던 권문세족들이 오히려 단 한 톨의 양곡도 세금으로 납부하지 않았다. 가장 가난하고 가장 배고픈 백성들은 조세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도 가진 자들의 악덕 고리대업(환곡)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권문세족들은 많은 것을 가졌으면서도 더 많은 땅과 재산을 얻기 위해 양민들을 가렴주구하였다. 지금 우리의 조세 제도와 경제 시스템은 어떠한가? 온갖 불법과 탈세와 편법 절세로 축적한 부를 자손만대 누리기 위해 오늘도 그들은 납세의 의무를 외면하고 있다. 가진 자로서의 책임과 양심 따위는 아랑곳 없는 그들이 숨겨 놓은 재산(지하경제)만 국가 GDP의 20%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상속세, 증여세, 소득세, 재산세, 종부세 등으로 걷어들여야 할 세금을 지배층이 내지 않고 있으니 돈 없는 서민들만 오늘도 소비세, 부가세, 목적세 명목의 간접세를 열심히 납부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더 갖기 위해 순진무구한 국민들을 부동산과 주식 투기에 끌어들였고 또 목적을 달성하였다. 6억 짜리 집에 살면서도 먹을 것이 없다고 우는 소리를 하며 자신들이 서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의 경험 상, 진짜 가난과 장애로 고통 받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난하고 고통스럽다는 말조차 쉽사리 드러내어 하지 못한다. 가난과 장애는 부끄러운 것이고 무능력한 자들의 것이라고 가르치는 사회이니 말이다. 그런데도 가진 자들은 자신의 작은 이익을 위해 자신을 서민으로 전락시키는 위선을 떨고 진정 고통 받는 사람들을 모욕한다. 또 임진왜란 당시의 토지 제도는 어떠하였는가? 모든 토지는 당시 10%도 되지 않던 권문세족들의 것이었다. 울타리를 치지 못할 정도로 넓은 자기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표식까지 세워야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왜놈들을 몰아낸 것은 백성들이었지만 전란이 끝난 후에도 토지는 여전히 세도가들의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전란으로 황폐화된 땅을 개간하는 몫은 여전히 백성들의 책임이었다. 지금 우리의 토지 제도는 어떠한가? 전 국민의 1%가 전 국토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예전처럼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장을 짓는 것도 아닌데 땅값은 이유 없이 끝없이 치솟기만 했다. 나머지 90%의 국민은 자기 한 몸 편히 누일 땅 몇 평, 집 한 채 마련을 위해 평생을 바치고 늙어간다. 그리고 대다수의 2, 30대 젊은이들에게는 그런 내집 마련의 꿈조차도 백일몽이 되어 버렸다. 국토가 좁고 척박해서 나눌 땅이 없다고 하는데, 몇 사람의 유희를 위한 몇 십 만 평짜리 골프장은 수 백개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왜란이 끝났지만 임금과 지배층은 책임지지 않고 돌아와서 다시 주인 자리에 앉았다. 400년 전은 그렇다 치자. 민주주의도 없고 정치 시스템도 없고 정의니 평등이니 하는 말도 없던 시대이니 그렇다 치자. 이제 400년이 흘렀다. 그 사이 항해술의 혁명, 자본주의 혁명, 민주주의 혁명, 사회주의 혁명, 공산주의 혁명, 신자유주의 혁명, 상업의 혁명, 정보와 인터넷의 혁명이 발생하였다. 이전 4천년보다 몇 배는 더 많은 변화를 이룬 400년이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지금 무엇이 바뀌었는가?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가 있는가? 정말 그렇다고 믿는가? 그런데 왜 나라의 주인이라는 민(民)은 진정 보이지 않고, 아귀다툼과 자기 배불릴 고민만 하는 돼지들의 세상(저주주의, 猪主主義)이 되었는가? 왜 국민을 우습게 알고 지배대상으로 아는 자들이 여전히 주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나라의 경제를 갉아먹고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은 자들이 이제와서 대통령 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며 큰 소리를 치고 있다. 왜 400년 전과 한 치의 다름도 발전도 없는 현재가 되었느냐는 말이다. 역사를 살펴보라. 한 국가의 멸망에는 항상 예외가 없었다. 토지제도(田制), 병역제도(軍役), 조세제도(租役) 이 세 가지가 흔들리면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세 가지의 문란의 근본적인 기저에는 바로 지배층의 타락과 부패, 그리고 피지배층의 분노와 체념이 도사리고 있다.
자 이제 우리 자신, 지금의 대한민국을 돌아보자. 지금 우리는 위기에 처한 것이다. 수출이 잘 안 되어서? 성장이 잘 안 되어서? 주가 지수가 오르지 않아서? 과연 그럴까? 그런 것들은 지금의 위기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지배층의 위기일 뿐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위기는 조세 정의의 미실현, 병역 정의의 불이행, 토지 분배의 미완성에 있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잘 작동되고 있다면 실업의 문제도 양극화의 문제도 우울증의 문제도 이혼의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빼앗고 누린 자에게 또 다시 자기 집을 맡기려고 한다. 임진 왜란 당시 왜군은 명나라에게 철군의 조건으로 조선 영토의 반을 내 놓으라고 했다. 명나라는 일본의 대륙 침략을 막기 위해서는 조선의 분열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조선인의 땅에 긴장이 감돌아야 왜가 대륙을 넘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조선인데 정작 명나라와 왜가 저희들 멋대로 우리를 능멸하였다. 400년이 지났지만 그 때와 달라진 것은 없다. 결국 일본은 36년간 우리를 착취하며 단물을 빨아먹을 수 있었고, 또 중국의 의도대로 우리는 분단 되었다. 오히려 400년 전이 더 좋은 결과였다. 도요토미 막부도 쇠퇴하고 명나라도 멸망하였지만 조선은 지탱하였고 나라가 갈라지는 일도 없었으며 그 후 300년을 더 버텼다.
그런데 사실 그러한 좋은 결과가 오히려 지금 우리의 불행을 낳았다. 지도자들이 앞장서지 않고 정의가 바로 서지 않은 나라가 멸망하지 않고 버티다 보니 지배층, 백성들 할 것 없이 오만과 나태를 갖게 되었다. 운이 좋아 망하지 않은 것을 자신들이 잘 나서 망하지 않았다고 믿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400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조선 사회의 신분제적 한계와 서열 구조, 연고주의, 학벌 주의는 개혁되지 않고 400년을 연명하고야 만 것이다. 임진왜란으로 조선이 망하지 않은 것은 정말로 극히 일부 양심적이고 충정스런 열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성룡과 이순신 같은 충신이 없었다면 지금 조선인들의 절반은 일본어를 쓰고 있을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중국어를 쓰고 있을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충신들을 알아본 일부 백성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조선을 지켜 낼 수 있었다. 이것이 징비록의 교훈임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서애 유성룡은 대부분의 백성들조차 갈팡질팡하며 도망치기 바빴지만, 그래도 충신이 있어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고 했다. 매국노와 친일파와 우매한 백성들은 식민지 조선을 순응하며 살았지만, 안중근과 백범은 식민지 조선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들은 한민족의 정신을 지켜낸 것이고 또 나라를 구한 것이다. 그런데 나라는 이순신과 백범에게 어떤 댓가를 주었는가? 이순신과 백범을 백성들은 지키지 못하고 사악한 탐욕가들의 손에 그들의 운명을 내주었다. 당신은 아직도 이 역사의 진실을 깨닫지 못하는가? 이순신과 백범을 죽인 그들에게 또 다시 이 나라를 맡길 것인가?
내 한 목숨, 내 가족 부지하기도 힘든 세상임은 알고 있다. 당신에게 우국충절의 지사가 되라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나라가 위기와 도탄에 빠졌을 때 나라를 살려낼 지도자와 충신의 싹은 남겨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썩은 지배층이 저희들끼리 다 해먹는 나라지만 그래도 보이지 않는 곳곳에는 이순신, 유성룡, 안중근, 백범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너도 나도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다. 일부 대선 주자들에게서 느껴지는 오만함과 위선과 뻔뻔함과 입신주의에 혐오스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나마 국민들의 손으로 뽑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지도자(지배자)가 아닌가? 다 똑같다는 소리만 하지 말고, 누가 내 뱃속을 챙겨줄 거란 말만 하지 말고,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고 수 천 년을 번영할 대한민국을 만들 지도자가 누구인지 옥석을 가려볼 시간을 조금만이라도 투자하자. 제발 자격 없는 지도자를 뽑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자.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의 소리에 한 번이라도 귀기울이는 당신이 되어보라. 투표는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최선을 뽑는 과정이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 그 다음은 차악에 표를 던지는 것이다. 뽑을 인물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게으르거나 무지하거나, 무책임하다는 말일 뿐이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30%가 결심하고 투표를 한다면 결과는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이 될 수도 있음을 믿으라.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살릴 수 있는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 아주 중차대한 시점이다. 조금만 현명하게 돌아본다면 그래도 누가 이순신, 백범에 가까운지는 쉽게 알 수 있다고 믿는다.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유권자는 되지 말자. 대통령 한 명 뽑는 일이 뭐 그리 중요한가 하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일이다. 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유권자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명확히 할 때, 정치인들은 유권자를 두려워할 것이고 나라를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없더라도 나 한 사람의 대표성을 표출함으로써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함부로 여길 수 없게 하자. 여론조사가 정말 믿을 만한 것인지 아님 조작된 것인지 당신도 한 번 참여해서 입증해 보라. 이 나라의 진정한 민의가 무엇인지 당신은 궁금하지 않은가? 그러니 제발 5분 거리와 시간이 귀찮고 아까워서 당신의 의사를 포기하는 일은 말자. 정치인들이 맘에 들지 않는가? 그래서 비판하고 욕하고 씹었는가? 이제 앞으로 또 그렇게 하고 싶다면 투표를 하라. 열심히 욕한 당신! 이제는 찍어라.
지금 우리 자신의 모습이 400년 전 임진왜란 때의 모습에서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다고 한다면 당신은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왜군이 쳐들어오자 선조 임금은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로 도망갈 준비만 하고 있었다. 양반들은 병역도 담당하지 않았지만, 항상 장군과 지도자 행세를 하였다. 병역 대신 납부하는 군포조차도 아까워 하며 기피하였다. 앞장서 싸우겠다는 지배층이 없으니 조선 백성들도 도망칠 생각만 하고 있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잘 나타나는 것처럼, 현재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발발했을 때 앞장서 싸우겠다고 답한 국민은 절반에도 못미치고 있으며, 젊은 세대로 갈수록 참전 기피는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하루가 멀다 않고 터지는 지도층, 지배층의 병역 비리 사건이 오늘도 뉴스를 가득채운다. 돈은 있어도 정치 권력은 없는 연애인들이 가장 먼저 매를 맞고 있지만, 사실 참여정부의 투명한 분위기가 없었다면 병역 비리는 사람들의 입소문으로만 맴돌았을 뿐 법정까지 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언론들이 앞장서 현 정부의 장 차관급 인사 두 명의 아들들 병역 비리 혐의를 캐내었었지만, 만약 수사가 지난 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 지배층의 병역 기피와 비리의 실상은 차마 눈 뜨고는 바라볼 수 없을 정도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돈있고 권력 있는 자들은 한반도의 유사시를 대비해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으며, 일정한 자산을 도피시켜 놓고 언제든지 도망갈 준비를 갖춘 형국이다. 아마 그들에게 군대에 가는 대신 병역세를 내라고 하면 그들은 차라리 이민을 갈지도 모른다. 이제는 일부 여성들까지 대놓고 병역필자들을 비웃는 행렬에 가세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지도층의 인식과 행태가 이러할진데 일반 국민들에게 나라를 지키려는 마음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것이 어쩌면 더 우스운 일일 것이다. 또 임진왜란 당시의 조세 제도는 어떠하였는가? 가장 많은 토지를 차지하고 가장 풍족하게 먹으며 나라로부터 녹을 받던 권문세족들이 오히려 단 한 톨의 양곡도 세금으로 납부하지 않았다. 가장 가난하고 가장 배고픈 백성들은 조세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도 가진 자들의 악덕 고리대업(환곡)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권문세족들은 많은 것을 가졌으면서도 더 많은 땅과 재산을 얻기 위해 양민들을 가렴주구하였다. 지금 우리의 조세 제도와 경제 시스템은 어떠한가? 온갖 불법과 탈세와 편법 절세로 축적한 부를 자손만대 누리기 위해 오늘도 그들은 납세의 의무를 외면하고 있다. 가진 자로서의 책임과 양심 따위는 아랑곳 없는 그들이 숨겨 놓은 재산(지하경제)만 국가 GDP의 20%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상속세, 증여세, 소득세, 재산세, 종부세 등으로 걷어들여야 할 세금을 지배층이 내지 않고 있으니 돈 없는 서민들만 오늘도 소비세, 부가세, 목적세 명목의 간접세를 열심히 납부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더 갖기 위해 순진무구한 국민들을 부동산과 주식 투기에 끌어들였고 또 목적을 달성하였다. 6억 짜리 집에 살면서도 먹을 것이 없다고 우는 소리를 하며 자신들이 서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의 경험 상, 진짜 가난과 장애로 고통 받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난하고 고통스럽다는 말조차 쉽사리 드러내어 하지 못한다. 가난과 장애는 부끄러운 것이고 무능력한 자들의 것이라고 가르치는 사회이니 말이다. 그런데도 가진 자들은 자신의 작은 이익을 위해 자신을 서민으로 전락시키는 위선을 떨고 진정 고통 받는 사람들을 모욕한다. 또 임진왜란 당시의 토지 제도는 어떠하였는가? 모든 토지는 당시 10%도 되지 않던 권문세족들의 것이었다. 울타리를 치지 못할 정도로 넓은 자기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표식까지 세워야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왜놈들을 몰아낸 것은 백성들이었지만 전란이 끝난 후에도 토지는 여전히 세도가들의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전란으로 황폐화된 땅을 개간하는 몫은 여전히 백성들의 책임이었다. 지금 우리의 토지 제도는 어떠한가? 전 국민의 1%가 전 국토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예전처럼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장을 짓는 것도 아닌데 땅값은 이유 없이 끝없이 치솟기만 했다. 나머지 90%의 국민은 자기 한 몸 편히 누일 땅 몇 평, 집 한 채 마련을 위해 평생을 바치고 늙어간다. 그리고 대다수의 2, 30대 젊은이들에게는 그런 내집 마련의 꿈조차도 백일몽이 되어 버렸다. 국토가 좁고 척박해서 나눌 땅이 없다고 하는데, 몇 사람의 유희를 위한 몇 십 만 평짜리 골프장은 수 백개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왜란이 끝났지만 임금과 지배층은 책임지지 않고 돌아와서 다시 주인 자리에 앉았다. 400년 전은 그렇다 치자. 민주주의도 없고 정치 시스템도 없고 정의니 평등이니 하는 말도 없던 시대이니 그렇다 치자. 이제 400년이 흘렀다. 그 사이 항해술의 혁명, 자본주의 혁명, 민주주의 혁명, 사회주의 혁명, 공산주의 혁명, 신자유주의 혁명, 상업의 혁명, 정보와 인터넷의 혁명이 발생하였다. 이전 4천년보다 몇 배는 더 많은 변화를 이룬 400년이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지금 무엇이 바뀌었는가?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가 있는가? 정말 그렇다고 믿는가? 그런데 왜 나라의 주인이라는 민(民)은 진정 보이지 않고, 아귀다툼과 자기 배불릴 고민만 하는 돼지들의 세상(저주주의, 猪主主義)이 되었는가? 왜 국민을 우습게 알고 지배대상으로 아는 자들이 여전히 주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나라의 경제를 갉아먹고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은 자들이 이제와서 대통령 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며 큰 소리를 치고 있다. 왜 400년 전과 한 치의 다름도 발전도 없는 현재가 되었느냐는 말이다. 역사를 살펴보라. 한 국가의 멸망에는 항상 예외가 없었다. 토지제도(田制), 병역제도(軍役), 조세제도(租役) 이 세 가지가 흔들리면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세 가지의 문란의 근본적인 기저에는 바로 지배층의 타락과 부패, 그리고 피지배층의 분노와 체념이 도사리고 있다.
자 이제 우리 자신, 지금의 대한민국을 돌아보자. 지금 우리는 위기에 처한 것이다. 수출이 잘 안 되어서? 성장이 잘 안 되어서? 주가 지수가 오르지 않아서? 과연 그럴까? 그런 것들은 지금의 위기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지배층의 위기일 뿐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위기는 조세 정의의 미실현, 병역 정의의 불이행, 토지 분배의 미완성에 있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잘 작동되고 있다면 실업의 문제도 양극화의 문제도 우울증의 문제도 이혼의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빼앗고 누린 자에게 또 다시 자기 집을 맡기려고 한다. 임진 왜란 당시 왜군은 명나라에게 철군의 조건으로 조선 영토의 반을 내 놓으라고 했다. 명나라는 일본의 대륙 침략을 막기 위해서는 조선의 분열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조선인의 땅에 긴장이 감돌아야 왜가 대륙을 넘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조선인데 정작 명나라와 왜가 저희들 멋대로 우리를 능멸하였다. 400년이 지났지만 그 때와 달라진 것은 없다. 결국 일본은 36년간 우리를 착취하며 단물을 빨아먹을 수 있었고, 또 중국의 의도대로 우리는 분단 되었다. 오히려 400년 전이 더 좋은 결과였다. 도요토미 막부도 쇠퇴하고 명나라도 멸망하였지만 조선은 지탱하였고 나라가 갈라지는 일도 없었으며 그 후 300년을 더 버텼다.
그런데 사실 그러한 좋은 결과가 오히려 지금 우리의 불행을 낳았다. 지도자들이 앞장서지 않고 정의가 바로 서지 않은 나라가 멸망하지 않고 버티다 보니 지배층, 백성들 할 것 없이 오만과 나태를 갖게 되었다. 운이 좋아 망하지 않은 것을 자신들이 잘 나서 망하지 않았다고 믿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400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조선 사회의 신분제적 한계와 서열 구조, 연고주의, 학벌 주의는 개혁되지 않고 400년을 연명하고야 만 것이다. 임진왜란으로 조선이 망하지 않은 것은 정말로 극히 일부 양심적이고 충정스런 열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성룡과 이순신 같은 충신이 없었다면 지금 조선인들의 절반은 일본어를 쓰고 있을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중국어를 쓰고 있을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충신들을 알아본 일부 백성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조선을 지켜 낼 수 있었다. 이것이 징비록의 교훈임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서애 유성룡은 대부분의 백성들조차 갈팡질팡하며 도망치기 바빴지만, 그래도 충신이 있어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고 했다. 매국노와 친일파와 우매한 백성들은 식민지 조선을 순응하며 살았지만, 안중근과 백범은 식민지 조선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들은 한민족의 정신을 지켜낸 것이고 또 나라를 구한 것이다. 그런데 나라는 이순신과 백범에게 어떤 댓가를 주었는가? 이순신과 백범을 백성들은 지키지 못하고 사악한 탐욕가들의 손에 그들의 운명을 내주었다. 당신은 아직도 이 역사의 진실을 깨닫지 못하는가? 이순신과 백범을 죽인 그들에게 또 다시 이 나라를 맡길 것인가?
내 한 목숨, 내 가족 부지하기도 힘든 세상임은 알고 있다. 당신에게 우국충절의 지사가 되라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나라가 위기와 도탄에 빠졌을 때 나라를 살려낼 지도자와 충신의 싹은 남겨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썩은 지배층이 저희들끼리 다 해먹는 나라지만 그래도 보이지 않는 곳곳에는 이순신, 유성룡, 안중근, 백범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너도 나도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다. 일부 대선 주자들에게서 느껴지는 오만함과 위선과 뻔뻔함과 입신주의에 혐오스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나마 국민들의 손으로 뽑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지도자(지배자)가 아닌가? 다 똑같다는 소리만 하지 말고, 누가 내 뱃속을 챙겨줄 거란 말만 하지 말고,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고 수 천 년을 번영할 대한민국을 만들 지도자가 누구인지 옥석을 가려볼 시간을 조금만이라도 투자하자. 제발 자격 없는 지도자를 뽑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자.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의 소리에 한 번이라도 귀기울이는 당신이 되어보라. 투표는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최선을 뽑는 과정이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 그 다음은 차악에 표를 던지는 것이다. 뽑을 인물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게으르거나 무지하거나, 무책임하다는 말일 뿐이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30%가 결심하고 투표를 한다면 결과는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이 될 수도 있음을 믿으라.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살릴 수 있는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 아주 중차대한 시점이다. 조금만 현명하게 돌아본다면 그래도 누가 이순신, 백범에 가까운지는 쉽게 알 수 있다고 믿는다.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유권자는 되지 말자. 대통령 한 명 뽑는 일이 뭐 그리 중요한가 하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일이다. 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유권자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명확히 할 때, 정치인들은 유권자를 두려워할 것이고 나라를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없더라도 나 한 사람의 대표성을 표출함으로써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함부로 여길 수 없게 하자. 여론조사가 정말 믿을 만한 것인지 아님 조작된 것인지 당신도 한 번 참여해서 입증해 보라. 이 나라의 진정한 민의가 무엇인지 당신은 궁금하지 않은가? 그러니 제발 5분 거리와 시간이 귀찮고 아까워서 당신의 의사를 포기하는 일은 말자. 정치인들이 맘에 들지 않는가? 그래서 비판하고 욕하고 씹었는가? 이제 앞으로 또 그렇게 하고 싶다면 투표를 하라. 열심히 욕한 당신! 이제는 찍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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