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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목마르다

요한복음 최용우............... 조회 수 2271 추천 수 0 2008.12.05 01: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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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9:23-30 
설교자 : 이재철 목사 
참고 : 주일 설교말씀 / 1997년 / 6월 29일 
제목: 내가 목마르다
말씀: 요한복음 19 : 23∼30
설교: 이재철 목사
주일 설교말씀 / 1997년 / 6월 29일

사람이 살아 있다는 진정한 증거는 무엇이겠습니까? 박동 치는 심장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심장이 활기차게 뛰어도 뇌가 움직이지 않으면 소위 `뇌사자', 즉 `죽은자'로 간주되어 장기를 이식하는 것으로 그의 생을 마감케 하는 것이 이미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살아 있음의 참된 증거는 뇌나 심장의 활동여부가 아니라 목마름과 주림을 느끼는 것입니다. 설사 심장과 뇌가 움직이고는 있지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목마름과 주림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의식도 없이 단지 인위적인 주사액에 의해 연명하고 있다면, 그는 살아 있으되 진정한 의미에서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에 목마름과 주림을 느낀다는 것이야말로 살아 움직였음의 결과요, 살아 움직일 것의 대비이기에 그보다 더 좋은 `살아 있음'의 증거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다 같은 목마름과 주림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의 인격과 성숙도 그리고 신앙의 정도에 따라 목마름과 주림의 내용 대상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한 개인이 무엇에 대하여 주리고 목말라 하느냐에 따라 그 개인은 물론이요, 그가 속한 공동체 및 국가의 역사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술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가장이 마침내 알콜 중독자가 되어 가산을 탕진하고 가문을 망치는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가난으로 인해 돈에 대한 목마름과 주림, 이를테면 헝그리(hungry)정신이 불세출의 스포츠 스타를 탄생시키고 신기록을 수립케 합니다.

영국왕 에드워드는 한 여인에 대한 사랑에 주리고 목말라 한 끝에 그 여인을 위하여 영국 왕위를 버렸습니다. 만약 그가 심프슨 부인의 사랑에 대하여 그토록 주리고 목말라 하지 않았던들 오늘날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영국 여왕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그녀의 아들 챨스 황태자와 결혼했다가 파탄에 이른 비련의 세자비 다이애나의 인생도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입니다.

자유와 정의에 대해 주리고 목말라 하던 자들에 의해 프랑스 혁명도, 이 땅의 4 19 혁명도 가능할 수 있었고, 그것은 두나라 역사의 분수령을 이루었습니다. 영적 목마름과 주림으로 인해 몸부림치던 마틴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일어났으며, 그것은 그가 속해 있던 독일의 역사뿐 아니라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무릇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목마름과 주림을 느끼는 자입니다. 이면에서는 누구든지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단지 무엇에 대해 목말라 하고 주리고 있는가―그 내용과 대상에서 차이가 날 뿐입니다.

오늘 본문 28절은 `이후에'란 말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27절과 28절 사이에 시간적 거리가 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에게 당신의 생모 마리아를 부탁하시면서 "네 어머니라" 말씀하신 뒤, 상당한 시간이 경과했을 때란 뜻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28)

십자가 위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목마르다'

이것이야말로 주님께서 구름너머에가 아니라, 하늘 위에가 아니라, 육신을 입으시고 바로 이 땅에 오시어 이 땅위에서 구체적으로 사셨음의 참된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위에서 육신을 가지고 사시지 않았더라면 결코 목마름을 느끼시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설이나 신화의 주인공이 아니라 이 땅위에 실존하셨던 분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주님께서 왜 목말라 하고 계십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물과 피를 다 쏟으셨기 때문입니다. 왜 주님께서 죄인의 형틀인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까? 주님 당신의 죄로 인하여, 당신 자신을 위함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죄로 인하여, 우리를 위하심이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사지로 지었던 온갖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시기 위하여, 주님의 사지가 친히 십자가에 못 박히신 채 지금 목말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이 목마름은 단순한 육체의 목마름이 아닙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원하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목마름인 것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목마름인 것입니다. 인간에게 채워 주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목마름인 것입니다.

인간을 죄에서 구원 하라시는 하나님의 명령, 즉 진리에 대한 목마름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어떻게 주님께 가기만 하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목말라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목말라 하시는 그 십자가 위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원하신 생명을, 영원한 생명의 말씀인 진리를, 변함없는 사랑이신 하나님의 구원을 넘치도록 부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누구든지 주님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십자가 앞에 나아 오기만 하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치고 진리와 사랑과 구원이 용솟음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말라 하지 않으셨던 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내가 목마르다'는 주님의 이 절규야말로 주님의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백미요, 인간을 향한 주님 사랑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무릇 살아 있는 자란 모두 주림과 목마름을 느끼는 자라 했습니다. 이면에서는 누구이든 예외일 수가 없고, 단지 무엇에 대하여 목말라 하고 주려하는가―그 내용과 대상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무엇에 목말라 하고 주려해야 겠습니까? 주님을 본받아 영원한 생명, 영원한 진리, 영원한 사랑과 영원한 구원 ― 한마디로 영원하신 하나님에 대해 목말라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바꾸어 말해 자기 육체만을 위하여, 자기 욕망으로만 인해 목말라 하는 삶에서 탈피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갈증을 느끼는 자만 물을 구하고 얻듯이 자기를 탈피하여 하나님을 목말라 하는 자의 삶 속에만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 넘칠 수 있고, 그 사람이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 자기 자신을 헌신할 줄 아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목마르다"

여기에 목마르다는 동사 dipsao의 또 다른 뜻은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에 대해 목말라 하시므로, 하나님을 갈망하시므로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완성하실 수 있었습니다. 진실로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 목말라 하지 않고, 하나님을 갈망치 아니하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참된 길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 속에 있습니다.

시인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시 42:1∼2a)

시인은 한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우리의 영혼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갈망치 않고서는 결코 바르게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 63:1)

위대한 신앙인 다윗은 우연히 다윗이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를 간절히 갈망하므로써 3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우리 모두의 신앙의 본보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모스선지자는 또 이렇게 증거하였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암 8:11∼13)

아모스는 사람을 정녕 갈하게 하는 것은 세상의 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임을 바르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모스는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암 5:24) 외치는 참 진리의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7)

바울 역시 하나님에 대해 주리고 목마른 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자에게 증거하기 위해 자신의 육체가 주리고 목마른 그 헌신의 길을 그는 조금도 주저치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을 이 아침에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을 향해 세상을 향해 `내가 목마르다' 고백하면서, 그 고백에 상응하는 삶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한국정치외교사학회가 지난달 고교생과 대학생 1,0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들의 한국전쟁 통일 안보 국가현실에 관한 의식조사> 결과가 보도된 바가 있습니다.

가까운 장래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대하여 응답자의 70.7%가 가능성이 높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전쟁이 발발했을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하여는 무려 33.9%가 외국이나 시골로 피난 가겠다고 응답했고, 자발적으로 참전하겠다고 답변한 청소년은 전체의 9.5%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그 보도를 접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카톨릭신자들을 포함하여 우리 국민 중 네 사람 당 한 명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적어도 숫자상으로는 그 조사에 응한 1,074명의 고교생과 대학생들의 25%는 크리스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국에 전쟁이 터졌을 경우에 당연히 참전하겠다는 응답이 최소한 전체의 25%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기독교인 수 25%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겨우 9.5% 였습니다. 그 9.5%가 모두 크리스천이 아닐 것임을 감안한다면 이 땅의 10대와 20대 크리스천들이 얼마나 자기 이기심과 자기 욕망에만 주리고 목말라 하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전쟁이 터졌는데도 도대체 젊은이들의 90.5%가 그 전쟁을 외면한다면 이 땅은 과연 누가 지킨다는 말입니까?

만약 똑같은 조사를 대학생 이상 되는 국민들에게 실시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습니까? 30세 이상 되는 이 땅의 크리스천들은 모두 내 몸을 던져 나라를 지키겠다고 응답하겠습니까? 아니 지금 이 자리에서 실시한다면 100% 다 `그렇다'는 응답이 나오겠습니까?

분명히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10대 20대란 기성세대의 축소판일 뿐입니다. 그들의 대부분이 자기 이기심과 욕망에만 목말라 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나라의 30세 이상인 우리 모두가 그와 같은 삶을 추구하고 있음의 증거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주위를 한번 둘러보십시다. 국민들은 틈만 나면 정부와 정치가들을 욕합니다. 그렇다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들은 다 제대로 하고 있습니까?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택시를 타 보아도, 지하철을 타 보아도, 식당에서 밥을 시켜 먹어 보아도, 가게에서 물건을 사 보아도, 거리를 걸어 보아도, 상인들과 거래를 해 보아도, 기업체을 들여다 보아도, 학교를 보아도 정말 정직하고 바른 양심으로 진리를 따라 헌신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아니한 것이 이 땅의 숨길 수 없는 실상입니다.

이 땅의 크리스천들이 모두 참된 크리스천이라면 만나는 네 사람마다 한 사람씩은 그런 헌신자이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우리를 비롯하여 이 땅의 크리스천 역시 하나님을 갈망하기보다는 자기를 더욱 갈망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 최승호씨가 쓴 `황금털 사자'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평생토록 자기만을 위하여 살아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간의 이해득실로 얽힌 세상에서 손해보다는 이익을, 실보다는 득만을 취하면서 살다보니 노년이 되었을 때 주위에 남은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습니다. 쓸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이라고는 사과 궤짝에 쌓아 놓은 돈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죽음이 찾아 왔습니다. 사람에게 헌신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마지막 기회마저 자기를 위해 쓰고 말았습니다. 가지고 있던 돈을 몽땅 털어 순금으로 만든 관을 구입하여 그 속에서 죽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금관 속에서 죽은 뒤 금관에 누운 채로 매장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날밤, 그의 시체는 금관을 탐낸 무리들에 의해 무덤밖에 내팽개쳐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굶주린 들쥐에게는 기회였습니다. 들쥐들은 배가 터지도록 시체의 배를 터뜨리며 내장까지 남김없이 뜯어먹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진리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우리가 우리 자신만을 갈망하다가 우리의 인생을 이렇게 끝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니 우리의 사회를 그 지경으로 몰아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나 자신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들이 되십시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되십시다. 그 분의 진리와 생명에 갈한 자들이 되십시다. 우리는 모두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내가 목마르다' 절규하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임을 잊지 마십시다. 그 분을 본받아 한평생 헌신자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십시다. 그때에만 우리의 인생도, 우리의 가정도, 우리의 사회도 바로 세워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가 있는 곳에만 하나님의 구원역사, 생명의 역사가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기도 드리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한평생 자기만을 갈망하며 사느라 마지막 기회마저 다 상실한 채, 죽은 뒤에 내 팽개침을 당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처럼 오직 하나님 아버지를 갈망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에 기갈을 느끼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에, 사랑에, 은총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내가 목마르다' 절규하신 주님을 본받아 사는 참된 제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와 같이 헌신된 우리의 삶을 통하여 우리의 인생이,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일터가, 우리의 사회가 바로 세워지는 역사가 오늘 아침 이곳에서부터 시작되게 하옵소서. 우리자신들이 하나님만을 목말라 하고 갈망하므로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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