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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 죄든지

요한복음 최용우............... 조회 수 1490 추천 수 0 2009.02.27 10: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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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20:19-23 
설교자 : 이재철 목사 
참고 : 주님의교회 

한국 연극계의 원로인 장민호 선생의 연기 인생 50주년을 기념하는 연극 `파우스트(FAUST)'가 지금 국립극장에서 공연 중에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국립극장 홍보실에서 제작한 팜플렛을 보면, 특별히 눈길을 끄는 내용이 나옵니다.

―몇년 전 모 일간지 기자의 인터뷰 중 다음과 같은 대목이 인상적이다.

"연극배우 장민호에게 그가 우리나라 연극·방송·무대의 원로 중 한사람임을 염두에 두고, 교육기관에서 연기 이론을 강의한 경험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딱 잘라서 `없다'고 대답했다. 분장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대중 앞에 서 본적이 없으며, 또 그런 의도도 가져 본 적이 없었노라고 했다. 그래서 50년이나 배우 생활을 하면서도 TV쇼는 물론, 대담 프로그램과 같은 교양물에도 일체 출연해 본적이 없다고 한다. 프로페셔날리즘을 철저하게 추구하고자 하는 집념이자 무대관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장민호 선생님이 한국 연극의 정신적 지주로 대접받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분장을 하지 않고서는, 다시 말해 무대 위 배우로서가 아니고서는 결코 대중 앞에 서려 하지 않았던 투철한 프로 의식의 소산이었습니다. 그 프로 의식이 그 분으로 하여금 프로 연극인이 되게 해 주었고, 그 결과로서 그 분은 오늘날 한국 연극계의 상징적인 원로가 된 것입니다.

2주전에 뉴질랜드 오클랜드 주님의 교회를 다녀왔습니다. 창립된 지 겨우 2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장년 180명, 학생 120명, 총 300명이 출석하는 견실한 교회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동규 목사님은 오클랜드에 있는 많은 목사님 중 가장 인품이 높은 목사님으로 존경받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사실을 확인하면서 이동규 목사님과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으로써, 이 목사님에 대해 얼마나 큰 긍지를 느꼈는지 모릅니다.

하루는 그 곳 교우님들 사이에서 골프가 화제에 올랐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골프란 경비가 많이 드는 운동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국토가 초원인 뉴질랜드에서는 골프가 볼링보다 더 싼 대중 스포츠입니다. 그래서 뉴질랜드에서 골프를 친다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삶의 한 부분이요, 조금도 이상하거나 특출한 일이 아니기에 실제로 상당수의 그 곳 목회자들 역시 골프를 즐기고 있습니다. 서로 골프 이야기를 나누던 한 교우님이 이동규 목사님에게 `목사님도 건강을 생각하셔서 골프를 시작하십시오'하고 권했습니다. 뉴질랜드로 간지 2년이 되기까지 이 목사님은 골프채에 손도 한 번 대어 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 목사님은 잠시 머뭇거리다 `생각해 보지요'하고 대답했습니다. 그 날 저녁 단 둘이 있게 되었을 때 혹 앞으로 다른 목사님처럼 골프 칠 의사가 있느냐고 묻자 이 목사님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회를 쉬거나 하지 않으면 모르지만 목회를 하는 동안만큼은 정말 프로 목회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주위에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권해도, 아무리 많은 목회자들이 골프를 쳐도 목사님만은 지금처럼 골프에 손을 대지 마십시오."

제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한가지였습니다. 골프란 운동은 다른 운동처럼 30분이나 1시간 내에 끝낼 수 있는 운동이 아닙니다. 최소한 4시간, 경우에 따라서는 하루종일이 소요되는 운동입니다. 그 긴 시간 자체도 문제지만, 그처럼 긴 시간이 소요되기에 끝난 뒤에도 반드시 잔영이 길게 남는 법입니다. 그 잔영을 갖고 그날 저녁 성경을 본다 한들 무슨 영성의 샘물을 퍼 올릴 수 있겠습니까? 눈앞에서 푸른 잔디밭의 골프 공이 왔다 갔다 하는데 어찌 영적인 설교를 준비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골프가 모든 현대인들에게 유익한 운동이라 할지라도 프로가 되고자 하는 현직 목회자에게만은 금물 일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전문가의 시대입니다. 프로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어떤 분야에서건 프로만이 살아 남을 수 있고 그 분야를 이끌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그저 프로가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투철한 프로 의식이 있어야 하고, 그 의식을 행동화 할 수 있는 실천력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신앙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된 신앙인이 되려면 프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어설픈 신앙으로서는 안됩니다. 어설픈 신앙으로서는 이 세상의 혼란과 어둠을 가증시킬 뿐입니다. 프로 신앙인 만이 무너져 내리는 이 세상을 바로 세우는 한 알의 밀알이 될 수 있고, 썩어져 가는 이 세상을 살리는 소금이 될 수 있고, 이 세상을 삼키려는 흑암을 몰아내는 빛일 수 있고, 하시라도 하나님 앞에 부끄럼없이 설 수 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그리스도인, 프로 그리스도인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성령 충만한 자, 즉 지난주일 살펴본 바와 같이 영원하신 주님의 숨결, 주님의 생명 속에서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숨결 속에서 살아가는 성령 충만한 프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지녀야 할 프로 의식은 대체 무엇이겠습니까?

공포에 질린 채 마가의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을 찾아오신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성령 곧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냥 그곳을 떠나 버리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성령을 불어 주시면서 한마디 당부의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바로 그 말씀이야말로 성령 충만한 참된 그리스도인, 주님을 따르는 프로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할 프로 의식인 것입니다. 그 내용을 본문 23절이 이렇게 밝혀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그대로 둔다'는 동사 krateo는 `붙잡고 있다' `쥐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누구의 어떤 죄이든지 사하면 그가 용서함을 받을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내 손에 쥐어 잡고 그의 죄인 됨을 즐기기만 한다면 그는 결코 용서받지 못하는 죄인이 된다는 것―이것이 프로 그리스도인들이 품어야 할 프로 의식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씀을 주님께서 죄사함의 권세 자체를 우리에게 위임해 주신 것으로 오인해서는 안됩니다. 죄사함의 권세는 오직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의 전유물입니다. 성부·성자·성령 하나님만 인간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말씀은 우리의 호불호(好不好)에 따라 죄사함을 임의로 선포하라는 뜻이 아니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여 우리의 구원자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함을 얻게 해 주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알지 못한 채 죄의 수렁 속에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내가 그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면 그들이 주님으로부터 죄사함의 구원을 받을 것이요, 내가 그들을 방치하고 그들의 죄지음을 즐기기만 한다면 그들은 영락없이 심판 받고 말 것이라는 것, 다시 말해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안에서 죄사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느냐 아니냐는 전적으로 나의 책임임을 통감하는 것―바로 이것이 프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프로 의식입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죄 가운데서 죽어 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종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란 그처럼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생명의 도구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죄 가운데서 죽어 가는 그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이 프로 의식 없이는 어찌 참된 그리스도인, 사람을 살리는 프로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 있겠습니까? 왜 주님께서 다른 불신자들보다 전혀 나을 것 없는, 아니 오히려 그들보다 더 못한 우리를 먼저 구원하시고 불러 주셨습니까? 사람을 살리는 당신의 도구로 쓰시기 위함입니다. 왜 주님께서 오늘도 말할 수 없이 크나큰 당신의 은총으로 우리를 품어 주고 계십니까? 이 세상 사람을 구원하는 생명의 통로로 사용하시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명분이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품어야 할 프로 의식입니다. 그러므로 한평생 교회를 다녔다 할지라도 아직까지 단 한사람을 위해서도 참 생명의 도구가 되어 본적이 없다면, 그는 아직까지 프로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 막 주님을 영접한 초신자라 할지라도 죄 가운데 있는 자들에 대하여 책임을 통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이미 프로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시편 23편은 다윗이 지은 시로써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그 노래를 읊으면 우리의 심령은 금새 평강과 소망으로 가득차 오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1~4)

아무리 읊어도 지루하기는커녕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온몸으로 절감케 해주는 영혼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이 이후 이렇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5)

주님께서 내게 큰 잔치상을 배설하시고 내 머리에 향기로운 기름을 부어 주시매 내 잔이 넘치는 그 은혜와 사랑과 풍요로움을 주님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행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내가 그처럼 존귀케 되었으니 얼마나 통쾌합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 구절을 읊조릴 때마다 나를 괴롭히는 원수의 코가 머지않아 주님 앞에서 납작해지는 모습을 그리면서 주님을 찬양하곤 합니다.

그런데 지난달 세례를 받은 한 성도님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신앙고백에서 바로 이 구절을 인용한 뒤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큰상을 차려 주시고 풍요로움이 넘치도록 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자리에 나의 원수들도 함께 하도록 하셨습니다. 내가 어찌 그 원수들 앞에서 나혼자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저의 갈 길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차려 주신 그 큰 상 주위에 원수와 더불어 모두 모여 함께 나누고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잔치상을 배설하신 것은 내 앞에서 원수의 기를 꺾으시고 원수의 코를 납작하게 하려 하심이 아니라, 나로 하여금 원수와 더불어 잔치상을 나누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성도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할 수 없이 큰 사랑과 생명의 은총을 베푸심은, 바로 자신이 원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에게 마저 그 생명과 사랑을 전하는 생명의 도구로 자신을 사용하시기 위함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심오한, 그리고 명확한 깨달음입니까? 이런 분명한 의식을 갖고 있는 한, 원수의 구원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있는 한, 그 성도님이 비록 지난달 세례를 받은 초신자라 할지라도 그는 프로 그리스도인임에 틀림없습니다.

작년 9월 우리 교회에 오셔서 은혜로운 간증을 해 주셨던 서울 구치소 경비교도대 대대장이신 박효진 장로님께서 그 동안 자신을 통해 구치소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를 증언하는 책을 발간하였는데, 그 분은 자신의 책에 <하나님이 고치지 못할 사람은 없다>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아무리 흉악한 사형수라 할지라도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그를 인도하기만 하면,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고치시고 살리시더라는 뜻에서입니다. 그 분은 사형수를 사형수로 보지 않습니다. 그 분은 구치소로 들어오는 사형수들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겨 주신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로 여깁니다. 그래서 그들이 비록 세상의 법정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죄인이 되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죄사함 얻게 하는 구원을 받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먼저 믿은 자신의 책임임을 통감하면서, 사형수들과 함께 부둥켜안고 울며 찬송하며 기도하면서 끝내 그들을 그리스도안에서 구원받게 만드는 그분이야말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프로 그리스도인의 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 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 하여 결박과 환란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2∼24)

그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서라면 환란이나 핍박은 말할 것도 없고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먼저 구원하시고 사랑하시는 까닭이 그 사명을 수행케 하시기 위하심인 것을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는 진정한 프로 그리스도인이었던 것입니다. 프로 그리스도인인 그를 통하여 세계의 역사가 새로워진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추락하던 한국 경제는 마침내 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온 나라에는 위기감이 팽배해 져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인 것은 경제가 아닙니다. 경제란 산등성이 있으면 반드시 골이 있는 법이요, 골에 닿으면 반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인류 역사상 어느 나라의 경제이건 변함없이 상승하기만 한 나라는 단 한 나라도 없습니다. 정작 위기인 것은 아직도 이 나라에 불의와 부패, 부정과 거짓, 야합과 술수, 타락과 방종이 판을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많은 사람들이 생명과 진리의 길을 벗어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죄악과 죽음의 길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큰 위기는 그들을 진리와 생명의 길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음에도 그리스도인들은 그 책임을 깨닫지 조차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책임을 맡겨 주시기 위해 우리를 먼저 구원해 주셨건만 우리는 나만을 위하는 이기적· 기복적 신앙 속에 안주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보다 더 무서운 위기는 없습니다. 한 나라의 경제는 등락을 거듭할 수 있지만 이 땅에서의 인간의 생이란 단 한 번뿐이요, 그 한 번의 삶으로 영원한 판결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실을 통감하여 이 시기를 이 민족에게 의와 진리와 생명을 삶으로 전하고 보여주고 일깨워 주는 기회로 삼는다면 작금의 경제 난은 위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임이 분명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시대의 경제는 정부와 정치인 그리고 경제인과 국민 모두의 책임이라 할지라도, 이 시대의 생명은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의 책임임을 잊지 마십시다. 우리 모두 이 민족을 의와 진리와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프로 그리스도인들이 되십시다. 우리가 프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한 이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반석 위에 세워질 것입니다. 이 다음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께서는 네가 얼마나 경제를 살렸느냐고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 대신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네가 죄사함을 얻게 하는 복음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렸느냐?'

기도 드리시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심은 원수에게마저도 사랑과 생명을 전하게 하시기 위함임을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이 나라의 위기는 경제가 아니라, 불의와 거짓이 팽배한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책임을 느끼지도 못하는 우리 자신들임을 일깨워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 프로 그리스도인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진리 앞으로 인도해 내는 프로 신자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를 먼저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에 보답해 드리는 프로 신앙인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모두가 프로 그리스도인들이 되므로 오늘의 경제난이 이 나라가 새롭게 소생하는 하나님의 은총의 기회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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