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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준 예수와 그의 교회

고린도전 김상근 목사............... 조회 수 2029 추천 수 0 2007.12.06 21: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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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전11:23-26 
설교자 : 김상근 목사 
참고 : 새길교회 

오늘은 도대체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물론 조직신학적인 설명을 시도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통상적으로 교회의 뿌리를 구약성서 속에서 찾기도 하고, 신약성서의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나 성령 강림사건 후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에서 찾기도 합니다. 그것이 오늘 교회의 시원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나에게는 다른 관찰이 있습니다. 예수의 성만찬이 교회의 시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처음 유대-그리스도인들은 모일 때마다 성만찬을 거행했습니다. 우리 개신교는 횟수도 줄이고 의식 자체도 간소화하여 버렸지만, 처음 그리스도인들은 대단히 중요하게 그 일을 반복했습니다. 예수께서 과연 지금과 같은 교회를 세우려 하셨느냐 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처음 교회가 이 성만찬을 통하여 형성되었던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저녁식사를 하셨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최후의 만찬이라 부릅니다. 이 때의 정경을 한번 상상해 봅시다. 제자들도 어떤 위기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을 때였습니다. 식사를 하다가 스승은 갑자기 먹기를 멈춥니다. 빵을 들어 축사를 하시더니, 떼어 나누어주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니 받아먹어라 하십니다. 또 잔을 들어 감사하신 다음, 돌려 마시게 하시며, 이것은 내 피라 하십니다.

아마 제자들은 크게 당황했을 것입니다.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물론 당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이와 같은 예식이 흔히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제자들은 크게 당황했을 것입니다. 식사하던 다락방은 침통하면서도 진지한 분위기로 가득 차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날 밤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쓰고 있습니다. 바울은 물론 거기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치 자기가 거기 있었던 것처럼 확실하고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빵을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니 받아먹어라.
잔을 돌리면서 이것은 내 피니 받아 마셔라.
이것을 먹고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라.

우리는 주님께서 자신을 주셨다는 것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내 죄를 씻어 주는 신비한 세척수 정도로 밑밑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예정에 따라 피를 흘리셨고, 그것이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낸다는 정도의 이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에게는 별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예수와 대면해 있던 제자들에게 부딪쳐 온 것이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 도식적인 의미로 받았을 리가 없습니다.

몸과 피를 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자기 자신을 온전히 몽땅 주는 것입니다. 단지 물질인 몸과 피가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 자신입니다. 자기를 통째로 주는 것입니다. 자기의 인격, 자기의 혼, 자기의 뜻, 자신의 모든 것을 그대로 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보면 어떤 설명이 가능하겠습니까? 이제 내일이면 체포당하여 사형을 면치 못할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세상에 있어야 한다, 있어야 하나 있게 되지 못하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나를 제자들에게 그대로 주어 제자들을 통해서 세상 가운데 現在할 수 있지 않을까?­이런 생각을 하셨던 것입니다. 나를 받아 너희가 곧 내가 되라고 .... 바로 이런 뜻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은성의 "동의보감"에서, 나는 주님과 우리, 주님과 교회의 올바른 관계에 대한 모델을 봅니다. 유의태­그는 허준의 스승입니다. 그가 못 낫게 하는 병은 천하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반위(위암)만은 정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의 배를 갈라 보면 어느 정도 치료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시의 법과 조건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반위로 죽어 가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그는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유의태는 자기 자신이 반위에 걸린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병을 치료하는 대신 그 발전 과정과 증상을 관찰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반위로부터 제중(濟衆)을 하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관찰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무도 반위에 걸린 위를 본적이 없는데, 어떻게 정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그는 자기 몸을 내 놓기로 결단합니다. 때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삼복이었습니다. 그는 기어코, 복중에도 얼음이 꽁꽁 얼어 있는 계곡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일을 결행키로 작심하고, 스스로 해부 도구를 챙겨서 거기 먼저 들어갑니다. 그리고 제자 허준을 부릅니다. 허준은 가까스로 스승이 오라 하신 계곡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스승 유의태가 방금 동맥을 끊고 자결한 채 반듯이 누워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동맥이 끊긴 손목은 물이 담긴 대야에 떨구어져 있었습니다. 피가 많이 쏟아지지 않게 하겠다는 배려였으며, 허준이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얼른 자결한 것이었습니다. 숨을 거둔 지 오래된 주검은 큰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살아 있는 위를 보게 해주고 싶었고, 아직 굳지 않은 인간의 몸 속을 들여다보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야 거기서 의술을 찾아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머리맡에 서찰 한 장이 놓여 있었습니다. 바로 그 서찰의 한 부분을 읽겠습니다.

60평생을 살다 가는 나 같은 자에게야 더 이상 무슨 여한이 있을까마는, 강보에 쌓인 어린아이로부터 이 세상에 유용한 젊은이, 평생 타인을 위해 덕을 쌓은 귀한 인물, 평생 호강을 모르고 고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측은한 인생까지 마구 죽음에 이르게 하는 만병의 정체를 캐고 밝혀서, 남을 해치고 악업을 일삼는 자가 아니거든, 그들로 하여금 천수가 다 하는 날까지 무병하게 오래 오래 생명을 지켜줄 방법은 없을까 하고, 이는 의원이 된 자의 본분이요, 열 번 고쳐 태어나도 다시 의원이 되고자 하는 자에게는 너무도 간절한 소망이 아닐 수 없다. 허나, 나 또한 내 몸 속에 불치의 병을 지니게 되었으니, 병과 죽음의 정체를 캐낼 여력이 이미 없다. 이에 내 생전의 소망을 너에게 의탁하여 나의 문도 허준이가, 세상의 어떤 병고도 마침내 구원할 만병통치의 의원이 되기를 빌며, 병든 몸이나마 너, 허준에게 주노라. 이에 너 허준은 명심하라. 염천 속에서 내 몸이 썩기 전에 지금 곧 내 몸을 가르고 살을 찢어 사람의 오장과 육부의 생김새와 그 기능을 똑똑히 보고 확인하고 ...살피어, 그로써 너 정진의 계기로 삼기를 바라노라.

여기 유의태에게서 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계시 받게 됩니다. 유의태가 자기의 몸을 준 것은 자기의 뜻과 의지와 기와 혼­ 온전한 자신을 제자 허준에게 준 것입니다. 자기는 더 이상 세상에 있을 수 없으나, 허준을 통하여 세상 속에 現在하고자 한 것입니다.
유의태보다 더 큰 자기를, 예수는 우리에게 주신 것이고, 그것을 잡히시기 전날 밤 그가 행한 의식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허준은 집도하여 스승을 산산이 해부합니다. 거기서 허준은 비로소 인간을 보고 인간을 만납니다. 허준은 이로써 감히 유의태가 된 것입니다. 해부를 마친 후 그는 이렇게 맹세합니다.

"천지신명과 스승님은 제 맹세를 들어 주소서. 만일 이 허준이, 베풀어주신 스승님의 은혜를 잠시라도 배반하거든, 저를 벌하소서. 또 이 허준이 의원이 되는 길을 괴로워하거나, 병든 이들을 구하는 데 게을리 하거나, 약과 침을 빙자하여 돈이나 명예를 탐하거든, 저를 벌-하-소-서. 이 고-마-움, 맹-세-코, 영원히 잊지 안-으-오-리-다."
나는 허준에게서 교회의 자리, 우리 성직자의 자리를 계시 받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몸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분의 뜻이 무엇인가를 허준처럼 옹골지게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직자의 길도 허준의 의술의 길만큼 진지해야 합니다. 허준의 성실함에 미쳐야 합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예수의 現在입니다. 예수는 자기를 그대로 여기 있게 하고자 했습니다. 그 뜻을 제자들이 이어받게 하고자 했습니다. 제자들, 초대교인들은 성만찬을 나누면서, 우리가 누구인가를 다시, 또 다시 생각했습니다. 예수로 現在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거듭거듭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만찬을 반복하고 반복했던 것입니다.
이제, 허준의 신앙고백을 우리의 말로 바꾸어 봅시다.

하나님, 우리의 맹세를 들어주소서. 만일 우리 교회가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잠시라고 배반하거든, 우리를 벌하소서. 또 우리가 교회가 되는 길을,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길을 괴로워하거나, 정의를 세우고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게을리 하거나, 기도와 봉사를 빙자하여 돈이나 명예를 탐하거든, 우-리-를 벌-하-소-서. 이 고-마-움, 맹-세-코, 영원히, 잊지 안-으-오-리-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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