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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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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롭지 못한 행위인지요
답변
기도란 원래가 성령의 인도하심따라서 하나님께서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시는 기도의 제목을 성도들의 개인적인 언어로써 하나님께 아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이와 같이 성령은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롬8:26-27)"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대로 기도의 원동력은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찬송하는대로 "내 진정 소원"은 인간의 육신의 정욕이나 탐욕에서 우러나는 인간적인 소원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기도드리는 그 기도의 내용이 실은 우리의 진정한 소원인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 뜻에 맞추어 기도하도록 우리의 영에게 신호를 보내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심령이 둔하고 혼미해서 성령님이 일깨워주시는 신호를 미쳐 알아 차리지 못하고 육신의 소욕대로 인간적인 기도를 드리곤 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가 우리를 위한 성령님의 기도에 일치하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때에 우리는 흔히들 "기도의 문이 열렸다" "기도의 줄이 잡혔다"고 표현을 합니다. 실은 이와같은 우리의 기도가 우리를 위한 성령님의 기도 즉 하나님의 뜻에 일치할때야 비로소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고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바람직한 기도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서 드리는 영적인 기도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문제는 공예배시에 회중을 대표하여 드리는 기도자가 기도문을 작성하여 읽어나가는 기도를 과연 영적인 기도로 인정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① 성경과 ② 교회의 전통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성경에 나타난 기도
성경에는 여러 가지 유형의 기도가 나타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는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기도 드리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청하는 기도를 드리기도 하고 (출5:22-23, 32:11-13)
아브라함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기 위해 끈질기게 매어 달리기도 하며 (창28:20-22).
이렇게 볼 때 믿음의 조상들은 매우 개인적이고 친밀하며 신령한 기도를 드리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시편을 보면 예배시에 공적으로 낭독하기 위한 "전례적인 기도"가 많이 나타나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 시9편, 17편, 86편, 90편, 102편, 142편 등등...)
이러한 시편들은 공예배시에 드리던 회중을 위한 기도문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이와같이 성경에는 개인적인 기도도 기록되어 있으나 공적인 기도문도 수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2) 교회의 전통
교회의 역사를 보면 교회는 성도들의 개인적인 기도를 가르치고 장려하는 한편 모인 교인들이 경우에 따라 기도드릴 수 있도록 "공적인 기도문" 출판 보급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로마 천주교는 물론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에도 그 전통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로마 천주교와 개신교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성공회"의 경우를 보면 "공도문"이란 책자가 별도로 나와 있어서 "아침에 드리는 기도" "저녁에 드리는 기도"는 물론이요 감사기도, 자녀를 위한기도, 여행자를 위한 기도 새해에도 은혜를 구하는 기도 등등 경우에 따른 기도문이 수록되어 있어서 필요에 따라 필요한 기도문을 낭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교단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어서 교단에서 발행한 "예식서"를 보면 성례식이나 임직식, 결혼식 등등 각종 예식을 위한 기도예문이 수록되어 있어서 그 기도문을 그대로 읽거나 참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같이 성경과 교회의 전통속에 개인 기도와 함께 공예배를 위한 기도문이 있는 것을 볼 때 오늘의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는 원래가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드리는 개인적이며 영적인 기도이어야 합니다. 예배시에 기도를 담당한 모든 사람은 모름지기 이러한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전에 미리 기도하면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기도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 나가는 기도도 훌륭한 기도입니다. 오히려 당황해서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보다는 짜임새있게 준비된
기도문을 낭독하는 것이 더욱더 은혜로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처음으로 공중 기도를 맡은 사람에게 기도문을 작성하여 기도하도록 권장하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더한 기도를 드리느냐 하는 것은 기도 드리는 각자의 신앙과 취향의 자세에 따라 어떠한 형식이든지 임의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답변
기도란 원래가 성령의 인도하심따라서 하나님께서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시는 기도의 제목을 성도들의 개인적인 언어로써 하나님께 아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이와 같이 성령은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롬8:26-27)"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대로 기도의 원동력은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찬송하는대로 "내 진정 소원"은 인간의 육신의 정욕이나 탐욕에서 우러나는 인간적인 소원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기도드리는 그 기도의 내용이 실은 우리의 진정한 소원인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 뜻에 맞추어 기도하도록 우리의 영에게 신호를 보내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심령이 둔하고 혼미해서 성령님이 일깨워주시는 신호를 미쳐 알아 차리지 못하고 육신의 소욕대로 인간적인 기도를 드리곤 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가 우리를 위한 성령님의 기도에 일치하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때에 우리는 흔히들 "기도의 문이 열렸다" "기도의 줄이 잡혔다"고 표현을 합니다. 실은 이와같은 우리의 기도가 우리를 위한 성령님의 기도 즉 하나님의 뜻에 일치할때야 비로소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고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바람직한 기도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서 드리는 영적인 기도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문제는 공예배시에 회중을 대표하여 드리는 기도자가 기도문을 작성하여 읽어나가는 기도를 과연 영적인 기도로 인정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① 성경과 ② 교회의 전통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성경에 나타난 기도
성경에는 여러 가지 유형의 기도가 나타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는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기도 드리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청하는 기도를 드리기도 하고 (출5:22-23, 32:11-13)
아브라함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기 위해 끈질기게 매어 달리기도 하며 (창28:20-22).
이렇게 볼 때 믿음의 조상들은 매우 개인적이고 친밀하며 신령한 기도를 드리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시편을 보면 예배시에 공적으로 낭독하기 위한 "전례적인 기도"가 많이 나타나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 시9편, 17편, 86편, 90편, 102편, 142편 등등...)
이러한 시편들은 공예배시에 드리던 회중을 위한 기도문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이와같이 성경에는 개인적인 기도도 기록되어 있으나 공적인 기도문도 수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2) 교회의 전통
교회의 역사를 보면 교회는 성도들의 개인적인 기도를 가르치고 장려하는 한편 모인 교인들이 경우에 따라 기도드릴 수 있도록 "공적인 기도문" 출판 보급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로마 천주교는 물론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에도 그 전통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로마 천주교와 개신교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성공회"의 경우를 보면 "공도문"이란 책자가 별도로 나와 있어서 "아침에 드리는 기도" "저녁에 드리는 기도"는 물론이요 감사기도, 자녀를 위한기도, 여행자를 위한 기도 새해에도 은혜를 구하는 기도 등등 경우에 따른 기도문이 수록되어 있어서 필요에 따라 필요한 기도문을 낭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교단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어서 교단에서 발행한 "예식서"를 보면 성례식이나 임직식, 결혼식 등등 각종 예식을 위한 기도예문이 수록되어 있어서 그 기도문을 그대로 읽거나 참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같이 성경과 교회의 전통속에 개인 기도와 함께 공예배를 위한 기도문이 있는 것을 볼 때 오늘의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는 원래가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드리는 개인적이며 영적인 기도이어야 합니다. 예배시에 기도를 담당한 모든 사람은 모름지기 이러한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전에 미리 기도하면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기도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 나가는 기도도 훌륭한 기도입니다. 오히려 당황해서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보다는 짜임새있게 준비된
기도문을 낭독하는 것이 더욱더 은혜로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처음으로 공중 기도를 맡은 사람에게 기도문을 작성하여 기도하도록 권장하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더한 기도를 드리느냐 하는 것은 기도 드리는 각자의 신앙과 취향의 자세에 따라 어떠한 형식이든지 임의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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