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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갈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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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강종수 목사 |
참고 : | 사이버신학교 http://cafe.daum.net/st888 |
본문의 초두에 보면 비시디아의 안디옥이라는 곳에서 게바로 기록된 그 베드로와 바나바의 복음적이지 못한 행위를 책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11-15).
처음에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주의적 의로움의 의식주의와 할례백성으로서의 유대 우월주의를 벗어나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의 은총을 믿는 순수 복음적 신앙으로 살다가(행10:28-29,11:1-18)신앙심이 약해졌든지 이방인과 음식을 같이 먹고 있다가 유대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기독신자들이 오니까 본래 이방인과의 동석하지 않는다는 의식이 살아나서 그사람들을 두려워하기까지 하면서 그 식사자리를 떴습니다.이 모순된 베드로의 행동을 면책을 했습니다.그리고 이어 다시 확신시키고자 하는 복음의 핵심을 전합니다.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이 복음사상을 가진 기독교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갈 때 여러 가지 유형의 삶의 현실에 어떻게 대처하면서 살아가야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태도가 되겠습니까?
우리는 오늘 본문 갈라디아서 2장 20절 한 절에서 주는 메시지를 통해 정상
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상고하려 합니다.1. 성경에 근거하여 인식을 시도합니다
역사와 사물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에 따른 행동이 달라집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산다는 것은 먼저 사고방식이 성경 진리에 기초하여 세상을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시대의 가치관 따라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성경 위에 놓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구원 얻은 성도는 무엇이든 성경에 근거하여 사유를 시작을 하고 평가를 합니다. 바울은 유대 율법주의자로 학문을 겸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 세상의 학문, 세상의 철학, 세상의 가치관에 대하여한 마디로 일축했습니다.
골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이것은 교만이 아니라 절대적 진리 앞에 인간의 지식과 가치관의 한계를 비교하는 말이며 예수 이전의 세상철학이 얼마나 연약한가를 단적으로 평가하는 말입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처세는 먼저 인식의 시작을 성경대로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성경대로 평가하고 환난이 오거나 세상의 풍조가 어떠해도 성경대로 나아갑니다.
그리스도인 자신의 변화를 스스로 자각한다면 큰 축복인줄 아시기 바랍니다.골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들이 다 지나갔다는 것은 모든 세상의 이해가 전혀 새롭게 변했다는말입니다.그 변화를 얻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 고집과 인식의모든 세상 것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 나의 주관적 인식을 가감하지 않아야 합니다.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못 박았느니라』참다운 지식과 인식의 새로운 변화는,세상의 종교와 교육으로, 혹은 여행이나 세상의 그 어떠한 큰 경험으로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의 도 안에서 나의 모든 것이 죽어야 합니다.고후10: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십자가 예수만 알고, 예수만 말하고, 예수만 즐거워하는 것이 궁상맞거나 종교적이거나 미련한 것이 아닙니다. 알고 보면 세상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바른 삶을획득하는 길입니다.2. 본성적 감정을 제어하고 성령의 인도를 원합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정서는 예수님이 죽으신 현장을 마음에 간직하면서십자가 죽음을 통한 속죄의 감동과 거룩하신 주의 희생을 바라보는 경건의태도를 지니는 것이 바른 정신입니다.
단순히 종교적 지식만 가지고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해낼 수 없습니다. 베드로를 위시해 모든 사도들이 3년 간 주님의 인도를 받으며 여러가지 경험을 했지만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후에야 비로소 사도의삶을 제대로 살아간 모습을 사도행전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것도 지성적으로 아는 것은 편협될 수 있습니다.가령,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아는 것이니이다』는 말씀만 보면 지식 자체로 영생이 가능한 듯 하지만 성령으로 중생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보게되면 아는 것만으로 구원의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래서 아는 것과 믿는 것을 통일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 』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 특히 종교지도자였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지식만 옳았지 행위도 없고 중심은 악했다고 했습니다. 그런 경우가 지금 교회사회에도 일어나는 것이 인간사회의 실상입니다.아무리 올바른 교리와전통이 있다해도 내 삶의 현장에 쉽게 실현될 수는 없고 노력이 필요한데 성령님의 감화와 인도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 죄에서 구원 얻는다는 것도 성령님의 역사없이는 개인의 체험이 안 되는법입니다.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그리스도인의 감정이란 사실상 성령의 감정이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고 순종하고 신앙 훈련을 계속 받으면서 본성의 자아와 싸우며 새로운 삶의 성경적 사상자로 변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참된 기독교 성도가 되려면 교회만 다니는 것으로 부족합니다. 정상적인 성도의 삶이 되려면 인격적으로 성령 안에서 예수님이 실제적으로 나의 인격을 주장하시는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고후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바울은 삶의 주체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 자아 대신 예수 그리스도라 했습니다.
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했습니다.베드로와 요한이 전도를 나설 때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에게 말했습니다.
행 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내게 있는 것, 내 속에 계신 주님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로 충만했습니다.* 초대 한국교회의 전도왕이라 할 수 있는 최봉석 목사님은 능력이 많아서사람들이 최권능이라고 별명을 붙였습니다. 그는 전도하다가 누구에게 맞을때,손으로 맞으면 예수! 하고 작은 소리로 예수를 말하고,발로 걷어차면 큰소리로 예수!! 하고 소리를 내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전도하다 맞으면 어떻게 할까요?복음을 안 들으면 안 들을 것이지 왜 사람을 구타하느냐고 싸울지 모릅니다.그러나 진정으로 예수가 속에 가득한 자는 싸우지 않습니다.
3. 삶의 목표가 하나님의 구원사상으로 집약됩니다
기독교는 문화의 방편으로 세상을 잘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기독교는 인생의 목표입니다. 인생이 태어나서 죽기까지 삶의 목표는 하나님의 기쁘신뜻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20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바울은 삶의 비전을 말합니다. 그가 육체 가운데 살고 있는 것,즉 성도로서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했습니다.믿음의 생활,그것은 여러 가지로 설명이 되지만 종합적으로 바울은 다른 성경에 이렇게 말합니다.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 생각이 과연 사도나 직분자들에게만 주어진 의무감일까요?그렇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의 생활 목표는 사도가 가진 목표와 동일해야 합니다. 아니 동일하게 목표하는 인생의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보통 듣고 볼 수 있는 시편 23장도 오해하는 수가 있습니다.시 23:1-3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하는 말씀은 보통 종교적 이고기복주의적 생각으로는 받아들이기 쉬운 말이 아닙니다.성경은 언제나 신앙생활의 최종적 목표는 하나님 당신의 이름을 위해 인도하시고 역사 하신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엡1:5-6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인생은 자기를 위해 종교도 필요한 것이라고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인식하지만 신앙이 성숙해지면 그게 아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내게 좋은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고후4:11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루터가 본서에 기록된 사도 베드로의 실수를 보며 구약시대 예언자들도 실수하는 일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불완전함을 위로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과연 성경에서 여러 신앙인들의 실수, 실언을 볼 수 있습니다.욥과 예레미야도 생일을 저주하고(욥 3:1-12;렘 20:14) 엘리야와 요나도 죽고 싶다고 했고(왕상19:14; 욘4:3,8) 바울과 바나바는 서로 심히 다투기도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행 15:39).그렇지만 우리는 이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 중심을 매일같이 되새김질하면서 지식만능의 과학시대에 무엇보다.
1)성경의 절대적 진리에 근거하여 세상을 이해하려는 사유를 잃지 말고,
2)우리가 가진 본성을 넘어서서 성령님의 인도를 갈구하고 성령충만하기 위해 기도하며,
3)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목표를 두고
낙심치 않는 저와 여러분 되셔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보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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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이버신학교 원문보기 글쓴이 : nulser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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