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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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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이글을 ‘사랑의 교회’ 이현옥 집사님께 바칩니다.
봉사 받는 삶
내일 모래가 설날입니다.
겨울의 마지막 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하면, 할아버지들이 생각납니다.
정×× 할아버지께서는 지금 계신 집으로 이사 오시기 전에 사시든 집은
외풍이 너무 심하여 방안에 있는 것보다 밖이 더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관리 자매님께 부탁하여 문이라도 수리하려고 하였어나 한사코 말리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몇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눈에 선 합니다.
언제나 당당(?)하지 못하시고 고개 숙이고 조용히 계시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환경에 순응(결코 포기가 아닙니다)하여 살고자 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제가 독거노인 방문봉사(너무 적게 해서 오히려 안타까운)를 한지도 벌써
여러 해가 넘었습니다.
다른 일 같으면 쉽게 싫증을 내고 포기해 버리는 저의 성격상 수년 동안
(결석이 많았지만)을 할아버지들을 방문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기적에
가깝습니다. (저는 사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사람입니다.)
이것은 저의 인내라든가, 예수 믿는 자로서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고자 하는
저의 열망 때문이 아니라. 할아버지들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정××할아버지와 마주보고 앉아있으면 가슴으로 조용한 평화가 깃들어
옵니다.
손을 잡고 기도할 때는 충만한 성령의 은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죄 많은 세상에서 쾌락을 좇으면서 주일이 되면 적당히 예배에 참석하여
구원받았다고 만족해하는 저에게 할아버지로 인해서 내 마음에
깃드는 평화와 은사는 참으로 놀라운 것 이였습니다.
처음 할아버지와 손잡고 기도할 때는 할아버지께 예수그리스도를 알게
하여 천국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여야지 하는 사명감에서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결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할아버지를 통하여 오히려 예수를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에서 오는 크나큰 은총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권×× 할아버지와 마주 보고 앉아 있으면 느낌이 색다릅니다.
6.25 참전 용사인 할아버지는 인민군 총 개머리판에 맞은 부상 때문에
일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오셨습니다.
육체적 고통으로 인하여 불평이 많아지고 세상의 가치 있는 것에 관심이
많은 할아버지이기 때문에 그것에서 눈을 돌려 예수님을 알게 해야지
하는 생각에서 손잡고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하루는 기도가 끝났을 때 할아버지께서 우시면서.....“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방문을 마치고 차를 몰고 다른 할아버지 집으로 향하는 길에 문득
할아버지께서 무엇을 감사하시다고 생각했을까가 궁금해졌습니다.
할아버지는 일평생을 가난과 고통 속에 사셨는데 무엇이 감사할 것이
남아 있는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것을 물어 볼 수도 없고,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습니다.
죽은 자 보다 살아 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 가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감사는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제 생각에 할아버지의 감사는 성령의 은사가 틀림없다고 생각됩니다.
감사함으로 예수님을 느끼고, 감사함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흘러넘치는
사랑을 느낌으로서 아버지께 가까이 가고자하는 영적 외침이 틀림없을
것으로 생각 되었습니다.
요즘 이×× 할아버지는 제가 적어준 기도문을 갖고 기도하십니다.
아들 ××씨가 병이 완쾌되고 참한 색시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저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을 잡고 기도할 때는 그 기도문 꺼내 놓고
읽으면서 기도합니다.
할아버지! 이번 주일에는 꼭 교회에 다녀오세요.
빈손으로 가도돼나?
그럼요. 도대체 누가 하나님 앞에 무엇을 들고 갈수 있단 말입니까???
오히려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서×× 할아버지의 어머님께 손을 잡고 할머니! 기도하세요. 하면,
할머니께서 노환으로 정신이 없으시지만 기도할 때면 큰소리로 기도합니다.
아주 유창하게 기도하십니다.
육체적 결핍이 결코 영적능력을 쇠퇴시킬 수 없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무신론자가 빈정거리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천국에 갈 때면 사람이 젊을 때의 팔팔한 모습이냐?
늙어서의 쭈그러진 모습이냐? 고 물었습니다.
이것의 해답이 바로 할머니께서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너무나 배울 것이 많습니다.
나는 내가 위로를 받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나는 봉사 하고 있는가? 봉사 받고 있는가?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부터 봉사 받고(눅16:20~25) 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자는 나사로에게 봉사 받고 있었으나 그는 그것을 몰랐다)
**************************************
이글은 수년전에 쓴 글입니다.
새해가되니 당시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생각나 다시정리하였습니다.
위에 언급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지금 대부분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또 한해가 바뀌니 저도 이제 얼마 있지 않아서 그때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연배가 되겠지요.
봉사는 결코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며,......
그리고 오늘날 까지 수년 동안 지속적으로 반찬을 싸들고 독거노인 봉사를
계속해 올수 있었든 것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도움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저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어주시는 분이 사랑의 교회 양제구역
다락방 모임(김옥자 순장님)의 이현옥 집사님
(분당 농협 하나로 클럽 근무)입니다.
이현옥 집사님은 자신이 근무하는 반찬가게 백원심 사장님(노량진교회)께 저에 관한 말씀을
드리고 매주 반찬을 무척 싼값으로 제공해주십니다.
백원심 사장님께 감사 드리며,이현옥 집사님께 무어라고 감사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새해에 하나님의 큰 은총이 백원심 사장님과 집사님께 임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25:35~40)
신영록/건축구조기술사
봉사 받는 삶
내일 모래가 설날입니다.
겨울의 마지막 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하면, 할아버지들이 생각납니다.
정×× 할아버지께서는 지금 계신 집으로 이사 오시기 전에 사시든 집은
외풍이 너무 심하여 방안에 있는 것보다 밖이 더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관리 자매님께 부탁하여 문이라도 수리하려고 하였어나 한사코 말리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몇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눈에 선 합니다.
언제나 당당(?)하지 못하시고 고개 숙이고 조용히 계시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환경에 순응(결코 포기가 아닙니다)하여 살고자 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제가 독거노인 방문봉사(너무 적게 해서 오히려 안타까운)를 한지도 벌써
여러 해가 넘었습니다.
다른 일 같으면 쉽게 싫증을 내고 포기해 버리는 저의 성격상 수년 동안
(결석이 많았지만)을 할아버지들을 방문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기적에
가깝습니다. (저는 사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사람입니다.)
이것은 저의 인내라든가, 예수 믿는 자로서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고자 하는
저의 열망 때문이 아니라. 할아버지들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정××할아버지와 마주보고 앉아있으면 가슴으로 조용한 평화가 깃들어
옵니다.
손을 잡고 기도할 때는 충만한 성령의 은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죄 많은 세상에서 쾌락을 좇으면서 주일이 되면 적당히 예배에 참석하여
구원받았다고 만족해하는 저에게 할아버지로 인해서 내 마음에
깃드는 평화와 은사는 참으로 놀라운 것 이였습니다.
처음 할아버지와 손잡고 기도할 때는 할아버지께 예수그리스도를 알게
하여 천국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여야지 하는 사명감에서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결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할아버지를 통하여 오히려 예수를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에서 오는 크나큰 은총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권×× 할아버지와 마주 보고 앉아 있으면 느낌이 색다릅니다.
6.25 참전 용사인 할아버지는 인민군 총 개머리판에 맞은 부상 때문에
일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오셨습니다.
육체적 고통으로 인하여 불평이 많아지고 세상의 가치 있는 것에 관심이
많은 할아버지이기 때문에 그것에서 눈을 돌려 예수님을 알게 해야지
하는 생각에서 손잡고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하루는 기도가 끝났을 때 할아버지께서 우시면서.....“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방문을 마치고 차를 몰고 다른 할아버지 집으로 향하는 길에 문득
할아버지께서 무엇을 감사하시다고 생각했을까가 궁금해졌습니다.
할아버지는 일평생을 가난과 고통 속에 사셨는데 무엇이 감사할 것이
남아 있는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것을 물어 볼 수도 없고,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습니다.
죽은 자 보다 살아 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 가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감사는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제 생각에 할아버지의 감사는 성령의 은사가 틀림없다고 생각됩니다.
감사함으로 예수님을 느끼고, 감사함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흘러넘치는
사랑을 느낌으로서 아버지께 가까이 가고자하는 영적 외침이 틀림없을
것으로 생각 되었습니다.
요즘 이×× 할아버지는 제가 적어준 기도문을 갖고 기도하십니다.
아들 ××씨가 병이 완쾌되고 참한 색시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저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을 잡고 기도할 때는 그 기도문 꺼내 놓고
읽으면서 기도합니다.
할아버지! 이번 주일에는 꼭 교회에 다녀오세요.
빈손으로 가도돼나?
그럼요. 도대체 누가 하나님 앞에 무엇을 들고 갈수 있단 말입니까???
오히려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서×× 할아버지의 어머님께 손을 잡고 할머니! 기도하세요. 하면,
할머니께서 노환으로 정신이 없으시지만 기도할 때면 큰소리로 기도합니다.
아주 유창하게 기도하십니다.
육체적 결핍이 결코 영적능력을 쇠퇴시킬 수 없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무신론자가 빈정거리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천국에 갈 때면 사람이 젊을 때의 팔팔한 모습이냐?
늙어서의 쭈그러진 모습이냐? 고 물었습니다.
이것의 해답이 바로 할머니께서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너무나 배울 것이 많습니다.
나는 내가 위로를 받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나는 봉사 하고 있는가? 봉사 받고 있는가?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부터 봉사 받고(눅16:20~25) 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자는 나사로에게 봉사 받고 있었으나 그는 그것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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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수년전에 쓴 글입니다.
새해가되니 당시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생각나 다시정리하였습니다.
위에 언급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지금 대부분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또 한해가 바뀌니 저도 이제 얼마 있지 않아서 그때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연배가 되겠지요.
봉사는 결코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며,......
그리고 오늘날 까지 수년 동안 지속적으로 반찬을 싸들고 독거노인 봉사를
계속해 올수 있었든 것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도움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저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어주시는 분이 사랑의 교회 양제구역
다락방 모임(김옥자 순장님)의 이현옥 집사님
(분당 농협 하나로 클럽 근무)입니다.
이현옥 집사님은 자신이 근무하는 반찬가게 백원심 사장님(노량진교회)께 저에 관한 말씀을
드리고 매주 반찬을 무척 싼값으로 제공해주십니다.
백원심 사장님께 감사 드리며,이현옥 집사님께 무어라고 감사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새해에 하나님의 큰 은총이 백원심 사장님과 집사님께 임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25:35~40)
신영록/건축구조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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