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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살후3: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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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서인선 교수 |
참고 : | . |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데살로니가후서 3:1-15
데살로니가후서 3장은 기도 요청(1-2절), 확신의 표현(3-4절), 두 번째 소원기도(5절), 게으름에 대한 교훈(6-13절), 징계에 대한 교훈(14-15절), 세 번째 소원 기도(16절), 편지의 끝맺음(17-18절)으로 되어 있다. 이번에는 15절까지 다루고, 편지의 끝맺음 부분은 다음 번에 다루면서 데살로니가서 강해를 마감하고자 한다.
1. 기도 요청(1-2절): “종말로”는 “마지막으로, 끝으로, 우리의 마지막 문제로는” 하는 말이다(빌 3:1 참조). 바울은 형제들에게 우리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요청한다(살전 5:25; 롬 15:30; 고후 1:11; 엡 6:19, 20; 빌 1:19; 골 4:3, 4 참조). 기도를 요청하는 것은 아름다운 믿음의 행위이다. 데살로니가인들에게 사도의 기도가 필요했던 것같이 사도에게 그들의 기도가 필요하다. 요청한 기도의 내용은 두 가지다.
첫째,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받아들여지게 하옵소서”(사역) 하는 것은 데살로니가인들의 경우에서와 같이 지금 사도가 사역을 하고 있는 고린도에서도 복음이 빠르게 널리 전파되어 나가기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시 147:15; 고전 9:24). 데살로니가인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를 위하여 기도함으로써 복음 전파에 동참하게 된다. 복음이 전파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게 될 때 영광을 받게 된다(살전 1:6; 2:13 참조).
둘째, “우리가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짐을 받게 하옵소서”(사역) 하는 것은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에게서 부당하고 악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이다(롬 15:31; 고후 1:10 참조). 바울의 사역에 항상 강하게 반대하는 무리들이 따랐다는 것을 우리는 그의 편지를 통하여 잘 안다. 여기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이 있다. 사도는 먼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의 신속한 전파를 위하여 기도를 요청하였다는 사실이다. 바울의 최대의 관심은 자신의 건강과 복지가 아니라 복음의 전파였다. “무리한” 또는 “부당한”이라고 번역된 말 ‘아토포스’는 파피루스에서 한번은 농부의 밀 단들을 풀어 산산조각 내어 돼지들에게 던져준 자들에 대하여 사용된 바 있다. 제 자리에서 벗어난 ‘난폭한’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세상에는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물론 복음전파의 상황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우리는 최근에 부당하고 사악한 사람들의 무모한 행위를 생생하게 목도했다. 특히 잘못된 종교적 신념이 정치적 이념과 결합했을 때 나타난 무서운 결과를 보았다. 미국 현지 시간으로 지난 9월 11일(화요일) 오전 8시 45분과 9시 3분에 뉴욕의 쌍둥이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납치된 비행기 두 대가 각각 충돌하고, 9시 38분에는 워싱톤 DC의 국방부 건물에 또 다른 납치된 비행기가 충돌하는 테러 사건이 터져 미국은 물론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미국에서 이 글을 쓰는 9월 20일 현재). 미국은 충격 속에서도 차분하게 사태를 수습하면서, ‘무한정의작전’(Operation Infinite Justice)을 펼쳐서 테러를 근절시키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그러나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미국이 9월 14일(금)을 국가적인 ‘기도와 추모의 날’(Day of Prayer and Remembrance)로 선포하고 미 전역에서 기도회를 개최하였다는 것이다.
판에 박힌 일상 생활의 표면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영적 세력들간에 격렬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주로 하나님이 우리를 악한 자에게서 보호하시고 우리를 강하게 하시리라는 기도로 방어한다.
사탄의 공격에 대비하고 살아 남는 기본적인 지침을 생각해본다: (1) 영적 공격을 심각하게 생각한다; (2)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힘과 도움을 위하여 기도한다; (3) 사탄의 행태와 책략을 인식하기 위하여 성경을 공부한다; (4) 성경을 암기하여 어느 곳에 있든지 필요한 때 도움의 원천으로 삼는다; (4) 진리를 말하는 자들과 교제한다; (5) 영적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실천한다(Life Application Study Bible 참조).
2절 끝의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즉 모든 사람이 믿는 것은 아니라는 어귀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왜 적대감에 직면하는지 설명해준다.
2. 확신의 표현(3-4절): 바울은 이제 자신과 (데살로니가서를 쓰고 있는) 고린도에서 직면하는 상황에서 데살로니가인들에게로 관심을 옮겨간다. 데살로니가인들을 격려하는 일을 속개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주는 바울의 말은 확언과 격려의 말이다. 확신의 말이다. 바울의 확신은 두 방향으로 표현된다. 주님을 향하여 그의 미쁘심을 확신한다. “주는 미쁘시도다”(고전 10:31 참조). 주께서는 데살로니가인들을 굳게 세우고 또 악한 자에게서 지켜주실 것이다(마 6:13 참조).
2절의 “부당하고(무리하고) 악한 사람들” 배후에는 “악한 자” 자신이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F.F. Bruce). 악한 자는 마귀 곧 사탄을 가리킨다. 또한 데살로니가인들을 향하여 바울이 명하는 것을 그들이 행하며 행하리라는 확신을 나타낸다. 이 확신은 주 안에서 갖는 확신이다. 바울이 명하는 것이 무엇인지 밝혀져 있지 않으나 현재형 동사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서 데살로니가후서에서 말하는 교훈 특히 3:6 이하의 게으름에 대한 교훈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여기서 사도가 데살로니가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을 재확신시키고(3절) 순종과 인내의 권면으로 나가는 것을 발견한다(4절; 참조, 살후 2:13-15).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은 우리의 순종과 인내의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3. 소원 기도(5절): 5절에는 가장 간단한 형태의 소원기도가 나타난다. 소원기도(wish-prayer)라는 것은 헬라어에서 ‘희구법’ 동사를 사용하여 소원을 표현하는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에 본문을 포함하여 세 번 나타난다(2:16-17; 3:16). 바울은 주께서 데살로니가인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또 그리스도의 인내로” 인도하시기를 소원한다. 데살로니가인들이 견디는 데 필요한 것은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요 그리스도의 인내이다. 부활하신 주께서 데살로니가인들을 인도하여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더 인식하게 하고 또 그리스도의 인내에 동참하게 하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확신의 근거이다(롬 8:38-39 참조). 그리스도의 인내는 성도의 견딤의 본이다.
4. 게으름에 대한 교훈(6-13절): 데살로니가전서 끝(5:14)에서 데살로니가교회 특히 그 지도자들은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 훈계가 먹혀들어 가지 않은 것 같다. 바울은 여기서 다시 그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더 자세하게 다룬다. 바울은 형제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다(4절 참조). 이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벌이 따르리라는 것을 덧붙인다. “게으르게 행하고” 사도에게서 받은 “전통에 따라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데살로니가인들이 떠날 것을 명한다.
사도는 자신을 본으로 제시한다. 그는 데살로니가인들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않았고,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공짜로”) 먹지 아니하였고, 오직 데살로니가인들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밤낮으로 수고하고 애써 일하였다. 사도는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본을 보이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데살로니가인 자신들은 이러한 사도의 행위를 본받아야 한다(6-9절).
데살로니가인들 가운데는 주의 강림이 임박했다고 믿었기 때문에 생계를 위하여 일을 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다. 아마도 바울 자신의 가르침에 대한 왜곡된 생각에서, 또는 가짜 편지의 영향을 받아(살후 2:2)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사도 자신의 도덕적인 가르침은 복음의 메시지에 대한 깊은 교리적 관심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살전 2:3-10 참조).
사도는 데살로니가인들과 함께 있을 때 이미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는 교훈을 준 바 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여전히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일을 하지 아니하면 시간이 남게 마련이다. 그들이 남는 시간에 하는 일이란 바삐 돌아다니며 남의 말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에게 사도는 명하기도 하지만 권한다: “조용히 일하여 자기 음식을 먹으라.” “자기 음식을 먹는다”는 어귀는 “생계를 세운다”는 뜻이다. 조용히 일하는 것은 바쁘게 일만 만드는 행위와 대조된다(10-13절).
사람이 일을 할 수 있을 때 일을 해야 한다(10절). 이에 대하여 우리는 신약에서 네 가지 이유를 발견한다(Michael W. Holmes). 첫째, 교회의 다른 회원들에게 불필요한 짐이 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살후 3:8). 둘째, 외인들의 존경을 얻기 위해서이다(살전 4:12). 셋째, 형제 사랑 곧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사랑 때문이다(살전 4:9). 넷째, 궁핍한 자들에게 무엇인가 나눌 것이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엡 4:28). 이 네 가지는 자기 중심적이 아니라 다른 사람 중심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 이상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넉넉한 것”을 궁핍한 형제 자매에게 자발적으로 나누는 모습을 보인다면 세상이 달라질 것이다.
5. 징계에 대한 교훈(14-15절): 모든 사람이 사도의 교훈에 귀를 기울여 듣는다면 문제가 없을 터이나 현실은 늘 빗나가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사도는 그리하여 그의 명을 순종하지 않고 계속 게으름을 부리고 교회를 해치는 일을 만들어 내는 자에 대한 교훈을 덧붙인다.
이교 도시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면 심각한 의무를 지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인기가 없는 소수의 무리였고, 그들을 좋아하지 않거나 그들의 영향을 차단하려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에 관하여 좋지 못한 소문이 들리면 그것을 퍼뜨리는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은 좋지 못한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실천적인 삶으로 입증해야 했다. 신약성경의 편지들 속에 나타나는 특징적인 윤리 교훈들은 바로 그러한 상황을 반영한다.
14-15절은 바로 이렇게 게으른 자들과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자들, 교회의 명성에 흠을 내는 자들에게 향한 것이다. 사도는 징계의 지침을 제시한다. “이 편지에서 한 우리 말” 즉 데살로니가후서에서 순종을 요구하는 사도의 “말”은 2:15에 나오는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는 말이다(3:6, 12 참조).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그런 사람을 가려내고, 그와 사귀지 말고, 또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징계의 정신은 여전히 증오가 아니라 사랑이어야 한다.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마 18:17 참조) 형제 같이 권면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순전하게 보전되려면 정당한 징계 또는 권징(勸懲)을 시행해야 한다. 교회 권징은 전 회중의 책임이다. 권징은 일반적으로 전 교회의 건강과 복지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국한되어야 한다. 권징 행위 자체에는 어느 정도의 ‘사회적 추방’이 포함되어야 한다. 징계 행위의 목적은 원상을 회복시키거나 교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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