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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능력과 위대성

히브리서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481 추천 수 0 2008.12.23 16:5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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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히4:12-13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20060618 

< 말씀 중심적인 삶의 축복 >

미국에 토마스 베인느라는 유명한 무신론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성경에 있는 내용 중에서 모순된 내용을 찾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그런 내용들을 집대성해서 ‘이성의 시대’라는 책을 쓰고 호언장담했습니다. “앞으로 10년도 되지 않아 성경은 더 이상 읽히지도 않고 출판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을 때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죽었고 ‘이성의 시대’가 출판된 장소에는 지금 미국 성서협회 본부가 들어서 있다고 합니다. 또한 그의 책은 지금 헌 책방에서도 구하기 힘들지만 성경은 매년 수천 만권씩 팔리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3장 31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남게 될 것이고, 말씀이 약속한 것 중에 어느 것 하나 헛된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대로 살면 우리에게는 진짜 사는 길, 진짜 복된 길이 펼쳐질 것입니다.

요새 인터넷을 이용하면 엄청난 지식을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지식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많은 지식은 깊은 사고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끔 일과 책과 지식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자신을 돌아보고 깊은 사고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링컨의 전기를 쓴 데이빗 도날드(David Donald)의 말에 의하면 링컨이 깊은 사고를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읽은 책의 수가 적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링컨이 가장 자주 봤던 첫 번째 책은 성경이었고, 두 번째 책은 이솝 우화였으며, 그 외에 몇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었다고 합니다. 링컨은 적게 읽고 많이 생각한 사람이었습니다.

요새 지식과 정보는 힘이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식과 정보보다 더욱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성찰과 말씀 묵상입니다.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고, 그렇게 변화된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 말씀에 대한 4가지 정의 >

오늘 본문 12-13절 말씀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가장 잘 정의한 말씀입니다. 이 두 구절로 인해서 히브리서 4장은 ‘말씀장’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습니까?

1. 살아 있는 인격

본문 12절 말씀 처음 부분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말씀은 단순히 공기를 파동 시키는 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이고, 인격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구절도 말씀이 ‘살아 있는 인격’임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또한 본문 12절에서 “운동력이 있다”는 말은 “말씀이 움직인다”는 말이 아니라 “실제적인 엄청난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우리 가운데 새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고, 놀라운 생명력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왜 말씀이 우리 안에서 역사를 일으키지 못합니까? 대개 보면 말씀에 대한 상투적인 태도가 문제입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출장 중에 비행기에서 식사할 때 바퀴벌레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화가 나 호텔 방에서 비행기회사 사장에게 항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비행기회사 사장이 급히 보낸 정중한 사과편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편지였습니다. “손님!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저는 곧 그 문제의 비행기 운행을 취소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비행기의 모든 좌석의 커버와 카펫을 다 바꾸려고 새 것을 주문했습니다. 또한 손님에게 불량음식을 제공한 스튜어디스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겠습니다. 계속 우리 비행기를 이용해주십시오.”

그 편지를 받고 그는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사실에 대해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에 자세히 보니까 편지봉투 안에 자신이 보낸 편지도 들어있었습니다. 사장 비서가 실수로 자신의 편지까지 함께 보낸 것입니다. 그 편지를 보자 그 편지 제일 위쪽에 사장이 비서에게 쓴 이런 메모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 친구한테 그 표준 바퀴벌레 사과편지를 보내줘(Send this guy that standard roach letter).” 그 글귀를 보고 그는 자신에게 보낸 편지가 상투적인 편지임을 알고 더욱 수치와 분노를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요새 교회부흥이 어려워지면서 교회마다 각종 묘안들을 짜내고 각종 프로그램을 접목시키고 있습니다. 교회부흥과 관련된 세미나에는 목회자들로 넘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설교자들이 항상 하던 상투적인 말씀을 지양하고 끊임없는 묵상으로 새롭고 신선한 말씀을 준비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한국 교회도 살아나고, 우리 교회도 살아나고, 우리 심령도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상투적인 말씀은 말씀을 살아 있는 인격체로 대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상투적인 말씀은 하나님을 분노하게 만들고,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도 분노를 줍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이든 성도이든 말씀을 대할 때는 상투적으로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은 살아 있는 인격입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목회자가 말씀을 준비하고, 성도들이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2. 영적인 수술 칼

계속해서 본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이 구절에서 혼과 영은 영혼을 뜻하고 관절과 골수는 육신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도 수술하고, 육신도 수술하는 수술 칼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말씀은 우리의 영혼뿐만 아니라 육신의 질병도 치유하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왜 병이 생깁니까? 육신이 원래의 질서를 잃어버릴 때 병이 생깁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이 바르게 되어 영혼의 질서가 회복되고 마음에 평안이 임하면 육신도 잃어버린 질서를 회복하고 그때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혼과 육신에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고 마음의 천국을 원하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말씀이 나를 찔러 쪼개도록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가끔 보면 말씀이 자신을 찔러 쪼개도록 하기보다 자신이 말씀을 찔러 쪼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자 훈련을 성경 공부 중심으로 하면서 나타나는 가장 큰 부작용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찔러 쪼개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말씀이 자신을 찔러 쪼개도록 하는 것이 점차 약화되는 것이 가장 큰 부작용입니다.

옛날에는 말씀을 신기하게 잘 해석하는 사람을 ‘말씀을 잘 쪼개는 사람’이라고 해서 최고의 부흥강사로 대접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대개 종말론을 강조하고 다니엘과 요한계시록과 같은 말씀을 깊이 쪼갠다고 하면서 이상하게 해석했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쪼개면서 동시에 얼마나 많은 교회와 가정이 쪼개지고, 영혼과 인격과 신앙이 쪼개졌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말씀은 쪼개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전체를 종합적이고 통전적으로 보면서 말씀 앞에 자신의 심령을 쪼개야지 자기가 하나님 말씀을 쪼개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가끔 성경을 보면 우리가 해석하기 어려운 난해한 말씀들이 나옵니다. 그때 그 말씀을 깊이 파헤치고 자신이 다 아는 듯이 해석하면서 엉뚱하게 해석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모르게 하셨으면 모르고 넘어갈 필요도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말씀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하면서 ‘말씀의 종’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찾아가는 것은 절대 주의해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를 죽이고, 가정을 죽이고, 자기를 죽이는 길입니다. 말씀을 찔러 쪼개는 것은 사망의 길이고, 말씀이 나를 찔러 쪼개도록 하는 것만이 생명의 길입니다.

옛날에 황해도 풍천에 ‘안 서방’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산에 들어가 도사를 찾아서 축지법과 변신술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스승이 외출했습니다. 그 사이에 슬쩍 스승의 방에 있는 도술서를 읽고 그대로 하자 순식간에 짐승도 되고 새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도통했으니 더 배울 것이 없다고 귀가했습니다.

귀가 즉시 그는 변신술을 사용해 이마와 가슴에 변신 글을 써 붙이고 뻐꾸기가 된 후에 자기 집 우물가 버드나무에 올라 앉아 아내가 나오길 기다려 “뻐꾹, 뻐꾹”하고 울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나와 보고 “여보, 뭐해요?”라고 묻자 안 서방이 “여보, 내가 뻐꾸기로 보이지 않소?”하고 되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내가 “당신 미쳤어요?”라고 했고, 그 후로 동네 사람들이 안 서방을 ‘안 뻐꾸기’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요즘 남보다 기도 조금 더 하고 성경 조금 더 읽으면 당장 무엇인가 변한 줄 알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처럼 조금만 남보다 무엇인가 잘한다고 해서 마음이 높아져 영적으로 높은 사람처럼 행세하면 오히려 풍천의 안 뻐꾸기처럼 놀림감이 될 뿐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찔러 쪼갬으로 신기한 사람으로 변신하려고 하지 말고 말씀이 나를 수술하게 함으로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되려고 해야 합니다.

3. 영적인 엑스레이

본문 12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또 마음과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살피는 엑스레이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에 우리 자신을 비쳐보면 우리의 연약한 부분과 병든 부분을 알게 되고, 또한 말씀의 빛을 통해 우리의 내면이 밝아지고 어둠이 틈타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을 계속 보고 들으면 우리의 영혼이 맑아지고 건강하게 됩니다.

때로 말씀의 엑스레이로 우리 자신의 죄와 허물이 지적받고 들춰지면 인간이기에 자존심도 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말씀 앞에서 자존심이 상할 때 자존심을 버리고 회개하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말씀도 때로는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암이 발견되면 환자의 마음에 고통을 주고 상처가 될까봐 의사 선생님은 대개 그 사실을 환자에게 숨기고 환자 가족들에게 말해줍니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직접 환자에게 말해준다고 합니다. “선생님! 이번에 진단해 보았더니 암 말기입니다. 수술해도 살 가능성이 10%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마음으로 준비하십시오.”

그 말을 들은 환자는 처음에는 절망하며 고통합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면 정신을 차리고 “이제 남은 삶을 어떻게 살까?”하면서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외국 병원이 매몰차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게 더 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알게 될 것을 숨기면서 마음의 고통을 잠깐 줄여주는 것보다 앞으로 남은 삶을 잘 정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잘못을 덮어주고 조용히 해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문제 해결을 위해 지혜롭게 드러낼 필요도 있습니다. 특히 죄의 문제는 그냥 덮어두면 안 됩니다. 기분 나쁘고 잠깐 마음이 상해도 죄는 드러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강단에서 죄와 잘못을 지적하는 설교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싫어한다고 죄와 잘못을 지적하지 않으면 기분을 좋을 수 있지만 인격과 신앙은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미국의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교회 부흥을 원하면 절대 부정적인 설교를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주장한 노만 빈센트 필 박사도 “죄와 심판과 징계와 같은 마음에 찔리는 설교는 하지 말고 희망과 확신과 가능성만을 말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 주장들은 비성경적인 주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라면 귀에 거슬리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겸손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나 노만 빈센트 필 박사님이 끼친 좋은 영향도 많습니다. 그분들 주장을 따르면 교회성장도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성장이 진리는 아닙니다. 긍정의 힘은 필요하지만 죄와 잘못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긍정이 주는 힘은 잘못된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말씀에 의해 자존심도 상하고, 마음도 상하게 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상한 심령을 원하신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얘기에서 부자에게 무엇보다 필요했던 것은 “당신이 그렇게 살면 지옥에 갑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말을 듣지 못하고 음부의 고통 가운데 들어갔습니다. 결국 지옥에서 부자가 어떻게 탄식합니까?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으로 보내주십시오. 제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나사로가 가서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이 고통 받는 이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 부자의 고백은 물질주의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주는 경고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자신이 가진 물질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더 허무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현대인들은 물질 축복에 관한 말씀은 좋아하면서 죄와 잘못과 지옥에 관한 말씀을 잘 안 들으려 합니다. 그 현대인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도 잘 들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말씀이 영적인 엑스레이가 되어 나의 죄를 지적하면 그 말씀에 찔리고 상한 마음을 가지면서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해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서 우리가 새롭게 되고 진짜 축복받는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4. 하나님 자신

본문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이 구절에서 ‘그 앞에’라는 말은 문맥상 ‘말씀 앞에’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말씀을 보면 ‘그’가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 즉 하나님을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보면 말씀이 곧 하나님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왜 말씀에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까? 말씀이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성공 비결이고 행복의 비결입니다. 또한 우리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위대한 교육도 말씀 교육입니다.

지금 유대인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민족이 된 이유는 그들의 유전자가 다른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보다 그들에게 ‘말씀 교육’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이 있는 가정을 지켜주시고, 말씀이 있는 자녀, 말씀이 있는 영혼, 말씀이 있는 교회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영접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때 우리의 삶에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미국에 토끼 입술로 태어난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항상 학교 친구들의 조롱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친구들에겐 어릴 때 넘어져서 유리에 입술이 찢겨 그렇게 되었다고 변명은 했지만 늘 위축된 채 살았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청각검사(hearing test)를 했습니다. 그 검사는 담임선생님이 한 학생씩 불러서 귓속에 짧은 말을 해주면 학생들은 선생님의 말을 그대로 말하는 시험입니다. 그 시험에서 담임선생님이 그 소녀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나의 어린 딸이었으면 좋겠다(I wish you were my little daughter)” 그 말은 그냥 시험으로 한 말이었지만 그 말이 소녀의 삶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자신감 있게 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람의 말도 그렇게 힘이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 귀에 속삭이십니다. “너는 누가 뭐래도 내 자녀다!” 그 말씀을 정말 믿고 받아들이면 우리의 삶은 획기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존재입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 말씀에 순종하며 사십시오 >

그처럼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삶은 무엇보다 소중한 삶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왜 오늘 본문이 있게 되었습니까? 본문 앞에 있는 히브리서 4장 6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안식이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을 증거하면서 있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본문 말씀이 주는 도전은 무엇입니까?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자세는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가끔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이 말씀이 전혀 다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 생각을 철저히 죽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백 명 중에 99명이 이 길이라고 해도 성경이 저 길이라고 하면 저 길로 가야 합니다.

가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환경이 펼쳐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도 우리는 말씀대로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지금 우리 손에 무엇이 없다고 해서 결코 낙심하거나 불평하거나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도 필요한 것을 다 가지고 이 땅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필요한 것을 그때마다 얻으셨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지시고 죽기까지 순종해서 그 뜻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성인으로 오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갓난아이로 오시고 조금씩 성인으로 성장하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은 속성코스에 별로 관심이 없으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극적인 변신만 꿈꾸지 말고 말씀 안에서 더욱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도록 힘써야 합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또한 인생에는 없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어렸을 때는 철없고, 나이가 들면 속없고, 30이 넘으면 정신없고, 늙으면 형편없게 됩니다. 있는 것 같지만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이나 세상 것들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것들은 다 없어집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을 보면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것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25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셋째, 주의 뜻을 행하며 살았던 삶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2장 1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도 영원히 거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짧은 인생을 그냥 살지 말고 가장 가치 있게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가치 있게 사는 것입니까?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 때 하나님은 그 시간을 다 기억해주시고, 영원한 나라에서 큰 상급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구원받은 순간부터 내 생명이 내 생명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이고, 내 시간도 내 시간이 아니고 주님의 시간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실 시간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영원히 돌아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새해 첫날을 설 날이라고 하게 된 것은 ‘서러운 날’이란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왜 서럽습니까? 인생의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시간의 무서움을 해가 바뀔 때마다 절감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월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잘생기고 건강해도 그 미모와 건강이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 권사님들과 대화를 해보면 젊었을 때 얼마나 멋지게 사셨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 멀리 가기도 힘드신 형편입니다. 젊은 사람들도 얼마 후에는 다 그렇게 됩니다.

오래된 영화 중에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에서 인상적인 대사 하나가 생각납니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 테비에 부부는 첫 딸 짜이텔이 돈 많고 나이 많은 사람에게 시집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딸은 그 결혼이 싫으니까 말합니다. “엄마, 전 아직 스무 살도 안 됐잖아요?” 그때 엄마가 말합니다. “네가 젊음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구나! 이제 순식간에 마귀가 되 버려!”

그처럼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모릅니다. 세월은 젊음도 정력도 열정도 다 삼킵니다. 강단 꽃꽂이를 보며 “아, 아름답다”하고 감탄하지만 2주도 채 지나기 전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갑니다. 아무리 화려한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화려하게 살수록 더 비참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소유가 삼켜지기 전에 미리 시간을 내 놓고 주의 뜻을 행하기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믿는다는 것에만 만족하지 말고 더욱 주 안에서 말씀대로 행하며 자라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로서 축복보다는 내가 해야 할 책임에 눈을 돌리고 더욱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중시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힘써야 합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을 주시고 우리의 앞날을 더욱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샛별교회)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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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 야고보서 생각을 이탈시킴(1) 약1:14  김남준 목사  2008-09-09 1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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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9 야고보서 말씀과 기도의 의무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역사1 약1:14  김남준 목사  2008-09-09 1908
728 야고보서 묵상과 기도의 유익 약1:14  김남준 목사  2008-08-27 2030
727 야고보서 생각을 이탈하게 하는 죄를 파괴하는 길(2) 약1:14  김남준 목사  2008-08-27 1573
726 야고보서 죄의 속임과 계획 약1:15  김남준 목사  2008-08-27 1934
725 야고보서 욕심, 죄, 무욕 약1:12-15  길희성 형제  2008-06-20 2010
724 야고보서 사단의 전술 전략 약4:7  한태완 목사  2007-11-26 2560
723 야고보서 실행하는 신앙 약19-25  강종수 목사  2007-11-11 2075
722 야고보서 헛되고 허무한 인생 약4:14-16  한태완 목사  2007-11-07 3265
721 야고보서 실천합시다. 약2:14-26  한태완 목사  2007-11-06 2636
720 야고보서 드리는 신앙 약2:19-24  강종수 목사  2007-07-15 2079
719 야고보서 하나님의 위로를 얻는 법 file 약4:5-10  강종수 목사  2007-06-10 2529
» 히브리서 말씀의 능력과 위대성 히4:12-13  이한규 목사  2008-12-23 2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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