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소돔 이야기

창세기 류상태............... 조회 수 1505 추천 수 0 2008.09.29 13:23:01
.........
성경본문 : 창19:24-26 
설교자 : 류상태 목사 
참고 : 새길교회 2006.12.31주일설교 
24 주님께서 하늘 곧 주님께서 계신 곳으로부터,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소나기처럼 퍼 부으셨다.
25 주님께서는 그 두 성과, 성 안에 사는 모든 사람과, 넓은 들과, 땅에 심은 채소를 다 엎어 멸하셨다.
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들어왔던 말씀입니다.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하신 분들은 교회학교 때부터 여러 번 들어왔던 말씀일 것입니다.

본문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이며 착하고 성실했고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예쁜 딸 둘, 이렇게 네 식구가 단란하게 살아가는 모범적인 가정의 가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롯이 살던 소돔은 문제가 많은 도시였습니다. 도덕적으로 크게 타락했고, 특히 동성애가 유행했던 곳이라고 본문은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소돔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셨고, 두 천사를 롯에게 보냈습니다. 롯은 성문 앞에 앉아 있다가 천사를 알아보고는 자기 집으로 모셔 갑니다. 그런데 그 날 저녁에, 일단의 무리들이 롯의 집을 찾아와 손님들을 내 놓으라고,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겠다.”고 요구합니다. 학자들 중에는, 이 부분이 소돔에 동성애가 광범위하게 펴져 있었다는 증거자료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롯은 그들의 요구를 정중히 거절하면서, 대신 롯의 두 딸을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무리들이 폭력을 휘두르려 하자, 천사가 그 무리들의 눈을 어둡게 하고 롯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 말합니다. “당신은 가족들을 데리고 산으로 도망가십시오. 이제 곧 소돔이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산이 너무 멀어 롯의 가족은 근처에 있는 소알로 가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천사가 승낙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을 제시합니다.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롯의 식구는 무사히 탈출하여 소알로 도망하지만, 궁금증을 참지 못한 롯의 아내가 그만 천사의 당부를 잊고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뻣뻣하게 굳어 소금기둥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소돔 이야기’인가 ‘소돔 사건’인가

전통적으로 교회는 이 소돔 이야기를 실제 사건으로 이해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결코 그냥 넘기시지 않는다는 점을 경고하는 사건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에 깊이 빠진 소돔성에 대해 오래 참으셨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위험수위를 넘어섰기에 당호하게 징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살아야 한다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요즘 우리사회도 동성연애가 만연하는 등 도덕적으로 걷잡을 수 없이 타락하고 있는데, 이같은 세상 풍조에 휩쓸리지 말고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로 본문을 인용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AIDS같은 질병도 동성애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해석합니다.

이런 식으로 해석되는 설교는 일면 우리에게 도덕적인 삶을 살게 하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 성경은, 또한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는 삶, 이웃에게 모범이 되는 책임 있는 삶을 살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경종을 주기 위해 실제로 일으킨 사건으로 보는 시각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합니다.

우선, 인간의 부도덕함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이, 왜 롯의 가족 이외에는 소돔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모두 죽였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겠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그 도시에 의인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의 앞 장인 창세기 18장에는, 이 문제로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담판을 벌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을 멸할 계획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건 부당하다”고, “하나님답지 못한 처사”라고,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라면 공정하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따집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그 성에 의인 50명이 있으면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의인 50명이 있다면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답하시자 아브라함은 거기에서 다섯 명이 모자라면 어떻게 하시겠느냐고 다시 묻습니다. 45명만 있어도 용서하겠다고 하시자, 그러면 40명이면 어떻게 하시겠느냐고 또 묻습니다. 이런 식으로 아브라함은 결국 10명의 의인만 있어도 소돔을 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냅니다.

이런 본문의 흐름을 보면서, “역시 하나님은 의로운 하나님이시구나. 자신의 계획을 바꾸면서까지 의인 아브라함의 청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시구나. 50명을 심판의 기준으로 삼았다가 열 명까지 낮추어 주실 정도로 인정 많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구나.” 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하고 마치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남지 않으십니까? 본문을 실제 사건이라고 본다면, 결국 이런 식의 해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면, 혹 있을 수도 있었던 열명 미만의 의인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그들은 다수의 악함 때문에 함께 희생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소수자의 인권은 외면하시는 하나님이신가요? 이런 가정에 혹 불편을 느끼시는 분을 위해 다른 가정을 해 보아도 좋겠습니다. 소돔에서 10명이 안 되는 의인은 롯의 가족이 모두 차지했고, 그 외의 의인은 없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 소돔성에는 아직 선과 악에 대한 의식조차 없는, 죄에 대한 의식조차 없는 어린이와 아기들은 하나도 없었을까요? 그들은 어른들의 죄 때문에, 부모의 죄 때문에, 함께 희생되어도 괜찮은 것일까요? 소수자의 인권은 외면하시더라도 어린아이의 인권까지 외면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만약에 ‘소돔 이야기’가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사건이라면, 우리는 도대체 이런 사건을 일으키신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그 분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으로 믿어도 되는 것일까요? 건전한 상식과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일을 일으키는 신적 존재가 결코 ‘사랑의 하나님’일 수는 없다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이야기가 역사상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며,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일으키신 사건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현실이 매우 가슴이 아플 뿐 아니라, 성경의 기록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믿는 신앙에 대해 두려움을 느낍니다.

잘 아시겠습니다만, 꼭 2년 전, 지진 해일 쓰나미가 동남아시아를 강타했을 때, 교인 수가 수만 명에 이르는 큰 교회의 유명한 목사님이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설교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작년에 미국 남부지방을 할퀴고 지나간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해서도, 그 지방에 동성연애자가 많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태풍을 통해 징계하신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저는 그 분의 설교를 인터넷으로 들었는데, 적지 않은 교우들이 “아멘”으로 화답하더군요. 목사님의 설교보다 그 “아멘” 소리가 어찌나 가슴을 아프게 파고 들던지요...

그 목사님의 확신에 찬 설교대로, 쓰나미나 허리케인을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활용하신다면, 자기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이방인의 땅에 태어난 어린 생명들, 또한 동성애자인 부모 때문에 허리케인에 함께 휩쓸려 피어보지도 못하고 꺼져가야 하는 가엾은 어린 생명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런 식으로 해석되는 하나님은 우리의 실제 하나님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우리 하나님은 착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햇볕과 단비를 골고루 내려주시는 ‘하늘 아버지’이며, 우리의 ‘아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러므로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을 읽되, 문자에 사로잡혀 읽지 말고, 그 뜻을 잘 헤아려 읽어야 하겠습니다. 사람에게는 다른 생명체에 없는 이성이 있습니다. 이성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만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그 이성을 절대화해서도 안 되겠지만 이성을 무시하는 신앙은 더욱 위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신앙의 눈으로도 읽어야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성의 눈으로도 읽어야 합니다. 이성과 신앙이 조화된 눈으로 성경을 읽어야 성경이 왜 그렇게 기록되었는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쓰여진 시대적 배경, 저자의 의도, 당시의 사회적 관습이나 역사적 환경 등, 성서 본문과 함께 그 본문을 탄생시킨 주변 요소들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 평신도들이 그런 학문적 작업을 일일이 해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서학자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학자들의 얘기는 필요 없고 오직 성경만 읽으면 된다는 생각은 성서의 진실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오늘 본문에 대해서 현대 성서학자들의 도움을 받아보겠습니다. 2-3천 년 전의 고대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오늘 본문이 말하는 대로 그렇게 인식했습니다. 착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악을 미워하시는 하나님으로 이해했습니다. 악을 미워하며, 선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 그것은 그대로 옳은 인식이며 바른 신앙입니다. 이런 고대인의 신앙은 오늘의 우리 역시 지켜가야 할 기독교 신앙의 아름다운 유산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그들의 눈으로,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이해했습니다. 2-3천 년 전 사람들이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동성연애를 이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생명의 탄생은 고대 사회에서는 너무나도 중요한 생산성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또한 외적과 싸울 때는, 나라를 지켜주는 국방력과도 직결되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동성애가 만연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들이 동성연애를 가정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사회적 악’이라고 판단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판단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굳게 믿었으며, ‘거룩한 문서’에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자신들의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어떤 경이적인 사건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소돔 이야기 역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도시가 자연재해로 송두리째 멸망당하는 비극을 목격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소돔이든 아니든, 그들은 그 사건을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살아내기 위한 거울로 해석하려 했을 것입니다. 소돔 이야기는 실제 사건이 아니라,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진 설화였으리라는 것이 열린 신학으로 성경을 보는 사람들의 견해입니다.

만일 이런 현대 열린 신학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그리고 우리가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하나를 잃고, 대신 중요한 다른 하나를 얻게 될 것입니다. 성경만이 절대 진리요,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책이며,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으므로, 성경대로만 살면, 틀림없이 복을 받고 행복하게 될 것이라는 순진한 희망과 기대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고백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된다는 확신도 무너질 수 있겠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천국행 티켓을 보장받았다는 확신도 무너질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대신, 우리는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만의 천국’을 잃을 수 있지만, 모든 생명, 모든 인류와 함께 이루어내고, 함께 누리는 천국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와는 다른 종교, 다른 신념, 다른 가치관, 다른 문화에서 살아가는 이웃들을 끝없이 정죄해 온 무서운 독선과 배타성에서 벗어나 모든 이웃들과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신나는 자유,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환상이나 허상이 아닌 진실을 얻게 될 것입니다.

‘소돔 이야기’의 진실
그러면 이 소돔 이야기에서 우리가 얻게 될 진실은 무엇일까요? 소돔 이야기가 하나님께서 실제로 일으키신 사건이 아니라, 옛 사람들이 경험한 특이한 사건에서 영적 교훈을 얻기 위해 만들어진 설화라면, 우리는 맹목적으로 성경 문구에 매달리던 수동적 신앙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과 공동체의 삶을 파괴하는 실제 죄와 악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판단하고 제어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을 갖게 될 것입니다. 벌을 받을 것이 두려워 할 수 없이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에게 주신 고귀한 이성과 양심의 판단에 따라 우리 스스로 무엇이 죄고 무엇이 악인지 분별하며,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동성애 문제로 힘들어하는 이웃을 함부로 정죄하지 않고 그들을 우리와 똑같은 이웃으로 껴안을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본문이 말하는 내용 가운데, 문자가 표현하는 그대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부분도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을 기록한 하나님의 사람이 가졌던,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신앙의 고백을 듣고, 그 믿음의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을 기록한 우리 믿음의 선조는 말합니다. 죄악으로 얼룩진 삶의 현장이라면 반드시 그 자리를 떠나야 하고, 미련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또는 감당하기 어려운 재해를 당하여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를 잃은 사람들에게도, 좌절하지 말고, 과거에 매이지 말고, 용기를 내어 앞을 보고 힘차게 달려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미련을 갖고 돌아보면, 과거의 노예가 되어, 돌아갈 수도 없고, 앞으로 나갈 수도 없는 소금기둥이 되고 말 것이라고 말입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들어야할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오늘의 우리에게도 생명으로 인도하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날선 검처럼 우리의 환부를 도려내고 치료하여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합니다.

새로운 삶을 위하여
지난 한 해 동안, 우리의 삶을 얼룩지게 한 것이 있습니까? 우리를 견딜 수 없이 슬프게 한 일이 있었습니까? 지는 해와 함께 떠나보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면, 피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며 깨끗이 정리하시고 새 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이웃에게 아픔을 주거나 피해를 준 것이 있다면, 정당하고 바르게 정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머물지 마시기 바랍니다. 떠나야 할 자리는 반드시 떠나야 합니다. 미련을 두고 떠나야 할 자리를 자꾸 돌아보면 우리는 소금 기둥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금기둥은 우리의 과거도 집어삼키고 미래도 집어삼키는 괴물이 되어 우리를 꼼짝 못하게 속박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떠나십시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새로운 세계로 발을 내디디십시오. 그러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께서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올 한 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내년에도,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항상 동행하시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는 교우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856 창세기 생각을 바꾸면 감사가 보인다 창37:12-28  최장환 목사  2009-03-06 2093
855 창세기 작은 힘으로 큰 힘을 이기는 길 창14:13-16  이한규 목사  2009-02-24 1688
854 창세기 바벨탑 사건이 주는 교훈 창11:1-9  이한규 목사  2008-12-23 2405
853 창세기 성공적 결혼의 3대 원리 창2:18-25  이한규 목사  2008-12-23 1763
852 창세기 새길과 나 창1:1  이헌영 형제  2008-12-06 1461
851 창세기 롯의 아내 창19:26-29  민영진 목사  2008-12-06 2052
850 창세기 항복하면 이기고 다투면 진다 창32:22-29  조용기 목사  2008-11-21 1698
849 창세기 에덴으로의 귀환 창1:1-5  한세희 형제  2008-10-26 1447
848 창세기 브니엘의 눈부신 아침을 맞다 창32:31  김남준 목사  2008-10-01 2136
847 창세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날에 창17:1  김남준 목사  2008-10-01 1989
» 창세기 소돔 이야기 창19:24-26  류상태 목사  2008-09-29 1505
845 창세기 길 떠나기 창12:1-9  김은주 목사  2008-09-29 1576
844 창세기 하갈의 인생역전 창21:8-21  김기동 목사  2008-09-20 2487
843 창세기 예수 혁명 창1:1-2  김진 목사  2008-09-20 1437
842 창세기 야곱의 하나님 체험 창28:10-22  정용섭 목사  2008-09-18 2197
841 창세기 성령이 시키시는 것 창11:1-9  김기동 목사  2008-09-15 1731
840 창세기 보시니 참 좋았다 창1:26-27  양현혜 목사  2008-09-04 1706
839 창세기 작은 생명, 사는 이야기 창1:28  노은기 형제  2008-08-26 1472
838 창세기 내가 무엇을 가지고 나아갈까 창4:1-7  김이곤 목사  2008-06-25 2114
837 창세기 삶과 죽음 사이에서 창3:19  최만자 자매  2008-06-17 1723
836 창세기 창조의 보전 창1:26-28  최만자 자매  2008-06-02 1728
835 창세기 삶은 역전될 수 있다 창50:15-21  조용기 목사  2008-05-30 2487
834 창세기 죽음 준비 창48:17-19  민영진 목사  2008-05-29 2163
833 창세기 주어진 삶과 주장하는 삶 창22:15-19  조용기 목사  2008-05-28 2002
832 창세기 하나님 은총의 두 빛깔 - 녹색과 적색 창9:1-7  이정배 목사  2008-05-16 3597
831 창세기 우리 이름을 내고 창11:1-9  조용기 목사  2008-04-18 2253
830 창세기 자기부정과 자기긍정의 긴장관계 창3:6-7  최만자 자매  2008-04-18 1992
829 창세기 낯선 자 창15:12-21  서중석 목사  2008-03-10 1879
828 창세기 칠년 풍년, 칠년 흉년 창41:1-8  최만자 자매  2008-03-10 1722
827 창세기 사랑의 연대 창45:5  서창원 목사  2008-02-15 1737
826 창세기 요셉의 길, 생명의 길 창45:5  박동현 목사  2008-02-15 2141
825 창세기 두 가지 사명 창1:28-2:3  강보형 목사  2008-01-24 1999
824 창세기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영 창1:31  한완상 형제  2008-01-13 2272
823 창세기 열명만 있어도 창18:32-33  손운산 목사  2008-01-10 2269
822 창세기 기도로 승리한 야곱 창32:24-32  강종수 목사  2008-01-06 2555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