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창1:1 |
---|---|
설교자 : | 이헌영 형제 |
참고 : | 새길교회 2007. 9. 16.주일설교 |
저는 여성 옷을 만들어서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패션회사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에는 디자이너가 7명 있는데 이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최고의 히트작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애써서 만든 옷이 열 벌도 못 팔고 재고로 쌓이는가 하면 어떤 옷은 몇 번씩 추가 작업을 해서 몇 천 벌을 파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디자이너들은 히트작품을 만들기 위해 늘 고심을 하고 있습니다. 동아제약의 박카스나 오리온제과의 초코파이 같은 히트 상품은 그 회사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작품입니다. 물에 뜨는 아이보리비누는 100년이 넘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아직도 많이 팔리는 대히트작품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보다 더 크고 오래된 히트작품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교회의 헌금제도입니다.
시인 유치환 님은 ?깃발?이라는 시에서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닮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단 줄을 안 그는.” 하고 노래했습니다. “아 누구인가 어떤 사람이 맨 처음 헌금제도를 생각해 냈을까?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모든 교인들로 하여금 기꺼이 재물을 바치게 하는 그 헌금제도를 누가 맨 처음 생각해냈을까?” 제가 처음 교회를 다닐 무렵은 어렸기 때문에 헌금함 같은 곳에 헌금을 내면 하나님이 몰래 오셔서 가지고 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조금 세월이 흐른 후에 실상을 알았을 때 속았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것을 몰랐다는 것이 창피해서 누구에게도 말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도 속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헌금의 종류를 많이 만들어내고 헌금을 걷을 때는 하나님 이름으로 하나님을 앞세워 하나님이 헌금을 받는 형식을 취합니다. 한 발 더 나가서 헌금을 드리는 성도들은 간구하듯이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의 보화 드리니 주여 받아 주셔서 하늘 나라 위하여 주 뜻대로 쓰소서.”
그리고 아멘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앞세워 걷고 주 뜻대로 써달라고 간구의 노래를 부르고 아멘이라고 맹세까지 했으면 그러게 쓰여져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의 조직을 보면 크게 남선교부, 여선교부로 나누고 연령별로 아동부, 중고등부, 청년부, 장년부, 노년부로 나누고 하는 일에 따라서 예배부, 선교부, 교육부, 봉사부, 친교부, 재정부, 관리부, 총무부, 그 외에도 건축추진위원회, 장학위원회, 경조위원회, 인터넷위원회 등으로 나누고 그것도 모자라서 지역별로 또 나누어 1구역, 2구역, 3구역으로 그래서 누구든지 4~5개의 조직원이 되게 마련이며 결국은 전 교인들을 간부로 만듭니다. 최하가 집사입니다.
틈을 안 주기 위해서 행사를 끊임없이 만듭니다. 주일날 아침예배, 저녁예배, 수요저녁예배, 금요철야기도회, 매일 새벽기도, 그것도 모자라서 부흥회, 100일 작정기도회, 수련회, 바자회, 운동회, 야유회 등으로 쉴 새 없이 몰아치고 웬 훈련과 교육은 그렇게 많은지 무슨무슨 제자훈련, 전도폭발훈련, 횃불, 무슨 훈련 등 그리고 전도교육, 선교교육 등등…. 이렇게 교인들을 꼼짝없이 조직과 시간으로 묶어놨는데 교인이 이사를 가면 이번엔 버스를 이용해서 모셔옵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그 사람을 꼭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서일까요? 부활을 위해서일까요? 아닙니다. 사업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그들이 아니라고 해도 헌금 때문에 그렇다는 것은 만득이도 영구도 압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려진 헌금은 모두 교회의 것이 되어서 자기들 마음대로 쓸 수가 있으니까요.
지난 8월 21일 한겨레신문 사설입니다. 가톨릭 서울대교구가 2006년 재무제표를 외부 회계법인에 맡겨서 감사한 결과를 공개한 일을 다루면서 ?투명한 교회를 위한 결단?이라는 제목으로 쓴 사설의 일부입니다.
“백 번 양보하더라도 종교단체가 이렇게 세제상의 혜택을 받으려면 헌금이나 기부금 혹은 수익금이 본래의 목적에 맞게 쓰여야 한다. 최소한의 비용을 제외하고는 사회에 이바지하는데 쓰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의 경우 겨우 헌금이나 기부금의 3% 정도만 그렇게 쓰인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개신교의 위기라고 합니다. 실제로 불교나 가톨릭은 신도 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개신교는 점점 줄고 있다는 소식을 여러분도 들었을 줄 믿습니다. 인터넷으로 탈레반 납치 사건 뉴스를 보다가 그 뉴스의 댓글을 보면서 정말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순식간에 올라오는 수백수천 건의 댓글 중 ‘기독교’라는 없었습니다. ‘개독교’라고 지칭하며 그들이 거기서 죽기를 바라는 글투성이였습니다. “거기서 죽으면 순교 아니냐? 그러니 나라 곤란하게 하지 말고 그냥 거기서 죽어라. 살고 싶으면 너희 하나님한테 살려달라고 해라.” 정말 그 정도일 줄은 솔직히 몰랐습니다. 오죽하면 청와대에서 비방하는 댓글을 자제해달라고 했겠습니까?
저는 이 모든 일들이 헌금이 제대로 쓰이지 않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제가 오강남 교수님의 [예수는 없다]라는 책을 읽고 이 새길교회에 온 지가 약 5~6년 된 것 같은데 새길교회는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처음 새길교회를 창립하실 때 많은 고뇌와 지혜 그리고 용기가 필요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합니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렇게 마음 붙이고 믿음을 이어갈 수 있어 행복합니다. 그리고 10년 후, 창립 30주년 때를 짐작해 봅니다. 그때의 새길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모르긴 하지만 제가 처음 온 5~6년 전과 지금의 모습을 보고 또 10년 후를 떠올려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 즉 지금과 비슷한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만족하시겠습니까?
우리끼리 조용히 이 믿음 지켜가면서 지금같이 우리끼리 서로 문안 여쭈면서 사는 것으로 만족하십니까? 기존 교회를 뛰쳐나와서 만든 이 교회, 평신도들의 교회 새길교회가 그 이름에 걸맞게 새 길을 열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어떤 사명감을 느끼지 않습니까? 하나님 뜻에 좀 더 가까이 가는 쪽으로 변혁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창립 20주년을 맞은 새길교회에 변혁할 것을 제안합니다.
교회란 예배드리는 곳, 기도드리는 곳,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써야 합니다. 지난해 이곳에서 설교하셨던 유니온신학대학 총장님께서 4복음서에서만 예수님이 40번이나 어려운 이웃을 도우라고 하셨다고 하셨는데 일일이 확인은 못했지만 아주 여러 번 말씀하신 것은 성경을 읽어보신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하니님은 그 헌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저는 제안합니다. 새길교회의 모든 헌금은 하나님께 바쳐진 후 48시간 안에 100% 모두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어줍시다. 그리고 교회의 조직을 극도로 줄여서 지출이라고는 집세와 2, 3명의 인건비 그리고 비품구입비 정도로 한정하고 그 운영비는 지금의 점심식사를 유료로 하든가 별도의 회비를 걷든가 해서 충당합시다. 지금까지 하나님께 드린 헌금을 오랫동안 무심히 여기저기 쓰다 보니 이제는 관행이 되었는데 잘못된 이 관행을 이제는 끊을 때가 된 것입니다.
헌금 100%를 온전히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어줌으로 사회에는 신선한 충격의 파문이 일게 하고 많은 교회의 양심에 경종을 울리며 도전이 되게 해 봅시다.
숲속에 난 두 갈래 길 중 어느 길로 갈 것인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망설임 없이 새로운 길을 선택해 봅시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시인 유치환 님은 ?깃발?이라는 시에서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닮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단 줄을 안 그는.” 하고 노래했습니다. “아 누구인가 어떤 사람이 맨 처음 헌금제도를 생각해 냈을까?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모든 교인들로 하여금 기꺼이 재물을 바치게 하는 그 헌금제도를 누가 맨 처음 생각해냈을까?” 제가 처음 교회를 다닐 무렵은 어렸기 때문에 헌금함 같은 곳에 헌금을 내면 하나님이 몰래 오셔서 가지고 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조금 세월이 흐른 후에 실상을 알았을 때 속았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것을 몰랐다는 것이 창피해서 누구에게도 말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도 속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헌금의 종류를 많이 만들어내고 헌금을 걷을 때는 하나님 이름으로 하나님을 앞세워 하나님이 헌금을 받는 형식을 취합니다. 한 발 더 나가서 헌금을 드리는 성도들은 간구하듯이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의 보화 드리니 주여 받아 주셔서 하늘 나라 위하여 주 뜻대로 쓰소서.”
그리고 아멘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앞세워 걷고 주 뜻대로 써달라고 간구의 노래를 부르고 아멘이라고 맹세까지 했으면 그러게 쓰여져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의 조직을 보면 크게 남선교부, 여선교부로 나누고 연령별로 아동부, 중고등부, 청년부, 장년부, 노년부로 나누고 하는 일에 따라서 예배부, 선교부, 교육부, 봉사부, 친교부, 재정부, 관리부, 총무부, 그 외에도 건축추진위원회, 장학위원회, 경조위원회, 인터넷위원회 등으로 나누고 그것도 모자라서 지역별로 또 나누어 1구역, 2구역, 3구역으로 그래서 누구든지 4~5개의 조직원이 되게 마련이며 결국은 전 교인들을 간부로 만듭니다. 최하가 집사입니다.
틈을 안 주기 위해서 행사를 끊임없이 만듭니다. 주일날 아침예배, 저녁예배, 수요저녁예배, 금요철야기도회, 매일 새벽기도, 그것도 모자라서 부흥회, 100일 작정기도회, 수련회, 바자회, 운동회, 야유회 등으로 쉴 새 없이 몰아치고 웬 훈련과 교육은 그렇게 많은지 무슨무슨 제자훈련, 전도폭발훈련, 횃불, 무슨 훈련 등 그리고 전도교육, 선교교육 등등…. 이렇게 교인들을 꼼짝없이 조직과 시간으로 묶어놨는데 교인이 이사를 가면 이번엔 버스를 이용해서 모셔옵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그 사람을 꼭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서일까요? 부활을 위해서일까요? 아닙니다. 사업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그들이 아니라고 해도 헌금 때문에 그렇다는 것은 만득이도 영구도 압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려진 헌금은 모두 교회의 것이 되어서 자기들 마음대로 쓸 수가 있으니까요.
지난 8월 21일 한겨레신문 사설입니다. 가톨릭 서울대교구가 2006년 재무제표를 외부 회계법인에 맡겨서 감사한 결과를 공개한 일을 다루면서 ?투명한 교회를 위한 결단?이라는 제목으로 쓴 사설의 일부입니다.
“백 번 양보하더라도 종교단체가 이렇게 세제상의 혜택을 받으려면 헌금이나 기부금 혹은 수익금이 본래의 목적에 맞게 쓰여야 한다. 최소한의 비용을 제외하고는 사회에 이바지하는데 쓰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의 경우 겨우 헌금이나 기부금의 3% 정도만 그렇게 쓰인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개신교의 위기라고 합니다. 실제로 불교나 가톨릭은 신도 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개신교는 점점 줄고 있다는 소식을 여러분도 들었을 줄 믿습니다. 인터넷으로 탈레반 납치 사건 뉴스를 보다가 그 뉴스의 댓글을 보면서 정말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순식간에 올라오는 수백수천 건의 댓글 중 ‘기독교’라는 없었습니다. ‘개독교’라고 지칭하며 그들이 거기서 죽기를 바라는 글투성이였습니다. “거기서 죽으면 순교 아니냐? 그러니 나라 곤란하게 하지 말고 그냥 거기서 죽어라. 살고 싶으면 너희 하나님한테 살려달라고 해라.” 정말 그 정도일 줄은 솔직히 몰랐습니다. 오죽하면 청와대에서 비방하는 댓글을 자제해달라고 했겠습니까?
저는 이 모든 일들이 헌금이 제대로 쓰이지 않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제가 오강남 교수님의 [예수는 없다]라는 책을 읽고 이 새길교회에 온 지가 약 5~6년 된 것 같은데 새길교회는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처음 새길교회를 창립하실 때 많은 고뇌와 지혜 그리고 용기가 필요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합니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렇게 마음 붙이고 믿음을 이어갈 수 있어 행복합니다. 그리고 10년 후, 창립 30주년 때를 짐작해 봅니다. 그때의 새길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모르긴 하지만 제가 처음 온 5~6년 전과 지금의 모습을 보고 또 10년 후를 떠올려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 즉 지금과 비슷한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만족하시겠습니까?
우리끼리 조용히 이 믿음 지켜가면서 지금같이 우리끼리 서로 문안 여쭈면서 사는 것으로 만족하십니까? 기존 교회를 뛰쳐나와서 만든 이 교회, 평신도들의 교회 새길교회가 그 이름에 걸맞게 새 길을 열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어떤 사명감을 느끼지 않습니까? 하나님 뜻에 좀 더 가까이 가는 쪽으로 변혁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창립 20주년을 맞은 새길교회에 변혁할 것을 제안합니다.
교회란 예배드리는 곳, 기도드리는 곳,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써야 합니다. 지난해 이곳에서 설교하셨던 유니온신학대학 총장님께서 4복음서에서만 예수님이 40번이나 어려운 이웃을 도우라고 하셨다고 하셨는데 일일이 확인은 못했지만 아주 여러 번 말씀하신 것은 성경을 읽어보신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하니님은 그 헌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저는 제안합니다. 새길교회의 모든 헌금은 하나님께 바쳐진 후 48시간 안에 100% 모두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어줍시다. 그리고 교회의 조직을 극도로 줄여서 지출이라고는 집세와 2, 3명의 인건비 그리고 비품구입비 정도로 한정하고 그 운영비는 지금의 점심식사를 유료로 하든가 별도의 회비를 걷든가 해서 충당합시다. 지금까지 하나님께 드린 헌금을 오랫동안 무심히 여기저기 쓰다 보니 이제는 관행이 되었는데 잘못된 이 관행을 이제는 끊을 때가 된 것입니다.
헌금 100%를 온전히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어줌으로 사회에는 신선한 충격의 파문이 일게 하고 많은 교회의 양심에 경종을 울리며 도전이 되게 해 봅시다.
숲속에 난 두 갈래 길 중 어느 길로 갈 것인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망설임 없이 새로운 길을 선택해 봅시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