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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20: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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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최만자 자매 |
참고 : | 새길교회 |
1. 제헌절을 맞으면서
오늘은 제 46주년 제헌절입니다. 1948년 7월 17일 우리나라의 헌법이 처음 제정되어 어언 46년의 세월이 흐른 것입니다.
헌법의 양대 원리이자 본질은 인권보장과 권력분립입니다. 우리의 헌법도 이런 양대 원리에 생존권 사상이 합해져서, 민주적 헌법정신으로 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의 헌정사는 출발부터 정치세력 사이의 투쟁과 타협의 산물이 되는 비극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처음에 내각책임제의 권력구조로 제시된 헌법 조문이, 이승만의 "내각책임제 아래에서는 어떤 지위도 받지 않겠다"는 주장 때문에 단지 30분만에 수정되어 대통령 중심제로 제출 통과된 것입니다. 그 외에도,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연임제한 철폐 규정을 만들어 이승만 종신 집권을 기도한 54년의 소위 사사오입 개헌이라든가, 72년 독재 개발논리와 국가안보 평화통일 논리를 강화하여 영구적인 독재를 꿈꾼 유신헌법의 제정 등의 예를 보면, "헌법은 여러 정치세력 사이의 투쟁과 타협의 산물이다"라는 말이 우리의 헌정사에 참으로 잘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를 볼 때 우리의 헌법이 처음 제정되던 그 때는 우리 민족에게 매우 중요한 시점이었습니다. 민족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한없이 제시하고, 정의롭고 민주적인 법을 세워 공의로운 정치사를 만들 수 있는 근원적 힘을 제공할 수 있는 원천을 만들어야 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헌법 제정의 배경은 권력욕을 잠재우고 왜곡된 정치적 행태를 바르게 시정해 줄 수 있는 민족 정치 발전의 동력이 될 자리를 상실하게 하였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그런 힘을 주는 자리는 개헌반대 투쟁의 역사들로부터 얻을 수 있을 뿐입니다.
2. 성서의 법 정신
이러한 우리 현실과 성서 이야기는 참 대조적입니다. 성서에는 모세 오경을 중심으로 많은 법전들이 있습니다. 초기 법전인 계약법전을 중심으로 보면, 성서의 법은 철저히 약자의 보호에 있습니다. 성서가 말하는 약자는 노예, 가난한 자, 고아, 과부, 나그네 등이며 하나님은 그들의 후원자라고 합니다. 안식일 법을 예로 들더라도, 그 법은 노예들의 쉼을 위해 제정된 법입니다. 주인이야 마음대로 쉴 수 있지만 종들은 법적 제도가 없으면 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남종, 여종, 가축 그리고 유하는 손님까지 모두 쉬라는 것입니다. 이 안식일 법이 안식년으로, 그리고 마침내 희년법으로 발전되어 노예 해방 법을 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서의 이 약자 보호법은 그 제정의 동기가 매우 독특합니다. 고대 근동세계는 사실 거의 모두 약자 보호법을 갖고 있으나 이스라엘의 법이 독특하다는 것은 그들의 역사 신학적 동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약자를 보호하는 것은 그들의 애굽에서의 종살이 경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네 형제를 절대 종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네가 애굽서 종살이하였고, 그 형제도 야훼께서 동등하게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해방시킨 자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나그네를 돌보라. 왜냐하면 너도 애굽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라"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철저히 자기들의 불행한 과거 역사의 반복을 단절하는 윤리에 근거한 법 제정을 하고 있습니다. 애굽의 사회가 가졌던 지배-피지배의 구조들, 특정계급에 의하여 다수 민중이 착취, 억압당하는 이민자와 노예에 대한 부당한 대우들을 경험하였고 그것에 대한 분노는 복수의 차원을 넘어서서 자신의 미래 역사에 결코 그러한 부당함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의지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우리 역사는 이와는 너무나 차이가 납니다. 일제 억압의 역사를 경험하였음에도 지배-피지배의 구조를 단절하기는커녕, 동족 억압자의 자리에 올라가 동족을 다시 억압하는 자로 행세한 것입니다.
3. 이스라엘 법정신의 고향
사실 이스라엘 법은 대체로 후기에 제정된 것들입니다. 즉, 왕정체제 속에 살아가면서 제정된 법들입니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그들이 사회적 모순을 발견하고 새로운 법을 제정할 때는 언제나 그들 법의 이상을 옛 광야시절에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를 탈출 공동체로부터 광야(유랑) 공동체, 그리고 정착 공동체로 부른다면, 바로 그들이 방황하던 유랑시절의 그들의 이상을 투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광야는 훌륭한 법을 제정할만한 곳은 아닙니다. 오히려 생존적 위협 - 목마름과 굶주림, 그리고 질병 - 과 지도력간의 심한 갈등이 표출되던 곳이었습니다. 또한, 그런 가운데서도 그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은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광야생활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 곳은 큰 의의를 지니는 곳이 됩니다. 그들은 애굽을 탈출해 나온 후 새로운 공동체를 위한 비전을 광야생활 동안에 형성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초기 공동체를 초기 평등공동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그들의 이상이 거기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광야생활 동안 그들이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루기 위하여 고민한 문제들은 어떻게 각각인 부족들을 잘 연합하여 연합공동체로 만들 것인가, 바로의 체제에 굳어진 사람들이 어떻게 체질을 개선하고 자율적이며 책임 있는 존재로 설 수 있을 것인가, 강압하는 지도력, 영웅주의적 일개 지도력의 통제 아래 있던 사람들이 강압적인 국가권력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자율적 지도력을 창출해 낼 수 있겠는가, 그리고 새롭게 대두된 여성의 지도력을 어떻게 공적 지도력으로 내세울 것인가, 불안정한 경제적 상황에서 자급자족을 위한 경제행동의 필요성, 질병과 재앙, 인구부족 등으로 위협받는 상황에서 적당한 위생의 문제처리 등과 같은 제반 현실적 문제였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제정된 법들이 모세 오경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양한 구성원들의 경험을 '포괄하는' 패러다임으로의 전환과 이상적인 지도력의 창출, 그리고 사회 경제적 평등의 추구와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우리가 희년법의 예를 든다면, 희년법은 경제적 평등과 인권을 보장하려는 법입니다. 이 법이 제정된 시기는 B.C.687-642 혹은 B.C.597-586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법의 정신은 광야생활 동안에 제정한 안식일 법과 계약법전의 사상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애굽의 노예상태로부터 탈출하여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서 자신들의 과거 고난의 역사를 바탕으로 절대평등의 사회에 대한 꿈과 비전을 강력하게 희년법 속에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오늘의 의미
광야공동체 - 초기 평등공동체의 법 정신을 회상하는 이스라엘과 우리는 매우 대조적입니다. 역사가 잘못 진행될 때,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제도적 장치인 법이 오히려 권력의 편을 들게 만들어 온 것이 우리의 개헌사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스라엘처럼 우리의 후손들이 역사의 왜곡을 바로잡고자 할 때 거울로 삼을 수 있는 정의로운 한국법 정신의 근원지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겠습니다. 또 오늘 우리 교회도 마치 광야공동체 같은 모습입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왔고 또 갈등과 긴장의 현실 속에 평등하고 개혁적인 교회의 비전을 애써 찾고 있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의 시작이 후대에게 자신들의 공동체를 비춰볼 수 있는 근원적 자리가 되게 하기 위하여, 제도 자체보다도 얼마나 사람을 사랑하고 생명력 있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공동체인가를 드러내어야 할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각자의 삶의 차원에서도 자기성찰의 근원이 되는 자리를 가질 수 있기 바랍니다. 그 곳은 하나님과 자신의 은밀한 교통의 자리일 것이며, 언제나 자신을 성찰하여 더 풍성한 영성을 갖도록 하는 원천을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찾는 삶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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