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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지켜야 할 3가지

느헤미야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016 추천 수 0 2008.12.26 18:4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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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느13:15-31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20061015 
<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

프랑스의 소설가 로맹가리(Romain Gary)가 지은 ‘가짜(Le Faux)’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주인공 S는 진품에 대한 집착이 대단했습니다. 그런 집착으로 그는 엄청난 가격을 지불하고 산 바레타의 그림을 가짜라고 한낱 휴지조각으로 만듭니다.

그런 모습이 그가 진실한 사람임을 웅변해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절대 속이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아름다운 추구이고 그런 사람은 비교적 진실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너는 절대 속이지 말라!”는 마음을 가지고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겉으로는 가장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진실함이 결핍된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은 죄 많은 여인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죄가 없는 거룩한 사람으로 결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진품을 향한 추구를 가지고 바레타의 그림을 무참하게 짓밟은 S는 그 진실의 화살에 자신이 맞게 됩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그토록 자랑하던 진품 중의 진품인 자신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가 바로 가짜 모조품이란 것을 알게 됩니다. 아내가 코를 수술한 것입니다. 그는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진품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못하고 흠잡을 데 없는 아내와 이혼합니다. 그래서 돌아온 것은 불행과 외로움과 허망함뿐이었습니다.

진품에 대한 S의 惻つ?결벽증은 오히려 진실함의 지나친 결핍증을 나타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진실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진실함을 향해 달려갈 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진실함의 추구는 필요하지만 우리가 먼저 추구해야 할 것은 ‘남의 진실’이 아니라 ‘나의 진실’입니다. 우리는 남에게 진실함을 요구하기보다는 먼저 나에게 진실함을 요구해야 합니다.

자신이 남을 얼마나 많이 속이며 살고 있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남이 어떤 사실을 속였다고 그에게 무섭게 돌을 던지고 비난을 화살을 쏘면 결국 그 화살은 되돌아와 자신의 행복을 망치게 됩니다. 남이 진실하지 못하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사실은 제일 진실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비난하는 것은 자신이 진실하다는 것을 전제로 비난하는 것인데 사실 그것처럼 거짓말은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거짓말 대회가 있었습니다. 그 대회에서 마지막 연사가 나와서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거짓말 대회에 나왔지만 자신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태어나서 이때까지 한 번도 거짓말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거짓말은 정말 못합니다. 주위에서 자꾸 대회에 나가보라고 해서 나온 것인데, 저는 거짓말을 정말 못하기 때문에 그만 내려가겠습니다.” 결국 그 사람이 1등을 했다고 합니다.

그 얘기는 남이 거짓말쟁이라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진짜 최고 거짓말쟁이라는 얘기입니다. 미국 정신과 의사 제럴드 젤리슨 박사는 사람들은 평균 8분에 한번씩 거짓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만큼 거짓말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알고도 짓는 죄가 있고 모르고도 짓는 죄가 있습니다. 그처럼 거짓말도 알고 하는 거짓말이 있고 모르고 하는 거짓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그런 인간의 실상을 깨닫고 우리는 남의 허물을 파헤치고 비난하는 삶을 지극히 자제해야 합니다. 남의 허물을 파헤치고 무너뜨리는 것은 결국 나의 행복을 파헤치고 무너뜨리는 행위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진실입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내가 보다 진실해지는 것이고, 가장 중요한 개혁 과제는 나 자신을 개혁하는 것입니다.

< 성도가 지켜야 할 3가지 >

오늘 본문은 우리가 진실하고 거룩한 삶의 축복을 얻기 위해 우리가 꼭 지켜야 할 것을 몇 가지 도전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느헤미야 13장은 느헤미야의 종교개혁이 기록된 장입니다. 느헤미야는 종교개혁을 하면서 가장 먼저 십일조 생활을 강력히 권면했습니다(10-14절). 그 다음으로 강력히 권면한 것이 본문 15-22절 말씀에 나오는 주일성수입니다.

본문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페르시아에서 귀환한 후 그는 안식일에 민정을 살피러 나갔는데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 단을 운반하고, 여러 짐을 지고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물건을 팔고 있었습니다. 또한 본문 16절 말씀을 보면 이방인 두로 상인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안식일에 물고기와 각종 물건을 팔았습니다.

그처럼 안식일을 범하는 모습을 보고 느헤미야는 본문 17절 말씀을 보면 먼저 리더 그룹에 속하는 귀인들부터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고 심하게 꾸짖고, 본문 18절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망한 것도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키도록 어떤 조치를 취했습니까?

본문 19절 말씀을 보면 느헤미야는 안식일에 예루살렘 성문을 닫고 성문마다 자신의 심복들을 2-3명씩 배치해서 성 안으로 아무 짐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고, 성밖에서 진을 치고 잠을 자는 장사꾼들에게 다시는 성 밑에서 잠자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본문 22절에서 레위 사람들에게 몸을 정결케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로 거룩하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왜 느헤미야가 안식일을 지키도록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까? 그것은 안식일을 지키는 삶이 축복된 삶의 기초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삶은 축복의 탑을 높게 쌓는데 가장 중요한 기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삶은 단순히 일을 하지 말라는 뜻보다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라는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을 오해하면 주일에 식당에 간다고 “주일을 범했다!”고 정죄하게 됩니다. 물론 우리가 주일에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으면 그 주인들이 주일을 범하게 하는 죄를 짓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지나치고 더 나아가 주일에 물건을 샀다고 정죄하면 바리새인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바리새인의 마인드를 가지면 주일에는 식물인간처럼 집에서 누워 있어야 합니다. 또한 주일에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운전기사를 일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서울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토요일 저녁에 도시락 두 개 싸들고 교회로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일에 식당에 가지 않고 버스를 타지 말라!”고 하는 것은 주일의 더 깊은 의미를 망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실 주일을 지키라는 명령에는 세상에서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님 안에서 정리하고, 돈과 성공이 최고라는 생각을 버리게 하고,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영적으로 높이 자라게 하고, 결국 축복해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무엇을 하지 말라!”는 차원에서 주일을 지키지 말고 주일을 흐트러진 영혼을 주 안에서 새롭게 가다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긴밀하게 회복하는 날로 삼아야 합니다.

어떻게 얇은 대나무가 높이 자랄 수 있습니까? 대나무에 마디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삶은 우리 영혼의 마디와도 같습니다. 그 영적 마디가 있어야 우리는 영적 거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일을 지키는 삶처럼 복된 삶은 없습니다.

주일은 이 땅에서 천국 삶을 연습하는 날이고, 주일을 지키는 삶 자체에는 이런 신앙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저의 삶에 우선순위로 두고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언제든지 순종하길 원합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행동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주일을 지키는 삶입니다. 그처럼 힘써 주일을 지킬 때 하나님은 참된 안식과 평화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어느 날, 한 믿음 좋은 청년이 회사에 취직했는데 마침 그 회사에서 주일에 신입사원 MT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주일을 지키면 사장도 싫어하고, 회사 분위기를 깨뜨릴 것 같고, 자신의 신앙을 티내는 것 같아서 고민하다가 결국 용기를 내어 사장에게 주일을 지키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때 의외로 믿지 않는 사장이 쉽게 허락을 해주었고, 평소에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그런 상황에서 주일을 지키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것 같지만 평소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주일을 힘써 지키면 그것이 사는 길이고 얻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에 최선을 다해도 주일 지키는 문제로 회사에서 해고하면 그 나름대로 하나님께서 다 살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그처럼 믿음 생활할 때 끝내주게 해야 하나님이 책임져주시지 대충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실 도리도 없고 이유도 없게 됩니다.

마귀는 지금도 수시로 찾아와서 이방원처럼 노래할 것입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바로 그때 우리는 정몽주처럼 주님을 향한 일편단심의 마음을 가지고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영혼이 잘 되는 길이고, 그처럼 영혼이 잘되면 그 다음에 범사가 잘되고, 동시에 육신의 건강도 주어질 것입니다.

또한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의 보다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관리를 잘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게으른 것은 죄라고 알지만 너무 일에만 매달리는 것을 죄로 아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그래서 가끔 성공 제일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쉬지 않고 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효과적으로 일할 수도 없고, 창의력이 나오지도 않고,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고 쉴 때는 확실하게 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쉬는 것은 운전할 때 기어를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기어를 바꿀 때는 잠시 멈칫 하는 것 같지만 그것이 있어야 더 빨리 달릴 수 있고, 더 힘 있게 달릴 수 있고, 더 안전하게 달릴 수 있습니다. 저도 휴식 때에 다시 일어서는 힘을 얻고, 그때 새로운 생각이 떠올라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가끔 고난을 허락하십니까? 고난의 기간은 일종의 쉬는 기간입니다. 우리가 쉬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강제로 쉬게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시간 관리를 잘하고, 항상 하나님의 일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그처럼 우리가 주일을 잘 지키고 하나님의 일을 우선순위에 둘 때 우리의 삶은 기초가 튼튼한 견고한 삶이 될 것입니다.

2. 가정을 지켜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종교개혁을 하면서 가장 마지막으로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지시켰습니다. 그에 관한 말씀이 바로 본문 23-3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본문 23-24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았는데/ 그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당시 유다 사람들 중에는 이방 여인과 결혼을 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 중에 유다 말을 못하는 자녀들이 많았습니다. 그처럼 자녀들이 히브리말을 못한다는 것은 히브리어로 된 성경을 읽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이고, 그 말은 결국 하나님 말씀을 잃어버리고 신앙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본문 25절 말씀을 보면 느헤미야는 통혼한 사람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두어 사람을 때리고 그 머리털을 뽑고 다시는 통혼을 하지 않도록 맹세시켰습니다. 그러면서 본문 26절 말씀에서 이방 여인 때문에 타락한 솔로몬 왕이 실패를 얘기하며 이방 여인을 취해서 하나님께 죄를 짓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통혼은 백성들뿐만 아니라 제사장 가문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본문 28절 말씀을 보십시오.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내가 쫓아내어 나를 떠나게 하였느니라.” 호론 사람 산발랏은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을 방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최고 리더인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가 산발랏의 사위가 된 것을 알고 느헤미야는 그를 사마리아로 쫓아냈습니다.

그런 모습은 대제사장 엘리아십 가문과 일부 사람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개혁을 밀어붙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자기 힘으로만은 할 수 없음을 깨닫고 본문 29-31절 말씀에서 하나님께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힌 그들의 행위를 기억해달라고 기도하고, 반면에 자신이 이방인을 떠나게 하고 거룩한 삶을 위해 노력한 것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왜 느헤미야가 이방인과의 통혼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했을까요? 그것은 그가 이방인을 멸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방인과의 결혼을 통해서 자녀들이 히브리말도 못하게 되는 등 민족의 정체성과 신앙심을 잃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 가정을 하나님의 가정으로 지켜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도 우리 가정을 신앙으로 잘 지켜야 합니다. 사실 나라와 민족과 교회의 회복은 근본적으로 모두 가정 회복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를 신앙을 가진 자녀로 잘 양육하고, 자녀와 손자의 결혼을 위해 지금부터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식구들이 모두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힘쓰고, 자녀를 기도로 키우고, 식구들에게 믿음의 말과 축복의 말을 많이 해줌으로 가정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요새 가장 큰 사회문제는 가정이 세속적인 세태에 물들어 깨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세속적인 것이 우리 가정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우리 가정을 잘 지켜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TV도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특히 연속극은 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연속극을 보면 바람피우는 얘기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그런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바람피우는 것이 마치 일반적인 얘기 같습니다. 말도 얼마나 자극적인 말들이 많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그런 것을 보고 들으면 같이 물들게 됩니다. 사실 그런 연속극들이 영혼을 망치고 가정을 파괴하는 가장 큰 주범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로부터 우리 가정과 자녀를 지켜낼 수 있어야 합니다.

3.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지한 것은 영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지키고 자신의 성도다움을 지키라는 뜻도 있습니다. 왜 당시 유다 백성들이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했습니까? 신앙보다는 외모에 현혹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외모와 세상적인 것들 때문에 신앙을 팔아버리는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적인 것들로 우리 자신의 영혼을 파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요새 사람들은 외모를 중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우리의 진실과 거룩함에만 응답을 하실 것입니다. 예배도 중요하고 기도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중심이 하나님께 향해 있는 것입니다. 예배할 때 정말 하나님을 사모하며 예배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나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어느 날, 한 50대 부자 여인이 심장마비로 쓰러졌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끝난 줄 알았는데 수술 도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네 인생은 끝이 아니다. 앞으로 50년은 너끈히 더 살 수 있다.” 갑자기 삶의 용기가 생겼습니다. 수술을 잘 마쳤습니다. 그러자 욕심이 생겼습니다. “이왕 입원한 김에 공사를 하자.”고 생각하고 얼굴을 팽팽하게 고치고, 배에 지방을 빼고, 코를 세우고, 턱을 갸름하게 계란형으로 깎았습니다.

수술 몇 달 후, 그분은 마지막 통원치료를 마치고 미모의 얼굴을 가지고 기분 좋게 병원 문을 나섰다가 병원 입구에서 달려오는 앰뷸런스 치어 죽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항의했습니다. “하나님! 50년은 더 산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얘야! 너무 뜯어 고쳐서 내가 못 알아 봤구나!” 너무 외모를 중시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우리 하나님은 오직 진실과 거룩함에만 응답하실 것입니다.

또한 통혼을 금지하라는 말은 부정적이고 세상적인 것에서 떠나 자신을 지키라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잘못된 것과 더러운 것을 버려야 합니다. 항상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부정적인 시각을 버리고, 실패의 흔적과 기억들을 버리고, 불평과 원망을 자주 내뱉은 입술을 버리고, 무엇보다 세상적인 욕심과 헛된 자존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 것을 버리지 않으면 창공을 나는 복된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축복의 세계를 만끽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사는 가장 큰 이유는 털어내야 될 것을 털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자를 것은 과감히 자르고 버릴 것을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쾌락도 버리지 못하고 천국의 복락도 함께 누리고 싶다고 하면 진정한 천국의 행복한 삶은 펼쳐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천국에는 공동 우승이나 무승부가 없습니다. 회색지대에 있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고 축복도 없습니다. 이제는 과감히 세상에 매인 끈을 과감히 자르고 구경만 하던 신앙생활을 벗어 던지고 오직 하나님께 우리의 중심과 관심을 다 실어 드려야 합니다. 그처럼 인생의 주사위를 하나님 편으로 던지는 사람은 결코 실패가 없을 것입니다.

< 항상 빛 가운데 행하십시오 >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죽은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죽어도 하나님이 기억하시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잊혀진 사람입니다. 느헤미야 13장을 보면 느헤미야는 종교개혁을 하면서 여러 번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소서!”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생색을 내려는 말이 아니라 힘든 개혁 작업을 할 때 자신에게 힘을 주시고 좋은 열매가 나타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 느헤미야의 땀과 기도와 거룩한 추구를 기억해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거룩한 삶을 살려고 애쓸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도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거룩한 느헤미야가 되는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느헤미야와 같은 집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그런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를 경고하고 계십니다. 최근 불거진 북핵 문제도 그런 경고의 음성입니다. 지금 하나님 앞에 눈물로 회개하는 백성들이 필요합니다. 지금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무감각한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이제는 어떤 무서운 경고를 듣고 징조가 있어도 별로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런 때가 가장 큰 위기의 때입니다.

일전에 IMF로 경고하신 하나님께서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으면 그보다 10배 무서운 채찍을 드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깨어서 우리 모두 자기 개혁에 나서야 합니다. 개혁은 힘든 일입니다. 무엇보다 나 자신 안에 형성된 기득권과 자존심을 깨기가 힘듭니다. 그래도 하루 속히 잘못된 틀을 깨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억해주셔서 가장 최선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이제 빛 가운데 행하고 거룩함과 성결함을 추구하고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새롭게 하십시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사단이 힘을 잃고, 우리의 얼굴에도 순교하던 스데반과 40일 금식기도 후에 시내산에서 내려오던 모세의 얼굴이 나타난 광채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 광채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지금 죄악이 넘치는 때입니다. 이런 때에 무엇보다 주일을 거룩하게 잘 지키고, 가정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으로 지키고, 나 자신의 영혼과 성도다운 모습을 잘 지킴으로 어둔 세상을 밝히는 느헤미야와 같은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샛별교회)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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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1 열왕기하 우리와 함께한 자가 많으니라 왕하6:15-19  조용기 목사  2008-05-28 2177
930 열왕기하 병고침 받는 7단계 왕하5:8-14  조용기 목사  2008-04-11 2564
929 열왕기하 머나먼 요르단 강 왕하5:1-14  한성수 목사  2003-07-24 4609
928 열왕기하 시디기아의 말로 왕하25:1-7  한태완 목사  2007-11-07 2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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