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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에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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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2004-12-12 열린교회 |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대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스더 4:16)
I. 본문의 배경
인생이 어두운 밤은 신자나 불신자나 모두 지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신자와 불신자는 현저하게 다른 방법으로 인생의 밤을 지난다. 특별히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밤을 지나는 특별한 방식이 있다.
본문은 바사(페르시아) 시대에 유대민족이 당한 어두운 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본문은 아하수에로 왕(크세르 크세스) 치하를 배경으로 하는데, 기록에 따르면 아하수에로 왕은 변덕이 심하고, 폭력적인 왕이었다.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가 하만의 유대인 말살 음모를 용인해 주었고,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는 절대 절명의 어두운 밤 속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II. 이스라엘 민족의 어둔 밤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런 역사의 밤이 찾아온 이유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쇄신시키고 싶어 하셨다는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비록 바사에 살고 있지만, 바사에 속한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 만들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이 위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쇄신의 기회로 삼고자 하셨다. 이스라엘 민족의 위기를 인지하게 된 모르드개는 왕후 에스더를 찾아와, 그녀로 하여금 왕을 찾아가 왕의 칙령을 거두어 달라고 고할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당시 왕궁에는 부름을 받지 않고 왕에게 나아가는 자는 왕의 금홀을 받지 못하면 죽임을 당하는 규례가 있었다. 그러므로 에스더가 왕을 찾아가 고하는 것은 목숨을 건 일이었다.
III. 믿음의 사람이 그 밤을 지나는 방식
우리는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역사의 어두운 밤을 헤쳐나간 방식을 살피며 믿음의 사람이 어두운 밤을 지나는 방식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두은 이 시대 속에서 역사의 주역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야 할 방식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하급관리인 모르드개와 왕 앞에 마음대로 나설 수조차 없는 힘없는 왕후 에스더를 사용하셔서, 정치적으로 막대한 힘을 행사하고 있던 하만에게 대항하게 하셨고, 궁극적으로 유대 민족을 위기에서 건져내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께 이렇게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A. 결단
에스더는 자신의 민족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음을 깨달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음을 깨달았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이 자신들이 처한 이 위기에 개입하지 않고서는 아무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였기에 그는 온전히 하나님을 붙들고 죽음을 각오하고 왕 앞에 나아갈 것을 결단했다. 우리가 만나는 인생의 어두운 밤도 이러한 결단을 요구한다. 우리는 주변에서 결단이 없기에 인생의 어두운 밤을 헤쳐나오지 못하고 지리멸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본다. 인생의 위기를 헤쳐 나온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믿음의 결단이 있었고, 그 결단대로 살아나가는 올곧은 의지가 있었다. 모세를 보라.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한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그에게는 바로 공주의 아들로서 누리는 모든 영화를 포기하고, 언약의 백성으로 살고자 하는 결단이 있었다. 우리가 인생 속에서 만나는 작은 어려움들은 신앙적인 태도들로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특별한 인생의 위기에서는 늘 생애를 건 결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결단은 때로 우리의 인생을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돌려놓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생애적인 결단을 통해 신앙의 올바른 길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인생의 어두운 밤이 계속되는 것은 우리가 결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담배하나 끊기 위해서도 피나는 결단이 필요한데, 어찌 불신앙의 삶의 여정을 돌이키는데 결단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인생의 어두운 밤을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 전부를 걸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올인(All In)의 마음이다. 미적거리며 삶과 타협하고, 진통제처럼 죄의 낙을 복용하며 인생의 어두운 밤을 견디며 살아가려 해서는 하나님의 백성의 진정한 영광을 누릴 수 없다. 믿음의 사람들은 결단을 내려야 할 때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만이 역사를 고치고 상황을 고치고 위기를 고치며,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
B. 기도(히 11:24)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수산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과 함께 3일간 금식하며 기도할 것을 요청했다. 이것은 상황이 매우 급박하였고, 집중된 기도가 필요하였기 때문이었다. 금식기도가 주는 최고의 이점은 집중이다. 우리는 흔히 금식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려고 하는 것으로 오해 하는데, 금식은 자신에게 미치는 내적인 효과를 위해 하는 것이다. 즉, 에스더는 유대민족이 집중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했기 때문에 금식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침체에 빠진 시간을 줄이며, 하나님께 집중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인생의 어두운 밤에서 오랫동안 지체하는 것은 집중된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인생의 어두운 밤을 지나는 사람들을 멀리 하지 않으신다. 그 분의 병든 자를 찾아오시고, 눈먼 자를 고치치며, 인생의 햇빛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셨다. 그래서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고, 그들의 죄를 씻기시고 영혼의 고통을 그치게 해 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가까이 느낄 수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인생의 어두운 밤을 지나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인생의 어두운 밤 속에서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한 인생의 밤중을 지날 때, 우리는 특별히 더 기도해야 한다. 언제나 기도의 생애를 살아가신 예수님이셨지만, 그런 그 분도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특별히 더 간절히 기도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C. 용기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 고백했다. 하나님께 의존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은 모두 약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약한 사람들이 바로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들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므로 해서 잃어버리게 될 것이 무엇이 있는가? 있다 해도,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부귀나 영화가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이 나에게서 빼앗아 갈 수 있는 것은 모두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는 생각으로, 담대하고 용기있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신다면 우리는 인생의 어떤 길을 걸어간다 할지라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시고 우리와 함께 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2004-12-12
I. 본문의 배경
인생이 어두운 밤은 신자나 불신자나 모두 지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신자와 불신자는 현저하게 다른 방법으로 인생의 밤을 지난다. 특별히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밤을 지나는 특별한 방식이 있다.
본문은 바사(페르시아) 시대에 유대민족이 당한 어두운 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본문은 아하수에로 왕(크세르 크세스) 치하를 배경으로 하는데, 기록에 따르면 아하수에로 왕은 변덕이 심하고, 폭력적인 왕이었다.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가 하만의 유대인 말살 음모를 용인해 주었고,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는 절대 절명의 어두운 밤 속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II. 이스라엘 민족의 어둔 밤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런 역사의 밤이 찾아온 이유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쇄신시키고 싶어 하셨다는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비록 바사에 살고 있지만, 바사에 속한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 만들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이 위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쇄신의 기회로 삼고자 하셨다. 이스라엘 민족의 위기를 인지하게 된 모르드개는 왕후 에스더를 찾아와, 그녀로 하여금 왕을 찾아가 왕의 칙령을 거두어 달라고 고할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당시 왕궁에는 부름을 받지 않고 왕에게 나아가는 자는 왕의 금홀을 받지 못하면 죽임을 당하는 규례가 있었다. 그러므로 에스더가 왕을 찾아가 고하는 것은 목숨을 건 일이었다.
III. 믿음의 사람이 그 밤을 지나는 방식
우리는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역사의 어두운 밤을 헤쳐나간 방식을 살피며 믿음의 사람이 어두운 밤을 지나는 방식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두은 이 시대 속에서 역사의 주역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야 할 방식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하급관리인 모르드개와 왕 앞에 마음대로 나설 수조차 없는 힘없는 왕후 에스더를 사용하셔서, 정치적으로 막대한 힘을 행사하고 있던 하만에게 대항하게 하셨고, 궁극적으로 유대 민족을 위기에서 건져내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께 이렇게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A. 결단
에스더는 자신의 민족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음을 깨달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음을 깨달았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이 자신들이 처한 이 위기에 개입하지 않고서는 아무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였기에 그는 온전히 하나님을 붙들고 죽음을 각오하고 왕 앞에 나아갈 것을 결단했다. 우리가 만나는 인생의 어두운 밤도 이러한 결단을 요구한다. 우리는 주변에서 결단이 없기에 인생의 어두운 밤을 헤쳐나오지 못하고 지리멸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본다. 인생의 위기를 헤쳐 나온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믿음의 결단이 있었고, 그 결단대로 살아나가는 올곧은 의지가 있었다. 모세를 보라.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한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그에게는 바로 공주의 아들로서 누리는 모든 영화를 포기하고, 언약의 백성으로 살고자 하는 결단이 있었다. 우리가 인생 속에서 만나는 작은 어려움들은 신앙적인 태도들로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특별한 인생의 위기에서는 늘 생애를 건 결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결단은 때로 우리의 인생을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돌려놓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생애적인 결단을 통해 신앙의 올바른 길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인생의 어두운 밤이 계속되는 것은 우리가 결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담배하나 끊기 위해서도 피나는 결단이 필요한데, 어찌 불신앙의 삶의 여정을 돌이키는데 결단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인생의 어두운 밤을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 전부를 걸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올인(All In)의 마음이다. 미적거리며 삶과 타협하고, 진통제처럼 죄의 낙을 복용하며 인생의 어두운 밤을 견디며 살아가려 해서는 하나님의 백성의 진정한 영광을 누릴 수 없다. 믿음의 사람들은 결단을 내려야 할 때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만이 역사를 고치고 상황을 고치고 위기를 고치며,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
B. 기도(히 11:24)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수산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과 함께 3일간 금식하며 기도할 것을 요청했다. 이것은 상황이 매우 급박하였고, 집중된 기도가 필요하였기 때문이었다. 금식기도가 주는 최고의 이점은 집중이다. 우리는 흔히 금식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려고 하는 것으로 오해 하는데, 금식은 자신에게 미치는 내적인 효과를 위해 하는 것이다. 즉, 에스더는 유대민족이 집중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했기 때문에 금식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침체에 빠진 시간을 줄이며, 하나님께 집중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인생의 어두운 밤에서 오랫동안 지체하는 것은 집중된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인생의 어두운 밤을 지나는 사람들을 멀리 하지 않으신다. 그 분의 병든 자를 찾아오시고, 눈먼 자를 고치치며, 인생의 햇빛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셨다. 그래서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고, 그들의 죄를 씻기시고 영혼의 고통을 그치게 해 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가까이 느낄 수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인생의 어두운 밤을 지나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인생의 어두운 밤 속에서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한 인생의 밤중을 지날 때, 우리는 특별히 더 기도해야 한다. 언제나 기도의 생애를 살아가신 예수님이셨지만, 그런 그 분도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특별히 더 간절히 기도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C. 용기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 고백했다. 하나님께 의존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은 모두 약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약한 사람들이 바로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들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므로 해서 잃어버리게 될 것이 무엇이 있는가? 있다 해도,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부귀나 영화가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이 나에게서 빼앗아 갈 수 있는 것은 모두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는 생각으로, 담대하고 용기있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신다면 우리는 인생의 어떤 길을 걸어간다 할지라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시고 우리와 함께 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200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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