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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2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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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3년 3월 23일 주일2부설교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서론>
「야웨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시리즈의 설교중 제 첫째날 설교를 여러분께 해드리겠습니다. 뉴질랜드는 양의 수가 인구수보다 많습니다. 뉴질랜드의 인구는 약 400만인데 양은 약 7천만 마리가 됩니다. 그리고 또 그곳에는 목자가 필요없습니다. 전국토가 목초지이고 사나운 짐승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냥 양을 방목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습니다. 국토의 대부분이 메마르고 험해서 물이 귀하고 목초지가 많지 않으며 사나운 짐승도 많습니다. 그곳에는 목자의 도움이 없이 결코 양이 살아날수가 없습니다. 목초지와 샘물은 목자가 찾아내어야만 하고 밤낮으로 목자가 양무리와 함께 해야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보호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 인생은 이스라엘의 양들과 같습니다. 세상이 험한 광야와 같고 마귀의 사나운 공격이 언제나 우리의 삶을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여 주시는 목자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시편 23편에는 ‘야웨께서 우리의 목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야웨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0장 11절로 15절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그러므로 얼마나 놀라운 목자이신 것입니까? 우리를 잘 아시고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겠다고 주님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목자께서 우리를 어떻게 돌보십니까?
<본론>
1. 푸른 초장에 누이심
첫째로, 푸른 초장에 누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푸른 초장은 어디입니까? 갈보리 십자가 밑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려서 가꾸신 것이 바로 십자가 밑에 푸른 초장인 것입니다. 푸른 초장에는 우리가 먹고 자라날 수 있는 놀라운 은총의 축복이 있습니다. 푸른 초장에서 어떠한 은총을 우리가 받을수 있습니까? 우리는 푸른 초장 밑에 나가면 죄사함과 의의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죄사함과 의의 초장이 있습니다. 우리 이 세상에 사는 사람치고 죄없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본적이 있어요? 자기 죄는 감추고 남의 죄는 자꾸 파헤치지만 이 세상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 아닌 사람이 한사람도 없습니다. 자기의 죄는 뒷망태기에 담아놓고 남의 죄는 자기 앞망태기에 담아놓고 남의 죄만 자꾸 들여다 보고 ‘너는 죄가 있다. 저기에 있다’ 말하지만 자기 죄의 뒷망태기는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한 목자 예수님이 만드신 푸른 초장에 가면 그 보혈로 말미암아 이루어 놓으신 목초가 있습니다. 죄의 용서와 의와 영광의 목초인 것입니다.
성경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는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말한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5절에는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다고 했었습니다.
이 예수를 통해서 우리는 용서와 의와 영광과 화목을 얻는 놀라운 영양을 얻을수가 있습니다. 이 목초장은 또한 거룩한 목초장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목초장 밑에 가면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과 마귀를 다 내어 쫓으시고 거룩함과 성령충만을 주시는 그런 목자인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 이외에는 그런 목장은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마귀도 세상도 어림없습니다. 오직 그곳에서는 성령이 강물같이 흐르고 거룩함의 영광이 가득찹니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 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그 밑에 초장은 치료의 초장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하나님은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라고 했는데 치료하는 야웨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있는 초장에 치료의 목초가 자라게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다고 말했으며 저가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 마포대교구 박주용 안수집사님 간증을 들어 보니까 작년 12월 외출 도중에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정신이 혼미해져서 쓰러질 것 같이 그는 머리를 붙잡고서 ‘하나님 아버지 살려 주옵소서. 야웨 라파. 치료하는 하나님! 어린양을 구해 주시옵소서. 살려 주시옵소서’ 기도하고 곧장 연락해서 급히 병원에 실려가 CT촬영한 결과에 내출혈 진단이 나왔습니다. 뇌에 피가 가득하니 의사는 속히 뇌수술을 해야 한다며 터진 혈관을 찾으려고 1시간 30분 동안 뇌혈관 촬영을 했으나 찾지를 못했습니다. 허벅지 혈관에 캡슐을 넣어 뇌혈관까지 세밀하게 촬영하는 것인데 의사가 유난히 긴장하여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검사도중 40퍼센트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전날에도 한 사람이 그 촬영을 하다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사가 아무리 찾아봐도 머리속에 피는 고여 있는데 도무지 터진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피가 터지자 말자 우리 집사님이 ‘하나님 도와달라’고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고쳐 버린 것입니다. 피만 고여있지 혈관에 터진곳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사도 고개를 기우뚱 거리고 희안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3일만에 일반병실로 옮겼다가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3주만에 퇴원하고 나왔는데 그렇게 중한 뇌출혈을 체험하고도 장애가 하나도 없이 건강하게 나올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야웨께서 우리의 치료자가 되심을 알고 어린양을 돌보아 주옵소서. 야웨여 나를 치료해 달라고 위급한 중에 부르짖었을 때 주님께서 오셔서 치료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지만 기도하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 생활속에 나타나게 되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 또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형통의 초장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너무나 환경에 억압되어서 우리 마음이 가난의식, 패배의식, 절망의식으로 꽉들어 찹니다. 그래서 초장을 보지를 못합니다. 너무나 우리의 환경에 억압되어 가지고서 패배와 좌절과 절망 때문에 하나님이 예비한 초장을 보지 못하는데 매일같이 여러분 기도할 때 십자가 밑에 주님이 예비한 축복의 초장을 바라보고 기뻐하고 그 풀을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한 초장은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 말씀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 가서 아브라함의 복을 흠뻑 마음속에 받아 들여서 마음속에 가난의식, 저주의식, 패배의식, 절망의식을 싹 씻어내 버리고 우리 마음에는 아브라함의 축복과 그리스도가 주는 형통만 가득차 있게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잘못하면 하나님이 넘치도록 해주실 그릇이 없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내 생각만은 하나님 은혜를 통해서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통의 초장에 가서 그리스도의 약속의 형통의 풀을 먹고 우리는 마음속에 축복의 생각으로 가득차야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초장은 영생복락의 초장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했는데 우리가 다른곳에 가서 보면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지만은 십자가 밑에 가보면은 죽음은 삶의 시작입니다. 우리의 옛사람은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영광 가운데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복락의 초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웨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저가 나를 푸른초장에 누이신다고 했는데 오늘날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야웨 우리 주 예수께서 마련한 초장을 항상 기도로써 방문하고 거기에 주님이 예비한 오중복음의 은혜의 풀을 늘 마음속에 믿음으로 받아 먹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2.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심
둘째로, 우리의 목자는 우리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마음에 기갈이 다가오고 목마름이 다가옵니다. 행복과 평화의 기쁨의 목마름을 안가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마음속에 행복에 목마르고 평안에 목마르고 기쁨에 목마르고 축복에 목마른 것입니다. 누가 이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 7장 37절로 39절에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 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목마른 자가 예수님 밑에 와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마시면 배속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 납니다. 이 생수의 강은 바로 성령의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와서 구하여 생수의 강을 체험하면 그 생수의 강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생수의 강이 흐르면 우리의 가슴속에 의의 강물이 넘쳐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세속에 때묻고 죄악이 우리를 붙잡지 않습니까? 가는곳마다 죄악이 발목을 잡고 세속으로 우리는 때가 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으로 의롭게 살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생수를 마시면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의롭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디도서 3장 6절로 7절에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지 우리가 힘쓰고 애쓰고 노력하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고 성령의 능력을 간구하면 성령이 오셔서 우리의 모든 세속의 때를 씻어 버리고 죄악의 고리를 쇠고리를 다 꺾어 버리고 거룩하게 살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시시각각으로 성령의 의의 생수를 우리가 마셔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생수는 평강의 생수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염려와 근심 바람이 얼마나 불어오지 않습니까? 염려와 근심의 모래바람이 불어와서 우리 앞을 캄캄하게 만듭니다. 마음에 불안과 초조가 꽉 들어 찹니다. 그럴때도 주님 앞에 엎드려서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고 성령을 향하여 입을 넓게 열면 우리의 지각을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성령으로 우리 마음속에 채워주는 것입니다. 이 성령이 우리를 채워주는 평안 때문에 이 불안한 세상 속에서도 평안하게 살수 있고 불안을 극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목자가 생수를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목자장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희락의 생수를 주는 것입니다.
시편 16편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이세상에 기뻐할 것이 별로 많지 않지 않아요? 우리 인생들이 얻는 부귀, 영화, 공명을 통한 기쁨이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맙니다. 좋은 옷도 며칠입지 않으면 좋은옷으로 말미암은 기쁨은 사라집니다. 좋은 집에 들어가도 얼마 살지 아니하면 그 좋은 집이 갖다주는 기쁨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높은 지위도 얼마 안있으면 지위도 갖다주는 흥분과 기쁨도 사라지지요. 우리속에 세상의 기쁨이란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갖다주는 기쁨은 늘 계속하는 것입니다. 사라지지 않아요.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면서 성령이 우리 갖다주는 희락. 이것이 있어야 삶의 참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을 짓고 살아도 기쁨이 없으면 그 집이 무슨 유익이 있으며 좋은 옷이 행복을 갖다 주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는다 해도 물고 찢고 싸우고 미워하고 살면은 아무 의미 없잖아요? 마음속에 평안과 기쁨이 있어야 내용이 있는 것인데 이 기쁨은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이 오시면 성령이 생수를 마시고 마음속에 기쁨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자되신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주셔서 우리를 하늘 나라 체험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의의 생수가 흐르고 평강의 생수가 흐르고 희락의 생수가 흐르도록 우리 목자께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생수는 마시고 나면 목마르지 않습니다. 세상 물은 마시면 또 목마르고 또 목마르지만 주님이 주시는 생수는 끊임없는 행복과 기쁨과 만족을 갖다 주는 이러한 생수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에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냥 흘러 마르는 도랑물이 아니라 늘 솟아나는 생수가 된다. 이는 우리 목자되신 예수님이 우리 속에 주시는 성령의 생수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4장 3절에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가난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신다. 내 갈한 마음, 내 메마른 가슴에 시내가 흐르게 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우리 목자이신 예수께 나와서 주여 생수를 주시옵소서. 간구할 필요가 있고 주님은 이 생수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12장 3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기쁨으로 구원의 물인 예수 그리스도의 생수의 우물에서 우리는 성령의 생수를 받아 먹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여러분 주님이 주시는 성령의 생수는 포도주와 젖이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1절에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목마른 자가 물로 나오랬는데 그 물이 포도주와 젖이 되는 것입니다. 포도주는 취하면 즐거움을 주지 않습니까? 젖은 우리에게 영양분이 되지 않습니까? 취한다는 것은 여러분. 마음에 기쁨이 없는 곳에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으로 취하게 만들어 줍니다. 젖이란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마음에 영양실조가 되어 고통과 괴로움이 있는데 영양실조를 면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취할정도로 기쁨을 주시고 마음에 영양실조를 재하여서 건강한 심신을 가지고 살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목자가 하는 일입니다. 우리 목자가 계시고 목자가 이런일을 하는 것을 알면은 우리는 목자대신 예수께 나아가서 그를 구하면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너희가 없는 것은 구하지 아니함이라’고 했으며 ‘무엇인줄은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저는 우리를 푸른 초장에 누일뿐 아니라 쉴만한 물가에 뉘여 주시는 우리 주님이신 것입니다.
3. 영혼을 소생시킴
셋째로, 우리의 목자는 내 영혼을 소생시킨다고 말했습니다.
너무나 힘든일을 하고 지쳐 버렸거나 더위나 추위에 고생하면 기운을 잃어 버리고 사람의 마음이 완전히 퇴락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때 충분한 영양분과 휴식을 취하면 소생하지요. 엘리야 보십시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신을 섬기는 선지자 450명과 경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시무시한 스트레스를 받고 긴장 가운데서 기도하여 하늘에 불이 내려오게 해서 바알선지자들을 굴복시키고 그를 다 잡아 기손 시냇가에 내려가서 목을 쳐죽였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는 뛰어서 이스라엘로 돌아왔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그 아내 이사벨에게 구하매 이사벨이 엘리야에게 전갈을 했습니다. ‘네가 내가 친정에서 데려온 선지자 450명 바알을 목을 쳐서 죽인것처럼 내일 너도 그들중에 하나처럼 될 것이다. 내가 너의 목을 처버리겠다’ 그 위대한 주의 종 엘리야도 스트레스에 걸리니까 그만 마음이 낙심하고 지치고 하나님 영광을 잃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사람이 심히 스트레스에 걸리면 신앙도 유지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 말을 듣고 놀래서 일어나서 달아났었습니다.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에 앉아서 죽기를 구하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나무 아래서 누워서 자니까 하나님의 천사가 와서 깨어서 구운 떡과 물을 주면서 먹고 마셔라. 그다음 또 먹고 마시고 자니까 또 깨워 일으켜서 너는 이떡을 먹고 마셔라. 네가 먼길을 가야 되기 때문에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완전히 스트레스에 걸려서 마음이 우울해지고 좌절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소생시켜 주는 길을 여기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많이 지치고 우울하고 스트레스에 걸리며 자고 먹고 마시는 길밖에는 다른 더 좋은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로뎀나무 밑에서 자고 그리고 떡을 먹고 물을 마시고 또 자고 떡을 마시고 물을 마시고 소생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지치고 피곤하고 낙심한 우리들을 소생시켜 주시는 역사를 합니다. 예수님 목자는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소생시킵니까? 성령을 보내셔서 기도를 하게 하므로 소생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사야 57장 15절에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성경을 보내셔서 세속에 찌들어지고 죄악에 빠진 우리들을 회개하고 통회하고 자복하게 하시고 성령이 임하여서 우리의 영과 마음을 소생시켜 주신 것입니다. 다시 살아 일어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아예 소금이 절인 김장김치가 시들어 진 것 여기에다가 무엇을 넣어서 도로 살아나게 한것처럼 우리가 시들어진 우리의 심신을 도로 살려놓게 하는 성령의 역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 생각과 마음을 염려와 근심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다시 살려서 지켜 주시고 소생시켜 주시는 그런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목자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소생시켜 주시고 말씀의 떡을 먹는 것을 통해서 우리를 소생시켜 주는 것입니다. 기도는 여러분 우리가 생수를 마시지요. 엘리야가 물을 마신 것처럼 그 다음 떡을 먹은 것처럼 주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소생시켜 주는 것입니다.
시편 107편 19절로 20절에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고 말했습니다. 말씀은 우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 마음을 고치시고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생명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말씀을 가까이 해야 됩니다. 여러분 병들면은 밥맛이 없잖아요. 오늘날 성경이 맛이 없는 사람은 병들었다 그 증거인 것입니다. 감기가 들리거나 몸살이 나면 아무리 산해진미라고 해도 맛이 없습니다. 오늘 성경이 얼마나 달고 꿀송이 보다 더 단데 성경이 읽기 싫어요. 성경읽으면 ‘아휴~ 하나님이 잔소리가 왜 이렇게 많으신가 짜증이 나요’ 그건 자기가 병들었어요. 하나님이 잔소리가 많은 것 아닙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은 사람은 마음이 병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영양실조가 걸리고 더 악화가 되지요. 이러므로 말씀의 떡을 먹어야 우리가 소생하게 되지요.
시편 119편 25절에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으나 말씀이 오면 다시 소생하게 된다.
요한복음 6장 35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것이라.
예수님이 생명의 떡인데 말씀이 바로 예수님이 아니십니까? 생명의 떡을 먹으므로 우리가 주리지 않잖아요.
요한복음 6장 63절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이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요 양식이 되기 때문에 이 양식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이 다시 소생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 했는데 우리 영혼이 사는 떡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살면서 지치고 피곤한 우리의 심신을 기도를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소생케 해주시고 평안을 주시고 다시 용기와 힘을 얻게 해주는 것입니다.
4.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심
넷째로, 주님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도 옛날에 훌륭한 가문에 태어나면 그 가문을 위해서 자식들을 엄하게 교육합니다. 소히 말하는 쌍놈으로 태어나면 쌍놈같이 살아도 별도리가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내버려 둡니다. 그러나 훌륭한 가문의 자녀들은 부모들이 그냥 내버려 놓지 않습니다. 가문을 위해서 엄하게 교육하지요. 우리 한국만 그렇지 않습니다. 영국도 귀족들이 들어가는 특별한 학교가 있습니다. 귀족들은 자기 자식들을 굉장히 엄하고 훌륭하게 교육시키는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았을 때 우리를 내동댕이 쳐놓고 키울 줄 압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가문 때문에 하늘나라 때문에 당신의 그 거룩하신 이름 때문에 그 이름을 따라 자녀가 된 우리들을 의의 길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먼저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 영혼을 먼저 살려 주시지요.
성경 에베소서 2장 1절로 6절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다 허물과 죄로 죽어서 마귀의 밥이요, 마귀의 종으로 살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씻으시고 주의 죽었다 부활하심을 통해서 우리를 살려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녀가 된거에요. 세상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었지요. 우리는 영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지요. 죽은 자식을 아버지, 어머니보고 아버지, 어머니 부르는 것 보았어요? 죽었기 때문에 부모를 몰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산사람은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고 예수님을 구주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살아 계시기 때문에 영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오셔서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게 된것인 것입니다. 그래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목자님은 살리시면 그 다음 새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지으신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에베소서 4장 22절로 24절에 말씀하기를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옛사람은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 왜냐하면 옛사람은 아담의 성품, 썩어져 가는 구습을 치르는 옛사람인 것입니다. 이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사람은 그저 돼지가 썩은것만 자꾸 찾아 가는 것처럼 별도리 없이 그 성품이 세속의 썩어진 것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부패하고 부정한 것, 방탕한 것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성격상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이 옛사람을 벗어 버리게 주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18장 30절로 31절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할지니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찌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찌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하라고 한것입니다. 그러나 마음과 영을 우리가 어떻게 새롭게 합니까? 세속의 속에서 죄악에 끌려가는 우리 자신이 스스로 우리가 새롭게 못하지요.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 놀라운 능력을 통해서 옛사람은 죽고 세사람은 살아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6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옛사람이라는 누더기를 그대로 입고 있어요. 이 누더기 입은 우리를 예수께서 끌어 앉고 십자가에 못박아서 죽여 버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새사람으로서 부활의 사람으로 주님이 우리를 끌어 앉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성품 의와 진리와 거룩함을 따라 지음을 받은 새사람을 주님께서 입혀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4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죄와 사망의 법이 옛사람을 끊고 누더기 옷을 입고 걸어가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벗겨 버리고 우리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사람을 입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될것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늘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해하고 새로운 마음을 가져야 돼요. 나는 옛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옛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난 육의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서 옛사람은 죽고 장사내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믿어야 돼요. 나는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로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태어났다고 성경에 말했으므로 나는 그들에게 되었다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아니야~ 넌 그대로 옛사람이야. 너는 형편없는 무력하고 무능력한 사람이야’ 그렇게 말할지라도 마귀의 말을 듣지 말고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새사람이 되었다고 말씀하시므로 나는 새사람이 되었다고 믿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선택입니다. 믿음은 느낌이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선택입니다. 내가 공포를 택할것이냐. 믿음을 택할것이냐. 불안을 택할것이냐. 믿음을 택할것이냐. 불신앙을 택할것이냐. 믿음을 택할것이냐. 여러분 의지로 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이 되었다고 믿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언제나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하십시오. 누더기 같은 옛사람이 다 그 누더기를 벗어 버리고 장사지내 버리고 부활의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입은 새사람으로 일어난 자신을 바라 보십시오. 마음속에 바라보고 저 누더기는 내가 아니다. 저 새사람은 나라고 바라봄의 법칙을 늘 사용하십시오. 늘 자기를 새롭게 된 모습으로 바라보아야 됩니다. 그리고는 입술로 강하게 시인하십시오. ‘나의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내고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다. 마귀야 나는 새사람이 되었다. 누더기를 입고 썩어진 구덩이에 들어가 있지 않는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새사람이 되어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산다. 사탄아 물러가라’ 입으로 강하게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믿음이 달라지고 바라봄이 달라지고 입술의 고백이 달라지면 여러분 새롭게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이 광야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양들로서 우리의 목자 되신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기르시는지 그 제일편을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주일에 그 제 2편을 알아 보겠습니다. 우리 목자가 누군지 알아야 양들이 목자를 따라가며 목자의 손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편 23편 1절로 3절 오늘 우리가 묵상한 말씀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러분 우리가 부족함이 있어서는 안되잖아요. 우리 목자가 완전한 목자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부족함이 없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족함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서는 안돼요. 부족함이 있는 것을 알면은 그것을 채우시는 목자를 찾아가서 우리 고해야 돼요. 그런데 우리 목자는 어떻게 하였느냐.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신다. 목자가 나를 푸른초장에 누이셔서 용서와 의와 영광의 풀을 먹고 거룩함과 성령충만의 풀을 먹고 치료와 건강의 풀을 먹고 축복과 형통의 풀을 먹고 부활과 영생과 천국에 풀을 먹어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하는 것이 우리 목자가 하는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목자를 아니까 그 목자를 구해야 돼요. 그는 쉴만한 물가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성령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속에 의가 강같이 흐르고 평강이 넘쳐 나고 희락이 넘쳐나고 적과 꿀이 흐르는 삶을 살수 있도록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니 이것이 마음에 부족한 사람은 목자에 가서 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지치고 피곤하고 좌절되고 살아있을 능력과 용기도 없어질 때 어떻게 합니까? 내영혼을 소생시키시는 목자에게 찾아가서 주여 나를 소생시켜 주십시오. 주님은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를 회개하고 정결케 하고 성령은 생수를 마시게 하고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먹게 해서 엘리야가 로뎀나무에서 죽겠다고 하다가 다시 소생되어 일어나서 사십주 사십야를 걸어서 호렙산까지 간 것처럼 우리에게 생기발랄하게 소생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목자 되시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주의 그 영광스러운 이름. 만군의 야웨 하나님의 가정에 들어간 우리 자녀들이 되었은즉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도록 주님께서 의의 길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썩은 옛사람이 의복을 벗어 버리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음받은 새사람을 입고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섬기는 목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이일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흘려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이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목자가 되어 우리와 함께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목자 앞에 우리가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목자를 바라보고 모자를 따라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매시같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우리 목자에게 의지하면 우리 목자께서 우리에게 돌보아 주시고 이끌어 주시고 승리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목자없이 사는 세상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었고 버림받았고 마귀의 종이 되어 살지만은 우리는 세상에서 부르심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 목자를 모신 양들이 된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하옵나이다.
아버지 우리 양무리가 되었은즉, 우리를 부족함이 없이 이끌어 주시는 예수님을 항상 바라보고 묵상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저가 우리를 푸른 초장에 뉘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우리를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며 우리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양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서론>
「야웨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시리즈의 설교중 제 첫째날 설교를 여러분께 해드리겠습니다. 뉴질랜드는 양의 수가 인구수보다 많습니다. 뉴질랜드의 인구는 약 400만인데 양은 약 7천만 마리가 됩니다. 그리고 또 그곳에는 목자가 필요없습니다. 전국토가 목초지이고 사나운 짐승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냥 양을 방목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습니다. 국토의 대부분이 메마르고 험해서 물이 귀하고 목초지가 많지 않으며 사나운 짐승도 많습니다. 그곳에는 목자의 도움이 없이 결코 양이 살아날수가 없습니다. 목초지와 샘물은 목자가 찾아내어야만 하고 밤낮으로 목자가 양무리와 함께 해야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보호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 인생은 이스라엘의 양들과 같습니다. 세상이 험한 광야와 같고 마귀의 사나운 공격이 언제나 우리의 삶을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여 주시는 목자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시편 23편에는 ‘야웨께서 우리의 목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야웨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0장 11절로 15절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그러므로 얼마나 놀라운 목자이신 것입니까? 우리를 잘 아시고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겠다고 주님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목자께서 우리를 어떻게 돌보십니까?
<본론>
1. 푸른 초장에 누이심
첫째로, 푸른 초장에 누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푸른 초장은 어디입니까? 갈보리 십자가 밑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려서 가꾸신 것이 바로 십자가 밑에 푸른 초장인 것입니다. 푸른 초장에는 우리가 먹고 자라날 수 있는 놀라운 은총의 축복이 있습니다. 푸른 초장에서 어떠한 은총을 우리가 받을수 있습니까? 우리는 푸른 초장 밑에 나가면 죄사함과 의의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죄사함과 의의 초장이 있습니다. 우리 이 세상에 사는 사람치고 죄없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본적이 있어요? 자기 죄는 감추고 남의 죄는 자꾸 파헤치지만 이 세상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 아닌 사람이 한사람도 없습니다. 자기의 죄는 뒷망태기에 담아놓고 남의 죄는 자기 앞망태기에 담아놓고 남의 죄만 자꾸 들여다 보고 ‘너는 죄가 있다. 저기에 있다’ 말하지만 자기 죄의 뒷망태기는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한 목자 예수님이 만드신 푸른 초장에 가면 그 보혈로 말미암아 이루어 놓으신 목초가 있습니다. 죄의 용서와 의와 영광의 목초인 것입니다.
성경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는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말한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5절에는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다고 했었습니다.
이 예수를 통해서 우리는 용서와 의와 영광과 화목을 얻는 놀라운 영양을 얻을수가 있습니다. 이 목초장은 또한 거룩한 목초장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목초장 밑에 가면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과 마귀를 다 내어 쫓으시고 거룩함과 성령충만을 주시는 그런 목자인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 이외에는 그런 목장은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마귀도 세상도 어림없습니다. 오직 그곳에서는 성령이 강물같이 흐르고 거룩함의 영광이 가득찹니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 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그 밑에 초장은 치료의 초장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하나님은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라고 했는데 치료하는 야웨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있는 초장에 치료의 목초가 자라게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다고 말했으며 저가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 마포대교구 박주용 안수집사님 간증을 들어 보니까 작년 12월 외출 도중에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정신이 혼미해져서 쓰러질 것 같이 그는 머리를 붙잡고서 ‘하나님 아버지 살려 주옵소서. 야웨 라파. 치료하는 하나님! 어린양을 구해 주시옵소서. 살려 주시옵소서’ 기도하고 곧장 연락해서 급히 병원에 실려가 CT촬영한 결과에 내출혈 진단이 나왔습니다. 뇌에 피가 가득하니 의사는 속히 뇌수술을 해야 한다며 터진 혈관을 찾으려고 1시간 30분 동안 뇌혈관 촬영을 했으나 찾지를 못했습니다. 허벅지 혈관에 캡슐을 넣어 뇌혈관까지 세밀하게 촬영하는 것인데 의사가 유난히 긴장하여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검사도중 40퍼센트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전날에도 한 사람이 그 촬영을 하다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사가 아무리 찾아봐도 머리속에 피는 고여 있는데 도무지 터진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피가 터지자 말자 우리 집사님이 ‘하나님 도와달라’고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고쳐 버린 것입니다. 피만 고여있지 혈관에 터진곳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사도 고개를 기우뚱 거리고 희안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3일만에 일반병실로 옮겼다가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3주만에 퇴원하고 나왔는데 그렇게 중한 뇌출혈을 체험하고도 장애가 하나도 없이 건강하게 나올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야웨께서 우리의 치료자가 되심을 알고 어린양을 돌보아 주옵소서. 야웨여 나를 치료해 달라고 위급한 중에 부르짖었을 때 주님께서 오셔서 치료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지만 기도하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 생활속에 나타나게 되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 또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형통의 초장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너무나 환경에 억압되어서 우리 마음이 가난의식, 패배의식, 절망의식으로 꽉들어 찹니다. 그래서 초장을 보지를 못합니다. 너무나 우리의 환경에 억압되어 가지고서 패배와 좌절과 절망 때문에 하나님이 예비한 초장을 보지 못하는데 매일같이 여러분 기도할 때 십자가 밑에 주님이 예비한 축복의 초장을 바라보고 기뻐하고 그 풀을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한 초장은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 말씀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 가서 아브라함의 복을 흠뻑 마음속에 받아 들여서 마음속에 가난의식, 저주의식, 패배의식, 절망의식을 싹 씻어내 버리고 우리 마음에는 아브라함의 축복과 그리스도가 주는 형통만 가득차 있게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잘못하면 하나님이 넘치도록 해주실 그릇이 없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내 생각만은 하나님 은혜를 통해서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통의 초장에 가서 그리스도의 약속의 형통의 풀을 먹고 우리는 마음속에 축복의 생각으로 가득차야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초장은 영생복락의 초장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했는데 우리가 다른곳에 가서 보면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지만은 십자가 밑에 가보면은 죽음은 삶의 시작입니다. 우리의 옛사람은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영광 가운데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복락의 초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웨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저가 나를 푸른초장에 누이신다고 했는데 오늘날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야웨 우리 주 예수께서 마련한 초장을 항상 기도로써 방문하고 거기에 주님이 예비한 오중복음의 은혜의 풀을 늘 마음속에 믿음으로 받아 먹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2.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심
둘째로, 우리의 목자는 우리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마음에 기갈이 다가오고 목마름이 다가옵니다. 행복과 평화의 기쁨의 목마름을 안가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마음속에 행복에 목마르고 평안에 목마르고 기쁨에 목마르고 축복에 목마른 것입니다. 누가 이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 7장 37절로 39절에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 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목마른 자가 예수님 밑에 와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마시면 배속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 납니다. 이 생수의 강은 바로 성령의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와서 구하여 생수의 강을 체험하면 그 생수의 강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생수의 강이 흐르면 우리의 가슴속에 의의 강물이 넘쳐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세속에 때묻고 죄악이 우리를 붙잡지 않습니까? 가는곳마다 죄악이 발목을 잡고 세속으로 우리는 때가 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으로 의롭게 살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생수를 마시면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의롭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디도서 3장 6절로 7절에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지 우리가 힘쓰고 애쓰고 노력하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고 성령의 능력을 간구하면 성령이 오셔서 우리의 모든 세속의 때를 씻어 버리고 죄악의 고리를 쇠고리를 다 꺾어 버리고 거룩하게 살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시시각각으로 성령의 의의 생수를 우리가 마셔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생수는 평강의 생수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염려와 근심 바람이 얼마나 불어오지 않습니까? 염려와 근심의 모래바람이 불어와서 우리 앞을 캄캄하게 만듭니다. 마음에 불안과 초조가 꽉 들어 찹니다. 그럴때도 주님 앞에 엎드려서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고 성령을 향하여 입을 넓게 열면 우리의 지각을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성령으로 우리 마음속에 채워주는 것입니다. 이 성령이 우리를 채워주는 평안 때문에 이 불안한 세상 속에서도 평안하게 살수 있고 불안을 극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목자가 생수를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목자장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희락의 생수를 주는 것입니다.
시편 16편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이세상에 기뻐할 것이 별로 많지 않지 않아요? 우리 인생들이 얻는 부귀, 영화, 공명을 통한 기쁨이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맙니다. 좋은 옷도 며칠입지 않으면 좋은옷으로 말미암은 기쁨은 사라집니다. 좋은 집에 들어가도 얼마 살지 아니하면 그 좋은 집이 갖다주는 기쁨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높은 지위도 얼마 안있으면 지위도 갖다주는 흥분과 기쁨도 사라지지요. 우리속에 세상의 기쁨이란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갖다주는 기쁨은 늘 계속하는 것입니다. 사라지지 않아요.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면서 성령이 우리 갖다주는 희락. 이것이 있어야 삶의 참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을 짓고 살아도 기쁨이 없으면 그 집이 무슨 유익이 있으며 좋은 옷이 행복을 갖다 주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는다 해도 물고 찢고 싸우고 미워하고 살면은 아무 의미 없잖아요? 마음속에 평안과 기쁨이 있어야 내용이 있는 것인데 이 기쁨은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이 오시면 성령이 생수를 마시고 마음속에 기쁨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자되신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주셔서 우리를 하늘 나라 체험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의의 생수가 흐르고 평강의 생수가 흐르고 희락의 생수가 흐르도록 우리 목자께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생수는 마시고 나면 목마르지 않습니다. 세상 물은 마시면 또 목마르고 또 목마르지만 주님이 주시는 생수는 끊임없는 행복과 기쁨과 만족을 갖다 주는 이러한 생수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에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냥 흘러 마르는 도랑물이 아니라 늘 솟아나는 생수가 된다. 이는 우리 목자되신 예수님이 우리 속에 주시는 성령의 생수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4장 3절에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가난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신다. 내 갈한 마음, 내 메마른 가슴에 시내가 흐르게 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우리 목자이신 예수께 나와서 주여 생수를 주시옵소서. 간구할 필요가 있고 주님은 이 생수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12장 3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기쁨으로 구원의 물인 예수 그리스도의 생수의 우물에서 우리는 성령의 생수를 받아 먹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여러분 주님이 주시는 성령의 생수는 포도주와 젖이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1절에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목마른 자가 물로 나오랬는데 그 물이 포도주와 젖이 되는 것입니다. 포도주는 취하면 즐거움을 주지 않습니까? 젖은 우리에게 영양분이 되지 않습니까? 취한다는 것은 여러분. 마음에 기쁨이 없는 곳에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으로 취하게 만들어 줍니다. 젖이란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마음에 영양실조가 되어 고통과 괴로움이 있는데 영양실조를 면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취할정도로 기쁨을 주시고 마음에 영양실조를 재하여서 건강한 심신을 가지고 살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목자가 하는 일입니다. 우리 목자가 계시고 목자가 이런일을 하는 것을 알면은 우리는 목자대신 예수께 나아가서 그를 구하면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너희가 없는 것은 구하지 아니함이라’고 했으며 ‘무엇인줄은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저는 우리를 푸른 초장에 누일뿐 아니라 쉴만한 물가에 뉘여 주시는 우리 주님이신 것입니다.
3. 영혼을 소생시킴
셋째로, 우리의 목자는 내 영혼을 소생시킨다고 말했습니다.
너무나 힘든일을 하고 지쳐 버렸거나 더위나 추위에 고생하면 기운을 잃어 버리고 사람의 마음이 완전히 퇴락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때 충분한 영양분과 휴식을 취하면 소생하지요. 엘리야 보십시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신을 섬기는 선지자 450명과 경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시무시한 스트레스를 받고 긴장 가운데서 기도하여 하늘에 불이 내려오게 해서 바알선지자들을 굴복시키고 그를 다 잡아 기손 시냇가에 내려가서 목을 쳐죽였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는 뛰어서 이스라엘로 돌아왔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그 아내 이사벨에게 구하매 이사벨이 엘리야에게 전갈을 했습니다. ‘네가 내가 친정에서 데려온 선지자 450명 바알을 목을 쳐서 죽인것처럼 내일 너도 그들중에 하나처럼 될 것이다. 내가 너의 목을 처버리겠다’ 그 위대한 주의 종 엘리야도 스트레스에 걸리니까 그만 마음이 낙심하고 지치고 하나님 영광을 잃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사람이 심히 스트레스에 걸리면 신앙도 유지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 말을 듣고 놀래서 일어나서 달아났었습니다.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에 앉아서 죽기를 구하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나무 아래서 누워서 자니까 하나님의 천사가 와서 깨어서 구운 떡과 물을 주면서 먹고 마셔라. 그다음 또 먹고 마시고 자니까 또 깨워 일으켜서 너는 이떡을 먹고 마셔라. 네가 먼길을 가야 되기 때문에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완전히 스트레스에 걸려서 마음이 우울해지고 좌절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소생시켜 주는 길을 여기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많이 지치고 우울하고 스트레스에 걸리며 자고 먹고 마시는 길밖에는 다른 더 좋은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로뎀나무 밑에서 자고 그리고 떡을 먹고 물을 마시고 또 자고 떡을 마시고 물을 마시고 소생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지치고 피곤하고 낙심한 우리들을 소생시켜 주시는 역사를 합니다. 예수님 목자는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소생시킵니까? 성령을 보내셔서 기도를 하게 하므로 소생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사야 57장 15절에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성경을 보내셔서 세속에 찌들어지고 죄악에 빠진 우리들을 회개하고 통회하고 자복하게 하시고 성령이 임하여서 우리의 영과 마음을 소생시켜 주신 것입니다. 다시 살아 일어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아예 소금이 절인 김장김치가 시들어 진 것 여기에다가 무엇을 넣어서 도로 살아나게 한것처럼 우리가 시들어진 우리의 심신을 도로 살려놓게 하는 성령의 역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 생각과 마음을 염려와 근심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다시 살려서 지켜 주시고 소생시켜 주시는 그런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목자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소생시켜 주시고 말씀의 떡을 먹는 것을 통해서 우리를 소생시켜 주는 것입니다. 기도는 여러분 우리가 생수를 마시지요. 엘리야가 물을 마신 것처럼 그 다음 떡을 먹은 것처럼 주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소생시켜 주는 것입니다.
시편 107편 19절로 20절에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고 말했습니다. 말씀은 우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 마음을 고치시고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생명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말씀을 가까이 해야 됩니다. 여러분 병들면은 밥맛이 없잖아요. 오늘날 성경이 맛이 없는 사람은 병들었다 그 증거인 것입니다. 감기가 들리거나 몸살이 나면 아무리 산해진미라고 해도 맛이 없습니다. 오늘 성경이 얼마나 달고 꿀송이 보다 더 단데 성경이 읽기 싫어요. 성경읽으면 ‘아휴~ 하나님이 잔소리가 왜 이렇게 많으신가 짜증이 나요’ 그건 자기가 병들었어요. 하나님이 잔소리가 많은 것 아닙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은 사람은 마음이 병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영양실조가 걸리고 더 악화가 되지요. 이러므로 말씀의 떡을 먹어야 우리가 소생하게 되지요.
시편 119편 25절에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으나 말씀이 오면 다시 소생하게 된다.
요한복음 6장 35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것이라.
예수님이 생명의 떡인데 말씀이 바로 예수님이 아니십니까? 생명의 떡을 먹으므로 우리가 주리지 않잖아요.
요한복음 6장 63절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이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요 양식이 되기 때문에 이 양식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이 다시 소생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 했는데 우리 영혼이 사는 떡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살면서 지치고 피곤한 우리의 심신을 기도를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소생케 해주시고 평안을 주시고 다시 용기와 힘을 얻게 해주는 것입니다.
4.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심
넷째로, 주님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도 옛날에 훌륭한 가문에 태어나면 그 가문을 위해서 자식들을 엄하게 교육합니다. 소히 말하는 쌍놈으로 태어나면 쌍놈같이 살아도 별도리가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내버려 둡니다. 그러나 훌륭한 가문의 자녀들은 부모들이 그냥 내버려 놓지 않습니다. 가문을 위해서 엄하게 교육하지요. 우리 한국만 그렇지 않습니다. 영국도 귀족들이 들어가는 특별한 학교가 있습니다. 귀족들은 자기 자식들을 굉장히 엄하고 훌륭하게 교육시키는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았을 때 우리를 내동댕이 쳐놓고 키울 줄 압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가문 때문에 하늘나라 때문에 당신의 그 거룩하신 이름 때문에 그 이름을 따라 자녀가 된 우리들을 의의 길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먼저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 영혼을 먼저 살려 주시지요.
성경 에베소서 2장 1절로 6절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다 허물과 죄로 죽어서 마귀의 밥이요, 마귀의 종으로 살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씻으시고 주의 죽었다 부활하심을 통해서 우리를 살려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녀가 된거에요. 세상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었지요. 우리는 영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지요. 죽은 자식을 아버지, 어머니보고 아버지, 어머니 부르는 것 보았어요? 죽었기 때문에 부모를 몰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산사람은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고 예수님을 구주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살아 계시기 때문에 영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오셔서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게 된것인 것입니다. 그래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목자님은 살리시면 그 다음 새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지으신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에베소서 4장 22절로 24절에 말씀하기를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옛사람은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 왜냐하면 옛사람은 아담의 성품, 썩어져 가는 구습을 치르는 옛사람인 것입니다. 이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사람은 그저 돼지가 썩은것만 자꾸 찾아 가는 것처럼 별도리 없이 그 성품이 세속의 썩어진 것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부패하고 부정한 것, 방탕한 것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성격상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이 옛사람을 벗어 버리게 주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18장 30절로 31절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할지니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찌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찌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하라고 한것입니다. 그러나 마음과 영을 우리가 어떻게 새롭게 합니까? 세속의 속에서 죄악에 끌려가는 우리 자신이 스스로 우리가 새롭게 못하지요.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 놀라운 능력을 통해서 옛사람은 죽고 세사람은 살아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6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옛사람이라는 누더기를 그대로 입고 있어요. 이 누더기 입은 우리를 예수께서 끌어 앉고 십자가에 못박아서 죽여 버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새사람으로서 부활의 사람으로 주님이 우리를 끌어 앉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성품 의와 진리와 거룩함을 따라 지음을 받은 새사람을 주님께서 입혀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4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죄와 사망의 법이 옛사람을 끊고 누더기 옷을 입고 걸어가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벗겨 버리고 우리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사람을 입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될것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늘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해하고 새로운 마음을 가져야 돼요. 나는 옛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옛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난 육의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서 옛사람은 죽고 장사내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믿어야 돼요. 나는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로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태어났다고 성경에 말했으므로 나는 그들에게 되었다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아니야~ 넌 그대로 옛사람이야. 너는 형편없는 무력하고 무능력한 사람이야’ 그렇게 말할지라도 마귀의 말을 듣지 말고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새사람이 되었다고 말씀하시므로 나는 새사람이 되었다고 믿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선택입니다. 믿음은 느낌이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선택입니다. 내가 공포를 택할것이냐. 믿음을 택할것이냐. 불안을 택할것이냐. 믿음을 택할것이냐. 불신앙을 택할것이냐. 믿음을 택할것이냐. 여러분 의지로 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이 되었다고 믿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언제나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하십시오. 누더기 같은 옛사람이 다 그 누더기를 벗어 버리고 장사지내 버리고 부활의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입은 새사람으로 일어난 자신을 바라 보십시오. 마음속에 바라보고 저 누더기는 내가 아니다. 저 새사람은 나라고 바라봄의 법칙을 늘 사용하십시오. 늘 자기를 새롭게 된 모습으로 바라보아야 됩니다. 그리고는 입술로 강하게 시인하십시오. ‘나의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내고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다. 마귀야 나는 새사람이 되었다. 누더기를 입고 썩어진 구덩이에 들어가 있지 않는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새사람이 되어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산다. 사탄아 물러가라’ 입으로 강하게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믿음이 달라지고 바라봄이 달라지고 입술의 고백이 달라지면 여러분 새롭게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이 광야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양들로서 우리의 목자 되신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기르시는지 그 제일편을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주일에 그 제 2편을 알아 보겠습니다. 우리 목자가 누군지 알아야 양들이 목자를 따라가며 목자의 손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편 23편 1절로 3절 오늘 우리가 묵상한 말씀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러분 우리가 부족함이 있어서는 안되잖아요. 우리 목자가 완전한 목자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부족함이 없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족함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서는 안돼요. 부족함이 있는 것을 알면은 그것을 채우시는 목자를 찾아가서 우리 고해야 돼요. 그런데 우리 목자는 어떻게 하였느냐.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신다. 목자가 나를 푸른초장에 누이셔서 용서와 의와 영광의 풀을 먹고 거룩함과 성령충만의 풀을 먹고 치료와 건강의 풀을 먹고 축복과 형통의 풀을 먹고 부활과 영생과 천국에 풀을 먹어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하는 것이 우리 목자가 하는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목자를 아니까 그 목자를 구해야 돼요. 그는 쉴만한 물가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성령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속에 의가 강같이 흐르고 평강이 넘쳐 나고 희락이 넘쳐나고 적과 꿀이 흐르는 삶을 살수 있도록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니 이것이 마음에 부족한 사람은 목자에 가서 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지치고 피곤하고 좌절되고 살아있을 능력과 용기도 없어질 때 어떻게 합니까? 내영혼을 소생시키시는 목자에게 찾아가서 주여 나를 소생시켜 주십시오. 주님은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를 회개하고 정결케 하고 성령은 생수를 마시게 하고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먹게 해서 엘리야가 로뎀나무에서 죽겠다고 하다가 다시 소생되어 일어나서 사십주 사십야를 걸어서 호렙산까지 간 것처럼 우리에게 생기발랄하게 소생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목자 되시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주의 그 영광스러운 이름. 만군의 야웨 하나님의 가정에 들어간 우리 자녀들이 되었은즉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도록 주님께서 의의 길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썩은 옛사람이 의복을 벗어 버리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음받은 새사람을 입고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섬기는 목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이일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흘려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이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목자가 되어 우리와 함께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목자 앞에 우리가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목자를 바라보고 모자를 따라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매시같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우리 목자에게 의지하면 우리 목자께서 우리에게 돌보아 주시고 이끌어 주시고 승리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목자없이 사는 세상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었고 버림받았고 마귀의 종이 되어 살지만은 우리는 세상에서 부르심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 목자를 모신 양들이 된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하옵나이다.
아버지 우리 양무리가 되었은즉, 우리를 부족함이 없이 이끌어 주시는 예수님을 항상 바라보고 묵상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저가 우리를 푸른 초장에 뉘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우리를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며 우리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양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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