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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웨는 나의 목자시니 (Ⅱ)

시편 조용기 목사............... 조회 수 1495 추천 수 0 2008.10.22 20:04:03
.........
성경본문 : 시23:4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3년 3월 30일 주일2부설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서론>
「야웨는 나의 목자시니」 이제목으로 2주째 연속해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유다 광야에 가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는 엄청나게 거대한 계곡이 있습니다. 저와 일행이 그 계곡의 변두리에 서서 계곡 아래를 내려다보니 정말 정신이 아찔하고 현기증이 났습니다. 그곳에 떨어지면 살아남는다고 해도 다시 올라올 수 없는 험악한 계곡이었습니다.
다윗은 그 계곡을 비유해서 기록하기를 인생의 그처럼 위험하고 절망적인 골짜기를 지난다해도 두려울 것이 없는 것은 그 계곡을 지으신 주님께서 목자가 되셔서 함께 계시기 때문이라고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과연 우리는 모두 다 크고 작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왔고 또 장차도 지나갈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을 주님이시오 인생의 목자로 모신 사람은 두려움이 없이 지날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요셉이 체험한 사망의 골짜기
오늘 우리가 구역성경을 살펴보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온 대표적인 사람 한사람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은 17살에 형들에게 버림을 받아 벌거벗김을 받고 마른 우물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형들이 그를 죽이려고 옷을 벗겨서 마른 우물에 던지는데 그 우물안에 요셉만 있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계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같이 계시지 않으셨으면 그 우물은 물이 꽉들어차 있었을 것입니다. 원래 우물은 물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이 없는 마른 우물이었습니다. 그리고 형들은 아라비아 대상이 오는 것을 보고 요셉을 우물에서 건져 내어서 아라비아 대상인에게 은 20냥에 팔아 먹었습니다. 종으로 팔려서 애굽으로 내려 갔는데 사람들 보기에는 요셉이 벌거벗은 몸으로 종으로 끌려 애굽으로 내려간다고 생각했지만 혼자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 확신과 평안인 것입니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께서 함께 하신다는 이 신앙이 우리에게 큰힘이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으로 끌려갈 때 혼자 끌려가지 않고 그리스도가 함께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이 되었는데 10년 동안 종살이 할 때 외롭게 자기 혼자 종살이 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 보면 종생활 중에서도 주께서 함께 하셨다고 한것입니다.
창세기 39장 2절로 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그렇게 말했습니다. 종으로 있는데도 주께서 함께 하시므로 요셉을 종으로서 형통케 하셨다. 그러므로 종살이 한다고 버림받아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야웨를 경배하고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이 종살이라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때도 같이 하셔서 형통케 하신다. 하나님의 역사는 형통케 하는 것입니다. 좋을때만 형통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내려가는데 그 골짜기 속에서도 형통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 우리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는 종살이 10년동안 아주 형통하게 되어서 그 주인이 가정총무로 삼았습니다. 지위가 높아지고 생활이 편안하게 될 때 그는 불행하게도 여난을 당했습니다.
창세기 39장 7절로 18절에 보면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 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그렇게 하는데도 불과하고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했습니다. 왜 요셉은 하나님이 같이 계시므로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면 우리의 생활에 형통케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같으면 보디발의 아내가 직접 자꾸 눈짓을 하고 스토킹을 하는데 “아이구 뭐 눈딱감고 모른체하고 주인집 아내하고 한번 잘살아 보자”라고 할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사람이 보지 않을지라도 주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겠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 같이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그가 대청에 볼일이 있어서 들어갔다가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끌어안고 동침하자고 하매 도망을 치는데 그 옷이 벗겨져서 그 여인의 손에 들렸습니다. 그 여인이 고함고함치고 요셉이 나를 급간하러 온 것을 내가 고함을 치니 옷을 벗어 놓고 달아났다고 하므로 온 집안 사람이 다 동원이 되고 그 남편이 퇴청하여 와서 그 사실을 알아보고 분노가 가득했습니다. 요셉을 아마 안죽을만큼 때리고 짓밟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시위대 뜰에 억울하게 갇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얻어맞고 억울하게 시위대뜰에 들어갔으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이럴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불행이 연속해서 다가오는 것입니까? 형들에게 팔려서 종으로 되고, 종살이 10년후에 또다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시위대 뜰에 들어갔는데도 불구하고 그곳에서도 주님이 같이 하셨다. 감옥에서도 주님이 같이 가셨다. 주님이 따라 다니는 것입니다.
창세기 39장 20절로 23절에 보면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 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감옥에서도 형통케 하신다. 그것을 여러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좋을때만 형통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감옥에 들어가 있는데 감옥에도 함께 하셔서 형통케 하셨더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떠한 처지에 있어도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를 형통케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는 감옥살이 3년 했습니다. 감옥에 있을 동안에 애굽의 바로왕의 떡장관, 술장관이 범죄해서 시위대뜰 감옥에 들어왔을 때 그들을 시중했고 그들의 꿈을 해석해 주었는데 꿈대로 떡장관은 교수형을 당하고 술장관은 다시 지위가 복구되어서 술장관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바로왕이 꿈을 꾸었습니다. 한번은 살찌고 아름다운 일곱 암소가 와서 나일강에서 풀을 먹다가 그 뒤에는 파리한 일곱 암소가 나와서 그 살찐 암소를 다 잡아 먹고도 역시 파리했습니다. 잠을 깻다가 또 꿈을 꾸었는데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와 있는데 쇠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돌아와서 그 풍성한 이삭을 다 잡아 먹고 있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서 이것을 해석해서 못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 그 술장관이 무릎을 탁 치면서 “제가 시위대 뜰 감옥에 갇혔을 때 요셉이라는 사람이 꿈을 해석해 주었는데 꿈대로 떡장관은 처형 당하고 저는 복직이 되었습니다”. 바로왕이 “빨리 그를 데려 오너라” 그래서 요셉이 바로왕 앞으로 나가서 그 꿈을 멋있게 해석을 해주었습니다. 이것은 애굽에 7년 풍년과 7년 흉년이 다가올 꿈이라고 해석을 해주고 그것에 대한 대책을 말해 주었습니다. 왕이 너무나 감동해서 “이렇게 지혜있고 총명하고 야웨의 신이 갇힌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오늘 너를 국무총리로 삼노라” 하나님이 같이 계시니까 내내 걸어온 인생의 고난이 합동하여 유익을 이루게 되고 말은 것입니다.
여러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만 바라보면 좌절하고 절망했지만은 눈에 안보에게 하나님께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같이 우리와 함께 계셔서 범사에 그 자리에서 형통케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나중에 요셉이 뭐라고 간증했을까? 형들이 애굽에 더부살이 왔을 때 아버님이 세상 뜨자 겁을 내어서 요셉에게 간구하매 요셉이 말을 했습니다. “두려워 마소서. 당신들은 나를 헤아려 하였으나 하나님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다”. 당신은 나를 헤할려고 해도 주께서 같이 하셔서 악을 선으로 바꾸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우리를 삼키려고 해도 주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선으로 바꾸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아무리 캄캄한 동굴에 처넣어도 하나님은 동굴을 터널로 만들어 버리고 마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피할수 없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크고 작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다가 오지요. 그러나 항상 알아야 될 것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구주로 모신 사람은 우리의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나를 떠나도 주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나와 함께 계셔서 악을 선으로 변화 시키는 역사를 하십니다.

2. 바울이 체험한 ‘유라굴로’의 풍랑
오늘 둘째로, 우리 신약성경에서도 대표적으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한 바울선생의 체험을 알아보겠습니다.
바울이 유대에서 잡혀서 로마의 백부장 율리오와 다른 죄수들과 함께 로마로 압송되어 갔습니다. 그들이 지중해를 항해할 때 미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께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27장 9절로 10절에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말하되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되" 그러니 겨울을 지나고 갑시다. 그런데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의 말보다 더 선장의 말을 더 들었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아무리 선장이 경험이 많고 항해지식이 많다해도 하나님이 바울에게 계시적인 지식을 말했는데 바울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감각적인 지식을 가지고서 무슨 대학을 졸업했다. 연구실에 있었다. 특별히 전문가라고 할것입니다. 물론 전문적인 지식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하지만 만일 계시적인 지식이 와서 하나님의 말씀에 오시면 만사를 재켜놓고 하나님의 지식을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부장 율리오는 이 선장의 말을 더 듣고 바울의 말을 죄수의 말로 생각하고 무시하고 행해를 계속 하다가 유로굴로라는 거대한 광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7장 14절로 20절에 보면 "얼마 못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 망이 다 없어졌더라" 이틀만에 그들은 짐을 다 바다에 던져 버리고 배의 기구까지 다 던져 버리고 그 다음에는 정처없이 풍랑에 밀려 갑니다. 하늘은 칡흑같이 어둡고 해와 달과 별은 보이지 아니하고 파도는 치고 모든 사람들이 토하고 토하다가 이제는 토할것도 없고 기진맥진해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거센 풍랑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바울이 그곳에 탔으므로 주께서 함께 계셨습니다. 주의 사자가 바울에게 나타나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사도행전 27장 21절로 26절에 보면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이 얼마나 놀라운 소식입니까?
칠흙같이 어두운 밤하늘 밑에서 파도는 치고 배는 파선위기에 있는데 여기에 놀라운 빛이 비추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함께 계시는 주님께서 바울에게 메시지를 주신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다스리는 하나님이 무얼 못하겠습니까? “바울아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되므로 이 배는 파산하지 아니한다. 이 배에 탄 이 모든 영혼들은 네 손에 다 맡겼으니 네가 구원으로 인도하라” 그래서 그배가 파산하지 않고 멜리데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추워서 불을 붙이는데 바울이 수풀을 들어다가 불에 던지니까 뜨거우니까 뱀이 나와서 바울의 손을 물어서 손에 덜렁덜렁 달려서 섬 사람들이 “아! 저사람은 살인한 사람이다” 풍랑을 겨우 이기고 살아났으나 하나님이 심판하사 뱀에 물려 죽게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지독한 뱀으로 그 섬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그 뱀에 물리면 당장 독이 올라 넘어져 죽는데 바울은 그 뱀을 틀어서 불속에 던져 넣어 버렸는데 조금도 상처입지 않고 죽을줄 알았는데 안죽으니까 이젠 사람이 달리 생각합니다. “저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 신이다”고. 그래서 바울을 통하여 그 섬에 있는 추장의 아버지가 아파 있는데 안수해서 낫고 병자들이 나으매 융성한 대접을 받고 그들은 다 다른 배로 로마까지 갈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때 늘 잊지 말아야 될 것은 주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8절로 9절에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어떻게 그런일이 있을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같이 계시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목자가 되셔서 우리와 같이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3.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갈 때
그러면 셋째로,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할 때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될까요? 주께서 항상 함께 계심을 생각하고 그것을 굳세게 믿고 보이지 않는 주님을 보는 것같이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늘 바라보고 그리고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 같이 계신다. 산은 높고 골은 깊고 생은 험해도 주께서 같이 계신다. 생각과 믿음과 바라봄과 입술의 시인을 통해서 우리는 환경을 지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0절에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오늘날 하나님의 주소는 바로 여러분의 주소입니다. 여러분 계신곳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소는 여러분의 주소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그 처를 같이 하겠다고 하셨으니 우리가 외롭게 버림받지 않는 것은 확실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루이틀만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함께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식을 우리가 마음속에 간직해야 되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이 지식을 마음속에 굳게 간직을 하고 이 사실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불안과 공포를 믿지 말고 이 지식을 따라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계시므로 나는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리고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늘 주님이 같이 계신 것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돼요. 그리고 입술로 강하게 시인해야 됩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는 것입니다. 입술로 시인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하여 해를 두려워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두려움에는 형벌이 따른다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죄만지어서 형벌 받는 것 아닙니다. 살인하거나 간음하거나 도둑질하면 그 죄에 대해서 형벌을 받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경에는 두려워하면 그 두려워하는 대상으로 말미암아 형벌을 받는다. 병을 자꾸 두려워 하면 그 형벌로 병이 들어요. 가난을 두려워하면 그 형벌로 가난이 와요. 낭패와 실망을 당할 것을 계속 두려워하면 우리의 삶속에 낭패와 실망이 다가와요. 두려우면 형벌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내가 속으로 두려워해도 좋고 안두려워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두려움에는 그에따라 형벌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마음에 두려움이 올때마다 외우는 시편 91편 1절로 7절에 있습니다. 이 말씀을 저는 너무나 사랑합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저는 이 말씀을 늘 암송합니다. 내게 두려움이 다가오면 그 두려움에 상대해서 두려움아 물러가라.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요, 요새요, 위로하는 하나님이시니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이 내게 어떻게 하리요. 천인지 내 곁에서 만인이 내 곁에서 넘어지나 이 재앙이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하노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알고 믿고 바라보고 시인하면 그 말씀의 역사가 우리의 삶속에 오늘날도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사회는 불안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의 공포가 모든 사람 마음속에 있어요. 북한의 핵문제와 이라크 전쟁을 TV로 늘보고 있잖습니까? 이라크 전쟁의 그 무시무시한 참상을 바라보고 다음은 한반도에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우리 마음속에 다있습니다. 우리는 모두다 불안의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없는체 하지만은 마음속에 사실은 사람들은 이 불안의 공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대구 지하철 참사이후 생명보험이 30퍼센트에서 50페센트까지 증가를 했다는 것입니다. 채무나 재산에 관한 유언장 작성해 주는 일이 늘어났다고 말합니다. 정치상황 변동에 따른 세대간 이념 갈등이 또 심하므로 불안합니다. 젊은 사람들을 진보측에 속한 사람들은 나이 많은 50대이후의 사람들을 보고서 수구반동주의자라고 합니다. 그러니 나이먹은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굉장한 소외감을 느낍니다. 무슨 말과 행동만 해도 젊은이들이 수구반동적인 사람이라고. 그러면 나이먹은 사람은 뭐라고 말합니까? 보수주의적인 시작해서 젊은놈들, 빨갱이들. 이렇게 이념적인 갈등이 우리의 한국에 크게 골이 생겼습니다. 사실 해방후에 제가 자랐지만은 해방후에 좌우가 갈려져서 굉장히 이념의 갈들이 심했는데 오늘날 그와같은 형상이 되었습니다. 북한은 자꾸 그것을 죽입니다. 우리 국민적인 갈등을 가져오고 국민적인 대결이 일어나고 혼란이 오게 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북한이 우리 한국사회에 이념의 혼돈을 가져오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젊은이와 그들의 부모의 세대가 서로 등을 돌리고 갈라지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정부부처내 서열파괴가 사회로 확산되어서 이제는 높고 낮은 것이 없어지는 그런 고통속에 처했습니다. 선배가 뭐며 후배가 뭐냐. 먼저있는 사람 나중인 사람 서열이 무슨 소용 있느냐? 상당한 혼란과 정신적인 갈등을 이 사회가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으로 경기불황이 다가와서 모든일이 안되잖아요. 지금 수출도 잘안되고 사업도 잘안되고 그리고 신용불량자가 증가되고 실업이 증가하고 있잖아요. 물가상승으로 실업율이 상승하고 직장인들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통계청 발표에 보면 2월 실업자수가 82만 2천명인데 이중에 20대, 30대 실업자만 40만 4천명입니다. 지난 2년동안 비교하면 지금이 실업율이 최악에 달해 있습니다. 그리고 부유층은 재산의 투자처를 몰라서 불안합니다. 돈은 있는데 이 돈을 어디 투자를 해야 될지 알지 못하고 자기들이 사회적인 지위가 낮아 질 것을 두려워해서 불안하고 떨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국내 돼지 콜레라가 발생해서 돼지들이 떼를지어 죽어가고 있지요. 중국에서부터 출발하여 온 동남아와 구라파를 휩쓸고 있는 괴질 두려운 것입니다. 아에 여러분 동남아 여행 하려거든 장차로 미루십시오. 괴질, 중국에서 유행한 병균을 알수 없는 괴질이 들어와서 폐렴과 같은 병이 들려서 속수무책으로 죽는다 말입니다. 이 말세에 흉악한 질병이 돌겠다고 했는데 오늘날 의학으로도 병원균을 발견하지 못하는 괴질이 유행하고 두렵습니다. 그래서 오늘 불안으로 인해서 각종 수련해서 마음 다스리는 모임이 많이 있습니다. 마음에 관련한 서적이 일년내 100종이 넘게 발간이 되고 점집이 호황을 하고 심리치료하는 신경정신과가 성황하고 많은 사람이 그곳에 정신적 치료를 받으러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나온 20세기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습니다. 전쟁에서 직접죽은 수와 관련된 학살자수를 합치면 1억 2천만에서 1억 8천만의 사람들이 지난 20세기 동안에 전쟁으로 죽었습니다. 1945년부터 90년까지 전쟁이 없었던 날은 겨우 3주간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말세에는 전쟁과 전쟁소문을 들을 것이요. 처처에 온역과 기근이 있으리라. 여러분 이 온역이 이런 괴질이 돌지요. 처처에 기근이 있지요. 전쟁으로 말미암아. 전쟁과 전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소문이 빗발칩니다. 옛날에는 전쟁이 나도 소문이 안났어요. 왜냐, TV나 인터넷이 발전 안되었기 때문에 전쟁이 나도 몰랐어요. 그러나 오늘날 이라크 전쟁은 지금 나고 있는 사실을 지금 싸우고 있는 사실을 인터넷, TV에서 우리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과 전쟁소문이 처처에 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오실날이 눈앞에 다가온 것은 사실입니다.
오늘날 이런 여러 가지 연고로 우리 사회는 불안과 공포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있고 온 세계가 그 골짜기를 지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골짜기를 지날 때 아무리 점집을 찾아가도 소용이 없고 신경과 치료를 받아도 소용이 없어요.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우리와 같이 해주셔서 우리를 건질자는 우리의 목자,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졌다고 하신 그 예수께서 선한 목자가 되셔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우리 손잡고 함께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말세에 마지막때에 무엇보다 더욱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 기도하고 우리 목자의 손을 잡고 이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그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에게 안심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지팡이는 주님의 인도하시는 손길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3절에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 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여러분 주님의 양이니까 여러분 이름을 아십니다. 여러분의 이름 하나하나 부르면서 주님은 지팡이는 인도하는 것입니다.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잠언서 3장 5절로 6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항상 하나님을 인정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지도해 주십니다.
잠언서 16장 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찌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주님의 은혜로 우리를 부르시고 보좌에서 기다리기 때문에 담대하게 나가서 이 어려울 때 주님이 우리를 인도해 달라고 우리가 기도해야 되실 것입니다.
주님의 지팡이가 우리를 안위하시고 주님의 막대기가 또한 우리를 안위하십니다. 막대기란 주님이 구원하시는 권능을 말하는 것입니다. 막대기로 짐승을 치지 않습니다. 원수를 치거든 주님의 전능한 권능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히브리서 13장 5절로 6절에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마음에 두려움을 버리고 우리 주님을 의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5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모든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를 안위하시며 주님이 함께 계신 것입니다.
금천대교구 문희순 집사님의 간증을 한번 들어 보십시다. 그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22살에 결혼했으나 남편은 10년간 도박으로 집사님이 고생하고 장사하며 모은돈을 탕진하고 폭력을 일삼기 때문에 스트레스로 마음에 화병이 생겨서 위장병에 얼굴은 기미로 까맣고 폐인이 되어 7년간 고통을 당했습니다. 병원비가 없어 병원에 못가고 누워있는데 어느날 하혈이 너무 심해서 병원에 실려 갔는데 검사결과는 장이 재 기능을 못하니 일부를 드러내고 인공장기를 넣는 수술을 했지만 너무 몸이 약해서 1년간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퇴원하고 매일 약을 한움큼씩 먹으며 겨우 시장에 가서 장사를 하는데 남편은 여전히 방탕한 생활을 계속하여 더 괴로웠습니다. 단골손님중 우리교회의 성도님이라며 자주와서 물건도 사주고 가게도 봐주며 자꾸 전도를 했습니다. 그때 그는 기독교라면 무조건 싫어하고 전도하면 오지 말고 다른가게 가라고 역정을 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기어코 위암에 걸려서 입원했는데 살가망이 없다고 말하자 그때에 교회나 가보자고 그는 교회에 나와서 단골손님이 여의도 순복음교회라고 말하매 어딘지도 모르고 택시를 잡고 운전수에 부탁을 해서 우리교회 금요철야에 와서 설교를 듣는데 천둥벽력이 치는 것 같은 감격을 느끼고 크게 치마가 다젖도록 눈물로 통회하고 자복하고 예수를 구주로 모시게 된것입니다. 그다음 남편은 그 길로 세상을 떴습니다. 그 충격으로 한쪽귀가 먹어졌는데 그래도 열심히 교회에 참석하여 마음은 편안하고 주님이 이 어둡고 컴컴한 삶에 같이 계신다는 신념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주일날 설교후에 제가 신유기도때 남편이 죽은후 귀가 안들리는 사람이 오늘 있는 나았다고 하는데 즉시로 귀가 탕 티어 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귀가 나았습니다. 그리고 20년간 약을 먹은 위장병과 장염은 수요신유때 깨끗이 고침받고 그후에 물질에 축복을 주셔서 강건할 뿐 아니라 여유있게 살아가게 되어서 평생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절망하고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구원받게 하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하셔서 오늘날은 주님과 함께 빛가운데서 산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결론>
크고 작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이땅에 사는 동안에 안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목자도 같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허막한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도 우리 목자께서 같이 계시고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의지할 때 주님은 우리를 그속에서 형통케 하시는 것입니다. 좋을때만 형통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울때도 그 가운데서 형통케 하십니다. 그래서 주를 목자로 섬기고 사랑하면 시편 91편 14절로 16절 말씀처럼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고 약속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 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는 지금도 우리 위에서 인도하시고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주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말씀을 우리가 오늘 받아 들여야 됩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함께 계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주님께서 좋을때만 같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운 극한 상황에 처했을때도 함께 계심을 감사합니다.
친구도 가족도 다 떠났을 때 가장 외롭고 적막할 때 주님은 나를 버리지 않고
같이 계시매 선한목자로서 우리를 돌보시니 진실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선한목자를 바라보고 그 지팡이와 막대기를 의지하고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이 지상의 불안과 공포의
사망의 골짜기를 성공적으로 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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