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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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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3년 9월 7일 주일2부설교 |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 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인간은 육신으로 태어난 그 순간부터 병균과 더불어 생존을 위한 투쟁이 시작됩니다.
가난하고 위생적 환경이 열악할수록 유아 사망률은 굉장히 높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거듭난 그 순간부터 마귀와의 전쟁에 돌입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영적으로 갓 태어난 사람들을 영적으로 압살하려고 전력을 기울입니다.
이와 같은 영적 전쟁은 평생을 계속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마귀와의 싸움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몇가지 명심해야될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로, 영적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 1편 1절에 “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라고 되어 있습니다. 교만이란 자기를 과대평가하고 분수를 뛰어넘어 대접받으려 하며 거만하게 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신학자이자 복음주의 목사였던 라이노 홀더 니버는 인간에게 권력과 지식과 도덕적 교만이 있으며 가장 무서운 죄는 영적인 교만이라고 말했습니다.
천사 루시퍼가 왜 떨어져서 마귀가 되었습니까? 그는 하나님이 지은 천사중에 가장 아름다운 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아룸다움에 도취해서 오만 불순하게 되어 하나님의 보좌를 탐했던 것입니다.
이사야 14장 12~15절에 보면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밑에 빠치우리로다 ”
그렇게 아름다운 천사장 루시퍼가 하나님과 보좌를 동등히 하려는 교만과 오만 .불순한 행동 때문에 마귀로 전략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6절에 보면 “새로 입교한 자도 말찌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정죄받은 것은 교만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바울선생은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잠언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이 왜 타락햇습니까? 아담이 시험을 받았을 때 그 아름다움은 현란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았으니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아 그 지혜와 총명이 탁월하고 그 육체는 죽지 아니할 생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가 사는 에덴은 하나님이 온 정성을 다 기울여 만들어 주신 에덴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존재로 지음을 받은 그가 왜 타락했습니까? 역시 교만입니다. 먼저 타락한 사탄의 꾀임에 빠진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절로 5절에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나님과 같이 된다. 그것은 루시퍼가 미리 시도했다가 정죄 받아 마귀로 전락한 똑같은 경우입니다. 사람은 피조물이요 창조주가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과의 사이에는 건널수 없는 다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귀의 꾀임에 빠져 하나님처럼 될려고 선악과를 따먹었다가 타락하고 만 것입니다. 안토니오는 말하기를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겸손이요,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것은 교만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겸손함을 우리가 보고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사람으로 오셨으매 죽기까지 충성하고 순종한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로 8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주님의 겸손함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친히 지으신 분이십니다. 창조주 이신것입니다. 그 영광은 극에 달하고 그 광채는 우주를 비추이며 그런 주님이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의 육체를 쓰고 오신 이후에는 사람처럼 낮아지고 겸비해져서 하나님께 순종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충성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진 이 마음을 우리의 마음에 품으면 우리가 마귀의 시험에 빠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항상 자기를 낮추면 하나님이 높여주십니다. 스스로 높아질려면 마귀의 종이 되어 타락합니다. 스스로 낮추면 하나님이 높여주십니다.
베드로전서 5장 6절로 9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마귀는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어서 타락시키고 하나님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셔서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마귀에게서 지키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정복하기로 계획했을 때 충성스런 장군이 그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하! 부탁드립니다. 이번 러시아 원정을 취소해 주십시오. 각하께선 지금까지 수많은 나라를 정복하셨습니다. 이만하면 족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나폴레옹은 그의 충고를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자 장군은 마지막으로 한번더 간청했습니다. “각하, 사람이 일을 계획해도 그 일을 성취시키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번 러시아 원정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 취소해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나폴레옹은 크게 화를 내면서 “내가 모든일을 계획하고 성취한다. 무슨 하나님이 일을 계획하고 성취하느냐?” 그렇게 큰소리 치고 오만방자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러시아 원정에서 실패하고 이를 계기로 나폴레옹은 폐망하고 말았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북한의 주체사상에 보면 우주의 중심은 인간이고 인간이 역사를 창조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것도 나폴레옹과 똑같은 오만 불순한 말입니다. 우주의 중심은 하나님이시고, 역사는 하나님이 창조하시지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우주의 중심이 되고 역사를 만들어 갑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와 같은 사상을 가지고 나가면 이미 패망은 결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패망은 교만으로 오만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는 교만하지 말아야 됩니다. 언젠가 미국 종교 지도자들이 타락하여 사회적으로 큰 무리를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분은 굉장히 훌륭했던 주의 종이 었는데 나중에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과정에서 이런 말을했습니다.
나에겐 결코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자신은 어떤 죄도 지을수 없다는 생각 자체는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예외 가 될 수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항상 낮추어야죠, 이만하면 되었다, 나는 보통사람과 다르다, 나는 죄짓지 않는다, 이렇게 교만하면 결국엔 죄의 수렁에 빠지고 맙니다. 교만하면 마귀의 유혹에 걸려져 죄를 짓고 결국 폐망하게 됩니다. 우리가 자신에 대한 과신을 버리고 항상 마음을 낮추일 때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서 벗어날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계명을 존중해야 우리가 마귀를 이길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1편 2절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 라고 말했었습니다. 구원은 조건없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은혜로 받되, 구원을 지키기 위해서는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구원은 은혜로 값없이 받지만 받은 은혜를 지키는 것은 계명인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하나님의 계명을 버림으로 멸망하지 않았습니까? 들어올때는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왔지만 가나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가나안을 지키는데 계명을 져버리자 가나안에서 쫏겨나고만 것입니다. 계명은 하나님의 품성이신 것입니다. 두사람이 함께 살기 위해서는 성격이 맞아야 합니다. 많은 가정이 파괴되는 이유는 성격차이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오늘날 한국 이혼의 3분의 1의 이유는 성격차이라고 말합니다 .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품성이신 계명을 지켜서 하나님과 성격적인 차이가 생겨서는 안됩니다.
레위기 19장 2절로 3절에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서 하나님의 품성과 같아야 하나님과 동행할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대통령이었던 아브라함 링컨은, 어린시절의 추억중에 가장 인상남은 것은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서 성경 말씀을 들었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귀가 닳도록 십계명을 되풀이 하여 들려주시던 일은 잊을수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공직에 있었을 때에 뇌물의 유혹을 많이 받곤했는데 그때마다 거절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물질적 유혹이 있을때마다 어머니가 날마다 들려주시던 “도둑질하지 말라, 주 너의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는 계명이 내 귀에 쟁쟁 울립니다. 그리고 나는 어머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으므로, 공직에 있으면서 부폐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링컨의 방에는 깃발하나가 걸려있었는데, 그 깃발에는 다음과 같은 성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웨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그는 이 깃발이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노력과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확신이 링컨을 역사에 담는 위대한 대통령으로 만든것입니다. 오늘날 왜 많은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이 부패하고 부정하고 지탄을 받습니까? 목사가 장로가 안수집사가 성도가 부폐에 연류되는 일들이 많지 않습니까? 구원을 안받아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계명으로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수치와 곤욕을 당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값없이 받지만 지키는 것은 계명의 울타리를 취하는 것입니다. 계명을 떠나면 마귀의 지뢰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09절로 110절에 “나의 생명이 항상 위경에 있사오나 주의 법은 잊지 아니하나이다 악인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악인이 아무리 둘러 진을 치고 올무를 놓아도 내가 주의 계명을 가슴에 품고 있으면 그 악인의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4절로 15절에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어떻게 거룩하게 됩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므로 거룩한 자가 되지는 않습니다.
여호수아 1장 7절에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계명은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계명은 우리를 정죄하고 심판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값없이 은혜로 넘치게 받지만 이를 지키는 것은 계명의 울타리를 치고 계명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마귀를 이기고 살기 위해서는 말씀의 영양분을 정기적으로 섭취해야 됩니다
시편 1편 3절에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음식을 잘 먹지 못하면 신체가 약해지고 저항력이 없어져 각종 병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 평균 수명은 남자가 65세 여자가 70세인데 200년 전보다 거의 배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오늘날 옛날보다 장수하는 이유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옛날 사람보다 잘 먹어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때만 하더라도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60을 넘기는 사람이 우리 동네에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회갑잔치를 거창스럽게 했는데 요사이 60은 혈기왕성한 청년입니다. 그러므로 60에 회갑잔치 요사이 별로하지 않지 않습니까? 어느 정당에 보니까 60된 사람은 다 당을 떠나라고 했는데 큰 오해입니다. 저도 예전에는 신문을 보다가 60된 누가 무엇무엇을 했다고 하면 ‘아이고 영감이 그렇게 했구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제가 60이 넘어보니까 아직 건강한 청년 나이입니다.
여러분 오늘날은 항산화 작용을 하는 비타민을 많은 사람이 복용하므로 빨리 늙지 않습니다. 우리 체내의 유해 산소가 해를 입힐때에 산화적 손상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한 산화작용을 하는 수용성 비타민 C가 선봉에서 독성을 제거하면 2차로 지용성 비타민류가 독성을 제거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비타민을 많이 먹으므로 우리 몸이 산성화 되는 것을 막아 주어서 빨리 늙지 않아요. 건강하게 되어요. 이와같이 말씀은 영의 양식인 것입니다. 말씀을 먹어야 영적으로 지치지 않고 늙지 않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절에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말씀을 먹어야 자라지요. 말씀을 먹지 않으면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병들고 죽게 되지요.
시편 1편 2절로 3절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말씀이 우리를 형통하게 만들고 생명으로 넘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성경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세상과 마귀와 이단의 어두움에서 이겨 나갈수 있기 위해서는 항상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면 내 발에 등이 되고 내 길에 빛이 되어서 실족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잠언서 8장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고아의 아버지라고 불리웠던 조지 뮬러는 평생 3천명 이상의 고아를 돌보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큰일을 할수 있었냐는 질문을 받을때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성경을 100번 통독했습니다. 그러나 한번도 싫증난 적이 없었고 읽을때마다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나의 54년간의 신앙체험에 근거한 것입니다. 나는 예수를 믿고 처음 3년 간은 성경을 안읽었는데 그때는 영적인 기쁨도 사명도 느끼지 못한 죽은 크리스챤이었습니다. 나는 그 기간을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적 생활에 활력은 날마다 성경을 읽느냐 안읽느냐에 정비례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영의 양식이기 때문에 우리가 정규적으로 말씀을 늘 먹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매일 여러분 생활의 시작을 말씀을 읽고 묵상하므로 시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로, 마귀와의 씨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기도를 등안히 해서는 안됩니다.
시편 1장 4절로 5절에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죄인과 악인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없지 않습니까? 의인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부부도 대화가 멀어지면 멀어집니다. 어떠한 사랑하는 부부가 조그마한 실개천을 사이에 두고 손을 잡고서 오순도순 이야기 하면서 걸어갔습니다. 실개천이 자꾸 넓어지니까 잡은 손을 놓고서 서로 웃고 이야기하면서 갔습니다. 실개천이 점점 커져서 큰 개천이 되니까 이제는 서로 처다보고 멀리 고함을 쳐서 이야기를 합니다. 나중엔 실개천이 커져서 큰 바다가 되었고 이제는 서로 떨어져서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다른 친구를 사귀어서 갔다는 옛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로 가까워지지 않고 멀어지고 대화가 없으면 반드시 시험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대화를 하지 않고 살면은 그 속에 사탄이 언제나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는 실버시대라는 직업이 있어서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러한 직업입니다. 일이삼(123)법칙이라는게 있어서 1분간 말하고 2분간 노인들의 말을 들어주고 3분간 노인들의 말에 옳습니다 옳습니다 하면서 맞장구 치고 나면 그 사례비로 돈을 버는 비즈니스입니다. 그런데 굉장히 이 사업이 잘 되고 있습니다. 노인들이 외롭지 않습니까? 돈 많은 노인들이 외로우니까 와서 이야기를 한 1분동안 해주고 한 2분동안 들어주고 삼분동안 노인들의 하는 말에 맞장고 쳐주고 옳타고 머리를 끄덕거려 주고 그 다음엔 두둑히 돈 받고서 생활하는 이러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중고생의 20%는 부모와 전혀 대화가 없이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과반수는 대화해도 하루 평균 30분도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짧게 대화하고 난 다음에 어떻게 부모와 자식간의 교통이 있으며 친밀함이 있을수가 있겠습니까? 미국의 신문학자 월버 스림 박사는 대화가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왜 밥을 먹고 왜 잠을 자는가 라는 질문 만큼이나 어리석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경영학자 피더 드러크 회사 경영이 실패하는 원인의 60%는 직원 사이의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데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부부 상담자 퀴베이는 이혼하는 원인의 50%가 부부사이에 대화가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이혼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범죄심리학자는 말하기를 범죄자의 90%가 다른 사람과의 대화나 교제등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그들 대부분이 아들들과 충분히 대화를 나누며 교감을 가졌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아버지와 충분한 대화가 있는 딸들이 사회에 나가서 성공적인 생활을 하고 리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우리는 하늘의 아버지와 기도를 통해서 반드시 대화를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정규적인 기도의 생활만이 영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령한 생활을 어떻게 합니까? 기도없이 신령한 생활을 할 수 없지요.
잠언서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랑도 않고 찾지도 않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같이 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복음 22장 46절에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잠만 자고 있으면 시험에 듭니다. 깨어 있어야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기도 해야만 응답하시는 이유도 대화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전지 전능 무소 부지 하신데 우리 필요한 것 미리 다 아시는데 기도할 필요가 어디있느냐? 하나님 그냥 대답해 주기를 원하시면 해주시겠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잘 아시지만 우리가 구할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우리와 대화를 원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시편 91편 15절에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2절에도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어떠한 일에도 대화를 해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은 스펄전 목사님이 인도하는 예배에 참석했던 한 유명한 인사가 목사님의 설교에 큰 감명을 받고 예배 후에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이처럼 크게 감화되는 큰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비결을 가르켜 주십시오.” “제게는 능력을 공급해 주는 동력실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신령한 힘이 공급됩니다.” “아니 스펄전 목사님! 동력실이라구요? 그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저희교회 지하실에 있습니다. 원하시면 보여 드릴테니 따라 오십시오.” 스펄전목사님을 따라서 지하실로 내려가자 과연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스펄전 목사는 방문을 열면서 “바로 여기가 나의 신령한 동력실입니다.” 하는데 보니까 스펄전 목사님이 설교할 동안에 기도의 용사들이 그 지하실 기도실에 모여서 “하나님이여 우리 목사님의 설교에 성령의 능력이 임하여 감화 감동을 주게 하여 주시옵소서.” 끊임없는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도하는 동력에 의해서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는 감화를 입고 수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는 능력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섯째로, 우리는 마귀를 이기고 신앙생활 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한 생활을 등한히 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 나가는데 도우미가 요사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전시회에 가도 도우미가 있어 도와 줍니다. 경기장에 가도 도우미가 안내를 해줍니다. 물품 구입할때도 도우미가 도와 줍니다. 아파트 분양할때도 가도 도우미가 도와 줍니다. 요사이는 어디가도 도우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내려온 신령한 도우미가 계십니다. 그 신령하고 거룩한 도우미가 바로 성령 도우미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로 18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우리를 도와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도우미,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안에 계십니다. 성령이 바로 이 자리에 지금 함께 계신 것입니다. 성령은 여러분의 도움이 되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스가랴 4장 6절에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
성령이 도와 주셔서 기도할 수 있고, 전도할 수 있고, 믿음을 강하게 가질 수 있고, 말씀을 깨달을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농부가 읍내 농기구 가구에 붙어 있던 포스터를 보고 당장 자동톱을 하나 샀습니다. 그 포스터에 자동톱을 선전하는 광고 문구가 이 농부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자동톱은 2시간에 5그루의 참나무를 벨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농부가 그 톱을 가져가서 참 나무를 베는데 24시간 베어도 5그루 못베었습니다. 땀만 나고 애만 먹었습니다. 너무나 화가 나서 그 톱을 들고 시장에 와서 “당신 거짓말 했다. 이 톱을 가지고 죽도록 애를 써도 하루종일 해도 참나무 5그루를 못베었다”고 하니까 “그럼 나와 같이 갑시다.” 같이 와서 참나무가 있는 곳에 와서 스위치를 넣으니까 부르르르하고 톱이 자동톱이 되니까 2시간내에 참나무 5그루를 베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톱이라도 스위치를 걸지 아니하면 인간의 힘으로 베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스위치를 걸어야 됩니다. 여러분 속에 성령이 계시는데 여러분이 성령님께 의지하는 믿음의 스위치를 걸어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이 곁에 계시는데도 내 힘으로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지혜와 지식과 총명을 하려고 하니까 땀만 나고 안됩니다. 성령이 우리를 도와 주시려고 오실때는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고 기도하면 성령이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없는 신앙은 패배하고 마는 것입니다.
여섯째로, 우리가 마귀와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신앙 공동체를 떠나서는 절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시편 1편 6절에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한것처럼 의인들이 함께 모여서 주님께 기도하는 공동체를 형성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그 가운데 임하여 계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 거룩한 공동체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하나님이 우리와 거처를 함께 하면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지금 이시간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이 자리에 와서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거룩한 공동체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역셀에 모이는 것도 셀은 성도들이 함께 하는 소 공동체인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함께 모여 떡을 떼고 말씀공부하고 기도하며 교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에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46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함께 식사하고, 대화하고, 기도하는 것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함께 떡을 떼고, 함께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는 공동체가 있어야 우리가 신앙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망합니다.
전도서 4장 12절에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9절로 20절에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 일획도 변함없는 거짓이 없는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너희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십니다. 여기에 예수님이 계신 것입니다.
어떤 성도가 목사님 보고 “목사님 교회 가서 너무 번거로우니 나는 교회 그만 두겠습니다.” 목사님이 심방을 가서 권면을 해도 듣지 않습니다. 그런데 화롯불에 석탄이 활활 타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석탄 한 덩어리를 끌어 내었습니다. 그러자 석탄은 곧장 식어서 하얀 잿덩이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화로안의 석탄은 활활 탔습니다. “자매님! 석탄이 함께 화로 안에 있을때는 활활 타지만 한 덩어리 내 놓으면 식어서 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교회는 화로입니다. 함께 활활 탈수 있는 신앙이 있지만 따로 떨어져 나오면 흰 잿덩어리가 되고 맙니다.” 그 말을 듣고 그 자매님은 크게 회개하고 다시 교회를 나왔다고 한 말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3절로 25절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공동체 신앙은 상승 효과가 있습니다. 기러기를 보십시오. 기러기 한 마리가 혼자 날라가는 외기러기는 없지 않습니까? 일직선으로 날아가든지 브이자형을 만들어서 날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앞에 있는 기러기가 날개를 치면 그가 바람을 일으켜서 뒤에 있는 기러기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상승효과를 가지고 날라 올라갈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러기 앞에선 기러기가 날라가다가 나중에 피곤해 지면 또 자리를 바꾸고 다른 기러기가 앞에 서고 그 뒤로 옵니다. 그리고 기러기가 날라갈 때 그냥 날라갑니까? 꽉, 꽉, 꽉 소리 치지요. 이것은 앞에서 날라가는 기러기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힘내라! 힘내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공동체로써 그들은 혼자 날라갈때보다 71%나 더 멀리 날라갈 수 있습니다. 기러기가 병이 들거나 총에 맞아 떨어지면 여러분 2,3마리의 기러기가 대열에서 벗어나서 반드시 병든 기러기와 총에 맞아 떨어진 기러기하고 같이 합니다. 함께 붙들어 주고 함께 도와 주어서 나중에 같이 날라가기 위해서. 이와같이 기러기도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사람들이 공동체를 떠나서 나혼자 나홀로 예수를 믿을 수 있다. 나는 가정재단 쌓는다. 나는 기도원에서 그냥 예수 믿는다.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운 공동체는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서는 신앙은 상실되고 마귀의 밥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은 끊임없는 마귀의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이 도전을 이기고 더 위대한 신앙을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 조건들을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계명을 존중해야 합니다. 말씀의 영양분을 정규적으로 섭취해야 합니다. 기도를 등안히 하지 말아야 됩니다. 성령충만해야 되는 것입니다. 신앙 공동체를 떠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마귀를 이기고 시험을 극복하고 넉넉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부르셔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인도해 주시고
거룩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자를 찾지만
천국에 성공적으로 들어갈 때까지
우리가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오늘 이 여섯가지 사항을 기억하고 지키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인간은 육신으로 태어난 그 순간부터 병균과 더불어 생존을 위한 투쟁이 시작됩니다.
가난하고 위생적 환경이 열악할수록 유아 사망률은 굉장히 높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거듭난 그 순간부터 마귀와의 전쟁에 돌입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영적으로 갓 태어난 사람들을 영적으로 압살하려고 전력을 기울입니다.
이와 같은 영적 전쟁은 평생을 계속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마귀와의 싸움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몇가지 명심해야될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로, 영적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 1편 1절에 “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라고 되어 있습니다. 교만이란 자기를 과대평가하고 분수를 뛰어넘어 대접받으려 하며 거만하게 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신학자이자 복음주의 목사였던 라이노 홀더 니버는 인간에게 권력과 지식과 도덕적 교만이 있으며 가장 무서운 죄는 영적인 교만이라고 말했습니다.
천사 루시퍼가 왜 떨어져서 마귀가 되었습니까? 그는 하나님이 지은 천사중에 가장 아름다운 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아룸다움에 도취해서 오만 불순하게 되어 하나님의 보좌를 탐했던 것입니다.
이사야 14장 12~15절에 보면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밑에 빠치우리로다 ”
그렇게 아름다운 천사장 루시퍼가 하나님과 보좌를 동등히 하려는 교만과 오만 .불순한 행동 때문에 마귀로 전략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6절에 보면 “새로 입교한 자도 말찌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정죄받은 것은 교만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바울선생은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잠언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이 왜 타락햇습니까? 아담이 시험을 받았을 때 그 아름다움은 현란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았으니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아 그 지혜와 총명이 탁월하고 그 육체는 죽지 아니할 생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가 사는 에덴은 하나님이 온 정성을 다 기울여 만들어 주신 에덴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존재로 지음을 받은 그가 왜 타락했습니까? 역시 교만입니다. 먼저 타락한 사탄의 꾀임에 빠진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절로 5절에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나님과 같이 된다. 그것은 루시퍼가 미리 시도했다가 정죄 받아 마귀로 전락한 똑같은 경우입니다. 사람은 피조물이요 창조주가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과의 사이에는 건널수 없는 다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귀의 꾀임에 빠져 하나님처럼 될려고 선악과를 따먹었다가 타락하고 만 것입니다. 안토니오는 말하기를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겸손이요,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것은 교만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겸손함을 우리가 보고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사람으로 오셨으매 죽기까지 충성하고 순종한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로 8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주님의 겸손함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친히 지으신 분이십니다. 창조주 이신것입니다. 그 영광은 극에 달하고 그 광채는 우주를 비추이며 그런 주님이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의 육체를 쓰고 오신 이후에는 사람처럼 낮아지고 겸비해져서 하나님께 순종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충성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진 이 마음을 우리의 마음에 품으면 우리가 마귀의 시험에 빠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항상 자기를 낮추면 하나님이 높여주십니다. 스스로 높아질려면 마귀의 종이 되어 타락합니다. 스스로 낮추면 하나님이 높여주십니다.
베드로전서 5장 6절로 9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마귀는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어서 타락시키고 하나님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셔서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마귀에게서 지키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정복하기로 계획했을 때 충성스런 장군이 그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하! 부탁드립니다. 이번 러시아 원정을 취소해 주십시오. 각하께선 지금까지 수많은 나라를 정복하셨습니다. 이만하면 족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나폴레옹은 그의 충고를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자 장군은 마지막으로 한번더 간청했습니다. “각하, 사람이 일을 계획해도 그 일을 성취시키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번 러시아 원정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 취소해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나폴레옹은 크게 화를 내면서 “내가 모든일을 계획하고 성취한다. 무슨 하나님이 일을 계획하고 성취하느냐?” 그렇게 큰소리 치고 오만방자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러시아 원정에서 실패하고 이를 계기로 나폴레옹은 폐망하고 말았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북한의 주체사상에 보면 우주의 중심은 인간이고 인간이 역사를 창조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것도 나폴레옹과 똑같은 오만 불순한 말입니다. 우주의 중심은 하나님이시고, 역사는 하나님이 창조하시지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우주의 중심이 되고 역사를 만들어 갑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와 같은 사상을 가지고 나가면 이미 패망은 결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패망은 교만으로 오만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는 교만하지 말아야 됩니다. 언젠가 미국 종교 지도자들이 타락하여 사회적으로 큰 무리를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분은 굉장히 훌륭했던 주의 종이 었는데 나중에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과정에서 이런 말을했습니다.
나에겐 결코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자신은 어떤 죄도 지을수 없다는 생각 자체는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예외 가 될 수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항상 낮추어야죠, 이만하면 되었다, 나는 보통사람과 다르다, 나는 죄짓지 않는다, 이렇게 교만하면 결국엔 죄의 수렁에 빠지고 맙니다. 교만하면 마귀의 유혹에 걸려져 죄를 짓고 결국 폐망하게 됩니다. 우리가 자신에 대한 과신을 버리고 항상 마음을 낮추일 때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서 벗어날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계명을 존중해야 우리가 마귀를 이길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1편 2절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 라고 말했었습니다. 구원은 조건없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은혜로 받되, 구원을 지키기 위해서는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구원은 은혜로 값없이 받지만 받은 은혜를 지키는 것은 계명인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하나님의 계명을 버림으로 멸망하지 않았습니까? 들어올때는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왔지만 가나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가나안을 지키는데 계명을 져버리자 가나안에서 쫏겨나고만 것입니다. 계명은 하나님의 품성이신 것입니다. 두사람이 함께 살기 위해서는 성격이 맞아야 합니다. 많은 가정이 파괴되는 이유는 성격차이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오늘날 한국 이혼의 3분의 1의 이유는 성격차이라고 말합니다 .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품성이신 계명을 지켜서 하나님과 성격적인 차이가 생겨서는 안됩니다.
레위기 19장 2절로 3절에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서 하나님의 품성과 같아야 하나님과 동행할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대통령이었던 아브라함 링컨은, 어린시절의 추억중에 가장 인상남은 것은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서 성경 말씀을 들었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귀가 닳도록 십계명을 되풀이 하여 들려주시던 일은 잊을수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공직에 있었을 때에 뇌물의 유혹을 많이 받곤했는데 그때마다 거절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물질적 유혹이 있을때마다 어머니가 날마다 들려주시던 “도둑질하지 말라, 주 너의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는 계명이 내 귀에 쟁쟁 울립니다. 그리고 나는 어머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으므로, 공직에 있으면서 부폐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링컨의 방에는 깃발하나가 걸려있었는데, 그 깃발에는 다음과 같은 성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웨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그는 이 깃발이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노력과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확신이 링컨을 역사에 담는 위대한 대통령으로 만든것입니다. 오늘날 왜 많은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이 부패하고 부정하고 지탄을 받습니까? 목사가 장로가 안수집사가 성도가 부폐에 연류되는 일들이 많지 않습니까? 구원을 안받아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계명으로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수치와 곤욕을 당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값없이 받지만 지키는 것은 계명의 울타리를 취하는 것입니다. 계명을 떠나면 마귀의 지뢰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09절로 110절에 “나의 생명이 항상 위경에 있사오나 주의 법은 잊지 아니하나이다 악인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악인이 아무리 둘러 진을 치고 올무를 놓아도 내가 주의 계명을 가슴에 품고 있으면 그 악인의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4절로 15절에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어떻게 거룩하게 됩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므로 거룩한 자가 되지는 않습니다.
여호수아 1장 7절에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계명은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계명은 우리를 정죄하고 심판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값없이 은혜로 넘치게 받지만 이를 지키는 것은 계명의 울타리를 치고 계명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마귀를 이기고 살기 위해서는 말씀의 영양분을 정기적으로 섭취해야 됩니다
시편 1편 3절에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음식을 잘 먹지 못하면 신체가 약해지고 저항력이 없어져 각종 병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 평균 수명은 남자가 65세 여자가 70세인데 200년 전보다 거의 배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오늘날 옛날보다 장수하는 이유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옛날 사람보다 잘 먹어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때만 하더라도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60을 넘기는 사람이 우리 동네에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회갑잔치를 거창스럽게 했는데 요사이 60은 혈기왕성한 청년입니다. 그러므로 60에 회갑잔치 요사이 별로하지 않지 않습니까? 어느 정당에 보니까 60된 사람은 다 당을 떠나라고 했는데 큰 오해입니다. 저도 예전에는 신문을 보다가 60된 누가 무엇무엇을 했다고 하면 ‘아이고 영감이 그렇게 했구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제가 60이 넘어보니까 아직 건강한 청년 나이입니다.
여러분 오늘날은 항산화 작용을 하는 비타민을 많은 사람이 복용하므로 빨리 늙지 않습니다. 우리 체내의 유해 산소가 해를 입힐때에 산화적 손상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한 산화작용을 하는 수용성 비타민 C가 선봉에서 독성을 제거하면 2차로 지용성 비타민류가 독성을 제거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비타민을 많이 먹으므로 우리 몸이 산성화 되는 것을 막아 주어서 빨리 늙지 않아요. 건강하게 되어요. 이와같이 말씀은 영의 양식인 것입니다. 말씀을 먹어야 영적으로 지치지 않고 늙지 않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절에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말씀을 먹어야 자라지요. 말씀을 먹지 않으면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병들고 죽게 되지요.
시편 1편 2절로 3절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말씀이 우리를 형통하게 만들고 생명으로 넘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성경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세상과 마귀와 이단의 어두움에서 이겨 나갈수 있기 위해서는 항상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면 내 발에 등이 되고 내 길에 빛이 되어서 실족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잠언서 8장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고아의 아버지라고 불리웠던 조지 뮬러는 평생 3천명 이상의 고아를 돌보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큰일을 할수 있었냐는 질문을 받을때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성경을 100번 통독했습니다. 그러나 한번도 싫증난 적이 없었고 읽을때마다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나의 54년간의 신앙체험에 근거한 것입니다. 나는 예수를 믿고 처음 3년 간은 성경을 안읽었는데 그때는 영적인 기쁨도 사명도 느끼지 못한 죽은 크리스챤이었습니다. 나는 그 기간을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적 생활에 활력은 날마다 성경을 읽느냐 안읽느냐에 정비례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영의 양식이기 때문에 우리가 정규적으로 말씀을 늘 먹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매일 여러분 생활의 시작을 말씀을 읽고 묵상하므로 시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로, 마귀와의 씨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기도를 등안히 해서는 안됩니다.
시편 1장 4절로 5절에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죄인과 악인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없지 않습니까? 의인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부부도 대화가 멀어지면 멀어집니다. 어떠한 사랑하는 부부가 조그마한 실개천을 사이에 두고 손을 잡고서 오순도순 이야기 하면서 걸어갔습니다. 실개천이 자꾸 넓어지니까 잡은 손을 놓고서 서로 웃고 이야기하면서 갔습니다. 실개천이 점점 커져서 큰 개천이 되니까 이제는 서로 처다보고 멀리 고함을 쳐서 이야기를 합니다. 나중엔 실개천이 커져서 큰 바다가 되었고 이제는 서로 떨어져서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다른 친구를 사귀어서 갔다는 옛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로 가까워지지 않고 멀어지고 대화가 없으면 반드시 시험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대화를 하지 않고 살면은 그 속에 사탄이 언제나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는 실버시대라는 직업이 있어서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러한 직업입니다. 일이삼(123)법칙이라는게 있어서 1분간 말하고 2분간 노인들의 말을 들어주고 3분간 노인들의 말에 옳습니다 옳습니다 하면서 맞장구 치고 나면 그 사례비로 돈을 버는 비즈니스입니다. 그런데 굉장히 이 사업이 잘 되고 있습니다. 노인들이 외롭지 않습니까? 돈 많은 노인들이 외로우니까 와서 이야기를 한 1분동안 해주고 한 2분동안 들어주고 삼분동안 노인들의 하는 말에 맞장고 쳐주고 옳타고 머리를 끄덕거려 주고 그 다음엔 두둑히 돈 받고서 생활하는 이러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중고생의 20%는 부모와 전혀 대화가 없이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과반수는 대화해도 하루 평균 30분도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짧게 대화하고 난 다음에 어떻게 부모와 자식간의 교통이 있으며 친밀함이 있을수가 있겠습니까? 미국의 신문학자 월버 스림 박사는 대화가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왜 밥을 먹고 왜 잠을 자는가 라는 질문 만큼이나 어리석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경영학자 피더 드러크 회사 경영이 실패하는 원인의 60%는 직원 사이의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데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부부 상담자 퀴베이는 이혼하는 원인의 50%가 부부사이에 대화가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이혼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범죄심리학자는 말하기를 범죄자의 90%가 다른 사람과의 대화나 교제등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그들 대부분이 아들들과 충분히 대화를 나누며 교감을 가졌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아버지와 충분한 대화가 있는 딸들이 사회에 나가서 성공적인 생활을 하고 리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우리는 하늘의 아버지와 기도를 통해서 반드시 대화를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정규적인 기도의 생활만이 영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령한 생활을 어떻게 합니까? 기도없이 신령한 생활을 할 수 없지요.
잠언서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랑도 않고 찾지도 않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같이 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복음 22장 46절에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잠만 자고 있으면 시험에 듭니다. 깨어 있어야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기도 해야만 응답하시는 이유도 대화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전지 전능 무소 부지 하신데 우리 필요한 것 미리 다 아시는데 기도할 필요가 어디있느냐? 하나님 그냥 대답해 주기를 원하시면 해주시겠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잘 아시지만 우리가 구할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우리와 대화를 원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시편 91편 15절에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2절에도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어떠한 일에도 대화를 해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은 스펄전 목사님이 인도하는 예배에 참석했던 한 유명한 인사가 목사님의 설교에 큰 감명을 받고 예배 후에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이처럼 크게 감화되는 큰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비결을 가르켜 주십시오.” “제게는 능력을 공급해 주는 동력실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신령한 힘이 공급됩니다.” “아니 스펄전 목사님! 동력실이라구요? 그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저희교회 지하실에 있습니다. 원하시면 보여 드릴테니 따라 오십시오.” 스펄전목사님을 따라서 지하실로 내려가자 과연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스펄전 목사는 방문을 열면서 “바로 여기가 나의 신령한 동력실입니다.” 하는데 보니까 스펄전 목사님이 설교할 동안에 기도의 용사들이 그 지하실 기도실에 모여서 “하나님이여 우리 목사님의 설교에 성령의 능력이 임하여 감화 감동을 주게 하여 주시옵소서.” 끊임없는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도하는 동력에 의해서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는 감화를 입고 수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는 능력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섯째로, 우리는 마귀를 이기고 신앙생활 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한 생활을 등한히 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 나가는데 도우미가 요사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전시회에 가도 도우미가 있어 도와 줍니다. 경기장에 가도 도우미가 안내를 해줍니다. 물품 구입할때도 도우미가 도와 줍니다. 아파트 분양할때도 가도 도우미가 도와 줍니다. 요사이는 어디가도 도우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내려온 신령한 도우미가 계십니다. 그 신령하고 거룩한 도우미가 바로 성령 도우미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로 18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우리를 도와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도우미,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안에 계십니다. 성령이 바로 이 자리에 지금 함께 계신 것입니다. 성령은 여러분의 도움이 되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스가랴 4장 6절에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
성령이 도와 주셔서 기도할 수 있고, 전도할 수 있고, 믿음을 강하게 가질 수 있고, 말씀을 깨달을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농부가 읍내 농기구 가구에 붙어 있던 포스터를 보고 당장 자동톱을 하나 샀습니다. 그 포스터에 자동톱을 선전하는 광고 문구가 이 농부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자동톱은 2시간에 5그루의 참나무를 벨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농부가 그 톱을 가져가서 참 나무를 베는데 24시간 베어도 5그루 못베었습니다. 땀만 나고 애만 먹었습니다. 너무나 화가 나서 그 톱을 들고 시장에 와서 “당신 거짓말 했다. 이 톱을 가지고 죽도록 애를 써도 하루종일 해도 참나무 5그루를 못베었다”고 하니까 “그럼 나와 같이 갑시다.” 같이 와서 참나무가 있는 곳에 와서 스위치를 넣으니까 부르르르하고 톱이 자동톱이 되니까 2시간내에 참나무 5그루를 베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톱이라도 스위치를 걸지 아니하면 인간의 힘으로 베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스위치를 걸어야 됩니다. 여러분 속에 성령이 계시는데 여러분이 성령님께 의지하는 믿음의 스위치를 걸어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이 곁에 계시는데도 내 힘으로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지혜와 지식과 총명을 하려고 하니까 땀만 나고 안됩니다. 성령이 우리를 도와 주시려고 오실때는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고 기도하면 성령이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없는 신앙은 패배하고 마는 것입니다.
여섯째로, 우리가 마귀와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신앙 공동체를 떠나서는 절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시편 1편 6절에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한것처럼 의인들이 함께 모여서 주님께 기도하는 공동체를 형성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그 가운데 임하여 계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 거룩한 공동체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하나님이 우리와 거처를 함께 하면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지금 이시간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이 자리에 와서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거룩한 공동체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역셀에 모이는 것도 셀은 성도들이 함께 하는 소 공동체인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함께 모여 떡을 떼고 말씀공부하고 기도하며 교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에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46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함께 식사하고, 대화하고, 기도하는 것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함께 떡을 떼고, 함께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는 공동체가 있어야 우리가 신앙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망합니다.
전도서 4장 12절에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9절로 20절에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 일획도 변함없는 거짓이 없는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너희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십니다. 여기에 예수님이 계신 것입니다.
어떤 성도가 목사님 보고 “목사님 교회 가서 너무 번거로우니 나는 교회 그만 두겠습니다.” 목사님이 심방을 가서 권면을 해도 듣지 않습니다. 그런데 화롯불에 석탄이 활활 타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석탄 한 덩어리를 끌어 내었습니다. 그러자 석탄은 곧장 식어서 하얀 잿덩이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화로안의 석탄은 활활 탔습니다. “자매님! 석탄이 함께 화로 안에 있을때는 활활 타지만 한 덩어리 내 놓으면 식어서 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교회는 화로입니다. 함께 활활 탈수 있는 신앙이 있지만 따로 떨어져 나오면 흰 잿덩어리가 되고 맙니다.” 그 말을 듣고 그 자매님은 크게 회개하고 다시 교회를 나왔다고 한 말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3절로 25절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공동체 신앙은 상승 효과가 있습니다. 기러기를 보십시오. 기러기 한 마리가 혼자 날라가는 외기러기는 없지 않습니까? 일직선으로 날아가든지 브이자형을 만들어서 날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앞에 있는 기러기가 날개를 치면 그가 바람을 일으켜서 뒤에 있는 기러기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상승효과를 가지고 날라 올라갈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러기 앞에선 기러기가 날라가다가 나중에 피곤해 지면 또 자리를 바꾸고 다른 기러기가 앞에 서고 그 뒤로 옵니다. 그리고 기러기가 날라갈 때 그냥 날라갑니까? 꽉, 꽉, 꽉 소리 치지요. 이것은 앞에서 날라가는 기러기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힘내라! 힘내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공동체로써 그들은 혼자 날라갈때보다 71%나 더 멀리 날라갈 수 있습니다. 기러기가 병이 들거나 총에 맞아 떨어지면 여러분 2,3마리의 기러기가 대열에서 벗어나서 반드시 병든 기러기와 총에 맞아 떨어진 기러기하고 같이 합니다. 함께 붙들어 주고 함께 도와 주어서 나중에 같이 날라가기 위해서. 이와같이 기러기도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사람들이 공동체를 떠나서 나혼자 나홀로 예수를 믿을 수 있다. 나는 가정재단 쌓는다. 나는 기도원에서 그냥 예수 믿는다.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운 공동체는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서는 신앙은 상실되고 마귀의 밥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은 끊임없는 마귀의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이 도전을 이기고 더 위대한 신앙을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 조건들을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계명을 존중해야 합니다. 말씀의 영양분을 정규적으로 섭취해야 합니다. 기도를 등안히 하지 말아야 됩니다. 성령충만해야 되는 것입니다. 신앙 공동체를 떠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마귀를 이기고 시험을 극복하고 넉넉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부르셔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인도해 주시고
거룩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자를 찾지만
천국에 성공적으로 들어갈 때까지
우리가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오늘 이 여섯가지 사항을 기억하고 지키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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