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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잠1: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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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류상태 목사 |
참고 : | 새길교회 2006.5.7 주일설교 |
잠언 1:8~9, 에베소서 6:1~4
옛날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하늘나라에서, 곧 지상으로 내려가게 될 아기 천사가 있었습니다. 아기 천사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내일 지상으로 보내실 거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작고 무능력한 아기로 태어나 살아갈 자신이 없어요.”
하나님께서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너를 위해 천사를 한 명 준비해 두었단다. 그 천사가 널 돌봐줄 거야.”
“하지만 저는 여기서 노래하고 웃으며 행복하게 지내고 싶은데요.”
“걱정마라, 아가야. 지상에서 너의 천사가 너를 위해 노래하고 미소 지어 줄 거야. 너는 천사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게 될 거야.”
“하지만 전 사람들의 말을 모르는데 그들이 하는 말을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나요?”
“너의 천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로 얘기해 줄 거야. 그리고 인내와 사랑으로 너에게 말하는 걸 가르쳐 줄 거야.”
“제가 하나님을 보고 싶을 땐 어떻게 해요?”
“너의 천사가 네 손을 잡고 기도하는 법을 알려 줄 거야.”
“지상에는 나쁜 사람도 많다고 하던데요.”
“너의 천사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널 보호해 줄 거야.”
“하지만 하느님을 보지 못하게 되면 너무 슬플텐데요...”
“너의 천사가 나에 대해 얘기해 주고, 나한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줄 거란다. 난 늘 네 곁에 있을 거지만 말이야.”
그 순간, 하늘이 평온해지면서 지상에서 아기의 탄생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 제가 지금 떠나야 한다면 제 천사의 이름이라도 알려 주세요.”
“너의 천사를 너는 ‘엄마’라고 부르게 될 거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TOP 10을 정한다면 틀림없이 ‘엄마’라는 단어가 랭킹에 들어갈 것입니다. 아마도 ‘사랑’이라는 단어와 ‘엄마’라는 단어가 랭킹 1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지 않을까요. ‘아빠’라는 단어는 어떨까요? 아마 랭킹 10위 안에 들어가기는 힘들 것입니다. 30위나 40위 정도 하지 않을까요.^^
아기 천사 이야기에서, 지상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는 아기 천사를 안심시키며, 하나님께서 엄마라는 이름의 천사가 어떠한지를 설명하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지상에서는 너의 천사가 너를 위해 노래하고 미소 지어 줄 거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로 너한테 얘기해 줄 거야.”
“인내와 사랑으로 너에게 말하는 걸 가르쳐 줄 거야.”
“네 천사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널 보호해 줄 거야.”
어떻습니까? 어머니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모성을 잘 묘사해 주었다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아버지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모성의 위대함이 바로 이런 점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오늘은 가정주일 예배라 전교우가 함께 드리는 예배인데요. 지금 여기, 어린이들과 청소년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지요? 어버이날이 되면 가장 많이 인용되는 시조가 있습니다. 오늘 설교제목을 여기서 따왔는데, 아시는 분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아시는 분은 따라 하셔도 좋겠습니다.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길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 뿐인가 하노라.
조선시대 유학자인 송강 정철의 <송강가사>에 나오는 시조입니다.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는, 부모님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주신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자식을 낳았으면 길러주는 것이 당연하고, 부모가 자식 필요한 걸 해주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자식을 낳아 보고, 자식 때문에 속도 썩어 보고, 세월이 흘러 인생의 허무와 한계도 느껴보면, 그 때까지 그저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부모님의 사랑이 애절하게 가슴을 파고들게 됩니다. 그제서야 “아차, 내가 철부지로 살아왔구나. 이제부터라도 잘 좀 모셔야지...”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세월이 기다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이런 시가 전해오나 봅니다.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리지 않는다.
비가 오면 구슬프게 울어대는 청개구리 이야기를 아시는지요. 청개구리 삼형제가 살았답니다. 동으로 가라 하면 서로 가고, 이렇게 해라 하면 저렇게 하는 불효자식들이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양지바른 동산 언덕에 묻어달라”고 하면 냇가에 묻을 것 같아서 개울물 옆에 묻어달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 유언은 들어드려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모처럼 형제들이 뜻을 모아 냇가에 묻었답니다. 그래서 비가 오면 어머니 묘지가 떠내려 갈까봐 그렇게 슬피 운다더군요. 돌아가신 다음에 슬퍼하지 말고 살아계실 때 효도하라고 옛 현인들이 지어낸 얘기겠지요.
지금부터는 자녀 교육에 대한 말씀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겪은 일을 중심으로 몇가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 상담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점이 있습니다. “문제 학생 뒤에는 문제 가정이 있다”는 점입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돈의 많고 적음은 학생들의 탈선 문제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거의 관계가 없는 것 같습니다. 돈이 없어도 부모 사랑이 충분하면 아이들은 잘 자랍니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빗나가는 아이들이 적지 않게 발생합니다.
부모 자식간의 관계에서 청소년들의 인격성장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제가 경험한 바로는) 부모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돈으로 떼우는 경우입니다. 부족한 부모 사랑은 돈으로 메꾸어지지 않습니다. 19년 동안 학생들과 함께 살아온 저의 경험에서 내려진 결론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사랑의 일정 분량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 사랑의 기본 용량이 채워지지 않을 때, 그것을 대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부모님이 안 계신 학생이 곱게 자라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강인한 사회인으로 자라는 경우는 드물지 않지만, 따뜻하고 균형잡힌 인격인으로 자라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한 쪽만 계시는 경우, 한 분이 가정을 든든하게 지켜주면 아이들은 잘 자랍니다. 부모님이 다 계시면서 자식에 대해 방관하거나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우보다 더 잘 자라는 것 같습니다.
몇 해 전에, 학생들 수업시간에 조별토의를 시킨 적이 있습니다. 어버이날 전후해서 <부모님에 대한 희망사항>이라는 제목을 주고, 조별로 토의를 시키고 발표하게 했는데, 당황스런 발표를 하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희망사항 1위가 “문 열어줘”, 2위가 “밥 줘”였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아이들이 장난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발표를 들으면서 그 조에 속했던 학생들이 정말로 바라는 간절한 희망사항이 그 짧은 문장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사실을 금방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조에 속했던 아이들 대부분이 (어쩌면 요즘 청소년들의 일상적인 모습인지도 모르지요) 집에 가면 문을 열어주고 반갑게 맞아줄 분이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밥을 차려줄 분도 없었구요. 부모님이 모두 일하러 나가고 안 계셨으니까요.
가능하면 하루 한 끼 식사는 자녀들과 함께 해 주십시오. 그게 어려우시면, 하루 5분이라도, 자녀들과 대화의 시간을 꼭 가져주십시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에베소서 6장 4절 말씀에,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개역성경에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되어 있지요. “내 자식이니까 내 생각대로”가 아니라 “주의 교양과 훈계로”입니다.
“내 자식”이라는 생각에 너무 사로잡히면 집착을 낳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식”이라는 생각이 집착이 되면, 자식을 위해서 하는 말과 생각과 행동이 오히려 자식을 망칠 수 있습니다. “이 아이는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주셔서 내 자식”이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우리가 생명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명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조상으로부터 이어진 생명이 나를 통해 자식에게 전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 조상,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내 자식”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을뿐더러 필연적으로 집착을 낳게 됩니다. 그 집착이 욕심을 낳고 욕심은 화를 부를 수 있습니다.
혹 “내 아이는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 해”라고 생각하시는 분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 다음에 한 가지만 더 생각해 주십시오. “과연 그렇게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라는 생각을 반드시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아이로 자라게 할까?” 보다 “어떻게 하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는 아이로 자라게 할까?”를 먼저 생각해 주십시오.
학교에 있으면서 절실히 느낀 점을 부모님들에게 한 말씀만 더 드리겠습니다. 아이들은 ‘듣고 배우는 것’보다 ‘보고 배우는 것’이 더 많습니다. 교사나 부모가 제대로 살지 못하는 상태에서 아이들에게 “바로 살라”고 얘기해봐야 별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무심코 행하는 교사나 부모의 습관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많이 끼칩니다. 부모의 습관은 자식에게 대물림되기 쉽습니다. 늘 보고 자란게 그거니까요. 그런 점에서 모든 부모는 “잘 살아야” 됩니다. 돈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구요. 돈이 없어도 잘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가르치는 교육’ 잘 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부모님들이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해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도 한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이 부모님께 해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효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부모님이 원하시는 딸과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얼까요? 집일까요? 돈일까요? 근사한 자동차일까요? 해외여행인가요? 그런 것 다 여유가 되면 해 드리세요. 선택사항으로…. 그러나 부모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집도 아니고 차도 아니고,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훌륭하게 자라,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그보다 더 큰 효도는 없습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옛날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하늘나라에서, 곧 지상으로 내려가게 될 아기 천사가 있었습니다. 아기 천사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내일 지상으로 보내실 거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작고 무능력한 아기로 태어나 살아갈 자신이 없어요.”
하나님께서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너를 위해 천사를 한 명 준비해 두었단다. 그 천사가 널 돌봐줄 거야.”
“하지만 저는 여기서 노래하고 웃으며 행복하게 지내고 싶은데요.”
“걱정마라, 아가야. 지상에서 너의 천사가 너를 위해 노래하고 미소 지어 줄 거야. 너는 천사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게 될 거야.”
“하지만 전 사람들의 말을 모르는데 그들이 하는 말을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나요?”
“너의 천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로 얘기해 줄 거야. 그리고 인내와 사랑으로 너에게 말하는 걸 가르쳐 줄 거야.”
“제가 하나님을 보고 싶을 땐 어떻게 해요?”
“너의 천사가 네 손을 잡고 기도하는 법을 알려 줄 거야.”
“지상에는 나쁜 사람도 많다고 하던데요.”
“너의 천사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널 보호해 줄 거야.”
“하지만 하느님을 보지 못하게 되면 너무 슬플텐데요...”
“너의 천사가 나에 대해 얘기해 주고, 나한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줄 거란다. 난 늘 네 곁에 있을 거지만 말이야.”
그 순간, 하늘이 평온해지면서 지상에서 아기의 탄생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 제가 지금 떠나야 한다면 제 천사의 이름이라도 알려 주세요.”
“너의 천사를 너는 ‘엄마’라고 부르게 될 거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TOP 10을 정한다면 틀림없이 ‘엄마’라는 단어가 랭킹에 들어갈 것입니다. 아마도 ‘사랑’이라는 단어와 ‘엄마’라는 단어가 랭킹 1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지 않을까요. ‘아빠’라는 단어는 어떨까요? 아마 랭킹 10위 안에 들어가기는 힘들 것입니다. 30위나 40위 정도 하지 않을까요.^^
아기 천사 이야기에서, 지상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는 아기 천사를 안심시키며, 하나님께서 엄마라는 이름의 천사가 어떠한지를 설명하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지상에서는 너의 천사가 너를 위해 노래하고 미소 지어 줄 거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로 너한테 얘기해 줄 거야.”
“인내와 사랑으로 너에게 말하는 걸 가르쳐 줄 거야.”
“네 천사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널 보호해 줄 거야.”
어떻습니까? 어머니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모성을 잘 묘사해 주었다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아버지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모성의 위대함이 바로 이런 점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오늘은 가정주일 예배라 전교우가 함께 드리는 예배인데요. 지금 여기, 어린이들과 청소년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지요? 어버이날이 되면 가장 많이 인용되는 시조가 있습니다. 오늘 설교제목을 여기서 따왔는데, 아시는 분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아시는 분은 따라 하셔도 좋겠습니다.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길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 뿐인가 하노라.
조선시대 유학자인 송강 정철의 <송강가사>에 나오는 시조입니다.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는, 부모님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주신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자식을 낳았으면 길러주는 것이 당연하고, 부모가 자식 필요한 걸 해주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자식을 낳아 보고, 자식 때문에 속도 썩어 보고, 세월이 흘러 인생의 허무와 한계도 느껴보면, 그 때까지 그저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부모님의 사랑이 애절하게 가슴을 파고들게 됩니다. 그제서야 “아차, 내가 철부지로 살아왔구나. 이제부터라도 잘 좀 모셔야지...”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세월이 기다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이런 시가 전해오나 봅니다.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리지 않는다.
비가 오면 구슬프게 울어대는 청개구리 이야기를 아시는지요. 청개구리 삼형제가 살았답니다. 동으로 가라 하면 서로 가고, 이렇게 해라 하면 저렇게 하는 불효자식들이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양지바른 동산 언덕에 묻어달라”고 하면 냇가에 묻을 것 같아서 개울물 옆에 묻어달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 유언은 들어드려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모처럼 형제들이 뜻을 모아 냇가에 묻었답니다. 그래서 비가 오면 어머니 묘지가 떠내려 갈까봐 그렇게 슬피 운다더군요. 돌아가신 다음에 슬퍼하지 말고 살아계실 때 효도하라고 옛 현인들이 지어낸 얘기겠지요.
지금부터는 자녀 교육에 대한 말씀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겪은 일을 중심으로 몇가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 상담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점이 있습니다. “문제 학생 뒤에는 문제 가정이 있다”는 점입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돈의 많고 적음은 학생들의 탈선 문제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거의 관계가 없는 것 같습니다. 돈이 없어도 부모 사랑이 충분하면 아이들은 잘 자랍니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빗나가는 아이들이 적지 않게 발생합니다.
부모 자식간의 관계에서 청소년들의 인격성장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제가 경험한 바로는) 부모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돈으로 떼우는 경우입니다. 부족한 부모 사랑은 돈으로 메꾸어지지 않습니다. 19년 동안 학생들과 함께 살아온 저의 경험에서 내려진 결론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사랑의 일정 분량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 사랑의 기본 용량이 채워지지 않을 때, 그것을 대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부모님이 안 계신 학생이 곱게 자라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강인한 사회인으로 자라는 경우는 드물지 않지만, 따뜻하고 균형잡힌 인격인으로 자라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한 쪽만 계시는 경우, 한 분이 가정을 든든하게 지켜주면 아이들은 잘 자랍니다. 부모님이 다 계시면서 자식에 대해 방관하거나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우보다 더 잘 자라는 것 같습니다.
몇 해 전에, 학생들 수업시간에 조별토의를 시킨 적이 있습니다. 어버이날 전후해서 <부모님에 대한 희망사항>이라는 제목을 주고, 조별로 토의를 시키고 발표하게 했는데, 당황스런 발표를 하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희망사항 1위가 “문 열어줘”, 2위가 “밥 줘”였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아이들이 장난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발표를 들으면서 그 조에 속했던 학생들이 정말로 바라는 간절한 희망사항이 그 짧은 문장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사실을 금방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조에 속했던 아이들 대부분이 (어쩌면 요즘 청소년들의 일상적인 모습인지도 모르지요) 집에 가면 문을 열어주고 반갑게 맞아줄 분이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밥을 차려줄 분도 없었구요. 부모님이 모두 일하러 나가고 안 계셨으니까요.
가능하면 하루 한 끼 식사는 자녀들과 함께 해 주십시오. 그게 어려우시면, 하루 5분이라도, 자녀들과 대화의 시간을 꼭 가져주십시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에베소서 6장 4절 말씀에,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개역성경에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되어 있지요. “내 자식이니까 내 생각대로”가 아니라 “주의 교양과 훈계로”입니다.
“내 자식”이라는 생각에 너무 사로잡히면 집착을 낳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식”이라는 생각이 집착이 되면, 자식을 위해서 하는 말과 생각과 행동이 오히려 자식을 망칠 수 있습니다. “이 아이는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주셔서 내 자식”이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우리가 생명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명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조상으로부터 이어진 생명이 나를 통해 자식에게 전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 조상,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내 자식”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을뿐더러 필연적으로 집착을 낳게 됩니다. 그 집착이 욕심을 낳고 욕심은 화를 부를 수 있습니다.
혹 “내 아이는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 해”라고 생각하시는 분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 다음에 한 가지만 더 생각해 주십시오. “과연 그렇게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라는 생각을 반드시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아이로 자라게 할까?” 보다 “어떻게 하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는 아이로 자라게 할까?”를 먼저 생각해 주십시오.
학교에 있으면서 절실히 느낀 점을 부모님들에게 한 말씀만 더 드리겠습니다. 아이들은 ‘듣고 배우는 것’보다 ‘보고 배우는 것’이 더 많습니다. 교사나 부모가 제대로 살지 못하는 상태에서 아이들에게 “바로 살라”고 얘기해봐야 별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무심코 행하는 교사나 부모의 습관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많이 끼칩니다. 부모의 습관은 자식에게 대물림되기 쉽습니다. 늘 보고 자란게 그거니까요. 그런 점에서 모든 부모는 “잘 살아야” 됩니다. 돈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구요. 돈이 없어도 잘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가르치는 교육’ 잘 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부모님들이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해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도 한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이 부모님께 해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효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부모님이 원하시는 딸과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얼까요? 집일까요? 돈일까요? 근사한 자동차일까요? 해외여행인가요? 그런 것 다 여유가 되면 해 드리세요. 선택사항으로…. 그러나 부모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집도 아니고 차도 아니고,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훌륭하게 자라,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그보다 더 큰 효도는 없습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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