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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영원으로

전도서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127 추천 수 0 2008.11.21 23: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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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전1:2-11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3년 9월 21일 주일2부설교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 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 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 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 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저는 여러분과 함께 「지상에서 영원으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저는 1년 사계절중 가을을 지내기가 가장 힘이 듭니다. 왜냐하면 만물이 소생하던 봄과 생명이 넘치는 여름의 추억을 떨쳐 버리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가을을 따가운 햇살아래 나뭇잎들은 찬란한 단풍으로 갈아입고 생명의 마지막을 불태웁니다. 아침, 저녁 찬 바람이 불면 나뭇잎은 시들어 가고 뒹구는 낙엽속에서 지나가 버린 옛 추억들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사라져 갑니다. 들길을 거닐면 이미 세상을 떠나신 사랑하던 분들의 모습이 가슴속에 스며들고 인생의 허무함이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왜 세월은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 것인가. 왜 사람들은 세상에 태어나 고생하며 살다가 이처럼 가고 마는가. 모든것이 고생도 기쁨도 내곁에 다가왔다가 휙휙 지나가고 사라져 버리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도 지워져 버리고 맙니다. 정말로 전도서 기자의 탄식이 너무나 절실합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1. 지상의 삶은 영원한 것은 없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고 싶은것은 첫째로, 세상의 삶속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욥기 14장 1절로 2절에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 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거늘"이라고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7절로 12절에 "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찌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찌라도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발하여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사람은 죽으면 소멸되나니 그 기운이 끊어진즉 그가 어디 있느뇨 물이 바다에서 줄어지고 하수가 잦아서 마름 같이 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고 욥은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즐기는 지위, 명예 그리고 권세, 부귀, 영화, 젊은 청춘, 업적 이것들중 그 어느 하나도 인간이 영원히 소유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억만장자였던 하워드 휴즈는 죽을때 마지막 남긴말이 “Nothing, Nothing, Nothing”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그렇게 주지육림속에 호화찬란하게 살았지만 그가 남긴말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란 비통한 고백을 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창세기 3장 19절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14절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인간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갑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부귀, 영화, 공명을 잔뜩 쌓았다고 할찌라도 이것은 물거품에 불과한 것입니다. 거품이 깨어지면 남는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20살에 왕이 되어 페르시아, 이집트, 이란 공원을 정복한뒤 인도를 정복하려 갔으나 열병과 장마로 바벨론에 돌아와 아라비아 원정을 준비하던 중 34세에 갑자기 죽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떠나간 죽음의 길을 앞두고 허무함을 절감하며 “내가 죽거든 내 손을 빈손으로 관밖에 내어 놓아 성을 돌면서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라고 외쳐라”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어 울었다는 천하의 알렉산더 대왕도 빈손으로 돌아가고 거리에서 불쌍하게 살다가 죽어가는 사람도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온천하를 손에 쥔것같이 생각했지만 환영에 불과했습니다. 관속에 들어갈때 그는 빈손으로 들어갈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혹시 역사의 페이지나 후생에 기억된다 하더라도 죽은 개인에게 무슨 유익이 있으며 상관이 있겠습니까? 죽고 난 다음에 역사의 페이지에 찬란하게 기록하고 후생들이 찬양을 한다 해도 죽은 그 사람에게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공동묘지에 가서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하고 찬양하고 칭찬하고 박수를 쳐보십시오. 죽은 사람은 아무런 대답도 없습니다. 지나가 버린 바람과 같은 것입니다.
1954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헤밍웨이는 정신병원을 전전하다가 1961년 엽총으로 자살했는데 그가 남겨놓은 유언에 보면 “나는 전지약이 다 떨어지고 코드를 꽂으려 해도 전원이 없는 라디오의 진공관처럼 외로움과 공허함속에 살고 있다. 나는 필라멘트가 끊어진 텅빈 전구처럼 공허하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부귀, 영화, 공명을 다 가지고 있었는데 일생에 쾌락을 추구하며 살았는데 그래도 그가 이것이라고 알멩이가 있게 잡은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남은 것은 허무와 공허와 자살뿐이었습니다. 내용이 없는 삶은 겉만 찬란했지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영원히 살지 못하는 인생에게는 다 허무하고 무의미할 따름인 것입니다. 무엇이 이것이 고귀하고 좋다고 말할수 있습니까? 영원히 소유할 수 있으면 모르겠지만 잠시 손에 지나가 버리고 마는것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단 말인 것입니까?
이사야 40장 6절로 8절에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하나님 말씀 이외에 인생은 일장지 춘몽입니다 여러분. ‘노생지몽’이란 중국의 고사가 있습니다. 옛날 당나라에 노생이라는 젊은이가 한단이란 곳으로 가던중 잠시 주막에서 쉬게 되었습니다. 마침 같은 방에 묵은 한 노인과 술잔을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한숨을 내쉬더니 “사나이로 태어나 부귀, 영화도 한번 누리지 못하고 시골 구석에 처박혀 일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습니다. 노인은 “무슨 말이냐”고 묻자 그는 “입신출세하여 부귀, 영화를 누려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는 술기운에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그는 주막을 나와 어느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당대 최고의 부자였던 최씨의 딸과 결혼하고 날로 살림이 불어나 3년 후에는 수도 장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년후에는 오랑캐가 처들어 왔을때 이를 격파하여 공을 세웠고 드디어 재상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시기하던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역적으로 몰려 귀향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귀향지의 조그마한 오두막에서 “내가 고향에서 농사나 짓고 있었으면 평안히 살수 있었을텐데 무엇을 부족하여 벼슬을 하려고 하였던가!” 한탄하며 칼을 뽑아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흔들었습니다. 그가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예전에 머물렀던 주막집이었고 옆에는 노인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노승은 깜짝 놀라며 “아니 이게 다 꿈이었던가!”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때 노인은 “인생이란 원래 그런걸세.” 하며 껄껄껄 웃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노생지몽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이는 인생이란 꿈과같이 덧없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루밤 꿈에 일생을 다 살아 버린 것입니다. 우리도 일생이 지나고 나면 돌이켜 보건데 일장지 춘몽인 것입니다. 인생에 아무것도 영원이 있을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인간의 비극인 것입니다.

2. 영원을 지상에 가져오신 예수님
그러나 둘째로 오늘 생각하고 싶은것은 영원을 지상에 가져온이가 있다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아무것도 영원이 없는데 영원을 지상에 가져오신 분이 계십니다. 일반철학이나 해탈의 종교는 이와같은 삶의 절망을 수양과 참선을 통하여 뛰어 넘으려고 애를 씁니다. 인간적인 힘으로 어찌하든지 인간의 허무와 무의미를 극복하고 살아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수양과 참선 이 모든것을 다 합쳐 봐도 인간의 힘으로 허무와 무의미를 이겨낼수가 없습니다. 우리 한국에서 가장 수양을 많이하고 참선을 많이 했다면 불교계의 스님 성철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일생동안 참으로 대단한 고행을 했습니다. 결혼직후 처자식을 남겨 두고 출가하여 수행에 들어가 부모가 찾아와도 수행에 방해된다고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거하는 곳에 철조망을 쳐놓고 10년간은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사람을 만나지 아니했으며 16년간은 솔잎가루와 쌀가루만 먹고 살았고 8년간은 눕지 않고 앉은채 자면서 수양을 쌓았습니다. 이런 엄청난 고행을 쌓고도 마음에 평안이 없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전 마지막 남긴말은 자신은 한평생 너무나 많은 사람을 속였다고 했습니다. 너무도 많이 거짓된 말을 했기 때문에 죄가 하늘에 닿아 산보다 더하다고 했고 그 때문에 산채로 지옥에 떨어진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평생을 고행하고 수행하며 덕을 쌓았지만 종국적으로 그의 마음속에 결코 참된 평화를 얻을수 없었는데 우리같은 범인이야 어디에 감히 수양과 도덕으로 구원과 참 평안에 이룬다고 말할수가 있겠습니까? 어림도 없지 않습니까?
골로새서 2장 8절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39편 4절로 5절에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 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다"
내 인생은 주님 앞에서 없는것과 한가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영원한 하나님으로써 유한한 인간으로 오셔서 유한한 인간속에 영원한 삶의 희망을 심어 주시게 된것입니다. 예수님은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날 무신론자들이나 세속적인 인본주의적 역사학자들은 예수님을 평범한 인간으로 폄하시키려고 하고 있지만 여러분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분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로 3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써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것이 그를 통하지 않고는 만들어진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전지 전능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장 1절로 3절에도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비록 어린 아이로 태어나서 핏덩어리로 강보에 쌓였지만 그러나 그의 실상은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 너무나 기가 막히고 놀라운 사실은 이사야 선지가 주전 약 700년전에 이 사실을 예고 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한 아들, 한 아기가 어찌하여 그 이름이 기묘자고 모사고 전능한 하나님이고 영존하신 아버지고 평강의 왕이 될 수 있습니까? 인간으로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지어서 만든 이야기도 이렇게 까지는 만들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핏덩어리 어린아기 강보에 쌓인 그가 전능한 하나님이요, 영존하신 아버지가 될 수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베푸신 가장 위대한 기적인 것입니다. 전능한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유한한 세계와 인상으로 오신 예수님은 유한한 인간이 겪는 삶의 모든 고난을 다 겪었습니다.
히브리서 2장 18절에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풍찬노숙을 하시며 인간의 희노애락을 다 경험하시고 인간 가운데 33년 동안 거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유한한 삶의 종말인 죽음을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했습니다. 인간의 삶의 가장 큰 비극은 죽음 아닙니까? 모든것은 죽음으로 끝나고 맙니다. 부귀, 영화, 공명, 지위, 명예, 권세 다 죽음으로 끝나고 말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인간을 대신해서 죽으시고 3일만에 그 죽음을 극복하고 일어 나시므로 우리에게 영생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로 15절에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죽음의 포로가 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죽을수밖에 없는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죽음을 맛보시고 죽음을 이기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시므로 사망을 격파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24절에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고 말했었습니다.
지상의 유한한 삶속에 오셔서 그 유한을 극복하시고 영원을 이룩하신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유한한 인생이 예수 안에서 극복이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는 천천세세 영원무궁히 살수 있는 길이 열려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유한한 인생의 속에 영원이 들어와 있습니다. 여러분은 비록 유한해서 70이요, 80을 지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지만은 그러나 그속에 영생이 들어 있습니다. 이 보배를 진흙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질그릇이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생을 모시고 있으므로 유한에서 영원을 살수 있는 인생이 되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사람들 보기엔 우리는 유한한 질그릇 같지만 내용인즉 우리는 영원한 삶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유한을 극복한 영원한 존재들이 된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모두다 유한한 행동으로 이 세상에서 살다가 질그릇이 깨어지면 멸망하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한 삶이 있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않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줄을 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벤허라는 유명한 소설을 미국의 장군이요, 정치가요, 소설가인 루이스 월너스는 친구가 예수 믿는 것을 굉장히 못마땅해 했습니다. 과학문명이 첨단을 달리고 있는 이 시대에 아직도 캐캐묵은 성경을 믿고 있다니 그래서 그는 성경의 불합리성과 성경의 낡은 모순을 지적하고 친구들과 성경을 토론해서 성경의 불합리성과 모순을 폭로하기 위해서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공부하면 할수록 놀라운 사실들과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고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수많은 자료를 갖다 놓고 연구하며 압도될만한 성경의 놀라운 증언앞에 마침내 그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성경에 대한 반론의 책을 쓰다가 붓을 꺾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주님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발견한 예수님과 성경에 대한 충격을 소화하기 위해서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책이 바로 ‘벤허’라는 유명한 책입니다. 출판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여러차례 연극과 영화화 되어 전세계 감동을 안겨주고 1959년도 제작된 영화는 아카데미 11개 부문을 석권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그리스도는 거짓이다. 가짜로 증명하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연구하다가 오히려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고 온 천하에 그의 벤허라는 소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놀라운 구원의 은총을 전할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하나님입니다. 유한한 인생으로 오셔서 이 세상에 모든 것이 유한한것 속에서 사시다가 죽음으로써 그 유한을 극복하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는 이제 우리 속에서 영원을 접붙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비록 육신에 사나 영원을 가지고 삽니다. 죽으나 살고, 또 살면 또 사는 것입니다.

3. 유한 속에 살면서 영원을 가진 삶
셋째로, 유한속에 살면서 영원을 가진 우리의 삶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들이면 유한한 삶이 영생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우리 유한한 삶이 이제는 영원을 품고 살게 되니 기이한 일이 아닙니까?
요한복음 1장 12절로 13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 하나님과 영원히 같이 사는 권세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너희는 공동묘지에서 너희 생애는 끝난다. 너희 해골이 그곳에서 다 박살이 나고 너희 흙은 진흙으로 몸은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를 영접하러 와서 너희를 나있는곳에 영원히 함께 있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는 유한한 존재가 아니요, 영원한 존재입니다. 유한한 흙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않는 영원한 집이 우리를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인 것입니다. 이 극적인 예로써 예수님을 통하여 유한을 극복하고 영생에 이르는 의식이 바로 세례인 것입니다.
로마서 6장 4절로 5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예수와 연합한 자가 되었습니다. 세례 받을때 우리 구원의 진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우리는 물무덤속에 들어가서 옛날을 장사지내 버립니다. 우리가 물에서 나올때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그리스도와 영원히 영원히 사는 것을 하나님 앞과 사람앞과 마귀 앞에서 증명하는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통해서 체험한 이 사실은 여러분과 나의 인생에 일어난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입술로 주여주여 하지만 여러분 이와같은 극적인 체험을 하지 않은 사람은 영원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문화적인 그리스도인이 많이 있음을 봅니다.유럽에 가면 모든것이 그리스도의 흔적입니다. 그들은 다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부활절날 국가적인 공휴일입니다. 오순절날도 놉니다. 그리고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군사, 산업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예수를 구주로 모셨나요? 예수를 구주로 모시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문화적인 그리스도. 그래도 물어보면 전부 우리는 크리스챤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태어나면 교회에 가서 동적부를 냅니다. 죽어서도 사망진단서를 교회에서 뗍니다. 결혼은 교회에서 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모릅니다. 문화적인 크리스챤 이것은 영생이 없습니다. 또한 전통적인 그리스도인들도 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예수 믿었다. 우리 아버지가 예수 믿었다. 그러므로 나도 교회 나간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우리 가정은 다른 종교아닌 그리스도를 모셨기 때문에 그저 왔다갔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 영생이 없습니다. 의식적인 그리스도인들도 있습니다. 1년에 크리스마스때 한번 형식적으로 와보고 부활절때 한번 교회 나오고 그 다음에는 1년 내내 세속에 취해 삽니다. 의식적이고 형식적인 크리스챤입니다. 영생이 없습니다. 학문적인 그리스도인도 있습니다. 일평생 그리스도교를 학문으로 공부하면서 그것을 가르치면서도 예수를 구주로 모시지 못한 사람들이 허다이 많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극적으로 모셔 들여서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그러한 놀라운 동기가 부여되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그리스도 이외에는 안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예수를 만나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가 내 구주가 되신 것을 내가 공개적으로 입술로 시인할 때 영생이 우리속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디엘 무디는 “그래 자신을 믿어보라. 그대는 실망할때가 있을 것이다. 친구를 믿어 보라. 어느날 그들은 죽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대와 헤어질 것이다. 그대의 명성을 믿어 보라. 어느 훼방하는 혀가 그것을 뒤집어 엎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어보라. 이생과 저생에 후회함이 없을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옛날 이집트 왕조때는 140여개의 크고 작은 피라미드가 건설되었고 현재 그 위치가 확인된 것만해도 80여개가 넘습니다. 이 중에서 가좌에 있는 구푸왕의 피라미드가 가장 큰대 한변이 233미터, 높이가 146미터로 가장 큽니다. 이것을 짓기 위해 2.5톤짜리 석회석이 230만개 사용되었습니다. 10만여명이 20년 동안 동원 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이러한 엄청난 노동력과 자금과 시간을 들여 무덤을 만든것은 죽은자를 미라로 보관하면 그 영혼이 돌아와 부활한다는 미신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유한성을 초월하고 부단히 부단히 노력하므로 영생을 얻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불로장생을 꿈꾸던 불로초를 찾고자 했던 진시왕이나 죽은 후에라도 다시 살고 싶어 피라미드를 건설한 이집트의 왕들이나 모두 인간의 능력으로 유한한 삶을 극복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허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수천년의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 저 사막가운데 우뚝선 피라미드속에 있는 그 옛날 이집트의 왕들은 다 말라빠진 미라로 변화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유한한 곳에 영원한 생명을 가져오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은 한번나서 죽는 것이 정한 이치요, 죽고 난 다음에 심판이 있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영원한 세계를 접하려면 오직 지상의 유한한 삶속에 오셔서 그 유한을 죽었다가 부활하므로 극복하시고 영원을 이루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야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영원히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유한한 이 세상의 인간의 삶은 그것이 기쁜 순간이든 고통스러운 순간이든 다 지나가 버리지만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 들이면 유한 속에서도 영원을 품고 우리는 영원을 바라보고 살아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4. 영생이 가져다주는 행복
넷째로, 영원을 가져다주는 행복을 우리는 생각해 봐야 됩니다.
삶의 모든것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 현재에 같이 살다가 죽어서 헤어져 버리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저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지상에 살다가 천상에 올라가서 다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만날것을 생각하니 우리가 의미가 있습니다. 변화된 사람들로써 영원히 천국에서 만날수 있으니 우리의 모든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사소한 것 하나라도 영원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다 선악간에 우리가 하는일에 대한 대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없어지고, 사라지고,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지위, 명예, 부귀, 영화 공명을 다 가졌다 할지라도 이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서 무슨일을 했는가는 영원히 남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히 하나님 앞에 평가를 받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과 같이 사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절로 18절에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마태복음 25장 21절에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고 말한 것입니다.
영원입니다. 죽으면 없어지지 않습니다. 영원히 삽니다. 내가 뭐 남편노릇 충실할게 뭐냐. 우연히 왔다가 우연히 헤어지면 그뿐이지. 아니요. 훌륭히 남편으로써 임무를 다하는 것은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봉사와 헌신의 영원한 보상이 따릅니다. 우리 성도들이 주님을 열심히 섬깁니다. 이른 아침부터 와서 교통정리를 하고 혹은 성도들의 출입을 정리, 정돈하고 돌보아 줍니다. 다리가 퉁퉁 붓습니다. 영원하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 오늘 충성하고 헌신하는 것이 모두다 영원과 연결되어 농공행상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12장 2절로 3절에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있습니다. 다 우리의 행한일이 보상으로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하나도 헛된것이 없습니다. 왜 우리는 영원속에 사는 사람들이요, 영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요, 영원이 우리 생활에 보상이 따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절로 49절에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린도전서 15장 51절로 57절 보세요. 이것은 여러분과 제가 불언간 체험할 일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극적으로 유한이 영원에 삼킨바 되었다. 영원이 우리를 점령하고 끝없는 희망을 우리에게 주게 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시간은 인간의 세월이고 영원은 하나님의 세월입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다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요한복음 5장 28절로 29절에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운명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유한속에 영원을 받아 들일 것이니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유한한 인생이 흙집에 살다가 영원히 멸망되고 말것이냐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월남 이상재 장로님은 독립운동가로, 정치가로, 외교가로 그리고 교육가로 유명하신 분이십니다. 하루는 어떤 기자가 이상재 장로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몇살까지 사시면서 이렇게 계속 활동하실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이상재 장로님은 그 기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다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람이 한번 났으면 영원히 살지 죽기는 왜 죽어?” 나라와 교회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하셨던 월남 이상재 선생의 삶의 비결은 이와같은 부활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영혼을 두고 헌신과 충성을 다하며 일할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천재시인 괴테는 “아무리 성공의 정상에 서는 순간이라 할지라도 죽고 다시 산다는 진리를 알기까지 우리 인간은 처량한 나그네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도바울 역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니라고 고백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부활신앙은 지상의 삶에 참된 의미를 주며 그 의미가 영원까지 계속되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일시적인 인생이 아닙니다. 모든 일에 영원, 영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먹고, 자고, 깨고 하는 것이 헛되고 헛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있을 것입니다.
가을바람에 날리는 낙엽을 볼때 젊은이는 깔깔대고 웃고, 나이든 이는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세월은 그 젊은이들도 다 순식간에 다 노년으로 밀쳐 버리고 맙니다.

예수님 밖에 있는 삶이란 종국적으로 헛되고 허무하고 절망적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유한한 가슴속에 영원하신 예수님을 모시면 인생종말은 사라지고 오직 영원한 삶과 믿음, 소망, 사랑이 끝없이 펼쳐지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되실 것입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모를때의 인생은 헛되고 헛되며 또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것 밖에 없습니다. 잠시 태어났다 사라지는 안개와 방불합니다.
허무하고 무의미하고 맹랑한 삶을 삽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영원한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의 유한을 극복하시고 부활하사 우리의 삶의 원천이 되신 그리스도를 모시면
모든것이 영원으로 변화됩니다. 자도, 깨도, 먹어도, 마셔도 다 영원속에서 행동합니다.
우리는 현실 시간속에 있으면서 벌써 시간을 초월해서 영원을 품고 사는 우리들이 되었으므로 우리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삶만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영광이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여 하나님 앞에 영원히 이미 삶을 살고 있사오니 이 영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설수 있는 당당한 사람들이 되도록 삶을 이끌어 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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