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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기억하는 평화의 감수성

이사야 최순님............... 조회 수 2098 추천 수 0 2004.07.13 11: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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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사11:6 
설교자 : 최순님 자매 
참고 : 새길교회 
 얼마 전 영화 ‘송환’을 보면서, 제가 그동안 우리의 분단 상태에 서서히 무감각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영화는 아무 설명도 없이 그저 보여 주기만 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일상에 잠복해 있는 민족상잔의 상흔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그 상처가 잠깐 잠깐  몸을 드러냈던 낸 때도 있었습니다. 선거를 한 번씩 치를 때마다, 친근한 이웃들 속에 깊이 새겨진 분단 이데올로기를 침묵으로 확인했을 때가 그랬었고, 이산가족들이 서로 만날 때마다 파도쳤던 큰 눈물의 바다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번 용천 역에서 사고가 난 직후엔, 한시가 급한 구호품을 놓고 남북이 의견을 조율 한다고 시간을 낭비할 때도 그랬습니다.

정신은 국가 같은 것을 가지지 않는다지만, 지난해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을 때, 독일의 연방 총리와 외무 장관이 그들의 강력한 동맹국 미국에 반기를 들고 그들이 다시 어리석은 행동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아 냈을 때는, 하나의 주권 국가를 먼저 이룬 그들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1990년 이래로 독일 연방공화국이 된 독일 정부는 처음으로 그들의 주권을 강자가 자행한 야만적 불의 앞에서 용기 있게 사용했던 셈이지요. 자신들에게 책임이 있었고, 엄청난 범죄적인 결과를 초래했던 두 번의 세계 전쟁 후에, 어렵긴 했지만 그들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었습니다.

  전쟁의 뿌리는 공포심이라고 합니다.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전쟁이 왜 일어나는지 모른 채 전쟁을 겪어 왔고,  실제로 전쟁은 일어날 만한 하등의 논리적 이유도 없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원초적으로 사람에 대한 공포심, 서로를 신뢰할 수 없는 그 공포심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자신의 본성과 타인의 본성 사이에 벽을 쌓고 우리의 본성만이 옳다고 주장해 버린다면, 그것 자체가 이미 악을 행하게 된다는 뜻이겠지요. 그래서 무저항과 철저한 비폭력으로 평화를 실천하다 간 간디와 킹 목사 그리고 도로시 데이 같은 분들은, 인간이 올바른 정신과 마음으로 돌아오는 스스로의 내적 변화가 바로 지상의 평화를 이룩하는 길이라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감옥에 가거나, 몸을 다치거나 또 죽음까지도 불러올 수 있는 저항 방법을 택하라는 부름을 받은 사람보다, 평범한 우리가 평화를 만드는 방법은 조금은 쉬워 보입니다. 일하고, 자신을 남에게 주고, 비평화적 사회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배제시키기 보다는 끌어안음으로써, 또 다른 사람들이 어떠한 폭력적 구조에 갇혔더라도 그들이 해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으며, 자신의 마음부터 완전히 무장해제 시켜버리는 바로 그 길이, 어쩌면 인류의 평화라는 거대한 표어를 실천하는 먼 여정의 첫걸음 되지 않을까요.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남쪽에 사는 우리들의 삶을 보다 안전하게 지켜주는 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몸 하나에 머리가 둘인 우리의 기형인 몸에는 가슴 아플 것입니다. 그래서 용천의 어린이들을 보며 무엇이든지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남쪽은 남쪽대로 북쪽은 북쪽대로 지금처럼 사는 것이, 우리가 경제적으로 안정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북한의 궁핍하고 칙칙한 삶의 거리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이곳저곳에서 밥물이 끓어나고, 음식 냄새가 거리에 진동하고, 민들레 제비꽃도 피어나는, 일상의 아름다움이 하루 빨리 잿더미가 된 북쪽의 거리를 구원하기를 바라는 마음만이 그렇게 모두에게 간절할 뿐입니다.

이런 간절함이 예상치 못한 계기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래서 독일처럼 우리도 하나로 통일된 정부의 주권을 사용해서, 앞으로 일어날 어떠한 전쟁에도 무조건적인 반대, 평화에는 무조건적인 찬성의 목소리를 외쳐보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는 가까스로 바위를 산 위로 굴려 올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언제 산 꼭대기위에 놓여질지, 또 언제 다시 굴러 떨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픔을 경험한 우리들의 감수성이 평화를 향해 열려 있는 한 우리들은 계속해서 그것을 산 위로 굴려 올릴 것입니다. “천국까지 가는 모든 길이 천국”이라고 한 시에나의 성녀 캐더린의 말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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