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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의 길

이사야 박동현 목사............... 조회 수 1850 추천 수 0 2008.07.13 09: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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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사50:4-9 
설교자 : 박동현 목사 
참고 : 새길교회 2000.5.21 주일설교 


사랑하는 새길교회 교우 여러분, 이렇게 다시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게 되어 기쁘고, 특히 말씀을 전할 기회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과 여러분께 깊이 감사 드립니다.
본문 첫머리 4절을 보면 '학자'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학자'라고 옮긴 히브리 낱말은 오히려 '제자'라고 옮김이 더 낫습니다.
이처럼 본문의 '나'는 자신을 일꾼으로 불러 쓰시는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스승과 제자 사이에 빗대어 말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제자로서 경험한 바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저는 이 시간 설교의 제목을 '제자의 길'이라고 잡아 본 것입니다.

먼저 본문을 찬찬히 살펴봅시다.
4절-5절 앞부분에서 '나'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하신 일을 여러 가지로 말합니다. 그 여러 가지 일이 무엇인지는 개역 한글판에서 조금 더 똑똑히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곧,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 하나님은 주셨고, 알게 하셨고, 깨우치셨고, 알아듣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 첫 절 4절에서 이처럼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해 주셨는지를 말하는 가운데서, 또한 하나님의 제자된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도 곁들여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곤핍한 자를 말로 도와'주는 것이 '나'의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5절에서는 이처럼 하나님이 "나의 귀를 열어주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그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스승 하나님이 알아듣게 하신대로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일하는 나를 박해하는 사람들이 있더라도 나는 꿋꿋이 그 일을 했다고 합니다. 6절이 이를 말해 줍니다.
7-9절도 그 표현형식에 있어서는 4-6절과 마찬가지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신다는 말이 7절과 9절 첫머리에 나오고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 하"신다는 말이 8절 첫머리에 나옵니다. 이 말들에 뒤이어 "내"가 당당한 태도로 살아가고 있으며 적에게 지지 않고 적들은 망할 것을 확실히 믿고 있음을 밝힙니다.

교우 여러분! 이처럼 본문 말씀에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이천 수백년전 당시 강대국 바벨론에게 시달리고 어려운 가운데 빠져 있던 약소 민족 유다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책임을 맡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하나님 경험과 하나님에 대한 굳센 믿음을 고백한 바가 들어 있습니다.
이제 본문 처음 두 절인 4, 5절을 중심으로 이 시간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함께 귀 기울여 들어보려고 합니다. 네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본문의 '나'처럼 오늘 우리도 말씀의 일꾼들이고, 새길 교회는 바로 그런 말씀의 일꾼들이 모인 기관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과 기독교회가 무엇이며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답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성경의 교훈도 여러 가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비추어 생각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전해야 하며, 교회는 그런 사람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여러분들처럼 사회의 지도층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믿는 분들과 그런 분들이 모인 새길 교회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저는 이 시간 본문 말씀을 빌어,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다, 본문의 '나'와 같은 자리에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예술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지도적인 자리에 서 있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우선적으로 할 일은 하나님이 깨우쳐주시는 말씀으로써 지친 사람을 도우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말씀은 교역자만 전하는 것이 아님을 그 누구보다도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본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누구나 말씀의 일꾼입니다.

둘째, 이리하여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이 사회에서 지도자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본문에서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바른 지도자가 되려면, 새길 교회가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새 길을 알려 주려면, 그에 앞서 먼저 바른 학생이 되고 바른 제자들의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제대로 가르치자면 하나님으로부터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칫하다가는 우리들 자신의 보잘것없는 식견과 학식과 경력과 업적에 마음이 빼앗겨 우리가 참으로 스승으로 모시고 배워야 할 분은 우리를 일꾼으로 삼으신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잊어버리기가 쉽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제자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이 점에서는 신학을 전문으로 공부한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제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배우고 깨우침을 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제대로 믿을 수도 따를 수도 전할 수도 없습니다. 특히, 인간 사회에서 지도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늘 새롭게 깨우침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 4절 뒷부분이 이를 말합니다 -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지도를 받는 사람들, 우리 후진들에게 가르치고 전해야 할 내용을 우리 나름대로 잘 준비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의 전문 분야가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향하여 늘 새롭게 일러주시고 들려주시는 바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면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그저 자기의 전문 지식이나 경험만을 전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의 현장 한 가운데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바를 잘 알아듣고 그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만큼 하나님께서 알아듣게 하지 아니하시면 한 순간도 제 구실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을 두고서 교회 바깥에서 흔히 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 "예수쟁이들 말은 잘 한다". 그렇습니다. 예배당에 다니는 사람치고 말 잘 못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이 보입니다. 오래 믿은 사람일수록 남을 가르치기를 즐겨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입 열었다 하면 훈계요, 성경 말씀이 줄줄 흘러 나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제자들에게 말하기에 앞서서 우리의 스승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에 더욱 더 힘써야 합니다. 말하기보다 듣기를 좋아하는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남을 가르치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 마음으로써, 하나님께서 내 귀를 열어주실 것을 간절히 빌면서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엉터리 그리스도인이 되기 쉽습니다. 거짓 지도자, 거짓선생이라는 판정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 23장21절에 보면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는 사람들은 잘못된 사람들이라 하십니다.
우리는 남을 가르치는 자, 남을 이끄는 자이기에 앞서 늘 하나님으로부터 새롭게 깨우침을 받아야 할 제자들입니다.

셋째,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제대로 깨우침을 받았으면 우리는 지친 사람을 도와주는 하나님의 제자이어야 함을 본문이 일러줍니다.
4절 앞부분이 이를 말합니다 -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줄을 알게 하시고". 여기서 곤핍한 자라는 함을 표준 새번역의 번역처럼 지친 사람을 뜻합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깨우침을 밑바탕으로 하여 지친 사람을 도우는 것 - 이것이 바로 말씀의 일꾼된 사람이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이 사회의 지도자 노릇한다는 것, 심지어 기독교계에서 새 길을 앞장서서 나간다는 것도 이런 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각자의 전문 능력을 살려 여러 가지로 일할 수 있지만, 그 모든 활동을 통해서 우리는 곤핍한 자들, 지친 자들, 어려움에 빠진 이웃들을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심은, 그 뜻을 알려 주심은, 일깨워주심은 그 말씀을, 가르치심을 나 혼자만 가지고 자랑하도록 하려 하심이 아닙니다. 나로 하여금 곤핍한 자, 어려움에 처한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하여 그들을 도우려 하시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본문의 '곤핍한 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을 가리키며 '곤핍한 자를 돕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이사야 40장 27-31절을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 하면 '피곤하다', '곤비하다'라는 낱말이 여기에 여러번 나오는데, 이를 히브리어 본문으로 보면 본문의 '곤핍하다'와 뿌리가 같거나 비슷한 낱말이기 때문입니다. 표준 새번역에서는 '피곤하다', '지치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학자들의 일반적인 풀이에 따르면 여기서 '피곤하다', '곤비하다', '지치다'라고 함은 오래 전 하나님 백성 유다가 당시 힘센 나라에 수십년 동안 시달려 지친 상태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 말씀은, 하나님이 그 백성을 더 이상 돌보지 않으신다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있는 유다 사람들에게 그것이 그러하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늘 새 힘을 얻도록 격려하고 있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이에 비추어 본문을 읽으면 본문에서 곤핍한 자를 돕는다 함은 오래동안 이어지는 괴로움 가운데 낙심하고 있는 하나님 백성에게 다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새 힘을 얻도록 격려함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둘레에는 곤핍한 사람, 피곤한 사람, 지친 사람이 없습니까? 문명이 발달하여 살기가 좋아졌다는 요즈음에 오히려 피곤하고 지친 사람들이 더 많지 않습니까? 힘이 하나님인, 이른바 무한경쟁의 시대를 맞이하여 살아남기 위해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입니다. 그리하여, 모두들 이리저리 다니며 쉴새없이 무엇인가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형편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자신들은 지쳐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따르는 우리에게는 우리가 배우고 깨우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처럼 지치고 어려운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도울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의 가르침이나 지도를 통하여 우리 이웃들이 새 힘을 얻고 참으로 독수리 날개 치듯 위로 치솟아 오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우리가 받은 하나님 말씀으로써 우리 이웃의 삶의 힘차게 하고 있습니까?

넷째, 우리는 지친 사람을 말로 도와주어야 할 하나님의 제자들임을 본문에서 깨닫습니다.
오늘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독교회의 위기에 대해 말하며 우리 교회의 앞날을 걱정합니다. 그 까닭이 어디에 있든지 교회가 사회 일반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 교회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얼마 전의 신문 보도에 따르면, 종교 개혁의 본 고장이라 할 수 있는 독일에서도 교회에 대한 사회의 신뢰도가 바닥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 안팎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기독교회에 대해 이처럼 부정적인 흐름을 돌이켜 보려고 온갖 꾀를 짜 내어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펼치며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상황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숙해진 현대인들, 특히 청소년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교회 바깥에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간다면 우리 남한의 교회들도 머지 않아 적은 수의 노인들만 모여 예배드리는 곳이 되고 말지 모릅니다.
이러한 때 우리가 한국 교회의 갈 길을 새롭게 찾아 앞장서 나아가려고 할 때, 우리 둘레에 지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에 대한 답 하나를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지친 사람을 말로 도우라는 것입니다. 멋지고 신선한 프로그램, 눈에 번쩍 띠는 새로운 행사를 요란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것을 못 하더라도 참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던지는 한 두 마디 따뜻한 말을 통해 우리 이웃의 지친 몸과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새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큰 말, 좋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요즈음 세상에서 남을 돕는, 남을 살리는 말을 제대로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달리는 "말만 하면 뭘 해, 실천해야지!" 하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되기에 말로써 남을 돕는다는 것이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교회의 지도층에 속한 사람들은, 교회를 새롭게 하려는 사람들은, 믿음의 새 길을 찾아 나선 사람들은, 지친 사람들을 우선 말로써 돕는 일을 힘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말버릇과 말투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과연 사람들에게 바른 말, 고운 말, 좋은 말, 힘을 주는 말을 하고 있는가? 나는 정말 사람에게 힘을 주는 말,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하고 있는가? 혹시라도 나의 말을 듣고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울분을 느끼는 사람은 없는가?
곤핍한 자를 돕는 말을 하는 것은 우리 힘으로 잘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러한 혀를 주실 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그런 혀를 주실 것을 늘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간절한 기도와 아울러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스러운 말을 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다 못한다 하더라도 그 분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주고 받는 몇 마디 말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생하게 전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요즈음 우리의 언어 생활이 너무 천박해지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심지어 예수 믿는 사람들조차도 서로 사이에 주고 받는 말들이 거칠 때가 많습니다. 도무지 상대방의 상황이나 기분을 생각하지 않고 아무 말이나 마구 내뱉는 수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아랫 사람에게 대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여러분, 우리 겨레의 큰 스승 가운데 한 분이신 퇴계 선생님은 그 제자들에게 결코 반말을 쓰신 적이 없다고 합니다. 비록 유학자이기는 하지만 그 분의 교육태도와 방법이 너무 고상하여 퇴계 선생의 교육사상과 방법을 연구한 어떤 목사님은 그것을 오늘 우리 교회교육에 적용해서 좋은 열매를 거두고 있기도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린다고 해서 지금부터 우리 모두 아랫 사람들에게 높임말을 써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은 또 억지로 한꺼번에 되는 일도 아닙니다. 반말을 쓰더라도 참으로 우리가 상대방의 지친 상황을 깊이 이해하고 그들을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일으켜 세워주려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훌륭한 교회지도자로 데스몬드 투투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이 그가 새까만 검둥이 아이로서 백인 선교사 한 분과 사귀면서 느꼈던 바를 대강 다음과 같은 식으로 적은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 "그 분 앞에 가면 나는 괜히 우쭐해지고 내가 굉장한 사람이나 된 것 같은 느낌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투투를 대하는 백인 어른의 태도가 자연스러우면서도 정중하고, 비록 아이의 말이지만 귀 기울여 듣고 많이 말하지 않지만 참으로 그의 가슴에 와 닿는 말을 해 주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친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깨우침 받은 말씀으로 돕자면 그들을 가르치기에 앞서서 그들이 어떤 형편에 있는지를 잘 알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방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분이 집에서 동네에서 일터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지금 이 사람을 힘들게 하는 바가 무엇이고 이 사람이 걱정하거나 두려워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그에 맞도록 말로 도울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보통 때 우리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에 깊이 관심을 가져야 함을 뜻합니다.

제자의 길 - 오늘 믿음의 새로운 길을 찾아 정진하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오늘 본문은 '제자의 길'을 잘 가라고 가르칩니다. 우선, 그리스도인은 모두 말씀의 일꾼이라는 점을 본문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말씀을 전하는 자이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받아야 할 사람들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그것도 늘 새롭게 하나님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런 배움을 밑바탕으로 하여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나 삶에 지친 우리 이웃들을 도와야 할 사람들임도 깨달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제자된 우리들은 우리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또 다른 어린 제자들을 말로써 도와야 할 책임을 지고 있음을 다시 확인하였습니다.
여러분,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하여 하나님으로 부터서만 늘 새롭게 배우고 하나님 주시는 혀로 지친 사람들을 돕는 길 - 이 길이 참 제자의 길이요 이미 새 길을 앞장서서 가고 있는 여러분들이 앞으로도 힘써 부지런히 가야 할 길입니다.

함께 기도드리십시다.

"저희 스승이신 하나님,
저희를 말씀의 일꾼들로 부르셨으니
저희에게 제자의 귀를 여셔서 하나님 뜻을 늘 새롭게 깨닫게 하소서.
저희에게 제자의 입을 주셔서
지친 사람들을 말로 잘 돕게 하소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만 굳게 믿고 이겨나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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