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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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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0:25-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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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차옥숭 자매 |
참고 : | 새길교회 2000.12.10 주일설교 |
지난 월요일 저녁에 저희 아버님이 83세를 일기로 소천 하셨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교직에 오래 몸담으셨습니다. 장로님이셨는데 평생을 믿었던 기독교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으시다고 63세에 중 고등학교 교장직을 사표내시고 신학대학에 학사 편입하셔서 공부하셨습니다. 그리고 역삼동에서 개척교회를 하셨습니다. 교인들은 주로 아버님의 제자분들 이었습니다. 목회는 10년 동안 하셨습니다. 후임 목사님이 오시자 전임 목사가 버티고 있으면 후임 목사님이 불편하다고 교회를 그만 두시고 이 교회 저 교회를 다니시면서 설교도 하고 축도도하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버님이 교회를 그만두시고 나서 목사 딸이 계속 뒤에 앉아 있으면 불편해 할 것 같아 교회를 그만두고 새길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새길교회 설교와 뜻이 좋아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아버님은 위암이셨는데 수술 전까지 아무런 자각증세가 없으셨습니다. 수술은 아버님이 선택하신 거였는데 나름대로 준비를 하셨던 것 같습니다. 조카들이 아이들을 안고 찾아오면 증손주들 하나 하나에게 머리에 손을 얹고 마지막 축복기도가 될지 모른다고 하시면서 그 아이들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자랄 수 있게 해주시라고 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수술 받으시던 날 아침에는 어떤 분이 찾아오셔서 "목사님 용서해주세요 제가 잘못했으니 저를 용서해..." 달라고 우는 그 분의 등을 어루만지시면서 위로하시고 돌려보내시고 나서, 저희 남매들에게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에게 수술 중에 뇌사가 오면 쓸모있는 장기가 남아 있으면 기증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리고 수술을 완강히 반대했던 저를 부르셔서 "하나님 나라가 바로 내 나라야"하시면서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 유언이 되었습니다. 수술을 해보니 이미 간암 4기 위암 4기이었습니다. 복부까지 다 전이가 되신 상태였습니다. 저는 앞으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아버님의 유언을 간직하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저희 아버님이 제가 어려서부터 제일 많이 들려주시던 성경 말씀이 바로 오늘 읽어 주신 성경 말씀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저희들뿐 아니라 아마 아버님의 제자분들도 제일 많이 들은 이야기일 것입니다. 누가 진정한 이웃이냐는 말씀입니다. 저는 몇해 전 듣고 감동을 받은 동화 같은 두 가지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누면서 예수님께서 저희에게 가르쳐 주신 선한 사마리아인, 진정한 이웃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일본 도쿄 올림픽 때, 스타디움 확장을 위해 지은 지 3년 되는 목조로 지어진 집을 헐게 되었습니다. 인부들이 지붕을 벗기려는데 꼬리 쪽에 못이 박힌 채 벽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도마뱀 한 마리가 살아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3년 동안 도마뱀이 못 박힌 벽에서 움직이지 못하는데도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 신기해서 사람들은 원인을 알기 위해 공사를 중단하고 사흘 동안 도마뱀을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접한 도종환 시인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도마뱀은 얼마나 몸부림쳤을까 몸부림칠 때마다 살을 찔러오는 고통은 또 얼마나 컸을까. 그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모습을 지켜보는 다른 도마뱀은 또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꼬리를 잘라버리고 도망칠 수도 없는,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절망하는 도마뱀을 곁에서 지켜보는 또 다른 도마뱀은 어떤 몸짓 어떤 표정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었을까. 먹이를 입으로 건네주면서, 절망하지 말라고, 살아야한다고, 너를 버릴 수 없다고, 나만 살기 위해 네 곁을 떠날 수 없다는 그 몸짓 그 표정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 저렸을까. 어두운 지붕 밑에서 두 도마뱀은 함께 사랑하고 함께 고통을 나누고 고통 속에서 서로 안고 잠이 들곤 하였을 것이다. 그 3년은 얼마나 길었을까.
저는 이 이야기를 감동을 갖고 접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작은 생명이 어떻게' 하는 생각도 했고 '3년 후에 자유를 얻을 수 있었던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었던 힘은 역시 사랑의 나눔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생명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을 나눌 때 거기에 새로운 생명이 그리고 우리 안에 하나님이 부활을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울산에 있는 가톨릭 신자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수녀님 한 분의 소개로 울산에 가서 직접 그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채록한 내용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동화나 소설처럼 만났다. 나의 어머님이 불교신자여서 나는 하나님을 몰랐다. 결혼 후 나는 딸 둘, 아들 하나를 낳았다. 첫째 아이를 낳고 원인 모를 머리에 통증이 시작되었고 점점 심해져서, 셋째를 낳고는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머리에 고통이 심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없어졌다. 막내가 네 살 되던 해에 통증이 심해서 아무도 모르게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너무 어려서 대소변을 가눌 수 있는 다섯 살이 되면 그때 죽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길을 가다가 쓰러지기도 하고 그런 고통의 연속 속에서 내가 살아가야 할 의미가 없었다. 다만 아이들이 불쌍해서 그 고통을 참고 견디고 있었다. 나는 죽기 위해서 약을 사 모았고 마음도 정리가 다 되었다.
어느 날 시장을 다녀오다 너무나 기운이 없어 성당이 있는 옆길에 주저앉아 절망 속에 있었다. 그때가 마침 주일이어서 성당이 끝나고 많은 사람이 나오고 있었다. 한결같이 그들은 즐겁고 기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슬픈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 나이 삼십인데 나는 왜 죽음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내려간 후에 빈 성당 안으로 들어가 통곡을 하고 울었다. 그때 어느 수녀님이 곁에 다가와 눈물을 글썽이면서 위로해 주셨다. 그분이 나에게 이유를 물으셔서 머리에 통증과 아이들 놓고 죽을 결심을 하게 된 이유를 말씀 드렸다. 그분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나의 주소를 물으시고 그 다음날 우리 집을 방문해 주셨다. 그 후 나는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성당에 나오기 시작했다. 미사에 참석하면서, 신부님 말씀을 들으면서 알 수 없는 평화가 나에게 찾아왔다. 그때부터 나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구나'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분이 살아 계신다고 느끼면서 나는 교리공부를 하고 영세를 받았다.
그후 온 가족이 영세를 받았다. 그렇게 생활을 하면서도 머리에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 이상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도, 죽을 수도 없게 되었다. 마음에 평화는 찾아 왔는데 통증은 계속 되었다. 통증 때문에 죽고 싶은 생각이 지속되었다.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행복하고 감사하면서도, 그 통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나는 진통제가 없으면 살아가기가 힘들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분에게 기도했다. "당신이 주신 십자가라면 그 고통을 지고 가겠다"고. 나는 나의 고통이 당신이 십자가를 지신 고통과 비교가 되겠는가 하고 기도하면서 그분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그 후에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연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머리에 통증은 경추협착증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으로 판명 받고, 수술을 받기로 결심했다. 의사 선생님은 수술 후 괜찮을 수도 있지만 수술 후에도 죽을 때까지 고통이 따를 수 있다고 하셨다. 고통으로 자살 확률이 제일 많은 병이 이 병이라고 말씀 하셨다. 그러나 모든 것을 신앙으로 잘 극복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에도 여전히 통증은 지속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진통제로 살고 있다.
84년 가을 어느 날, 나는 피를 토하듯 절규했다. "하나님 이제는 더 이상 못 참겠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주님 저를 살게 해 주시던지 아니면 제발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울면서 기도하다가 쓰러졌다. 그 당시 나는 많이 여위고 길을 걸어도 허공을 걷는 것 같고 기억력도 차츰차츰 감퇴해 갔다. 절규하듯 그분에게 기도를 하다가 쓰러져 누워서 정신을 잃은 것도 아니고 정신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는 주님의 크신 음성을 들었다. 귀가 멍멍할 정도로 큰 소리로 "레베카야,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기도해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너무 놀래서 "예수님, 나 여기 있습니다. 여기 있습니다."하면서 일어나서 그분을 찾았다. 그때의 경험을 나는 평생 잊을 수가 없다. 그 후에 나는 하나님의 성령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주님, 용서하십시오."하면서 세 시간을 울면서 기도했다. 그러면서 "주변에 어려운 사람과 같이 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드렸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려운 사람들과 같이 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를 올리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부터 나는 완전히 해방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많은 크신 은총과 사랑 속에서 감사한 마음 때문에 고통이 없어진 것도 아닌데 감추어진 것 같다. 그 후 나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보면 관심이 온통 그쪽으로만 향했다. 나는 오전 중에는 몸을 일으키기가 지금도 힘이 든다. 첫 딸이 수녀원에 가고 내가 등에 없고 다니면서, 그 아이가 다섯 살이 되어 대소변을 가리게 되면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막내아들은 신부의 길을 가기 위해 신학대학에 갔다. 두 아이를 하나님께 봉헌하고 난 후에 우리 부부는 감사하는 마음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도구였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나는 고통 속에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고 있다. 이러한 나를 보고 어느 누구도 내가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리고 나 자신 또한 너무 행복해서 고통을 잊는 것 같다. 그 동안 이렇게 살아오면서 15년 동안 버려진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가져왔다. 부산에 있을 때는 수사님이 청소년을 키우고 계셔서 그 곳에서 그분을 도우면서 아이들을 돌보며 있었다. 몸도 아프고 자신은 없었지만 막내가 신학교 간 이후에 청소년에게 가장 깊은 내면 속에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남편을 따라 울산으로 옮겼다. 94년 겨울 어느 날 집에 불이나 할아버지 한 분과 국민학교 5,6학년 두 아이가 밖에 나와 앉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어떤 분이 그곳에 가보자고 해서 그곳에 갔다. 그곳에 가서 그분을 보고 난 후 나는 방을 하나 얻어 할아버지를 모셔놓고 돌봐드렸다. 그분은 대소변까지 받아내야 했다. 나는 아침이면 일어나 집안 일을 해놓고 그곳에 가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할아버지를 씻겨 드려야 했다. 그러나 대소변을 이곳저곳 아무렇게나 처리해 놓으셔서 그 냄새가 역겨워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솔직히 고통스럽습니다. 이분들을 내 친 가족처럼 돌보게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어느 날 문득 그분이 예수님이라고 하면 내가 그분을 어떻게 대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 다음부터는 그분이 쏟아놓은 배설물을 치우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그분을 예수님이라고 생각하자' 라고 생각하면서... 그후 나는 성당 복지분과에서 돌보던 아이들을 부탁해와서 돌보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은 부모가 없거나 버림받은 아이들이다. 지금 나는 22명을 돌보고 있다. 그 아이들이 해가 지면 돌아올 집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희망이 없던 아이들이 차츰 희망을 갖게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나는 아이들을 돌보면서 갈 곳도 없고 버림받고 영양실조에 걸려있던 아이들이 기도하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 아이들이 기도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아이들의 맑은 영혼을 들여다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아이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계속 느낀다. 나는 방학 때 중 고등학교 아이들을 꽃동네에 일주일동안 방문하게 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자진해서 가장 중환자들이 있는 곳에서 봉사하면서 일주일 있기로 했는데 보름동안 있다가 돌아왔다. 돌아와서 아이들이 울면서 나에게 이야기했던 것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우리가 가장 비참한 줄 알았는데 우리보다 더 비참한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깊이 느낄 수 있었어요. 우리도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끌어안고 감동으로 울었다. 처음 10명 때까지는 남편수입으로 충당이 되었지만 지금은 그것으로 안 된다. 그래도 한번도 굶은 적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비참하게 하신 적도 없다. 우리에게는 항상 희망이 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 맡기고 이끄시는 대로 난 살아간다. 난 어떤 계획도 하지 않는다. 나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면서 모든 욕심이 없어졌다. 세속적인 모든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고통 때문이었다. 고통이 심해서 나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 외에는 세속적인 욕망이나 욕심은 가질 수도 또 일어나지도 않았다. 이것 또한 하나님의 사랑이셨던 것 같다. 하나님은 사랑과 자유이시다.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 이 자유 속에서의 기쁨, 나는 그분이 주신 참 자유 속에서 그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나는 이 곳에서 한 분 더 만났습니다. '은총의 집'에 천사 같은 분이 계시다고 하셔서 만났는데 그 분은 신장 이식 수술을 하고 퇴원한지 얼마 안된 분이셨는데 시한부 생명이었습니다. 얼굴과 몸이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그 분은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만두를 빚고 계셨습니다. 그 곳에서 제일 인기가 있는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하나도 두렵지 않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이곳에 있는 아이들이 이렇게 좋아하니까 이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 가고싶다. 그래서 퇴원하자마자 이 곳에 와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저는 그 곳을 벗어 나오면서 추운 날씨였고 낮선 곳이었는데 한없이 걸었습니다. 나는 그 때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을 한번도 의심 없이 살아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을 만나고 돌아오면서 아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은 꼭 살아 계셔야겠구나 하는 절실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단순히 계시다는 Sein이 아닌 꼭 살아 계셔야 한다는 Sollen으로 말입니다. 왜 그렇게 절실했는지 지금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두 이야기를 통해서 진정한 이웃이 누구인가는 분명히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언젠가 길희성 선생님께서 설교 말씀 중에 하나님은 논리적 인식이 아니고 실천의 인식이라고 하셨는데 앞글에서 소개한 그 분들은 사랑의 실천 속에서 분명히 하나님을 만나고 계셨습니다. 저는 두 도마뱀들도 서로의 고통을 위로하고 사랑의 나눔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교의 신비주의자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나를 하나 하나 벗어버리고 '나 없음' 속에서 내 영혼이 겸손해지고 맑아져서 하나님을 제대로 볼 수 있고 하나님 안에 거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틈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이웃을 받아드릴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지고, 비워낸 공간이 자꾸 커져서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면 吾心卽汝心 하나님 마음이 내마음이 되어 온전히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게 되는 것이겠지요.
추운 겨울입니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 강도 만난 자, 치매 걸려 버린 받은 노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고아나 과부가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지 모릅니다. 나를 비워내고 더 큰 자리를 마련하여 오는 성탄에 기쁜 마음으로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이신 주님 절망 속에서도 힘과 용기를 주시고 당신을 향할 수 있게 해주시는 당신께 진심으로 감사드림니다. 가장 작은자에게 행한 것이 바로 나에게 행한 것이라고 가르쳐주신 주님 눈에 보이지 않는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하는 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증명이 될 뿐만 아니라 확실히 당신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저희들 항상 당신을 향한 위로 열려진 삶이 가장 작은자의 진정한 이웃이 되어 풍성한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일본 도쿄 올림픽 때, 스타디움 확장을 위해 지은 지 3년 되는 목조로 지어진 집을 헐게 되었습니다. 인부들이 지붕을 벗기려는데 꼬리 쪽에 못이 박힌 채 벽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도마뱀 한 마리가 살아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3년 동안 도마뱀이 못 박힌 벽에서 움직이지 못하는데도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 신기해서 사람들은 원인을 알기 위해 공사를 중단하고 사흘 동안 도마뱀을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접한 도종환 시인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도마뱀은 얼마나 몸부림쳤을까 몸부림칠 때마다 살을 찔러오는 고통은 또 얼마나 컸을까. 그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모습을 지켜보는 다른 도마뱀은 또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꼬리를 잘라버리고 도망칠 수도 없는,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절망하는 도마뱀을 곁에서 지켜보는 또 다른 도마뱀은 어떤 몸짓 어떤 표정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었을까. 먹이를 입으로 건네주면서, 절망하지 말라고, 살아야한다고, 너를 버릴 수 없다고, 나만 살기 위해 네 곁을 떠날 수 없다는 그 몸짓 그 표정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 저렸을까. 어두운 지붕 밑에서 두 도마뱀은 함께 사랑하고 함께 고통을 나누고 고통 속에서 서로 안고 잠이 들곤 하였을 것이다. 그 3년은 얼마나 길었을까.
저는 이 이야기를 감동을 갖고 접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작은 생명이 어떻게' 하는 생각도 했고 '3년 후에 자유를 얻을 수 있었던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었던 힘은 역시 사랑의 나눔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생명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을 나눌 때 거기에 새로운 생명이 그리고 우리 안에 하나님이 부활을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울산에 있는 가톨릭 신자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수녀님 한 분의 소개로 울산에 가서 직접 그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채록한 내용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동화나 소설처럼 만났다. 나의 어머님이 불교신자여서 나는 하나님을 몰랐다. 결혼 후 나는 딸 둘, 아들 하나를 낳았다. 첫째 아이를 낳고 원인 모를 머리에 통증이 시작되었고 점점 심해져서, 셋째를 낳고는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머리에 고통이 심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없어졌다. 막내가 네 살 되던 해에 통증이 심해서 아무도 모르게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너무 어려서 대소변을 가눌 수 있는 다섯 살이 되면 그때 죽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길을 가다가 쓰러지기도 하고 그런 고통의 연속 속에서 내가 살아가야 할 의미가 없었다. 다만 아이들이 불쌍해서 그 고통을 참고 견디고 있었다. 나는 죽기 위해서 약을 사 모았고 마음도 정리가 다 되었다.
어느 날 시장을 다녀오다 너무나 기운이 없어 성당이 있는 옆길에 주저앉아 절망 속에 있었다. 그때가 마침 주일이어서 성당이 끝나고 많은 사람이 나오고 있었다. 한결같이 그들은 즐겁고 기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슬픈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 나이 삼십인데 나는 왜 죽음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내려간 후에 빈 성당 안으로 들어가 통곡을 하고 울었다. 그때 어느 수녀님이 곁에 다가와 눈물을 글썽이면서 위로해 주셨다. 그분이 나에게 이유를 물으셔서 머리에 통증과 아이들 놓고 죽을 결심을 하게 된 이유를 말씀 드렸다. 그분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나의 주소를 물으시고 그 다음날 우리 집을 방문해 주셨다. 그 후 나는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성당에 나오기 시작했다. 미사에 참석하면서, 신부님 말씀을 들으면서 알 수 없는 평화가 나에게 찾아왔다. 그때부터 나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구나'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분이 살아 계신다고 느끼면서 나는 교리공부를 하고 영세를 받았다.
그후 온 가족이 영세를 받았다. 그렇게 생활을 하면서도 머리에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 이상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도, 죽을 수도 없게 되었다. 마음에 평화는 찾아 왔는데 통증은 계속 되었다. 통증 때문에 죽고 싶은 생각이 지속되었다.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행복하고 감사하면서도, 그 통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나는 진통제가 없으면 살아가기가 힘들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분에게 기도했다. "당신이 주신 십자가라면 그 고통을 지고 가겠다"고. 나는 나의 고통이 당신이 십자가를 지신 고통과 비교가 되겠는가 하고 기도하면서 그분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그 후에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연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머리에 통증은 경추협착증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으로 판명 받고, 수술을 받기로 결심했다. 의사 선생님은 수술 후 괜찮을 수도 있지만 수술 후에도 죽을 때까지 고통이 따를 수 있다고 하셨다. 고통으로 자살 확률이 제일 많은 병이 이 병이라고 말씀 하셨다. 그러나 모든 것을 신앙으로 잘 극복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에도 여전히 통증은 지속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진통제로 살고 있다.
84년 가을 어느 날, 나는 피를 토하듯 절규했다. "하나님 이제는 더 이상 못 참겠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주님 저를 살게 해 주시던지 아니면 제발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울면서 기도하다가 쓰러졌다. 그 당시 나는 많이 여위고 길을 걸어도 허공을 걷는 것 같고 기억력도 차츰차츰 감퇴해 갔다. 절규하듯 그분에게 기도를 하다가 쓰러져 누워서 정신을 잃은 것도 아니고 정신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는 주님의 크신 음성을 들었다. 귀가 멍멍할 정도로 큰 소리로 "레베카야,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기도해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너무 놀래서 "예수님, 나 여기 있습니다. 여기 있습니다."하면서 일어나서 그분을 찾았다. 그때의 경험을 나는 평생 잊을 수가 없다. 그 후에 나는 하나님의 성령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주님, 용서하십시오."하면서 세 시간을 울면서 기도했다. 그러면서 "주변에 어려운 사람과 같이 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드렸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려운 사람들과 같이 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를 올리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부터 나는 완전히 해방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많은 크신 은총과 사랑 속에서 감사한 마음 때문에 고통이 없어진 것도 아닌데 감추어진 것 같다. 그 후 나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보면 관심이 온통 그쪽으로만 향했다. 나는 오전 중에는 몸을 일으키기가 지금도 힘이 든다. 첫 딸이 수녀원에 가고 내가 등에 없고 다니면서, 그 아이가 다섯 살이 되어 대소변을 가리게 되면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막내아들은 신부의 길을 가기 위해 신학대학에 갔다. 두 아이를 하나님께 봉헌하고 난 후에 우리 부부는 감사하는 마음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도구였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나는 고통 속에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고 있다. 이러한 나를 보고 어느 누구도 내가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리고 나 자신 또한 너무 행복해서 고통을 잊는 것 같다. 그 동안 이렇게 살아오면서 15년 동안 버려진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가져왔다. 부산에 있을 때는 수사님이 청소년을 키우고 계셔서 그 곳에서 그분을 도우면서 아이들을 돌보며 있었다. 몸도 아프고 자신은 없었지만 막내가 신학교 간 이후에 청소년에게 가장 깊은 내면 속에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남편을 따라 울산으로 옮겼다. 94년 겨울 어느 날 집에 불이나 할아버지 한 분과 국민학교 5,6학년 두 아이가 밖에 나와 앉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어떤 분이 그곳에 가보자고 해서 그곳에 갔다. 그곳에 가서 그분을 보고 난 후 나는 방을 하나 얻어 할아버지를 모셔놓고 돌봐드렸다. 그분은 대소변까지 받아내야 했다. 나는 아침이면 일어나 집안 일을 해놓고 그곳에 가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할아버지를 씻겨 드려야 했다. 그러나 대소변을 이곳저곳 아무렇게나 처리해 놓으셔서 그 냄새가 역겨워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솔직히 고통스럽습니다. 이분들을 내 친 가족처럼 돌보게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어느 날 문득 그분이 예수님이라고 하면 내가 그분을 어떻게 대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 다음부터는 그분이 쏟아놓은 배설물을 치우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그분을 예수님이라고 생각하자' 라고 생각하면서... 그후 나는 성당 복지분과에서 돌보던 아이들을 부탁해와서 돌보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은 부모가 없거나 버림받은 아이들이다. 지금 나는 22명을 돌보고 있다. 그 아이들이 해가 지면 돌아올 집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희망이 없던 아이들이 차츰 희망을 갖게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나는 아이들을 돌보면서 갈 곳도 없고 버림받고 영양실조에 걸려있던 아이들이 기도하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 아이들이 기도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아이들의 맑은 영혼을 들여다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아이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계속 느낀다. 나는 방학 때 중 고등학교 아이들을 꽃동네에 일주일동안 방문하게 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자진해서 가장 중환자들이 있는 곳에서 봉사하면서 일주일 있기로 했는데 보름동안 있다가 돌아왔다. 돌아와서 아이들이 울면서 나에게 이야기했던 것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우리가 가장 비참한 줄 알았는데 우리보다 더 비참한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깊이 느낄 수 있었어요. 우리도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끌어안고 감동으로 울었다. 처음 10명 때까지는 남편수입으로 충당이 되었지만 지금은 그것으로 안 된다. 그래도 한번도 굶은 적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비참하게 하신 적도 없다. 우리에게는 항상 희망이 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 맡기고 이끄시는 대로 난 살아간다. 난 어떤 계획도 하지 않는다. 나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면서 모든 욕심이 없어졌다. 세속적인 모든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고통 때문이었다. 고통이 심해서 나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 외에는 세속적인 욕망이나 욕심은 가질 수도 또 일어나지도 않았다. 이것 또한 하나님의 사랑이셨던 것 같다. 하나님은 사랑과 자유이시다.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 이 자유 속에서의 기쁨, 나는 그분이 주신 참 자유 속에서 그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나는 이 곳에서 한 분 더 만났습니다. '은총의 집'에 천사 같은 분이 계시다고 하셔서 만났는데 그 분은 신장 이식 수술을 하고 퇴원한지 얼마 안된 분이셨는데 시한부 생명이었습니다. 얼굴과 몸이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그 분은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만두를 빚고 계셨습니다. 그 곳에서 제일 인기가 있는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하나도 두렵지 않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이곳에 있는 아이들이 이렇게 좋아하니까 이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 가고싶다. 그래서 퇴원하자마자 이 곳에 와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저는 그 곳을 벗어 나오면서 추운 날씨였고 낮선 곳이었는데 한없이 걸었습니다. 나는 그 때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을 한번도 의심 없이 살아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을 만나고 돌아오면서 아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은 꼭 살아 계셔야겠구나 하는 절실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단순히 계시다는 Sein이 아닌 꼭 살아 계셔야 한다는 Sollen으로 말입니다. 왜 그렇게 절실했는지 지금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두 이야기를 통해서 진정한 이웃이 누구인가는 분명히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언젠가 길희성 선생님께서 설교 말씀 중에 하나님은 논리적 인식이 아니고 실천의 인식이라고 하셨는데 앞글에서 소개한 그 분들은 사랑의 실천 속에서 분명히 하나님을 만나고 계셨습니다. 저는 두 도마뱀들도 서로의 고통을 위로하고 사랑의 나눔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교의 신비주의자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나를 하나 하나 벗어버리고 '나 없음' 속에서 내 영혼이 겸손해지고 맑아져서 하나님을 제대로 볼 수 있고 하나님 안에 거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틈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이웃을 받아드릴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지고, 비워낸 공간이 자꾸 커져서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면 吾心卽汝心 하나님 마음이 내마음이 되어 온전히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게 되는 것이겠지요.
추운 겨울입니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 강도 만난 자, 치매 걸려 버린 받은 노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고아나 과부가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지 모릅니다. 나를 비워내고 더 큰 자리를 마련하여 오는 성탄에 기쁜 마음으로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이신 주님 절망 속에서도 힘과 용기를 주시고 당신을 향할 수 있게 해주시는 당신께 진심으로 감사드림니다. 가장 작은자에게 행한 것이 바로 나에게 행한 것이라고 가르쳐주신 주님 눈에 보이지 않는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하는 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증명이 될 뿐만 아니라 확실히 당신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저희들 항상 당신을 향한 위로 열려진 삶이 가장 작은자의 진정한 이웃이 되어 풍성한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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