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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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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길희성 형제 |
참고 : | 새길교회 2001.7.29 주일설교 |
잃어버린 영혼 70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탄다는 설렘으로 러시아 여행길에 몸을 실었습니다. 별 준비도 하지 못한 벼락여행이었습니다. 허리 잘린 한반도를 잇고 시베리아 벌판을 거쳐 모스크바, 그리고 유럽 대륙으로 신나게 뻗어나갈 통일 조국의 미래를 마음 속에 그려보면서 그 감격을 미리 체험해보려는 성급하기 짝이 없는 마음에서 내린 즉흥 결정이었습니다. 3박4일 동안 기차에서 생활해야 한다고 하니 여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아니고는 떠날 수 없는 여행길이었습니다. 여행사의 어이없는 실수로 인해 기차 타는 시간이 3박4일에서 1박2일로 줄어들어 약 30시간만 기차를 탔지만, 시베리아의 벌판 구경은 그것으로 족했고, 여행사의 실수가 전화위복이 되어 다른 곳을 좀 더 볼 수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여행하는 사람마다 관심이 제각기 달라 어떤 사람은 자연풍광, 어떤 사람은 문화 역사, 어떤 사람은 경제 사정,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다양한 음식에 관심을 쏟습니다. 나에게는 역시 평소에 무척이나 보고 싶었던 양파 모양의 둥근 천장을 가진 러시아 정교회에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러시아 정교회는 그 뿌리인 그리스 정교회의 전통까지 염두에 둔다면 2000년 그리스도교 역사 그 자체이며, 심오한 신학과 영성의 전통을 지닌 종교로서, 러시아인들의 심성 깊이 자리 잡아온 러시아의 민족 신앙이며 문화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회주의 70년 간 심한 박해를 받아 많은 교회가 문을 닫고 많은 교회당들이 박물관, 극장 등으로 변하는 수모를 겪었어도, 러시아 어느 도시나 마을에서도 불 수 있는 아름다운 교회건물들은 러시아인들의 영혼의 고향과도 같은 존재로서, 세속주의가 몰고 온 또 다른 '종교적' 광풍을 묵묵히 지켜보았습니다. 이제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에 수반한 이념적 공백과 급변하는 사회 변화 속에서 방황하는 러시아인들은 다시 어머니 교회를 찾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무너졌던 교회를 수리하거나 신도들의 헌금으로 새로운 교회를 짓기도 합니다. 여행 중 잠시 방문한 교회들에서도 미사를 드리거나 경건하게 기도를 드리는 신도들의 모습을 어렵기 않게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동방교회 특유의 전통인 성화(이콘)로 둘러싸인 가운데 잔잔히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화음의 러시아 성가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지켜보는 관광객이라 해도 영혼 속 깊이 저며오는 진한 감동을 안겨줍나다. 교회야말로 러시아인들의 빼어난 예술적 감각의 산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화에 그려진 성인들의 모습은 마치 시간이 정지된 영원한 세계에서 엄청난 역사의 폭력과 수난을 겪어온 러시아 여인들의 모습을 연민의 정과 함께 조용한 관조의 눈길로 응시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2차 대전에 독일군과의 싸움에서 2700만 명, 그러니까 당시 러시아 인구의 거의 4분의 1이 죽었다고 하니, 그리고 스탈린 치하에서 처형당하거나 강제 이주 당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수난을 생각할 때, 영생의 위로가 없다면 러시아인들이 겪은 이러한 말할 수 없는 아픔을 어떻게 치유하고 그들의 한을 누가 풀어주며 억울하게 흘린 피와 눈물을 누가 보상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습니다.
유럽의 유명한 성당을 볼 때마다 누구나 느끼는 착잡한 감정이 있습니다. 우선 그 엄청난 축조물을 지었던 장인들과 건축가들의 기술과 예술성에 경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중세에 비해 엄청나게 발달된 과학기술과 건축기술을 지니고 있는 현대라 해도 다시는 그러한 장엄한 아름다움과 혼이 담긴 건축물을 짓지는 못하리라 생각이 듭니다. 세계 삼대 성당의 하나라는 페테르부르그의 이삭 성당도 그런 감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중세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러한 엄청난 건축을 하느라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고생을 했을까, 그리고 왕들과 봉건 영주들이 얼마나 가혹하게 백성들을 닦달하고 고혈을 짜내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과연 가난한 사람들,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하다가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처형당한 예수의 정신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구라파나 러시아의 웅장한 성당들은 화려한 왕궁들과 마찬가지로 예외 없이 권력의 상징입니다. 민중의 손으로 그들의 뜻이 모아져 세운 것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갈릴리 예수가 중세에 태어나서 자기 이름으로 행해진 이 엄청난 役事를 목격했다면 그야말로 졸도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최근 로마를 방문하고 돌아온 정대현 형제의 말대로, 베드로가 있었던 곳은 어둠 컴컴한 카타곰바의 지하세계였지 장엄한 베드로 성당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도 후세에 자기 이름으로 지어진 그 어마어마한 성당을 보았다면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입니다.
라틴 서방교회는 흔히 비잔틴 동방교회를 일컬어 황제가 교회를 지배하는 씨저 교권주의(Caesaropapism)를 물리치지 못했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서방교회가 상대적으로 교회의 자율권을 잘 지킨 것은 사실이지만, 서방교회의 역사 역시도 4세기 초 콘스탄틴 대제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은 후 교권과 왕권이 야합한 역사였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불란서 혁명은 서구라파에서 이러한 종교와 권력의 유착관계 위에 서 있던 이른바 구 체제(ancien regime)를 무너트린 대 사건이었으며, 동방교회는 이보다 130여 년이 지나 러시아 공산 혁명을 통해 구체제와 함께 몰락하게 된 것입니다. 근대화와 혁명의 지각생이었던 러시아는 결국 사회주의 70년의 실험 끝에 이제 비로소 세계사의 주류에 편승하고자 하는 이중의 고통을 감당해야 하게 된 것입니다. 일찍부터 권력과 단절된 채 자생력을 키워 온 서방교회와는 달리 러시아 정교회는 사회주의 정권 아래서 그러한 자생력을 키울 기회마저 박탈당한 채 뼈아픈 수모를 겪으면서 70년이라는 역사의 단절을 경험한 후 이제 겨우 숨을 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동부 시베리아의 이루크츠쿠라는 도시에서 데카브리스트 박물관이라는 곳을 방문한 일이 있는데, 거기에는 1825년에 젊은 귀족 출신 장교들이 주동하여 혁명을 일으키려다 실패한 후 시베리아로 귀양 온 이른바 '12월 혁명'의 주역들이 살다간 모습들을 전시해 놓고 있습니다. 1812년 러시아를 침공했다가 참패하고 퇴각하는 나폴레옹의 군대를 추격하여 파리까지 쳐들어갔던 러시아 귀족 장교들은 당시 프랑스의 사회적 발전상을 목격하고 돌아와서는 농노제도를 포함하여 러시아의 후진적 사회정치 제도를 개혁하려다 실패하고 귀양살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5명이 처형당하고 120명이 시베리아로 귀양 보내졌다고 합니다. 러시아 혁명 운동의 시발점으로 평가받는 사건이며, 시베리아로 유배 온 이 귀족 청년들을 통해 유럽의 고급 문화가 시베리아로 이식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도 합니다.
우리가 방문했던 박물관은 실은 제정 러시아의 명문 가문 출신인 볼콘스키라는 공작이 유배당해 살던 집으로서,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의 주인공들 가운데 한 사람인 볼콘스키의 배경이 된 인물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톨스토이는 26세 때 모스크바에서 귀양살이로부터 풀려나 모스크바로 돌아온 67세의 볼콘스키를 만나 본 일이 있다고 합니다. 이 박물관에서 들었던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귀양간 남편을 따라 황도 페테르부르그를 떠나 시베리아에 와서 남편과 함께 고난의 삶을 함께 했던 용기 있는 귀족 여인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들은 귀양간 남편을 따르기 위해서 귀족으로서의 모든 특권을 포기해야만 했고, 안락한 삶과 재산과 자식마저 버리고 그야말로 동토의 땅 시베리아로 와서 예전 같으면 종들을 시켜 하던 온갖 궂은 일을 다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볼콘스키의 아내 마리아는 "이 시베리아에서 비로소 나의 남편과 나의 진정한 삶이 시작되었다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이제야 비로소 인생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는 고백일 것입니다. 지금도 낙후된 곳이지만, 1800년대 초의 시베리아는 그야 말로 사람 살 곳이 아니었을 것이니, 귀양살이 온 그들의 고생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가정이 없다 하지만, 러시아가 만약 19세기 초에 사회개혁이 성공하여 서구라파의 여러 나라들처럼 근대화를 일찍부터 달성했더라면 러시아 역사는 물론이요 전 인류의 현대사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며, 지금 분단된 우리 조국의 운명도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러시아는 불란서 혁명이 있은 후 130여 년이 지난 후에야 공산주의 혁명을 통해 근대 사회로 진입하게 되었고, 그나마 빵과 자유 가운데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70년을 보내고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역사에서는 한 번 지각하면 영원히 지각생이 된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아직도 개혁과 수구의 기로에서 국론이 분열되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자칫하면 몇 번이고 위기와 기회를 맞고도 살리지 못하여 국제적 망신을 거듭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처럼 될 것이라는 자조적인 얘기도 들립니다. 여하튼 역사는 냉혹해서 기회는 한 번 놓치면 좀처럼 만회하기 어려운 법임을 명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이 지금은 빛이 바랬다고 하나, 그래도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 러시아가 공산 혁명을 통해서 엄청난 규모의 농노제도 위에 서 있던 러시아의 중세적 질서를 완전히 청산하고 근대사회로 진입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구질서와 한 통속이 되어 있던 러시아 정교회 역시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지금 정의, 평등, 인권 등을 당연히 기독교와 연관시켜 생각하지만(적어도 우리 새길 교회에서는), 기독교 역사의 진실은 그와는 매우 다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정의, 평등, 자유, 인권에 관한 한 그리스도교보다는 세속주의 이념과 혁명들이 훨씬 더 많은 실질적 공헌을 했다는 점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아이러니칼하게도 그리스도교보다는 세속주의자들과 무신론자들을 통해 더 확실하고 보편적인 방법으로 실현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콘스탄틴 대제 이후 1500여 년의 세월을 체제에 영합하여 특권을 누리면서 예수의 정신을 배반하고 살다가, 불란서 혁명과 러시아 혁명의 충격을 경험한 후에야 비로소 조금 정신을 차린 셈이니, 생각해보면 기가 찬 일입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진정한 인간 예수, 복음서의 예수를 도그마와 교리의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교회와 교권의 쇠사슬로부터 건져낸 것은 신학자들이 아니라 계몽사상가들이었으며, 칼 마르크스와 같은 무신론자들과 세속적 혁명가들입니다.
20세기 기독교 신학에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끼친 해방신학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마르크시즘을 떠나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신학입니다. "공산주의는 예수의 정신을 정치적, 제도적으로 실현하려는 것이다"라는 어느 마르크스주의자의 얘기는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기독교가 힘없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했던 예수의 민중성을 깨닫게 된 것은 불과 최근의 일이라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가톨릭, 러시아 정교회, 개신교를 막론하고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해방신학, 정치신학, 민중신학 운운하면서 민중의 예수를 발견하게 되었고, 민중의 현실적 고통과 함께 하는 신학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민중의 발견은 1500여 년의 민중 망각의 몰역사적 기독교의 유물을 과감히 버리고 성서의 원초적 메시지로 되돌아가는 데서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성서의 메시지 가운데서도, 버림받은 민중들과 함께 했던 인간 예수 자신의 생생한 모습을 되찾는 운동의 양상으로 전개되었고,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의 공헌이 큽니다. 그리고 최근 일고 있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와 재발견의 열풍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역사적 예수의 실제 모습이 어떠했던 간에, 그가 당시 체제에 안주하지 않고 변두리 인생과 고뇌를 함께 하면서 대안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대안적 삶의 길을 살다 간 인간이었다는 사실에는 학자들 모두가 동의하며, 그들은 바로 이러한 예수의 모습에 사로잡혀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상화되고 형이상학화 된 예수, 힘있는 자들과 부자들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믿기 쉽도록 만들어 놓은 관념적 예수가 아니라 인간의 허위의식을 용납하지 않고 비인간화된 종교를 인간화하려다가 처형당한 인간 예수, 역사적 인물 예수의 신앙과 삶과 말씀이 지닌 무한한 매력 때문입니다.
아직도 기독교는 이 점에서 갈 길이 멉니다. 가톨릭은 물론이요 개신교마저도 아직 중세적 유산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특히 한국 기독교는 전근대적 권위주의는 물론이요 중세 신학보다도 훨씬 열등한, 무식한 미국 선교사들이 전해 준 근본주의 신학의 덫에 걸려 신음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덫인 줄도 모르고 날뛰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런 주제에 이제 좀 먹고 살만 하게 되었다고 달러 몇 푼 들고 러시아에 가서 선교를 하겠다, 러시아인들의 영혼을 구제하겠다고 하니 그야말로 주제 파악을 못해도 한참 못하는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한국 기독교인들을 족쇄처럼 꽁꽁 묶고 있는 근본주의 신학은 기독교 2000년 역사에 족보도 없는 사생아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수많은 성인들을 배출하고 톨스토이와 도스토에푸스키를 낳은 민족의 영혼을 구제하겠다고 나서니 이러한 한국 기독교인들의 무지와 만용은 기네스 북에 가히 오를 만 합니다. 그런 것도 기네스북이 취급하는지는 모르지만요.
정교회가 아무리 정치적으로 제정 러시아의 구체제와 결합되어 있었고 타락했다 해도, 종교는 어디까지나 종교입니다. 사회주의라는 세속주의 이데올로기가 결코 종교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러시아 사회주의는 반종교적 세속주의였을 뿐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준 종교(semi-religion) 내지 유사 종교(pseudo-religion)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결코 러시아인들의 영혼을 차지하지는 못했습니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 앞에 마련된 레닌의 묘소와 그 주위에 세워진 공산당 지도자들의 흉상은 현대판 세속주의 종교의 성인들의 상이나 다름없지만, 머지 않아 그들은 완전히 잊혀질지도 모릅니다. 레닌의 묘소를 마주보면서 모스크바의 유명한 쇼핑 명소인 굼 백화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마치 세계 유명 상품 브랜드들의 경연장 같은 인상을 주는 곳인데, 그 안에 진열된 상품 가운데 순 러시아제는 보드카 술 외에는 없다는 관광 안내원의 말을 들었습니다. 거의 사실일 것 같습니다.
나는 이것이 비단 현 러시아의 경제적 상황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인들의 영혼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봅니다. 이런 상태에 빠진 조국의 한심한 상황을 두고 솔제니친은 사회주의 70년이 러시아의 혼을 팔아먹었다고 개탄한 것입니다. 러시아인의 영혼을 억압한 무신론적 사회주의 독재체제와 이념도 문제지만, 그 결과 이제 급속하게 밀려드는 자본주의의 물결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물신숭배에 빠진 조국의 한심한 운명을 한탄하는 말입니다. 사실 자본주의 국가들의 시장이 되어 버린 러시아의 현 운명도 불쌍하지만, 더욱 불쌍한 것은 러시아인들의 영혼의 세계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그들의 내면을 들어다 볼 수는 없지만, 러시아인들의 어둡고 무뚝뚝한 표정 속에서 우리는 그들이 겪어야 했던 오랜 인고의 세월을 읽을 수 있었으며 그리 밝지만은 않은 러시아의 현재와 미래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러시아 남성들의 평균 수명이 60도 안 된다고 하며, 그 주된 이유는 알코올중독이라고 하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인구는 자꾸 주는데 앞으로 그 방대한 러시아 영토를 누가 지키고 어떻게 채울지 엉뚱한 걱정마저 들었습니다. 러시아는 석유를 비롯한 지하자원과 에너지가 풍부하고 기초과학이 발달된 나라이니 곧 발전할 것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나는 러시아의 진정한 미래를 거기서보다는 오히려 러시아 정교회의 진정한 부활에서 찾고자 합니다. 정교회가 이제 권력과 야합했던 과거의 잘못을 철저히 뉘우치고 교훈 삼아 러시아 민중들의 영혼을 다시 사로잡을 수 있다면, 러시아의 혼은 거기서 되살아 날 것이며 러시아인들의 삶은 다시 생명력으로 넘칠 것입니다.
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자본주의 앞에 무릎 꿇은 러시아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역설적이게도 '사람은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화두처럼 자꾸 생각났습니다. 러시아 사회에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들리기 전에는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결코 러시아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과연 오늘날 러시아인들만을 위한 것일까요? 지금 우리 한국인들의 영혼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우리 기독교인들, 그리고 우리의 청소년과 기성 세대가 과연 사람은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는 말을 얼마나 진정 믿고 사는 것일까요? 그리고 러시아 정교회의 과거 역사를 비판하기에 앞서 정작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한국 교회는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얼마나 믿고 따르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교, 불교, 그리스도교가 이 땅에서 번창하고 있지만, 우리 한국인들의 혼 역시 조잡한 물신숭배와 향락주의에 포로가 된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종교는 유례 없이 번창하고 있는데 사회는 유례 없이 도덕적으로 타락해가고 있습니다. 혼을 팔고 혼을 잊고 정신 없이 사는 것은 러시아인들이나 우리 한국인들이나 매한가지입니다. 아니, 러시아는 70여 년 간 혼을 잊고 혼을 팔았는지는 몰라도 사회주의 체제를 통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인종차별이나 남녀차별이 없는 사회가 되었고, 나름대로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노력했던 것만은 사실이며 아직도 그 유산이 조금은 남아 있습니다. 러시아인 특유의 인내심과 줄서기도 여전합니다. 그리고 대국의 국민들답게 경제적 어려움 가운데서도 여유 있는 생활태도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아글타글하게 살거나 각박한 삶을 살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바라기는 러시아가 사회주의 70년의 실험을 실패했다고 헌 신짝처럼 내팽개치기보다는 그 잘잘못을 엄격히 평가하여 서구 자본주의 사회보다도 더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사회로 변모했으면 합니다. 러시아 정교회도 그들의 뼈아픈 수모로부터 참다운 교훈을 얻어 러시아인들의 새로운 영적 각성을 주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요즈음 러시아 여성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와 있고 그 중에는 몸을 파는 여자도 많다고 합니다. 실제로 러시아 호텔들에서는 여자들이 공공연히 매춘 행위를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손가락질 할 자격이 과연 우리에게 있습니까?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매춘 여성의 수가 적어도 100에서 200만에 이른다고 하며, 거기에 관계된 남성들까지 하면 엄청난 수의 인구가 매춘과 관계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먹고살기가 어려워 여성들이 매춘을 했지만, 요즈음은 학생, 주부 가릴 것 없이 쉽게 돈벌고 즐기기 위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행해지고 있다고 한합니. 이런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가 감히 누구를 손가락질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적어도 도덕적 수준에서 러시아가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보다 현저히 낮다고 단정할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한없이 소유와 탐욕과 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격류 속에서도 러시아가 정교회든 사회주의든 자신의 과거를 너무 쉽게 내동댕이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러시아, 한국, 서구 국가들 가릴 것 없이 세계 어디를 가나 이제 현대인들은 한결 같이 물질에 대한 한없는 욕구를 자극하며 소비와 향락을 미덕으로 부추기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멈출 줄 모르고 굴러가는 욕망의 수레에 타고 앉아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과 맘몬, 하나님의 말씀과 빵 가운데 끊임없이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무한경쟁 속에서 일등만이 살아남고 이등도 삼등도 필요 없는 승자 독식의 세계가 과연 인간이 살만한 세계입니까? 이러한 세계 속에서 아직도 예수의 메시지와 삶에 미련을 끊지 못하고 연연해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예수의 말씀이 설 곳이 과연 있는지 우리는 자꾸만 묻게 됩니다. 이제 빵과 맘몬의 힘이 국가나 문화의 장벽을 넘어 거침없이 마수를 뻗치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과연 얼마나 인간의 영혼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자꾸만 의심이 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빵이 지배하는 질서에 도전하며 산다는 것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것보다도 승산 없는 게임처럼 보이며, 우리는 그래서 무력감에 절망하고 주저앉습니다.
냉전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세계는 이제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일국 체제가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이 초강대국을 텍사스의 한 카우보이가 좌지우지하면서 지극히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습니다. 일찍이 후쿠야마가 지적한 대로, 이제 우리는 체제 경쟁이 종말을 고하고 역사가 정지되는 종말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나라의 선포와 더불어 2000년 전 갈릴리 예수에 의해 시작되었던 종말 운동이 어처구니없게도 기독교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의해 성취된 셈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니며 팍스 아메리카나는 하나님의 나라는커녕 약자들에게는 지옥의 서막일지도 모릅니다. 역사는 종말은커녕 이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릅니다. 하나님과 맘몬의 투쟁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가 어쩔 수 없는 현대세계의 운명이라 해도, 기독교인들은 거기에 자기의 혼을 팔아서는 안되고, 적어도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만이라도 만들려고 부단히 투쟁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 투쟁을 위해서는 서방교회, 동방정교회, 한극 기독교 할 것 없이 현대 그리스도교는 전체적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합니다. 현대인들은 종교적으로는 더 이상 힘과 자본의 논리에 감복하지 않습니다. 힘과 맘몸을 부러워할지는 몰라도 감복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어쩔 수 없이 권력과 맘몬을 추구하며 살지만, 그래도 우리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감동시키는 것은 힘과 맘몬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자기를 버리고 무지랭이 민중과 함께 살다간 갈릴리 예수이며, 오늘도 그 길을 실천하고 있는 이름 없는 작은 예수들의 삶입니다. 중세의 유물인 화려한 성당은 관광의 대상은 될지언정 그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지는 못합니다. 웅장한 교회당이나 거창한 조직을 가지고 마치 대기업처럼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대형교회나 대기업 총수처럼 군림하는 성직자에게도 현대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유치하게 그런 것에 압도당하고 홀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런 것은 이미 불란서 혁명과 러시아 혁명으로 청산된 지 오래된 역사의 유물이며, 머지 않아 사라져 버릴 기독교의 모습입니다.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고 희망을 주는 것은 기도와 묵상 가운데서 일생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일에 자신을 바친 마더 테레사 같은 수녀이지 대형교회의 목사나 신부가 아닙니다. 우리들의 눈물을 자아내는 것은 세속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잘난 사람, 성공한 사람들이 아니라 말없이 후진 곳에서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 손이 모르도록 불우한 이웃과 사랑의 공동체를 가꾸며 사는 〈칭찬합시다〉의 주인공들이 아닙니까?
인간의 구원은 과연 어디서 옵니까? 권력도 맘몬도 인간을 구원할 수 없고,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종교도 교회도 인간의 구원은 못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인 예수께서 전한 천국의 메시지와 그 비밀을 알고 묵묵히 실천하는 낮고 낮은 사람들에게서만 우리는 인간의 희망과 구원을 봅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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