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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1:18-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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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준우 목사 |
참고 : | 새길교회 2001.12.23 주일설교 |
우리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생명력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성탄절 칸타타를 준비하셨다고 하니, 성가대의 칸타타를 통해 우리 모두의 영혼이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배에서는 전통적으로 노래가 매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노래를 통해 우리의 영혼이 맑아지고, 정신을 집중할 뿐 아니라, 일상생활의 두꺼운 껍질을 깨뜨리는 역할을 합니다. 성당 다니시는 분들은 "아베 마리아"를 즐겨 부르고, 동양종교에서는 "아-우-음-"을 부르며, 개신교에서는 "할렐루야"를 부릅니다. 다 함께 "할렐루야"를 부릅시다.
"할" - 우리의 잠든 영혼이 깨어나게 하소서.
"렐" - 우리의 상처받은 영혼이 위로받게 하소서.
"루" - 우리의 영혼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 하옵소서.
"야" - 우리의 영혼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혼과 하나되게 하소서.
"할-렐-루-야-"
오늘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임마누엘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임마누엘이란 23절에 나와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지요. 성탄절이 기쁜 날인 이유는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임마누엘의 의미를 두 가지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살다가 보면 참으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일을 겪게되는 수가 있지요. 뜻밖에도 사고가 생기기도 하고, 불치병에 걸리기도 하고, 회사가 도산하거나 구조조정으로 직장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합니다. 온갖 정성 다 들여 키운 자녀들이 가출하여 부모의 속을 태우기도 합니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직장을 얻지 못해 방황하기도 합니다. 그처럼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을 겪으면, 나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하는지, 하늘에 대고 원망도 하게 됩니다. 운명의 장난이라면 모를까, 도대체 하나님이 시퍼렇게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마리아가 그랬을 것입니다. 건강하고 마음씨 좋은 남편감을 만나 약혼까지 다 해놓고 이제 새살림을 차린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며 꿈에 부풀어 있던 마리아에게 느닷없이 임신했다는 소식은 기필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아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을 것입니다.
성탄절 이야기가 크리스마스 카드 속에 흔히 별빛이 반짝이고 동방박사들이 예물을 드리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서 예수 탄생이 아름다운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기가 막히는 일이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50여 년이 지난 다음에 기록된 마태복음 1장에는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여인들이 모두 네 사람 뿐인데, 다말, 라합, 룻, 밧세바 등 모두가 한결같이 기구한 운명의 여인들, 소위 말해서 "팔자가 센" 여인들이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당시 마리아의 운명이 어떤 선상에 있는 것인지, 그 처지가 얼마나 기막히는 처지였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다말의 경우만 본다 하더라도, 첫 남편이 죽어, 또다시 둘째 남편도 죽어, 셋째 남편을 주지 않자 창녀로 변장하여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어 아이를 낳은 기구한 운명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사건들을 연달아 겪어야만 했던 여인이었습니다.
요셉 역시 그 마음의 고통이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동네에서 누구나 알아주던 참한 색시감을 얻게 되어, "아 며칠만 지나면 가정을 이루게되는구나! 어서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 돈은 없더라도 즐거운 혼인잔치를 하고 행복하게 살리라!"고 이 궁리 저 궁리하던 요셉에게 난데없이 자신의 약혼녀 마리아가 누군가의 아기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니 정말로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올 정도였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당시 나사렛의 인구가 300명 정도였다면,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까지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처지에, 혼전임신이라니 도저히 창피스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요즘 세상에도 혼전임신은 동네에서 쉬쉬하는데 2천 년에는 그것이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이었겠습니까?
아!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칠 수가 있단 말인가? 마리아도 요셉도 아무리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원망해도 달리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고작해야 서로간에 더 큰 창피 당하지 않도록 조용히 파혼하는 방법 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살아계시다면, 절대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수는 없을 것이라고 아무리 되뇌어도, 달리 어떻게 움치고 뛸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 수단 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판단했을 바로 그 순간에 요셉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일어나라"고. "피하려 들지 말고 정면돌파하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말입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절망에 사로잡힐 때, 모든 길이 가로막히고, 더 이상 일어설 기력도 없을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어둠의 터널이 언제 끝날 것인지 알 수 없을 때, 세상이 온통 우리를 낙심케 만들 때,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고 하늘을 향해 종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은 심정일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속삭이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나는 너와 함께 있다"고 말입니다. 임마누엘이란 바로 이런 속삭임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여인들, 즉 다말, 라합, 룻, 밧세바 등의 기구한 운명의 여인들은 그 절망 한복판에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내가 너와 함께 있다"고 말씀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힘을 얻어 일어나서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함으로써, 참으로 기구한 팔자를 아름다운 인생으로 바꾼 사람들이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은 예수라는 인간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을 임마누엘 사건으로 고백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전에는 하늘 위에 계시거나 시내산이나, 예루살렘 성전에 계신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예수님 속에, 우리와 같은 인간 속에 계신다는 고백이 바로 임마누엘 사건입니다. 임마누엘의 두 번째 의미는 하나님이 우리들 인간들 속에 계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로잡고 있었던 영이 바로 "하나님의 영"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예수님이 하신 일은 온통 사람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주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병자들을 고치고, 매인 자들을 풀어주고, 앞 못보는 사람들을 보게 하고, 그래서 모두가 생명력이 넘치도록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우리의 생기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신바람 나게 살도록 하셨지요. 아이들이 자지러지게 웃는 것처럼, 우리도 생기발랄하게 살도록 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들 속에 하나님의 영이 살아계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생명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서로의 생명을 북돋우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룩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이 거룩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살기를 원하신다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서로 용서하면서 살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신다는 고백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새로운 날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신바람나게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아낌없이 사랑하면서 사는 사람은 임마누엘을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틀 전에 작고하신 송건호 선생님처럼 불의에 타협하지 않으면서 올곧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의 고통과 눈물에 대해 마음 아파하면서, 어떻게든 그 고통을 줄여나가고자 애쓰는 사람은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저와 여러분들 속에 하나님의 영이 새롭게 태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음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만 아니라, 우리들 속에 하나님의 영이 새로운 힘을 얻어 우리의 몸 가득히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기를 간구하면서, 우리들 속에 계신 하나님께 음식을 바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럼으로써 식사와 예배를 통일시키고, 식사를 통해 우리의 몸 가득히 하나님의 영이 더욱 활발하게 역사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임마누엘을 온몸으로 살아내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예배에서는 전통적으로 노래가 매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노래를 통해 우리의 영혼이 맑아지고, 정신을 집중할 뿐 아니라, 일상생활의 두꺼운 껍질을 깨뜨리는 역할을 합니다. 성당 다니시는 분들은 "아베 마리아"를 즐겨 부르고, 동양종교에서는 "아-우-음-"을 부르며, 개신교에서는 "할렐루야"를 부릅니다. 다 함께 "할렐루야"를 부릅시다.
"할" - 우리의 잠든 영혼이 깨어나게 하소서.
"렐" - 우리의 상처받은 영혼이 위로받게 하소서.
"루" - 우리의 영혼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 하옵소서.
"야" - 우리의 영혼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혼과 하나되게 하소서.
"할-렐-루-야-"
오늘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임마누엘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임마누엘이란 23절에 나와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지요. 성탄절이 기쁜 날인 이유는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임마누엘의 의미를 두 가지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살다가 보면 참으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일을 겪게되는 수가 있지요. 뜻밖에도 사고가 생기기도 하고, 불치병에 걸리기도 하고, 회사가 도산하거나 구조조정으로 직장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합니다. 온갖 정성 다 들여 키운 자녀들이 가출하여 부모의 속을 태우기도 합니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직장을 얻지 못해 방황하기도 합니다. 그처럼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을 겪으면, 나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하는지, 하늘에 대고 원망도 하게 됩니다. 운명의 장난이라면 모를까, 도대체 하나님이 시퍼렇게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마리아가 그랬을 것입니다. 건강하고 마음씨 좋은 남편감을 만나 약혼까지 다 해놓고 이제 새살림을 차린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며 꿈에 부풀어 있던 마리아에게 느닷없이 임신했다는 소식은 기필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아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을 것입니다.
성탄절 이야기가 크리스마스 카드 속에 흔히 별빛이 반짝이고 동방박사들이 예물을 드리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서 예수 탄생이 아름다운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기가 막히는 일이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50여 년이 지난 다음에 기록된 마태복음 1장에는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여인들이 모두 네 사람 뿐인데, 다말, 라합, 룻, 밧세바 등 모두가 한결같이 기구한 운명의 여인들, 소위 말해서 "팔자가 센" 여인들이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당시 마리아의 운명이 어떤 선상에 있는 것인지, 그 처지가 얼마나 기막히는 처지였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다말의 경우만 본다 하더라도, 첫 남편이 죽어, 또다시 둘째 남편도 죽어, 셋째 남편을 주지 않자 창녀로 변장하여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어 아이를 낳은 기구한 운명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사건들을 연달아 겪어야만 했던 여인이었습니다.
요셉 역시 그 마음의 고통이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동네에서 누구나 알아주던 참한 색시감을 얻게 되어, "아 며칠만 지나면 가정을 이루게되는구나! 어서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 돈은 없더라도 즐거운 혼인잔치를 하고 행복하게 살리라!"고 이 궁리 저 궁리하던 요셉에게 난데없이 자신의 약혼녀 마리아가 누군가의 아기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니 정말로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올 정도였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당시 나사렛의 인구가 300명 정도였다면,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까지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처지에, 혼전임신이라니 도저히 창피스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요즘 세상에도 혼전임신은 동네에서 쉬쉬하는데 2천 년에는 그것이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이었겠습니까?
아!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칠 수가 있단 말인가? 마리아도 요셉도 아무리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원망해도 달리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고작해야 서로간에 더 큰 창피 당하지 않도록 조용히 파혼하는 방법 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살아계시다면, 절대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수는 없을 것이라고 아무리 되뇌어도, 달리 어떻게 움치고 뛸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 수단 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판단했을 바로 그 순간에 요셉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일어나라"고. "피하려 들지 말고 정면돌파하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말입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절망에 사로잡힐 때, 모든 길이 가로막히고, 더 이상 일어설 기력도 없을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어둠의 터널이 언제 끝날 것인지 알 수 없을 때, 세상이 온통 우리를 낙심케 만들 때,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고 하늘을 향해 종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은 심정일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속삭이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나는 너와 함께 있다"고 말입니다. 임마누엘이란 바로 이런 속삭임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여인들, 즉 다말, 라합, 룻, 밧세바 등의 기구한 운명의 여인들은 그 절망 한복판에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내가 너와 함께 있다"고 말씀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힘을 얻어 일어나서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함으로써, 참으로 기구한 팔자를 아름다운 인생으로 바꾼 사람들이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은 예수라는 인간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을 임마누엘 사건으로 고백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전에는 하늘 위에 계시거나 시내산이나, 예루살렘 성전에 계신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예수님 속에, 우리와 같은 인간 속에 계신다는 고백이 바로 임마누엘 사건입니다. 임마누엘의 두 번째 의미는 하나님이 우리들 인간들 속에 계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로잡고 있었던 영이 바로 "하나님의 영"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예수님이 하신 일은 온통 사람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주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병자들을 고치고, 매인 자들을 풀어주고, 앞 못보는 사람들을 보게 하고, 그래서 모두가 생명력이 넘치도록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우리의 생기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신바람 나게 살도록 하셨지요. 아이들이 자지러지게 웃는 것처럼, 우리도 생기발랄하게 살도록 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들 속에 하나님의 영이 살아계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생명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서로의 생명을 북돋우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룩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이 거룩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살기를 원하신다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서로 용서하면서 살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신다는 고백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새로운 날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신바람나게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아낌없이 사랑하면서 사는 사람은 임마누엘을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틀 전에 작고하신 송건호 선생님처럼 불의에 타협하지 않으면서 올곧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의 고통과 눈물에 대해 마음 아파하면서, 어떻게든 그 고통을 줄여나가고자 애쓰는 사람은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저와 여러분들 속에 하나님의 영이 새롭게 태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음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만 아니라, 우리들 속에 하나님의 영이 새로운 힘을 얻어 우리의 몸 가득히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기를 간구하면서, 우리들 속에 계신 하나님께 음식을 바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럼으로써 식사와 예배를 통일시키고, 식사를 통해 우리의 몸 가득히 하나님의 영이 더욱 활발하게 역사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임마누엘을 온몸으로 살아내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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