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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마25:31-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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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윤공부 목사 |
참고 : | 새길교회2002. 2.17 주일설교 |
1) 봉사와 성육신
오늘 말씀드리려고 하는 '봉사'의 의미를,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으로 정의하겠습니다. 모든 봉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야, 그것이 참된 봉사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봉사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6-8을 저는 예수님의 초상화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그대로 봉사이셨습니다. 예수님 스스로도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섬김과 희생,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4-15). 그는 봉사의 본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봉사한다고 할 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거기에 내가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들어가면 그것은 이미 봉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바로 그것이 봉사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봉사할 때 그것은 곧 그리스도로 옷입은 것입니다.
2) 봉사와 자기 부인
그러므로 봉사한다는 것은 철저한 자기부인(自己否認)을 의미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나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봉사하는 사람이 자기부인이 안되면 '나'가 드러나게 됩니다. 내가 드러나면 그것은 봉사가 아닙니다.
일반 교회에서 많이 쓰는 말 중에 "은혜 받았습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감동을 받았다면, 보통 은혜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은혜란, 하나님과의 만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나라는 존재가 만난 대상에 붙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난 그분이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은 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킵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닙니다. '내가 아닌 나'를 보는 것입니다. '내가 아닌 나'는 과연 무엇입니까? 그것이 '은혜'입니다. 즉 자신을 그대로 은혜자체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졌기 때문에 은혜가 아닙니다. '나' 자체가 은혜입니다.
정호승 님의 '봄길'이라는 시를 소개할까 합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스스로 길이 되는 사람,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 스스로 사랑이 되는 사람이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체험하는 사람이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언제나 '새길'이며, 끝없는 '사랑'입니다. 그는 자신이 사랑이요, 은혜이기에, 사랑하는 일이 어렵지 않습니다. 봉사하는 일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는 내가 아닌 은혜와 진리 자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3) 봉사와 비전
오늘 본문에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된 자, 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가 나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즉 주리신 그리스도요, 목마르신 그리스도요, 나그네 된 그리스도요, 병드신 그리스도요, 옥에 갇히신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봉사의 비전이 있습니다. 우리의 비전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요, 기쁨이요, 우리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지극히 작은 자와 자신을 일치시키십니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그들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우리가 그들을 외면하면 그리스도를 외면하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로서는 늘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 한가지로 한 가족이 되어 살 수 있어야 믿음이라 할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시작하려는 마음으로 두 집사님에게 가서, 함께 살자고 하였더니, 싫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로 계속 기도하는 중에 소년원이나, 소년 교도소에서 나왔으나 갈 곳이 없는 청소년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마침 제가 섬기는 애린교회의 10주년이 되는 날 이여서, 교회 10주년 기념으로 저의 집에서 공동체를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이 10년 전, 92년 4월이었습니다. 그래서 5년 간을 서울 대치3동에서 우리 가족과 함께 공동체로 살았습니다. 물론 애린교회의 목회를 같이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72명의 청소년이 걸쳐갔습니다. 우리 집에 오는 청소년은 거의 고아이거나 결손가정입니다. 20세 전후인데 중학교 졸업한 청소년은 아주 드뭅니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이들을 신설동의 고려 학원에 보내서, 검정고시를 치르게 하여서 고검 7명, 대검 9명, 전문대 2명, 신학교 2명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서울에 살면서, 이들에게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일동으로 97년에 이사를 해서 다음 해인 98년 3월 5일에 5명의 학생으로 학교를 시작했습니다. 이름을 '참나무 청소년 배움터'라고 하였습니다. 학력, 나이 상관하지 않고 3년이면 졸업을 합니다. 그 어간에 검정고시를 준비시키고,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신앙교육과 아울러 전인교육을 시킵니다. 이들은 낮과 밤을 거꾸로 살고, 담배와 술에 찌들어 살고, 소년원, 교도소에 자주 드나드는 법무부 출신들이어서, 함께 살면서, 규칙생활을 한다는 것이 또 하나의 감옥입니다. 그러나 1년만 견디면 놀랍게 변합니다. 많은 경우 견디지 못하고 말도 없이 나가버립니다. 그러다가 다시 사고치고 구치소에 가고, 다시 들어오면 또 받아줍니다. 몇 달 전에 여학생 3명이 들어와서 명실공히 남녀공학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어려움도 많았지만 저희들은 항상 누가 들어오든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든 3년을 졸업하게 되면 우리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가족이 필요하고, 고향이 필요합니다. 지난 해 2월에 4명이 졸업을 하였습니다. 제2회 졸업식이 오는 2월 20일에 있습니다. 2명이 졸업을 합니다. 그간 들어온 청소년은 51명입니다. 그런데 4명 졸업하고, 현재 학생은 13명입니다. 그리고 두 가정과 청년들 해서 30여명이 살고 있습니다.
이 청소년들은 가정에서 버림받고, 사회에서 배척 당하고, 상처받고, 고통 당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들에게 비전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들이 지극히 작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사로잡히면 이 사회의 훌륭한 일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는 변화됩니다. 이것이 사회변화에 대한 저의 철학입니다. 봉사의 비전은 지극히 작은 자들입니다.
4) 봉사와 하나님 나라
봉사의 목적은 한 사람, 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랑의 자신감을 가지고 살게 하여,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5) 봉사에의 부름
우리 모두는 봉사에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리시고 "네 본토 고향 친척을 떠나라"고 하신 것은 봉사에의 부름입니다. 그럴 때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봉사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버리고 떠나는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매입니다.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에 붙들립니다. 버려야 합니다. 떠나야 합니다. 그래서 봉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가치는 우리가 소유한 것에 있지 않습니다. 봉사의 삶을 살았느냐? 에 달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봉사의 삶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모든 수도원에는 하나님 앞에서 3가지 서원을 합니다. 그것이 청빈, 순결, 순명입니다. 그런데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인도의 마더 데레사의 사랑 선교회는 제4의 서원을 반드시 해야합니다. 그것이 무상의 '봉사'입니다.
이 시대에 봉사 정신이 너무 사라졌습니다. 그 정신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일에 우리는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 스스로 "나를 따르라"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하셨습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오늘 말씀드리려고 하는 '봉사'의 의미를,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으로 정의하겠습니다. 모든 봉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야, 그것이 참된 봉사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봉사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6-8을 저는 예수님의 초상화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그대로 봉사이셨습니다. 예수님 스스로도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섬김과 희생,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4-15). 그는 봉사의 본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봉사한다고 할 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거기에 내가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들어가면 그것은 이미 봉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바로 그것이 봉사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봉사할 때 그것은 곧 그리스도로 옷입은 것입니다.
2) 봉사와 자기 부인
그러므로 봉사한다는 것은 철저한 자기부인(自己否認)을 의미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나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봉사하는 사람이 자기부인이 안되면 '나'가 드러나게 됩니다. 내가 드러나면 그것은 봉사가 아닙니다.
일반 교회에서 많이 쓰는 말 중에 "은혜 받았습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감동을 받았다면, 보통 은혜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은혜란, 하나님과의 만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나라는 존재가 만난 대상에 붙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난 그분이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은 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킵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닙니다. '내가 아닌 나'를 보는 것입니다. '내가 아닌 나'는 과연 무엇입니까? 그것이 '은혜'입니다. 즉 자신을 그대로 은혜자체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졌기 때문에 은혜가 아닙니다. '나' 자체가 은혜입니다.
정호승 님의 '봄길'이라는 시를 소개할까 합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스스로 길이 되는 사람,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 스스로 사랑이 되는 사람이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체험하는 사람이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언제나 '새길'이며, 끝없는 '사랑'입니다. 그는 자신이 사랑이요, 은혜이기에, 사랑하는 일이 어렵지 않습니다. 봉사하는 일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는 내가 아닌 은혜와 진리 자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3) 봉사와 비전
오늘 본문에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된 자, 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가 나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즉 주리신 그리스도요, 목마르신 그리스도요, 나그네 된 그리스도요, 병드신 그리스도요, 옥에 갇히신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봉사의 비전이 있습니다. 우리의 비전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요, 기쁨이요, 우리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지극히 작은 자와 자신을 일치시키십니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그들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우리가 그들을 외면하면 그리스도를 외면하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로서는 늘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 한가지로 한 가족이 되어 살 수 있어야 믿음이라 할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시작하려는 마음으로 두 집사님에게 가서, 함께 살자고 하였더니, 싫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로 계속 기도하는 중에 소년원이나, 소년 교도소에서 나왔으나 갈 곳이 없는 청소년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마침 제가 섬기는 애린교회의 10주년이 되는 날 이여서, 교회 10주년 기념으로 저의 집에서 공동체를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이 10년 전, 92년 4월이었습니다. 그래서 5년 간을 서울 대치3동에서 우리 가족과 함께 공동체로 살았습니다. 물론 애린교회의 목회를 같이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72명의 청소년이 걸쳐갔습니다. 우리 집에 오는 청소년은 거의 고아이거나 결손가정입니다. 20세 전후인데 중학교 졸업한 청소년은 아주 드뭅니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이들을 신설동의 고려 학원에 보내서, 검정고시를 치르게 하여서 고검 7명, 대검 9명, 전문대 2명, 신학교 2명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서울에 살면서, 이들에게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일동으로 97년에 이사를 해서 다음 해인 98년 3월 5일에 5명의 학생으로 학교를 시작했습니다. 이름을 '참나무 청소년 배움터'라고 하였습니다. 학력, 나이 상관하지 않고 3년이면 졸업을 합니다. 그 어간에 검정고시를 준비시키고,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신앙교육과 아울러 전인교육을 시킵니다. 이들은 낮과 밤을 거꾸로 살고, 담배와 술에 찌들어 살고, 소년원, 교도소에 자주 드나드는 법무부 출신들이어서, 함께 살면서, 규칙생활을 한다는 것이 또 하나의 감옥입니다. 그러나 1년만 견디면 놀랍게 변합니다. 많은 경우 견디지 못하고 말도 없이 나가버립니다. 그러다가 다시 사고치고 구치소에 가고, 다시 들어오면 또 받아줍니다. 몇 달 전에 여학생 3명이 들어와서 명실공히 남녀공학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어려움도 많았지만 저희들은 항상 누가 들어오든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든 3년을 졸업하게 되면 우리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가족이 필요하고, 고향이 필요합니다. 지난 해 2월에 4명이 졸업을 하였습니다. 제2회 졸업식이 오는 2월 20일에 있습니다. 2명이 졸업을 합니다. 그간 들어온 청소년은 51명입니다. 그런데 4명 졸업하고, 현재 학생은 13명입니다. 그리고 두 가정과 청년들 해서 30여명이 살고 있습니다.
이 청소년들은 가정에서 버림받고, 사회에서 배척 당하고, 상처받고, 고통 당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들에게 비전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들이 지극히 작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사로잡히면 이 사회의 훌륭한 일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는 변화됩니다. 이것이 사회변화에 대한 저의 철학입니다. 봉사의 비전은 지극히 작은 자들입니다.
4) 봉사와 하나님 나라
봉사의 목적은 한 사람, 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랑의 자신감을 가지고 살게 하여,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5) 봉사에의 부름
우리 모두는 봉사에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리시고 "네 본토 고향 친척을 떠나라"고 하신 것은 봉사에의 부름입니다. 그럴 때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봉사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버리고 떠나는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매입니다.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에 붙들립니다. 버려야 합니다. 떠나야 합니다. 그래서 봉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가치는 우리가 소유한 것에 있지 않습니다. 봉사의 삶을 살았느냐? 에 달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봉사의 삶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모든 수도원에는 하나님 앞에서 3가지 서원을 합니다. 그것이 청빈, 순결, 순명입니다. 그런데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인도의 마더 데레사의 사랑 선교회는 제4의 서원을 반드시 해야합니다. 그것이 무상의 '봉사'입니다.
이 시대에 봉사 정신이 너무 사라졌습니다. 그 정신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일에 우리는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 스스로 "나를 따르라"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하셨습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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