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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듯이 죽기(In Death as in Life)

민수기 최창모............... 조회 수 2658 추천 수 0 2008.08.08 17: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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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민20:1 
설교자 : 최창모 교수 
참고 : 건국대 히브리학과 / 새길교회 2002. 5.19 주일설교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까지 제게는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단 한 번, 군대 복무시절 제가 모시던 사단장님께서 위암으로 돌아가실 때, 임종을 지켰던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안수 집사이기도 하셨던 그 분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서 장교와 사병 모두로부터 존경을 받으시는 용장(勇將)이셨습니다. 항암 치료를 받으며 탈모(脫毛)를 경험하면서도 늘 주변에 웃음을 주시려고 농담을 잘 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병이었던 제게는 출근하시면 늘 손을 잡고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시곤 하였습니다.

임종(臨終)이 가까워 오자, 수도 육군 통합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고, 더 이상 진통제가 효과를 낼 수 없자, 고통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는 것으로 대신하곤 했습니다. 마지막 순간 그 분은 침상에서 내려와 머리를 병실 벽면에 쿵쿵 찧으면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마지막 그 분이 남기신 말씀은 이러했습니다. "내가 별 두 개인데, 왜 죽어? 왜 죽어야 하는 거야?"

저는 아주 어려서 시골에서 자랄 때, 매우 아름다운 꽃상여를 타고 가는 한 교인의 장례식을 구경한 이후부터 장래 희망은 "꽃상여 타기"였던 저로서는, 청년기에 한 장군의 임종 앞에서 커다란 혼란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름도 없이 살다간 한 시골 사람의 아름다운 죽음의 기억과 영웅처럼 살다가 비참하게 죽는 한 장군의 죽음은 왜, 어떻게 다른 것일까? 한 개인의 삶과 죽음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따로 따로인가? 아니면 하나인가?

저는 히브리 성경에 등장하는 세 사람의 삶과 죽음을 각각 소개하면서 이 질문에 답하려고 합니다. 모세와 아론, 그리고 미리암이 주인공입니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한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세 사람은 이집트시절 노예의 자식으로 함께 태어난 형제 자매입니다만, 이들의 삶과 죽음은 각기 독자적인 것이었습니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전에 모두 광야에서 죽었다는 점입니다. 오늘은 첫 번째로 미리암의 삶과 죽음을 주제로 삼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미리암 - 한 익명의 여성에서

1.

먼저, 익명으로 태어나 조용히 죽은 미리암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민수기 20장 1절에 따르면,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 장사하니라"는 단 한 줄의 보도가 한 여성의 삶을 짐작케 해 줍니다. 공식적으로는 아무도 애도를 보내지 않았으며, 사전에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예고도 없이 고독하고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보입니다. 더구나 그녀의 상실에 대한 공동체의 논평comment조차 단 한 줄도 없습니다. 왜 미리암은 결코 명예롭지 못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일까요? 그녀의 생을 돌이켜 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그녀를 만날 수 있는 곳은 나일강 가일 것입니다. 노예의 시대에 아들을 낳은 한 여성이 석 달을 숨겨 기르다가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사내아이를 갈대상자에 담아 나일강 가 갈대 사이에 두었을 때, "그 누이가 어떻게 되는 것을 알려고 멀리 서 있었던"(출2:4) 바로 그 익명의 주인공이 미리암이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파라오의 공주가 목욕하러 나일강에 왔다가 갈대 상자에 담긴 아이를 발견했을 때, 바로 그 때 쫓아가 "유모(乳母)를 불러다가 이 아이를 젖 먹이게 할까요?"라며 재치 있게 그 아이의 엄마, 즉 자신의 엄마를 소개시켜 주었던 당당하고도 지혜로운 어린 소녀였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익명의 어린 소녀였습니다.

2.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최소한 80년의 세월이 지난 후, 그녀의 지도력leadership이 절정에 이르는 장면이 나오는 데, 바로 홍해를 육지처럼 건널 때 이집트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빠지던 날,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자, 모든 여인들이 그를 따라 춤추며 노래를 불렀습니다(출15:19-21).: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엑스타시의 여 선지자 미리암.

비록 미리암의 노래는 짧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사기를 높여 줄 큰 노래였습니다. 그녀의 노래는 두고두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불려 오늘에까지 남았습니다. 그러나 노래 바로 뒤에는 마라의 쓴 물로 인한 백성들의 원망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 미리암 과 쓴 우물 마라 는 히브리어로 같은 어원을 가집니다. "쓰다 "는 말입니다. 미리암의 생은 종려나무 그늘 아래 쉬면서 그렇게 노래만 부르도록 허락된 달콤한 생애는 아니었습니다.

3.

바다의 노래 이후 미리암은 민수기 12장 이전까지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미리암이 주도적으로 개입한 민수기 12장의 이야기는 대략 이런 것입니다.: 출애굽 이후 광야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가던 어느 날, 민족의 지도자 모세가 아프리카 출신의 구스 - 아마도 지금의 이디오피아 또는 단순히 '아리따운' - 여자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물론 모세는 광야 도피 시절 미디안의 제사장의 딸과 결혼하여 자녀까지 두고 있었습니다. 모세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자세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출애굽 이후 모세가 시내광야에서 장인 이드로와 모세의 아들들과 그의 아내 십보라를 만나는 기록(출18:5-6) 외에는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장인 호밥이 광야 길 안내자로 초대된 것(민10:29-32; cf. 삿 1:16; 4:11) 외에는 최소한 그의 부인을 동반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가족을 돌보지 못한 모세를 비난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사람 모세도 외로웠을까요?

미리암과 아론은 즉각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하여 결혼한 사실을 따져 물었습니다. 그들은 "구스 여자를 취하다니!" 라며 모세를 비방했습니다. '비방했다 '는 말은 '떠들고 다녔다, 나발을 불고 다녔다'는 말입니다. 미리암의 이름이 아론의 이름보다 앞서 나오는 것으로 보아 보다 강력한 주동자instigator는 미리암이었습니다. 미리암은 단순히 수다쟁이였을까요? 아니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용감한 여성이었을까요?

미리암의 비방의 근거는 분명 모세법에 금지된 이방 여인을 모세 자신이 취한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법을 만든 사람이 법을 어기다니! 이건 말도 안 돼!" 뭐,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사실을 전혀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미리암이 떠들고 다닌 것은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구태여 따져 묻는다면, 미리암의 잘못은 모세의 실정법 위반 사실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모세의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구별하지 못한 것이랄까요?

하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 세 사람을 모두 회막 문 앞으로 불러 세우시고, 아론과 미리암에게 심하게 꾸중하셨습니다. "너희는 내 말을 들어라. 너희 중에 예언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In a Vision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In a Dream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는 다르니, 그는 나의 온 집을 충성스럽게trusted 맡고 있느니라. 그와는 내가 대면Mouth to Mouth 하여 명백히 말하고, [수수께끼 같이] 모호한 말not in Riddles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 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하나님은 모세의 편이었습니다. 모세에게만 인정한 유일성이 침해받는 것은 곧 자신에 대한 반역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시고 떠나시자, 미리암에게는 문둥병이 걸려 눈처럼 피부가 하얗게 변해 버렸습니다. 무엇이 미리암의 잘못이었는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는 독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리암은 히브리 성경이 가장 경원시하는 문둥병의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아론이 용서를 구하고, 모세가 하나님께 치료를 기도했지만, 결국 미리암을 7일 동안 진영 밖으로 쫓아내는 징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미리암의 이름은 민수기 20장에서 그가 죽어 장례 치러질 때까지 세월에 묻혀 잊혀져 버렸습니다. 소위 문둥병 사건 이후 미리암은 다시 익명의 여성으로 40년 가까운 광야 생활을 외롭게 보낸 것으로 여겨집니다. 본문 1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정월에"라는 시간은 출애굽 한지 40년째 되는 해 정월로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미리암이 죽고 그의 오빠 아론이 죽은 때가 "출애굽한지 40년 되던 해 제5월 초하루"(민33:38)였기 때문입니다.

4.

마지막 미리암에 대한 보도는 오늘 읽은 본문에 나옵니다.: "미리암이 거기서 죽어 그 곳에 묻혔다." 미리암의 죽음을 둘러싼 이 짧은 보도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익명 소녀였던 미리암은 히브리 민족을 구원하게 될 모세를 살려 낸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홍해를 육지처럼 건넌 후 이 사건을 민족의 기억 속에 노래로 담아 부른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차례의 용기 있는 그러나 다소 도가 지나친 주장으로 말미암아 공동체로부터 격리되어야만 했던 아픔을 지닌 미리암의 존재는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던 것입니다. 히브리 성경은 더 이상 미리암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있습니다.

미리암 - 전환기마다 서 있는 한 여성으로

그러나 주의 깊게 그녀의 삶과 죽음을 비교해 보면, 지금까지 살펴 본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빠르게 달리는 기차의 창문 넘어 힐끗힐끗 어렴풋이 보이는 풍경처럼, 상세히 들여다 볼 틈이 없이 성경을 읽고 지나가면 발견할 수 없는 텍스트에 감추어져 있는 몇 가지 통찰력을 멈춰 서서 천천히 들여다보면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미리암의 죽음과 생애 사이에 등장하는 몇 개의 이야기들 속에는 매우 간결하면서도 반복적인 수평적 인과관계가 존재합니다.

1.

우선, 미리암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에 이를 때마다 등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익명의 어린 소녀였던 미리암은 영영 떠내려갈 뻔한 히브리 노예들을 구원하게 될 모세를 구원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출2장).; 나아가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의 능력을 짧은 노래로 표현함으로써 이 사건을 집단의 기억으로 각인 시켰습니다(출15장). 집단적 체험과 집단적 기억은, 햇볕에 바래서 역사가 되기도 하고 달빛에 물들어 신화가 되기도 하여, 집단의 동일성Identity을 유지시켜 주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마련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무도 따져 묻지 않으려는 '물음'을 모세에게 던짐으로써(민12장) 백성을 대변하는 미리암의 용기는, 비록 그것이 개인의 비극으로 끝나게 되었다 하더라도, 가나안 정탐사건(민13장), 백성들의 반역(민14장), 고라의 반역(민16장)으로 이어지면서 모세의 권위는 심각하게 위협받게 되는데, 급기야 므리바에서의 모세 자신의 반역(민20장)에 이르러는 스스로 해방의 주역으로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통보를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된다.; 최종적인 모세의 권위에 대한 실종에 앞서 매우 짧게 본문(민20:1-2)은 미리암의 죽음을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역시 한 여성으로서의 미리암은 역사의 큰 흐름과 전환기에서 꼭 등장해야만 하는 의미 있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히브리 성경은 미리암이, 마치 우리의 어머니들처럼, 익명의 여성이었지만, 역사에서는 반드시 필요했던 가장 중요한 존재였는지도 모릅니다.

2.

추가적으로 미리암에 관한 모든 언급은 물과 관련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일강 가 갈대 숲에 서 있던 미리암과 미리암의 노래에 이어 등장하는 마라의 쓴 물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은 미리암이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문자적인 의미 때문입니다. 미리암 , 이는 직역하면 "쓴 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본문에 나오는 미리암의 사망 소식에 대한 짧은 보도는 독자들로 하여금 그 동안 잊혀져 있던 미리암에 대한 궁금증으로 갈증을 느끼게 하는데, 미리암이 장사된 직후 이스라엘 백성은 물 부족으로 말미암아 심각한 갈증으로 고통에 빠지고야 맙니다. 민수기 20장 2절에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다투"게 되었는데, 급기야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회중 앞에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모세 자신이 "회중을 반석 앞에 모으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쳐서" 물을 냄으로써 하나님의 존엄성을 해침으로써 자신마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맙니다.

미리암은 언제나 메마른 광야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백성들에게, 흘러 넘치는 풍부한 물처럼, 우는 아이에게 넉넉한 젖을 먹이는 어머니처럼, 대지를 적시는 아침 이슬처럼, 넉넉하고 촉촉한 습기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녀가 죽자 그 모든 것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미리암을 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갈증은 더욱 심해져 갔습니다.

역사의 무대에 익명으로 등장하기 시작해서, 역사의 굽이굽이 마다 등장하지만 여전히 보잘것없이 작기만 한 가냘픈 한 여성 미리암은 광야 같은 인생 길에서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갈증으로 목말라하던 백성들에게 대지의 여신처럼 풍부하게 젖을 먹여 주고는 이내 황급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산 것처럼 그렇게 그녀는 그들의 곁을 조용히 떠났던 것입니다. 백성들의 애정 어린 애도나, 영웅이 죽게 되면 공식적으로 취해지는 7일 혹은 40일 혹은 70일씩의 애도기간도 없이, 제가 그렇게 타보고 싶던 꽃상여도 못 탄 채, 그렇게 쓸쓸히 그 땅을 떠나고 만 것입니다.

아름다운 죽음은 그가 살아 온 모든 생애를 명예롭게 만드는가 봅니다. 아름답게 살다가 아름답게 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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