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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에 붉은 장미꽃 피고

요한일서 권순구 목사............... 조회 수 2426 추천 수 0 2008.08.08 17: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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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일3:14-15 
설교자 : 권순구 목사 
참고 : 새길교회 2002. 7. 7 주일설교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음을 안다고 했습니다. 형제사랑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가는 데 결정적 요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주 예수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혹은 우리는 죄 사함을 받음으로 그 삯인 사망을 넘어 생명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말 대신에 '형제사랑'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도대체 형제사랑이 무엇이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형제사랑은 우리 삶의 근본이 됩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한다고 말 할 수 있느냐고 합니다. 예수님의 두 가지 최고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이웃을 사랑하는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이웃을 정의하기를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의 형제사랑은 이웃사랑과 동의어입니다.

사랑의 위대한 위상은 다음 성경 말씀으로 대변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God is love)." 하나님이 사랑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일은 하나님이 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표현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사랑하기는 '하나님하기'입니다. 하나님이 하는 일이 사랑하는 일입니다. 다른 말로는 우리가 사랑한다 혹은 사랑을 갖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갖고 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가 사랑하지 않거나 사랑을 갖고 있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갖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또 성경에 형제를 미워하면 혹은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살인자요 살인자는 영생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제 분명해 진 것은 사랑과 영생이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는 영생을 가진 자요 사랑하지 않는 자는 영생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낳았다고(born of God) 혹은 하나님으로부터(from God) 왔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본다고 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사랑하기는 '하나님 알기'요 '하나님 보기'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과 하나님을 보는 일은 실로 위대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봄으로써 우리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웃시야왕이 죽은 후 낙담 중에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거룩함 앞에서 자신의 죄스런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는 자신이 더러운 입술을 가졌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인침을 받고 진정한 선지자가 됩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중에 예수님을 만나 인생의 커다란 변화를 받습니다. 모세는 불타는 가시나무 떨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을 본 후로, 하나님을 만난 후로, 하나님을 안 후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사랑하기는 하나님 알기요, 하나님 만나기라 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알기는 사랑하기요, 하나님 만나기도 사랑하기라고. 왜냐하면 하나님을 만난 후, 하나님을 본 후, 하나님을 알고 난 후 그들은 사랑의 사도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부끄러운 삶을 살던, 자신을 위한 삶을 살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랑의 사도로 바뀌어 집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사랑을 정의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삶을 바친 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요일 3:16). 요일 4:10은 다음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의 속죄 제물로서 그 외아들을 우리에게 보낸 것입니다. 한편에서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요이 6). 요삼 11에서 사랑하기는 '선을 행하기'로 이해됩니다. 성경은 사랑의 책입니다. 하나님의 창조행위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창세기로부터 계시록의 심판까지 하나님의 사랑하기는 계속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대한 뛰어난 정의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전서 13장에서 내리고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고 교만하지도 않으며, 무례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쉽게 성내지도 않고, 악한 것을 생각지 않으며(It keeps no record of wrongs),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결코 떨어지지 아니한다(Love never falls)고 성경은 말합니다. 반면에 예언, 방언 등은 폐지되고 침묵되어 집니다. 예언도 부분적이고 지식도 부분적이고 우리가 보고 아는 것도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부분적이고 불분명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사랑이 수수께끼와 같다던가 희미하다고 결코 말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분명한 것이고 완벽한 것입니다. 사랑은 거룩한 것이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어떤 구체적인 경우에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는 개념이 아닙니다.

사랑은 최고의 생활양식입니다.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무의미하고, 예언하고 비밀과 지식을 갖고 있으며 큰 믿음을 갖고 있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모든 재산을 다 털어서 구제하고 몸을 불사르는데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놀라운 일은 사랑 없이도 전 재산을 털어 구제할 수 있다는 것이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가진 자가 사랑이 없을 수 있으며 방언하고 예언하는 자도 얼마든지 사랑이 없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 기독교의 위기는 바로 이 사랑 없음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현대에는 방언 하는 자들도 많고 치유의 능력을 가진 자들도 많고 빼어난 지식의 소유자들도 많으며 구제하는 자들도 많고 열정적인 자들도, 큰 믿음의 소유자들도 많습니다.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라는 기독교인은 폭발적으로 늘어왔고, 목회자들도 지나칠 정도로 많아졌고, 신학 석박사들도 엄청 많아졌으며, 방언 하는 자들도 성령의 은사를 가진 자들도 현저히 많아졌는데, 그래서 현대 기독교는 과거 보다 훨씬 더 건전할 것 같고 이 사회의 개량이 놀랄만하게 이루어 졌으리라 기대되어지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가 위기에 처한 이유는 우리가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만나보지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기는 '하나님하기'라고 모두에 밝혔는데 그것은 또한 '하나님 닮기'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인간을 포함한 전 우주의 회복이고, 재창조입니다. 그토록 이나 아름답고 좋았던 하나님 창조의 회복, 인간에게 본디 주어졌던 하나님 형상의 회복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사랑으로 그 아들 예수를 보낸 것은 그의 재창조작업의 중심 된 일입니다. 우리는 축복을 얻는 일에 경도되어 있을 뿐, 하나님의 뜻(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거기에 참여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참여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참 세속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얻는 일에, 특히 경제적 번영과 세속적 성공, 그리고 명예를 추구하는 일에, 다른 말로는 '과자와 사탕'(cookies and candies)을 얻는데 으뜸입니다. 때로는 그것을 얻으려고 며칠 밤을 샙니다. 사랑하기 위해, 하나님을 닮기 위해, 예수님처럼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기 위해 밤을 새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현대 기독교의 위기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 없는 찬송, 사랑 없는 기도, 사랑 없는 예배, 사랑 없는 집회, 사랑 없는 구제, 사랑 없는 목회, 사랑 없는 학문, 사랑 없는 교육, 사랑 없는 정치, 사랑 없는 사회가 우리의 문제입니다. 회개합시다.

사도 바울은 단순히 분열된 고린도교회를 통합시키는 원리로 사랑을 제시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분열된 형제들을 통합시켜 주지만, 사랑이 단순한 통합원리로서, 상황적 도구로서의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진정한 기독교리로서의 사랑을 이곳에 표명한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이고 사랑은 예수님이고 사랑은 기독교입니다. 사랑은 완벽하며 거룩하고 분명한 것이고 만고 불변의 진리입니다. 사랑은 희미하지 않고 양보의 대상도 아니고 타협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언어유희의 대상도 아닙니다. 어떤 구체적인 경우에 임해서 이렇게 하면 사랑하는 것이고 저렇게 하면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한다고 말함으로 진정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아시고 우리 안의 성령이 그것을 증거합니다. 오늘 하나님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보다 근본적인 것이고 직접적인 것입니다. "당신은 사랑하는가?"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인가?" "당신은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는가?"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우리의 내적 증거가 부정적이면 이제부터 회개의 길로 접어들어야 하며 깨끗한 마음의 창조를 하나님께 간구해야 하고 하나님의 추구(pursuit of God), 사랑의 추구(pursuit of love)를 이제부터 시작해야합니다. 하나님 만나기를 간구하며, 하나님을 따르며(chase) 그를 붙들어야(catch) 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사랑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뀌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여전히 사망에 거하게 됩니다. 사랑하지 않고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외국인들은 우리의 형제자매들이고 우리 사랑의 대상입니다. 외국인 형제자매들을 사랑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할 수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가진 것을 그들에게 내어 주는 것으로 우리가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 할 수도 없습니다. 사랑 없이도 우리가 우리의 것을 얼마든지 내어 줄 수 있음을 위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랑한다는 것은 거룩한 일이고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만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그를 닮아 가면 우리는 자연스레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낳은 자가 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간" 자가 됩니다. 사랑 없이는 당신에게 생명이 없고, 사랑 없이는 당신의 삶은 무의미해 집니다. 사랑함으로 삶의 의미를 갖고 영생을 얻읍시다. 사랑은 가장 뛰어난 삶의 양식으로 믿음보다도, 소망보다도, 어떤 성령의 은사보다도 더 고상하고, 더 좋으며, 더 의미 깊고, 더 유용하며, 더 아름다운 것입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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