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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사로를 기억함

누가복음 권진관 목사............... 조회 수 1969 추천 수 0 2008.08.10 0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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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6:19-31 
설교자 : 권진관 목사 
참고 : 새길교회 2002. 9.22 주일설교 
오늘 저는 기억을 주제로 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어제와 오늘 우리는 추석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고향과 조상의 묘소를 다녀온 분들, 지금 돌아오고 있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추석은 조상들을 기억하는 명절입니다. 신명기 26장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햇곡식을 야훼께 바칠 때 선조들이 했던 일들을 기억하며 바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떡과 포도주를 나눌 때 "나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기억의 중요성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뒤에 있는 청담공원 안에는 오래된 묘 한 쌍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양반댁 부부의 묘인 것을 묘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묻혀있는 사람들은 이 묘비를 통해서 자신들을 기억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묘비를 통해 후손들의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세대를 넘기면서 지나온 사람들과 지나온 일들을 잊어버립니다. 한반도에는 수많은 조상들이 묻혀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름도 없이 땅에 묻혀 진토가 되었습니다. 묘는 사라지게 마련이고, 묘비는 더러 오래 남지만 그것도 몇 세대가 지나면 다른 돌과 마찬가지의 운명으로 돌아갑니다. 요즘은 납골당이라고 하는 작은 아파트와 같은 공간 속에 한 줌의 재가 되어 남습니다. 그곳에 누구인지 이름이 적혀있기는 하겠지만, 그것도 한 세대이상 남지는 못 할 것입니다. 추석은 이러한 잊혀진 조상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영원토록 기억되고자 하는 조상들과 그들을 기리는 우리들의 희망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진, 민족의 지혜가 담겨있는, 민족이 남아있는 한 영원히 지속될 명절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기를 원하는 것, 그것은 영생을 희망하는 것 못지 않은 우리 인간들의 갈망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자신의 저작을 남기는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저작이 불후의 것이 되어 오랜 동안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실, 기억이라는 것이 없다면 인생이 허무해질 것입니다. 가장 비참한 죽음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죽음, 잊혀진 사람으로 남는 것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과감하게도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말했지만, 그의 마음이 정말 그런 것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기억보다는 망각이 더 복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기억하신다면, 우리 중에는 잘못으로 벌받지 않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니 하나님은 기억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필요할 때는 잊어주시는 분이라고 말하는 데, 저는 그것도 진정 옳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기억하시는 분이지만, 그의 은혜에 의하여 우리의 잘못을 기억하시지 않는 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은 망각하시는 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억하지 않기를 결단하는 것은 망각하는 것과는 전연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용서입니다. 기억을 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므로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경험을 살펴볼 때, 적당한 망각은 축복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루에 있었던 일들이 모두 기억에 남는다면, 우리의 머리는 용량에 한계가 있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생긴 일 중에서 기분 나빴던 일들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면 우리의 정신과 영혼은 고갈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망각을 해야 새로운 것을 기억을 할 수 있습니다. 음과 양은 서로를 필요로 하듯이, 기억과 망각도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이 망각을 적용할 수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억을 하지 않으시겠다고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분일 뿐, 망각하시지는 않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저등한 동물일수록 망각을 빨리 한다고 합니다. 동물들은 자기의 부모를 쉽게 잊습니다. 영적인 동물일수록 기억합니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도 영적인 인간들만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동물인 인간들도 사실 하나님만큼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억은 항상 불분명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어두워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사실 이 설교문을 준비하기 전에는 제가 기억이란 것 때문에 괴로워 하던 어떤 때를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는 중에 그 때의 일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명절인데도 연구실에 나와서 설교 준비를 하는 저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올해 2002년 7월 10일경일 밤 10시경이었습니다. 저와 제 처, 그리고 딸 셋은 한 차를 타고 시카고, 오하이오를 지나서 펜실베니아의 피츠버그라고 하는 도시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피츠버그 턴파이크라고 하는 76번 고속도로를 우리는 달리고 있었습니다. 시속 70여 마일의 속도로 저는 칠흑같은 공간을 뚫고 달리고 있었습니다. 고속도로는 어두운 광야의 숲속을 뚫고 가고 있었는데, 그 때 저와 처는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는 사람과 같았습니다. 저의 마음속에는 약 20년전, 그러니까 1983년에서 85년까지의 2년 동안의 피츠버그에서의 생활과 그 때 제가 섬기던 이어리 교회, 그리고 피츠버그의 교회들, 그리고 피츠버그 신학교 교정, 그 때 가르쳤던 교수들, 친구들에 대한 기억 등등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데 그 하나하나가 아픈 마음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큰 애 아연이가 이곳에서 태어났었지, 그 병원이름은 Shadyside Hospital이었지, 이곳 피츠버그에 오게 된 것은 군사독재하에서 받던 수많은 고통을 당하다가 자유를 찾아 여기에 왔었지 . . . 이런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마음속을 지나가고 있는데, 저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기억이 너무 희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마음 속을 통과하고 있는 장면들을 하나하나 잡아서 거기에 세워보고 싶었지만 잡는 것은 불가능했을 뿐 만 아니라, 장면들이 너무 희미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 가운데에서도 그 모든 것이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희미한 기억들은 축복의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그 기억이 있으므로 내가 있고, 나의 인생이 축복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의 기억보다 훨씬 더 정확한 기억을 하는 분이라는 것을 믿으며, 하나님께 나의 과거를 의탁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축복이요 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모든 일들을 기억해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모두에 함께 하시면서 우리들과 관계를 맺으시는데 그것들을 모두 기억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잘못하면 마음 아파하시고, 우리가 그 분 눈에 맞는 일을 하면,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주고, 우리가 뉘우칠 때 기억에서 지워주십니다. 예레미야 31: 34에 하나님은 "내가 그들의 잘못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 죄를 용서하여 주리니"라고 약속하셨다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죄한 피를 갚으시는 분"이시며, "그들을 잊지 아니하시고, 불쌍한 이의 울부짖음을 모르는 체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시편 9:12).

기억하시는 하나님은 특별히 약자들을 위한 하나님입니다. 약자들은 기억을 요구합니다. 자신의 억울한 일들이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아픔이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들의 문제가 덮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약자들은 데모를 합니다. 대자보를 붙입니다. 이들의 문제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일이 문제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침략자 일본은 자신의 과오를 망각해 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침략을 당한 한국이나 중국 사람들, 특히 성노예로 가장 큰 고초를 당한 정신대 할머니들은 기억과 그에 기초한 정의를 요구합니다. 강자들이 기억하기를 원치 않는 것을 하나님은 약자들과 함께 약자들을 위해 기억합니다. 어린 나이에 미군 탱크에 깔려 죽은 심미선, 신효순 양을 기억하라고 가족들과 학생들은 연일 촉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노력이 없이는 기억은 쉽게 망각으로 넘어가 버리고 정의를 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억은 노력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기억은 그것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망각은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약자들은 기억을 살리기 위해 망각이라고 하는 거대한 적과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기억하지 않는 사람이나 민족은 망하고 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기억한다는 말이 Re-Member라고 할 때 기억은 옛일들의 영상들을 그대로 복사해 내는 것이 아니라, 옛일들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재구성되는 것을 말합니다. 즉 그 구성원들의 멤버쉽을 새롭게 엮는다는 의미에서 Re-Member라고 합니다. 새롭게 해석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일들을 하나님의 가치판단 속에서 해석해 낸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옛일들을 우리들의 가치판단과 목적 등에 의해서 새롭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애로운 사랑이시며, 정의로우신 분이며 창조의 목적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이 사랑과 정의와 창조의 목적의 관점에서 하나님은 우리들과 관계하시며, 우리들의 일들을 기억하시는 것입니다. 창조의 목적이란 우리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하나님처럼 과거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우리를 위한 창조 목적에 의거하여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볼 때 하나님은 우리들을 귀히 쓰시기 위해서 고난과 시련을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을 우리로 하여금 이루도록 우리들에게 좋은 일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긍정적이고 좋은 기회를 남용하거나 그것으로 인해서 교만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좋은 조건이건 고난과 역경의 나쁜 조선이건 모두를 활용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위해 정하신 창조의 목적을 실현해 내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택하는 삶의 자세라고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의 주제, 즉 기억이라는 주제에 적합한 말씀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다가 부사와 라사로의 이야기가 가장 적합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분명 오늘의 말씀을 위한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의 이야기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자와 라사로의 이야기가 말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이 부자는 이름이 붙여있지 않습니다. 반대로 가난하고 온몸이 헌데 투성이인 라사로라고 하는 이름없는 이의 이름이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돈있고 힘있는 사람들은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유명한데, 거지들은 이름이 없는 것이 보통입니다만, 이 이야기에서는 이것이 역전됩니다. 이 이야기 전체를 통해서 느껴지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세상적인 권력과 재물은 아무 가치와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고 합니다. 즐겁게 살았다는 것은 이 사람에게 어느 정도 건강이 있었다는 것이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좋은 친구들도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날마다 즐겁게 사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것도 건강해야 그렇게 될 수 있고, 자기와 비슷한 주위사람들이 많아야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이 부자에게 형제 다섯이 있다고 했으니, 아마 이 부자는 이 형제들과 그들의 친구들과 재미있고 즐겁게 살았을 것이고, 모두가 같이 부자였으니 같은 부류의 사람들끼리 잘 지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호화롭게 살았다고 하는데, 그가 얼마나 돈이 많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고통만 당하던 라사로는 죽은 후, 아브라함 품으로 가서 영화를 누리며 살게 되었는데, 이 부자는 죽어서 하데스라고 하는 지옥에서 뜨거운 불 속에서 고통당하게 되었습니다. 뜨거운 불 속에서 눈을 들어 올려다 보니 라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평화롭게 쉬고 있는 것을 보고, 아브라함에게 "라사로를 시켜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시원하게 하도록 해 주십시요"하고 요청합니다. 여기에 대한 아브라함의 대답이 오늘의 주제와 연결됩니다. "얘야 되돌아 보아라. 살아 있을 때에 너는 온갖 복을 다 누렸지만, 라사로는 온갖 불행을 다겪었다. 그래서 라사로는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다."

여기에서의 주제어는 25절에 "되돌아 보아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기억하라, Re-member하라는 것입니다. 이전의 것들을 새롭게 이해해 보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리-멤버 즉 새롭게 구성하여 새롭게 이해해 보아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것을 기억하라는 말은 회개하라는 말과 통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삶의 진정한 목적에 비추어서, 과거의 사실들을 재구성, re-member 해 보면 부자는 회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부자는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라사로를 보내서 자기의 형제들을 회개시키려고 했지만, 화자는 아브라함의 입을 통하여, 이미 모세와 예언자가 이미 경고를 했으므로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가지의 중요한 진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처럼 기억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자신을 성찰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의식하며 우리의 일들을 기억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루에 나 자신을 세 번 성찰한다는 것도 바로 이 기억을 의미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나를 위한 창조목적에 적합한 것인지를 살피는 것이 바로 기억인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의 일들을 창조목적에 비추어 살피는 것, 이것이 기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자에게 너의 과거를 기억해 보라는 것은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비추어서 너의 과거를 해석하라는 것이며, 그리고 반성하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기억하시는 하나님은 약자를 위한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에서는 부자에게 약자인 라사로의 일들도 기억하라고 명합니다. 부자가 라사로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가해자들은 기억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고난당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고난이 알려지기를 원합니다. 자신이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기억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억되기를 원하는 상처입고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틀림없이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기억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아픈 상처를 싸매주며 위로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일들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창조목적에 비추어 반성하며, 우리들 주위에 있는 라사로와 같은 약자들의 일들을 기억하는 것, 이것이 새길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억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이들을 무시하고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이들의 외치는 소리를 외면치 않는 저희들이 모두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우리의 부족과 욕심으로 말미암아, 다 기억하지 못함을 용서하여 주시고,
모든 억울한 형편과 아름다운 일들을 기억하시는 당신을 닮는 저희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당신께서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을 가지셨음을 믿고,
당신께서 주신 그 목적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인생을 살면서 아름다운 영적인 열매를 맺는 저희들 모두가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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